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da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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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마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불평, 불만이 조금씩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별 임팩트 없는 듯한 장면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 와닿았고, 오래도록 기억될 듯 한 그의 한마디. 여러 교훈이 담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그들 저마다 가진 꿈이 있고 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인 듯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마음대로 안된다고 불평하고 계신가요? 과연 그것이 징징거리는게 아닌걸까요? 잠들기 전 또 한번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네요.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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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이장면빡와닿았는데ㅋ.ㅋ
저도 반성합니다...
ㅋㅋㅋㅋ마져.. 노력한사람은 말이음슴..
나한테 하는 말 같네 열심히 해야지
괜히 찔리네요^^; 반성하구갑니당...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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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착한 사람이 가장 힘들다.twt
어설프게 착한 사람이 가장 힘들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누는 것을 꺼리지는 않지만 대가 없는 희생에 언제나 행복감을 느낄 정도로 평온하지도 않으며, 거절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버겁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마음 편하게 하지 못하는 동시에 그런 일이 있는 날에는 발 뻗고 잠들지 못하는 사람. 미움을 받는 일이 무서워서든, 남을 먼저 챙기는 일에 익숙해져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남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려는 습관에, 정작 상대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발언도 상처를 준 것 같다 느끼면 본인이 더 힘들어하는 이들이 그렇다. 우울한 감정에 온 힘을 기울여 우울해하지 않고 당장 멈추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새벽에 느끼는 감정의 대부분은 사람을 과거에 얽매이게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필요 없는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나, 어떤 감정들은 바르게 쓰지 않으면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습관 하나만 들여도 오랜 밤 고통에 앓아야만 했던 사람들의 삶은 바뀔 터이나, 그럼 바람직한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말로 하기에 쉬운 것만큼이나 실천이 어려운 것은 없으니까. 당신이 우울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twitter / Dear_mymoonstar 공감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저와 비슷한 분들이 분명 있을거라 생각해서 가져왔어요 :)
[최종 S의 비밀 - ‘유전’에서 ‘미드소마’ 감독판까지] 호러영화사에 새겨질, 완전 새 얼굴(들)
※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유전>과 <미드소마>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우리는 얼굴을 통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 자크 오몽 특히 공포의 전도체가 될 때, 얼굴은 유난히 도드라진다. 실제로 관객한테 공포(영화)는 스크린 속 얼굴들이 극단의 표정을 지을 때 완성되고는 한다. 깜짝 놀란, 고통에 찬, 절규하는, 비명의 얼굴. 한 세트로, 흉측한, 광기어린, 무섭게 일그러진, 악마성의 얼굴. 이 과정에서 창조적 솜씨가 빚어낸 얼굴들은 장르의 관습이 돼 지독히도 반복되는데, 대개는 진부하거나 한심한 복사본에 그치고 만다. 아마도 원본 속 얼굴의 맥락을 해석해내지 못한 채 단지 표정 흉내에 급급했기 때문이리라. 그 와중에 여태껏 본 적 없는 얼굴이 등장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전>(2017)의 마지막 숏. 피터는 말 그대로 넋이 나가버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가족들이 ‘악마의 굿판’ 안에서 모두 잔혹하게 희생된 데다, 엄마(애나)는 방금 전 스스로 본인 신체를 훼손했고, 피터 자신의 정신과 육체는 이제 막 악마가 점령할 참이다. 미쳤거나 미치기 직전이거나. 그런데 잊지 말자. 이 빙의 행사는 (악마 측 입장에서는) 거룩한 의식이다. 혈통이라는 가족의 근원이 낳은 지옥도인 동시에, 악(惡)의 계보가 연속성을 획득하는 경축의 시간이다. 살육과 의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인 셈. 추종자들은 그들이 섬기는 악마 파이몬에게 ‘지식’이나 ‘좋은 친구’ 따위를 달라고 간청까지 한다. 악의 측면을 모른 체하거나, 악행을 덮어도 될 만큼 파이몬의 명성이 위대하다고 믿는 듯하다. 이때 파이몬은, 누구와 닮았나. 아리 에스터는 피터의 최종 얼굴을 담는 데 적잖은 러닝 타임을 쓴다. 이제 피터는 더 이상 놀라거나 부르짖지 않는다. 그는 압도된 채 무너져 내리며, 다만 악이 스며드는 시간을 얼굴에 새기는 중이다. 77초간 지속되는 이 숏에서 피터는 눈을 단 한 차례도 깜빡거리지 않는데, 생리현상이 불필요한 어떤 초월의 공간으로 넘어간 듯도 하다. 중세 서양 예술에서 얼굴이 주로 신(神)의 형상이었다고 할 때, 탈-인간으로서 피터의 이 얼굴은 성스럽고 선량한 그 기표들과는 조금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신성한 의식이(었)지만 그 개최를 위해 잔혹한 파괴, 그리고 현혹의 기술이 동원되지는 않았냐는 반문. 물론 고결하고 인자하고 번뇌를 짊어진 듯한 표정들은 그 이면을 가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테다. 따라서 피터의 얼빠진 마지막 표정은 위장 작업이 완수되기 직전 단계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거룩함으로 가공되기 이전의 그 무엇, 이를테면 선택된 자 개인의 멸망에 관한 이미지. 전에 본 적 없는 이 얼굴은, 자신이 신인 줄 아는 악마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 의식이 또 하나 있다. 호르가 마을의 하지제, 그 하이라이트로 9명의 제물이 불에 타는 중이다. 그중 곰 가죽 안에 갇혀 산 채로 타는 이는 대니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이다. 말 그대로 환장의 카니발. 이 광경에 넋 놓고 울먹이던 대니가, 이윽고 웃는다. 너희들의 이 엔딩이 고소하다는 듯. 영화가 끝난다. 아리 에스터의 두 번째 영화 <미드소마>(2019)의 마지막 시퀀스에서도 학살과 의식은 동전의 양면인 양 들러붙어 있다. 이 기괴한 중첩을 떠안는 자, 이번에는 대니다. 그녀의 경우 혈연과의 단절은 이미 서사 초반 경험했고, 애인인 크리스티안과도 이별 중이다. 전자는 내부의 신경쇠약을 견디다 못 해 발 디딜 판 자체를 깨뜨렸고, 후자는 슬픔은커녕 이 괴이한 마을에 대한 의심조차 나누기 힘들 만큼 둔해빠졌다. 감정의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만 보면 차라리 이 모계-토테미즘 사회가 나아 보일 정도다. 인류의 역사는 곧 분화의 역사다. 집단은 부피가 늘어나 갈라졌고 또 그 갈래별로 같은 과정을 겪었다. 최초의 단어가 진화 끝에 백과사전의 체계를 갖췄듯, 인간관계의 망은 넓이와 깊이를 더하고 더해 삶의 양식이 됐다. 어쩌면 인생이란 내가 속한 각 층위의 집단들에서 맡은 바 역할극을 잘해내기, 그 자체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교과서도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하지 않았나. <미드소마>의 대니는 그 역할극에서 탈락했고 또 탈락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과거와 미래 가족 모두와 이별하기. 사회적 동물이 타자와 관계를 맺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대니를 자꾸만 미토스(mythos)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그녀 또한 그 중력장에 적응해간다. 마치 비극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끝내 종교로 빨려 들어가듯이. 다시 한 번, 대니가 이윽고 웃는다. 너희들의 이 엔딩이 고소하다는 듯. 낯선 마을에서 낯선 공포를 느낀 ‘여성’ 주인공이 되레 애인의 죽음을 선택하고 웃음까지 짓는 아마도 최초의 숏. 여태껏 본 적 없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곳 호르가 마을은 역할놀이가 필요치 않은 세계다. 동일한 믿음과 삶의 리듬 아래 단일 자아로 꿰어져 있기에 관계의 유지나 개선을 위한 어떤 ‘증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대니의 마지막 웃음은 자신에게 울음만 남긴 그 증명의 기록물, 즉 인물들을 활활 태워버렸다는 안도인 셈이다. 따라서 이 웃음은, 비가역적이며 돌이킬 수 없다. 수 년 간 요동쳤을 그녀의 감정은, 그 진폭은, 이 순간부터 가지런하게 정렬된 하나의 선으로 수렴해갈 것이다. 대니는 백과사전 이전의 시간, 몇 가지 음절만 알면 되는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사물은 그 자리에 있다. 왜 그것을 마음대로 조작하는가?” – 로베르토 로셀리니 로셀리니 감독의 말에 빗대어 보자면, 아리 에스터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즉 실재하는 두려움의 요소를 관습적 표정 안에 억지로 끼워 넣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전에 없던 얼굴들 – 피터의 ‘흡수’와 대니의 ‘변환’ – 을 포착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물론 우리는 그 덕에 악의 진영이 갖춰지기 직전의 절망적 시간을 목격했고(유전), ‘맹신’과 ‘나 자신으로 살기’가 양립할 수 없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미드소마). 무엇보다 대니의 얼굴에서는, 알면서도 가야 하는 퇴행 길에 관한 서글픈 섬뜩함마저 느낀다. 아마도 잠재적으로는 모든 사람한테 열려있을 그 뒷걸음의 문. ‘홈 스위트 홈’에는, 사회 곳곳에는, 문손잡이를 돌리도록 만들, 나락으로 통하는 구멍이 너무 많다. 믿.습.니.까? 영화관 안과 밖의 공통점, <미드소마>나 현실이나 그토록 잔혹한 사건들은 대낮에(도) 일어난다는 것. 그럴 수밖에. 그들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걸 해대니까, 떳떳하니까. 신의 이름을 빌려 침략하고 신의 이름을 빌려 목숨을 뺏고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모두 신의 뜻 운운하는 이들은, 추종자는, 악마는, 악을 행하되 악의가 없다. ⓒ erazerh ------- PS 1. <미드소마> 감독판이 이전 버전과 다른 점은 대니와 크리스티안 사이의 감정선 및 그 굴곡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 정도. 그밖에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몇몇 대사들. PS 2. <유전>의 최종 숏은 사실 77초간의 얼굴 숏이 아니라, 약 3초 동안 나무집 내부를 디오라마처럼 포착한 장면이다. Hail Paimon.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몽상가들을 위한 동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오늘은 평소 소개하던 그림이나 사진, 예술품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을 여러분과 같이 보고 싶어서 준비해봤어요 :) 소개할 영화의 제목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입니다 ! 간단한 줄거리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읜 폴은 말을 잃은 채 두 숙모와 함께 산다. 숙모들은 폴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지만 서른세 살의 폴은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인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한 폴은 그녀가 키우는 작물을 먹고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상황인 동시에 프로레슬러였던 부모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폴과 마담 프루스트의 만남이 반복되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이 원작이라고 해요 *_*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때로는 우리의 기억과 다를 수 있다는 것, 인간의 망각을 유쾌한 방식으로 알려주는 이 영화 ! 또한 음악은 우리의 순간과 기억을 들을 되새기는 아주 좋은 수단이라는 것 또한 아주 멋지게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3 ( 영화 속 ost가 아주 좋았어요 ! ) 영화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재밌는데 영상미 또한 독보적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아멜리에'라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 맘에 드실거예요 +_+ 마치 동화처럼, 꿈꾸듯 아름다운 장면들 속으로 빠져볼까요?
곽철용님의 말씀처럼, '말레피센트2'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이번주는 계속 새벽에 일어납니다. 나태해졌다고 생각했기에 스스로 변화를 주고 싶던 찰나였습니다. 일이 늘었기에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밤낮이 원래대로 돌아오더군요. 덕분에 좋아하는 영화를 언제 봐야 하는지도 비교적 명확해진 요즘입니다. 오늘의 영화는 디즈니가 선사하는 색다른 동화 속 이야기, '말레피센트2'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바로 어제 전작 1편을 챙겨봤는데요. 확실히 안젤리나 졸리의 포스와 비주얼이 압도적이더군요. 매력적인 캐릭터에 신선한 소재를 조합하니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개봉하자마자 바로 속편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보고나니 라디오스타에서 곽철용님이 말씀하신 명대사가 바로 떠올라버렸습니다. 원작을 뛰어넘는 속편은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모든 시리즈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높은 확률로 원작을 능가하는 속편은 찾기 어렵습니다. 만일 속편이 더 평이 좋다면 원작이 별로였거나 원작과 비슷한 수준을 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말레피센트는 변수 없이 1편이 더 재밌습니다. 전체적인 작품성도 그렇고 마무리까지 차이가 납니다. 초반에는 1편의 설레임을 간직하고 갔습니다만 루즈함과 답답함을 이어가다 결말로 점프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를 계속 더 다뤄보겠습니다. 고구마 백개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답답한 스토리입니다. 마치 고구마를 몇 백개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하더군요. 중반부에는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는데 그렇다고 정밀한 세계관 설명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개연성도 부족하고 뜬금없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결론적으로 루즈한 시간은 그대로 허무함과 당혹스러움을 바뀌게 되죠. 결말에 가서 사이다를 조금 붓긴 합니다만 고구마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고 사이다는 기대보다 덜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더 힘들었던 부분은 오로라의 역할이었습니다. 허용치 이상의 민폐 캐릭터였습니다. 주인공은 말레피센트고 영화의 반절은 안젤리나 졸리의 매력에서 나오는데 오로라의 행동이 사건에 지대한 피해를 야기시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입니다. 계속 말레피센트는 불쌍할 정도로 연민을 달고 살고 오로라는 순수한건지 부족한건지 알 수 없는 사고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작품 전체의 답답함은 오로라의 영향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결말을 향한 급발진 그 긴 러닝타임동안 이뤄낸 건 없었습니다. 결말을 향한 세세한 물밑작업도 아니었고 하이라이트를 성대하게 만들어 임팩트를 주지도 못했습니다. 어영부영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끝은 봐야겠으니 갑작스럽게 엑셀을 밟은 느낌이었습니다. 자 이제 마무리갑니다! 하면서 준비도 안 된 관객에게 엔딩을 붓는 모양이었죠. 적어도 저는 마지막가서 실망감이 더 커졌습니다. 말레피센트의 매력, 화려한 비주얼로만 2편까지 이끌어가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한 진심어린 태도도 없었고 동화인 모양새에 설득력있는 교훈도 없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존재보단 이기적인 인간에 더 초점이 있었고 감동스러운 재회보다는 이해못할 감정만이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해피엔딩에 도달했음에도 전혀 벅차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전체적인 작품의 미완결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합격 그럼에도 안젤리나 졸리의 존재감만은 언제나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캐릭터의 이해도가 뛰어나니 매력이 넘쳐 흐르고 비주얼까지 소화하니 이제는 말레피센트 그 자체가 됐습니다. 오히려 초반의 매력은 1편보다 더 뛰어났다고도 봅니다. 게다가 영화 속 CG와 그래픽이 만들어낸 비주얼은 확실히 더 화려했습니다. 스케일도 커지다보니 보여줄 시작적인 요소들이 풍부했는데요. 광활한 디즈니의 동화 속 세상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면을 보면 분명 디즈니의 작품이 맞는데, 왜 스토리나 전개는 생각보다 부족했을까요? 아무튼 아쉬움이 깊게 남는 후속편이었습니다.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기다려봤지만 쿠키영상은 없었습니다. 관객수는 100만명 정도를 밑돌거나 간신히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정도면 할 얘기는 다 했네요. 더 이상 시리즈가 지속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데요, 평은 회의적이지만 마지막 그녀의 태동은 그럼에도 직접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영화 '말레피센트2'에 대한 솔직한 리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