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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촌 형이 최근 심장마비로 생사의 기로에 있다가 다행히 회생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던 형도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메신저 대화창으로 건너 들었는데, 형의 이름과 심장마비라는 단어만을 우선 읽고 잠시 다음 말들을 읽기조차 두려웠다. 그 짧은 순간에도. 회생이라는 단어를 마저 찾아냈을 때, 나는 정말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 무서워진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죽음이 이제는 결코 남의 일만도 아니고 언제든 내 주위에서 일어날 일이며, 다가오고 있는 일이라는 게. 뜬금없게도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어른들은 정말 존재 하나하나가 평범하지 않다는 그런. 대체 그들은 그동안 차례로 경험했을 수많은 죽음들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온 걸까. 물론 나 역시 가까운 이의 죽음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아니고, 안타깝게도 이미 어려서부터 가까운 이나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이 들어가며 하나둘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이미 여러 번 지나온 사람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 모든 것을 보고 지나오면서도 어떻게 살아지는 것일까. 십여 년 전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러니까 가까운 이의 죽음을 사실상 처음으로 경험했을 때, 그때 나는 상당히 늙어버렸고, 좋게 말하자면 많이 성장했다. 그건 정말 큰 충격이었다. 처음 제대로 맞는 죽음이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스러져갈 때마다 나는 심각하게 늙을 것이고, 그에 대한 미진한 대가로 또 조금씩 성장하겠지. 세상에 굴곡 없는 이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두려운 것은 그 죽음의 당사자에 나 또한 포함되는 것이고, 내가 혹시나 모를 이른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남겨질 가까운 이들의 슬픔이 상상만으로도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그러한 생각도 살아있는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사치 아닌가. 죽은 자의 슬픔이라니. 죽음은 언제나 삶을 겸손하게 만든다. * 형과 통화를 했다. 워낙 밝고 건강한 사람이라 잘 회복해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압축해서 들은 지난 몇 달간의 신비에 가까운 임사체험(?)과 말도 못 할 어마어마한 고생들을 들었다. 또 그의 직계가족들은 오죽했을까.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지만, 지금은 잘 회복해가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내 손이 떨리는 기분이다. 부디 우리 모두가 무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