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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쏠이 인류에 공헌한 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염세주의의 대가로서 의지와 표상의세계 인생론 등 고독을 즐기지 못하는 인간에게 커다란 의문을 던짐

이마누엘 칸트
플라톤 이후 모든 철학은 칸트로 수렴하고 칸트 이후 모든 철학은 칸트로 부터 나온다.

알프레드 노벨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인류 문명에 말그대로 기폭제를 제공함
그의 유언에 따라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노벨상을 수상함

아이작 뉴턴
말이 필요없는 천재
아인슈타인 이전 과학계에서 그의 업적은 전설적이었다.
200년정도의 과학 발전을 혼자 이루어냄

에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국부론 등은 들어 봤으리라 생각함

라이트 형제
"세상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던 것이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설명이 필요 없음

프리드리히 니체
근현대 철학자로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로 인해 일어날 비극을 1800년대에 이미 예측함

니콜라 테슬라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최초의 X선 사진 등 현대 문명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중 많은 부분이 니콜라 테슬라 덕분에 가능




모쏠이 이렇게 대단한 걸
물론 연애를 안하는 것과 못하는 건 다르지
난 안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빙글러들은 안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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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들이 다모쏠이라고?
결혼을안했을뿐 아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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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천사이자 악마로 불리는 동물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아는가? 이중인격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인물로, 지킬박사와 절대 악인 하이드로 인격이 두 개로 나뉘어진 인물이다. 과연 동물도 이중인격인 동물이 존재할까? 생각해보면 이중인격인 사람들은 찾아볼 순 있어도 동물이 이중인격인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없다. 절대라는건 없고요~ 오늘은 이중인격을 가진듯한 생물에 대해 알아보자! 클리오네 무각익족류 무각거북고동과에 속하는  고둥의 일종이다.이름 그대로 껍질이 없는  1~3cm정도의 작은 고둥이며 주로 북극권의 심해에서 서식하는데 가끔 리만해류를 타고 내려와 일본북부나 우리나라의 동해에서도 발견되기도 해서 무각거북고동이라는 국내 명칭도 존재한다. 클리오네 혼또니 좋스므니다! 일본에서는 클리오네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며 물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마치 천사가 날갯짓하는 모습같다고 해서 바다의 천사라는 별명도 붙어있다. 귀여운 외모 덕분에 인기도 많아서 수족관들에선 클리오네 전용 어항까지 만들어서 전시한다. 그러나 이 천사같은 클리오네에게는 충격적인 비밀이 있다. 우웅 클리오네 야캐요... 겉보기엔 약하고 순한 생물같아 보이지만 이녀석들은 엄연한 육식동물이다. 따라서 먹이를 사냥해 먹는데 이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먹이를 발견하면 머리가 두갈래로 나눠지며 6개의 촉수들을 꺼내는데 이걸로 먹이를 붙잡아 껍질만 남겨놓고 살을 모조리 빨아먹어버린다. 이 그로테스크한 모습때문에 사냥할때만큼은 바다의 천사가 아닌 바다의 악마라고 불린다. 신기하게도 먹이를 한 번 먹으면 그 이후 반 년 이상 아무것도 안먹고도 생존이 가능한데, 이는 심해에 서식하다보니 먹이가 부족해 이렇게 진화한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심해생물이다보니 사육이 어려웠는데, 개량을 통해서 지금은 나름 키우기 쉬운 심해생물에 속해있다고 한다. TMI로 클리오네는 온도에 매우 민감해서 수온이 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사라지는데 최근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좆간새끼들 언젠간 꼭 조진다. 참 어딜가나 항상 좆간들이 문제다... (출처) 하 오늘도 인간이 미안해
천하의 킬방원도 어쩌지 못한 남자
태조 이성계의 차남 '이방과' 우리가 아는 조선 2대 왕인 정종임. 고려 시절에는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종군하며 한명의 장군으로 활약할 정도로 태생부터 무인인데 사극에서는 킬방원 기에 눌려서 아무것도 못한 약한 남자로 표현됨 태종 이방원 자기 아버지도 내쫓고 배다른 형제들도 서슴없이 쳐낸 이방원조차 이방과만큼은 정말 깍듯하게 대했음. 저 깍듯하게 대한게 일방적으로 정종을 형님 대접하고 두려워하고 그런게 아니라 진짜 우애가 깊다는 평가가 자연스러울 정도임. 정몽주를 죽일 때 서로 힘을 합한것도 있고 왕자의 난 때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변하지 않도록 조율해준것도 있다니.. 여튼 왕이 된 이방원이 첩도 들이고 가끔 하고싶은거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의 일화가 탄생함. (원경왕후 민씨와 다투고 난 다음) "저 여편네 짜증 못받아주겠다. 차라리 후궁을 들이는게 나을것 같으니까 좀 그럴듯하게 준비해라" "방원아" "?" "부인이 있는 녀석이 왜 또 장가를 들려고 해? 난 사이에 둔 자식 하나 없는데도 소싯적(젊을때) 정 때문에라도 첫 부인이랑 여태까지 함께다. 슬하에 자식도 많이 둔 놈이 네 부인 속상하게 하려고?" "아니 형님;;" 이때 이방원에게 한 이방과의 일갈 탓인지 후궁을 들일때 형식적인 가례조차 올리지 않고 조용히 후궁을 들였다고 함. 비록 이방과는 왕위 시절에 다른 첩을 들여 그 사이서 자식을 많이 보았지만 첫 부인이던 정안왕후 김씨 사이에선 자식을 못 봤음에도 정말 각별한 부부사이였다고. 그정도로 정많은 형님 입장에서 부부싸움 했다고 후궁 들일 생각 꺼내놓는 동생이 철없이 보였던 모양이다. 저런 일갈 들으면 싫은 감정이 들 수 있음에도 그러진 않고 오히려 이방원은 형님을 부러워하고 그랬다는 말이 있다. (상왕 대접을 받으며 정안왕후와 전국 팔도 유람을 다니던 정종) (말년에 현자타임 비슷한게 온 태종) "부럽습니다 형님" "뭐가 부럽다는 거냐?" "맘 편히 놀러다니시는게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럼 너도 같이 놀면 되잖니" "어 그러네" 세자(이도, 훗날의 세종대왕) 교육도 잘 됐고 왕위 물려줄 각 재다가 고독함이 느껴졌는지 말년의 태종은 상왕이던 정종과 같이 사냥도 다니고 어울려 놀았다니 나이가 들었어도 형제애는 각별했던거 같음. 정종이 말년에 먼저 세상을 뜰 때에는 태종과 세종이 그 옆에 있었다고 하니 조카와의 관계도 나쁘진 않았던듯. 만일 젊을적의 정종이 정치적 야욕을 조금이라도 품었다면 이방원이 왕자의 난 때에 제대로 날뛰지도 못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나오는걸 보면 이방원 입장에서 둘째 형님은 정치 욕심도 없으면서 출중한 무인이고 형제애와 가족애가 뛰어나니 싫어할 수 없는 정말 좋은 형이었나 보다. (출처) 어 그러네 ㅋㅋㅋㅋㅋ 둘이 다 늙어서 눈싸움 하고 놀 정도로 우애가 좋았다고... (지가 다 죽여서) 얼마 남지 않은 혈육이라 더 그러지 않았을까
죽음 앞에서 최후의 사진들을 남긴 용감한 사진작가 로버트 랜스버그
이미 세상을 떠난 미국인 사진작가 로버트 랜스버그(Robert Emerson Landsburg 1931.11.13~1980.5.18)를 아는 사람은 그리많지 않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직업 정신은 지금도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있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남쪽의 캐스케이드 산맥에 있는 세인트 헬렌 산(Mount St.Helens)에서 1980년 5월18일 아침, 엄청난 위력의 화산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지질학적 사건 중 하나였다. 세인트 헬렌 산 폭발 당시 정상에서 몇마일 안되는 곳에 사진작가 로버트 랜스버그가 변화하는 화산의 모습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그는 그동안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수없이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그는 너무나 빨리 다가오는 화산재 구름때문에 이제는 도저히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순간을 더 오랫동안 촬영하려고 스냅사진들을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의 필름을 되돌려놓고 자신의 배낭 안에 카메라를 넣은 후, 필름 내용을 잘 보존하기위해 배낭 위에 누웠다. 사고 17일 후 그의 시신이 화산재 속에서 발견됐다. 죽음 앞에서 끝까지 지켜낸 그의 최후 사진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1981년 1월 National Geographic은 로버트 랜스버그의 마지막 사진들을 책으로 출간했다. 사진책의 이름은 'Robert Landsburg's brave final shots'. 죽음 앞에서도 그가 끝까지 자신이 갈망하던 화산 폭발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마지막 사진들을 훼손없이 지켜낸 것이다. 로버트 랜스버그의 용감한 직업 정신은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출처 와... 사진 하나하나 정말 많은걸 담고있네요..
기적이란 걸 팔지 않는단다
세 식구가 사는 가정에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다섯 살 막내가 가난한 형편으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병이 깊어져 가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아무런 도리가 없어 앓는 아이의 머리만 쓸어 줄 뿐이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기적만이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듣게 되었습니다. ​ “우리에게 기적이라도 있었으면…” ​ 다음 날 아침 소년은 엄마 몰래 자신의 작은 저금통을 가지고 나왔는데 저금통에는 동전만 가득했습니다. ​ 소년은 저금통을 들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약국으로 찾아갔습니다. ​ “어떻게 왔니, 무슨 약이 필요한 거지?” ​ 소년은 뛰어서 왔는지 가쁜 숨을 쉬면서 약사에게 말했습니다. ​ “저, 저기 도~동생이 아픈데 엄마가 기적이 있어야 낫는데요.” ​ “이걸 어쩌나, 여기는 기적이란 걸 팔지 않는단다.” ​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옆의 신사가 물었습니다. ​ “꼬마야, 네 동생한테 어떤 기적이 필요하지?” ​ “어,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동생이 수술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엄마가 기적이 있으면 살릴 수 있대요. 그래서 기적을 사러 왔는데…” ​ 신사는 저금통을 받고는 기적을 사겠다며 소년의 집으로 함께 갔습니다. ​ 그리고 소년의 동생을 진찰한 뒤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수술까지 해 주었습니다. 약사의 동생인 그는 큰 병원의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소년의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술비용을 물었을 때 그 의사가 말했습니다. ​ “수술비용은 이미 다 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기적을 빕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적을 빌면서도 기적이 정말 나에게 일어날 것이란 생각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 기적은 바라고, 믿고, 행동하고,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 지금부터 그렇게 믿고 빌고 싶은 기적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세요. ​ ​ # 오늘의 명언 세상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적이란 없다고 믿고 사는 것과,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다. 나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 아인슈타인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기적#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아편전쟁 때 영국이 10🐦끼가 아닌 이유
아편전쟁은 단순히 돈 문제이자 아편 판매 찬반으로 의회 표결까지 갔던게 아님 아편전쟁 개전파의 의견 : 영국인들이 불법으로 감금 당하고 거주지가 포위 당하고 적하물을 약탈 후 폐기당했다. 청나라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 아편전쟁 반대파의 의견 : 청나라가 그러한 태도로 나선 것은 우리가 청나라의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으로 개념차게 대립한 것 같아보임 근데 실제로는 혐성국의 혐성력 250% 발휘한 표결임. 사탄이 부랄을 탁 치고 기립박수를 할 항목이 개전파의 주장이다. 영국의 대외 규정 = 현지에서는 현지 법을 따른다, 치외법권은 적용하지 않는다. 청나라의 아편 법안 = 아편 매매는 금지하고 밀수 또한 금지한다. 적발될 경우 자산 몰수 및 사형이며 영국 상인들은 이를 인정하는 서약서를 썼다. 임칙서의 대처법 = 공문을 미리 보내고 영국 마약상들이 자기들 거주지에 아편을 숨겨 밀매하려 하자 포위하여 단속하고 최종적으로 아편 1400톤을 압수함. 임칙서의 결론 = 법도 그러하고 이들이 서약서도 썼으니 모조리 죽여도 되지만 사람 목숨은 소중하니 아편 1상자 당 차 5근으로 최소한의 보상을 해준다. 영국인 감금건 = 술에 꼴은 영국 해병이 사람을 죽여서 영국의 법을 적용하려 했으나 영국 해군에서 무시. 그 대응을 내놓을 때 까지 마카오를 봉쇄함 즉 현지 법을 따라야 하는 영국 상인들이 아편 밀매시 사형이라는 서약서까지 썼는데 현지 법을 쌩까고 아편을 밀매하다 감금 당하고 적하물 압수 당한 것을 불법 감금이라 포장하고 더군다나 현지 법을 적용하면 무조건 사형이지만 약간의 보상 받고 목숨을 건진 것을 약탈이라 포장하고 자신들의 법으로도 현지 법으로도 사형인 살인을 저질러놓고 항의로 마카오를 포위하고 인도주의적으로 숨통 틔워둔걸 감금이라 포장하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게 자신들의 탓인데도 아무튼 청나라 잘못이야! 하는 태도로 의회 표결까지 실시한거지 그냥 아편판매 vs 아편판매금지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님 이건 그냥 찬성 찍은놈이 혐성으로 가득한 혐성국 자체를 표현하는거임 기본적인 자신들의 대외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엎고 타국의 법률을 개무시하는 내로남불 그 자체지 그냥 씹새끼가 아니라 그레이트 씹새끼거든 (출처) 이래서 그레이트 브리튼!
세계에서 가장 잘생겼던 남자가 겪었던 일.jpg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남자라고 불리우는 배우 알랭드롱  흔히 세계 4대 미남하면 비요른 안데르센, 디카프리오, 알랭드롱, 에드워드 펄롱을 얘기하는데 그중에서도 우열을 가리라하면 대부분 알랭드롱을 언급하고 역대급 전설이라 불리어지는 영화배우 엄청나게 ~~ 잘생겨야 일어날 수 있는(?) 이 배우의 일화들을 알아보자. 독일의 유명한 여배우 로미슈나이더 톱스타였던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배우가 됨. (역시 아름다움.....) 당시 최고의 여배우로 인기를 누렸던 로미 슈나이더는 크리스틴이라는 영화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됨. 첫눈에 반한 둘은 바로 연인이 되었고, 로미 슈나이더는 헐리우드 진출의 기회를 버리면서까지 남자를 사랑함 하지만 남자는 5년정도 열애한 후 여자를 떠남 (좋게 포장되었지만 바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음) 헤어진 후에도 그들은 간간히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했고, 루미 슈나이더는 감독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으며 평탄한 삶을 사는 듯 보였음. 하지만 곧 이혼한 슈나이더는 자신의 매니저와 두번째 결혼을 했지만 전 남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상가상으로 아들까지 사고로 죽음. 결국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든 슈나이더는 남편과도 이혼하고 어느 호텔에서 시신으로 발견됨.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방에 있던 수면제와 술로 보아 자살이라는 설이 일반적임. 이때 그녀의 나이 44세, 죽기 전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알랭 드롱…, 그를 잊지 못해 내 삶은 추락했다." 라고 말했다고 함. (장례식 송사는 알랭 드롱이 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남자가 첫번째 결혼했던 남편도, 두번째 결혼했던 남편도 아닌 젊었을 적 사귀었던 남자. 알랭 드롱은 형제가 3명 있었는데 모두 이복형제였음. 어머니는 계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만을 예뻐했고,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와 가정을 꾸린 후였기 때문에 방황하던 알랭 드롱은 여기저기에서 사고를 많이치는 말썽쟁이였다고 함. 그리고 14살때 학교를 그만두고 계부를 따라 도축장에서 일하다가 점점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던 알랭 드롱은 미성년자이지만 전쟁 중에 군대에 지원했고, 미성년자가 군대에 지원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전쟁중에 아들이 군대에 가겠다고 하는데도 순순히 허락했다고 함. 이런 유년기에서 알랭 드롱은 점점 여성 불신을 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함. 군대에 3년간 있었지만 거친 성격을 통제못한 그는 구치소에 가 있기도 했고, 결국 제대 한 후에 짐꾼, 바텐더, 푸줏간 인부, 웨이터, 접시닦이 등등을 하다가 마피아 일에 몸을 담기도 함. 이런 과거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천박한 미남이라고 칭했고,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를 알랭 드롱을 시궁창에서 피어난 장미라고 했다고 함. 당시 일본은 알랭 드롱 열풍 때문에 선글라스, 담배, 트렌치코트를 따라 입는 유행도 있었다고 함. 어쨌든 천박한 아름다움, 시궁창에서 피어난 장미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알랭 드롱은 여자 만나는걸 멈출 줄 몰랐음 미레이유 다르크라는 여배우는 알랭 드롱과 동거를 했었는데, 당시 알랭 드롱은 살인 사건 용의자로 수배되는 바람에 경찰들이 감시하고 있었다고 함. (존나;;) 아무리 좋다고해도 살인 사건 용의자는 꺼림직하기 마련인데도 다르크는 그 옆자리를 지켰고 심지어 다른 여자들도 알랭 드롱에게 달라붙었다고 함. 또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알랭 드롱에게 차인 다르크는 차인 후에도 "우린 영원할 줄 알았다. 우린 아무 문제없이 잘 살던 와중에 그가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친구고 그가 진심으로 잘되길 바란다." 라고 말했다고 함 (????????????) 한국에는 개고기에 대한 망언으로 더 잘 알려진 60년대를 풍미한 섹스심벌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 우리나라에선 X년이지만 외국에선 레전드 배우였음.  이 여자도 알랭 드롱과 사귀었다가 알랭 드롱이 뻥 참 하지만 쿨하게 친구로 지냄. 그와 결혼하고 4년간 같이 살았던 나탈리 드롱은 "내가 알랭 드롱과 오랫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늘 다른 여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그를 간섭하지 않아서였다" (????????????) 라고까지 말함;;;;; 위에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언론에서는 알랭 드롱을 미남이라고 지칭하면서도 쓰레기, 나쁜놈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알랭 드롱과 사귄 여자들 중에는 한 명도 알랭 드롱을 나쁘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고 함. 다들 그에게 집착하거나 우린 아직 좋은 사이이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알랭 드롱이 하는 일이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빈다 하는 식으로 말했다고 함 또 알랭 드롱은 사진빨이 안 받는 배우로도 유명함. 사진보다 영상이 100배 잘생겼고, 영상보다 실물이 100배 잘생겼다고. 어떤 영화 관계자는 "알랭 드롱이 파티장에 들어오면 다들 숨을 죽이고 그를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라고 함 알랭 드롱이 젊었을 적 "배고파서 음식을 쳐다보고 있으면 종업원이 음식을 주었고, 옷가게에 걸린 옷을 보고 있으면 옷을 주었다." 라는 일화는 레전드 아닌 레전드 정말 전설이라 불릴만하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