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ot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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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존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한 대학생의 글.jpg



이거 보니까 왜 나까지 힐링되냐
걍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는게
진짜 자존감인듯..
나로 대입해보니까 눙물이네ㅜ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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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자체도 군더더기 없이 하고싶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만 그 안의 내용마저 몸쪽 꽉차게 들어오네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영감을 주는 이야기"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좋은글이만 힘든 시기에 문득, 그가 쓸 글도 궁금해진다
4개월된 아기 키우면서 여러 육아 유툽에서 *당신의 아이는 세상 유일한 존재*이니 평균이나 일반적인 틀에 억지로 맞추려하지마라는 메세지들을 보았어요. 우리는 각각 세상 유일한 존재들인데 어느순간부터 망각하고 산걸까? 란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좀더 있는그대로, 날것의 나를 귀하게 되돌아보게되더라구요. 오늘도 잘버틴나 대다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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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최후의 사진들을 남긴 용감한 사진작가 로버트 랜스버그
이미 세상을 떠난 미국인 사진작가 로버트 랜스버그(Robert Emerson Landsburg 1931.11.13~1980.5.18)를 아는 사람은 그리많지 않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직업 정신은 지금도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있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남쪽의 캐스케이드 산맥에 있는 세인트 헬렌 산(Mount St.Helens)에서 1980년 5월18일 아침, 엄청난 위력의 화산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은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지질학적 사건 중 하나였다. 세인트 헬렌 산 폭발 당시 정상에서 몇마일 안되는 곳에 사진작가 로버트 랜스버그가 변화하는 화산의 모습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그는 그동안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수없이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그는 너무나 빨리 다가오는 화산재 구름때문에 이제는 도저히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순간을 더 오랫동안 촬영하려고 스냅사진들을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의 필름을 되돌려놓고 자신의 배낭 안에 카메라를 넣은 후, 필름 내용을 잘 보존하기위해 배낭 위에 누웠다. 사고 17일 후 그의 시신이 화산재 속에서 발견됐다. 죽음 앞에서 끝까지 지켜낸 그의 최후 사진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다. 1981년 1월 National Geographic은 로버트 랜스버그의 마지막 사진들을 책으로 출간했다. 사진책의 이름은 'Robert Landsburg's brave final shots'. 죽음 앞에서도 그가 끝까지 자신이 갈망하던 화산 폭발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마지막 사진들을 훼손없이 지켜낸 것이다. 로버트 랜스버그의 용감한 직업 정신은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출처 와... 사진 하나하나 정말 많은걸 담고있네요..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조선시대 궁궐 모습.jpg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조선시대 궁궐 모습이 담긴 미공개 유리건판(유리에 감광유제(感光乳劑)를 칠한 사진용 감광판) 사진들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건춘문 동쪽으로 이건되기 전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으로 이를 확대하면 '光化門'이란 현액 글씨가 뚜렷하다. 나아가 그 전면 월대를 포함한 광화문 전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 열린 우협문 안으로 보이는 흰색 가건물 지붕 일부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건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촬영했다고 판단된다. 조선총독부서 찍은 경복궁 근정전 주변 사진. 전각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원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趙大妃)를 위해 지은 경복궁 자경전. 이곳은 이후 두 차례 화재를 만났다가 1888년(고종 15) 재건됐다. 꽃담으로 유명한 이곳 서측 담장에는 꽃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것이다. 현재의 자경전 꽃담에는 아홉 개가 아닌 여덟 개 꽃 문양이 남아 있다. 윗쪽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이며 아래쪽은 그 현재 모습. 경복궁 자경전 꽃문양 앙부일구는 조선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로 창덕궁 소장품으로 현재 여주영릉전시관과 창덕궁에 전시 중이다. 현재 이 앙부일구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 (오른쪽) 일제강점기 때 유리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받침돌에 몸체가 감입돼 앉힌 모습이다. 나아가 대석 옆쪽으로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된다.(왼쪽과 가운데) 앙부일구 원래 모습을 고증할 수 있는 사진이다. 창덕궁 원래 위치 보루각에 있을 당시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에서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그리고 수수통 둘만 남아 있으며 부표는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수통 양 옆에는 측우기와 석조대와 위치한다. 자동 시보장치 물시계인 자격루는 현존품은 1536년(중종 31)에 제작품으로 현재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조선국왕 용상 뒤에 설치한 그림병풍인 일월오봉병으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에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윗쪽)과 덕수궁 중화전(가운데) 작품. 이에는 한결같이 해와 달 부분에 금속판이 붙어 있으나 현재의 일월오봉병(아래쪽)에는 이 금속판이 없다. 1935년 경복궁 건청궁 터에 조선총독부종합박물관을 짓기 위한 지진제를 지내고 있다. 일본 신도(神道) 방식으로 식장이 차려지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총독이 절하고 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당한 현장으로 총독부가 이를 모두 철거하고 종합박물관을 지으려고 했다가 전시체제가 확산됨에 따라 총독부미술관을 짓는 데 그쳤다. 1929년 지금의 경복궁 건춘문 일대로 옮긴 광화문 문루에서 본 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 동십자각 일대 전경.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그 동편에는 민가들이 밀집해 있다. 1929년 박람회로 궁성이 파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궁장 대부분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바로 옆은 무너져 있다. 이 붕괴사고는 1926년 4월27일 오전 10시에 일어났으며 그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해서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이라고 매일신문 4월29일자 기사에서 확인된다. 동경에 거주하던 이왕세자와 그 왕비 등 일행이 1922년 일시 귀국했을 때 희정당에 도착하는 장면. 자동차에서 내리는 여인은 이왕세자비 이방자 여사 1922년에 고국을 방문한 이왕세자 일행이 동경으로 돌아가기 전 어느 날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첫줄 왼쪽부터 정무총감 부인, 사이토 총독 부인, 의친왕비, 이방자 여사, 순정효황후, 순종, 이왕세자, 의친왕, 사이토 총독, 정무총감 등의 순서다. 1922년 이왕세자 내외의 창덕궁 체류 중 후원 나들이를 촬영한 장면으로 보인다. 건물은 영화당이며, 맨 앞부터 뒤로 순정효황후, 이왕세자, 이방자, 덕혜옹주 등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창덕궁 인정전 앞 마당의 박석을 없애고 화초를 심고있다. 조선의 문무고관들이 왕에게 하례하던 상장적인 공간을 일제가 훼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02년의 경복궁 경복궁은 그 창건 초기부터 조선조 멸망까지 (1394~1910년) 조선의 정궁으로서 제 구실을 못한 불운의 궁이었으며, 조선조 500년동안에 사람이 산 기간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긴 세월 동안 폐허로 방치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궁이다. 경복궁은 1592년 부터 1868년 까지 276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폐궁이었다. 또한 순종을 심심하지 않게 위로한다는 구실로 1908년 일본은 창경궁에 동물을 끌어들여 동물원을 만들어서 조선의 오대왕궁중에 하나인 창경궁을 하루아침에 동물원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출처 그대로 남았다면 얼마나 더 멋졌을까요.. 사진으로 보니 위용이 더 실감나네요
소름 주의) 척척박사가 발하는 MBTI별 이성 꼬시는 법
딴데서 보고 이 분 진짜 박산가 싶을 정도로 잘 맞혀서 열심히 캡처해봤어요 여태 본 MBTI 연애 관련 궁예 본 것 중 제일 잘 맞는 듯 얼마나 맞는지 다들 한 번 보시죠! ENFP ENTP ESTP ISFJ ESFJ ISTJ ISTP INFP ISFP INTP ENFJ ENTJ ESFP INFJ ESTJ INTJ INFP랑 친구 정리 ENFP - 엔프피는 약간 자기 로망을 충족시켜주면 훅 빠짐 약간 감성적인데 어른스러운 면도 있고 자기를 좀 잘 이끌어주는 사람한테 많이 빠지는거같아 ENTP - 일단 절대 잔소리 하면 안되고 존중해주면서 우쭈쭈도 잘해주는? 엔팁은 확실히 자기 입맛에 잘 맞는 사람한테 끌리는듯 ENFJ - 엔프제는 취향도 취향인데 서사가 좀 중요한 스타일 같음 뭔가 뭘 해서 꼬신다보다는 하면 안 되는 게 많음. 예를 들어 상처주는거나 예의없거나 제멋대로인 거. 그리고 좀 속깊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끌림. 그리고 밀당이랑 여우짓 안먹혀! 눈치가 개빠르면서 수쓰는거 극혀ㅂ하거든! ENTJ - 엔티제는 뭔가 내 이상형은 이거야 라고 하는데 반대로 만나는 경우 꽤많음 일단 절대 한심해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자기를 통제하려고 해서도 안됨 솔직히 말하면 여자의 경우 취향이 아니어도 자기를 받아주고 하는행동이 맘에들면 잘되는경우 많고 남자의 경우도 처음엔 예쁜여자 찾다가 결국 마음맞는 스타일 찾아가는 느낌. ESTP - 엣팁 약간 두부류인데 완전 매력 미친 사람이던가 아니면 자기랑 반대로 선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던가에 빠짐 ESTJ - 아 엣티제 안했네 엣티제 약간 아이러니임 개똑똑하면서도 여우같은 면이 없는 통나무들이라 여우같은 스타일이 살살 달래면 녹음. 좋게 말하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나쁘게 표현하면 여시같은 사람하고 잘 맞으나 여우들이 엣티제를 데려가지 않으면 아예 순박하고 착실한 사람과 만나기도 하는듯 그치만 이경우엔 갈등이 좀..ㅜ ESFP - 엣프피도 생각보다 외모를 덜봄. 아 이사람이 나를 배려해줬어? 다정해? 나를 엄청 사랑해주네? 하면 폴인럽 ESFJ - 엣프제는 비슷한 유형이랑 잘 맞는 거 같아 막 미친듯한 끌림은 아니어도 대체로 반듯하고 선한 이미지 만나던데 ISFJ - 잇프제는 보통 어른스럽고 잘 챙겨주는 스윗러들에게 호감을 느끼나 가끔 나쁜남자들에게 빠지는 경우 있음 ISTJ - 잇티제는 확실히 여성/남성적인 느낌이 있어야 돼 친구같은 접근 안됨. 아 여자 잇티제는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친구루트 가능 ISTP - 젤 어려움 근데 변덕 개심하고 맘 잘 안주는데 대강 그래도 자기랑 말 통하고 상대방 외모가 취향이면 잘 맞는듯 ISFP - 잇프피는 일단 무조건 어른스러운 면이 일부분은 있어야해! 생각이 깊고 말이 통한다 나를 잘 챙겨준다 느끼면 폴인럽 INFP - 인프피들 안그런척하면서 막상 빠지는 애들보면 완전 예술가스럽거나 끼많거나 핵인싸인 스타일 많았음 enfp들에게 입덕하는 경우 많음 근데 좀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랑 오래가긴 하더라 INTP - 인팁은 첫인상(본인취향)이 개개개개개개중요하고 잇티제처럼 친구같은 접근 안됨. 무조건 여자/남자 느낌이 강해야하고 취향이 진짜 개소나무 개확실해서 딱 맘에없음 눈길안줌. 남자 인팁 보통 애교에 녹음 INTJ - 인티제도 개어려워! 근데 얘들도 본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개심한듯 약간 인팁이랑 비슷해! 진짜 이상형 확고하고 고집 센데 그게 맞추기가 어려워서 정말 누구 만나기 힘드십니다..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가볍게 만나는듯 INFJ - 인프제들 일단 퇴폐미 이런거 별로 안좋아함 귀여운거에도 꽤 심쿵하는듯 좀 기운이 맑고 밝은 사람 많이 좋아하고 반듯한거 좋아함. 정석 미남 정석 미녀? 약간 애교있는 상견례 프리패스상 많이 좋아하는 거 같더라. 자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통통 튀면 매력으로 느낌. 출처) 뭐야 이 사람 진짜 박사예요?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