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rlZ
5,000+ Views

공부 덕후가 유배 당하면 생기는 일 (feat.정약전)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가게 됨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감

무려 16년동안이나ㅠㅠ

조선판 포켓몬.jpg

어쩔티비 ㅋ

이때 만들어진게
<자산어보>
흑산도 근해의 각종 어류와 수중 식물 155여종을 설명한 책

출처

뼛속까지 학자인 사람이
유배를 가면 이렇게 됩니다,,,
2 Comments
Suggested
Recent
저형제들정말ㅋㅋㅋ국사시간에 조선시대 그냥수업만 들어도.,모야 천재다 싶은사람 세종대왕, 정약용(과 형제들)임..
👍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조선 후기 미녀 기생들
이난향 조선 후기 유일 1패 기생 1패 기생은 왕 앞에서만 유일하게 공연을 할 수 있는 특급 기생 (참고로 황진이는 양반들만 상대하는 2패 기생으로 이난향보다 급이 낮음) 이난향은 대한제국 시절 순종의 전속 기생이었음 고향은 평앙인데 기생학교는 경성의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를 나왔음 참고로 당시 기생학교 투 톱이  경성의 조선권번 평양의 평양권번임 이건 당시 기생학교 수업시간표인데 기생들은 생각보다 많은 공부를 해야했음 상대해야 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대부호나 지식인 계층이었기에 그렇다고 함 특히 이난향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역사상 최고 미모 그리고 최고 실력을 가진 천재 일본 샤미센, 가야금, 심지어 피아노까지 잘 쳤음 게다가 조선 전통무용부터 서양 왈츠까지 모두 마스터했다고 함 이난향은 얼굴이 설리하고 빼박이라 더 유명함 설리처럼 이난향도 당시 여자 기준으로 장신인 165cm 였음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이난향은 경성 최고 기생집이었던 '명월관'으로 스카웃되는데 이때 매주 이난향을 보러 왔던 지명 손님들이 위 3명임 이난향의 회상에 따르면 이광수는 올 때마다 취해있어서 얼굴이 붉었고 최남선은 덩치는 큰데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는데 가끔 한마디하면 쇳소리가 나서 특이했다고 함 나중에 이난향은 20대 중반 나이에 본인이 졸업한 조선기생학교 최연소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이후 중앙일보 기자와 결혼한 뒤 조용히 가정주부로 살았음 김옥엽 평양권번(평양기생학교) 출신 중 제일 유명했던 기생 판소리와 가곡에 있어서 당대 최고였다고 함 특히 김옥엽은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김동인의 애인으로도 유명했음 박온실 박온실은 평양기생학교 출신 우리나라 최초 미스코리아인 미스 조선 진 출신이기도 함 포미닛 전 멤버 남지현과 빼박 미모로도 유명함 장연홍 평양기생학교 출신 기생 평양에서만 활동했고 거기서 넘버원으로 유명했음 당대 수많은 재력가들이 애첩으로 삼으려고 유혹했지만 단 1명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음 원래 부잣집 딸이었는데 갑자기 집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기생이 된 슬픈 과거가 있음 23살 때 홀로 중국 상해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실종됨 오산월 평양기생학교 출신 당시에는 남자들 사이에서 기생들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구매하는게 유행이었는데 제일 많이 팔린 엽서가 바로 오산월 사진 엽서였다고 함 이옥란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기생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한데 '꽃 같은 내 순정' 이라는 가곡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음 윤채선 조선권번(조선기생학교) 출신 조선 전통무용의 실력자로 알려져있음 키가 무려 168cm로 당시 웬만한 남자들보다 컸고 매우 풍만한고 글래머한 서양 스타일의 육감몸매였다고 함 펌) 당시의 기생들은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야 하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만 기생학교가 있는 줄은 몰랐구려. 대화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 같소.
세종대왕이 답지않게 신하들을 찍어누른일.jpg
바로 훈민정음 창제 후, 반포 까지의 싸움 온 나라의 관리며 사대부들이 벌때 같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데 사실 세종은 원래 신하들과 정책을 논할 때 굉장히 논리로 대하고 학문적 탐구와 토론을 즐겼던 군주로 왕의 권위로 찍어 누르거나 신하들을 위협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음. 그러나...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것에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찍어누름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고 권위에 호소하고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 니들이 뭘 안다고 왈가왈부냐, 나보다 잘났냐 시전도 하시고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옛날 말 끄집어내서 꼬투리 잡고 "드디어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직전(直殿) 김문(金汶),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부교리(副校理) 하위지(河緯之)·부수찬(副修撰) 송처검(宋處儉), 저작랑(著作郞) 조근(趙瑾)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였는데, 오직 정창손만은 파직(罷職)시키고, 인하여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김문이 앞뒤에 말을 변하여 계달한 사유를 국문(鞫問)하여 아뢰라." 반대하는 신하들 의금부에 하옥하고, 일부는 파직에 국문 까지 함 평생을 논리 싸움과 설득으로 살아온 왕이지만  절대 설득하지 못할, 하지만 꼭 필요한 일에 그동안 아껴왔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신하들의 반대를 찍어버리고 반포함 안 그러던 세종이 이정도 까지 하니까  신하들도 세종 아빠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서  이 건으로 한 번만 더 개기면 ㅈ되겠다 싶어 다 닥침 진짜 감사합니다 소리 절로 나오는 유일한 왕 출처
정조: 이 편지 읽고 나면 찢어서 버리든지 물로 씻든지 없애 진짜 제발;;
심환지: 응 보관 ㅋㅎ 2009년, 이 '비밀' 편지가 발견 되면서 정조와 정치적 대립을 이루고 있던 노론 벽파의 실세이자 정조의 독살 배후로 지목되어 왔던 심환지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게 됨 찢어버리라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 편지를 없애고 있는지 자세한 방법까지 물어보는 정조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중간에 나름 아들 칭찬까지 해줌 그런데도 심환지가 남에게 둘만의 비밀을 누설하자 '나는 이처럼 경을 격의 없이 대하는데 경은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 '이 떡 먹고 이 말 말아라 라는 속담을 다시금 명심하는 것이 어떠한가?' '경은 이제 늙어서 머리가 세었다, 경은 과연 생각 없는 늙은이라 하겠다.' 한지 워리어다운 글빨 솜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며칠 째 소식이 없는 심환지에게 투정부리 듯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고 심환지의 부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물으며 한약을 보내주기도 함 아무튼 그~렇게 정조가 없애버리라고 닦달한 편지가 오늘 날까지 전해지게 된 이유 정조가 보낸 서찰에 수신 날짜까지 써가면서 보관해온 심환지 덕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왕이랑 저렇게 개인적인 편지 주고 받다니 지금으로 치면 상사랑 갠톡 주고 받는거 아냐? 개싫어 이럴 수도 있지만 흉년 들었을 때 신하에게 쌀과 함께 보낸 편지 내용. 신하들과 조정 밖에서도 화목하고 친근한 관계가 되길 원했던 정조는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 챙겨주기도 함 실제로 심환지도 정조가 죽었을 때 몹시 슬퍼했다고 함 출처 저 편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고 너무 웃겼는뎈ㅋㅋㅋㅋ 비하인드는 더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