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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 - 영화 '셰임'

외롭지 않기 위해 부끄러움을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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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뜬 쿠엔틴 타란티노 신작 포스터.jpg
후달달달 이 영화가 언제나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얼마 안남았네요..시간 참..ㅠ0ㅠ 이 투샷을 보게 될 줄이야...ㅠㅠ 경이로움... 끄엏엏엏ㅇ 트레일러도 나왔따리...!!!!!!ㅠㅠㅠ 2019년 7월 26일 개봉! 라인업 : 알 파치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로비 타란티노에 의하면 펄프픽션이랑 비슷한 분위기가 날거라고 해서 팬들이 욘나리 기대중이라능!! 시놉시스 : 한물간 TV 서부극 시리즈의 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오랜 스턴트 파트너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히피문화가 최고조에 달한 1969년의 로스 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다.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할리우드에서 더 이상 그들을 알아주는 이는 없다. 그러나... 릭 달튼의 옆집에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 사는데, 그 사람은 바로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다. 참고로 샤론테이트는 로만폴린스키 감독의 아내였고 당시 임산부 였던 샤론테이트는 찰스 맨슨 추종자들에게 살해를 당하게 되죠. 처음에 영화 제작 소식이 들렸을때는 찰슨맨슨 사건을 다루는게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는데 타란티노가 사건 자체가 등장할 수는 있지만 그 이야기가 중심으로 다뤄지는 것도 아니고 영화의 주제는 당시 영화계를 비롯한 미국 사회의 모습 자체를 다뤘다고 정정했어요.
[영화리뷰]'더 스퀘어', 미디어의 모순과 비윤리성 고발
영화 <더 스퀘어>는 지난해 개최된 제70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현대미술관 광장을 무대로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 분)이 '더 스퀘어'라는 전시회 오픈을 앞두고 겪는 일상을 소재로 만들어낸 블랙코미디이다. 출근 첫날 지갑과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한 데 이어, 분실물을 찾기 위해 직원의 조언에 따라 범인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파트 전 세대에 협박 편지를 쓰는가 하면,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인터뷰 리포터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난처한 상황을 맞이하고 정작 전시회 준비에 구멍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흥미롭다. 특히, '신뢰와 배려의 성역'으로 상징화된 정방형의 전시 공간에 거지 소녀를 세우고 폭발시키는 충격적인 실험을 통해 전시회 홍보를 위해 프로파간다(Propaganda) 형식으로 유튜브에 여론몰이를 하는 미디어의 모순과 비윤리성을 고발한다. 또한 영화는 최근 유럽 사회에 쟁점이 되고 있는 난민 문제를 떠올리며 인종 차별, 사회적 약자 문제와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부랑자 실태를 조명하면서 현대 사회의 방관자 효과와 지식인의 위선, 익명성 뒤에 숨으려 하는 현대인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성찰한다. 유인원 퍼포먼스를 펼치는 행위 예술가가 점차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는 돌발 행동에도 이렇다 할 제지 없이 침묵과 은폐로 일관하는 초청객들이 보이는 '방관자 효과'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개인주의 성향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민낯을 바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방관자 효과란, 주변 사람이 많아질수록 위험에 처한 사람을 덜 돕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 큐레이터의 전시 준비과정을 소재로 선택한 이 작품은 속을 곪았지만, 겉으로 아닌 척하는 지식인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한핏줄 영화 - 더 서클, 헝거게임:모킹제이, 세라비 이것이 인생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 ::: 수 많은 르윈 데이비스를 위하여
르윈(오스카 아이삭)은 답 없는 남자다. 미래에 대한 계획없이 자신의 무대를 찾아다니며, 친구인 짐(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여자친구인 진(캐리 멀리건)을 임신시켰다. 그래놓고 짐에게 돈을 빌리는 뻔뻔함까지 소유한 이 최악의 남자의 이상한 일주일.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묵을 소파를 찾아서 아는 교수님 댁으로 왔다. 하루를 지내고 나가려는 데 교수님의 고양이가 따라나와서 기타와 고양이를 들고 짐과 진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집에 머물기도 쉽지 않아 다른 집을 찾아 짐과 또 다른 짐이 되어버린 고양이를 들고 떠났다. 여차저차 시카고와 뉴욕을 오고가며 마약중독자와 그의 무심한 운전기사,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만났다. 소득없는 며칠이 지나자 솔로앨범을 내는 것이나 오디션조차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피곤한 얼굴이 되었다. 우선 돈을 벌자싶어서 배에 타려고 했지만 이게 왠일인가, 그것조차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짐과 진의 집. 이제 정말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자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르윈의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그 기회를 덥석 낚아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코엔 형제의 작품은 들어보기만 했지 정식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옴니버스 영화인 '사랑해, 파리'에서 짧게 만나긴 했지만 코엔 형제에게 매료되기에는 부족했다. 이들이 음악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부터 주위 반응이 심상치않아서 덩달아 나도 기대했었지만. 보고나니 이들의 유머코드도 재미있고, 영상과 인물에 어떤 의미를 담아내는 능력이 굉장한 것 같다. 이 영화는 '데이브 반 롱크'라는 뮤지션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뮤지션을 그대로 영화에 내보낸 것이 아니라 가상인물인 '르윈 데이비스'로 변신시킨 점이 독특했다. 음악영화라고 해서 영화 '원스'를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보고나니 영화도 감독도 매력적인 구석이 한 무더기다. 당분간은 코엔형제의 이전 작품들을 차근차근 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이야기거리 쏟아지는 작품을 만나 흥겹다! -사진 출처는 네이버 영화 -동영상은 인사이드 르윈 O.S.T 중 하나인 'The Death of Queen Jane' -다음 카드는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을 생각이다. 영화가 쫀쫀하게 잘 만들어진 만큼이나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리뷰 후에 남은 것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우왕! 이러고 봤다가 큰 코 다친 영화이기에 부스러기가 많았다. 그래서 쓰는 비하인드 스토리. 우선, 아래 내용은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기 좋지만 혹시 이런 것도 스포일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를 보고나서 읽어도 좋다. CGV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들은 내용이며, 이 영화와 관련된 새로운 이야기들이 있다면 추가할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각색상, 작품상을 거머쥐었으며, 아카데미 최초 흑인감독의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기록 또한 세웠다. 영화 <노예 12년>의 감독인 스티브 맥퀸은 이전에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했으며, 그는 첫 영화 <헝거>로 주목받았으며 뒤이어 <셰임>으로도 찬사를 받았다. 영국인이긴 하지만 자신의 부모가 뿌리를 둔 곳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노예제도에 관심이 많았었다고 한다. 노예제는 백인이 만들어낸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인식하여 언젠가는 관련 영화를 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구상에 돌입했다. 이 구상은 아내가 추천한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을 각색하는 것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배우 : 마이클 패스벤더는 스티브 맥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화에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연기를 탁월하게 해내고 있다. 감독이 원하는 인물을 그대로 표현하니, 최상의 콤비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배경 : 1840년대 노예제금지로 노예제가 허용되던 미국 남부에서, 북부에 있는 자유인을 인신매매하는 일이 허다했다. 노예로 분류되는 흑인은 백인의 재산으로 인식되어 같이 일하는 이들도 그 '재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기법 : 롱테이크, 롱쇼트의 빈도가 높다. 편집없는 긴 흐름을 관객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원해서 이 기법들을 여러 장면에서 사용했다. 노섭이 나무에 매달려있는 중에 주위 사람들을 비롯한 풍경을 길게 비추어, 이것을 보는 관객들에게 영화 속 노예들이 겪은 고통을 가감없이 공유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상충되는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냈다. 영화 초반, 노섭이 납치되어 감금당한 노예수용소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데 그 뒤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그리고 포드가 읽어주는 성경구절과 노예들을 세워두고 부르는 위협적인 노래가 동시에 나오는 등 의아함을 자아내는 두 이미지가 동시에 담겼다. 이는 영화 속 상황들이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남은 이야기 ! - 영화의 바탕이 된 솔로몬 노섭의 자서전 <노예 12년>은 1984년 미국에서 <솔로몬 노섭의 오딧세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 감독은 당시에도 대세였고 지금 대세인 영국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알지 못하였고,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영국드라마 <셜록>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 마이클 패스벤더는 팻시(루피타 니옹)를 강간하는 장면을 찍고나서 기절을 했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모든 배우들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수하느라 진심이 담긴 연기가 나왔다는 말도 있을 정도. - 브래드피트가 제작자로 참여한 세번째 영화.(타란티노, 카운슬러에 이어 세번째) 사진은 네이버 영화 영화에 담긴 내용은 CGV큐레이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8)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을 알게 된 건 그의 출세작 <송곳니>를 보면서다. 2009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공개된 그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당시 상당히 화제가 되었고, 나도 찾아보았다. 감상 후 느낌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기이한 설정과 충격적인 묘사는 흥미롭기는 했으나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와닿진 않았다. 동시대의 다른 유럽 예술영화들과 동일선상에 놓았을 때, 심지어 평범해보이기까지 했다. 굳이 말하자면 <송곳니>는 임상수가 미카엘 하네케의 톤으로 영화를 찍은 것처럼 보였는데, 과연 그러한 화법으로 훌륭한 영화가 응당 가져야 할 감정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난 회의적이었다. 란티모스란 감독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었고. 그런 내가 란티모스란 이름을 다시 떠올린 건 작년 개봉작인 <킬링 디어> 덕분이었다. 일부의 의견처럼 이 영화가 걸작이라 주장하지도 않을 것이고, 란티모스가 드디어 거장으로 거듭났다고 할 생각도 딱히 없다. 그러나 과유불급이었던 그의 영화적 스타일이 이 영화에 이르러 어느 정도 절제미를 갖춘 것은 분명해보인다. 기이한 신화적 세계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기어이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어 보인다는 점에서는 라스 폰 트리에를 연상시켰는데, 그렇다고 란티모스가 그러한 경지에 오를 것이란 생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킬링 디어>를 본 이후에 그의 팬들이 강력히 추천하는 <더 랍스터>도 보았다. <킬링 디어>만큼은 아니지만 <더 랍스터>도 준수한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에는 강력한 한 방이 없다. 독특한 설정과 흥미로운 캐릭터로 인해 러닝 타임 내내 몰입감을 잃지 않기는 한데, 관객을 뒤흔들만한 그만의 무기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흥미롭기는 하나 여운이 오래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최신작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를 보았다. <더 페이버릿>은 권력 암투를 그린 드라마임에도 세 명의 여성 캐릭터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일단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은 사실 매우 드물다. 따라서 영화 자체가 진귀한 구경거리가 된다.)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전작만큼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없다는 제약이 생기는데, 란티모스는 이를 광각렌즈를 이용한 왜곡된 공간 묘사 등으로 극복해낸다. 덕분에 우리가 영국 왕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기이한 신화적 공간을 보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세 캐릭터의 질투와 욕망으로 들끓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이른바 “토끼 디졸브” 장면으로 수렴된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 궁금하던 찰나에, 나는 디졸브신을 보며 란티모스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감정적 울림을 느꼈다. 단 몇 초 간에 영화 전체의 주제와 감성을 축약하는 장면이었고, 나의 개인사를 복기하는 마력을 발휘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더 페이버릿>에서 란티모스는 또 한 번 전진했다. 아직 그에 대한 확신이 생기진 않았다. 그러나 <송곳니>에서 가졌던 회의감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더 페이버릿>을 이야기하면서 배우들의 열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올리비아 콜먼이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즈를 제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솔직히 너무나 실망스러웠는데, <더 페이버릿>을 보니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여우주연상이 <더 페이버릿>이 받은 유일한 상이다. <그린 북> 정도의 영화가 작품상 등 알짜배기 상을 가져가는 마당에 <더 페이버릿>이 그 정도 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레이첼 와이즈와 엠마 스톤도 본인들의 이미지를 변주한 좋은 연기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세 배우의 앙상블, 더할 나위없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연기하느라 재밌어서 미쳐버릴 것 같아 보였다.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려 했으니 말 다했지. 앞으로도 여자배우들이 이토록 신날 법한 각본이 많이 나오길 기원한다.
프랭크 (Frank, 2014) ::: 괴짜라고? 이게 너야!
"I love you all 그리고 더 나아가 I love you wall" *영어사전(네이버) frank 1. (때로는 남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의) 솔직한 [노골적인] 1.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쉽게 '비정상' 이라고 단정지으며 꺼린 적이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런 부류가 되었다. 내가 한거라고는 혼자 잘 돌아다닌 것. 국내여행을 하고, 영화제 자원활동가와 스태프 활동을 하고, 영화를 보러다니고, 맛있는 걸 먹으러다니며 전시를 감상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뿐인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데 이런 날 부러워하면서도 비정상인 취급을 한다. 2. 영화 속 프랭크(마이클 파스밴더 역)는 내게 지극히 정상적이고 흥겨운 사람이었다. 존(돔놀 글리슨 역)에게 프랭크는 아주 특별한 천재였지만. 그 시선에 프랭크는 결국 표정을 보이고 말았는 지도 모른다. 그 아픈 표정을. 3. 이상한 탈을 쓴 프랭크 옆에서 존이 아무리 멋진 척을 해도 멋지지 않은 건 프랭크를 연기한 마이클 파스밴더의 몸 때문이다. (두번째 이미지) 4. 영화는 코미디언이자 뮤지션이었던 Chris Sievey(http://en.wikipedia.org/wiki/Chris_Sievey)의 뉴스들을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Chris Sievey는 락 가수로 변신할 때면 가면을 쓰고 Frank Sidebottom이란 가명을 사용했다. 당시 밴드의 키보드를 맡았던 Jon Ronson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걸 듣고, 영화 속 희한한 에피소드들이 진짜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세번째 이미지) 5. 프랭크가 독보적인 매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내 마음에 치고 들어온 캐릭터는 항상 프랭크를 다독이는 '클라라'다. 이 영화 속에서 한결같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만 부른다. 마지막 부분에서 누구보다 먼저 프랭크를 알아본 순간의 클라라가 정말 맘에 든다. (네번째 이미지) 추천. 스스로를 너무 평범하거나 또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한쪽으로든 단정짓지말고 그냥 그런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난 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짠함과 신남이 동시에 느껴져서 꿀잼! 존잼!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면 미친놈이라 단정짓고 미친 티를 내며 사는 것도 추천. 참조 및 출처.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2958 http://www.imdb.com/title/tt1605717/ http://boombini.blog.me/220141593845
[영화 커뮤니티 이벤트] 마- 내가 빙글의 이동진이다
봄이 와요 봄이 와~~ 극장에도 봄이 왔는지 이번달에 새로운 개봉작이 우르르르 쏟아졌지 뭐에요. 미세먼지 때매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이런 날 영화라도 봐야 되잖아요. 아니 영화는 언제봐도 재밌지 암암. 그래서 말이에요. 우리 영화 한편 보고 친구랑 수다 떨듯이 리뷰를 나눠보는거 어때요? 이 영화 좋은지 별론지 노잼인지 존잼인지!!! 요즘 영화 재밌는거 너무 많아서 리뷰 보고 선택하고 싶은 맴.. 영화관 가서 소중한 내 시간, 내 돈 허비하고 싶지 않은 이맴.. 우리 다 같은 맴이니까 영화 리뷰 같이 나눠보자구요!! 후후 물론 맨입으루 아니죠 [리뷰쓰면 영화예매권] 영화 커뮤니티 후레지던트인 제가 임기 마감을 앞두고 준비한 특별 이벤트!!!ㅎㅎㅎ 좋은게 좋은거라고 영화 커뮤에 애정이 생겨부러서 좋은글 써주는 여러분께 무언가 주고싶은 맘에.. 요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보았습니다!! 리뷰 영화는 상영중인 영화도 괜찮고, 집에서 본 영화(넷플릭스, 왓챠, vod 등등) 다 상관없습니다!! 영화 커뮤니티는 여러분의 카드를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ㅎㅎㅎ 이벤트 참여 특전 👉 이벤트 기간동안은 리뷰카드에 특별히 '리뷰이벤트' 라벨을 달아드리고, 오직 리뷰카드만!!! 오로지 이벤트 참여하는 카드만!!! '피쳐' 해드립니다 ㅎㅎ <이벤트 참여 방법> 방법: 영화리뷰를 #영화 관심사에 발행한다. 기간: 오늘 당장부터 ~ 2019년 4월 10일까지 (3주간) 선정기준: 좋아요 ❤️+ 클립수📎 가장 높은 카드 1명 (TIP. 영화 티켓 사진, 영화 보는 노트북 화면 등이 있다면 좋아수가 더 늘어나겠쥬?) 상품: 맴을 촉촉하게 적셔줄 영화예매권 1매 여러분의 많은 리뷰 기다릴게유~~~ 영화 커뮤의 첫 이벤트가 흥하길! 많이 참여해주세요!!🙏 영화예매권 받아서 4월에 어벤져스 보러 가면 딱일듯 ㅎㅎㅎㅎ 제 큰그림입니다 껄껄 그리고 추가로!!!! 리뷰카드 올린 사람 중 랜덤추첨으로 음료 기프티콘🥤 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가 없어도!!! 대충 쓴 카드도!!! 음료 기프티콘을 받을 기회를 받는 거라구욧 ㅎㅎㅎ 이동진은 못돼도 아 이영화 존잼입니다 제발 보세여ㅜㅜㅜㅜ 라고 아무말 동네방네 소리치고 싶은거 다 압니다 이벤트 참여 많이 해주십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럼 안녕!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 남자가 사랑할 때
Lover, gold-hatted, high-bouncing lover, I must have you! _Thomas Parke D'Invilliers 증권업에 뛰어들기 위해 웨스트 에그로 이사 온 닉(토비 맥과이어)은 거대한 저택에 사는 이웃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개츠비가 매주 여는 성대한 파티에 초대받으며 우정을 쌓아갈 무렵, 부자들이 모여사는 이스트에그에 사는 사촌동생인 데이지(캐리 멀리건)와 개츠비가 서로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츠비의 간곡한 부탁으로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날의 만남을 시작으로 정신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하루를 멀다하고 집을 나서는 데이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남편 톰의 눈길이 날카로워지던 어느 날이었다. 개츠비와 데이지를 비롯한 모두가 시내 호텔로 나들이를 갔다. 그곳에서 개츠비와 데이지의 밀회가 들통이 나고, 이 사건을 시작으로 가려져있던 일들이 드러나게 되면서 모두가 파국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순수했던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열병이 되었다. 당시 펼치지 못했던 그 열병은 후에 데이지를 만나게 되면서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쏟아붓는 건 여전히 개츠비고, 데이지는 사랑을 받을 뿐이었다. 게다가 건재했던 개츠비가 조금씩 무너질 무렵,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츠비 자체를 알아가려는 사람은 닉 뿐이었다. 편견을 가졌다가 걷어내고 바라 본 개츠비는, 첫사랑이라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 과거때문에 절망을 맞이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때 그랬었다면'이란 부질없는 문장을 띄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얽매여서는 나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떠밀려가는 것보단 조금씩 정리해가며 내가 나아가는 모양새가 낫다. 과거에서 배운 것을 정리하며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때 조금씩 떠올리며 살아가야 '절망' 또한 지나가고 '일상'이 쌓여 날들이 되고 또 한묶음의 돌아보기 좋은 과거가 된다. 차가운 물을 급히 들이키는 것보다는, 뜨거운 물을 호호 불며 천천히 음미하는 것과 같은 관계가 더 필요한 요즘이다. 무엇보다 요즘 상영 중인 영화 '더 울프 오브 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에 등장하는 요염한 디카프리오와 대조되는 모습의 사랑에 빠진 디카프리오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분노의 포도 (1940)
존 포드 감독의 황금기로 꼽히는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의 작품 중에서도, <분노의 포도>는 대표작으로 꼽힐 법한 작품이다.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자연재해(모래 바람)와 산업화의 가속화(농업의 기계화)와 맞물려 정든 고향 오클라하마를 떠나게 된 가족의 여정을 통해, 당대 서민들의 고통을 사실주의적으로 담아낸다. 동명의 원작이 상당히 유명했음에도 사회주의적 색깔이 짙다는 이유로 영화화가 되지 않았었는데, 폭스의 제작자 대릴 자누크가 존 포드를 고용하여 영화화를 밀어붙이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작 소설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나진 않았다. 원작에 비해 가족 구성원들이 좀 더 긍정적으로 묘사되었고, 주인공 ‘탐 조드’(헨리 폰다 분)는 보다 덜 급진적으로 바뀌었으며,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도 (그나마) 더욱 희망적이게 바뀌었다. 오래된 흑백영화임에도 <분노의 포도>의 이미지는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불가항력적으로 캠프 생활을 하게 된 서민들(사실상의 난민들)의 애환을 그려낼 때는 사실주의적인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인물들의 심리적 외상의 깊이를 그려낼 때는 시적인 묘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어머니’(제인 다웰 분)가 고향을 떠나기 전 자신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하나씩 불태우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리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넘어 영화 <분노의 포도>가 진정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대의 서민들의 삶이 참담했던 이유를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고통스러워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빈곤이나 자연재해 등의 외부적인 요인들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향을 잃었다는 내면적인 상실감이었고, 존 포드가 이를 영화적으로 아주 뛰어나게 구현해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걸작을 보다보면 최근 몇 년 간 일어난 우리나라의 사회현안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서부극의 거장’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이 날카롭고도 따뜻한 휴머니즘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휴머니즘 영화의 본류를 만끽하고 싶다면, <분노의 포도>는 그야말로 필감의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노예12년(12 Years a Slave) ::: 우리의 자유는 어디에
2014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 제대로 보여주고, 제대로 파고든다. 1840년대 미국, 노예제금지로인해 북부의 자유주 흑인을 인신매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유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음악가 생활을 하던 솔로몬 노섭에게도 이런 비극이 닥쳤다. 무려 12년이란 세월동안 노예제가 농장을 운영하는 과정 중 하나로 자리잡은 루이지애나에서 '플랫'이란 이름으로 갖은 고초를 겪는다.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라는 각각 다른 성향의 주인을 만나게 되고, 다른 환경을 마주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노예를 둔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이 착하든 못됐든 솔로몬 노섭이 자유인이라는 건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노예의 주인이고, 노예는 주인의 재산일 뿐. 무엇보다 영화는 주인공을 비롯해서 당시 흑인 노예들이 겪은 비인간적 비현실적 상황을 기교없이 보여준다. 주인에게 위협을 받거나, 채찍을 받는 모습, 뜨거운 햇볓아래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오랜 시간 고통받는 모습을 롱테이크와 롱샷으로 잡아 길게 보여준다. 보여준다기 보다는 관객에게 던져놓고 고통을 같이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공포와 고통을 주는 그들의 모습, 모든 고통을 그대로 받아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눈물이 흐르는게 아니라 울음이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당시 성행했던 노예제에 대해 말해주는 것 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물음이 던져진다. 지금 각자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얼마나 제대로 발휘해내고 있는가에 대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더 놀라웠던 건 무엇보다 100여년 전의 일이고, 어떻게 들어도 그들의 고통을 다 알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생생하게 그들이 느껴졌다는 것. 사실, 영화를 보기 전 걱정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사실로 영화를 보는 내 눈에 필터하나가 장착되지는 않을지.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미세먼지같이 날아갔... 이런 걱정을 했었는지도 잊었을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서 후유증이 대단했다. 어느 때보다 극장 분위기도 착 가라앉아서 사람들이 말없이 나갔다. 그래도 추천하고 그렇기에 추천하는 이 영화. 감독인 스티브 맥퀸의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제대로 보여주는 연출력과 촬영 중 압박감을 받았을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력에 찬사를! -동영상은 영화 공식예고편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는 다시 잘 모아서 다음 카드에 :^)
셰임(Shame)(2011)
수치심(羞恥心, Shame) :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처음장면부터 잠에서 깨어난 브랜든의 전라와 성기가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나온다. 브랜든을 연기하는 마이클 패스벤더나,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수치심을 느끼는 장면일 것이다. 심지어 브랜든이 여러 여자와 섹스하는 장면이나, 그가 오줌을 누는 장면, 심지어 화장실에서 자위하는 장면까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이것이 잘나가는 뉴요커의 브랜든의 일상이자, 현대인들 또한 여기서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브랜든의 섹스에 찌든 삶은, 그의 여동생인 씨씨가 예고없이 그의 집에 쳐들어오면서부터 별 문제 없었던(?) 브랜든의 일상생활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영화 <셰임>의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다. <셰임>을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부분이 이 영화의 코드가 "근친관계" 에 맞춰져 있냐는 점이다. 브랜든과 씨씨 남매의 관계와 둘 사이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결코 이상한게 아닌 것은 사실이다. 전라상태로 샤워하고 있는 씨씨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는 브랜든이나, 브랜든의 전화메시지에 단순 남매이상의 메시지를 남기는 씨씨나, 데이비드와 씨씨가 자신의 방에서 속닥거림에 안절부절 못해 뛰쳐나가는 브랜든, 침대에 자고 있는 브랜든 옆에 조용히 살갗을 맡대며 파고들어온 씨씨, 영화 후반부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는 데 절정으로 치닫는다 봐도 무방했다. 씨씨 : "난 항상 오빠를 화나게 하고 그 이유가 뭔지 몰라." 브랜든 : "아니 네가 나를 옭아 매는 거야. 넌 나를 궁지로 몰아놓고 꼼짝도 못하게 해." 누가 봐도 충분히 이 두 사람이 단순히 나이 차 많이 나는 남매로 보는 게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며, 이걸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이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셰임>을 '근친' 코드에 맞춰 영화 전체를 끼워맞추는 데에는 다소 아쉽다고 생각된다. 나는 브랜든이나, 씨씨, 이 두 사람이 오늘날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표본 중 하나로 보이며, 우리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대안거리를 찾아나서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랜든은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택한 것이 바로 '섹스' 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섹스 중독자' 가 되어있었다. 그 '섹스' 는 브랜든의 삶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 아닌 언제부턴가 브랜드의 삶을 갉아먹기 시작해버린 좀벌레로 변모했다. 그렇다보니 지하철 건너편에 타고 있는 유부녀를 유혹해서 어떻게 한 번 해보려는 욕구까지 생겨나 그녀를 쫓아가는 모습도 나왔다. 그러다가, 자위하는 장면을 씨씨에게 들키고, 회사 상사로부터 사내 컴퓨터에 있는 야동을 정리하라는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면서 브랜든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서 모든 야동과 야한 잡지를 버렸다. 현자타임이 온 것이다. 자신이 진지하게 생각했던 마리안과 관계를 가지려다가도 현자타임이 와버렸다(※ 현자타임 : 보통 남성들이 사정한 후에 겪는 시간인데, 이 때가 가장 이성적으로 바뀌는 시기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된 용어). 외간 남성과 유사 성행위를 하고, 창녀 두 명과 무려 2대1 섹스를 하는 데도 브랜든의 표정은 쾌락을 즐기기 보단, 더욱 더 환멸과 수치심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다. 브랜든의 여동생인 씨씨, 가수이면서 상당한 애정결핍을 지닌 여성이다. 말그대로 사랑에 목말라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가 샤워를 하면서 틀었던 노래 중 계속 울려퍼지는 "I want your love" 나 사랑받지 못해 손목에 수없이 그어진 자해자국이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공허함을 해결하기 위한 또다른 방법으로 브랜든이 있는 뉴욕으로 무작정 올라섰으나, 그녀가 부른 <New York, New York>처럼 슬프게도 자신의 애정결핍을 채워주기엔 뉴욕 또한 너무나도 차갑고 건조했다. 그녀는 단지 사랑받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또 한 번 극단적으로 행동을 취하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씨씨의 행동 덕분에(?) 브랜든은 공허하고 현자타임이 만연한 그의 삶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그 사건 이후로, 브랜든은 그간 섹스 중독자로서의 살았던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그것을 암시했다. 우리는 사회과목을 배우면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말이며,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결국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지, 혼자 살 수는 없다는 답을 항상 얻는다. <셰임>을 통해서 하나 깨달을 수 있는 점 하나도 이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결핍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며, 단순 일시적인 관계로는 영원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리고 비밀은 지켜지기란 참 어렵고,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What a shame..." 원문 : http://syrano63.blog.me/22057348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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