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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 3] 예고

안녕하셨나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올해도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네요. 다름이 아니라 드디어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무조건 소설을 완성하겠다고 해놓고 너무 많이 늦었지요. 그래도 한 달이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예상 기간에서 한 달이 더 필요한 작업이었네요. 사실 저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어리둥절할 정도였습니다. 써도 써도 소설이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겁니다.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소설이 이제야 완성된 것이 특별히 게을러서는 아니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들어간 뒤에 정확히는 어제까지 주 3일은 무조건 확보하여 꼬박꼬박 써나갔는데, 소설의 끝을 당최 예상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제는 겨우 초고를 완성했고, 어제는 대대적인 오탈자나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나름대로 점검했습니다. 소설의 분량은 지금 보니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정확히 208.6매가 나오네요. 단편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했는데 중편 분량이 되어버렸습니다. 예고한 대로 소설이 너무 길어서 분할하여 올려야 하는데, 제가 임의대로 10회로 나눠봤습니다. 커다란 장면 전환을 기준으로 나름대로 나눠본 것입니다. 빙글의 포맷 덕에 중편소설을 10회짜리 시리즈로 연재하게 되었네요.
우선 소설의 제목은 <어디쯤>입니다. 초고를 완성한 뒤에 정했는데, 소설이 분량이나 방향 측면에서 모두 제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니 미리 제목을 정하기도 조금 난감하더군요. <어디쯤>을 인터넷에 생각 없이 쳐보았더니 최진영 소설가의 동명 단편이 떠서 조금 고민이 되었는데,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 이상의 적절한 제목은 딱히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10회로 분할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읽는 분의 입장에서는 분량의 압박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되고, 그걸 상쇄할 만큼의 쾌감을 제공할 수 있는 소설인지도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번 소설은 제가 빙글에서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생소> 프로젝트의 3번째 소설입니다. <생소>가 ‘생활소설’의 줄임말인 만큼 이번 소설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에서 비롯됩니다. 대단한 이야깃거리는 아닙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차라리 순수문학에 가깝지 장르문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생소> 프로젝트에서 앞으로 일종의 판타지를 도입한 소설은 전혀 쓰지 않겠다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작은 무조건 일상에서 촉발되는 소설들일 것입니다.
소설은 소설가인 1인칭 화자가 6개월가량 겪은 일들을 토대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간적 배경은 코로나 감염병이 막 창궐하던 2년 전쯤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이죠. 제 경험도 어느 정도 스며들어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명백히 허구임을 역시 밝혀드립니다.
끝으로 엄살을 조금 떨자면 제가 ‘소설’이랍시고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지만 저는 엄연히 소설을 좋아하는 늦깎이 습작생에 불과합니다. 소설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두 달 동안 짧지 않은 소설을 써나가면서 제 한계와 제가 부족한 부분들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또 소설을 써나가면서 지금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한계들을 발견해 나가야겠지요. 저는 지금 미리 제가 10회에 걸쳐 올릴 소설의 한계들을 고지하는 중입니다. 소설을 통해서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생겨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부족한 대로, 수용할 만한 부분은 수용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설을 몇 번이고 정주행하며 객관적으로 읽어보았는데 그때마다 고치고 싶은 부분들은 계속 나오더군요. 그래도 이쯤에서 우선 멈추고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을 더 고치더라도 그건 이후에 별개로 진행할 문제인 듯합니다. 어떤 식으로 연재를 해야 할까도 조금 고민거리였는데요. 10회를 한꺼번에 올리는 것은 역시 모두에게 부담이 클 것 같고요. 하루에 한 회를 올리는 것도 조금은 답답한 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득이하게 나눠 올리지만 사실상 한 편의 소설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2회씩 올리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오늘은 소설 연재를 알리는 것으로만 하고요. 연재는 내일부터 매일 2회씩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설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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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기대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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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 / 임선경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필자는 이 소설을 밤의 고속버스 안에서 읽었다. 마지막에 연이 엄마, 정순, 숙이 엄마 셋이 문방구집 아줌마와 드잡이질을 하는 걸 보고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아, 연이는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럭무럭 사랑을 배우며 자라나겠구나. 그래서 연이 엄마가 마음 놓고 연이의 곁을 떠날 때, 나도 마음 놓고 책을 덮을 수 있었다.(사실 후반부에는 눈물이 나서 훌쩍대며 읽었다.) 이 소설은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연이의 엄마의 눈으로 1970년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그 뒷세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지만 그때의 정서는 아직 1970년대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필자의 경험에 빗대어 이 소설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때는 집 앞에 나가면 언제나 같이 깡통차기를 할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 옆의 정자에는 할머니,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항상 할머니가 비닐 위에 말려놓은 빨간 고추가 있었다. 그 고추는 무슨 맛일까 궁금했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잘 산다는 아이의 집 책장에는 소년소녀 세계명작이나 위인전집이 1번부터 순서대로 쭉 꽂혀있었고 가끔 책 방문 판매원이 오면 엄마는 항상 주스를 한 잔씩 드렸었다. 소설 속에서 언뜻언뜻 필자의 어린 시절을 찾을 때마다 점점 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좋았던 점은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어린 시절 필자의 주변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숙이 엄마처럼 목소리 크고 드센 아줌마도 있었고 희철이처럼 괜히 주변 사람에게 짓궂게 굴고, 문방구에서 도둑질하다 걸리던 아이도 있었다. 숙이 아빠처럼 물건을 척척 고쳐주는 아저씨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저씨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책을 방문 판매하는 기석이나 딸 낳았다고 며느리를 타박하는 미호댁, 반에서 잘 사는 공주님 같은 소영이와 사별한 남자와 재혼한 정순,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다가 아빠가 재혼하면서 다시 아빠와 새엄마와 살게 된 연이까지.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필자의 어린 시절 어디선가 보았고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에 빠져들지 않고 버틸까.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인데. 연이 엄마는 연이에게 못해준 것, 엄마로서 부족했던 것만 기억에 남아 죽고도 연이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귀신인 연이 엄마는 귀신을 무서워한다. 피 흘리는 기괴한 모습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귀신들이 너는 그다지 대단한 원한도 없고 이유도 없으면서 뭔데 이 이승에 붙어있느냐고 따질까 봐 그렇다. 연이 엄마가 마음 놓고 이승을 떠나기에는 연이 주변에 온통 연이를 못살게 구는 사람뿐이다. 연이의 새엄마 정순은 물론이고 주인집 숙이 엄마도 왠지 연이를 못마땅해하며 희철이는 연이를 무시한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연이의 아빠, 사람 좋은 기석에게 연이를 맡기고 떠나기에는 기석도 그다지 미덥지 않다. 그래서 연이 엄마는 연이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도 연이는 혼자 씩씩하게 살아간다. 어느새 글도 혼자 깨우쳐 읽을 줄 알게 되었고 혼자서 잠도 잘 자며 자신의 엄마는 죽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희철이가 무시해도 혼자 마당에서 사방치기를 하며 놀고 학교 입학식 날에도 일어서서 선생님 이름 석 자를 읽었다. 그런 씩씩한 연이를 보면서도 연이 엄마는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연이가 길을 잃고 만다. 오후반 학교를 땡땡이치고 뒷산에 올라가 놀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산에서 내려오니 처음 보는 동네였다. 영영 집을 못 찾을 뻔한 연이를 연이 엄마가 물 없는 우물에 사는 노파 귀신에게 애원해 큰 길가로 데려가자 마법처럼 희철이가 나타났다. "야, 홍연!" 내내 연이를 찾아다녔는지 먼지 투성이다. 그 뒤를 이어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웃옷 자락을 펄럭이며 숙이 아빠가 나타나 연이를 업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서는 숙이 엄마도, 찬이를 업은 정순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가 연이가 들어오자마자 정순이 달려들어 연이를 껴안고 숙이 엄마는 아이고, 관세음보살을 외친다. 기석은 넥타이가 풀어헤쳐진 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들어와 연이를 감싸 안은 찬이를 업은 정순을 감싸 안고 희철이와 희철이의 엄마, 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연이를 무시하던 희철이도, 연이와는 이야기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숙이 아빠도, 연이를 못마땅해하던 숙이 엄마도, 아직 연이에게 진짜 엄마 노릇을 해주지 않고 있는 것만 같던 정순도, 정순과 연이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있던 기석도 연이가 사라진 순간 정신없이 모두 함께 연이를 찾는다. 그 시절에는 그런 어디서 생겨난 건지 알 수 없는 연대가 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서로 발 벗고 나서 도와주고 일이 해결되면 마치 자기 일이 해결된 듯 기뻐하곤 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연대가 그때에는 있었다.  그제야 연이 엄마는 마음을 놓는다. 사라진 연이를 애타게 찾아주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연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깨달은 연이 엄마는 드디어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떠나는 연이 엄마와 함께 독자도 연이에 대한 걱정을 놓고 책을 덮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결말은 투박하고 따뜻했다. 참 좋은 소설이다. 이렇게 빠져들어서 읽었던 소설이 얼마만이고 또 읽으면서 눈물이 나왔던 소설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자신 안의 어린아이를 찾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픈 소설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진심으로 울고 진심으로 화내는 이 엄마들에게 고마웠다. 희숙이 엄마, 찬이 엄마가 그냥 나처럼 느껴졌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생애 두 번째로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다. 첫 번째는 중학교 시절에 처음 읽었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인데 읽고 나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트릭을 생각해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결말이었다.(사실 그 이전에 추리소설을 별로 읽은 적이 없어서 더 충격이 컸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명작은 명작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입문하고 싶다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해보는 걸 추천한다.) 그 뒤로 한동안 추리소설과는 멀어진 채 지내다 오랜만에 읽게 된 게 바로 이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로 만들어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봤었다. 그래서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재미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역시 손에 꼽히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폭설로 도중에 멈춰버린 기차 안에서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것도 밀실에서. 그런데 하필 기차에는 위대한 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타고 있었고 그는 명석한 두뇌로 승객들의 증언, 그리고 증거를 통해 놀랄만한 추리를 해 나간다. 폭설에 갇힌 열차 안에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승객 중에 범인이 있을 것이 자명한 상황. 푸아로의 추리를 따라 진범에 도달하는 과정이 소설의 전부다. 사실 추리 소설에서 중요한 건 명석한 두뇌의 탐정이 증거와 증언을 통해 놀라운 추리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매우 뛰어난 추리소설이다. 먼저 모든 증언과 증거를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충분히 그것을 통해 진범을 추리해 볼 시간을 준다. 그러나 물론 대부분의 독자는 그것들에서 진실을 찾아내지 못한다. 혹 증거나 증언의 모순을 찾아내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뛰어난 논리력과 추리력,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자의 궁금증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고 그때 우리의 회색 뇌세포,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해 단 하나의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추리를 보여준다. 결말의 추리에서 독자는 지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언들 사이의 숨겨진 다리를 찾아내고, 여러 증거와 증언들의 모순을 단번에 깨버리는 논리적 설명을 보여주며 결국 단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푸아로의 추리가 마치 논리 문제나 어려운 퍼즐을 해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추리소설의 목적을 탁월하게 구현하며 독자에게 즐거운 독서를 제공한다. 하나 더 이 소설의 장점을 꼽자면 캐릭터 구성 능력이다. 소설 속에는 객차의 승객 열두명과 차장들, 주인공 푸아로, 의사인 콘스탄틴, 그리고 기차 회사의 중역 부크가 등장한다. 보통 이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면 서로 헷갈리거나, 비중이 적은 인물은 기억을 하지 못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각 인물들의 외모, 성격, 나이, 국적 등이 전부 특색 있고 대부분의 인물이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말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만 봐도 어떤 인물이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인물이 각각의 매력을 가지도록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걸 해냈다. 추리와 진실의 놀라움과 별개로 이 소설이 가지는 또 하나의 놀라움이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국가나 인종에 대한 편견이 소설 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과 서술 상에서 너무 많은 인물의 시점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의 시점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국가나 인종에 대한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현대의 독자가 읽을 때 아쉬운 부분인 것은 확실하다. 독자가 읽을 때 인물의 시점이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소설로써의 완성도를 조금 떨어트리는 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훌륭한 '추리'소설이자 추리'소설'이다. 추리의 재미와 놀라움도 확실히 잡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의 면모도 충분히 갖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추천하고 싶다.(물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추천한다.) 소설 속 한 문장 "그렇다면 두 번째 추리를 내놓아야겠군요. 하지만 첫 번째 추리를 너무 성급하게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나중에라도 그것에 동의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종이 동물원>, 꽤 두꺼운 켄 리우의 단편집이다. 총 열네 편의 소설이 들어있으며 열네 편 전부 SF 혹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들이다. 작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켄 리우는 중국인이다.(물론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소설 속에서도 중국의 문화,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 중, 일을 서로 떼 놓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한국,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출현한다.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나 원리 같은 것도 그다지 없어서 한국 독자가 처음 SF 소설을 읽을 때 추천할 만한 소설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국)의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몰입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두껍긴 하지만 단편집이라서 시간 날 때 한편씩 읽기 딱 좋다) 켄 리우의 소설은 지난번에 리뷰했던 테드 창의 소설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이 소설을 빙자한 과학적 시뮬레이션(?)에 가깝다면 켄 리우의 소설은 Science "Fiction"이다. 켄 리우의 소설 속에서 과학은 Fiction의 설정이자 배경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배경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라고 할 수 있다. 켄 리우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Science가 아니라 Fiction이므로 <종이 동물원>에 실린 소설들에는 SF가 아닌 소설도 많다. 심지어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부터가 SF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다른 수록작들도 마찬가지다. <상태 변화>는 현대 판타지이고 <파자점술사>는 중국의 전통적 주술 문화, 파자점이 이야기의 주춧돌이 되며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중국의 요괴와 SF적 요소가 뒤섞여 매력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게 켄 리우라는 작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SF 작가도 아니고 판타지 작가도 아니며 장르문학 작가라고 한정 짓기도 꺼림칙하다. 그는 장르의 경계나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SF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SF를, 판타지적인 배경이 필요하다면 판타지를, 역사나 신화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거리낌 없이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정통 SF 소설만을 애정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에 오히려 실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의 소설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 개인적으로 켄 리우라는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배경을 바탕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그의 삶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많은 혼란과 의문이 그의 청소년기를 뒤덮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면 미국인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이렇듯 수많은 의문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내가 어디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집단의 일원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작가가 된 켄 리우는 마찬가지 생각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쓰는 소설이 SF인지, 판타지인지, 역사나 신화 소설인지가 아니라 내가 쓰는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들을 한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위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저 문장이 켄 리우의 소설들에 새로움과 놀라움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구분이 사라질 때,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합쳐질 때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기 마련이니까. SF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과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모노노아와레>를, 환상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사냥을 하길>과 <송사와 원숭이 왕>, <파자점술사>를, 소설 속 드라마를 느끼고픈 이들에게는 <종이 동물원>과 <레귤러>,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권하고 싶다. 만약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소설집 전체를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어나가길 바란다. 소설 속 한 문장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regular) 세상의 모습이다. 명쾌함도, 구원도 없다. 모든 합리성의 끝에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과 품고 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견뎌야 할 믿음뿐이다.
14명의 시인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들 🎶
카카뮤직과 문학과지성사가 지난 2014년 한글날을 맞이하여 함께 진행한 '노랫말이 아름다운 뮤지션' 조사 ! 총 7곡을 선정했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곡은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입니다 *_* ( 루시드 폴은 사람이었네’, ‘물이 되는 꿈’, ‘나의 하류를 지나’, ‘문수의 비밀’, ‘풍경은 언제나’ 총 다섯 곡이 후보에 올라 가장 많은 곡을 추천받은 뮤지션이라고 해요 ) 다 너무 좋아하는 곡들이라 괜히 기분이 좋네요 -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 아름다운 가사에 집중해서 같이 음악감상 하실래요 ? 7. 김윤아-봄날은 간다 이민하 시인은 언어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미적 논리를 챙기고, 무심하고 담백한 노랫말이 짧은 봄날의 햇살 같은 청아한 목소리에 실려서 더 애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랫말을 공허하지 않은데,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라고 했습니다. 슬픔보다는 아름다움이 담긴 노래.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다시 닿을 때까지 슬픔을 가지고 있는 그림자가 긴 여운을 무심히 끌고 간다고 했습니다. 6. 브로콜리너마저-보편적인 노래 <글로리홀>이라는 시집을 쓴 김현 시인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도 다 알지 못하게 만드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5. 델리스파이스-고백  성기완 시인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에 대해 얌전한 십대라고 해서 반항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며, 달달한 모던락속에 숨겨진 반항적 에너지를, 서정성을 잃지 않은 채 잘 들려준다고 했습니다. 조숙한 아이의 못됨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고도 말했습니다. 4. 루시드폴-물이 되는 꿈 이우성 시인은 루시드폴에 대해 힘을 빼고 쓴 가사가 좋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물이 되는 꿈과 나의 하류를 지나 온 것 같은 경우가 잘 맞아 떨어진다고 했는데요, 많은 말을 하지 않아, 단순하고, 반복되며, 이미지가 굉장히 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확장하고 다채로운 색들을 상상하게 되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3. 김광진-편지 이우성 시인은 ‘편지’가 이별의 감정을, 눈물을 흘리며 담담하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별은 하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노래에는 그러한 사랑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2. 요조-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신해욱 시인은 이 노래에 대해 ‘선처럼 가만히 누워, 선처럼 가만히 누워, 그저 선처럼 아슬아슬하게 가늘어지고 싶은 기분, 그런 방에는 에테르가 가득하고. 볼 수 없는 것 닿을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 보일 듯, 닿을 듯, 만져질 듯, 반투명하게 떠다니겠지’ 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혼자 누워서, 함께 누워 듣는 것만 같은 판타지가 필요할 때엔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했는데요. 1. 이소라-바람이 분다 이민하 시인은 이 노래에 대하여 사소한 노랫말에서 오는 감동은 그것이 몸의 언어일 때 가능하며, 언어의 짜임새가 느슨하지 않은 것도 정교한 감성이 노래에 맺혀져 있어서 라고 했습니다. ‘몸에서 맺혀진 눈물처럼 종이 위에 맺혀진 글자들이 새벽의 어둠을 통과하는 중이다. 라며 깊고 서늘한 무채색의 읊조림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절묘하게 빚어냈다고 했습니다.
<세계문학 단편선 - 플래너리 오코너> 플래너리 오코너
<세계문학 단편선 - 플래너리 오코너> / 플래너리 오코너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1925년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서 태어나 서른아홉 살에 루푸스 합병증으로 죽었다. 두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단편소설들을 남겼다. 그리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그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생길 만큼 플래너리 오코너가 미국 문학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선은 방대한 분량(700페이지가 넘어가는)을 자랑한다. 총 서른한 편의 중,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서른한 편 중 몇 편은 좋았고 몇 편은 굉장히 좋았으며 그중에서도 몇 편은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좋지 않은 소설은 없었다. 미국 문학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에는 레이먼드 카버, 줌파 라히리 등의 소설이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명확하게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소설 속에서 인간의 인식과 세계가 확장되는 어떤 지점이 주는 삶과 동떨어진 듯한, 일상 너머의 진실을 조금 엿본 듯한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에서 그러한 계시(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선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의 순간은 그녀가 경험해 온 미국 남부의 시대상, 가톨릭 신앙과 겹치며 독특한 울림을 자아낸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 울림을 지금까지 읽어온 소설 중 오로지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다. 오코너의 소설은 대부분 미국 남부에서 가치관이 뒤바뀌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법적으로는 흑인과 백인이 동등하지만 여전히 남부에서는 암묵적인 인종 분리가 행해지고 과학과 이성이 점점 종교와 신앙의 자리를 침범하며 미국 북부에서 인종과 종교, 합리를 대하는 관점과 남부에서 그것들을 대하는 관점 사이의 틈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시대. 오코너의 소설들은 그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늙은 군인도 있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인 또는 흑인도 있으며 종교에 충실한 인물이나 종교 따위는 믿지 않고 과학과 이성을 맹신하는 사람도 있다. 오코너의 소설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어떤 사건을 통해 가치관과 인식의 흔들림을 경험하고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과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진실의 일부를 엿보게 된다. 그때의 감각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벗어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어떤 존재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체감하는 느낌과 약간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 경험만으로도 이 단편선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은 <제라늄>과 <행운>, <인조 검둥이>다. 소설 속 한 문장 "나는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 남자가 말하고 창문을 떠났다.
지구에서 한아뿐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제목부터 지구에서 한아(하나)뿐이다. 달달한 사랑 이야긴데 그 달달함이 조금 이상하다. 달달하긴 한데 지구인과 외계인의 러브스토리고 정말 달달하긴 한데 보다 보면 과연 나는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곱씹게 된다. 조금 희한하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한아는 지구를 사랑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망가져가는 환경을 안타까워하고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한아는 못 쓰게 된 옷들을 다시 리폼해주는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남자 친구 경민은 자유분방이란 말이 어울리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한아를 놔둔 채 늘 어딘가로 떠나버리곤 한다. 이번 여름에도 캐나다로 유성우를 보겠다며 떠난 경민. 경민이 떠나고 며칠 뒤 뉴스에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나온다. 한아는 바로 경민에게 연락하지만 경민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애타게 경민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한아. 다행히 경민은 무사히 돌아오고, 연락이 안 되는 경민에게 잔뜩 나 있던 화는 막상 경민을 보자 여름날의 눈처럼 스르륵 사그라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아는 돌아온 경민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전보다 너무 다정해졌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도 않는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고 못 먹던 가지무침도 맛있다며 먹더니, 급기야 경민의 입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목격한 한아. 경민은 진짜 외계인인 걸까? 그렇다면 원래의 경민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소설은 누가 뭐래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다. 한아를 만나러 2만 광년 떨어진 지구까지 날아온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라니. 오직 한아를 만나기 위해 커다란 빚을 지고 엄청난 거리를 넘어온 외계인. 그 노력만 해도 지극정성인데 그 외계인이 한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100점짜리 남자 친구다. 늘 한아를 배려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남자 친구. 유일한 단점은 외계인이라는 것뿐. 한아는 외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외계인이 경민의 겉모습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거리감을 느끼지만 점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외계인에게 자신도 사랑을 느낀다. 경민의 탈을 쓰고 있지 않아도, 초록색 돌덩어리인 본모습이라도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초록색 돌덩어리라도 사랑할 수 있어. 한아의 말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에는 아름다운 외모, 외계인이라는 사실, 성별의 유무,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모습, 그 무엇도 중요치 않다.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고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중요할 뿐. 어찌 보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뭐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하겠지만 사랑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 중에 저 단순한 문장을 만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어떤 사랑은 상대의 존재가 아니라 상대의 능력, 외모, 재력이 사랑의 조건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랑은 저 단순한 문장을 한없이 만족시킴에도 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같은 성별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한아와 경민의 사랑을 좀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다른 하나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한아는 지구와 환경을 사랑하는 환경주의자고 외계인 경민이 한아에게 반한 이유도 한아가 환경을 사랑하는 모습과 맞닿아 있다. 고래형 외계인들이 지구의 바다 오염에 힘들어하는 고래들을 도와주는 에피소드나 얼음별에 사는 무당벌레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 점점 더워지는 별의 환경 때문에 멸종되어가는 모습, 지구를 동경한 한 부자 외계인이 지구를 본떠 만든 어딘가 부족한 제2의 지구, 광합성인들의 행성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시켜주겠다는 우주의 약속 등, 소설 속 우주의 모습들은 지구의 여러 단면들을 떠오르게 한다. 환경오염에 힘들어하는 고래들의 모습은 지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무당벌레 외계인의 멸종은 지구 온난화와 멸종 위기종들의 모습을, 제2의 지구에서 고통받는 만들어진 생명체들의 일화는 인간이 만든 동물원의 모습을, 광합성인들의 행성을 보존시켜주겠다는 약속은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에 관한 첨예한 대립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었고 멸종 위기 상태에 있으며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동물원에서는 인간의 유희를 위해 백호나 백사자 같이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생겨나지 않는 동물들을 강제로 만들어내기도 하며 아마존의 보존과 개발에 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우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 지구의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아의 말대로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 환경친화적 외계 로맨스 소설 되시겠다. 환경은 환경대로, 로맨스는 로맨스대로, 외계인과 우주라는 양념을 적절히 쳐서 비볐더니 이토록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소설이 나왔다. 삶이 힘든 사람에게, 다 때려치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환경 문제도, 사랑에 대한 고민도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책은 충분히 당신의 삶을 두텁게 감싸 안아준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작가가 건네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당신은, 지구에서 한아뿐이라고. 소설 속 한 문장 소리 없이, 먼 우주의 휘어진 빛들이 두 사람의 저녁에 내려앉았다.
데드 하트
'데드 하트' / 더글라스 케네디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빅픽쳐는 물론이고 템테이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파리5구의 여인, 비트레이얼까지 늘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에 읽은 데드 하트도 흥미진진했다.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의 특징은 술술 읽히는 가독성과 빠른 스토리 진행, 그로 인해 지루할 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인데(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특징이다.) 데드 하트도 고스란히 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개성의 주인공들과 스토리 전개가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서 늘 재미있는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데드 하트의 주인공인 닉은 지방 신문사를 전전하며 먹고사는 기자다. 특이한 점은 10년이 넘는 기자 경력에도 대형 신문사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고 소규모 지역 신문사들, 그것도 한 신문사당 2~3년 간격으로 옮겨가며 취직을 한다는 것이다. 보스턴의 신문사로 직장을 옮기려던 닉은 우연히 호주의 지도를 보고 아무것도 없는 야생의 땅, 호주로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호주의 최북단 다윈에서부터 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닉은 앤지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살던 마을로 납치당한다. 앤지가 약을 투여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강제 결혼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감금생활을 하게 되는 닉. 앤지가 사는 울라누프라는 마을은 호주 지도에도 없는, 네 가족이 마을 구성원의 전부인 마을이고 그곳에서 앤지의 아빠인 대디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황무지 한가운데, 마을을 가장한 감옥에 갇힌 닉은 그 구성원 안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크리스탈과 함께 마을을 탈출하기로 한다. 처음 황무지를 횡단하는 닉의 모습은 힘들고 피곤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롭다. 그런 스토리는 앤지를 만나 납치당해 울라누프라는 마을에 당도하게 되면서 스릴러로 바뀐다. 그때부터 급격하게 진행되는 닉의 탈출을 위한 처절한 노력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항상 느끼지만 이 작가는 빠른 서사 진행으로 긴장감과 속도감 있는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이 그리 얇지도 않은데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고, 되는대로, 자신이 편한 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었던 닉은 울라누프에서 탈출을 시도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낭비해왔던 삶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하루하루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이 감시당하며 사는 울라누프에서의 시간이 닉에게 탈출과 삶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불태우도록 만든 것이다. 인간이란 참 미련하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모든 자유와 의지를 박탈당한 그때에야 온몸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카뮈의 이방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뫼르소가 죽기 직전에서야 삶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한껏 터트린 가까스로 울라누프를 탈출해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닉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드 하트를 한 줄로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빠져 정신없이 읽고 나면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소설 속 한 문장 : 마침내 나는 나의 고독, 나의 뿌리가 없다는 사실이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