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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캡처] 송혜교의 320만원짜리 개 가방…‘멍품’ 전성시대?

명품 브랜드들도 뛰어들고 있는 반려동물 시장. 다음엔 또 어떤 상품이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까요?

기획 : 이석희 기자 / 그래픽 : 홍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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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돈으로 불쌍한 유기견들 도와주겠따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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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쩐심] 유튜버에게 “구독과 좋아요”보다 중요한 ‘○○’
월급은 적고 집값은 고공 행진하는 현실에 돈을 더 벌어보고자 ‘세컨잡’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두 번째 직업으로 인기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유튜버입니다. 대박 나면 퇴사도 가능하다는 유튜버. 스마트폰으로 찍어 쉽게 영상을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채널을 개설할 수 있어 진입 허들도 낮은데요. ‘나도 유튜브 좀 해볼까?’ 생각하는 분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유튜버도 사업자등록을 하고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물론 유튜브로 수익을 내는 경우에만 해당되는데요. 유튜브로 얻을 수 있는 수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튜브 광고 파트너가 되어 배분 받는 수익.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다고 해서 무조건 수익이 나는 건 아닙니다. 수익을 창출하려면 꾸준히 영상을 올려 채널 구독자수 1,000명, 유효 시청시간 4,000시간을 넘겨야 하지요. 위의 조건이 충족되면 유튜브와 광고 파트너가 되어 수익을 배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는 협찬, 광고 등을 통해 들어오는 수익. 유튜버가 자신의 영상을 통해 특정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를 홍보해주는 대가로 받는 돈이지요. 이외에도 유튜버 수익은 시청자가 플랫폼을 통해 지불하는 후원금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번 돈, 고스란히 내 지갑에 들어올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유튜브로 번 수익은 사업 소득으로 분류되어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세금을 납부하려면 먼저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는데요. 연간 매출액이 8,000만 원 미달일 경우 간이과세자, 8,000만 원 이상일 경우는 일반과세자로 등록하면 됩니다. 사업자등록을 마친 유튜버가 납부해야 할 세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는 연 1회, 일반과세자는 연 2회 부가가치세를 신고‧납부하도록 돼있습니다. 수익이 없을 경우에도 무실적 신고는 해야 하지요. 두 번째는 연 1회 납부하는 종합소득세입니다. 한 해 동안 번 소득을 종합해 다음 해 5월에 신고해야 하는데요. 종합소득이기 때문에 만약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유튜브 수익도 내고 있는 경우라면 이를 모두 합산한 금액을 신고해야 합니다. 종합소득세 세율은 소득이 높을수록 급격히 올라가는데요. 소득 금액이 연 1천 200만 원 이하인 경우는 6%만 납부하면 되지만 5억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무려 42%를 내야 합니다. 세금은 모두 신고기간 안에 자진신고 및 납부해야 합니다. 고액의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수익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요. 국세청은 이러한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기술을 적용해 감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할 것 없이 유튜버에 도전하는 요즘, 100만 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국내 유튜브 채널도 500개를 넘어섰는데요. 유튜브로 돈을 벌고 싶다면 그만큼 납세의 의무도 다해야 한다는 점, 잊어선 안 됩니다. 글·구성 : 박희원 기자 parkheewonpark@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신만을 사랑한 왕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자신을 치장하는 것에만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백성은 어떻게 살든지 왕은 자기만을 생각했습니다. 매일 여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눈부신 의복을 입고 항상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뽐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왕과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한 한 신하가 왕 몰래 매일 들여다보던 거울을 치워버렸습니다. ​ 다음날 왕은 평상시처럼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거울을 찾았으나 거울은 보이지 않습니다. 거울을 찾던 왕은 거울이 있던 자리의 창문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 그런데 창문 밖,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왕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얼굴이 창백한 여인과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 한참을 바라보던 왕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화려한 의복 대신에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을 살다 보면 스스로 손해 보지 않으려 더 강하게 자신을 지키려고 합니다. ​ 그렇게 점점 자신만 생각하다 보면 타인에게 어떤 관심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세상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관심이란 곧, 나 아닌 타인에게 마음 한 자리를 내어주는 일입니다. 나 아닌 타인에게 내 시간을 내어 주고, 내 삶을 조금 나눠주는 일입니다. – 송정림 작가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관심#타인#배려#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삶에서 인문고전이 중요한 이유.jpg
1890년 대부호 존 데이비슨 록펠러에 의하여 시카고 대학이 세워집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삼류대학에 불과했죠 1929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로버튼허치슨박사가 5대총장으로취임하게된거죠. 그는 학생들에게 100권의 세계고전책리스트를 주며 이 책을 외울정도로 다 읽은 학생만이 졸업을 할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일명 시카고플랜입니다 4년의 교육과정이 대부분 인문고전독서에 집중되는 교육이죠 그리고 졸업할 때 1가지의 책을 롤모델로 삼아서 졸업을 하라고 하였죠 그리고 80년이 지난 지금 시카고대학은 총8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됩니다 2018년 기준 시카고대학 출신 노벨상 수상자 91명 (프랑스가 세계에서 4번째로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국가인데, 프랑스 보다 수상자가 많음) 총장은 학생들에게 그저 책을 읽을 것만을 명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세가지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첫째, 모델을 정하라 : 너에게 가장 알맞는 모델을 한명 골라라", "둘째, 영원불변한 가치를 발견하라 : 인생의 모토가 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라", "셋째, 발견한 가치에 대하여 꿈과 비젼을 가져라". 또한 '존 스튜어트 밀'식의 독서법도 다음의 네 단계를 따르고 있다. 1. 먼저 철학 고전 저자에 관해 쉽게 설명한 책을 읽는다. 2. 철학 고전을 통독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그냥 읽는다. 소리 내어 읽으면 더욱 좋다. 3. 정독을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다. 특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은 크게 소리 내어 읽을 것을 권면한다. 4. 노트에 중요 구문 위주로 필사를 하면서 통독한다. 필사는 철학 고전 독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필사를 통해 철학 고전 저자의 사고 능력을 조금이나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사를 하면, 몇 번이고 정독할 때도 이해 불가능하던 구절들이 순간에 이해될 수 있다.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운 에티오피아인들.txt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6.25전쟁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황제가 정예근위대를 한국전쟁에 참전시켰던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6.25참전을 결정한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기습하여 공격해왔습니다. 1950년 6월 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 역사상 최초로 군대 파견을 결정하였습니다. 유엔의 결정에 따라 미국,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하여 총 16개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연고도 없는 동양의 작은 나라 전쟁에 도움을 주기 위해 먼 거리를 날아온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각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참전을 결정한 국가들도 있었으나 에티오피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대가나 정치, 안보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전쟁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전 결정을 내렸던 에티오피아 황제입니다. 1935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에 침공을 당했었습니다. 당시 극박한 상황에 몰렸던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침공은 에티오피아인 27만 명의 목숨과 나라를 빼앗아 갔습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끈질긴 투쟁 끝에 1941년, 이탈리아를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후였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전쟁의 아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에티오피아인들입니다.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UN의 파병요청을 받자마자 한국에 지원결정을 내립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쓰라린 아픔과 전쟁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침략군에 부당하게 공격당한 나라가 있다면 다른 나라들이 도와줘야 한다. 저 먼 곳에 있는 한국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라." 셀라시에 황제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사실, 당시 에티오피아는 다른 나라를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로부터 무장 해제를 당해 군사장비는 낙후됐고 대부분의 군은 황실근위대여서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에티오피아 황제는 황실근위대에서 1200명의 지원자를 모아 1개 대대를 한국전쟁에 파견하였습니다. 황제는 '격파하다', '질서를 확립하다' 뜻을 가진 '강뉴' 부대명을 하사하였습니다.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하고 있는 세계 평화를 위해 한국에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 까지 싸워라."라는 의미가 '강뉴' 부대명에 담겨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장정들은 한국전쟁에 투입되었습니다. 1951년 5월 7일 부산에 도착하여 미 제 7사단 32연대 예하 대대로 배정받았죠. 부산에서 미군과 함께 강도 높은 현지 적응 훈련을 받고 중동부 전선 산악지대로 배치됐습니다. 강뉴부대는 춘천과 중부전선을 주로 방어했으며 이 때문에 춘천에 에티오피아 기념관까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군은 전투 현장에서 전사할지언정 포로는 없다.' 라는 전설을 남겼을 정도로 에티오피아군의 실력은 뛰어났습니다. 첫 전투 때부터 남다른 활약을 펼친 에티오피아군은 다른 전투에서도 백전백승을 기록하며 적군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53번의 치열했던 전투에서 한 번의 패배도 없이 253번의 승리를 거두었죠. 이들을 지휘했던 미 제7사단장 아더 트루도는 유엔군에서 가장 용맹한 부대라며 에티오피아군을 극찬했습니다. 미국대통령이 수여하는 부대표창과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표창을 수여 받을 수 있었는데요. 에티오피아군은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5차례에 걸쳐 연 인원 6,037명이 파견되어 전사자 121명, 부상자 536명이라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군인들은 월급을 본국에 보내지 않고 부대 안에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들을 돌봐주기도 하였습니다. 당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전쟁 고아가 10만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반도에 희망의 씨앗을 심었던 에티오피아군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존재를 가슴 깊이 새깁시다. ▲참전용사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에티오피아 후원회와 한국교회단체 ▲2016년 방한해 전사자명비에 헌화 후 눈물을 글썽이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황제의 근위병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었으나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위해 20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에 지원했다 현재는 정부, 기업체, 강원도 화천군, 일반인분들도 에티오피아를 돕고있다고함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