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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친 10월 26일

1597년 10월 2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1920년 10월 26일
김좌진 장군,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 전투 승리


1944년 10월 26일
역사상 최대규모의 해전인 미국 VS 일본 레이테 만 해전에서 미해군 압승


1950년 10월 26일
6.25 전쟁 중 국군 6사단 선봉대가 압록강(평안북도 초산)까지 진격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암살


2016년 10월 26일
박근혜 정부 퇴진 첫 촛불집회


2021년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향년 89세로 사망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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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박정희, 노태우 이 세사람의 공통점이 10월 26일에 죽었다는 게 되는 건가?
@galaxy87 그렇게 되네요...
@galaxy87 게다가 명량해전에 참가한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비롯한 왜놈들도 그 날 죽었다는게 되는 거죠
다까기와 닭까기는 날짜도 비슷하네요
오우 장말 신기하네용
오메~ 울 막내동생 생일인디..
우리는 왜 전두환을 사형시키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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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레전드 라이벌 견훤vs왕건 이야기.jpg
궁예 뒤통수를 탁! 치고 고려의 왕이 된 왕건!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스스로 왕이 된 견훤! 두 사람의 피튀기는 싸움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음은 견훤과 왕건이 주고받은 실제 편지 내용을 알기쉬운말로 옮긴 내용입니다~ ~견훤의 편지~ 어 왕건아 형이다잉 신라는 망해가고 신라왕도 칵 디져불고 이 말세에 니는 왕이되고싶어서 애를쓰는군아 넌 나한테 못당하니께 지랄일랑 하덜말고..얌전히 살어 ~왕건의 답장~ 내가봐준거야ㅋㅋㅋㅋㅋㅋ 내가 형 봐준거라고ㅋㅋㅋㅋㅋㅋ 그걸모르냐?ㅋㅋㅋ 아니그리고 신라왕이 칵하고 죽어버렸다고? 니가 자살시켰잖아ㅋㅋㅋ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거든? 형 니는 진짜 짐승같은 쓰레기새끼가 맞는것같다. 짧은 편지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둘은 정말 숙명적인 라이벌이었다... 망조 든 신라와 신생국 두개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싸운 두사람! 후백제의 공세에 후달린 왕건이 먼저 숙이고 들어가 화친을 요구한다 "훤이형! 내가 잘못했어. 내 사촌동생을 볼모로 보낼테니 우리 적당히 화해합시다." "알겠다 건아! 그럼 나도 내 조카를 보내마..." 그런데 럴수럴수 이럴수가!!! 고려에 볼모로 간 견훤의 조카 진호가 간지 6개월만에 주거버린것이다;;;; "형..진호가 갑자기 죽었엉..나도 이게 무슨일인지 모르겠네. 아마도 병?인 것 같애." "고려 이 씨불놈들!!! 진호가 몇살이라고 그 젊은애가 병으로 죽어!? 니들이 죽였지!!!" 대노한 견훤은 죽은 진호의 복수를 위해 후백제에 와있던 왕건의 사촌동생 왕신을 주갸버렸다 잠시 훈풍이 도는듯했던 두사람의 사이가 또다시 작살이 나고 질리지도않는 두 나라 간의 공방이 시작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고려는 강해지고 견훤은 자꾸 지고 또 늙어가고... (훤이형과 건이동생은 나이차가 10살 났다) 지친 견훤은 후계자를 지목하기로 한다 견훤: 넷째야! 니가 내 후계자다. 앞으로 열심히 하거라잉 넷째: 네? 정말 후계자 합격인가요? 견훤: 그래! 첫째도 둘째도 시째도 아닌 니가 후계자다! 넷째: 헐 제가 후계자합격하다니..감사합니다 열심히 왕 하겠습니다!!🤩🤩🤩🤩🤩‼️‼️‼️ "......." 첫째 견신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는 상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버지 드디어 미치심? 개어이없네." 개빡친 첫째 신검은 후계자로 지목된 넷째동생을 주갸버리고 즈그 애비 견훤을 김제에 있는 금산사라는 절에 가둬버렸다 "아이고 원통해! 아이고! 내 나라를 아들에게 빼앗기다니! 내가 바닥에서부터 구르고굴러 올라와 해적놈들 소탕하고 나이 26살에 세운 나의 소중한 후백제를 짐승만도못한 아들놈이 홀랑 가져가버리다니!!! 여태껏 키운 아들이 아버지를 저버리다니!!!" 너무너무너무 원통하여 눈물만 흘리던 견훤. 갇힌지 3개월만에 금산사를 탈출하여 어딘가로 떠난다 어디로갔을까? 그 오랜 시간동안 견훤의 곁을 지켰던 한사람.. 많은 적이 죽고 많은 벗이 배신한 세월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던 한사람.. 견훤이 자기 급이라고 인정한 단 한사람.. 바로 왕건이었다 "건아! 내 아들이 나를!! 나를쫓아내고 지가 왕을 한댄다ㅠㅠㅠㅠ이게말이되니? 건아ㅠㅠㅠ나 원통해서 못살겠다!!" "형님, 두팔벌려 환영합니다. 제가 돈도 드리고 집도 드리고 노비도 드릴 테니 고려에 계시고 제가 복수도 해드릴게요." 잊지말자 이새끼들 며칠전까지 서로 죽이지못해 안달이었다;;; "ㅠㅠㅠㅠㅠㅠ그치만ㅠㅠㅠ이지경이 되니 믿을게 건이뿐인걸ㅠㅠㅠㅠ" 두사람은 이제 나란히 손을 잡고 견신검을 족치러 갔다 "내가 바닥에서부터 구르고굴러 올라와 해적놈들 소탕하고 나이 26살에 세운 나의 소중한 후백제를 지금부터 멸망시킨다! 후백제 멸망대작전 시작!!" ~불쌍한 후백제군들~ 야들아 저거 우리 임금님아니냐? (웅성웅성) 그러게 우리 나랏님이네? (웅성웅성) 반년전에 우리 지휘하던 사람이 왜 저기 가있을까..? 병사들이 사기를 잃고 울아빠한테 가서 투항을 하는구나... 이 싸움은 승산이 없다! "아부지. 그리고 건이 삼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신검의 투항으로 고려군이 승리했고 그날을 끝으로 후백제는 완전멸망했다 이리하여 견훤은 지가 세운 나라를 지 손으로 깨부수는 1만년 인류 역사 유일한 초레어 업적을 클리어한 인물이 된 것이다 + 후백제 멸망으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견훤은 죽었다 아들의 충격적인 패륜 그리고 정말정말 사랑했던 내나라 후백제를 친정까지 해가며 내손으로 직접 까부순 충격 탓에 병을 얻고 급사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견훤 나이 70세였으니 이상할것도 없지.. 혹은 견훤을 부담스러워한 왕건이 독살시켰다는 설도 있다 너무 길어져서 자세히 적진 않지만 두가지 설 모두 근거가 충분하니 자기가 믿고싶은대로 믿어도 되겠다 하여튼 견훤은 죽기 전에 후백제의 수도였던 전북 전주를 그리워하여 내가 죽거든 전주가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
바로 한국의 정동진역 드라마 모래시계에 정동진역이 방영된 이후 유명해졌고 연초에는 해돋이 명소로도 꼽히는 역임. 사진처럼 역과 바다가 한 장에 담길만큼 가까워 기네스북에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등재되기도 했음. 그런데 사실 정동진역보다 더욱 바다와 가까운 역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 JR동일본 츠루미선의 우미시바우라역은 말 그대로 바다 앞에 있음. 역사 구조를 보면 열차 문이 열리는 순간 바로 바다 앞에 내려지는 특이한 구조임. 이러한 독특한 구조를 이용해 이런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역사 앞에 바로 바다가 있는 만큼 혹여 위급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구명튜브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음. 그런데 이렇게 바다와 가까운데 왜 기네스북 기록은 정동진역이 꿀꺽한걸까? 이 역은 도시바 소유 부지의 직원 출퇴근용 역사로 지어졌기 때문에 사원이 아닌 일반인들은 하차가 불가능함. 그래서 아무리 바다와 가까워도 일반인이 이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네스북 기록은 정동진역이 가져가게 된 것. 만약 이 역이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었다면 기네스북에 이 역이 등재되었을 거임. 우미시바우라역을 제외한 일본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은 바로 JR동일본 신에츠 본선의 오미가와역임. 오미가와역 역시 바다와 정말 가까워 일본판 정동진역이라 불리기도 함. 지구촌갤러리 코마츠타미나루님 펌
고대, 중세 동아시아 건축물 대다수가 남아있지 않는이유
중국은 이미 한나라 시대(기원전3세기~기원후 3세기)부터 고층 건물이 지어졌어. 근데 왜 남아나지 않았을까? 고중세 건축이 남아나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재료야. 동아시아에선 유난히 건물에 목재를 자주 사용했는데, 목재는 불에 잘 붙기 때문에 고대 건축 대부분이 불에 불타 사라졌고, 현존하는 건물 대부분은 후대에 재건한거야.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은 7세기에 지어진 일본의 호류지라고 해. 1049년에 재건된 우국사의 "철탑".56미터의 높이를 자랑해. 원래 자리는 목탑이 있었는데 번개에 맞아 전소되었기 때문에(...) 불에 붙지 말라고 벽돌로 지었어. 비슷한 예시론 한국의 황룡사가 있어. 1012년에 재건되었고,60미터를 넘는 높이로 추정되는데, 원나라때 몽골군이 불붙여서 태워버림 사진은 황룡사 유적에서 발견된 2미터짜리 치미. 이는 중국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냐. 동아시아중 고건축이 제일 잘 보존되어있는 일본도 대부분의 건물은 17세기, 16세기 즈음에 재건된거야 대표적인 예시가 토다이지.너비 57, 길이 50, 높이 49미터크기의 현재 남아있는 대불전보다, 12세기 재건된 대불전은 50%가량 더 컸었다고해. 70미터를 넘는 목탑도 2개나 있었는데, 지진때문에 박살남 그렇다면 고대와 중세, 가장 높았던 탑은 어디일까? 정답은534년에 지어진 영녕사야. 240미터를 넘는 높이라는 기록도 있긴한데... 당연히 짱개식 구라고 사학자들은100미터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동로마제국과 이집트를 포함해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중 하나였던거지. 근세에 들어서도, 화재는 지속적으로 동북아 건물들을 괴롭혔어. 대표적으로,59미터높이의 천수각을 자랑하던 에도성은 1657년, 1873년에 대화재가 일어나 재로 변해버렸어. 지진과 화재는 일본 건축가들은 괴롭히던 문제였는데, 일본 중세/고대 건물의 내진설계가 발달한 이유도 지진에 유실된 문화재가 워낙 많으니까야. 잠깐, 중세에 내진설계가 무슨말이냐고? 맞아. 일본은 고대부터 내진설계가 고도로 발달되어왔어. 콘크리트 건물도 파괴된 한신 대지진때, 400년전에 지어진 효고현의 이치죠지가 살아남은 사례만 봐도 알수 있지. 자연재해 외에 다른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야. 중국은 청나라를 제외하고는, 왕조가 교체될때마다 기존의 궁궐가 문화재, 기록들을 태워버리는 악습이 있었는데 수나라때 황제의 명 아래 초토화되는 등 우여곡절을겪은 난징이 대표적인 예시야. 그뿐만인가? 아편전쟁, 위화단운동, 중일전쟁, 문화대혁명등 온갖 개지랄이 일어나던 중국 근현대사에 명나라 청나라 유적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18세기에 서양건축을 모방해서 지은, 청나라 황제의 원명원도 2차아편전쟁때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털어먹고 불을 질러서 파괴돼. 3번째 이유도 중요해. "왜 동양건축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작아졌는가" 를 설명할수 있거든. 목재의 공급이 힘들어져서야. 왜냐? 사람이 많을수록 난방도 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농사지으려고 땅도 개간해야 하니 나무를 베게되거든. 특히 이씨조선의 경우, 온돌 뗀다고 사람들이 사방팔방 나무캐러 다녀서 산이 전부 요따구로 변해버려(북한은 아직도 이럼) 강철제조법을 습득한 유럽 근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지만 (독일은 원래 로마시절, 중세까지는 숲으로 덮여있었음), 얘네들은 나무만으로 건물을 짓는게 아니여서 건물이 작아지지 않았던거야. 그러므로 앞으론 "우리 조상님은 2층건물도 못지었구나"...가 아니라 아, "나무가 없어서 복층건물을 못지었구나!" 라 생각하는게 어떨까? 도시갤러리 ヨゾラ님 펌
그물에 걸린 혹등고래 구하기.jpg
-저기 있네 사람들이 바다에서 발견한 물에 떠있던 혹등고래 -저는 그 고래가 죽은 게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죠 너무나 가만히 있어서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그런데 갑자기 고래가 쏴- 하고 물을 내뿜음 알고보니 혹등고래는 그물에 몸이 걸려있어 움직일 수 없었던 것 -혹등고래는 15-20분 정도 숨을 참을 수 있습니다 -숨을 쉬려면 숨구멍을 물 위로 내놓아야 하는데 -그물과 각종 파편이 엉켜서 -숨을 쉬러 올라오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면 익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가 배를 산산조각 내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배에는 여섯 명이 타고 있었고 -제 아내와 다섯 살짜리 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가족을 사랑하지만 고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죠 공포에 사로잡힌 고래의 방어적인 몸짓 한 번으로도 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용기를 낸 사람들 -놀랐나 봐 -맞아 -등지느러미 부분만 끊었어 근데 갑자기 혹등고래가 너무 놀라서 요동치기 시작함 -파이프 붙잡아 -잘라, 잘라 그래서 배를 혹등고래에게 더 가까이 대고 그물을 제거하기로 함 -해냈어요 -혹등고래를 구해 준 거야 -맞아 -헤엄치는 고래를 보며 모두 기뻐했습니다 구조가 성공하고 잘 돌아간 혹등고래 그런데 혹등고래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옴! -저기 왔어 -어디? 계속 뛰어오르면서 고마움을 알리는 듯한 혹등고래 -40번은 뛰어올랐습니다 -배 주위를 돌면서 계속해서요 신났음 -엄마, 왜 저러는지 알아 -왜 저러는데? -이제 자유롭다고 알려주는 거야 출처
1970년대 서울의 요새화 계획과 그 흔적들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충격받은 박정희 정부는 ’서울의 요새화 계획‘을 실시하여 서울이 전쟁이나 무장공비에 대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 북악스카이웨이 대외적으로는 관광용 도로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뒤 북악산의 검문을 강화하고 경호에 만전을 기하고자 만든 도로.  또한 의도적으로 도로 인근에 아파트와 주택을 개발시켜 도로를 번화하게 만들어 무장공비를 방어했음.  한남대교 개통 당시 이름은 제3한강교. 강남 개발 촉진하고자 건설된 교량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한강의 제대로 된 교랑이 고작 하나밖에 없어서 많은 서울시민들이 포위되고 말았던 역사를 교훈삼아 서울의 유사시에 시민들과 국군부대가 한강 이남으로 대피할 수 있는 또다른 길목을 만들고자 하는 안보적 목적도 강했음.  남산 1.2호 터널 남산 1호터널은 위에서 언급한 한남대교와 함께 강남과 사대문안의 연결은 물론, 전시에 이 터널을 통해 시민들과 국군이 한강 이남으로 대피할 수 있는 길목 겸 방공호로 개발되었음.  남산 2호터널은 지금도 통행량이 적은 애매한 터널인데, 이는 용산의 미군부대를 염두에 둔 군사적 목적이 매우 강한 터널이기 때문임.  이 두 터널은 남산을 방패삼아 시민들의 방공호로도 쓰이며, 원래 계획상으로는 1.2호터널 교차점에 5000평의 지하광장을 만들어 최대 20만을 수용할 예정이었음.  남산타워 경기북부와 서울에서 선명하게 들리고 볼 수 있던 북한의 방송에 대한 방해전파를 쏘고자 하는 목적이 강했음.  더불어 날 좋을 때 올라가면 개성 송악산까지 보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동태 파악과 요격에도 사용하고자 건설.  유진맨션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이곳의 1층 상가는 두 번째 사진처럼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음.  이 자리는 은평을 통해 사대문안으로 들어오는 서울 방어의 최전선으로,  저 주차장이 전시에는 전차 격납고 역할을 하고, 건물이 적의 포격을 방어하며, 유사시에는 기둥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했음.  이 사실은 해당 시공업체가 1981년 서울시와 행정소송을 벌이며 밝혀짐.  여의도공원 (구 여의도광장) 1997년까지 여의도공원은 원래 콘크리트 여의도광장이었음.  70년대 여의도를 개발할 때 원래는 이곳의 일부를 지금처럼 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박정희가 지도에 직접 거대한 부지를 그려넣고, 이곳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콘크리트만 깔라고 지시를 하면서 광장이 건설됨. 당시는 베트남전에서 고전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시기로, 안보 위기를 느낀 박정희가 유사시 여의도를 공군 비행장으로 쓸 수 있도록 광장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음.  여의도 지하벙커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만들던 도중 발견된 지하벙커.  1970년대 여의도광장에서 행사를 할 때, 대통령을 노리는 공격이 게시될 경우를 대비하여 VIP가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벙커임.  내부에 소파, 샤워실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  비밀리에 만든 공간이었고, 제대로 인수인계가 안 되어 잊혀졌다가 2005년에 발굴되었음 강남 한강변 아파트의 총안구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의 한강변 아파트에는 총을 거치할 수 있는 총안구가 있음.  강북이 인민군에 수복되었을 때, 한남대교를 건너 한강을 넘어오려는 인민군을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 진 총안구임.  광화문 이동형화단 과거부터 세종대로 일대의 화단은 이동이 가능한 형태였는데 이는 인민군이 진입할 시 화단을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음. 현대에도 여전히 광화문의 화단은 이동형이며, 집회시위 관리용으로도 사용됨. 공릉천 대전차방호벽 파주와 고양에서 서울로 쉽게 진입이 가능한 공릉천에 방호벽을 설치하여 적군의 전차 진입을 막고자 하였음. 최근 상당수 해체되었음. 대전차방호벽 파주, 고양, 의정부부터 서울 외곽인 구파발에 이르기까지, 인민군의 서울 진입을 막기 위한 ‘수도권 방호벽’이 정말 많았음. 최근 주민편의와 안전을 위해 고양시를 필두로 상당수가 철거되고 있음. 일산신도시 1994년 국방부장관이 ‘수도권 신도시는 수도 서울의 바리케이트다’라고 밝히며 엄청난 논란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일산신도시가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시가전 특화 도시임이 밝혀졌음.  일산은 의도적으로 남북 도로를 좁게, 동서 도로를 넓게 만들어 동서로 길게 배치된 국군이 좁은 남북 도로를 타고 오는 인민군을 포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아파트를 바리케이트처럼 복잡하게 조성하여 서울의 방어막처럼 만들어 두었음.  즉, 도시 전체가 서울의 방호벽으로 건설되었음. 도시갤러리 오늘의김에빵님 펌
독일 와인병에 금빛 캡이 있는 이유
안녕하세요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도 오늘부터 설 연휴 시작인데 이번 연휴도 즐겁게 보낼려고 합니다. ㅎㅎ 연휴 시즌 전에는 항상 와인샵에 가면 사람들이 가족 분들과 축하주 사기 위해서 와인을 사는데요. 저도 이번에 와인샵에 가서 이것저것 집었는데 독일 와인을 보면 금빛 캡이 씌워진 와인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면 예를 들어서 독일 와인으로 J.J. Prum Wehlener Sonnenuhr Riesling Auslese Gold Capsule 2007 이런 이름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대체적으로 이런 와인들은 보기에도 예쁜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자랑하는데요. 그러면 독일 와인에서 '금빛캡'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먼저 독일 와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와인이 얻을 수 있는 와인 칭호로 프레디카트 [Prädikat]가 있는데요. 프레디카트 [Prädikat]는 독일 개정 와인법에 의해서 한정 생산지역의 와인 QmP : Qualitaswein Mit Prädikat(쿠발리테츠바인 미트 프래디카트) 중 당분이 첨가되지 않은 양질의 와인에 붙는 등급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까비네트(Kabinett), 스패트레제(Spätlese), 아우스레제(Auslese), 베른 아우슬레제(Beern Auslesse), 트로켄베른 아우슬레제(Trokenbeern Auslese), 아이스바인(Eiswein) 등 여섯 등급으로 나뉩니다. 물론 이것들은 독일의 와인 관리법이 1971년 이후로 개정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카테고리가 정립이 되었는데요. 잘 익은 특선(特選) 포도로 만드는 독일산(産) 와인을 뜻하는 Auslese - 아우슬레제도 아래 카테고리로 분류가 됩니다. Auslese Feine Auslese(fine Auslese) Feinste Auslese(finest Auslese) Hochfeine Auslese(high  fine Auslese) 단순히 보면 이름이 더 길면 포도 농축도가 더 높은 와인이며, 1971년 관리법이 개정되면서 해당 모든 카테고리는 Auslese - 아우슬레제도로 통일되었습니다. 새롭게 개정된 법은 포도의 성숙도 등급으로 분류가 되는데, 해당 분류법이 느슨한 부분도 있어 각 카테고리 사이에서 큰 차이를 두고 있지 않는데요. 그렇기에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같은 와이너리에서 생산되고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위 이름 사용들을 금지하면서 와이너리 입장에서는 더 좋은 품질을 가지고 있는 와인을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죠. 그래서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금빛 캡'을 씌우자! 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프레디카트 [Prädikat] 와인만 한정에서 많이 사용되는데요. 시장 마케팅 파워도 무시할 수 없듯이 독일에서도 일종의 질 좋은 와인 인식이 퍼져있습니다. Dr. Loosen 와이너리의 Erdener Prälat Auslese 와인은 무려 50%~100%에 달하는 귀부 감염 포도를 사용하여 만든 와인인데요. 다른 라인업보다 더 많은 투자와 신경을 쓰는 와인기도 합니다. 이런 엄청난 스펙들 덕분에 독일 리슬링 금빛 캡 와인은 정말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지만, 이마저도 구하기가 어려운 와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모든 금빛 캡 와인이 귀한 와인인건 아닌데요. 특히, 모든 와인에 금빛 캡을 씌우는 와이너리도 많아 혼동될 수도 있습니다. Lange Goldkapsel , LGK - 긴 금빛 캡 그래서 독일 유명 와이너리인 Joh. Jos. Prüm, Markus Molitor 등 와이너리들은 각 와이너리 방식으로 차별점을 두고 있습니다. 1년에 파커에게 3연속 만점 와인을 출시한 Markus Molitor 와이너리는 와인 이름 뒤에 '*' 기호를 붙여 소비자들에게 와인 가치를 알려줍니다. 예: Ockfener Bockstein Auslese *** Gold Capsule 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독일 와인은 명칭이 너무나도 달라 통일된 와인 인증 넘버가 존재하는데요. A.P. number가 바로 각 와인에게 부여되는 고유 코드이며, 사실상 A.P. number 코드를 통해 쉽게 독일 와인을 분류하실 수 있습니다. 와인이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영어가 아닌 각 나라 언어로 정보를 표기해야 되기 때문에 저도 독일 와인 중에서 금빛 캡이 씌워진 와인을 찾게 됩니다. 다음에 와인샵에서 독일 와인을 구매할 기회가 있으시면 빙글러분들도 한번 시도해 보세요.
이색적인 수집 취미들.jpg
피규어 제외 1.마그넷 (냉장고 자석) 최근 해외 여행이 많이 지면서 각나라나 도시의 마그넷을 모으시는 분들이 많아짐 커뮤니티 및 교류도 상당히 활성화 되어 가는중 2. 우표 수집 80~90년대 수집의 취미의 대표 명사로 2000년대 이후로 수집하는 분들이 대폭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수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 3. 동전 수집 동전 수집은 크게 기념주화와 일반주화로 나뉘는데 지폐 수집을 하시는분들도 손을 대기 힘들다고함 한번 수집할려면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됨 4. 지폐 수집 우표 수집을 하시는 분들이 병행해서 수집하는 경우가 많음 5. 담배 수집 80~90년대만 해도 담배를 수집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음 지금은 기념품 정도로만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있고 수집이라는 의미가 사라진 분야 6. 따조 수집 현재 20대 이하분들은 생소한 물건이겠지만 90년대를 거쳐서 성장해 오신분들이라면 모두 아시는 따조 따조 = 딱지의 일종 당시 엄청난 붐으로 따조를 모으기 위해 과자를 사서 따조만 챙긴후 버리는 경우가 많았죠 7. 라이터 수집 담배 애호가들중에 종종 라이터 수집을 하시는 분들이 있음 대표적인 화사는 사진에서 보이시는 zippo가 대표적 8. 만화책 수집 예전이나 지금이나 만화책을 수집하시는 분들은 꾸준히 계시는거 같음 9. 미니카 수집 90년대 반짝 전성기를 구가하며 현재는 어릴때 미니카를 즐기신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만든 커뮤니티 한곳이 국내 미니카 시장의 명맥을 유지하는 걸로 알고 있음 10. 병뚜껑 수집 90년대에는 많은 분들이 수집하던 분야 였으나, 지금은 캔,병 수집분야와 비슷한 정도의 명맥을 유지중 11. 병 수집 코카콜라 병 수집이 대표적 병수집 하시는 분들이 보통 병뚜껑 수집도 병행함 12. 복권 수집 90년대에는 우표 수집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인기가 있던 수집 분야 대표적인게 주택 복권 수집 13. 술 수집 애주가들의 꿈이죠 대표적으로 미니어쳐 수집을 꼽을수 있겠네요 14. 시계 수집 남자들의 로망중 하나 시계 수집 15. 시티컵 수집 각 나라별로 몇개의 대표적인 도시에서만 판매되는 컵으로 해외 출장이나 여행이 많으신 분들이 수집하는 분야 최근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수집 분야중 하나 16. 앨범 및 레코드 90년대 대표적인 수집 분야중 하나 최근에는 많이 사라짐 17. 캔 수집 대표적으로 코카콜라 캔과 제조사 관계 없이 맥주캔이 수집의 대상 18. 텀블러 수집 대표적으로 스타벅스 텀블러 수집 시티컵처럼 나라별로 디자인이 달라서 여행가면 스타벅스 텀블러만 별도로 구매하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 19. 포스터 수집 90년대에는 가수, 배우, 공연, 영화, 공익 광고 포스터등 다양한 포스터 수집 분야가 존재 했으나 현재는 영화 포스터 수집으로 축소됨 출처
[우영우] 서브 남주였으면 큰일 날뻔했던 캐릭터
최수연 여주 지나칠수 있었는데 다시 돌아와 회전문에서 나올수 있게 도와줌 - 우영우 밥 먹었어? 매번 밥 먹었는지 물어보고 여주가 물병을 못따고 있으면 지켜보다가 안되면 도와줌 로스쿨 시절에는 다른 동기들이 영우를 따돌리지 못하도록 뒤에서 노력하고, 강의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바뀐 시험 범위를 알려줌 그래서 여주한테 "봄날의 햇살" 이라는 소리 들음 자기 워워- 시키러 왔다고 말하는 여주 귀엽게 쳐다봄 열정 넘치게 함께 사건도 하고 같이 성장함 위험한 상황 생기면 먼저 보호해주고 무대포로 판사실 들어갈려는 여주를 ㅋㅋㅋ 부장판사인 아버지 찬스를 이용해서 통과시켜줌 ㅋㅋㅋ 여주가 뜻을 잘못 이해하면 바로바로 알려주고 사건 끝나면 같이 백화점 가서 옷 골라줌 - 내가 보기엔 준호씨가 너 좋아하는거 같은데? 누군가 자기를 좋아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는 여주에게 - 아 너는! 너는 그런 약해빠진 소리 하지마..! 쉽지 않긴 뭐가 쉽지 않아!! 스스로 한계를 두는 여주 보고 울컥해서 나감 ㅠㅠ 남주한테 좋아하면 헷갈리게 하지말고 가서 말하라고 대놓고 말하고 - 그냥 영우를 괴롭히고 싶은 거면서 정의로운 척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진짜로 사내 부정을 문제 삼고 싶으면 대표님부터 문제 삼으세요! - 왜 강자는 못 건드리면서 영우한테만 그래요? 권모술수가 개소리하면 대신해서 화내줌 - 네 성적으로 아무데도 못가는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 늦게라도 입사를 한게 다행이라고! 또 그새를 못참고 블라인드에 글 올린 권모술수 들으라고 대놓고 화냄 눈으로 욕하는중ㅋㅋㅋ 로스쿨 시절부터 쌓아온 탄탄한 서사 ㅋㅋㅋㅋㅋ 섭남캐였으면 응답하라 2022 찍었을꺼 같음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