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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한 줄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どくがわ いえやす) (아래 전문)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どくがわ いえや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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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도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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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도 '솔깃'…문희상案, 위기의 지소미아 탈출구 되나
아베 일본 총리. 교도통신=연합뉴스 우리가 밝힌 지소미아 종료 시점이 이틀도 안남은 가운데 이른바 '문희상 이니셔티브'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 한일갈등의 시작인 강제징용 피해 배상을 양국에서 조성하자는 제안인데 아베 총리도 긍정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문희상 이니셔티브'란 일본의 수출제안 →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선언으로 이어져 온 이번 양국 갈등의 단초인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이다. 징용 배상금액을 한일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하고 여기에 양국 국민 성금을 더하자는 것이다. 문 의장이 이달 초 도쿄 방문 때 내놓은 것인데, 문 의장이 관련 법안을 연내에 직접 발의까지 한다고 한다. 아베 총리 쪽에서도 고려할 만 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문 의장을 일본서 영접했던 가와무라 다케오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에게 문 의장의 아이디어를 전해들은 아베가 "한국이 한일간의 약속을 지킨다면 진행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NHK가 20일 보도했다. 가와무라 간사장이 "문 의장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도 청구권협정의 근간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고하자 아베 총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정확한 뉘앙스까지 알 수는 없고, NHK도 "아베 총리가 양국 간의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고 전했지만 문 의장의 제안에 대해 아베가 어떻게든 화답한 걸로 보인다. 아베는 특히 지소미아와 관련해서도 "협의하고 있다", "아직 포기하는 단계가 아니다"고 가와무라 간사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22일 24시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21일에도 한일 양국 정부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막판 고위급 접촉에 나선다.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최근 미국의 잇단 압박도 양국이 대화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日 "韓 정부, '위안부 성노예 아니다' 인정" 주장 논란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결과를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때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성노예 표현을 쓰면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일본 정부가 외교청서에서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2019년 외교청서에서 "'성노예'라는 표현은 사실에 반하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 점은 2015년 12월 일·한 합의 때 한국측도 확인했으며 동 합의에서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외교청서에서는 '성노예'는 사실(史實)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계속 설명하겠다는 취지로 성노예 표현에 대응한다는 입장을 담았다. 그런데 올해 외교청서에서는 마치 한국 정부마저도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수용한 것처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한 한국 측 태스크포스의 2017년 보고서를 보면 성노예 표현과 관련해 일본 측의 비공개 요청사항이 있었다고 설명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한국 측은 성노예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인 점 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확인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이 "'성노예'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측이 이러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 1996년 유엔 보고서(일명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에게 사죄·배상하라고 권고하는 등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성노예제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일본 외교청서는 또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 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는 억지 주장을 계속 펴왔다. 이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가 '20만명'이라는 숫자는 구체적인 뒷받침이 없는 숫자이며,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위안부 총수를 확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일기쓰기 / 에세이 쓰기 같이 해보실 분 구합니다~!
안녕하세요! 빙글을 잠깐 쉬었는데 오랜만에 들어와보니까 드로잉 모임도 있고 필사 모임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제 관심사에 맞게! *에세이 쓰기 / 일기 쓰기* 모임을 열고 함께 하실 분들을 구할까합니다! 저는 사실 에세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일기같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요. 어쨌든 모든 글이라는 것은 '나'에 대한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잘쓰는 방법이 무엇이냐! 저도 아직 잘 쓰지 못하지만, 가장 첫 번째가 일단 책상 앞에 앉아서 무슨 글이든지,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작가들 마저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글이 나오든 안나오든 4시간 5시간씩 책상 노트북 자판 위에 손부터 올려둔다고 하죠!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집중하지 않으면 휙휙 흘러가버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쉬운데, 우리의 삶에서 진짜 나 자신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른다면 너무나 슬프지 않을까요? 솔직하게 내 마음의 단어를 하나하나 눌러담아 적다 보면 항상 새롭게 저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에세이 쓰기 모임 방식은, 일주일에 1번-2번 정도 주제를 하나 정한 후 시간을 정해서 (오후 5시부터면 다같이 오후 5시에 글을 쓰기 시작)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짧든, 길든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은 같이 정해봐요! +일기, 에세이를 비롯해서 시 등 창작문예의 어떤 방식이든 상관 없을 것 같아요! 먼저 저는 국문학과 출신이었어요. 그래서 글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어찌되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다면, 우열이라는 건 없기 때문에 서로 평가하지 않고 생각과 각자의 시선을 나누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담가지지 마시고 참여하시라고요! 저도 그냥 있으니까 너무 글을 안써서 같이 서로 독려하며 글을 써볼 분들을 기다립니다. 제발! 댓글을 달아주신다면, 모임을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기를 매일 꼬박꼬박 쓰는 걸로 유명한 아이유와 작가 김중혁씨의 대화를 남깁니다. 단속적인 자아. 매일 변하는 내 자신이 궁금하지 않나요?
‘만년 적자’ 하우스텐보스 탈바꿈 시킨 이 사람
... ... “국내와 해외의 호텔 사업을 강화해 톱10에 진입하고 싶다. 이를 위해 유니조(UNIZO) 홀딩스와 제휴, 협력 관계를 깊게 하고 싶다.” 저가 여행사 HIS, 하우스텐보스 운영 일본 여행 레저그룹 에이치아이에스(HIS)의 사와다 히데오(澤田秀雄·67) 회장 겸 사장은 지난 7월 이렇게 선언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HIS는 일본 최대의 저가 여행사다. 매출의 90%를 여행 사업에서 거둬들이는 HIS는 나가사키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도 운영하고 있다.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언급한 유니조 홀딩스는 일본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 현 미즈호 은행)계 부동산 회사로, ‘유니조’(UNIZO)라는 브랜드의 호텔을 일본 전국에 25개 운영하고 있으며, 도쿄를 기반으로 부동산 임대 사업도 하고 있다. 오사카 태생인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저가 패키지 여행의 실질적인 개발자로 통한다. 그는 1980년 ‘히데(秀)인터내셔널 투어’(지금의 HIS)라는 회사를 설립, 일본 최대의 여행레저 그룹으로 키워냈다. <사진= 나가사키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작은사진은 사와다 히데오 회장)> ... ‘기업 부활의 명인’ 사와다 히데오 회장 ‘기업 부활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큰 주목을 받은 것은 2010년. 18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며 부도 위기를 맞은 하우스텐보스를 인수하면서다. 네덜란드 왕실에서 이름을 따온 하우스텐보스가 개장한 건 1992년이다. 도쿄 디즈니랜드의 세 배 면적 규모로 약 22억 5000만 달러가 건설 비용으로 투입됐다. 하지만 연간 5백만 명 방문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실적 부진을 겪었다. 그러다 2010년 4월 HIS의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문을 닫은 상태였던 하우스텐보스를 인수해 사장을 겸직했다. 명칭에 걸맞게 그는 리모델링 1년 만에 하우스텐보스를 흑자로 돌려 놓았다. <사진= 나가사키 세계 최초의 로봇 호텔인 ‘헨나호텔’> ... 세계 최초 로봇 호텔 오픈이어 유니조 ‘작업’ 그런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2015년에는 나가사키에 세계 최초의 로봇 호텔인 ‘헨나호텔’(헨나: 變な·일본어로 ‘이상한’이라는 뜻)을 선보여 또다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그가 중점은 둔 곳은 호텔업이다. HIS는 2023년까지 호텔을 100개(현재 운영 33곳)로 늘릴 방침이다. 2014년 부터 M&A나 제휴처를 모색하던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2018년 중순 유니조 홀딩스를 ‘점’ 찍었다. 업무 제휴를 타진한 유니조 홀딩스로부터 이렇다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하자 HIS는 시장에서 유니조 주식을 사 모으고 4.79%를 보유,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러곤 최근 TOB(주식 공개 매수) 형태로 제휴를 들이대며 유니조 홀딩스의 목을 조르고 있다. 표적이 된 유니조 홀딩스는 “일방적이고 갑작스럽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현재, 소프트뱅크 그룹 산하의 미국 투자펀드 포트리스 인베스트먼트 그룹과 또 다른 투자 펀드 블랙스톤 그룹도 TOB에 나서고 있다. 일본 업계는 “3개 이상의 회사가 TOB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향후 유니조 홀딩스의 선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9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후쿠시마 현재 상황 (목숨 걸고 취재한 기자들).jpg
11월 7일 방영된 최근 자료 괜찮다는 곳 어딜가서 측정해봐도 방사능 기준치 초과 제염 작업 한 사람들 보니 이미 피폭 증세 이곳 음식을 올림픽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먹이겠다는 일본 얼마전 태풍이 휩쓸고 간후 더더욱 높아진 후쿠시마 지역 방사능 수치. 사실상 죽음의 땅이 됨.  일본 인증 안전지대에 살고 있는 주민과 인터뷰 해봤더니 방사능으로 말들 계속 죽음 (일본 정부는 부인 및 안전하다고 강조) 그냥 산에 있는 걸 먹었을 뿐인데 방사능 피폭 됨. (일본 인증 안전지대도 이모양) 그 와중에 삐~ 삐~ 거리며 계속 위험하다고 경고 보내는 방사능 측정기 (기자 불쌍ㅜㅜ) 제염 작업을 해도 주변 오염된 땅이 제염 작업한 땅을 다시 방사능으로 오염 시킴 제염 -> 다시 오염 -> 제염 -> 다시 오염 ...  뻘짓만 무한 반복하고 있는 일본 이래서 일부러 방사능 오염토 허술하게 관리해서 얼마전 태풍 핑계로 강에 다 흘려 바다로 보내버렸는지도.. (고의성 의심) 방사능 오염토 땅에 묻어버리고 그 위에 학교를 짓는 창의성을 발휘했던 일본 그 학교 가보니 비만 오면 방사능이 기준치 초과되어 계속 울림 (일본 관계자들은 문제없다며 무시) 애들은 뭔죄냐 방사능 오염토 관리 허술로 비만 오면 방사능 수치 폭등 이 상황에 IOC 이런 개... 결론 1. 앞으로 일본 선진국이라고 하면 패버린다 (실상은 모든게 날조, 허술, 음흉의 민족. 럭키 북한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음) 2. 저기서 경기하는 올림픽 대표 선수들은 어쩔. 일단 식자재는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 가야함. 3.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뭔죄 4. 원전 사고는 너무 무섭다 5. IOC 죽어라 출처 포모스
이훈구의, 일본 영화 경제학/ 전후 황금기⓸
... ... 전후 황금기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사들의 재정비와 장르의 확립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58년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영화인구가 11억 2,700만명에 달하게 되는데 이때만 해도 영화가 대중오락이면서 전후 일본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대중계몽은 물론 상실한 문화적 긍지를 회복해주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1951년 샌프랜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후 일본영화의 창작을 제약하던 조항들도 철폐되었고 검열도 폐지 되었으며 상영이 한동안 금지되었던 지다이게키(時代劇)의 상영도 재개되었다. 또 이미 언급하였듯이 이데올로기 논쟁이 심화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들을 표방하는 독립제작사들이 생겨나면서 사회참여적인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었는데 어느새 군국주의에 의해 어쩔수 없이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모두 악(惡)의 화신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감성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볼 일은 진영논리를 떠나서 사회참여적이든 그렇지 않든지 간에 전쟁이 군국주의자들이 벌인 '사회적 사건'이었고 일본인들 역시 '전쟁 피해자'라는 자기 확인과 함께 전쟁의 댓가를 지불해야 만 하는 '형벌'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고를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적어도 이데올로기나 진영논리 보다는 영화가 '사회적 사건'들이 되기를 바랐고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에 의한 후유증이 세상에 알려지기 바랐고 심지어 전쟁의 참사를 통해 일본의 사상자들 역시 진혼의 대상으로 충분하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공통적으로 형성 되었다. 그러다 보니 동시대의 평론가들은 만들어진 영화가 '반전적(反戰的)'이냐 '호전적(好戰的)'이냐의 문제로 논쟁을 벌여야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고 오히려 전쟁에 대한 추억에 잠길 수 있었기 때문에 호응을 얻었다. 게다가 평화(平和)와 반전(反戰)은 물론 당시 미국에 대한 패배감을 털어버릴 수 있는 일종의 복수심리도 북돋웠기 때문에 좌파 영화인들이라 할지라도 겉으로는 반전사상을 내세웠지만 속내로는 반미(反美)와 애국(愛國)을 내세우는 '민족주의자'성향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진영논리를 떠나 이러한 영화들은 전후 패배감을 극복하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며 일본인들에게 위로를 주기에는 안성맞춤이었기에 '전후 황금기'를 이끌어 낸 것은 필연이었다. 일본인들은 극장에서 위로받고 정당화하며 치유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일본인의 눈에 비친 '일본인의 비참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했는데 서구(유럽,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계는 물론 동구(소련과 동유럽)의 모든 영화계가 냉전 시대와 맞물려 일본을 전범 국가에서 '전쟁 피해자'로 탈바꿈시키고 만다. 여기에 덤으로 '신성하여 절대 범할 수 없는 존재'였던 천황제(天皇制)에 대한 상품화가 이뤄진다. 전쟁까지만 해도 신성한 존재였던 천황이지만 이제는 그냥 상징적 존재이며 따라서 메이지 모노(明治勿)의 제작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천황이 더 이상 금기의 소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군정 시절에도 빈번했다. 이른바 아이디어 영화들 역시 그랬다. <사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우리 청춘 후회 없다'(わが靑春に悔なし, 1946)> ... ‘우리 청춘 후회 없다(わが靑春に悔なし, 1946)’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로, 감독은 전쟁과 비교적 무관한 였지만 시나리오는 히사이타 에지로(久板榮二郞)가 담당했는데 그는 전쟁 전에는 좌익으로 전쟁 시에는 군국주의 영화계에 협조한 사람이었다. 주연 배우인 ‘하라 세츠코(原 節子)’역시 나치독일과 합작 영화인 아놀드 팽크(Arnold Fanck)의 ‘새로운 땅(新しき土, The New Earth)’의 주연 여배우로 나온 적도 있었는데 아무도 그녀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는 자는 없었다. 사실상 당시 일본인 거의 모두가 전향자(轉向者)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전쟁 전에 반전 운동으로 대학에서 쫓겨난 교수의 딸(하라 세츠코)이 자기 아버지의 제자이자 반전운동가와 전시 중에 결혼하여 옥사를 당하지만 이후에도 그 유지를 잇는다는 스토리다. 더 나아가 이 여인은 남편의 친가가 있는 농촌에서는 ‘비국민(非國民)’이라고 박해를 받으며 농사를 지었지만 전쟁 이후에는 농촌 개혁운동 선두에 서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려고 노력한다는 계몽적 교훈을 담고 있다. 미군정의 제작 방침에 가장 모범적 영화로 평가받는 이 작품 이후로 하라 세츠코는 민군정 하에서 ‘민주주의의 여신’으로 불렸다. 요시무라 고자부로(吉村 公三郎) 감독의 ‘안조가의 무도회(安城家の舞踏会, 1947)’에서 그녀는 화족(華族, 천황 직계의 귀족 우대정책)제도의 폐지에 따라 몰락한 가문의 장녀로 새로운 시대에서는 새로운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신 여성상을 맡았다. 또한 이마이 타다시(今井 正)감독의 ‘푸른 산맥(青い山脈, 1949)’에서는 마을의 봉건주의와 그 세력을 타파하기 위해 학생들과 협력하는 진보적인 교사역을 맡았다. 하라 세츠코는 1963년에 은퇴하였으며 2000년에 발표된 키네마 준보의 ‘20세기 영화 스타, 여배우’ 편에서 일본 여배우 제1위를 차지하였다. 본명은 아이다 마사에(会田 昌江あいだ まさえ)이며, 현재의 요코하마시 호도가야 구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4월 15일 닛카쓰 타마가와 촬영소에 입사하여 같은 해 닛카쓰 영화 타구치 사토시(田口哲)감독의 ‘주저하지 마라 청년이여(ためらふ勿れ若人よ)’에 출연하며 데뷔하였다. <사진=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감독의 ‘만춘(晩春, 1949)'> ... 예명인 '세츠코(節子)'는 이 작품에서 맡은 역할인 '세츠코'에서 따온 것이다. 세츠코는 일본 여성들에 비해 체구가 커서 아놀드 팽크가 극찬한 ‘전형적 일본 여성’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미군정을 거치면서 관객들은 새로운 서양풍의 세츠코를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감독의 ‘만춘(晩春, 1949)’과 역시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東京物語, 1953)’를 통해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지만 1963년 43세의 나이에 은퇴하였고 역시 그해에 타계한 오즈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후로는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하며 살았다. 1935년부터 1962년까지 112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1950년대 일본영화 황금기의 상징적 존재였지만 결혼하지 않아 ‘영원한 성처녀(聖處女)’로 불렸고,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로 불렸다. 그녀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은 남달라서 곤 사토시(今敏)감독이 ‘천년여우(千年女優, 2001)’를 만들어 오마주를 바치기도 했는데 ‘천년여우’란 오랫동안 세대를 걸쳐 사랑받은 여배우를 뜻한다. 다시 일본영화가 활기를 띄기 시작하면서 감독들에게도 ‘마음대로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의뢰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즈음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는 6개사 정도로 압축되었다. 기존의 닛카쓰(日活株式会社), 쇼치쿠(松竹株式会社), 도호(東宝株式会社), 다이에이(大日本映畫), 만에이(滿映)출신들이 중심이 된 도에이(東京映画配給), 도호쟁의의 결과로 만들어진 신도호(新東宝株式会社)가 황금기를 이끈 메이저 영화사들이다. 이중 도에이는 배급회사로 출발하였으나 도요코 영화(東横映画)와 오이즈미 영화(太泉映画)등 2개의 영화사들을 합병하면서 제작 세스템을 본격적으로 갖췄다. 이들 회사들은 처음에는 건전한 경쟁관계를 유자하였으나 차츰 자신들만의 고유영역을 굳혔다. 닛카쓰의 경우는 전쟁 시 군부와 결탁을 하지 않아 다이에이에 흡수 되었었으나 1954년 다시 제작을 시작했는데 기존의 5개 영화사들이 결탁하여 닛카쓰의 영화인 스카웃에 협조하지 않았다. <사진=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감독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カルメン故鄕に歸る, Carmen Comes Home, 1951)> ... 덕분에 닛카쓰는 파격적 소재와 젊은 영화인들 그리고 신인들을 대거 기용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이시하라 유지오(石原 裕次郞)가 이런 케이스다. 쇼치쿠는 이른바 ‘sister movie’라고 불리우는 동시상영용 서민의 일상생활과 멜러 드라마를 만들었으며 특히 일본 최초의 칼러 영화인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감독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カルメン故鄕に歸る, Carmen Comes Home, 1951),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東京物語, 1953)’같은 걸작 중의 걸작을 남겼다. <사진= 일본 최초의 칼러 영화 제작 감독인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惠介).> ... 6개의 영화사들이 각각 다른 개성의 장르 영화들을 제작했고 배급은 전국적으로 동시 배급되는 시스템을 이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영화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며 유럽을 공략하면서 비평가와 관객들로 하여금 주목받게 되었고 경탄하게 되었으며 ‘거장(巨匠)’의 신화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이들이 A급 영화만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배후에는 수많은 B급 영화들이 제작되고 독립제작사 붐이 때마침 일어난 탓도 있으나 이 시기 메이저 영화사들의 제작 체제(제작 시스템)가 재편성을 완료하여 ‘영화산업’으로 성장하였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할 것이다.<미국 LA=이훈구 작가>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9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아이유가 이번 앨범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들
모든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그중 해석의 제한에서 가장 자유로운 것은 시가 아닐까 한다. 작품자의 순정만 담겨 있다면,어떤 형태든 그 안에선 모든 것이 시적 허용된다. ‘시인’이라든가 ‘예술’이라든가 ‘영감’이라든가 ‘작품’과 같이 본인 입으로 얘기하기에는 왠지 좀 민망한 표현들에 대해 약간의 울렁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앨범명을 뻔뻔하게 ‘사랑시’라고 지어 놓고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여기 담은 것들이 전부 진심이기 때문이다. unlucky 며칠 내내 떠올리려 노력했던 아주 오래된 노래의 제목을, 우연히 튼 라디오 디제이가 알려줄 때. 가깝지도 각별하지도 않은 사람이 큰 의미 없이 툭 뱉은 말 한마디에서 내 오랜 고민의 정답을 발견할 때.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날 배신할 때. 억지로 떠밀려 나간 약속 장소에서 앞으로 오래 보게 될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인생이 잘 짜여진 장난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정교함이, 세련된 농담처럼 날 웃게 할 때도 있고 약오르고 허탈한 마음에 일순간 서글퍼질 때도 있다. 바보같이 매번 휘둘려서 골난 내 기분을, 그러면서도 기대하고 또 기대고 싶어 하는 나의 이 싱숭생숭한 마음을 이런 경쾌한 음악에 담고 싶었다. 인터뷰에서도 몇 번 밝혔듯 나의 어릴 적 좌우명은 '나는 행운아다.' 였다. 마냥 어리지 않은 지금은 행운을 별로 바라지 않는다. 또박또박 나름대로 잘 걷다가도 행운이 보이면 잡고 싶은 마음에 손을 뻗고 엇박을 타다가 중심을 잃어 휘청대는 내 모습이 언젠가부터 스스로 멋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엔,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내가 평생 동안 받았던 행운을 싹 다 골라내고도 다른 남는 게 꽤 많은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Love poem'이 내가 사랑하는 나의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응원이라면, 앨범의 첫 트랙인 'unlucky'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르는 응원가다. 그 사람 갑자기 와 손님처럼 잠시 머물다 간 '그 사람'의 이야기. Blueming 사랑을 주제로 한 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심수봉 선생님의 '백만 송이 장미'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실천한 사랑의 결실을 한 송이 장미꽃으로 표현한 것이 나에게는 사랑에 대한 어떤 비유보다 시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가 단기간에 가장 많은 장미를 피워내는 시기는 사랑에 빠진 직후다. 마음을 고백하기 직전, 결정적인 딱 한 마디만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말을 사용해 상대에게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때. 휴대폰 진동 소리 한 번 한 번이 내 일상을 사정없이 흔드는 지진처럼 느껴지는 때. 필터링 없이 꺼낸 말 마디 마디가 사랑시가 되는 때. 이게 정말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은 낯선 결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시기만큼은 백만 송이 장미를 거뜬히 피워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들 정도로 내 안에 사랑이 넘친다. 우리의 대화창 속 내 색깔처럼 새파아란 색의 장미를, 그 장미의 꽃말과 같은 '기적'을, 그 '불가능'에 가까운 결실을, 내가 이번에야말로 백만 송이 정도 피워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에 찬다. 아직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은 없지만.. 시간의 바깥 8년 전, 미래에서 만나자는 아쉬운 약속을 남기고 헤어진 두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이었던 내가 이번엔 직접 작가가 되어 둘의 이야기를 완성 지어 주고 싶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 장소로 어디가 좋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시간이라는 제약 속에 너무 오랫동안 묶어 둔 게 미안해 아예 시계의 바깥으로 둘을 꺼내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과거에 의존하지 않고 선 두 발로, 오직 지금의 순간만을 만끽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숨이 차도록 춤을 춘다. 이 음악이 끝나더라도 그들의 춤은 아마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단, 시간의 바깥에서. 우리가 더 이상은 알 수 없는 이 이야기의 바깥에서. 자장가 작년에 출연했던 김종관 감독님의 단편 영화 '밤을 걷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사한 곡이다. '깨고 나면 잊어버리게 될 꿈'이라는 소재가 신선하고 좋았다. 영화 속 지은을 연기하는 내내 '기억되지 않는 순간도 존재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꿈을 꾸는 사람의 시점이 아닌 꿈속에 찾아온 사람의 시점에서 쓴 가사다. 깨고 나면 잊히게 될 꿈에 찾아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자장가를 불러 잠을 재워 주고 떠나는 내용을 담았다. Love poem "인간의 이타성이란 그것마저도 이기적인 토대 위에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괴로워 재촉하듯 건넸던 응원과 위로의 말들을, 온전히 상대를 위해 한 일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내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참견을 잘 참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그런 행동들이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배려나 위로가 아닌 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염치 없이 부탁하는 입장이니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기로 한다. 이 시를 들어 달라는 것, 그리고 숨을 쉬어 달라는 것. 누군가의 인생을 평생 업고 갈 수 있는 타인은 없다. 하지만 방향이 맞으면 얼마든 함께 걸을 수는 있다.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 노래를 불러 줄 수 있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게 받았던 많은 시들처럼 나도 진심 어린 시들을 부지런히 쓸 것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서로의 시를 들어 주면서, 크고 작은 숨을 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사설 양아치 렉카한테 덤탱이 안 쓰이는 법
안좋은 예 1. 사고가 남 2. 사설 렉카들이 떼거지로 몰려옴 3. 무작정 걸고 견인하려 함 4. 보험회사 렉카 불렀다고 하면 공업소까지 경인하겠다. 교통에 방해되니 갓길까지 빼주겠다고 함 5. 일단 걸어버리고 금액이 많다고 하면 견인해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차 안 내려줌 명함을 절대 받으면 안됨. 나중에 명함 줬으니 동의 얻었다고 우김 6. 경찰 불러도 민사건이라 자기들도 손쓸 방법이 없다고 원만히 합의하라고 함 좋은 예 1. 사고가 남 2. 최대한 침참하고 신속하게 보험회사 전화해서 렉카 신청함 3. 분명히 조금 있다가 사설 렉카들 몰려옴 4. 교통에 방해가 되니 차 빼야된다는 등 갖가지 말로 조금이라도 견인하려고 이빨 깜 5. 당황하지 말고 차에 손 못대게 하고 렉카에 차 걸려고 하면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함 결론 사고때문에 혼란스럽고 멘붕이겠지만 최대한 침착하고 단호하게 차에 손 못대게 하고 보험 회사 렉카 기다릴것. 팁) 한국도로공사의 ‘긴급견인제도’는 고속도로 본선, 갓길에 멈춰 2차 사고가 우려되는 소형차량을 안전지대까지 견인하는 제도입니다. 안전지대까지의 견인비용은 한국도로공사가 부담함 견인신청 : 한국 도로공사 콜센터 (1588-2504) + 도로위의 무법자, 양아치 사설 렉카들의 기상천외한 레이싱 쇼 역주행은 기본이쥬? 이새끼들아 번호판은 어디다 버렸냐 순식간에 사고 차량이 다섯대가 되는 마법을 보여주는 사설 렉카들
일본에 남아있는 양심
남자들은 학창시절 대부분 한번쯤은 본 영화 배틀로얄에 나오는 '카와다 쇼고' 본명 : 야마모토 타로 작중 으리남에 상남자기믹을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에 죽어갈때 슬픔을 자아낸 캐릭터 이 사람은 이 배틀로얄 말고도 한국영화 ' 마이웨이' 에서도 등장 여기서는 악질적인 일본군의 이미지로 연기하였다 그는 현재 연예계를 떠나 정치인이 돼었다  그리고  자민당 입장에선 답정너를 해야하는데 자꾸 팩트로 뚜들기니까 브레이크 거는거에 개빡친 타로의원 국회에서 이렇게 자민당의 막장행보에 극대노를 하며 항의 하고있다. 그리고 아베 앞에 걸어가 염주를 들고 묵념까지 했다 (사실상 너네(자민당)의 미래는 정해져있다 인정하라는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거마냥 방사능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방사능의 심각성과 일본 아베정부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올바른 소리를 했다고. 탈원전 발언을 했다고, 자민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강제 퇴출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전혀 부끄럽지 않다며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나이들어서도 좋은 인생을 살고싶고 좋은 배우로써 살고싶은데 방사능이, 일본의 거짓된 역사인식과 현 정권이 자신의 꿈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런 심한말까지 듣는게 일상이다.. 살해협박까지 받고있다.. 진실을 말해도 먹혀들지 않자 레이와 신센구미라는 정당을 아예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그대들(국민)이 이렇게 힘든건 그동안 정치에 너무 무관심했던 너희와 나의 잘못이며 이제부터라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의 미래를 정상적으로 돌려내자고 연설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쓰는 문장이 나를 말한다
“혀를 다스리는 건 나지만 내뱉어진 말은 나를 다스린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한번 말한 것은 책임져야 한다.” “입술의 30초가 마음의 30년이 된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주변은 시속 120㎞, 140㎞로 빠르게 가는 것 같은데 제 속도를 스스로 가늠은 못 하겠다. 그런데 나름 시속 80㎞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10년의 무명시절을 버틴 데뷔 28년 차 방송인 국민 MC 유재석의 ‘말’입니다. 재치 있는 입담과 배려심 넘치는 진행으로 시청자들을 웃게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그 내면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말인데요. 누군가의 ‘말’은 곧 그 사람의 ‘문장’이기도 하지요. 특별한 단어나 화려한 수식어구를 쓰진 않았지만 그의 문장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항상 자신을 가다듬는다고 하지요. 바쁜 스케줄로 시간이 여의치 않은 와중에도 이동하는 차 안에서라도 매일 신문을 읽는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문장의 일>의 저자 스탠리 피시 역시 말합니다. “문장을 음미하는 능력과 빚어내는 능력은 서로 접점 없이 따로 굴러간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이들은 나란히 습득되는 능력들이다.” 유재석의 읽기 습관은 성실한 방송인이 될 수 있었던 뼈대입니다. 다른 분야의 어떤 누구와도 유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요. 한 방송을 통해 자기 삶을 글로 써 내려가기도 했는데요 그 문장들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마음속에 간직될, 노래 가사로 완성되었지요. ‘내 문장’은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각자의 문장에는 그 사람의 세계가 담겨 있지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독자이자 작가입니다. 딜러드의 동료 작가가 학생의 질문을 받는다.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작가는 반문한다. “글쎄요, 문장을 좋아하나요?” – <문장의 일> 중에서 –   # 오늘의 명언 쉬지 않고 글을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 중국 작가 위화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말 #문장 #인격 #인품 #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