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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대방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협상가 '윌리엄 유리'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Q. 협상에서 중요한 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르는데, 구체적으로 나 자신의 무엇을 알라는 말인가요? A. 오랜 시간에 걸쳐 저는 협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상대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상대방이 아무리 어려운 상대라 할지라도 말이죠.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 이유는, ‘대립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려는 인간의 기질’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없이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화가 났을 때, 후회할 만한 최고의 말을 내뱉는다.”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말이죠. 즉, 즉각적으로 반응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기질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자신을 방해하는 행위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윌리엄 유리 하버드 협상법》을 집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협상이나 힘든 대화에서 첫 번째 해결책은 자기자신과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면, 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관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타인의 행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하면 우리가 자신에게서 ‘예스’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상대방에게서도 보다 수월하게 ‘예스’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Q. 자기 자신을 알면 상대방이 원하는 바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상대방의 니즈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들어주는 것’입니다. 훌륭한 협상가들의 행동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말하기보다 훨씬 더 많이 듣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듣기에 가장 큰 장애물은 사실 우리 자신입니다 - 자신의 문제나 니즈, 생각 또는 감정 등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죠.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자신의 소리를 먼저 듣고 자신의 니즈를 이해하면, 비로소 그때 타인의 얘기를 더 잘 들어주거나 그들의 니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죠. Q. ‘다툼과 분쟁’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다루셨는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어린시절부터 줄곧 관심 있고 매력적인 의문이 바로 이것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각자의 다른점을 받아들이고, 서로 평온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의 개인적인 행복, 직업적인 성공, 하나의 개체로서의 생존 그 자체 등이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 관련이 있더군요. 오랫동안 저는 다루기 힘든 다툼들 – 가족 간의 싸움이나 기업 이사회의 분쟁, 노조파업이나 국가 내전까지 해결해왔습니다. 독재자와 정계 거물, 기업 회장들이나 국가 원수를 상대해야 하기도 했지요. 제가 쓴 책들은 단지 학문적인 연구에만 치우치지 않고 저의 직접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한창 분쟁중인 곳에서 아이디어가 발휘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각자의 다른점으로 인한 다툼을 해결할 더 나은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긋난 관계나 파탄난 조직, 전쟁 등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싸움이 종국에는 협상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면, 싸움은 건너뛰고 협상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Q. 협상에서 서로의 권력 차이나 조건이 균등하지 않을 경우에는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데요. ‘약자’인 편은 어떻게 협상을 이끌어나가야 할까요? A. 협상에서는, 당신이 협상 테이블 바깥에서 하는 행동이 협상 테이블 위에서 하는 행동만큼 중요합니다. 상대적 약자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단결된 연합 조직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기득권층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동맹 관계를 내세워 권력 불균등을 표명하라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을 ‘모노리스(무너뜨리기 힘든 철제 구조물)’ 라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협상된 합의로 혜택을 볼 만한 사람들과 잠재적인 동맹을 맺을 수 있는지 살펴보세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도 연합을 형성하세요. 친구들과 연맹자들,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하면, '윈-루즈win -lose' 라는 게임을 모든 이에게 이익이 되는 강력한 승리, '윈-윈win-win' 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 중에 한 가지는 준비하는 것입니다. 본인의 이해관계를 잘 알고 상대방의 이해관계 역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협상이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당신이 상대방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당신의 임무가 상대방과 함께 만들고 있는 황금 다리의 반대 쪽을 잇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상대방이 가능한 한 쉽게 의사 결정을 하도록 협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서 살 지가 고민된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글.jpg
도시와 야망 - 폴 그레이엄 위대한 도시들은 야망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도시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수백 가지의 미묘한 방식으로 도시는 메세지를 보낸다. 당신은 더 할 수 있다, 당신은 더 노력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이 메세지가 도시마다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뉴욕은 다른 무엇보다도 “당신은 돈을 더 많이 벌어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메세지들도 있다. 당신은 더 힙해야 한다. 당신은 더 잘생기거나 예뻐야한다. 하지만 가장 분명한 메세지는 당신은 더 부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보스턴이나 특히 캠브리지 (*하버드와 MIT가 있는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신은 더 똑똑해야한다”는 메세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맨날 읽어야지 하고 마음만 먹었던 그 책을 어서 읽어라, 하는 그런 메세지. 도시가 어떤 메세지를 보내는가는 예상을 벗어날 때도 있다. 실리콘밸리 역시 똑똑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실리콘밸리가 보내는 진짜 메세지는 “당신은 더 영향력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건 뉴욕이 보내는 메세지와는 사뭇 다르다. 뉴욕에서도 영향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뉴욕은 누가 1조원을 그저 상속받았을 뿐이라고 해도 그걸 퍽 대단하게 여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몇 부동산 중개업자 빼고는 별로 그걸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당신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냐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의 사람들이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와 세르게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들이 부유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구글을 지배하고, 구글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진다는 데에 있다. _____ 도시가 무슨 메세지를 보내는지가 중요하기나 할까? 내가 겪은 바로는, 아주 많이 중요하다. 당신이 위대한 일을 하고자하는 굳건한 의지가 있다면 환경이 어떻든 그걸 초월할 수 있다고, 당신이 어디에서 사는가는 몇 퍼센트의 영향 밖에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근거를 살펴보면, 어디에서 사는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그 일이 일어났던 지역들에 뭉쳐 살았었다. 나는 항상 캘리포니아의 버클리가 내게 이상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좋은 버전의 캠브리지일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마침내 버클리에 살게 됐을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버클리는 “당신은 더 나은 삶의 질을 가지고 살아야한다”라는 메세지를 보낸다. 버클리에서의 삶은 매우 문명화되어있다. 아마 북유럽에서 미국으로 온 사람은 버클리가 가장 고향같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버클리에서 야망은 별로 활발하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날씨와 살기 편한 환경이 삶의 질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도 당연하다. 날씨가 좋은 캠브리지는 캠브리지와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캠브리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쩌다보니 캠브리지에서 살게 된 게 아니다. 캠브리지에 살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캠브리지는 물가가 비싸고 약간 지저분하고 날씨도 자주 나쁘다. 그러니 캠브리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물가가 비싸고, 지저분하고, 날씨가 별로인 곳에 살더라도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살고싶다고 결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_____ 도시는 당신이 창문 너머로 보게되는 광경이나 엿듣게 되는 대화를 통해서, 마치 실수처럼 당신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이런 것들은 당신이 먼저 찾아나서는 것도 아니지만, 또 원한다고 해서 음소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로 이사한 한 친구가 그 곳에 살면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게 엿듣는 대화의 수준이 별로라는 점이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 친구가 일부러 사차원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화를 엿듣는 게 재미있을 수는 있지만, 엿듣는 대화의 질이 어디서 살 지를 결정할만큼 중요하다는 말인가?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한다. 일상에서 엿듣게 되는 대화가 바로 당신이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_____ 아무리 의지가 강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받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무조건 도시가 보내는 메세지대로 살게 된다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는 소중한 일이지만 주위의 누구도 그 일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의욕을 얻는 것과 잃는 것 사이의 불균형은 돈을 벌거나 잃는 것 사이의 불균형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주로 돈을 잃는 것을 과대평가한다. 만 원을 벌기 위해서보단 만 원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본인에게 강제로 내려진 일을 하지 않을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꽤 있지만, 주변의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일을 본인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을만큼 강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 야망은 공존할 수 없고 사람들의 동경이라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기에, 주로 하나의 도시는 하나의 야망에 집중한다. 캠브리지가 지식의 수도인 데에는 그냥 똑똑한 사람들이 그 곳에 집중되어 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지식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요소가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뉴욕이나 실리콘밸리에서 교수들은 이류 시민처럼 대우받는다. 물론 그러다 뉴욕의 경우 헤지펀드, 실리콘밸리의 경우 스타트업을 시작하면 대우는 달라진다. 뉴욕 시민들은 금융위기 이후로 뉴욕이 실리콘밸리에 대항하는 스타트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해왔는데, 이 논리가 어느정도 답변을 제시해준다. 뉴욕은 실리콘밸리 규모의 스타트업 중심지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뉴욕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본인이 이류 시민인 것 같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동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이미 따로 있으니까.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창업자들 중 회사가 성공하기 전과 똑같이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대학원생 때 몰던 낡은 차를 몰며, 똑같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만약 뉴욕에서 이랬다면, 사람들에게 개무시를 당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레스토랑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들어서도 직원들은 당신을 친절하게 대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막 대하겠는가? 하지만 뉴욕에서는 다르다.  _____ 모든 도시가 메세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야망의 중심지가 된 도시들만 메세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도시에 직접 살지 않고서 그 도시가 어떤 메세지를 보내는 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가 뉴욕, 캠브리지,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무슨 메세지를 보내는지 아는 건 이 도시들에 몇 년씩 살아봤기 때문이다. 워싱턴DC (*미국 정치의 중심)와 LA (*할리우드가 있는 도시)도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은데, 그 메세지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만큼 오래 살지는 않았다. LA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명예인 것 같다. 그 곳엔 수요가 가장 높고 인기가 가장 많은 A등급 사람들의 명단이 존재하고, 그 명단에 오르거나 그 명단에 오른 사람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존경받는다. 결국 그 기저에 있는 메세지는 뉴욕과 맥락이 비슷하지만, 구분을 하자면 LA에서는 외면의 아름다움에 두는 비중이 더 높다. 워싱턴DC가 주는 메세지는 당신의 인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신은 내부자가 되고 싶다. 사실 이건 LA와 비슷하다. A급의 사람들 명단이 있고, 그 명단에 오르거나 그 명단의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것. LA와 다른 점은 그 A급 명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인데, 사실 그것조차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식에 대한 야망이 캠브리지만큼 큰 곳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영국의 옥스포드나 영국의 캠브리지는 코넬 대학교가 있는 이타카나 다트머스 대학교가 있는 하노버처럼 느껴진다. 분명 지식을 중요시하는 메세지가 있지만, 캠브리지만큼 강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파리도 한 때는 지식의 중심지였다. 1300년대에 파리를 방문했다면, 지금 캠브리지가 보내는 메세지와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파리에 어느 정도 살았을 때, 파리 시민들의 야망은 더이상 지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파리가 보내는 메세지는 “모든 일을 스타일리쉬하게 하라”는 것이다. 사실 꽤 마음에 드는 메세지였다. 내가 살아본 곳 중 사람들이 정말 진정성있게 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은 파리 뿐이었다. 미국에서 예술품 원작을 구매하는 건 몇몇의 부자들 뿐이고,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조차 예술품을 예술가의 브랜드 네임과 결부시켜 판단한다. 하지만 해질녘 파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보는 것에 정말 신경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리의 시민들이 예술에 가장 관심이 많다면, 왜 뉴욕이 예술 산업의 중심이 된 것일까? 왜냐면 20세기부터 브랜드로서의 예술과 상품으로서의 예술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뉴욕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들이 있는 곳이고, 그들이 예술로부터 원하는 것은 바로 브랜드다.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는 다른 브랜드들과 구분되는 스타일만 있다면 충분하기에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가까운 곳, 즉 뉴욕의 상품을 사용하면 된다. _____ 그래서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대도시에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모든 위대한 도시는 어떤 종류의 야망에 불을 지피지만, 그런 곳이 도시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들은 몇 명의 유능한 동료들만으로 추진되기도 한다. 도시가 제공하는 건 관객이고 또 비슷한 사람들과의 연결 통로다. 수학이나 물리 같은 학문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학문에서 중요한 관객은 같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 뿐이고, 이 학계에서 능력을 판단하는 건 꽤나 간단해서 인사팀이나 입학처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잘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필요로 하는 건 좋은 동료 학자들이 있는 학과일 뿐, 그게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술이나 문학, IT 같은 분야에서는 환경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런 업계의 종사자들은 모두 편리하게 몇몇 명문대 학과나 연구실에 모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이 분야에서 재능을 판가름하는게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돈을 내고 소비하는 업계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교직이나 연구에 몸담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더 무질서한 업계일수록 좋은 도시에 있는 게 도움이 된다. 주변의 사람들 역시 당신이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기분이 의욕을 자극하고, 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찾는 데에 도시의 규모와 구조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이런 현상을 보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프랑스 각지에서 태어났고 (인상파 화가들의 대부인 피사로는 캐리비안에서 태어났다) 또 프랑스 각지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각자의 전성기에 그들은 모두 파리에서 함께 활동했다. _____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고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어디인지 아는 게 아니라면, 아마 젊을 때 여러 곳에 살아보는 게 가장 안전할 것이다. 그 도시가 메세지를 보내는지, 보낸다면 어떤 메세지를 보내는지는 그 곳에 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살아보기 전 당신이 했던 상상은 주로 틀렸을 것이다. 나는 25살 때 예술의 중심지에 사는 것을 꿈꾸며 피렌체로 갔다. 살아보니 예술의 중심지인 피렌체에 살고 싶었다면 450년 전에 왔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도시가 아직도 번영하고 있는 야망의 중심지라고 해도, 그 도시가 보내는 메세지가 정말 당신의 마음을 울릴지는 그 메세지를 직접 느낀 후에야 알 수 있다. 내가 처음 뉴욕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매우 들떠있었다. 충분히 들뜰 만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그 곳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항상 뉴욕 속에서 캠브리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내가 찾는 캠브리지는, 뉴욕에서 비행기로 한시간을 가야 있는 진짜 캠브리지밖에 없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16살에 이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야망 있는 아이들은 야망의 대상을 정하기도 전부터 야망을 먼저 느낀다. 뭔가 굉장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싶다는 걸 알지만, 가수가 될 지 외과 의사가 될 지는 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게 잘못 됐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근본적인 야망을 가졌을 때는 이곳 저곳에 직접 살아보고 또 아니다 싶으면 떠나며 시행착오를 통해 어디에 살 지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 집처럼 느껴지는 곳을 찾았을 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종류의 야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수학 물리학 얘기할 때 포공이랑 카이스트 생각나서 소름... 나는 서울 밖에 잘 모르지만 뭔가 종로/광화문/강남은 뉴욕, 가로수길은 LA 느낌... 판교가 실리콘밸리 같은 느낌이려나 싶음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1월 말에 총 100여 점으로 구성한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4월 23일까지 전시한다고 하니, 안 다녀오신 분들은 그전에 다녀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작품 설명은 전시리플렛을 참고 하였습니다. MMCA서울: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30(소격동 165)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눈에 띕니다. 다감함이 느껴지는 말씨에 고운 미소가 지어집니다. 입장했을 때, 사람들이 많았는데 금방 인파가 줄어들었습니다. 전시 규모가 크지 않아서 사람들이 금방 빠지는것 같습니다. 위 사진에서 봤을 때, 중앙에 자리한 기둥 안에 있는 작품입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그림을 차분히 들여다봅니다. 1940년대부터 연도별로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40년대에 그려진 그림은 처음 봤는데, 선이 간결하고, 유쾌함이 느껴졌습니다. 그중 3년간 아내에게 보낸 엽서화가 제일 좋았는데,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그리고 글을 쓴 마음이 예쁩니다. 황소와 아이들에 익숙한 저에게 40년대 작품은 화풍이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소와 여인> 그리고 <여인> 작품입니다. 아, 전시해설 로봇이 돌아다니며 작품에 관해 설명을 해주기도 하니까 한 번씩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50년대로 들어서니, 눈에 익은 작품이 눈에 띕니다. 비슷한 듯 다르게 표현된 작품을 번갈아보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1955년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작품전을 앞두고는 매일 작품을 그려낼 만큼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새와 닭, 소, 아이들, 가족을 그린 주요 회화 작품이 있습니다. 그림에서 순수함을 느낍니다. 잊고 지내던 유년 시절의 밝음과 웃음소리, 어울려 놀던 벗과 무궁무진했던 놀이터가 떠오릅니다. 그리웠던 빛이 곁을 부유합니다. 이중섭이 제작한 표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초록색 표지에서 앙리 마티스를 떠올리고, 달이 뜬 표지를 보며 '탐나는 문학지네'하며 눈을 빛냅니다. 회화 작품 중에서 제일 오래 서 있었던 작품입니다. 여작...같게 짓는다..길가에 난 호박과 크고 작게 놓인 글자들...어떤 뜻일까,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골몰했는데, 밑의 작품 설명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됩니다. <호박>(1954)은 조카 이영진의 회고대로 당시 이중섭이 정신 이상과 거식증으로 고생하기 전에 온통 노란색이었던 그의 방에 호박에 매달린 듯하다. 호박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체득하기 위해 속필로 즉흥적으로 표현한 호박은 그의 특유의 활달한 필치와 역동적인 힘의 분출을 느끼게 해준다. 자연스런 화면 구성과 대담하게 호박을 화면의 전면에 내세운 점등이 매우 특이하다. 그리고 이를 에워싸는 넝쿨, 줄기 등의 선은 작가의 특징인 주제를 에워싸고 모든 대상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서 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또한 호박과 넝쿨의 연초록과 꽃의 샛노란 색채의 조화도 매우 신선한데, 호박에는 페인팅 나이프로 채색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회화적인 맛을 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이중섭의 말년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참조: 네이버지식백과) 이 특별전에서 제일 좋았던 코너입니다. 피란 생활을 하던 중 생활고로 1952년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고요히 바뀌는 화면을 응시합니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은지화는 담배를 포장하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이나 못 등으로 윤곽선을 눌러 그린 다음, 검정 또는 흑갈색 물감이나 먹물을 솜, 헝겊 따위로 문질러 선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은지화를 볼수록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중섭의 마음이 느껴져서 먹먹해집니다. 춥고 배고파도 몸을 둥글게 만 채,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었던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 유추하는 몸이 작품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부처님의 모습인가' 갸우뚱하며 손가락을 따라 해보다가 발걸음을 옮깁니다. 편지화 입니다. 이중섭은 1952년 가족과 헤어진 이후 1955년 말까지 아내와 두 아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편지에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두 아들의 학교생활, 1955년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력 등이 기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두 아들과 놀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당연한 일상은 없음을 느낍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지게 되고, 삶이 피폐해진 그의 작품에서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그가 그린 사계에는 날개를 닮은 구름이 있습니다. 사계절을 날아 하나로 이어주는 날갯짓에서 네 가족의 냄새가 납니다. 그리워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영양실조와 간경화 등 병고에 시달리다 1956년,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 이중섭.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젖은 마음이 마르지 않습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그의 생은, 작품은 어땠을까요?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사랑하는 이들과 오래 함께하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중섭의 사랑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