꽃 같던 울 엄마 어릴 적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양반집 막내로 이쁘게 자란 곱디 고운 처녀는 17곱살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첫 날부터 열여덟살이나 차이나는 동서 시집살이, 고집 센 시어머니와 형님간의 고부갈등 사이에서 매우 힘 들었음. 형님이 낳은 여자 조카아이들이 십대 중반부터 갓난쟁이까지 5명이 있어 걔들도 키워야 했고...
한 동네에 사는 시집 간 시누들ㅡ2명ㅡ뒤치닥거리까지.....
고등교육까지 받은 아주버님은 사업차...뭐 아시져....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양복으로 좌악 빼입고 서울이고 부산이고 마산이고 다니셨고. 더할 수 없는 멋진 올화이트 신사 아주버님이 두어 달에 사나흘 집에 들린 후에는....
큰소리 좀 나고...
나면 어김없이 곰방대를 뺨이 홀쭉하게 빡빡 서너대 빨고 난 시아버지는 가산을 팔아 주고.....동네 집 중 하나를 팔아 또 주고....ㅡ조상대로부터 마을을 이룬 집들 대부분이 집안 소유였고 그 집에 사는 주민에게는 집터ㅡ 정도의 텃세만 받았다함ㅡ
고운 처녀가 시집 온 첫 해 5월 초하루 였음.
시어머니는 이른 오후가 되자 억척스럽게 하시던 밭일을 갑자기 손 놓으시고 소죽솥에 물을 데워 목욕 하시고 옷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셨음.그리고는 새며느리에게 부엌에서 나가라 하시고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길래 깜짝 놀랐음.
시어머니는 낡은 소반에 생선 한마리 구워 올리고,막걸리 한 잔 올리고, 물밥 말아 올려 몽당초에 불 붙여 절 한 후, 빈 그릇에 놋쇠 젓가락을 톡톡 리드미컬하게 치며 뭐라고뭐라고 기도하듯 읊조렸음. 그리고는 대문가 양측에 우뚝 솟아있는 엉개나무ㅡ음나무ㅡ아래에 아래에 물밥을 놓았음.
새댁은 도우지도 자지도 못하고 뒤에서 심부름 시키기만 기다렸음.참 희한한 제사다........제사가 맞긴 한지..
아주 소박한 제사상이었지만 뭔가 정성이 있고 엄숙해 보였음. 마치 그들만의 세계랄까...
다음 해에 시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보전 했음.
그러자 시어머니는 큰며느리에게 올해부터 그 제사는 니가 지내라고 했음. 뭐 큰며느리는 대~~애~~충 지냈음.
안 그래도 4대 봉제사에 명절 제사에 제사도 많은데 영문모를 제사를 잘 지냈을리가 없...지 않겠음?
한번 제사 올리고 짜증 지대로 난 큰며느리는 물정 모르는 열여덟 새댁 동서에게 올해부터는 그 제사 자네가 지내라며 툭 던졌음.
일단 시모보다 더 무서운 형님이 지내라니 지내긴 지내야겠고 지난 해 보니깐 형님이 기름진 찬 한 접시 없고 향긋한 과일1도 없는 말 그대로 깨진 박 바가지에 물밥만 올리는게 안스러웠었음. 깡촌에 비린게 어디 있나....... 장날도 아니고.설사 장날이라하더라도 돈이 있어야 장을 보던지...
생각끝에 새댁은 산으로 가 산나물(취나물이라고 하죠.ㅋㅋ 기냥 산너물 혹은 멧너물이라고도) 뜯어 밀가루 풀어 솥뚜껑에 기름 둘러 구워서 지짐이나마 넉넉하게 올렸음.
이왕 지내는거 햇고사리 꺽어 삶아 고사리나물도 한 그릇 올렸음. 지난 제사에 올리고 남은 술을 한 잔 ㅡ형님 몰래ㅡ 올렸고.
그렇게 이름도 영문도 모른 제사를 지낸 며칠 후 점심밥을 짓는데 그렇게 잠이 왔음.그도 그럴것이 새벽부터 일어나 대식구 밥해서 먹이고 밭일에 시조카 돌보기까지....
어딘지 모를 산 밑의 아주 넓은 밭, 붉은 쇠비름이 온통 차지한 밭을 매는데 땡볕은 너무 뜨겁고 목은 타고... 침이 안 삼켜질 정도였음. 더 이상은 못 견뎌 물을 먹으러 개울이나 갈까싶어 호미를 짚고 일어서려고 했음.
그때 옆고랑 풀을 매던 아지매가 물이 가득 담긴 놋쇠 대접을 내밀었음. 겉에는 물방울이 앙알앙알 맺혀있어 너무 시원한 느낌이라 절로 손이 내밀어졌음. 예상대로 역시나 물이 너무 맑고 시원하고 달아서 눈치도 없이 한 그릇을 몽땅 마셨음.
그리고는 아차 싶어
"아이구,우짭니꺼, 미안쿠로.한개도 안 남기고 물을 싹 다 묵어서...쪼끔만 기달리소.쩌기 개울가서 물 떠오께예"
얼른 물 대접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그 아지매는 인자하게 웃어주며 괜찮다는 듯 새댁의 손등을 두드렸음.
그리고는 밭가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로 새댁을 데려가 바위 위에 앉혔음. 바위에 앉아있으려니 너무 시원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음. 새댁을 바위에 앉혀 놓은 아지매는 그 넓은 밭을 혼자 매기 시작했음.어찌나 속도가 빠르고 밭을 잘 매는지 입이 턱 벌어질 지경이었음!
양반 집 딸로 귀하게 자라 수나 놓았지, 농사일을 해 본적이 없었던 새댁은 밭 매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는데 그 분은 그 힘든 일을 쉽게 슥슥슥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음!
새댁의 등에 배인 땀이 다 마르기도 전에 밭을 다 매준 아지매는 새댁 손을 토닥이며
"서방님이랑 물가에 살아.알았지? 꼭!"
그리고는 호미를 손에 쥐어주었음. 무슨 ??? 놀란 마음에 받으려던 호미를 떨어뜨려 집으려하다가 졸음에서 팍 깼음.
그 아지매가 누군지 얼굴도 기억 안 나고 기억나는 건 달고 시원했던 물.아름드리 커다란 버드나무의 시원한 그늘과 등의 땀을 훅 식혀 주던 건들 바람. 넓디 넓은 밭을 지배하던 땡볕.
한 없이 넓은 밭과 뜨거웠던 땡볕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음.
한 이삼일은 무슨 꿈일까? 생각하다 바쁜 일상에서 살아남으려 부대끼다보니 꿈을 꾸었는지조차 잊어버렸음.
얼마 뒤 새댁은 임신을 한 것 같은데 부끄럽기도 하고 형님이 무서워 임신일까요 하는 말도 못 꺼냈음.
어느 날 아침 밥상에서 청상과부가 되어 돌아온 막내 시누가 새댁을 물끄러미 보더니 등을 토닥였음.
"올케 애 섰네. 효자로세 효자! 자 이 밥 자네가 다 먹게"
하며 자기의 밥을 반 넘게 덜어 주었음.
아들을 가졌다는 막내시누 말에 시어머니는 아주 기뻐하며 냉큼 방 안에 앉혀 놓고 일을 안 시켰음.그러나 형님은 질투심의 끝을 보였음.동서 구박에 눈치가 난 새댁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해야했고 형님의 극심한 폭언에 스트레스를 받아 견디다 못해 배가 제법 불러서 유산을 했음.낳고보니 아들이 맞았음. 그걸 본 시어머니는 큰며느리 탓이라며 난리를 쳤고 이에 분노한 형님은 몸조리조차 못하게 최악의 극성을 부렸음.
견디다 못한 새댁은 처음으로 남편을 붙들고 울었고 시름시름 앓게 되었음.잘 웃던 새색시가 말없이 맥을 놓자 서방님은 분노하며 분가를 선언함. 시어머니는 도시에 있는 큰 아들이 돌아오면 나가라고 했음. 그러나 서방님은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새댁을 훔치듯 끌고 옷가지와 솥, 수저만 들고 도시로 도망치듯 나갔음.
돈이 없어 때로는 소 달구지 얻어 타고 그 마저도 못 만나면 걸어서 걸어서 갔음.
겨울이 아주 깊어서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음.
남편은 힘 들지만 갯가 장림 포구라는 곳에서 일 하기로 하고 부둣가에 하꼬방을 얻었음. 새색시는 새벽같이 일어나 배에서 생선을 받아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까치고개,대티 고개를 넘어서 자갈치까지 걸어다녔음. 때로는 머리에 이고 신평 고개를 넘어 이동네 저동네 생선을 팔려 다녔음.
너무 부끄러워
"고기 사이소"를 외치지 못해 잘 팔지 못했음.팔기는 커녕 고개를 들기도 부끄러워 서방님 몰래 울기도 많이 울고 때로는 못 팔고 그냥 온게 한심하고 미안해서 하꼬방 방문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다가 들어가곤 했음.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역시 부끄러워 이고 간 생선은 못 팔았지, 배는 너무 고프지, 춥고 서러워 어느집 대문가에서 멍하니 서서 너무도 맛나게 흘러 나오는 밥 냄새에 침을 흘리며 홀린 듯 서 있었음.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가려던 아주머니가 새댁을 발견하고는 혀를 끌끌 찼음.
"이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은 곱게 생긴 색시네"
그말은 새댁의 눈물을 터뜨리는 기폭제 였음. 느닷없이 엉엉 우는 젊은 색시가 기가 찰만하건만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새댁의 생선 함지박을 받아 들고 집으로 끌고 들어갔음.
따뜻한 방에서 한바탕 울고나자 아주머니는 일 하는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 오라하여 새댁에게 숟가락을 쥐어 주었음.
살살 달래어 사정 얘기를 다 들은 아주머니는 함지박에 들어있던 생선을 두고 가라고 하시며 쌀 한되와 보리쌀 한되를 주셨고 언제 언제 다시 생선을 가지고 오라 했음.
새댁이 송구스러워하며 쌀은 밀어두고 보리쌀만 집어들자 아주머니는 한사코 손에 쥐어주며 동생 같아 그런다며 등을 토닥였음.
이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고 감사하여 며칠 후 보리개떡을 만들어 가지고 갔음. 아주머니는 보잘것없이 검기만 검은 보리개떡을 하찮다 여기지않고 매우 기뻐하며 드셨음. 아주머니는 새댁에게 자신을 따라 다니라며 권유했음. 그 분은 배를 가진 선주셨음. 주인 아주머니를 따라 다니며 어선이 들어오면 생선 하선 작업을 하고 팔기도 하고....그렇게 몇 달을 하니 자신감이 붙어 일을 잘 하게 되었음.
그렇게 억척같이 살다가 큰 딸을 낳았고 애 낳고 다다음 날부터 애를 업고 일 하러 나왔음.깜짝 놀란 아주머니가 기막혀 새댁을 만류하고 있을때 새댁을 찾으러 온 남편을 보게 되었음. 그렇게 어린 부부와 인연을 맺은 아주머니는 어느 날 남편에게 배를 한 척 내어주며 일을 시켰음.
그렇게 낙동강 칠백리 뱃길을 작은 배 한척에 몸을 싣고 하동에서 참게나 재첩을 사서 부산까지 가지고 와 팔았음.
애가 젖을 떼자 아주머니가 애를 봐주어 부부는 같이 사시사철 낙동강 칠백리를 누볐음.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둘째 딸을 낳았고 돈을 좀 만지게된 부부는 아주머니의 권유로 거저 얻다시피 장림 뻘밭을 이천평 넘게 샀음. 뻘밭을 산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젊은 부부를 욕했음.그러나 아주머니를 향한 거대한 믿음과 새댁의 꿈 때문에 그 쓸모없는 뻘밭을 샀음.
처음 뻘밭을 사라는 말을 들은 남편은 당연히 싫다고 했음.
그날 밤 새댁은 산밑 넓은 밭을 매는 그 꿈을 또 꾸었음.
너무 똑 같은 꿈이었음. 단지 다른 점이라면 밭을 매 주던 이를 모를 아지매는 새댁에게 물을 주며 화를 크게 냈음!
"내 말 들어! 내 말 들어라고!"
화를 내는 그 서슬에 놀라 잠을 깼음.
아침에 남편에게 뻘밭을 사자고 어떻게 설득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남편이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그 뻘밭을 사자고 하는게 아님? 너무 놀라 왜 맘이 바뀌었냐고 물어보는것도 잊을 지경이었음!
"꿈에 볕이 너무 좋고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서 있는 밭에서 자네와 웬 아지매가 밭을 매더라고. 그러던 중 그 아지매가 갑자기 자네에게 주려던 물그릇을 팽개치며 자네를 뭐라길래 뛰어가 자네를 뒤로 감찼제"
"내 말 들어, 말 들어라고!"
"하도 무섭게 화를 내서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잉께 물을 마시라고 그릇을 주는데 그 물이 어찌나 시원하고 단지.자네랑 나랑 마시고도 물이 찰랑허니 그대로더라고.퍼뜩 깨서 생각나는게 뻘밭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 드는기 그긴가보다 싶네!"
그렇게 뻘밭을 사고 잊은듯이 살았음.
겨울 낙동강 칠백리는 너무 추웠고 새벽에 도착하면 먹을게 없어서 얼은 두부 한 모를 부부가 나누어서 먹었음.
다음 해 6.25전쟁이 터져서 전국이 뒤집어졌음. 서울이 함락되고 북에서 서울에서 남으로 남으로 피난민이 몰려들었음.
다음 해에 고향에 있는 시아버지의 부고가 날아왔음. 뒤늦게 소식을 듣고 가보니 마을 중앙에 우뚝 서 있던 본가는 인민군이 지른 불에 타버리고 없고 살아남은 시어머니와 형님과 다섯 시조카딸들이ㅡ두 딸은 시집 갔음ㅡ 타버리다 남은 행랑채에 기거하고 있었음. 그 와중에도 시아주버님은 없었음. 집안이 엉망이라 조금 도와주고 가자는 마음에 머물렀음.
고향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남자들을 잡아가는 인민군때문에
남편은 산에 있는 동굴에 숨어있었음. 서너달이 지나자 이번에는 국군이 갑자기 젊은 남자들을 군인으로 징발 했음.
어느날 밤을 틈타 남편에게 간 새댁은 주먹 밥과 보따리를 건네 주며 부산 집으로 가라고 권유했음..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새댁은 시가에 기거하며 둘째딸을 낳았음. 시어머니는 집안이 무너지고 아들들은 다 곁에 없고 며느리들이 딸만 낳자 제정신을 잃었음. 새댁은 미역국은 고사하고 단 하루도 누워있지 못 했음.
딸이 백일이 될 무렵 어스름한 저녁이었음.
무너진 대문가에 보따리를 든 웬 아주머니와 아주버님이 서 있었음. 뒤따라 오던 남자아이 둘이 새댁을 보고는 놀라며 반갑게 소리쳤음.
"하나 아지매!"
"니 병철이 아니가?? 이기 눔니꺼?선주 아지매 아이라예?"
이게 무슨 일?? 일단 반가워 손을 마주 잡고 흔들고 부둥켜 안고 하다가 으잉?? 이게 무슨.......
"제수씨 잘 기셨습니까? 어무이는예?"
큰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시어머니는 방에서 구르듯이 달려나와 큰 아들을 얼싸 안고 울부짖었음.
"아이고아이고 인자 우린 살았다 살았어!"
"야들아 너거 할무니다.절 올리라.어무이 손자 병진이 병철입니다."
참....세상에 별 인연도 다 있다 싶었음.
새댁을 도와주던 선주 아주머니는 아주버님의 첩이었음.
새댁은 가끔 들리는 선주 아주머니 집에서 그 집 가장은 본 적도 없었고 일때문에 전국으로 다닌다길래 그러려니 했음. 낙동강 전투가 끝나고 보니 배도 다 파손되어 없어지고 어수선하게 살다가 피난 겸 돌아 온 남편이 고향으로 가자하여 가산을 팔고 왔다함.
엉겹결에 시앗을 본 형님은 앓아 누웠음. 시어머니는 손자가 둘이나 생기자 산삼을 먹은 양 훅 살아났음.
형님은 새댁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너희들끼리 짜고 속였 다고 난리를 쳤음. 날이면 날마다 새댁에게 패악을 부리니 그걸 지켜보던 선주아주머니는 새댁을 불러 부산으로 가라고 했음.
손에 돈을 쥐어주며 본가는 본인이 알아서 할터이니 뒤돌아 보지 말고 가라고 했음.
남편 걱정에 애 둘을 데리고 부산으로 겨우겨우 갔음.
살던 집에 가보니 이웃이 집을 잘 봐주고 있어서 별 피해는 없었음.그러나 남편은 없었음. 왔다가 군인 징발을 하니 도망갔다고 함. 새댁은 매일 물 떠 놓고 빌었음.
기도덕이었을까? 몇 개월 뒤 야밤에 남편이 돌아왔음.
남편은 집안을 단도리하고는 국군으로 가겠다함.
그때가 53년 3월이었음.
남편을 보내고 새댁은 악착같이 일하고 애들을 키웠음.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이 장하게 들려왔음.휴전을 한다 던 중국이 태도를 바꿔 다시 공격을 하여 참전했던 2사단과 6사단이 전멸했다더라.금성 전투서 패했다더라 등등.
남편 소식을 알길없어 울다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잠결인지 누군가 새댁을 어깨를 부드럽게 만지며 달래주었음.
자기가 지켜줄터이니 걱정말라고.......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남편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음. 딸이 어느새 셋이 되어 업고 걸리고 생선 함박을 이고 장림포구에서 까치고개를 넘고 대티고개를 넘어 다니며 남포동까지 장사를 다녔음. 둘째 딸을 홍역으로 잃은 그 해 가을에 고향에서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니가 옴. 고향으로 돌아오너라.
시어머니의 한 마디는 천둥번개였고 아이를 잃어 마음이 약해진 부부의 고민은 짧았음.2천평 장림 뻘밭을 이웃에게 그저 주다시피 팔고 고향으로 돌아갔음.
고향으로 돌아가보니 작은형님ㅡ선주아주머니ㅡ은 혼자서 농사짓고 집안 건사하느라 힘 들었는지 아파누웠고 원래도 게을렀던 형님은 시앗 핑계대고 아예 일손을 놓았음.
겨울에 작은형님은 숨을 놓았고 새댁과 남편은 새경없는 종처럼, 큰 집 논이나 밭을 붙여 먹고 애들을 낳고 키웠음.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그나마 남아있던 재산은 모두 큰아들인 시아주버님 몫으로....
새댁네는 작은 산밑 돌 밭 하나....
돌밭이라도 내거라는 기쁨으로 돌을 주워내고 개간하여 콩을 심으면 콩이, 팥을 심으면 팥이 실하고 고추를 심으면 고추가 풍성풍성.
남의 집 작물은 가뭄이라 타 죽고 장마라 물러 죽어도 새댁 밭은 늘 풍성했음! 밭가에는 뽕나무를 심어 풍성한 뽕잎으로 누에를 통통하게 길렀고 병으로 죽는 누에가 단 한마리도 없었음. 누에가 뽕잎을 먹는 사각사각 소리가 새댁에게는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었음.
새댁은 손이 부르터라 겨울 밤에는 가마니를 짜고 남편은 그걸 지고 가서 팔아서 살았음.
세월이 흘러 새댁과 남편의 허리는 굽고 하얗게 센 머리로 부산의 옛날 그 집을 찾아서 가 봤음! 그때 쓰니도 같이 갔음.
세상에! ㅠㅠ 아버지께서 옛날 내 땅이 쩌어기서 여까지였다라고 가르키는데 ㅠㅠ 지금은 그곳이 장림우체국 등......옛날 집터를 갔더니 ㅎㅎ 이웃의 사정이 안타까워 억지로 사주었던 그 분이 거기에 으리으리한 건물도 올리고 다세대주택도 서너채 짓고 세 받아 먹고 살고 있었음.
두 집 노인들은 만나자마자 알아보고 얼싸안고 우셨음.
쓰니도 울었음! 그 2천평이 너무 아까워서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울 언니들도 아까워서 땅을치곡ㅋㅋㅋㅋ
철학자이신 울 엄마는......
"눈 멀고 귀 어두운 돈은 없지~~~"
"옴마, 그 제사 계속 지냈으면 어찌됐을까?"
"지랄한다.내 복이 그뿐이지 구신탓은 왜 하노"
아 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