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7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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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기도

케냐 나이로비에 ‘존 다우’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존은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아버지의 심한 학대와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길거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매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잠시 정차된
차에 다가가 손을 쑥 내밀어 도와달라며
구걸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보통 때와 다르지 않게
서 있는 차 안으로 손을 내밀었고
동전을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창문 안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차 안에는 여성이 작은 휴대용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은 그녀의 모습에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습니다.
“왜 이런 걸 하고 있어요?”
“나는 이게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단다.
사실 수술을 하게 되면 치료할 수 있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구나.”
사실 그녀는 남편의 심한 구타로 폐를 다쳤던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사연을 듣자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존은 그녀를 위해 잠시 기도해주고 싶다고 했고,
이를 허락한 그녀의 손을 잡고 가슴 깊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제발 이분의 병을 낫게 해 주세요.”
기도가 끝난 뒤에 존은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전 재산인 돈을 주곤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우연히
이 광경을 본 사람을 통해 SNS상에 퍼져 나갔고
수술비 이상의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이러한 도움의 손길로 그녀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수술 후, 그녀는 자신에게 새 삶을 선물해준
존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존에게도 기적 같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SNS를 통해서 알게 된 존의 이야기에 감동한
어느 마음 좋은 가정에서 존을 입양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
그런 예쁜 마음을 알아보는 눈.
나눔이란 것은 돈이 많다고 해서
더 많은 나눔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적다고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눔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많이 나누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고
적게 나누는 사람을 속단해선 안 됩니다.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고 해서 존경하고
나누지 않는 사람 또한 비난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내가 진정한 마음에서 한 따뜻한 일들이
누군가에게 큰 행복한 재료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오늘의 명언
선행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 칸트 –
=Naver "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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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ᆢ코끝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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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제주도를 최대의 감귤 생산지로 정착시키고, 맛도 좋고 튼튼한 강원도 감자를 계량, 현재까지 이어지는 배추와 무의 품종개량, 우리 땅에 맞도록 개량된 쌀, 과일 품종의 정착과 대량생산기술개발, 씨앗의 생명력 강화 개량 등을 이끈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입니다. 그는 조선말 무신이자 친일파 우범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그 결과로 가세가 기울자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 그렇게 아버지의 원죄를 짊어지고, 일본에서는 조선인, 조선에서는 민족반역자의 아들로 삶을 살아야 했던 비운의 천재였습니다. ​ 그런데도 그는 신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 도쿄 국제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으며 세계적인 육종학자가 되었습니다. ​ 집안 형편과 출신 때문에 실력과 관계없이 실업 분야를 선택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 광복 후 식량난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이 도움을 청하자 우장춘 박사는 남은 일생을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자 했습니다. ​ 그렇게 우장춘 박사는 죽는 날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아버지의 그릇된 그림자를 어떻게든 지우고자 사력을 다했습니다. ​ 그러나 죽는 날까지 따라다녔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리고 긴장된 한일관계 속에 훈장 수여를 놓고 갑론을박하던 정부는 우장춘 박사가 사망하던 그해 병상에 있는 그에게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습니다. ​ 병상에서 포장을 수여받은 우장춘 박사는 한참을 오열하면서 말했습니다. ​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했다!”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뛰어난 인재를 잃고 싶지 않던 일본 정부는 우장춘 박사를 감옥에 가두려는 초강수도 두었지만 스스로 조선인 수용소로 들어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장춘 박사는 가족을 위해 쓰라고 대한민국에서 준 돈까지도 우량종자를 사버리는 데 기꺼이 사용했습니다. ​ 수많은 냉대 속에서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살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 밟혀도 밟혀도 끈질긴 자생력을 갖고 금빛 찬란한 꽃을 피우는 민들레. 마치 민들레처럼 살아간 우장춘 박사의 좌우명은 그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얼굴을 들어 태양을 보라. 그리하면 그림자는 뒤로 물러날 것이다. – 지그 지글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고난#역경#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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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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