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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쌤이 말해주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이유.jpg


뒤주를 가지고 오라해서
들어가 있었고 사도는 본인이 거기서 죽을 줄은 몰랐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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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죽인 사람의 수가 백명이 넘었다고 자신의 어머니도 죽이려 했었다는 기록 . 영조의 가학적인 압박에 의해 그리되었다고 하지만 이런 인간이 왕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의 네로가 되었을 수도.
칼이라도 주지 아사하게 만들다니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눈에들고자 노력 했지만 만족할줄모르는 아버지로인해 어긋나기 시작한 부자관계?
@winterrain27 중간에 둘이 울면서 영조가 다시는 안그런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결국 되풀이되고...영조는 사도세자를 넣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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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우리말로 정착되어 가는 외국어 중 ‘더치페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순우리말 ‘각자내기’를 사용하자고 권장하고 있지요. 대부분 더치페이(Dutch Pay)가 깍쟁이 네덜란드 사람들이 각자 밥 먹고 술 마신 후 음식값을 1/n로 낸 것에서 유래한 줄 아는데요. dutch가 네덜란드 라는건 거짓입니다. Dutch는 독일(도이칠란트, Deutschland)을 의미합니다. 원래 영국이 유럽대륙의 강국인 독일과 워낙 원수 사이였기에 영국인들은 각자 먹은 값을 따로 내는 건 ‘독일넘들이나 하는 쪼잔한 대접’이라는 비난의 의미를 담아 ‘도이치 트리트(Deutsch Treat)’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과 스펠링이 어려운 ‘도이치(deutsch)’대신 ‘더치(dutch)’로, ‘트리트(Treat)’ 대신 ‘페이(Pay)’로 바뀌었지요. 그런데 1600년대 네덜란드가 영국과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게 되면서 악감정이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옮겨가게 됩니다. 미국 땅 ‘뉴욕’도 원래는 네덜란드 식민지 ‘뉴암스테르담’을 영국이 전쟁으로 빼앗은 거예요. 그런 과정에서 영국인들이 원래는 독일인을 흉볼 때 쓰던 ‘더치페이’란 단어가 네덜란드를 비난할 때 쓰는 말로 변해버린 뒤, 400여 년이나 흘러 원래 dutch가 독일을 의미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잊어버린 상태가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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