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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상님들의 위엄

당시에도 한류가 있었나보오 껄껄

사실상 성리학의 영향이 커졌던 조선 후기에도 남성이 집안 살림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우리나라에 비해 여성은 집안일을 하고,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던 일본이었으니 당시 일본 여성들에게 조선의 남성들이 얼마나 매력적이었겠소. 우리나라의 잘못된 가부장제도 일제시대때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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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이 저런 케이스인가
대학교 다닐때 어느 날 모임에서 후배가 울면서 힘들게 고백했다...조부모와 부모님이 일본 사람인데 귀화했다고.....걔는 울고 우리는 뻥찐 표정으로.... "근데 그게 왜?" 우리는 걔가 왜 우는지 이해 못해서 ㅋㅋ 해프닝으로 끝났음! ㅋㅋ 우리가 자길 싫어할 줄 알았나봐...
한국남자 일본여자 커플 궁합은 저래서 잘 맞는가봄
중간에 문교부 차관 S ... 코피노 원조냐곰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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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했던 중세시대 인류최강의 남자
용장 이성계 중세시대에 싸움을 잘하는 장수가 다루는 기술로는 기마궁 >> 기마창 > 그외 부지기수 등으로 볼 수 있겠다. 삼국지 여포가 최고로 불리었던 이유가 섬서성 출신의 덩치빨에서 오는 힘 + 어렸을 때 기마민족들이랑 자라서 기마궁을 잘 쏘았기 때문ㅇㅇ 기마궁 솜씨가 뛰어났던 이성계는 여러 여진족들에게 찾아가 부족 최고의 무사들과 기마궁 1대1로 꺾어오며 휘하에 여진족 맹장들을 두었음 (기록된 부하장수 중에 훗날 청나라 시조의 조상님도 있다 함) 전세계를 유린했던 몽골군의 전투기술이 최고로 발달 했을 때의 원나라군을 이끄는 '몽골의 마지막 불꽃' 나하추가 동쪽에 집결해 있을 때 나하추의 장수 5명과 일기토를 벌여 전부 죽이고, 몽골군과의 전투에서도 압승함 - 여러 고려 역사 기록에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중국측 사료엔 증명이 안됐다는데,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많은 역사서가 사라졌고, 정황상 한반도 침략은 당연했고, 조선초에 굳이 역사를 위조하면서 까지 당시 명나라를 도발할 이유는 없었기에 신뢰할 만 하다고 봄. 애초에 당시 명나라 정황상 여러모로 해외 소국의 일까지 신경쓰기 어려웠을듯 그 외 여진족, 일본 왜구 아지발도, 덕흥군이 딸려온 원나라 군대, 명나라의 10만 홍건적, 최영이 이끄는 고려 정예부대 등등과 동아시아 거의 모든나라와 싸워 전부 이겼음 전투 대부분이 압도적인 기마궁 솜씨로 적장들을 미리 죽여놓고 몰살 하는 방식으로 이성계의 활이 일반 각궁보다 당기기 힘든대신 장력이 쎄서 사거리 20m는 더 된다함 홍건적 전투만 보더라도 10만명의 적들이 개경 안에 있을 때 수만명의 고려군이 성을 포위했는데 이성계가 최선두로 성문을 돌파해서 적 총대장+부총대장2명을 죽여버렸다함. 보통 군대에서 최선두 부대는 싸우다 지쳐 중간에 옆으로 물러나고 뒤에 있는 군사들이 치는 방식으로 밀고가는게 보통인데, 이성계 군의 압도적인 무력 때문에 적 진영이 손쉽게 와해됐다는거 당시 이성계의 적들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보자면 약간 이런거임. 병사 1인칭 시점 1) 전투 벌어짐 2) 이성계 기마병들이 이쪽으로 존나 달려옴 3) 근접했을 때 뭔가 명령이 떨어져야 대비를 하는데 상관이 아무 말도 안함 4) 기마병 거의 다가와서 아몰랑 하고 옆으로 피함 5) 상관새끼 뭐하나 봤더니 활 맞고 이미 죽어있음 (???) 장수 일신의 무력이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수준이었던거임 출처 역시 *무력이* 존나쎈분이셨군
사회생활, 인간관계 조언 18가지
1. 사과만 잘해도 90%는 먹고 들어간다. 실수나 잘못은 빠르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2. 누구에게나 착하게 굴지 마라. 착함과 현명함은 다르다. 나를 보호할 수 있게 때에 따라 거절도,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3. 쓰레기장에서 쓰레기와 어울리면 나도 쓰레기가 된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자. 4. 한 번쯤은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사랑해 봐야 한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은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5. 거창하지 않아도 단기, 장기 목표를 세우자. 열심히 달리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때 이 목표들이 표지판이 되어줄 것이다. 6. 인사는 기본이다. 인사는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첫걸음이다. 7. 눈치가 좋은 사람들은 눈치가 없는 척한다. 적당히 모른척해야 사회생활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8. 버렸던 쓰레기는 다시 주워오지 말자. 나에게 상처 주고 손절한 사람들을 용서할 필요 없다. 결국 다시 배신할 테니. 9.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결국 나를 공격한다. 미워하는 대신 잊자. 10. 이기려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자. 살다 보면 때론 실패하고 질 수도 있다. 이기려 하지 말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 하자. 11. 가끔 관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내 옆에서 힘이 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만 남겨둬도 충분하다. 12. 꾸준히 운동해라 13.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 무례한 사람은 영원히 무례하고 좋은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이다. 바꾸려고 해봤자 내 힘만 빠진다. 14.입 밖에 꺼낸 순간 그건 비밀이 아니다. 나를 믿고 말해준 사람을 배신하지 말자. 15. 사람의 본성은 그 사람이 화낼 때 나타난다. 화낼 때 바닥을 보여주는 사람은 피하자. 16. 행복은 생각보다 작은 곳에 숨어있다. 큰 성공을 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17.안 하고 후회할 바엔 하고 후회하기. 도전하면 실패와 성공이 남는 게 아니라 경험과 성공이 남는다. 18. 가장 중요한 건 ‘내 인생’이다. 인생에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다. 출처ㅣ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탱크맨,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
보통 우리는 이 사진으로 탱크맨을 알고있지만 실제 상황은 이랬음 ㄷㄷㄷㄷㄷ 저 수많은 전차 행렬을 혼자서 틀어막은거임 ㄷㄷㄷㄷ 천안문 항쟁 당시 지도에서 붉은색 혈흔이 바로 유혈진압이 있던 장소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 그림이지만 많이 잔인함 당시 상황을 다뤘던 다큐멘터리 바글바글 모여있던 시민들에게 실탄사격함 ㄷㄷㄷㄷㄷ 중국군의 진압으로 적게는 2600명, 많게는 1만명이 사망한것으로 추정됨 (소련은 1만명이 사망했을 것이라 추정했고, 나토는 7천명이 사망했다 추정했으며, 중국 적십자사는 2600명이 사망했다고함. 중국 정부는 241명이라 주장.) 그렇게 하루 동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 어쩌면 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총에 맞고 탱크에 깔려죽은 바로 진압의 다음날 아침에 벌어졌던 일이 바로. 이 상황이었음 6월 3일과 4일. 2일동안의 유혈진압 뒤 전차부대가 천안문 광장에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와중 다른 모든 시민들이 학살당할까 두려워 도망친 그 상황에! 탱크맨이 유유히 걸어와 대규모 전차부대의 전개를 가로막은거임 탱크맨 아무것도 몰랐을때는 그냥 용기있는사람이겠다 생각했는데 전날과 전전날 군대에 의해 수천명이 죽은상황에서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되니까 ㄹㅇ 대단한사람으로 보임 출처 학살이 시작된 다음 날 동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난 후였기 때문에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탱그를 보자 막아서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거라 하오. 이 한줄을 쓰는데도 울컥하다니 진정한 중국의 라스트 따거 아니겠소...
조선 후기 미녀 기생들
이난향 조선 후기 유일 1패 기생 1패 기생은 왕 앞에서만 유일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특급 기생 (참고로 황진이는 양반들만 상대하는 2패 기생으로 이난향보다 급이 낮음) 이난향은 대한제국 시절 순종의 전속 기생이었음 고향은 평앙인데 기생학교는 경성의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를 나왔음 참고로 당시 기생학교 투 톱이  경성의 조선권번 평양의 평양권번임 이건 당시 기생학교 수업시간표인데 기생들은 생각보다 많은 공부를 해야했음 상대해야 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대부호나 지식인 계층이었기에 그렇다고 함 특히 이난향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역사상 최고 미모 그리고 최고 실력을 가진 천재 일본 샤미센, 가야금, 심지어 피아노까지 잘 쳤음 게다가 조선 전통무용부터 서양 왈츠까지 모두 마스터했다고 함 이난향은 얼굴이 설리하고 빼박이라 더 유명함 설리처럼 이난향도 당시 여자 기준으로 장신인 165cm 였음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이난향은 경성 최고 기생집이었던 '명월관'으로 스카웃되는데 이때 매주 이난향을 보러 왔던 지명 손님들이 위 3명임 이난향의 회상에 따르면 이광수는 올 때마다 취해있어서 얼굴이 붉었고 최남선은 덩치는 큰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는데 가끔 한마디하면 쇳소리가 나서 특이했다고 함 나중에 이난향은 20대 중반 나이에 본인이 졸업한 조선기생학교 최연소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이후 중앙일보 기자와 결혼한 뒤 조용히 가정주부로 살았음 김옥엽 평양권번(평양기생학교) 출신 중 제일 유명했던 기생 판소리와 가곡에 있어서 당대 최고였다고 함 특히 김옥엽은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김동인의 애인으로도 유명했음 박온실 박온실은 평양기생학교 출신 우리나라 최초 미스코리아인 미스 조선 진 출신이기도 함 포미닛 전 멤버 남지현과 빼박 미모로도 유명함 장연홍 평양기생학교 출신 기생 평양에서만 활동했고 거기서 넘버원으로 유명했음 당대 수많은 재력가들이 애첩으로 삼으려고 유혹했지만 단 1명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음 원래 부잣집 딸이었는데 갑자기 집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슬픈 과거가 있음 23살 때 홀로 중국 상해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실종됨 오산월 평양기생학교 출신 당시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기생들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구매하는게 유행이었는데 제일 많이 팔린 엽서가 바로 오산월 사진 엽서였다고 함 이옥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기생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한데 '꽃 같은 내 순정' 이라는 가곡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음 윤채선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조선 전통무용의 실력자로 알려져있음 키가 무려 168cm로 당시 웬만한 남자들보다 컸고 매우 풍만한고 글래머한 서양 스타일의 육감몸매였다고 함 펌) 당시의 기생들은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야 하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만 기생학교가 있는 줄은 몰랐구려. 대화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