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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에서는 아련한 행복이 하늘거리고 있다 시간은 정체되어 있지 따뜻하고 한가로운 행복한 장소다 햇볕이 찬란히 내리쬐어 그곳만이 드러나 부풀어 있는 장소 거기가 양지란다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따뜻하고 한가로운 아련한 행복의 양지, 그 양지 같은 글렌굴드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연주 Glenn Gould 1932 - 1982 Bach The Goldberg variations, Partitas 1-6 & Concerto BWV 974 https://www.youtube.com/watch?v=VPQ2BhJZgWE&feature=youtube_gdata_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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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rucewyane 공감 감사해요^^
좋은 글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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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에서 최악의 적수는 상대방이 아니다!
Q. 어떻게 협상 분야를 연구하게 되었나요? A. 저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죠. 인류학이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간 행동의 중요한 부분은 싸움이죠. 저는 분쟁 해결을 연구하고 있던 법학과Roger Fisher교수를 찾아가 얘기했습니다. 저는 박사 논문으로 세계적인 협상과 평화 과정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와 로져 교수가 <Getting to Yes> 를 함께 집필했습니다. Q. 새 책 <윌리엄 유리 하버드 협상법>에서는 협상 할 때 자신을 파괴(savotage)하라고 제안하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우리는 대립이 있을때 상대방을 비난하기를 좋아합니다. 협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얄팍한 속임수를 쓰거나 돌벽처럼 꿈쩍도 안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나 결국에 상대해야 할 가장 힘든 이는 아침에 거울 비친 사람입니다. 이것은 화가 났을 때나 두려울 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서 반응하려는 인간의 타고난 성향 때문입니다. 그러나 곧 후회하죠. 저자Ambrose Bierce말했던 “ 화가 났을 때 후회할 최고의 발언을 한다” 처럼 말이죠. Q. 어떻게 자기 파괴를끝낼 수 있나요? A. 이 방법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아마도 우리가 훈련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 발코니로 가기’ 를 이야기하는 것은잠시 시간을 가지라는 비유입니다. 당신은 지금 협상이라는 무대위에 있지만 당신의 마음은 자기 자신을 내려다 볼수 있는 장소인 발코니로 가도록 상상해야 합니다. 이 방법이 당신에게 관점을 제시하고,자제력을 주고,침착하게 만들어 줍니다. 문제는 위험성이 크면 당신은 걱정되어 최상의 협상에서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죠. 모든 이에게는 자신이 선호하는 발코니로 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저는 혼자서 몇분간 조용히 시간을 가지고 이 상황에서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 집중해 봅니다. Q. 박사님의 방법중BATNA라는 단어가 매우 핵심적인것 같습니다. 무엇이BATNA죠? (BATNA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협상 난항 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 A. 이것은 상대방과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취할수 있는 최상의 행동 방침이죠. 보스랑 협상중이거나 지금 업무가 싫다고 다른 직장을 가질수 있나요? 거래처나 제조업자와 심한 언쟁이 있다고 이 문제로 중재인을 찾아 가거나 법정으로 갈수 있을까요? 모든 협상은 이 대안책이라는 범주안에서 일어납니다. 영향력이나 권력의 중요한 결정 요소이죠. 그러나 우리는 합의 이끌어내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우리가 어떤것도 포기할 만큼 상대방에게 의존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BATNA는 당신이 언제 물러서야 할지 알게 해주는 자유로움을 일깨워 줍니다. 이 책에서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내적BATNA를 이끌어내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할수 있다면 내면의 능력과 자신감으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결국 자신 내면의 깊은 심리적인 욕구들을 해결할 책임이 있는 이는 누구인지? 그 사람이 상대방이라면 본인은 저들의 포로입니다. 당신이 보기에 자신이 무척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적이라면 본인은 최고의 협상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윌리엄 유리 하버드 협상법> 저자 윌리엄 유리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 중에서 By Lauren Weber**
동물들이 왕따를 방지하는 방법.jpg
-늑대 리더의 방법- 왕따를 당하는 개체와 약한 암컷을 맺어주며 백년가약을 맺게 해준후 새끼를 낳아 책임감을 길러 왕따가 가족을 위해서라도 바보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게 장려한다 그리고, 왕따주동자를 리더가 직접 접근못하게 방어해준다 -돌고래 리더의 방법- 왕따를 당하는 개체와 왕따주도자를 격리한다 -범고래 리더의 방법- 왕따 주동자에게 몇번을 경고한후 계속 왕따를 주도하면 그 집단에서 추방한다 그리고 오은영 선생님의 대처법-아이가 있는 부모의 방법- 왕따 문제로 개인적으로 내게 자문을 구하면, 나는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부모가 가해자 아이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다. 왕따는 짓궂은 장난이 아니라 피해아이에게는 크나큰 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문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괴롭히는 주동자 아이를 조용히 알아내 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만난다. "네가 철호지? 내가 누군지 아니?"하면 아이가 당황해서 "몰라요" 그럴거다. 그러면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적으로 말하지 말고 단호하고 침착하게 "나는 민수 부모야.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는 네가 민수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어서야. 너 왜 그런 행동을 했니?"라고 묻는다. 아이는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잡아 뗄수도 있다. 이 아이에게 "우리 아이하고 앞으로 잘 지내라"라고는 말해서 안된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것은 네가 지금 어리고, 반성할 시간을 주려고 했던 거야.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이게 마지막 기회야. 다시 한번 그런 일을 하면 나도 너에게 똑같이 해줄거야. 똑같이 해주겠다는 게 쫓아다니면서 때린다는 것이 아니라 너도 그만큼 힘들어할 각오를 해야한다는 의미야. 학교를 못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경찰에서 조사도 할 거야. 학교 폭력으로 신고를 할테니 각오하고 있어. 네가 오늘 너에게 한 말이 기분나쁘다면 너의 부모에게 가서 얘기해. 우리집 알려줄테니까 "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우리 아이하고 친하게 지내지 마라. 네가 좋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 옆에 와도 이 시간 이후로는 무조건 괴롭히는 것으로 간주할테니까" 라는 말도 꼭 해줘야한다. 왕따를 시키거나 괴롭힘을 주도하는 아이들이 가장 잘 하는 말이 "친하게 지내려고 장난친 거예요"이기 때문이다. - 오은영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中
[알면 좋은 음악상식] (1) 흙수저 베토벤이 취뽀한 썰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친절하다고는 하지 않았단다. 이 박사님은 매우 괴팍하니 조심하렴. 하지만 내용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마 첫수업은 그래! 이양반이 좋겠구만. 너희들이 아무리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애들이라도 한번쯤을 들어봤을만한 베토벤이란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베토벤, 베토벤!' 거리는 것은 너희들의 무식함을 세계 만방에 떨치며 자랑하는 일이야. 베토벤의 이름은 Beet + Hoven 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Beet는 사탕무라는 뜻의 단어고 Hoven은 밭이라는 뜻이란다. 우리 축빠녀석들은 친숙할 '아인트호벤'의 그 '호벤'인지. 네덜란드식인 이 이름의 네덜란드 발음은 베이트 호번에 가깝고 베토벤이 나고 자란 독일식 발음은 베트 호픈에 가깝단다. 베토벤이라고 발음하는건, 외국인이 손흥민을 "오우! 소 능민! 히이즈 능민 쏘!" 라고 하는거랑 비슷한 무식함이란다. (하지만 난 쓰기 편하니 베토벤이라고 쓸거란다. 억울하면 박사가 되렴.) 무튼 이양반에 대해서 안 진지하게 잘 알려줄테니 잘 듣거라 흔히 이 양반을 가르켜'악성' 베토벤이라고 부르지 이때 '악성'이라는 말의 뜻은 저 표정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성질이 더럽다'는 뜻이라고 하면 매우 설득력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단다. '악성종양'할 때의 '악성'이라는 무식한 생각을 했다면 조용히 나가려무나. 이 악성은 樂聖, 즉 음악계의 성스러운 인물이란 뜻이다. 알아두도록 하렴. 베토벤 얘기가 나오면 "호오~ 음악계의 성인, 악성 베토벤 말이지?" 라고 하면 된단다. 이 베토벤은 원래 '금수저'가 될 수도 있었단다. 할아버지가 네덜란드의 귀족출신이지.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17살때 독일로 이민을 가서 궁정에 가수로 취직한 뒤 악장으로 승진하게 돼. 거기서 태어난 베토벤의 아빠도 궁정에 테너가수로 취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며 돈을 벌지. 또 엄마는 궁정 수석요리사의 딸이니 스펙 좋고 괜찮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좋은 집안 망치는 건 바로 뭐다? 그래 술이란다. 베토벤이 아버지는 전형적인 괴팍한 술주정뱅이st 였지. 나중에는 술때문에 목이 상해서 더이상 일도 할수 없게 되고 베토벤이 돈만 벌어오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곤 하지. 술로 집안 말아먹는 아버지 외에도 베토벤에게는 여러가지 불행이 닥친단다. 베토벤의 어머니는 원래 7남매를 낳았는데, 둘째/셋째/넷째를 빼고는 모두 일찍 죽게된단다. 술주정뱅이 남편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도 베토벤이 16살때 폐결핵으로 죽게 돼. 둘째인 베토벤은 남은 형제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훗날 일찍 생계를 책임지게 되지. 동생인 셋째, 넷째들.... 이자식들도 아주 그냥 순양아치였는데... 이 얘기는 좀 나중에 들려주마. 뀨 어린시절의 베토벤이란다 정말 귀엽지 않니? 이 어린시절의 베토벤에게 음악을 처음 가르친건 아버지란다.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을 쥐잡듯이 잡으며 피아노를 가르쳤지. 저 귀염댕이를... 쯧쯧. 당시 유럽을 휩쓴 신동 '모짜르트'처럼 되어야 한다며 스파르타식 피아노 강습을 하면서 빨리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싶어했어. 그래서 베토벤이 첫 대중공연을 할때, 사람들에게 8살인 베토벤을 6살이라고 속여서 홍보했어. 240년 전부터 언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 무튼 괴팍하고 가혹하게 베토벤을 가르친 아버지와는 당연히 사이가 안좋게 된단다. 베토벤은 어린시절 피아노를 부수려 한 적도 있고, 아버지의 장례식때도 하나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지. 너희들은 애 낳으면 살살 가르치거라. 그런 베토벤은 결국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서 9살때 평생의 은인이 된 궁정음악가 네페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의 기초를 배우지. 그리고는 스승의 도움을 받아 13살 때. 베토벤이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인 '드레슬러 행진곡에 의한 9개의 변주곡(WoO 63)'을 작곡하지. 위 영상의 음악이 바로 WoO 63이란다. (WoO는 ‘작품번호 없음(Werke ohne Opuszahl)’이라는 독일어의 약어란다.) 너희들이 엄마 졸라서 산 문상으로 메이플 캐쉬템 지를 나이에 베토벤이 지은 곡이란다. 한번 들어보지 않으련? 이렇게 음악적 안목과 실력을 키우던 베토벤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네페를 따라다니며 오르간 보조주자로 일하게 된단다. 이때는 급여는 없고 그냥 열정페이로 일했지. 하지만 이후에 이 스펙을 바탕으로 드디어 궁정 예배당에 정규직으로 취뽀하여 일할 수 있게 되었단다. 이 후 베토벤은 승승장구 했을까? 이후 베토벤의 성공과 사랑,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네. 다음화에는 궁정 예배당에서 일하던 베토벤이 의느님 친구 소개로 귀족 집안에 피아노 과외하러 갔다가 스폰서 물게 된 썰부터 시작하지. 수업료는 댓글이란다. 댓글이 30개 이상이 되면 다음 수업을 빨리 준비하도록 하마. 자 그럼 열심히 복습하고 댓글 달아주렴.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지독히 어려운 이유
고대 인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있다. “인생의 첫 30년은 습관을 만들고, 마지막 30년은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어떤 행동은 다른 행동에 비해 조금만 반복해도 습관이 된다.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하게 만드는 활동이 그렇다. 안됐지만, 대개는 나쁜 습관이 더 많은 도파민을 분비시키므로 이런 활동은 쉽게 버릇이 든다.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아도 흡연은 금세 습관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치실을 사용할 땐 도파민이 그리 많이 분비되지 않으니 치실질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아주 오랫동안 매일 훈련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뇌가 새로운 행동보다는 오래된 습관을 선택하도록 편향 시킨다 배측 선조체가 이렇게 말한다. “항상 이 방식으로 해왔으니 이번에도 이렇게 하자!” 그러면 전전두피질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 목적지로 가는데 도움이 안 돼.” 이 와중에 측좌핵은 이렇게 말한다. “와, 저 컵케이크 맛있겠다.”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지독히 어려운 이유 침대 옆 테이블에서 알람이 울리면 우리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하지만 알람을 끌 기운은 없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축 처진 채 느릿느릿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이런 기분으로 하루 종일을 보낼 수 있다. 기력이 하나도 안 남은 것 같고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피로는 우울증의 흔한 증상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전두피질의 기능 이상과 배측 선조체의 활동 감소가 모두 피로의 원인이다. 새로운 행동을 하려면 전전두피질이 기능해야 하는데 전전두피질에 이상이 있으면 주도권이 선조체로 넘어 간다. 그러다보니 오래 반복해온 일이나 충동에 따른 행동만 하게 된다. 그러나 우울증의 경우 배측 선조체 활동 역시 감소해 있기 때문에 충동의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때로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지독히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빌리'는 작은 마을의 쓰레기처리장 건너편에서 아주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부모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당했다. 파란만장한 유년시절을 보내며 여러 약물에 손을 댔지만, 이후 그는 대학 풋볼팀 선수로 활동했고 텔레비전 작가로 성공했으며 신경과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줄곧 인종차별과 동성애혐오, 우울증을 견뎌내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몸무게는 317킬로그램이었다. 빌리의 경우 체중문제와 정서문제가 서로 얽혀있다. 그는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먹는 행위로 기분을 끌어올린다. 그런데 과체중 상태는 반대로 우울의 원인이기도 하다. 빌리도 이것을 잘 안다. 하지만 수년 동안 고치지 못했다. 그건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습관은 고치기 어려우니까 습관이다. 때로는 너무 깊히 뿌리박혀 있어서 도저히 고칠 수 없을 거라 느껴지는 습관도 있다. 습관을 고치는 첫 단계는 그런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며, 두 번째는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습관은 정말로 고칠 수 있다. 치료나 약물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몇가지 활동을 하는 것으로 고칠 수도 있다. 나쁜 습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그 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선조체가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달아 나쁜 습관을 실행하고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마냥 행복해한다. 우리 스스로 나쁜 습관 때문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선조체가 나쁜 습관을 의식하지 못한다. 잠든 채 걸어다니며 한 일에 대해 몽유병 환자를 탓할 수 없는 것처럼. 충동은 순간적인 욕망에 따라 추동되는 행위다. 무심코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전에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굳어진 나쁜 습관에는 부담감에 압도되면 세상에 문을 닫아거는 것처럼 자신에게 해로운 일도 있다. 쾌락을 주는 모든 것은 도파민을 분비한다. 돈을 따는 것도, 마약도, 초콜릿도. 그러나 배측 선조체에서 분비된 도파민은 쾌락을 느끼게 해주지 않고 단지 우리를 행동하게 내모는 역할만 한다. 그래서 어떤 습관은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실행하게 되고, 그것이 감정의 하강나선을 초래한다. 따라서 유혹에 저항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유혹을 피하는 것이 더 쉽다. 예컨대 빌리는 자기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본다는 걸 깨닫고 방에서 텔레비전 수신기를 치웠다. 뇌는 늘 가던 길만 가고싶어한다. 배측 선조체에 새겨지는 패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전거 타는 법을 한 번 배우면 절대 잊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나쁜 습관을 고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오래된 습관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저 강력한 새 습관을 들이면 예전 습관이 약해지는 것 뿐이다. 따라서 우리 뇌가 어떤 길을 따라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변화의 중요한 단계다. 안타깝게도 때로 문제는 나쁜 습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있다. 우리의 가장 오래된 습관은 아마 인생의 가장 큰 스트레스에서 주의를 돌리는 데 사용했던 습관일 것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그 습관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는 여전히 그 습관을 반복한다. 모든 중독이 다 이렇다. 습관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더 습관대로 행동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습관에 굴복하면 더 큰 스트레스가 돌아오고, 그것이 다시 습관의 방아쇠를 당긴다. 따라서 다른 습관으로 나쁜 습관을 대체해야 한다. 빌리는 음식중독을 정교한 푸드아트 조각품 만드는 일로 대체했다. 사과로 장미를 조각하고 멜론으로 백조를 조각했다. 이제 빌리는 먹어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면 덜 파괴적인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나쁜 습관이 촉발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운동과 글쓰기, 마음챙김 명상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이런 조치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빌리는 체중을 약 90킬로그램 줄였고 지금도 그의 체중은 계속 줄고 있다. 그는 내가 몇 문장으로 묘사한 것보다 훨씬 힘들게 고군분투 해왔을 것이다. 어쨌든 더 건설적인 대처습관을 들이고 뇌의 스트레스는 줄이는 건 분명 가능한 일이다. 심호흡하라. 안절부절 못하거나 나쁜 습관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끼면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어라. 길고 느린 호흡은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진정시킨다. 안타깝게도 습관을 촉발하는 계기는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습관이 촉발되면 우리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줄 전전두피질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목표를 세우면 측좌핵과 전전두피질, 전방대상피질을 비롯한 뇌 영역에 변화가 생긴다. 결국 요점은 진부하지만 과학적으로 타당한 경구로 정리할 수 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뇌가 재배선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배측 선조체에 어떤 행동의 암호를 새기는 방법은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지만 배측 선조체는 일단 길들고 나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나이가 얼마나 들었든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뇌를 변화시키고 인생을 개선할 힘이 있는 것이다. 우울증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상승나선은 시작된 셈이다. 이해는 그 자체로 강력함 힘을 갖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면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느 느낌이 든다. 또한 이해는 인정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는 어려워진다. 대학 시절이 끝나갈 무렵,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결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런 우유부단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멀스멀 번져나가 그해 여름에 무엇을 할지도 결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면 모든 게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거창한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작게 시작하면 된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지,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지 선택하라. 삶의 어떤 부분에 단호히 결정을 내리면 다른 부분에 대한 결단력도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가 있다.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행하되 거기에 의문을 달지 마라. 우울증이 지닌 문제점은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회로는 아주 많이 사용하고, 회복되도록 하는 회로는 덜 사용한다는 점이다. ‘결정내리기’는 상승나선에 시동을 걸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바른 방향으로 일단 한 걸음만 내디뎌라. 출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내 친구인 제리 화이트는 예루살렘에서 유학하던 중에 골란 고원으로 캠핑을 갔다가 중동전쟁때 묻혔던 지뢰를 밟았다. 그는 두 다리를 잃었고 생명까지 위태로웠다. 그가 여러 달 병원 침대에 누워 회한과 분노, 씁쓸함 그리고 자기 연민 같은 복잡한 심정으로 뒤엉켜 있을 무렵, 옆 침상에 있던 군인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제리, 이 일은 자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 아니면 최고의 일이네, 자네가 결정하게!" 제리는 그 군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이 겪은 불행이 타인 탓만 하는 희생양의 역할로 전락하지 않도록 마음을 고쳐먹었다. 제리는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고 주변 상황을 변화시켰다. "난 불운으로 인해 인생을 망쳐버린 냉소적이고 징징대는 제리라는 내 이미지가 싫었어." 그는 <나는 부셔지지 않으리>라는 감동적인 책도 출간했다. "살아가야 할 인생이 있었고 뛰건 구르건 어쨌든 내 인생이었고 난 되돌리려 했다." 그 결과 제리는 자신과 자기의 인생에서 예스를 얻었다. 물론 이것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제리는 삶이 계속되도록 그의 불운한 사고에 대응했다. 이로 인해 제리는 세계적으로 전쟁이나 테러로 인한 지뢰 부상에서 살아남은 희생자들을 돕는 생존자단체를 공동 설립했고, 이 단체는 노벨상 산하에서 지뢰를 금지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제리는 공공서비스 분야에 관여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는데 힘쓰고 있다. 그 자신에게서 예스를 이끌어낸 것이 남들로부터 예스를 얻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가 해온 일은 사회 전체의 예스를 구하는 데 일조했다.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하던 원망이 엄청난 에너지가 되어 분출된다. 무책임하고 남 탓하는 것으로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자신을 희생양으로 가둬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벽은 깨지고 자유로워진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럴 만하건 아니건 인생을 결정하는 요인은 자신이다. 우리 마음대로 닥친 상황을 선택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문제를 대응하는 태도는 결정할 수 있다. - 출처). <윌리엄 유리 하버드 협상법> 중에서
조선은 어떻게 500년이나 갔을까? (길지만 재밌는 글)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에 일부분인데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대략 우리가 좀 비루하게 인식하기도 하는 조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하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 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출처 : http://dotty.org/2699099
[알면 좋은 음악상식] (2) 흙수저 베토벤의 운수 좋은 날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친절하다고는 하지 않았단다. 이 박사님은 매우 괴팍하니 조심하렴. 하지만 내용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마 저번에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https://www.vingle.net/posts/1196375 - 지난카드 : (1) 흙수저 베토벤이 취뽀한 썰) 오! 베토벤이 궁정 예배당에 정규직으로 취뽀한 얘기까지 했으니 의느님 친구가 과외 물어다준 얘기부터 하면 되겠구나! 베토벤에게는 의대생 친구가 있었단다. 이 의대생친구는 좋은 인맥을 많이 알고 있었지. 그래서 귀족가문인 '브로우닝 집안'에 베토벤을 소개시켜준단다. 덕분에 베토벤은 브로우닝 집안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지. 올ㅋ 과외 물어다준 친구에게 기프티콘이라도 쐈겠지?? 좋은 집안에 드나든 덕분에, 이 집에서 평생친구이자 스폰서인 '발트슈타인 백작'도 만났단다. 나잇살 주름살 축처진 살 무한 리프팅 해줬다는 소문이 있지. 그리고 이 집안에서 또 여친도 겟! 사진은 브로우닝 집안의 장녀인 엘레오노레 폰 브로우닝. 베토벤이 19살에 만난 첫 여자친구란다(당시 18살). 일과 thㅏ랑! thㅏ랑과 일! 크으.. (이 집안 소개시켜준 의대생한테 최소 베스킨 파인트는 쐈길 바라자꾸나.) 이짜씩들이 하라는 피아노는 안하고 연애를! 이라고 부들부들 할 필요는 없단다. 왜냐면 금방 깨지니깐...ㅜㅜㅠ 너무 어린시절 만난 여자친구이기도 하고, 흙수저 베토벤과는 다른 금수저 집안이라 집안차이로 오래 만나기는 어려웠지. 그래서 이 엘로오노레는 나중에 같은 금수저인 그 의대생친구랑 결혼함..ㅋ 뭐 뒤끝 없이 헤어졌는지 베토벤, 의대생친구, 엘레오노레는 사이 멀어지는 일 없이 평생 연을 이어가게 된단다. 쿨하구나 유럽녀석들. 브로우닝 집안에서 교양과 인맥을 쌓던 베토벤. 가진 건 재능밖에 없던 베토벤이지만 그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은 꽤 있었단다. 당시 본의 제후인 막시밀리안 프란츠도 그 중 하나였지. 베토벤은 이 막시밀리안 프란츠의 후원을 받아, 유럽음악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1차 여행을 떠나게 된단다. 그곳에서 모짜르트를 만났다 '카더라'라는 소문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단다. 위 사진에서 왼쪽이 모짜르트고 오른쪽이 베토벤이지. thㅏ랑을 하더니 뀨토벤 시절보다는 많이 늠름해졌구나. 무튼, 모짜르트의 전기를 쓰는 전기작가 오토 얀의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이 모짜르트를 찾아왔다고 한단다. 당시 이미 저명한 음악가였던 모짜르트는 본에서 온 촌놈인 베토벤의 방문을 처음에는 거절했지. 그러다가 독일에서 유명한 음악가라는 얘기를 듣고 한번 만나보기로 한단다. 우리 짜르트가 스펙을 많이 보는 것 같구나. 베토벤의 연주를 지켜본 모짜르트는 처음에는 시큰둥해 했단다. 잘 만들어진 곡을 열심히 외워서 치는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때 베토벤이 모짜르트에게 말한단다. "아무 테마나 던져보슈" 모짜르트가 말하는 테마들에 맞춰 환상적인 즉흥곡을 연주한단다. 이 연주를 본 모짜르트는 친구들이 모여있는곳으로 뛰어가 이렇게 말하지 "나보다 더 유명하게 될 음악가가 나타났다네!" 뭔가 K-Pop Star의 박진영쯤이 할 것같은 대사지만 아무튼 그랬다고 한단다. 베토벤의 빈 1차여행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단다. 그리고 여행을 갔던 그해.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 금방 귀국하게 되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1787년으로부터 2년 후, 베토벤은 생활력을 완전히 상실한 아버지를 이어 궁정 교향악단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며 가족들을 부양한단다. 다시 생계에 찌들어야 했어. 꿈도 많고 재능도 많은 베토벤이었지만 일단 가족을 먹여살리는 게 최우선이었지. 하지만!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베토벤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단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이 베토벤이 살고 있는 본에 여행을 온 것이지. (똑똑한 빙글러라면 세번 외우거라.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하이든의 아버지 교향곡) 이때 베토벤은 하이든을 만나서 자신이 작곡한 두 곡의 칸타타(WoO.87,WoO.88)의 악보를 보여줄 수 있게 돼. 이 악보를 본 하이든은, 베토벤이 빈에 오면 하이든의 제자로 받아주기로 한단다. 위에 링크된 영상이 바로 하이든을 반하게 한 음악! WoO 87 -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의 사망을 애도하는 장송 칸타타 WoO 88 - 레오폴드 2세의 황위 계승을 축하하는 칸타타 란다. (WoO가 작품번호 없음이라는건 지난번에 배웠지? 상당히 기니 적당히 듣거라) 이렇게 1790년에 하이든과 연을 만든 베토벤은, 1792년, 제후의 도움을 받아 다시한번 오스트리아 빈으로 갈 수 있게 되지. 꿈에 그리던 하이든에게서 레슨을 받게 된거란다. 그렇게 레슨을 받으며 감격에 겨워진 베토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아 이 선생 지내보니 완전 별로네..." 다음 시간에는 스승을 떠나는것도 모자라서 스승 뒷담화하며 승승장구하는 베토벤의 이야기를 해주마. 아마 베토벤편은 3편으로 끝나거나 길면 4편정도에서 끝날 것 같구나. 이번에도 수업료는 댓글 이란다! 30개 이상 달리면 열심히 또 준비해오마 최근 노인우울증이 급증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댓글을 달아준다면 노인우울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니?? 그럼 은근히 기대하고 있으마.
하루 한 곡 스페셜 : 피아노를 배우고 싶게 만드는 연주곡 10곡 소개
저는 레스너이기도 합니다. 제 레슨생들의 대부분은 프로들이시거나 프로 입문의 꿈을 갖고 계신 전문 음악인들이 80% 정도? 단지 취미를 위한 레슨생보다 비중이 큰 편이지만, 특히 취미를 위해 악기를 배우시고자 하는 분들은 수많은 악기 중 피아노를 선택한 계기가 나름 정말정말 확실한 편이랍니다. 주로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장르의 곡을 들으시고 스트레스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이런 곡을 직접 듣고 연주하고 더 나아가서는 직접 만들고 싶다 생각하셔서 오시는 거지요. (내가 다 뿌듯 ) 아무튼 오늘 하루 한 곡 스페셜에서는 많은 분들에게 자극이 되주었는지 저에게 연주, 레슨, 악보를 많이 요청하시며 실제로 레슨도 많이 하는 곡들을 소개해드리렵니다. 전문 음악인들의 선곡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취향에도 잘 맞고 귀에 익숙한 곡일거에요~ 함께 즐겨요!! 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언제나 몇 번이라도 (Easy-listening, New age piano, Soundtrack) 2. Dimitri Shostakovichi - Jazz waltz no.2 (Classic) 3. 이루마 - River flows in you (Easy-listening, New age piano) 4. Debussy - Clair de luna (Classic) 5. 히사이시 조 - Summer (Easy-listening, New age piano, Soundtrack) 6. DJ Okawari - Flower dance (Sibuya K, Easy-listening) 7. Chopin Etude Op.10 no.5 (흑건) (Classic) 8. Michel Petrucciani - September second (Jazz) 9. 몽라 - Paris Paris (Easy-listening, New age piano) 10. Opera Carmen - Habanera (Tango)
'우마무스메'에는 '우마뾰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마무스메의 음악 퀄리티란 게임과 음악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게임과 음악이 시너지를 일으킨 사례도 많습니다. 두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써 보고자 합니다. 흥미롭지만 어디에서도 정리된 내용을 찾기 어려운 소재를 모았습니다. - 게임과 음악 연재 21년과 22년, <우마무스메>는 일본과 한국 모두를 강타한 게임이었다. 지금은 전성기 수준까진 아니지만, 서브컬처 게임의 본거지로 여겨지는 일본 시장에서 "모두가 <우마무스메>를 하러 가서 (원래 하던 게임에)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만큼 절대 강자의 위치까지 올랐었다. 국내에서는 '일본 경마'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과 특유의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게임 시스템으로 대박 흥행까지는 어렵다는 의견, 그리고 '마차 시위'로 인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브컬처 게임 순위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우마무스메>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게임의 퀄리티에 있었다고 이전 기사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지만, 실제로 게임을 오랜 기간 플레이해보니 한 가지 놓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음악과 게임이 이뤄내는 조화다. 성우가 노래를 부르는 '보컬 곡'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육성과 레이스 등 플레이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콘텐츠에서 흘러나오는 OST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로 <우마무스메>는 일본의 게임 개발 관련 시상식인 'CEDEC 2022'(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개발자 컨퍼런스 2022)에서 '사운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주최측은 "레이스의 현장감이나 설렘,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몇 번이나 플레이하고 싶어지는 사운드 연출"과 "발소리나 함성의 패턴을 많이 준비해 장면마다 덧셈으로써, 활기차고 플레이어를 질리지 않게 하는 효과음 연출"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우마무스메>에는 ‘우마뾰이 전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작권 문제에 대한 우려로 개별 곡에 대한 동영상은 링크하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쉽지 않았던 작업 과정 <우마무스메>의 작곡 과정은 이외로 순탄치 않았다. 사이게임즈에서 사운드 프로듀서 직책을 역임하고 있는 '혼다 아키히로'와 일본 현지 음악 매체 '리얼 사운드'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래 사이게임즈는 각 게임의 BGM은 대부분 외주 회사에 맡겨 왔다. 회사의 사운드 팀은 효과음 정도를 담당하는 정도였다. 변화는 <프린세스 커넥트: 리다이브!>(이하 프리코네) 때부터였다.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 등의 음악을 맡아 온 혼다 아키히로가 사이게임즈에 영입된 것도 이맘때이다. 변화의 시작점이었던 만큼 사이게임즈는 <프리코네>를 통해 차근차근 경험을 쌓기 시작했는데, 게임에 수록된 음악이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하나하나의 퀄리티 향상에 집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령 보통 게임 음악을 녹음하면 한 번에 20개 정도를 진행하는데, 사이게임즈는 5곡에서 7곡 정도를 녹음했다. 음악 역시 실제 악기의 소리를 최대한 담았다. 사이게임즈는 퀄리티에 대한 집착으로 유명한데 OST의 퀄리티에 대한 집착은 이맘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이게임즈 사운드부. 가운데가 혼다 하키히로 (출처: Cygames.Inc) 이러한 방법의 장점은 음악의 흐름과 연출 과정을 개발사가 게임 시스템에 맞춰 세세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외주 제작 방식만을 사용하면 수정이나 리메이크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마무스메> 역시 비슷한 기법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큰 부침이 있었다. <우마무스메>는 프로젝트 공개 이후부터 출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으로 유명하다. 16년 첫 공개되고 21년 출시됐으니 공개 후 출시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초기 개발 과정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애매한 3D로부터 완전한 3D 게임으로의 변화다. <우마무스메>의 초기 플레이 동영상을 확인하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게임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사이게임즈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에는 시도할 수 없었던 것들이 가능해졌다는 이유로 <우마무스메>에 대한 전면 재작업에 들어갔다.  2018년 공개된 2차 PV에서 나온 개발 도중의 스크린샷. 이 때만 하더라도 완전한 3D 게임이 아니었다 (출처: Cygames.Inc) 게임의 방향성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이미 제작이 완료된 30개의 배경 음악 역시 새로 만들기로 결정됐다. 공식 OST집의 서문에 따르면 2020년 4월 경으로 추측된다. 혼다 아키히로는 기존의 배경 음악은 완전한 3D 게임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곡됐기에, 게임 연출이 크게 바뀐 만큼 사운드 또한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대유행까지 겹쳤지만 <프리코네> 때부터 역량을 쌓아 온 사이게임즈에겐 이를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혼다 아키히로가 홀로 대부분의 작업을 담당했던 초기와 달리 인력이 늘어났으며, 업무의 세분화가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할 것은 많겠지만, 본 칼럼에서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레이스와 육성 BGM를 위주로 이야기해 본다. (출처: Cygames.Inc) # '내 우마무스메를 키운다' <우마무스메>에서 플레이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당연히 육성이다. 기초를 다지는 ‘인자작’이나 ‘팀 레이스’, ‘챔피언스 미팅’과 같은 핵심 콘텐츠에 출주시키기 위한 나만의 우마무스메 육성을 위해서는 수백 번의 반복 노동이 필요하다. 게임 OST는 이용자가 이런 반복 노동 속에서 계속해서 집중하게 하는 데 중요하다. 카페에서 공부를 할 때 ‘백색 소음’ 덕분에 집중이 잘 된다는 원리와 유사한데, 미국 과학 잡지 파퓰러사이언스에 따르면 인간의 귀는 사람 목소리의 주파수에 맞춰져 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누군가 떠든다면 자연스레 주의가 그 쪽으로 향하기에 집중력이 깨진다.  그렇기에 적당한 소음은 사람의 목소리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몇몇 소리가 인식되지 않도록 해 뇌의 산만함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엔딩곡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게임 OST에는 목소리가 없으며, 있더라도 “아~아~”하는 불명확한 코러스가 위주인 이유다. 빠른 템포의 음악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에서 <우마무스메>의 육성은 수백 번 이상을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반복적인 게임플레이에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음악을 통해 긴장 상태를 유지해줄 필요가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힙합이나 락 장르의 음악을 듣는 이유와 같은데, <우마무스메>의 육성 OST 역시 다채로운 멜로디를 강조하고 있다. 우마무스메 한 마리를 위해 수십 번의 게임플레이를 반복해야 하는데, 음악마저 심심하면 버티기 어렵다. <우마무스메>의 초기 육성 OST는 전문 음악 제작 회사 ‘이매진’의 ‘히가시오지 켄타’가 맡았다(누군지 모르겠다면 ‘꿈을 걸어’의 작곡가가 이 사람이다). <아이돌 마스터>의 곡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프리코네>를 포함해 사이게임즈의 다양한 게임에 참여했기에 OST를 듣다 보면 전작과 일부 유사한 느낌이 일부 들기도 한다. 초창기의 육성 OST는 조금 심심한 느낌이 있었다. <우마무스메>의 톡톡 튀는 분위기에 약간의 변주 정도만을 담는 ‘백 뮤직의 역할에 충실했다. 농담으로 언급한 것이지만, 작곡가 역시 누워서 우마무스메를 육성하다 졸곤 하는 “꾸벅꾸벅 트레이너”가 될 줄은 몰랐다고 언급했다. 이에 다음 시나리오인 '아오하루배'에서는 보다 다양한 악기를 내세워 풍부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마무스메> 유저라면 누구나 누워 인자작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던 나머지 얼굴에 폰을 떨어트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출처: 카카오게임즈) 특히, 아오하루배의 육성 OST는 플레이어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해당 시나리오에서 캐릭터의 육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의 랭크를 올리는 것인데, F부터 시작해 C와 A랭크에 도달할 때마다 음악이 변화한다. 기자 역시 클래식급 6월이 다가오는데 팀 육성이 충분하지 못해 음악이 바뀌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해지곤 한다. 가장 호평을 받았던 육성 OST는 일본 서버에서 1주년을 기해 업데이트된 '클라이맥스 시나리오'다. 해당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OST는 기존 느낌과 차별화된 감이 있다. 전체적인 템포가 빨라졌으며 강렬한 전자 기타 사운드가 멜로디 전면에 등장했다. 이는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의 콘셉트와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아오하루배'가 자신만의 팀을 모아 키시모토 이사장 대리 '팀 퍼스트'와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면,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의 스토리는 이름에 걸맞게 언론사가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 자신이 '최강'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에 맞춰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에서는 기존 우마무스메와의 이벤트가 대부분 나오지 않는다. 육성 시스템 역시 복잡해졌는데, 기본적으로는 레이스에 출주해 얻은 포인트로 아이템을 구매하며 우마무스메를 성장시켜야 한다. 클라이맥스 시나리오 (출처: Cygames.Inc) 사담을 조금 붙이면 배경만 보더라도 두 시나리오의 콘셉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오하루배는 팀원이 항상 배경에서 준비 운동을 하고 있으며, 성장할수록 트레이닝 시설이 더욱 발전하는 방식으로 뒷배경이 변화한다. 반면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의 배경은 오로지 육성 우마무스메만 등장하는 트레이너실이며,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이 오면 관련한 장식이 꾸며지는 등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 '최강이 된다'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담당 우마무스메와 보내는 3년' 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한국 서버에선 상당히 달성하기 어려운 'SS'랭크를 쉽게 갈 수 있을 정도로 얻을 수 있는 스탯 상한치가 크게 상승했다는 점도 플레이어가 받는 인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 아오하루배 / (좌) 클라이맥스 시나리오 더불어 3개의 곡으로 나뉘어 있던 아오하루배와는 달리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에서는 육성 OST가 다시 두 개로 나뉘었다. 2년차 정도까지 나오는 주니어급과 3년차부터 등장하는 시니어급으로 나뉘어 있는데, 차별점이라면 곡의 구성이나 진행 방식, 멜로디는 유사하지만 시니어급에서는 더욱 강한 리듬으로 확실히 '성장했다'라는 느낌을 주는 데 집중했다. 한 일본 게이머는 "육성하고 있으면, 대체로 이 곡(시니어급 육성O ST)이 흐르는 타이밍부터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이기게 되기 때문에, 약진이 시작된다는 느낌으로 좋아한다"라고 언급했다. 정리하자면 시나리오의 콘셉트에 맞추어 노래의 테마를 잡고,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마무스메> 육성 OST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시나리오별로 테마가 다른 만큼 색다르면서도 풍부한 멜로디로 반복 육성에 대한 부담감을 덜하게 해준다는 점도 중요하다. <우마무스메>를 해 본 게이머라면 ‘고점’이 다가온 순간 빨라진 템포의 음악에 맞춰 손에 땀이 찬 경험은 모두 있을 것이다. 물론, ‘마지막 3 턴’에 서포트 우마무스메가 파업을 선언하면 도로아미타불이긴 하지만 말이다.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의 육성 OST는 꼭 찾아 보시길. 링크를 걸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랜드 라이브의 육성 OST도 이에 못지 않으니 들어보시길 (출처: Cygames.Inc) # '키워낸 우마무스메로 레이스에 나간다' 우마무스메를 육성했다면 이제 레이스에 나갈 시간이다. 혼다 아키히로는 니코니코 동화와의 인터뷰에서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레이스를 담당한 프랑스 출신 직원의 고집이 상당하기에, 해당 직원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쉽게도 프랑스인 직원과의 추가 인터뷰는 진행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직원은 '루카스 나이네무투'라는 사이게임즈 소속 작곡가로 보인다. 약력을 살피면 TV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의 음악 외주를 맡는 기업 'TRYTONELABO' 출신이다.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마스터> 등의 게임 음악을 담당하는 등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작곡가다. 공식 OST집의 설명에 따르면 최초로 만들어진 레이스 음악은 루카스 나이네무투가 작업한 'GIII 레이스'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만큼 레이스 OST의 틀을 잡았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음악이 두 파트로 나뉘었다는 점과 레이스에 따라 OST의 길이가 변화한다는 점이다. <우마무스메>의 레이스 <우마무스메>의 레이스 OST는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스타트 직후부터 종반 코너까지 재생되는 음악과, 레이스 종반에 접어들며 라스트 스퍼트 모드로 진입할 때 나오는 하이라이트 음악이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음악은 우마무스메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끝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우마무스메>를 플레이 해봤다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스의 길이는 항상 다르다. 단거리, 마일 등 거리에 따라 다르며, 나카야마의 직선은 짧다. 레이스의 페이스에 따라 골인 시간 역시 항상 바뀐다.  이 부분은 멜로디를 재작업한 별도의 음악을 게임에 넣어 거리나 경기 페이스별로 다른 길이의 음악이 재생되도록 해 맞췄다. 라스트 스퍼트 구간 역시 거리별로 다른 길이의 음악이 재생되기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도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에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멎도록 연출했다. 하이라이트 음악은 우마무스메가 최종 가속을 시작하는 종반에 시작해 결승선 통과와 함께 끝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항상 완벽한 타이밍에 노래가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 멎고 내 우마무스메가 1착으로 승리했다는 알림이 뜰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 앞서 많은 부분이 사이게임즈 내부에서 주로 작업된다고 언급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당연히 외주 의뢰를 요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곡은 '아리마 기념/일본 더비/URA 파이널스'에 사용된 경주 OST다. <헤일로 5>와 <메탈 기어 솔리드 4>, <스즈메의 문단속>의 OST를 맡았던 유명 작곡가 '진노우치 카즈마' 그리고 카즈마와 같이 작업을 진행하는 토다 노부코가 작곡을 맡았다. 두 작곡가 모두 'FILMSCORE LLC' 소속이다. 녹음은 이들과 같이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담당했으며, 보다 게임의 분위기에 맞도록 곡을 마스터링하는 편곡(어레인지) 작업은 히가시오지 켄타가 맡았다.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출처: 공식 홈페이지) 덕분에 해당 OST는 게임의 콘셉트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작곡가도, 녹음 장소도 다른 만큼 노래 전반에 깔린 웅장한 분위기가 레이스의 중요함을 배가시켜 주며, 아이리쉬 스타일로 연주된 피들은 짜릿한 속도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특히 끊길 듯 하면서도 끊기지 않는, 드럼과 기타가 사라진 상태에서 오직 오케스트라의 울림만으로 빚어낸 라스트 스퍼트의 멜로디가 주는 긴장감은 가히 진국이라 할 수 있다.  후에 스토리 모드로 업데이트될 스페셜 위크와 그래스 원더의 특수 레이스에서는 레이스의 길이에 맞춰 편곡된 전용 아리마 기념 OST가 나오는데, 3코너에서 4코너, 최종 직선 진입 등 실제 경마 페이스에 맞춘 철저한 멜로디 배분을 보여준다.  실제 아리마 기념 동영상과 맞춰 보면 소름이 돋는 수준인데, 개인적으로는 2012년 ‘불침함’ 고유기의 모티브가 된 골드 십의 2012 아리마 기념과 OST를 맞춰 보는 것을 추천한다. 경기 동영상이 시작하고 1초 정도 뒤 OST를 같이 재생하면 된다. 곡의 페이스에 가장 잘 맞는 경기다. 아오하루배의 최종 레이스에서는 변형된 산신(혹은 샤미센)로 추정되는 소리를 시작으로 해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곡 변주를 보여줬다. '뉴 트랙'의 최종 레이스 OST는 더욱 발전해 4분할에 가깝게 음악이 변한 편인데, 최장거리를 기준으로 시작 부분, 중반, 종반, 라스트 스퍼트 구간으로 구성이 나뉘어 있는 식이다. 정확한 구분은 아니다. 클라이맥스 시나리오의 최종 레이스 OST는 그야말로 정점이라 할 만한데, <우마무스메>의 게임 시스템과도 분위기가 일부 맞닿아 있다.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면 해당 시나리오에서 최강의 자리에 오른 우마무스메의 이야기는 끝이 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챔피언스 미팅'과 같은 콘텐츠로 나아가는 첫 걸음일 뿐이다. 수많은 유저가 울고 웃는 최종 콘텐츠 '챔피언스 미팅' (출처: 카카오게임즈) 해당 캐릭터를 키워내기 위해 준비한 ‘인자’까지 생각하면 단순한 20분, 30분이 아닌 수십 일에 걸친 노력이 우마무스메에 녹아 있는 것이고, 클라이맥스의 최종 레이스 OST는 드디어 내가 육성해 낸 우마무스메가 준비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장거리 레이스 기준 종반 진입 전 재생되는 멜로디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레이스 전 재생되는 클라이맥스 시나리오 전용의 '패독' OST 그리고 최종 직선의 스퍼트 음악과 함께 결승선으로 다가오는 우마무스메의 발굽 소리, 커지는 관객의 함성, 상황에 맞춘 해설은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한다. 참고로 뉴 트랙에서는 일본 경마 해설가 '호소에 준코'를 섭외해 각 우마무스메마다 고유의 우승 해설이 나오도록 해 놓았다. 클라이막스 시나리오의 최종 레이스 (출처: 유튜브)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OST집의 크레딧을 살펴 보면 '팡파레 음악'의 편곡 담당 뮤지션 리스트가 이상하리만큼 화려한 편이다. 팡파레는 실제 경마에서 레이스 전 연주되는 음악을 말하는데, 관객의 합을 맞춘 박수소리까지 그대로 고증했다. 도쿄&나카야마 팡파레는 <철권>, <소울 칼리버> 등에 참여한 유명 작곡가 '타카다 류이치', 교토&한신 팡파레는 <에이스 컴뱃> 시리즈의 OST를 맡아 온 '코바야시 케이키', 타카라즈카 팡파레는 <갓 이터> 시리즈 등에 참여한 시이나 고(시이나 마사루)가 맡았다.  30초도 넘지 않는 음악에 이 정도의 뮤지션 라인업은 비단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쉽게도 아오하루배 이후의 OST는 아직 앨범이 출시되지 않았기에, 이들이 다른 음악의 편곡 과정에까지 참여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다.  <에이스 컴뱃> 시리즈를 좋아했기에, OST 앨범 크레딧에서 '코바야시 케이키'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땐 깜짝 놀랐다. (출처: 에이스 컴뱃 공식 채널 / 사진은 본문과 관계없음) # 솔직히 말해 이상한 게임입니다. 그런데 왜 성공했냐면요 기자가 음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우마무스메>의 음악적 특성을 정의하기는 조금 어렵다. 어떨 때는 중독적인 멜로디를 반복하는 전파계에 가까운 노래가 나오고(우마뾰이 전설), 어떨 때는 현악기와 금관악기를 위시로 한 실제 오케스트라가 녹음한 웅장한 음악(아리마 기념/일본 더비/URA파이널스)이 나온다. 전자 기타가 중심을 잡고 있는 열혈스러운 음악(클라이맥스 시나리오)이 위주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우마무스메>의 특성이며, 앞서 언급했던 내부 시스템에서 가져올 수 있는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초안이나 특정한 콘셉트에 구애받지 않고 시나리오와 이벤트, 레이스의 특성에 맞춰 그때그때 가장 적절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더불어, 상황에 맞춘 OST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해 '나만의 우마무스메를 키워내 우승한다'라는 과정에서 나오는 감정을 음악으로 극대화하는 것이 <우마무스메>의 사운드 팀이 이뤄낸 가장 큰 성취다. 최근 추세를 역행하는 무거운 게임 시스템과 부담스러운 과금 구조에도 불구하고 <우마무스메>가 아시아권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간과 돈을 많이 쓰는 게임이라면 내가 소비한 시간과 돈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 만큼의 감동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해야 한다. <우마무스메>는 그런 게임이다.  오늘부터라도 한 번 음량을 키워 음악과 함께 <우마무스메>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좋은 이어폰, 혹은 헤드셋과 함께라면 풍부한 사운드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Cygames.Inc)
미안하지만, 네 불행엔 아무도 관심없다.
이 세상의 행복의 총량이란 것이 정해져있어서 누군가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행복할 만큼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되는가? 자신은 나름 좋은 사람으로 범법 행위 하나 저지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려 아등바등 거리고 있는데, 무심한 하늘은 그런 나를 방관하기는커녕 네가 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사지로 몰아넣으며 시험하는 것 같은가? 세상의 모든 사람과 뜻이 나를 적대시하고 느껴지는가? 그래서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 주고, 위로해주고, 기운 내라는 말을 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너의 불행에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다. 너의 불운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부류로만 나눠질 뿐이다. 첫 번째는 너의 찌질한 삶에 쓸어있는 곰팡이를 보면서 자신의 삶은 그래도 이것보다는 나아 다행이지 않냐며 위안을 삼을 사람들, 두 번째는 시간당 몇 만 원에 육박하는 상담비를 받고 직업 삼아 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들이다. 네 슬픔, 네 억울함, 네 풀 죽은 모습은 어느 누구의 감정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동정심은 남의 불행에 선처를 베풂으로 인해서 얻는 개개인의 알량한 자기만족 수단 행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가? 너는 또 네 불행을 팔아 남들의 위안이 되고자 하는가? 세상이 관심이 있는 것은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는지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표면적인 위로에 너의 불행은 더욱 초라하고 싸구려가 돼버릴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네가 불행에 침식될 때가 아니다. 닥쳐오는 모진 한파에 운명을 순응하듯 그대로 얼어붙어 눈 밑으로 소리 소문 없이 고꾸라지는 네 모습이 아니다. 세상은 네가 만들어 내는 소음에 주목한다. 네가 불행에 맞서 내는 악에 받친 씩씩 거림에 화들짝 놀라 돌아 본다. 모든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순응하는 네 모습이 아니라, 부당하다며 있는 대로 깽판을 부리며 난리를 치는 네 모습에 너의 불행을 돌아볼 것이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미치광이처럼 날뛰어라. 협잡꾼처럼 세상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흥정하려고 달려들어라. 3살박이 어린아이처럼 길에 나동그라지며 울고불고 소리를 꽥꽥 질러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투견처럼 이빨을 다 드러내고 으르렁거려라.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사람처럼 왜라고 계속 물음표를 붙이며 꼬치꼬치 캐물어라. 네 불행을 못 살게 굴어야 한다. 네 불행이 너에게 넌덜머리가 나도록 지독하게 치대야 한다. 계속 이유를 묻고, 몸싸움을 걸고, 화를 내고, 울부 짖으며 부당하다고 표현해라. 불행한가? 그렇다면 하소연할 상대를 잘 못 골랐다. 운명에 흠씬 두들겨 맞아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그대로 나동그라져서 뒤져버렸으면 하는 세상에 보란 듯이 다시 어기적거리고 일어나 분에 겨운 소리를 질러라. 어차피 세상이 바라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들은 매듭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너 스스로 걸어가서 교수형에 처하길 원하는 간교한 뚜쟁이들의 고급스러운 표현일 뿐이다. 보란 듯이 네 앞에 걸려 있는 교수대를 발로 걷어차고 침을 뱉고 우악스러운 두 손으로 갈가리 찢어 놓아라. 찢기 않아도 물어뜯어라. 절대, 네놈들 뜻대로 내 두 발로 스스로 교수대로 걸어가 목을 매다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며 비웃어 줘라. 네 불행 앞에서 비웃고 침을 뱉고 비아냥거리다가 쥐어 터진 몰골로 교수대를 등지고 다시 걸어 나가라. 네 불행은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난봉꾼들 놀음에 상식적인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미련한 행위 좀 멈춰라. 그저 한번 크게 비웃고, 교수대에 걸린 동아줄이 먼저 썩나 내 몸이 100살이 넘어 먼저 문드러지나 내기를 해보자며 다시 가던 길을 가라. 그것이 네가 네 불행에게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다. 네 불행에 침을 뱉고, 야유를 퍼붓고, 욕지거리를 퍼부어라. 그들이 너에게 질려서 오던 발걸음도 되돌릴 만큼 지독하게 투쟁하라. ----- 굉장히 와닿는 글이라 감명깊게 읽었는데 출처가 불분명하게 커뮤를 떠돌더라고요 - 이 불행을 깨고 나올수있는 것도 결국 나 ! 이악물고 이겨내자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