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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이유는?
예전부터 ‘설’과 ‘추석’ 중 어느 명절이 더 민족 최대의 명절인지 궁금했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았나요? 전혀, 네버, 안 궁금하셨다고요?^^ 우선 추석이 설날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건 가짜 오리지날, 즉 ‘가리지날’입니다.  추석이 이렇게 큰 명절이 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관청에선 휴일 규정이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의 관료들은 음력 1, 8, 15, 23일이 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죠.  당시 동양엔 요일 개념이 없었는데도 7일 간격으로 놀았습니다. 하늘에서 붙박이로 있는 별(항성)을 제외하고 태양 - 달, 5개 행성(화성 - 수성 - 목성 - 금성 - 토성) 등 7개 천체만 움직이기 때문에 7을 신성시 여겨 날짜 간격 단위를 7로 했기에 서양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던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 서양식 요일 개념이 적용되면서 기독교 세계처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게 되었지요. 당시 조선이 일본을 통해 서구식 요일 제도를 받아들임에 따라 일본이 번역한 대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순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이름으로 요일명을 정했는데요.  중국은 이와 달리 평일 5일을 1 - 2 - 3 - 4 - 5 요일로 달리 명명해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조선시대 휴일이 현재보다 적어 보이지만, 항상 예외가 있는 법.  춘분, 동지 등 24절기에 해당 하는 날도 놀았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그 외에도 임금님 생일, 선대왕 기일 등 별도의 임시공휴일도 있었기에 한 달에 최소 6~7일 이상 휴일이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연간 100일 정도 휴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 5일제 시행 전 대한민국 직장인보다 더 많이 쉬셨습니다. 대신 노는 날과 절기일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는 거였지요.  대체휴일 제도가 생기기 전엔 일요일과 명절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던 것과 동일하지요. 특히 세종 당시엔 당직 개념이 있어서 궁인들이 휴일에 근무하면 평일 대체 휴무가 가능했고, 아이 출산 시 관노이더라도 출산 여성에겐 90일, 남편도 15일 의무 휴일을 주었다는 겁니다. 다만,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은 매달 8, 23일 이틀만 휴일이었다네요.(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고생이네요. ) 그 외에 조선시대 당시 휴일로 지정된 명절은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설(1월 1일), 정월대보름(1월 15일), 단오(5월 5일), 추석(8월 15일).  흔히 정월대보름 대신 한식이라고 알지만, 그래서 그런지 요새 5대 명절 운운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나마도 고려시대 9대 명절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 명절마다 쉬는 기간이 달랐으니, 설날은 7일 연휴(오~. 스케일 크신 조상님들. ), 정월대보름과 단오는 각 3일간 쉬었지만, 추석은 딱 하루만 쉬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 > 정월대보름 = 단오 > 추석 순으로 그 비중이 달랐던 겁니다. 이는 당시 상황상 설, 정월대보름, 단오 등의 시기는 겨울이거나 여름이어서 날도 궂으니 집에서 쉬라는 따뜻한 배려인 반면(특히 1월의 경우엔 거의 절반 가까이 휴일이었어요.) 한창 수확을 하는 가을철인 추석은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 했을 겁니다.  실제로 일부 영남지역에선 음력 8월 15일엔 아직 벼가 여물지 않아 음력 9월 9일인 중구에 차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등 타 명절은 그냥 넘어가는데 왜 추석은 갑자기 설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2 TOP’으로 격상되었을까요? 이는 구한말 서양 문명과의 만남이 원인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 : “우리 미국엔 조상과 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이있다. 조선에도 이 같은 명절이 있는가?” 우리 조상님 : “이 넘들이……. 우릴 뭘로 보고~. 너넨 겨우 1620년부터 그거 했냐? 우리는 1800년 전 신라 유리왕 때부터 한가위란 추수 명절이 있는 뼈대 있는 나라이니라. 에헴~!” 이러면서 추석 자랑을 한 거죠.  이처럼 서구 문명과 접한 동양 3국 모두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중국 중추절(仲秋節), 일본 오봉(お盆) 등 자기네 가을 명절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께 감사를 표시하는 민족의 대표 명절로 격상시킨 겁니다.(가끔 추석을 중추절이라 부르시는데, 그건 중국 명절 이름이에요.  중국인들은 음력 설날은 춘절(春節), 음력 8월 보름을 중추철이라고 해 두 명절 이름을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유이하게 설날과 추석이 민족 고유의 명절로서 3일 휴일로 지정된 겁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도 글로벌 경쟁에 따라 그 위상이 바뀌었다는 거, 재밌는 현상이죠?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과학 경제 편-
17년지기 절친을 위해 박나래가 준비한 브라이덜 샤워
친구 보자마자 눈물 터지는 박나래ㅋㅋㅋㅋㅋㅋㅋㅋ 미리 남편한테 사진도 몰래 받아서 준비해준 것들 아는 사람한테 비싼 카메라도 빌려와서, 인생사진 남길 준비 완료!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이는 예쁜 사진♡ 친구이 각자 선물을 준비해 옴 밑에 뚫려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슬립까지 준비해줌bb 형편에 맞게 소박한 결혼식을 치루려는 친구분 그런 친구를 위해 또 드레스까지 준비해준 박나래 결혼식의 꽃 스.드.메를 모두 안한다는 친구 사진관에서 사진만 찍을 예정이라고.. 직접 재봉틀 돌리고, 손바느질 해가며 완성한 친구의 웨딩드레스 세심하게 케이프까지 만들어준 나래 친구분한테 정말 잘어울리는 드레스 드레스 입자 또 터져나오는 눈물ㅠㅠ 다른 친구들도 울컥 사진도 열심히 열심히 찍어줌 그와중에 분위기 살리는 친구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들러리 촬영을 위해 친구들 드레스까지 준비해온 나래 햇살같은 웃음 신랑 깜짝등장에 기절초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니까 못생겼다며 금방 또 화장을 고쳐주는 친구 나래 다시한번 사진 굳...★ 지금은 덤덤하게 얘기를 꺼낼수 있지만 정말 힘들게 보낸 나래의 학창시절ㅠㅠ 힘든 과거는 덮어두고 잊고싶어하는게 사람인데 박나래씨는 늘 힘든시간을 떠올리며 도움을 줬던 주변사람들을 잊지않고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때 아낌없이 베풀고 위해주는것 같아요. 친구들은 박나래가 내 친구라는 것이 평생의 큰 자랑이 되겠죠? 오랜 연애 끝에 평생을 함께 하기로한 두 배우 부부에게 큰 축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삼고초려는 허구다!
정사 삼국지가 나오기 전 위나라 어환(魚豢)이란 역사학자가 쓴 《위략(偉略)》이라는 역사서가 있습니다. 정사《삼국지》를 쓴 진수는 제갈공명이 죽기 2년 전에 태어난 자이지만, 어환은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으로 당시의 상황을 정리했는데, 위나라 역사가였던 만큼 본인이 모시던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꺾은 제갈공명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했을 겁니다. 또한 수십 년 뒤 진나라 시절 사마표가 쓴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위략》에서는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에 대해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그 내용은~ 두두두둥……! 제갈공명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형주에 있던 귀족들은 곧 북쪽에서 조조가 쳐들어올 것이라고 근심하던 중 황제로부터 숙부로 인정받은 명망가, 유비 장군이 왔다는 소식에 단체로 만나러 갔다네요. 이에 유비가 이들과 이런 저런 정세 이야기를 했는데, 제갈공명도 질문을 했다지만 유비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하지요. 우리가 흔히 게임이나 만화에서 여리여리한 꽃미남 스타일로 제갈공명을 묘사하지만, 《위략》엔 “투박한 생김새여서 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적혀 있답니다. 원래 제갈 가문은 서주에서 이름을 날리던 집안이었는데 서주가 유비, 여포, 조조로 주인이 계속 바뀌며 대학살을 당하던 전란을 맞아 그나마 안전한 형주로 이사 온 상황이었죠. 그래서 피난 와중에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제갈 가문 자제들이 각자 다른 주군을 모시게 된 겁니다. 당시 형주 양양 땅에 이사 온 제갈공명은 방덕공, 황승언 등 여러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양양 귀족 자제 모임의 주요 멤버이기도 했으니 농사나 짓던 평민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이 멤버들이 지역 대표로서 유비를 만나러 갈 때 같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유비 와의 모임에서 별다른 계책을 못 들은 다른 유지들은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좀더 어필하려고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비는 이들이 돌아가자 아직 제갈공명이 남아 있는 줄 모르고는 심심하면 하던 취미 활동을 했더랍니다. 요즘 같으면 휴대폰 게임 같은 것을 했겠지만, 당시 유비가 한 소일거리는 바로~, 소 털로 새끼 꼬기. 청년 시절 돗자리 장사를 하던 때부터 즐기던 시간 때우기 버릇이었다지요. 그 장면을 본 제갈공명은 크게 실망했나 봅니다. 그래서 유비에게 한소리 했답니다. 이에 유비가 제갈공명의 진가를 알아보고 정중히 사과한 후 책사로 모셨다고 합니다.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최초 최고편-
시각장애인 아내와 살다가 이혼까지 결심하게 되는 썰
여동생 아이디를 빌려 글을 씁니다. 제목 그대로 시각장애인인 아내와 이혼을 원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 답답한데 답답한 마음을 익명으로 털어라도 놓아야 살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제 아내는 시각장애인입니다. 희미한 명암만이 구분 가능한 정도로, 실명과 마찬가지 상태입니다. 선천적 장애는 아니고, 아주 어릴때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라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때 사고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조금 절기도 하지만 이는 크게 보이지 않은 정도입니다. 결혼 전 아내는 장애인단체에서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제가 대학생일때 봉사활동을 갔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계속 친한 지인으로 지내다가 제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직장이 생겨 돈도 벌고 안정을 찾았으니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라는 말로 대시를 하였고 1년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한명 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정말 견딜 수 있는지, 아내의 장애와 그 인생을 본인의 것으로 짊어지고 갈 자신이 있는지만 묻고 제가 그렇다고 하자 크게 반대하지 않고 아내를 품어주었습니다. 오히려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결혼에 대해 참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사랑 하나로 극복하고 결혼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제가 아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결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연애 당시 아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관리를 하는 똑똑하고 당찬 사람이었고, 밝고 명랑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한 아내의 모습은 그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주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각장애가 있다보니 집안의 모든 물건이 정확히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그 점에 대해 확실히 주의를 들었기에 조심하려 노력 또 노력하지만 한번씩 실수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너무나 심하게 폭발을 합니다. 맨 처음 폭발했을때, 신혼생활 시작한지 일주일도 채 되기 전입니다. 항상 티슈를 두는 소파 귀퉁이에 손을 뻗었는데 티슈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막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제가 무슨 일이냐 묻자 티슈 두는 자리에 왜 티슈가 없냐며 저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쌍욕이었습니다. 개만도 못한 인간, 말귀를 못알아어으니 귓구멍을 찢어야겠다는 식의 정말 소름돋는 욕들을 공중에 질러댔습니다. 아내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봐서 저는 얼어붙어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티슈는 제가 옮긴 것이 아니고 소파 귀퉁이에 있던 것이 바닥에 떨어져있었습니다. 한시간에서 두시간 사이 정도? 욕을 하고 바닥에 발을 굴러대며 화를 주체하지 못한 아내가 간신히 진정이 된 후에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것에 더 신경을 쓰겠고, 아내는 이렇게 심하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으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이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주로 집안일은 제 담당입니다. 밥, 청소, 빨래, 쓰레기버리기 등등... 가끔 아내가 돕는 건 빨래개기, 이불개기, 간단한 집정리 정도입니다. 주방에는 불과 칼이 있으니 위험하다고 몇번의 사고가 있었다고 말하기에 제가 부엌일을 자처했고, 청소를 하려해도 간단히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넣는건 외에는 제가 맡았고, 빨래는 오염의 정도를 잘 구분하지 못해 힘들다 하기에 제가 담당하기로 하고, 큰 불만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에는 너무 고맙다며 천사를 만났다며 행복해했습니다. 사랑으로 모든 걸 품을 수 있다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결혼 1년차... 하루하루 노예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중견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연봉은 4천만원 초반입니다. 결혼 후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어 외벌이입니다. 8시반 출근이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7시쯤입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씻고 밥을 합니다. 제가 밥상을 다 차리면 아내를 불러 함께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7시반쯤 집을 나섭니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7시입니다. 다시 밥을 하고, 아내를 불러 함께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본격적인 집안일을 합니다. 격일로 하루는 청소, 하루는 빨래를 하고, 밑반찬을 만들고 장보고 온 재료들을 다듬습니다. 여기까지는 불만없습니다. 그리 살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일을 하는 내내 아내의 눈치를 봐야합니다. 뭐 하나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며 폭발합니다. 제가 차린 밥상에 앉기만 하고 밥을 먹는데 혹 국이 뜨겁다 느끼면 자신을 무시해서 너무 뜨거운 국을 내어 입을 데었다고 화를 냅니다. 반찬이 맘에 안들어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합니다. 내가 밥을 안한다고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내 입에 안맞는 음식을 먹이는 건 아닌지?라는 말도 하며 화를 냅니다.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늘 답답했습니다. 얼마 전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날 비오는 날이어서 저는 부침개에 막걸리 생각이 났습니다. 마침 동료들이 전집에 간다기에 같이 갈까 싶었지만 그날따라 전화너머 아내 목소리가 너무 안좋기에 차마 말을 못꺼내고 일찍 집에 갔습니다. 집에서 해먹으려고 김치전 거리를 만들었고, 불 위에 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두른 상태였습니다. 그날 아내가 또 폭발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상 여분의 휴지를 두는 곳을 더듬었는데 여분의 휴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채워넣는걸 잊은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수에 비해 너무 심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저는 불위에 후라이팬을 둔 상태로 뛰어가 휴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불 위에 후라이팬이 있는 상태여서 불안한 마음에 휴지를 얼른 주고 얼른 주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후라이팬을 체크하며 불을 조절하는데 갑자기 등뒤로 휴지가 날아왔습니다. 휴지는 후라이팬에 맞았고, 후라이팬이 뒤집어지며 뜨거운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발등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자신이 기분나빠있는데 충분히 사과하지않고 휴지만 냉큼 주고 돌아간 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고, 그래서 자신이 화가 났다고 합니다. 제가 화상을 입은 것도 저의 잘못으로 인해 파생된 일이므로 제 탓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이 섰습니다. 이제 도저히 당신과 한집에 살아가기가 힘들다, 이혼하자 했더니 집안의 모든 것을 부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 아내를 피해 다른 방에서 잠을 자며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앞으로 아내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말에 마음 아프셨겠지만 믿고 허락해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여 차마 말씀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그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일년만에 무너진 내 자신도 바보같고, 판단력 부족도 바보같았습니다. 여동생에게 상담했습니다. 그동안 그런 일들을 전혀 몰랐던 여동생은 많이 놀랐고 그리고 그날 여동생이 짚어줘서 알았는데 그 사이 제 머리에는 원형탈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의 스트레스를 이해한 동생이 여자대 여자로 한번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집 저녁식사 자리에 여동생이 와서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여동생이 말꺼내기 힘든 일이지만 언니에게 부탁이 있다며 말을 꺼냈습니다. 두 사람 누구 못지 않게 사랑하며 시작한 결혼생활인데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춰가며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본인에게도 알려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여동생이라 편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최대한 예의를 갖춰 해결책을 찾고자 이야기했는데 시누질하는 거냐며 자신은 잘못이 없고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라며 아내는 소리를 지르고 친정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기를 붙들곤 이대로 못살겠다고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소리높여 울었습니다. 놀란 장인어른 장모님이 달려오셨고, 처형도 함께 왔습니다. (아내는 언니가 한분 계십니다) 아내가 전화하고 1시간 안에 모두 제 집에 모였습니다. 그때까지 아내는 거실에 앉아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1시간 가까이 쉬지않고 한자리에서 엄청난 데시벨로 소리를 지르는 아내를 보고 여동생은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모습, 제가 말하지도 않았고 보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결혼 전후로 우리 가족과 함께 했을때 아내 모습은 밝고 차분하였기 때문입니다. 처가댁식구들이 들어오자 아내는 나와 이혼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장모님과 처형이 감싸안으며 아무리 달래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형이 저에게 뭔가 대화를 하려 했지만 아내가 워낙 불붙듯 날뛰는 상황이라 대화가 되진 않았습니다. 결국 장모님과 처형이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장인어른만이 남아서 저와 10분정도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묻기에 그동안 아내의 폭언에 시달렸고, 며칠전엔 물건을 집어던져 기름에 화상까지 입었으며, 이것 또한 내 잘못이라며 사과조차 없다, 그동안 경제적인 일과 살림사는 것까지 내가 도맡아 하면서도 아내에게 뭐 하나 요구한적 없는데 정신적 학대까지 지속적으로 당하다보니 더이상 결혼을 유지할 길이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장인어른은 한숨을 푹푹 쉬시며 일단 애가 진정이 안되었으니 애한테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야기 나누어야겠다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 제가 장인어른께 드리는 말씀까지 고스란히 보고 들은 여동생은 펑펑 울며 저의 이혼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결혼이란 건 한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평생 의지하며 살아가야하는 일인데 저는 이 사람과 정말 더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 아내는 친정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며칠동안 잠잠하다가 처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 대신 사과한다며 저를 달래더니 제부가 와서 한번만 굽혀주면 애가 들어갈거라고 합니다.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카톡이 옵니다. 아내였습니다. (아내용 전용pc가 우리집과 처가댁에 한대씩 있습니다. 그 pc로 인터넷과 메신저를 사용할 줄 압니다.) 와서 무릎꿇고 싹싹 빌기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으름장이었습니다. 아내의 메시지가 제 폰에 들어왔다는 것조차 끔찍하여 당장 지우고 싶었지만, 이제 이혼을 생각하기에 다 증거가 될까 싶어 남겨두었습니다. 정말 마지막 정까지 다 떨어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죄스러운 마음으로 부모님께도 알렸고, 본격적으로 이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처가댁에서는 어떻게든 다시 붙이려고 노력하시는데 아내는 아직도 이따금 카톡 보내면서 이런다고 돌아갈줄 아냐고, 나는 니가 사죄하기 전까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앞뒤 안맞는 말을 구구절절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법원에 같이 가자는 말에는 답이 없습니다. 결국 합의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이혼소송을 준비하려 합니다, 법쪽으로는 전혀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 막막하지만 변호사부터 선임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조력자는 제 여동생입니다. 주위 모두가 이제 저를 욕합니다. 시각장애인인 불쌍한 아내를 버리는 남편쯤으로 매도를 하는데 제게 일어난 1년간 노예살이같던 신혼생활을 하나하나 알릴수도 없고 답답합니다. --- 몸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인 분이셨네요ㅠㅠ 1년 버틴 것도 대단해..
아내가 제가 성폭행을당했다고 의심해요
어떻게 설명해야될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해서 올립니다 저는 결혼 2년차 8개월된 아들있는 아빠입니다. 오늘 아내가 갑자기 술을 마시고 진지하게 저한테 요즘 힘든거 없냐면서 물어보는겁니다. 휴가중이라 하루종일 가족들과 시간 보내면서 너무 좋은데 “힘든거 없는데?”했더니 눈가에 눈물이 고이면서 누구한테 당했냐면서 물어보길래 처음엔 장난인줄 알았더니 정말 진지하게 계속 누구한테 당했냐고.. 대화가 안됩니다 지금.. 제 직업은 직업군인입니다 직업 특성상 항상 남자들과 지냅니다. 아내가 오해하는 부분이 얼마전 3주간 훈련을 다녀왔는데 사실 훈련기간중에 비도 많이 오고 씻지도 못해서 엉덩이 부분이 쓸렸습니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아실겁니다.. 이게 너무 심해져서 ㄸㄲ까지 너무 아파서 훈련중에 항문외과를 다녀왔었습니다 정말 다신 가기 싫은 끔찍한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빨래를 하면서 제 팬티에 피가 묻어 있었던 거와 제 핸드폰에 깔려있는 국방부 성폭력 신고앱을 보더니 완전 오해를 한거 같습니다 아내가 제발 가족한테는 다 말하라고 제발 말해달라고.. 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었더니 슬픈미소 짓지 말라면서 너무 진지하게 얘기를 합니다 에이즈 검사 받아보자하고 더 나아가서 제가 게이 아니면 양성애자까지 생각했었다고 하는데 참 하.. 아니라고 아니라고 계속 말을 해도 더이상 믿지도 않고 내일 제가 진료받았던 항문외과 가서 의사랑 상담한다네요 1시간 동안 계속 똑같은 말만 하다가 더 이상 대화에 진전이 없어서 아내 먼저 재우고 답답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제가 강간당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죠? 미치겠네 ㅋㅋㅋㅋㅋ 그래도 아내가 큰힘돼주넼ㅋㅋㅋㅋ 슬픈미소에서 터짐
[토박이말 살리기]'설거지'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토박이말 살리기]설거지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한가위 잘 쇠셨는지요? 보름달처럼 밝고 넉넉하게 잘 쇠셨길 바랍니다. 날도 맑아서 밝은 보름달을 보면서 여러 가지 바람이 이루어지길 빌었다는 말도 들었는데 여러분은 어떤 것을 비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늘 그렇듯이 토박이말이 온 누리에 퍼져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써서 막힘이 없는 나라가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토박이말바라기에서 마련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잘 되고 널리 알려져 많은 분들이 토박이말 살리기에 함께하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한가위 때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은 날 살붙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것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까지는 참 좋습니다. 지난해와 올해는 빛무리 한아홉(코로나 19) 때문에 모일 수가 없게 되어서 한결 덜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몇 사람이든 모여서 함께 먹고 나면 반드시 따라오는 이것 때문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더러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설거지’입니다. 어떤 집안에서는 차리는 일과 설거지를 나눠서 차리는 일은 안사람들이 하고 설거지는 바깥사람들이 겨끔내기로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거지’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몇 가지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설거지’라는 말은 잘 아시다시피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갈무리하는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 ‘뒷설거지’라는 말이 있으며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은 ‘비설거지’라고 합니다. 설거지라는 말의 뜻풀이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먹고 난 뒤 그릇을 ‘씻는’ 것과 아랑곳한 말 가운데 ‘가시다’와 ‘부시다’가 있습니다. ‘가시다’는 ‘물 따위로 깨끗이 씻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에서 나온 ‘입가심’과 ‘볼가심’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입가심’이란 말은 자주 듣고 쓰시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입가심’으로 뭐 먹을까?” 또는 “우리 입가심으로 ‘과일’ 좀 먹자‘”라는 말을 하곤 할 것입니다. 이때 입가심은 ’입 안을 개운하게 가시어 냄‘이라는 뜻입니다. ‘볼가심’은 ‘물 따위를 머금어 볼의 안을 깨끗이 씻음’이라는 뜻도 있고 ‘아주 적은 양으로 배고픔을 없앰’이라는 뜻도 있답니다. ‘가시다’의 이름씨꼴(명사형)은 ‘가심’입니다. ‘가심’은 ‘깨끗하지 않은 것을 물 따위로 씻는 일’이라는 뜻이 되지요. ‘청소’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두 낱말의 공통점을 찾으셨을 겁니다. 바로 ‘깨끗하게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라는 말을 써야 할 때 ‘가심’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부시다’도 ‘그릇 따위를 씻어 깨끗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앞에서 ‘가시다’에서 ‘가심’이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부심’이라는 말도 있을 법한데 말집(사전)에는 올라있지 않습니다. 앞에 ‘씻-’을 두고 ‘가시다’, ‘부시다’를 더한 ‘씻가시다’, ‘씻부시다’는 말도 있습니다. ‘가시다’, ‘부시다’ 뜻을 안다면 ‘씻어서 가시고’ ‘씻어서 부신다’는 뜻을 어림할 수 있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말모이 사전에는 ‘가시다’와 ‘부시다’가 비슷한 말이라는 풀이를 해 놓지 않았습니다. ‘씻가시다’와 ‘씻부시다’도 마찬가지여서 아쉬운데 앞으로 말집(사전)을 만드는 분들이 마음을 써 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온가을달 스무사흘 낫날(2021년 9월 23일 목요일)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설거지 #가시다 #입가심 #볼가심 #가심 #청소 #부시다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이 글은 경남일보에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