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factory99
5,000+ Views

안시성 전투

安市城戰鬪 645년(보장왕 4년), 고구려의 안시성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1차 고-당 전쟁의 대표적인 전투이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여러 성을 함락하는 등 많은 피해를 주었지만 안시성의 실패로 고구려에서 철수하게 된다. 1 배경 643년 9월에 당나라에 고구려에 상리현장을 사신으로 보냈고 연개소문이 신라의 두 성을 함락했는데, 상리현장은 신라를 공격하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연개소문이 이를 거절하면서 당태종이 이를 명분으로 삼아 고구려 정벌을 일으키기로 하는데, 요수를 건너 건안성을 압박하고 이세적, 이도종 등이 개모성을 함락했다. 한편으로 장량이 이끄는 수군이 비사성을 함락하고 당태종이 요동성, 백암성 등을 함락했으며, 고구려에서는 고연수, 고혜진 등이 이끄는 15만을 원군으로 보내서 싸웠다. 아사나사이가 이끄는 당군이 거짓으로 싸우다가 지는 척 도망가거나 사신을 보내 연개소문을 문죄하러 온 것으로 교전은 바라지 않고 신하의 예만 취한다면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고구려군을 방심하게 했다. 결국 고구려군은 제대로 방비하지 않다가 주필산에서 패해 고연수, 고혜진 등은 항복했으며, 8월 10일에 군영을 안시성 남쪽으로 옮겼다가 당태종은 건안성, 오골성 두 성과 안시성 중에서 어느 곳을 공격할지 물었다. 이세적이 보급 문제, 배후 기습 문제로 안시성을 공격할 것을 주장해 안시성을 공격하기로 한다. 2 진행 당나라의 군사들이 안시성 공격을 시작하자 안시성 내부에서 당태종의 깃발, 수레의 덮개 등을 머리서 보기만 하면 번번이 성에 올라가 북을 두드리면서 당태종이 화를 내자 이세적이 성을 공격하는 날 이들을 모두 묻게 해달라고 하면서 이 소식을 듣고 안시성에서는 더욱 굳게 지키기를 각오하면서 당나라의 군사들이 여러 차례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았다. 고연수, 고혜진 등이 군사를 옮기면서 장량의 군사와 합해 오골성을 함락하고 압록수를 건너 평양을 함락하는 의견을 냈지만 장손무기가 건안성, 신성 등의 군사들에게 공격받을 것을 이야기하자 중지했으며, 당태종이 안시성의 닭, 돼지 소리를 듣고 성을 포위한지 오래 되면서 성 안의 연기가 미미해졌지만 지금은 닭과 돼지가 시끄러운 것은 군사들에게 잡아먹이고 밤 중에 나와서 기습할 것이라 여기면서 이세적에게 대비하게 했다. 밤에 고구려군의 수백 명이 성에 줄을 매달아 내려왔고 이 소식을 듣고 당태종이 직접 성 아래로 와 군사를 불러 공격해 수십 명을 죽이고 물러나게 했다. 이도종이 무리를 감독해 성의 동남쪽 귀퉁이에 토산을 쌓고 안시성을 압박했는데, 안시성에도 이에 대응해 성을 더 높이 쌓았고 여러 차례 군사들이 교대로 싸워 하루에 여섯 번에서 일곱 번 교전할 정도였다. 당나라의 군사들은 충차, 포석으로 성루를 부쉈고 안시성은 목책으로 부서진 부분을 막았으며, 이도종이 싸우다가 발을 다쳤고 토산을 쌓는 일은 60일이나 되었다. 토산 꼭대기에서 성곽까지는 몇 장 정도 떨어져 있어 내려가서 성 안으로 들어가게 했는데, 이도종은 부복애를 시켜 토산 꼭대기에서 대비하게 했지만 부복애가 사사로이 부대를 거느리고 떠나고 있던 중에 고구려의 군사 수백 명이 성이 부서진 곳으로 나와 싸우면서 토산을 빼앗아 점거하면서 참호를 파서 지켰다. 결국 당태종은 화가 나서 부복애를 죽였고 이도종이 죄를 청하자 개모성, 요동성을 함락한 공로가 있어 용서했다. 요동성이 일찍 추워지고 풀은 마르면서 물이 얼어 병사와 말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양식이 떨어지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3 결과 안시성의 실패로 인해 고구려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시켰으며, 당의 주력군이 고구려 원정을 한 틈을 타서 설연타의 힐리구리실설사다미가한이 하주를 노략질했다. 이로 인해 당태종은 장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주를 직접 정벌하려다가 병에 걸리게 된다. 여담으로 안시성 전투는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2006~2007)과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2006~2007)에서 자세하게 묘사된적이 있다. 보통 대조영버전을 연개소문 버전보다 높게 쳐주는데 대조영에서는 수십만의 당나라 대군이 안시성으로 돌격하는 모습,공성전,토산의 붕괴등을 실사촬영,CG로 리얼하게 처리함으로써 거의 반지의 제왕급의 전투신을 구현해냈다. 특히 토산이 무너질때의 장면과 OST가 맞물리는 폭풍간지의 장면은 대조영 최고의 명장면으로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된다. 출처- 리그베다 위키
3 Likes
2 Shares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하느님도 싫어하는 행위
다윗은 왕이 되고나서 한번은 자신의 궁전을 산책하다가 자기 궁전 앞에있는 집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봤음. 그 여인은 자신의 부하이자 군인중에서 하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그때가 목욕하던 순간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취향이여서 그런건지 ㅗㅜㅑ;;;;;; 해버린 다윗은 밧세바가 탐이나서 ntr을 시도하여 동침을 해버렸고. 아이가 생기더라도 자연스럽게 우리야가 자기 자식인줄 착각하게 하고 이 일을 숨기기 위해서 군인이였던 우리야를 불러 휴가라고 하면서 자기 마누라랑 동침을 하게 할려고했음.  그러나 뼛속까지 구닌이였던 우리야는 자기 전우들이 피땀흘리며 싸우는데 자기만 집에서 놀수는 없다고 거부. 이걸 들은 다윗은 결국에는 자신의 부하장군을 시켜서 전투의 최전선으로 우리야를 보내서 거의 강제로 전사하게 만들고 슬퍼하는 밧세바가 남편의 상을 다 치루자마자 자기 마누라로 삼았음.  "저런짓하지 말라고 십계명도 만들었는데 ㅅㅂ." 이걸 본 하나님은 당연히 극혐하여 이걸 용서하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가긴 그러므로 예언자를 보내서 왕을 꾸짓으니 그사람의 이름이 나단이였고 꾸짓은 내용은 이럼. "어이 다윗왕님." "예언자 어서오고." "그 이야기를 아십니까? 못된 부자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게 뭔데 하느님이 말한거라도 되냐." "이런 남자가 살았다고합니다. 예전에 어느 부자와 가난한이가 한동네에서 살았죠. 부자는 손님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면 예를 다해야하는데 부자는 자신이 가지고있는 수많은 말과 양을 잡기 아까웠다고합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가난한자의 하나뿐인 암양을 뺏어서 손님을 대접해줬고 가난한이는 유일한 재산을 잃고 나중에는 굶어 죽었다고합니다." "그거 참 간사하고 나쁜자로다. 자신의 넘치는 재물을  밖에다가 뿌리고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손님을 대접하는데 남의것을 빼앗다니! 내 나라에 그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벌을 받게 만들었을것이다." "그게 바로 너입니다." "뎃?" "너요 너 너 너 너 너 너이사람아 너 너 이 NTR충아 너!" 왕한테 눈깔에 힘 빡추고 혼낸게 상당히 인상적인데 다른 몆몆 그림은 저렇게까지는 안그렸을지라도 적어도 손가락질은 했음. 왕한테 이러는건 팔이 잘려도 용서못받을짓인데 나단은 바세바가 품고있는 다윗의 자식은 좋을일에 절대 못쓸것이라며 죽게될것이라고 저주를 부었고. 단도직입적으로다가 크게 혼이나서 혼이 빠진 다윗은 몆일내내 금식에 기도에 절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자식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고함. 하나님도 NTR충은 역시 극혐하신다.  (출처) 제우스는 NTR 겁나 해대던데 그리스 라인을 탔더라면...
마틴 루터도 이기지 못한 존재
마르틴 루터 아마 성당이나 교회 다닌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들어봤거나 하다 못해 종교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사람임. 마르틴 루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법관-사제 과정을 거치고 신학자로 승승장구하다가 당시 교황청의 막장 상황을 보다 못해 종교개혁 28조를 쓰고 이것을 공개적으로 비난함. 이후 교황청의 막장 상태에 공감이 가던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기 시작하고 이 여파가 커지면서  지금의 구교 - 신교로 분리하게 됨. (그 외 더 복잡한 일이 있지만 대강 정리하면 이럼) 근데 마르틴 루터 역시 능력 자체가 어마어마하던 사람이었음. 하나 하나 나열 하자면 1. 말빨이 어마어마함 - 머리도 워낙 똑똑했고 아는 것도 엄청 많았음  이걸 기반으로 그 당시 하늘을 찌르던 교회의 권위를 말로 발라버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말빨이 좋았음. 당시 난다 긴다 하는 신학자들도 루터를 이기지 못했을 정도였음. 루터를 재판에 회부한 사제들도 '어 뭐지, 루터 쟤 말 들어보면 교회가 잘못한 것 같은데'라고 흔들렸을 정도임  2. 글빨도 짱좋았음 - 본인 스스로 '나는 글을 짜내지 않아도 됨. 그냥 생각나는데로 쓰니 되더라' 하면서  어마어마한 글빨을 보여줌. 루터가 활동하던 1523년에 900여권의 출판물이 발간됐는데 그 중에 346편이 루터가 쓴 것이었음. 지금처럼 독해력이 높지도 않고 출판 기술이 좋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도 한 명이 한 나라의 출판물의 3분의 1을 책임진다는게 말이 안됨. 그리고 루터 혼자서 평생 쓴 카톨릭 관련 저서가 당시 독일 내에 있는 모든 카톨릭 저서보다 무려 다섯배 많았음.  그냥 루터가 '글아, 써져라 호잇!' 했는데 그게 한 나라의 모든 저서의 다섯배가 넘는 결과를 만들어버린것 3. 예술 능력도 탁월했음 40살이 넘어서 음악에 꽂히더니 그냥 숨쉬면서 일년 동안 42곡의 찬송가를 작곡했음. 몇몇 곡은 아직도 불려지고 있음. 하지만 본인은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어서 '음, 심심해서 써봤는데 님들이 부르던 태우던 맘대로 하세요' 하고 신경 안씀 4. 언어학의 마스터 - 이 분야의 갑 오브 갑 영국에 세익스피어가 있었다면 독일에는 마르틴 루터가 있다. 성경을 독일어로 전체 번역했을 뿐 만 아니라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에 아주 능통했음. (그 어려운 성경을 한 나라의 언어로 통째로 번역하는 건 상식적으로 보통 일이 아님)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 루터는 성서에 언급된 지방에 가서  그쪽 사람들과 직접 대화해서 자문을 얻었을 정도임. 그러면서 성경에 있는 언어들을 독일어 뜻에 맞는 단어로 하나 하나 바꾸고 이걸 통해 독일어 전체에 새로운 단어들이 탄생함. 5. 특히 말로 까는 건 엄청 잘했음 교회를 말빨로 발라버렸을 정도로 말이 쌨던 루터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통했음.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에게는 '님 생긴 걸 보아하니 아기 잘낳게 생겼네요.(존나 계집애 처럼 생겼네)' 후원자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는 '님은 늙은 돼지 방귀 소리 듣고 배우세요' 자기 추종자들에게는 '내 이야기 하지 말고 성경 좀 봐 병신들아' 자기 나라 사람인 독일인들에게는 '님들 먹고 마시는거 밖에 모르는 짐승으로 소문난거 아시죠?' 등등 별의별 인용구와 다양한 단어들을 인용해서 다채롭고 화려하게 까기로 유명했음. 오죽했으면 동료가 '루터가 하루라도 좀 닥쳤으면 좋겠다'라고 평했을 정도임 즉 마르틴 루터는 신학 + 논리학 + 웅변능력 + 카리스마 + 깡 + 언어학 + 예술학 + 법학 등등 정말 유례 없는 시대의 먼치킨이었음. 하지만 교황청에게 빅엿을 날리고 난다긴다하는 사제들을 혓바닥으로 씹어 버리고 왕이고 나발이고 다채롭게 까버리는 루터마저 결코 이기지 못한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아내 카테리나임. 카테리나와의 만남도 조금 골때리는데... "지참금을 주기 싫어서, 혹은 양육하기 싫다는 이유로 억지로 수녀원에 맡겨져서 평생 갇혀 사는 것은 말이 안된다!!! 수녀들도 자유롭게 살면서 사랑을 누릴 자유가 있다!!!" (실제로 루터는 이러면서 많은 수녀들이 탈출하게 도와줌) "음, 님 말이 맞는 것 같음 나도 우리 부모가 키우기 싫다고 수녀원 보냈거든. 근데 문제가 생김." "?  뭔데요" "남자가 없음. 그니까 님이 책임져" "???????" (카타리나가 16살 연하.....) "그래서 나랑 결혼 할꺼야, 말꺼야? 대답은 예 or 예로 대답해" "예?" "ㅇㅋ 수락했다?" .....자발적으로 수녀원을 탈출한 카타리나는 마르틴 루터에게 가서 책임지고 자신과 결혼하라고 회유를 가장한 설득과 협박을 했고 거기에 넘어간(???) 루터는 카타리나랑 결혼함.  루터는 수도사처럼 그냥 혼자 살고 싶어했다고 함.... 그리고 결혼 직후  마르틴 루터가 개빡치는 일이 생김. "여보" "왜" "알브레히트 추기경이란 사람에게 혹시 돈 받았어?" "ㅇㅇ 그양반이 결혼 축의금이라면서 줬는데?" "미쳤냐!!!!! 그 양반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면죄부를 판 인간이잖아!!!!!" 알브레히트 추기경은 면죄부를 팔아서 교회의 타락과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숙적 of 숙적이었음. 그런 추기경이 돈을 줬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함정이나 견제의 목적으로 충분히 봐도 문제가 되는 일이었음....  "내가 알았겠냐?" "아 됐고,  빨리 그 돈 다시 보내!!!" "싫은데? 이미 돈 썻엉 ㅋ." "하..... 이게 연하라고 오냐오냐 봐줬더니.... 야, 내가 누군지 모르냐? 나 루터야. 교황이고 왕이고 다 까는 루터! 내가 여자라고 봐줄.......!!!" 그렇게 세기의 먼치킨은 아내와 첫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고 아내인 카테리나가 남편인 마르틴 루터를 개쳐발랐다고 한다. 부부싸움에서 이긴 카타리나는 축의금을 그냥 기분 좋게 살림에 보태썼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인생 최초의 대패를 경험한 마르틴 루터는 개삐져서 내가 다음에 결혼하게 된다면 돌로 순종적인 여자를 조각해서 결혼할거임  이라고 투덜댔다고 전해진다.  (덧) 그래도 둘은 금슬은 좋아서 마르틴 루터는 종종 카타리나를 '나는 경건한 하인, 카타리나는 나의 여왕님' 이라고 치켜 세우거나 '나는 당신이 있는 집의 꼭대기만 봐도 행복하니, 이런 남자에게 굴복하지 말라'라고 당부하거나 '나는 아론, 카타리나가 모세' 라면서 성경 인용을 하거나 '프랑스를 다 준다고 해도 카타리나랑 바꾸지 않겠다!!라는 말도 자주했다고 함. (출처) 사랑은 마틴루터킹도 두손 두발 들게 했다 오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