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어느 몽타주에 담긴 이야기
영국의 한 경찰서에서 형사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사람의 머리스타일은 어떻게 생겼나요?' '정돈이 안된 더벅머리 였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그의 손은 천천히 범인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복장은요?' '짧은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럼 종합해 보면... 이렇게 생겼겠군요.' 그렇게 범인을 묘사한 몽타주는 완성되었고 이것은 결국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몽타주가 작성되고 난 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이 이야기는 25년간 영국의 한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한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다. 리틀 헤이븐은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영국 펨브룩셔에 위치한 손꼽히는 명소이다. 해안가의 절경으로 인해 휴일을 맞이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리틀 헤이븐은 영국에서 제일 낮은 범죄율을 가진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89년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아름다운 해변 마을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리틀 헤이븐으로 여행을 간 저의 부모님의 행방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리틀 헤이븐 경찰서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자신을 토마스 딕슨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부모를 찾았고  그 즉시 경찰은 해안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색이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2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두 사람은 휴일을 맞이하여 옥스포드에서 리틀 헤이븐으로 여행을 온 피터와 그웬다 딕슨 부부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누구나 그들과 친구가 되고싶을 정도로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딕슨 부부는 휴일을 맞아 리틀 헤이븐의 해안가를 따라 캠핑을 하며 주변의 절경을 탐사하는 것을 즐겼지만 휴일의 마지막 날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발견 당시 부부의 시신은 양손이 묶인채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피터는 마치 '처형' 당하듯 묶인 채 뒤통수에 3발의 엽총으로 인한 총상을 입었고, 그의 지갑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부인인 그웬다는 하의가 사라진 채로 강간 당한 흔적과 범인에게 저항을 하다 입은 것으로 보이는 후두부의 치명적인 총상이 있었다. 이후 경찰의 감식 결과 범인은 피터를 먼저 살해한 뒤 그웬다를 살해하기전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졌다. 단순 강도의 의한 살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경찰들은 치를 떨수 밖에 없었다. 평화롭던 작은 해변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금새 마을 전체로 퍼졌고 마을 사람들은 4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그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햇다. 4년전인 1985년 한창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던 12월 23일 새벽 리틀 헤이븐 한 근교의 농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연기를 본 주민들이 급히 신고를 했고 이 후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불은 크게 번지지 않고 빠르게 진화되었다. 소방대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욱한 연기사이로 집주인였던 헬렌과 리처드 토머스 부부는 시신으로 발견 되었고  화재를 진압한 뒤 발견한 부부의 상태는 일반적인 화재 사고의 시신과는 매우 달랐다. 헬렌의 시신은 2층의 자신에 방에서 두손이 묶인 채 꿇어앉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리처드의 시신은 카페트에 말린 채로 발견 되었기때문이다. 이것이 사고가 아닌 범죄현장임을 느낀 대원들의 신고로 그 즉시 경찰들이 출동했다. 경찰들의 조사 결과 두 부부의 사인은 화재로 인한 질식이 아닌 근거리에서 맞은 총탄이였다. 두 부부의 사인과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집에 혼자 있던 헬렌을 범인이 제압한뒤 결박했고 그 후 그녀의 뒷머리에 엽총을 발사하여 살해한 뒤  뒤늦게 돌아온 리처드를 집 밖 마당에서 엽총으로 살해하고 리처드의 시신을 집안으로 끌고 와 카페트 로 감싸고 그 위에 불을 지른것' 경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결국 범인을 찾을 수 없게 됬고 이는 그동안 평화롭던 작은 마을 리틀 헤이븐의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그 후 토마스부부의 끔찍한 사건이 잊혀질 무렵 발생한 딕슨 부부의 사건은 토마스 부부의 사건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범죄가 일어난 시각은 두 사건 모두 새벽이였으며, 두명의 남녀가 살해당했고 그들을 살해한 무기는 '엽총'이였기 때문이었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는 곧 주민들에게 퍼져 주민들은 '엽총 살인마:Shotgun Killer'가 나타났다며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더벅머리에 정돈이 안된 수염을 가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남성. 목격 당시 자전거를 탄 상태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었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격자의 기억력에 의지하는 한장의 몽타주만으로는 범인을 찾기란 무리였다. 1989년 당시에는 체계적인 과학수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는 점점 어려움을 겪게되었고 총 6000여명의 용의자를 조사했지만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진 못한채 수사는 미궁으로 빠지게 되었다.  결국 영국경찰은 팸브룩셔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엽총 살인마'는 끝내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시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엽총 살인마에 대한 기억을 점점 지워나갔고  결국 리틀 헤이븐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끔찍한 범죄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아마도 범인은 자신의 완전범죄가 영원히 세상밖으로 밝혀지지 않기를 바랬을것이다. 하지만 범인의 희망과 달리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딕슨부부가 살해된 지 17년이 지난 2006년 미제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담반의 팀장 '스티브 윌킨스'는 자신의 전담반을 이끌고 이 작은 소도시 리틀 헤이븐에서 일어난 2건의 미제사건인 '엽총 살인마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두 사건에 사용된 범행도구인 '엽총'이었다. 윌킨스의 팀은 지난 20년간 팸브룩셔 일대에서 엽총을 사용한 살인사건 용의자들을 토대로 조사했지만 엽총살인마에 대한 수사는 몇달이 지나간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채 난황을 겪게 되었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계속되던 어느날 윌킨스의 눈에 한 용의자가 포착되었다. 용의자의 이름은 '존 윌리엄 쿠퍼' 그는 팸브룩셔 일대에서 30여건의 강도 및 강간 혐의로 1998년에 16년형을 받은 범죄자였고 범행도구는 '엽총'이었다.  윌킨스는 이 점을 주목했고 그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역시 쿠퍼가 미제사건의 용의자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윌킨스는 한가지 기묘한 사실을 알게됬다. 바로 쿠퍼가 오래 전 한 유명한 TV쇼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 방송국 ITV의 협조를 통해 경찰서 내부의 자료실에서 오래된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불스아이' 다트를 던져 경품을 받는 TV쇼 불스아이는 25년 간 영국에서 인기를 끌던 장수 TV쇼였으며  평균 시청자 수 17만명의 인기 프로그램이였다. 1989년도 영상속의 사회자는 호기롭게 TV쇼의 이름인 불스아이를 외치며 등장했고, 곧 이어 출연자들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바라보던 윌킨스의 눈에 젊은 시절의 쿠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윌킨스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윌킨스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영상 속 쿠퍼가 등을 돌리는 화면이 나오자 윌킨스는 영상을 멈추었고  자료실을 뒤엎으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찾아낸것은 바로 한장의 몽타주였다.  17년전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담았던 몽타주를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TV화면속의 쿠퍼와 자신에 손에 들린 몽타주를 비교하던 윌킨스의 입에서 외마디의 말이 튀어나왔다. '놈이다.' 16년전의 몽타주가 오랜 세월을 지나 끔찍한 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였다. TV화면속의 쿠퍼는 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회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회자 : 혹시 하고 계시는 취미가 있나요? 쿠퍼 : 스쿠버 다이빙을 즐깁니다. 특히 리틀 헤이븐의 해안가에서 즐기는걸 좋아합니다. 쿠퍼가 말하던 곳은 바로 딕슨부부가 살해당한 그 해안가였다. 만약 진짜 쿠퍼가 범인이라면 쿠퍼는 이 방송에 나온 뒤 1달 뒤에 딕슨부부를 살해한 것이었다. 윌킨스는 쿠퍼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특이한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쿠퍼가 강도죄로 검거 될 당시의 경찰서 내의 조사실의 영상이였다. '어째서 범행을 저질렀나.' 담당형사의 말에도 수갑을 찬 쿠퍼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형사의 계속되는 취조에도 입을 다물고 오히려 벽을 등진 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형사의 취조를 계속 듣고있던 쿠퍼는 영상이 끝날 무렵 단 한마디의 말만 꺼냈다. 형사 : 혐의를 인정하나? 쿠퍼 : 네 장시간에 걸친 취조끝에도 입을 열지 않던 쿠퍼가 형사의 마지막 말에는 멀쩡히 답변을 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자라면 보통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는것이 일반적인 예지만 쿠퍼의 상황은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 것이다.  마치 한시라도 바삐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것처럼  윌킨스는 이것이 단지 강도 혐의만을 받고자 하려는 쿠퍼의 속셈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감옥에 간다면 사람들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리틀 헤이븐의 살인사건들은 잊혀질거라는 속셈 하지만 쿠퍼가 간과한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바로 과학수사의 발전이였다.  1985년과 1989년에는 과학수사의 개념조차도 없었기때문에 범죄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쓸만한 증거를 찾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였지만  2006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윌킨스는 쿠퍼의 자료와 증거물들을 모아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지만 증거물들의 기간이 너무나도 오래됬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시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성공유무 자체 또한 매우 희박했다.  하지만 2년뒤 2008년 윌킨스가 그토록 기대하던 유전자 검사가 결과가 나왔고 증거품들에 묻어있던 DNA들은 쿠퍼가 범인임을 알리고 있었다. 바로 쿠퍼가 강도 혐의로 압수당한 물품에서 지난 두 건의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DNA가 나온것이었다. 쿠퍼가 사용한 엽총의 총구부분과 쿠퍼의 집에서 압수한 바지에서 피터 딕슨의 DNA가 나왔고 그가 범행 당시 사용 착용했던 장갑에서 리처드 토마스의 DNA가 나왔다. 2010년 윌킨스는 조사실에서 쿠퍼에게 명백한 살인의 증거물들을 보이며 그를 추궁했고 쿠퍼는 1999년의 조사실에서와는 달리 신경질적이며 화난 목소리로 자신은 결백하다며 소리쳤다. 결국 2011년 쿠퍼는 2건의 살인사건과 5건의 강도질 그리고 2건의 강간사건의 용의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완벽 범죄를 꿈꾼 범인은 단 한장의 몽타주로 인해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공포 수준인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키미테) 부작용 썰들
1. 안녕하세요 저는 23살 여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어제 있었던 끔찍한 일을 말씀 드릴게요. 제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일요일날 이제 고2 되는 여동생과 창원에서 오후 5:30분 차를타고 올라갔습니다. (키미테는 2-3시쯤 붙였어요.) 그리고 서울에 도착해서 동대문에서 apm, 유어스, 디오트 등등 패션 상가들을 돌며 재밌게 구경하고, 아침 5시에 굿모닝 씨티에 있는 스파렉스라는 찜질방에 갔습니다. 저희는 너무 피곤해서 여자수면실 2층에 올라가 바로 잠이 들었어요. 문제는 여기서 부터 인데요. 제가 오후 3시에 눈이 떠졌는데 옆에 동생이 없는거예요. 당연히 화장실 갔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제 폰을 보니 동생하고 엄마한테부재중전화가 몇 십통씩 와 있는거예요. 제가 거기가 찜질방이라 무음로 해놔서 전혀 못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대뜸 제동생 부터 찾으라면서 아무튼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거예요. 그래서 동생한테 전화를 하니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계속 하는 거예요. 여기가 서울인데 친구 옷 바꿔주러 합성동을 간다면서, 시외 버스터미널이라며 도대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기가 서울인데 갑자기 합성동 왜가냐면서( 합성동은 경남 마산에 있는 곳인데 서울에서 갈려면 족히 4-5시간은 걸려요.) 막 물어 따지니까 자기 마음이라며 그냥 끊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너무 황당해서 다시 전화를 하니까 전화가 있는거예요. 그래서 이때 부터 뭐가 잘못됐구나 싶어가지고 바로 카운터에 갔는데, 카운터 아줌마가 말하길상태가 많이 안좋았데요. 옷을 입고 목욕탕에 막 들어가고 남의 신발장을 막 다 들여다보고, 남의옷장을 다 열려고 그러고 그랬데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항의가 엄청 많이 들어왔다는거예요. 이상한 애가 자꾸 돌아 다닌다고. 진짜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제 동생이 절대 그럴 애가 아니거든요. 울면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들 올 동안 옷을 갈아입고 렌즈를 낄려고 하는데 손이 덜덜덜 떨려서 렌즈도 못 끼겠는거예요. 그래서 씼지도 않고 거지차림으로 안경 끼고 나갔습니다. 아저씨들이 일단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며 동생 어디 아프냐고 계속 물어보시는거예요. 저는 절대 아니라 백 퍼센트 정상인이고 완전 멀쩡하고 쟤가 저러는 거 처음본다고 계속 그랬어요. 근데 아저씨들은 지금동생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이상하다고, 만약 찾으면 병원을 한 번 데리고 가라고 그러시는데, 정말 쟤가 했던 행동들을 들어보면 진짜 정신에 이상이 있는거라고 믿기 싫지만 믿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일단 동생이 몇시 쯤 나갔는지 찜질방 cctv를 돌려봤어요. 근데 아침 11시 30분쯤에 나가는 거예요. 그러곤 신발을 신고 있어야하는 복도에서 애가 갑자기신발을 벗고 돌아다니거예요. 그걸 보고 아저씨들과 제가 아 진짜 쟤가 지금 상태가 안좋구나, 엄청 심각하구나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엄마 아빠한테도 전화하고 엄마한테 위치추적하게119에 신고 좀 해달라고 했습니다.(위치추적은 어떤 누구도 안되고 부모님만 된대요) 근데 119에서 허위 신고가 많아서 가족관계증명서와 사유서를 안가지고 오면 계속 안된다 그랬다는거예요. 일단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거기에만 계속 매달릴 수 없었기에경찰서 여기저기 실종신고를 해놓고 찾으러 나갈려고 하는데 카운터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애가 나갈려고 그래서 엄마 전화 번호를 남기라 그랬데요. 그래서 전화를 걸었는데 안 받아서 음성메시지를 남겼다는거예요. 근데 알고보니 제동생이 자기 폰번호를 적고 자기한테 음성메시지를 남긴거였어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나갈려고 하는 순간 070으로 전화가 왔는데 저희 동생이였어요. 그래서 니 지금 어디냐고 제가 물으니까 계속 창원이래요 계속. 근데 그게 시간상 말도 안되고동생은 돈 한푼 없었거든요. 혼자서 절대 갈수 가 없어요. 그러곤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로 계속전화 와서 헛소리하고 끊고 헛소리하고 끊고, 창원이라 그랬다가 합성동이라 그랬다가시외버스터미널이라 그랬다가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저보고 왜 계속 자기 혼자 놔두고 창원을갔녜요... 갈려면 말이라도 하고 가지 왜 계속혼자 갔녜요.. 그래서 일단 서울 경부 고속도로에 갔는데 없어요. 또 070으로 전화가 와서 너 어디냐고하니까 서울 고속 버스 터미널이래요. 그럼 내가 갈테니까 꼼짝말고 거기 있으라하니까 또 창원이래요. 그러곤 끊고 또 전화와서는 대뜸,"내가 4-5시간 동안 돌아다니면 얼마나 힘들데 놀고싶겠나? 어이없다 진짜" 이렇게 짜증을 내고는 또 끊는거예요. 진짜 너무 황당하고 하루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고,눈물이나고..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고.. 아무튼 제 동생이 확실히 어딨는지 알려면 070으로 시작되는공중전화가 어딨지 알아야겠다 싶어서, 경찰 아저씨들이 계속 알아낼려고 했는데그게 잘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경찰서로 갔는데 경찰서로 전화가 오더니 070 번호 공중전화가 서울 3호선 충무로역?인가 거기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아진짜 진짜 다행이라며 3호선 역무원 아저씨께 전화를 해서제 동생 인상착의랑 말하고 그런 애 있냐고 하니까 있대요. 그래서 지금 바로 갈테니까 보살펴 달라고했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이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그러곤 동생을 만났는데 동생을 보자마자눈물 부터 나더라구요. 그러곤 진정 좀 하고 동생을 보니 정말 이상했어요. 계속 저를 째려보고 애가 약간 공격적으로 변했더라구요. 왜 말도 없이 혼자 창원갔냐고 하면서.. 그러곤 원래 화요일 아침차 타고 내려올 생각이였는데 바로 오후 7:45 분차 표를 끊고 창원가는 차를 탔어요. 경찰 아저씨분들 끝까지 걱정해주시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차 탈때도 잘 탔냐고 동생 괜찮냐고 물어봐주시고 정말 고마웠어요. 그러고 이제 둘이서 버스타고 가는데 차타고 가는 4시간 내내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거예요. 차 안에서 얘기했던 엉뚱한 소리 몇 개 적어볼게요. 대뜸 저한테 "오늘 야자 하나?" "응? 무슨 야자" "아 오늘 소녀시대와 위험한 소년들 해서 야자안하겠네", 갑자기 창문을 젖히더니 " 아 비오면 큰일 나는데", 버스에 달린 티비에 어떤 사람이 성대모사 하는 걸 보고는 " 저렇게 소리치는 사람 무섭다". 하여튼 진짜 4시간 내내 말이 안되는소리,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여기가 서울인지 창원인지,자기가 밥을 언제 먹었는지, 지금 어디가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아까 했던 이상한 행동들은 말해 주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제가 혼자 계속 욕을 했데요. 그렇게 차 안에서 창보고 울다가 말도 안되는 대화 하다가 창원에 내렸어요. 아빠도 동생 상태 다 알고 미리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고 이제 동생이랑 아빠차로 가는데 갑자기 손을 씻어야겠데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손 왜?"하니까 저보고 "니 개를 내가 만졌잖아, 너님 개를 내가 만졌잖아". 진짜 이때 소름이 돋고,내가 개가 어딨냐고 그리고 언니한테 왜 갑자기 니가 뭐냐고 하니까 또 화내고 짜증내고. 그러고 또 갑자기 대뜸 저보고 "결혼한지 6-7년 쯤 됐제?" 이래서 "무슨 결혼?" 그러니까 "이수근 말이야" 이러고.. 정말 무슨 세상에 이런일이 다있는지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았았어요. 이제 아빠 차를 타고 저희 집에 가는데 창원 우리 동네를 보면서 처음 보는 동네라 그러고, 갑자기 자기 혼자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고 하길래 니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냐고하니까 저랑 얘기 했데요. 그리고 저희가 저희 집으로 항상가는 골목길이 있는데거기로 가니까 아빠보고 또 이상한 길로 간다 그러고, 갑자기 저희 이모 얘기를 했다가, 자기 친구 집 얘기를 했다가, 자기 친구 쌍수하는 얘기했다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서, 눈물만 계속 났어요. 그러곤 집에와서도 "ㅇㅇ(쇼핑몰 이름) 잘 되가고 있나?"이러길래 "ㅇㅇ이뭔데?" 하니까 자기 아는 언니가 하는 쇼핑몰이래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길래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 언니가 알지 그러니까 아 맞네 이러고.. 그러고 동생은 씻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자러 큰방에 가고 저는 제방에 혼자 있는데, 그렇게피곤하게 돌아다녔는데도 잠도 안오고 계속 생각만 했어요. 얘가 서울에가서 나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있었나 쇼크를 받았나.. 수천번을 생각해도하룻밤 사이에 멀쩡하던 애가 저렇게 됐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혹시 아까 쟤가 이런말도 했었거든요. 이층 수면실에서 타고 내려오는 사다리가 너무 무서워서뛰어 내렸데요. 그래서 거기서 진짜 혹시나 머리를 다쳐서 그런가.. 아니면 또 저한테 아까 옷구경하고 있는데 옷집 주인이 자기보고 꺼지라면서 어깨를 완전 쳤데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서 쇼크를 받았나 싶어서. 처음에는 그말을 듣고 무조건 화만났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백프로 거짓말인거 같은 거예요. 저랑 한시도 떨어진 적도 없었고, 세상에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 어딨으며, 그런 일을 당했으면 저한테 바로 말했을텐데 집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대뜸 그렇게 말하는거예요.. 그렇게 오만가지수천 가지 생각을 하다가 혹시나 해서 정말 아무생각 없이 스마트폰에 있는 네이버 어플에 기미테라고 쳤는데, 이게 웬일 기미테 부작용 사례에서 쭈르륵 다 나오는 데, 그게 전부 저희 동생이 했던 행동들 하고다 일치 하는거예요. 허공에 대고 혼자 얘기하고, 엉뚱한 말하고, 심하면 사람도 잘 못알아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가 웃고, 기억상실에다가.. 정말 그 때는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고바로 엄마한테 가서 이거 기미테 때문이라고 그러고 동생 기미테를 때서 버렸어요. 그렇게 한 시름 놓고 근데 생각해보니 저도 부작용이 있었어요. 제가 렌즈를 끼면 앞이 엄청 잘 보이는데, 이상하게 서울에서초점도 흐려지고, 멀리 있는거는 잘 보이는데 폰이나 가까운 물체는 아예 하나도 안 보여서동생한테 계속 안 보인다고 그랬었거든요. 저는 그게 렌즈가 잘못 된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것도 기미테 부작용이었고, 이제 집에와서 누워있는데 제 옆에는 막 벌레가 기어다니고, 천장에는 뱀이 기어다니고, 쓰레기 봉투가 쭈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로 보이고, 하여튼 헛게 보이는 이런것들도 다 기미테 부작용이었고, 제가 감기도 안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서울 갔거든요. 근데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목이 완전 나간거예요. 말 만해도 아프고 따갑고, 목에 커다란게 걸린거 마냥 침을 삼켜도 그대로고, 목소리도 안나와서 동생이랑 거의 최소한의 말 만하고 돌아다녔구요. 그런데 이것도 기미테 부작용 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루종일 그렇게 돌아 다녔으면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골아 떨어져야 정상인데, 전혀 잠도 안오고 말똥말똥 하고 그런것도 기미테 부작용이었구요. 인터넷에 쳐보세요.. 저 뿐만 아니라 기미테 부작용 사례 엄청 많습니다.. 지금은 이제 저도 괜찮아 졌고 저희 동생도 괜찮아졌어요. 진짜 얼마나 놀랬던지 어제 생각만 하면끔찍하고 소름이 돋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진짜 이렇게 하루 만에 돌아온게 천만다행이고다시는 기미테 사용하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네요. 2. 키미테가 나온뒤, 수학여행이나 멀리 여행을 갈 때면 항상 너도나도 귀밑에 하나씩! 오랫동안 이동해야 하는 차 안에서도 웃으며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지나가고 정말 혁신적이고도 획기적인 발명품이 아닐까.. 하지만, 무시무시한 문제가 숨어있었다는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5월 2일(수) ~ 4일(금)까지 6학년 3학급, 총 81명의 학생을 데리고 비록 11개월밖에 안된 초짜중의 초짜지만, 학년부장이라는 직책하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솔직히, 출발하면서도 애들이랑 즐겁기도 했고 학생으로 가던 여행이 아닌 교사로서의 여행으로 가기에 더욱 즐거웠던지도 모르겠다. 첫날 숙소에 도착후, 여장을 풀고 숙소에서 준비한 역사강의도 재미있게 듣고, 밤에는 이웃학교 학생들과 달리 우리반 애들 방에 가서 일부러 무서운 이야기도 해주고 웃고 울며 재웠던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둘째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평소 정말 밝은 모습에 이쁜 짓만 잘 하던 우리 ‘K양’에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들 방들을 둘러보는데, 밤새 코골던 이야기, 잠꼬대한 이야기 등등 재미나게 아이들 상태를 확인하던 중 “누가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귀가 안 들려’ 라고 막 그랬어요.” “좀 이따가요 ‘눈도 안보여’ 하고 막 소리치고 그러다가 잤어요.” 라는 이야기를 여자 아이들 몇몇이 했다. 그냥 단순히 아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약한 몽유병 증세이거나 잠꼬대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첫 코스로 신라역사과학관으로 이동후, 먼저 온 학교 때문에 잠시 차안에서 기다리던 중, 아이들 몇몇이 황급히 달려와서 “선생님! K가 이상해요!! 무서워요!!” 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 순간부터 자리를 맨 뒤의 K양 근처로 옮겨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당황스러운 현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1.어제 장거리 여행을 하며 용돈기입장을 쓰기 시작했는데, 날짜는 3일 정확히 기억했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를 ‘방금 지나친 곳’으로 쓰며 날짜 감각에 혼란을 일으키기 시작 2.모든 장소를 ‘휴게소’라고 기입하며 위치감각에 혼동이 오기 시작 3.자기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며 ‘다른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아무도 없는 공간에 ‘친구이름을 부르며 혼자 대화’ 4.글을 쓰는데, 반쯤 졸며 쓰는 것 같은 ‘풀린 글씨체’로 쓰기 시작 5.자신이 쓴 글을 두번 읽히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고 어법에 맞지 앟는 아무 뜻이 없는 글자를 기입하기 시작 (예를 들면 노트에 쓴 글씨가 ‘아침에 밥을버려 붸익다 해봤으 먇’. 실제 노트의 글을 옮겨 적음) 6.이상스러운 공격증세, 밝은 아이였으나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다가 태도가 돌변하여 웃고 있는 등의 증상 등이 관찰되기 시작하였다. 적지 않이 놀랐으나, 어제 무리하게 차를 타고 이동하고 (총 12시간의 버스이동) 약간 감기기운과 기온상승으로 인한 열사병 증세로 걱정하고 휴식을 취하였으나 점점 더 상태가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보건 선생님 상담결과 발견한 것은 K양 귀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큰 크기의 키미테가 붙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고, 경험있는 보건선생님의 지시 아래 전부 키미테를 제거하였다. 확인결과, 성인용 키미테 1장이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야간까지 계속 휴식을 취하게 하고 담임 선생님으로 하여금 찬물로 깨끗하게 샤워까지 한뒤 교사 숙소로 옮겨 취침을 시키려 했으나 밤새 허공과 이야기를 하고, 숙제를 하려 하다가, 청소구역을 이동하려 하다가, 침대시트를 가방이라 이야기하며 가방을 챙기려 하는 등 잠은 이루지 못하고 이상증세를 계속 보여 4일 새벽 1시경 동국대학병원 응급실로 급히 이동시켜 링겔 치료를 받게 하였다. 결국 아이는 3일 아침 7시경부터 4일 오후 2시경까지 근 30시간을 깨어있었으며 전혀 피곤해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결국 체력을 다했는지 다행이 조용히 잠을 자기 시작하였고 휴게소에서 잠깐 깰 때마다 아직 일명 ‘헛소리’를 계속 하긴 했지만 조금씩은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이 보였다. 바로 뗐어야 하는데 계속 붙이고 다녀서 그런가봅니다.. 무섭네요... 어후.. 저도 어렸을 때 키미테 없으면 버스 못탔었는데 이런 엄청난 부작용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네요..
생존을 위해 식인을 했던 사례들 ㄷㄷㄷ
만일 너희들이 아사 직전의 극한 상황에 몰린다면 끝까지 이성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이때 식인(cannibalism)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극단적인 생존 방법이야 물론 그 선택은 당하는 사람이나 행하는 사람이나 의심할 바 없는 엄청난 비극이지 자 그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식량으로 삼았던 몇가지 사례들을 알아보자 맥퀴리 하버 탈출 사건 (macquarie harbour) 1820년대 초, 영국의 감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영국정부는 좀도둑부터 살인마까지 다양한 죄질의 범좌자들을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 남부 해안의 섬, 타스메니아(Tasmania)로 이동시켰어 지도 남쪽을 보면 주황색으로 칠해진 'TASMANIA' 라는 섬이 보이지? 바로 저기야 특히나 살인과 같이 죄질이 나쁜 죄수들은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시킨 맥쿼리 하버로 보내져 수년간 고된 노역을 해야 했지 이곳에서의 노역 생활은 악명이 자자했는데 죄수들은 차라리 교수형 당하는 것이 낫다 생각할 정도였다고 해 덕분에 몇몇 죄수들이 동료 죄수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어 1822년 9월, 공동 작업에 동원된 8명의 죄수들은 고된 노역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기로 결심해 그들은 간수를 뒤에서 덮친 후 나무에 묶고 약간의 식량과 도끼 하나만을 들고 도주하지 탈출한 8명은 배를 훔쳐타고 아시아쪽이나 남미로 가려고 했어 죄수들은 배를 훔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탈출 사실은 바로 들통나면서 간수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항구가 폐쇄당하고 말지 죄수들은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해 숲이 울창한 미개척지를 지나 육지의 다른 거주지로 향했어 육지로의 탈출을 감행한 죄수들은 여태 꽤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그 중 단 한번도 성공한 탈옥은 없었다고 해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죄수들이었지만 그들에게 다른 방안은 없었어  핑크색 화살표 보이지? 저게 죄수들이 이동한 경로야 왼쪽에 항구라고 적혀있는 곳이 맥쿼리 하버고 쨋든 그들이 가는 길목에 위치한 100km에 달하는 가파른 산맥에는 먹을 만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고 해 시간이 지나면서 8명의 죄수 중 로버트 그린힐이란 죄수가 무리의 리더가 되었지 그린힐은 선원 출신이었어서 태양과 별로 방향을 가늠할 줄 알았고 유일한 무기였던 도끼를 가지고 있던 자였어 탈출을 감행한지 8일째 그들은 완전히 기아상태가 되었지 앞서가던 5명의 죄수들은 체력이 약해서 자꾸 뒤쳐지기만 하던 3명을 귀찮게 여겼고 결국 무리는 강한 쪽과 약한 쪽 두 무리로 나뉘게 돼 리더인 그린힐과 그의 친구였던 트레버스, 보든햄, 매더스, 피어스가 한 무리를 이뤘고 달튼, 캐널리, 브라운이 또 다른 한 무리를 이루었지 밤이 되자 두 무리가 따로 불을 피우고 잠을 청했어 그때 리더인 그린힐이 자신의 무리에게 소름끼치는 제안을 했어 선원이었던 그린힐은 선원의 관습을 예로 들며 얘기를 꺼냈지 선원들의 관습이란 생존이 어려울 시 최후의 수단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선택된 한 명을 먹고 나머지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거였어 절박했던 그린힐의 무리는 전원이 찬성하지 하지만 그들은 제비뽑기로 희생자를 정하는 대신 약한 3명의 무리에서 그들의 희생자로 골랐어 희생자로 선택된 인물은 달튼이었어 선택의 이유는 죄수 캠프에서 달튼이 규율을 어긴 동료 죄수들을 간수 대신 채찍질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지 약한 무리의 3명이 모두 잠들자 그린힐은 달튼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쳤어 죽은 달튼의 시체는 농부 출신인 트레버스가 양을 도살해본 경험으로 손질했지 다들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지만 그날 밤 달튼의 살점을 먹은 사람은 그린힐과 트레버스뿐이었어 하지만 아침이 되자 고기 냄새에 이성을 잃은 나머지 죄수들도 달튼의 살점을 먹었어 배를 채운 죄수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어 죽은 달튼과 같은 무리였던 브라운과 케널리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고 앞의 5명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다시 맥쿼리 하버로 돌아갔어 다음 희생자는 자신들이 될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린힐의 무리는 한참 후에야 2명이 없어진 것을 알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생존 게임에는 큰 차질이 생겼어 5명의 죄수들은 한 번의 살인으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무리 중 또 다른 누군가가 죽게 되리란걸 알게 됐지 5일 후 고기가 바닥나자 다음 희생자를 정할 때가 왔고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결국 제비뽑기를 했고 당첨자는 보든햄이 됐어 보든햄은 그 즉시 도살당했고 나머지는 그의 살로 굶주린 배를 채웠지 이제 남은 사람은 4명뿐이었어  4명의 관계를 살펴보면 도끼를 가진 그린힐과 그의 친구 트레버스가 무리 중 우위였고 나머지 매더스와 피어스가 약자였지 시간이 지나면서 굶주림이 다시 그들을 덮쳤고 어느덧 다음 희생자를 정할 때가 왔어 신변에 위협을 느낀 매더스는 피어스에게 둘이서 그린힐과 트레버스를 덮쳐 도끼를 빼앗자고 제안했어 하지만 피어스가 택한 건 강한 쪽이었어 피어스의 배신으로 매더스는 그들의 식사거리가 되었지 이제 친구 사이인 그린힐과 트레버스, 외톨이인 피어스 이렇게 세 사람이 남게 된다 누가 봐도 다음 차례는 피어스였지 트레버스에게 불행한 사고가 닥치기 전까진 말이야 숲에서 트레버스가 독사에 발목을 물린거야 그린힐은 그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트레버스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고 물린 부위는 썩기 시작했지 가망이 없음을 직감한 트레버스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어 결국 트레버스가 다음 희생자가 됐어 마침내 두 명만 남게 되었어 그린힐과 피어스 사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어 언제든 상대방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둘은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맹세했지만 그게 지켜지지 않으리라는건 둘 다 알고 있었겠지 때문에 둘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이제 누가 오랫동안 안 자고 버티냐의 싸움이 시작된거지 그들은 삼일 밤낮을 꼬박 샌 채로 계속 걸었어 상황은 극으로 치달았지만 죽지 않으려면 견디는 수 밖에 없었지 4일째가 되던 오후 결국 잠이 든 쪽은 그린힐이었어 그린힐이 잠들자 피어스는 곧바로 도끼를 집어들고 그의 머리를 쳐버렸지 이로써 알렌산더 피어스가 유일한 생존자가 됬어 피어스는 그린힐의 고기를 먹고 일주일을 더 걸어 탈출 50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어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 그는 다시 붙잡히는데 피어스에게 숲에서 일어난 식인에 대해 들은 간수들은 처음엔 이를 믿지 않았어 기독교를 믿는 영국인이 식인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간수들은 피어스가 나머지 죄수들이 추적을 피해 달아날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어 피어스는 다시 맥쿼리 하버로 이송됐고 다른 죄수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어 그 중 젊은 청년이었던 토마스 콕스란 놈이 재탈출하자고 피어스를 꼬드겨 지옥을 경험했던 피어스로는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으나 결국 탈출에 동의했지 육로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단걸 알고 있던 피어스는 이번엔 킹 리버를 헤엄쳐 건너기로 했어 그런데 5일간 걸어 킹 리버에 도착해 강에 뛰어드는 순간 킹 콕스가 갑자기 수영할 줄 모른다고 하는거야 개빡친 피어스는 변명을 늘어놓는 콕스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 피어스는 콕스의 허벅다리와 종아리 살을 챙겨들곤 그 자리를 떠났지 그렇게 2~3일 가다 보니 후회가 엄습해왔고 피어스는 해안가에 맥쿼리 하버를 오가던 배를 붙잡고 자수를 해버렸어 따라서 피어스가 유죄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지 1824년 7월 19일 알렉산더 피어스는 식인 행위로 교수행에 처해졌어 미뇨넷호 난파 사건 (mignonette ship) 1884년 여름 미뇨넷호 4명의 선원들은 요트 한 척을 본국인 영국에서 호주의 새 주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어 미뇨넷호에는 경험 많은 경주용 요트 조타수인 선장 탐 더들리랑 역시 경험 풍부한 선원 네드 브룩스 항해 담당 에드윈 스티븐스, 처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잔심부름꾼 리처드 파커가 승선해있었지 미뇨넷호는 14년 전에 만들어진 꽤나 오래된 배였고 상태는 아주 개판이었어 19세기에는 배들이 부실했기에 선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직업이었대 미뇨넷호가 침몰한 1884년만 해도 550여척의 영국 배가 침몰했다고 해 항해를 시작한지 7일 후인 7월 2일, 풍랑을 만나자 미뇨넷호는 어찌해 볼 새도 없이 침몰해버렸어 다행히 더글리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무사히 소형 보트에 옮겨탔지만 그대로 대서양을 표류하게 된거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통조림 2개, 나이프 하나, 경도 측정 시계뿐 마실 물조차 없었다고 해 배가 난파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세인트 헬레나'와 '트리스탄 드 코나'라는 곳으로 각각 북쪽과 남쪽 1200km 지점에 있었고 희망봉은 동쪽으로 2600km, 남미는 서쪽으로 3200km나 떨어져 있었어 빨간 점 보이지? 저게 그들이 난파된 지점이야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희망봉을 지나는 배들의 항로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지 표류한지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심한 갈증이 찾아왔어 통조림이랑 빗물, 바다거북따위로 잠깐 동안은 이를 견뎠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나니까 그들은 허기와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했지 표류한지 일주일 쯤 되었을까 갈증이 최고조에 다다랐고 항해가 처음이었던 파커는 목마름에 바닷물이라도 마시려 했어 선장인 더글리는 바닷물이 탈수증을 초래하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를 저지했지 더글리는 빨리 구조되지 못하면 선원관습에 따라 제비뽑기로 희생자를 골라 인육이라도 먹어야 될 거라고 생각했어 더글리는 이를 선원들에게 말했고 다들 망설이는데 브룩스가 격하게 반발했어 결정은 유보되었고 표류한지 3주 가량이 지난 7월 20일 밤 파커는 갈증을 못참고 바닷물을 마셨어 아침에 잠에서 깬 동료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파커를 보게 되지 파커가 죽으면 혈액이 응고되서 마실 피가 없어질거라 판단한 선원들은 결단을 내려야 했어 반발하던 브룩스에게 더글리는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라고 했대 파커만 빼고 모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거든 이 사람이 리처드 파커야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더들리가 파커의 목을 찌르고 그 피를 통에 담았지 더들리와 스티븐스, 맹렬히 반발하던 브룩스도 갈증을 못이기고 파커의 피를 허겁지겁 마시게 되었어 세 사람은 파커의 피로 목을 축인 후 살을 발라 날것으로 먹었고 남은 살점은 햇볕에 말렸어 작은 보트 안은 피와 살점들로 난자했어 위 사진의 배가 실제로 1884년 미뇨넷호 선원들이 탔던 구명보트야 그로부터 4일이 지났고 남은 고기는 거의 부패한데다 피는 상했어 7월 24일 또 한명의 희생자가 필요해진 순간 기적적으로 그들 눈 앞에 독일 배 한 척이 나타났어 그들은 다행히 구조되었고 2주간을 먹고 자기만 했다고 해 체력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더들리 선장은 독일인 선장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상황을 털어놓았지 더들리는 동료를 죽이고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어 한 명을 희생해 나머지 3명을 살렸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거지 얘가 토마스 더들리다 구조된 지 3개월이 지난 후 미뇨넷호 생존자들은 본국인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미뇨넷호의 주인에게 모든걸 털어놨어 더들리는 이걸 이유로 소송 당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나봐 결국 세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고 그들은 분노했지 선장이었던 더들리 입장에서는 선원 대부분을 살렸기 때문에 체포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봤는데 영국 정부는 아무리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식인은 용납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라고 규정지었어 당시 영토를 확장 중이던 대영 제국은 원주민들이 야만적이라 구원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었거든 그에 대한 증거로 원주민들이 식인을 한다고 주장한거지 때문에 영국 선원이 식인을 했다는 사실은 정부 입장에선 영토 확장에 문젯거리가 되었던 셈이지 영국 정부는 선원 관습을 금지하기 위한 선례로 삼으려고 미뇨넷호 선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려고 했어 그들을 기소하기 위해 검찰은 살인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던 브룩스를 검찰 측 증인으로 세워 브룩스는 증인을 해주고 기소를 면할 수 있었지만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리처드 파커에 대한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돼 하지만 당시 여론은 선원들의 편이었지 이렇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림 1884년 11월 배심원들은 더들리와 스티븐스에게 동정적이었기때문에 무죄를 결정해 하지만 판사는 이를 무효화시키고 특별법을 이용해 자신에게 전권을 넘기도록 압력을 행사했어 결국 재판에서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어 하지만 선원들의 관습에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영국 정부는 수감 6개월만에 두 사람을 석방했어 당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더들리는 이런 말을 했대 " 이것으로 선원들의 관습을 금지시킨 줄 알겠지만 진실을 감추게 됐을 뿐이다.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관습을 따르되, 구조된 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증언을 했던 브룩스는 떠돌이 서커스단에 스카우트되었어 서커스단에서 브룩스는 식인마로 분장하고 관객들 앞에서 날고기를 씹어댔지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결국 궁핍한 삶을 살다 죽었어 불행하긴 스티븐스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당시의 충격으로 다신 배를 타지 못했고 브룩스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어 더들리는 호주에서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페스트로 사망한 최초의 호주인이 되었다고 해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 조난사고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우루과이 공군의 쌍발 터보 프로펠러기인 페어차일드 FH-227D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스텔라 마리스 대학의 럭비 선수단을 싣고 칠레의 산티아고를 향해 안데스 산맥을 거치는 항로를 비행하고 있었어 페어차일드는 칼라스코 국제공항에서 출발했지만 출발 전날인 10월 12일부터 산맥상공의 날씨로 인해 아르헨티나 멘도사 부근에 착지해 있었다고 해 이게 그 페어차일드임 왼쪽에 산티아고 보이지? 저기로 이어지는 선이 본래 예상경로이고 굵은 선은 실제로 항해한 경로, X는 추락 지점이다 추락 후 동체만 남은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하 40도의 극한 환경에서 72일간을 생존해야 했어 사고 당시 사망 12명 행불 5명으로 생존자는 총 28명이었지 구조대가 오길 기다렸지만 정작 구조대는 2주간의 수색 동안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자 이들이 죽었다고 단정지어 버려 이틀 후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찾는 구조 비행기가 지나가는걸 목격하게 돼 그 중 한 비행기가 좌 우로 흔들어대며 신호를 보냈다는데 이걸 목격한 생존자들은 구조대가 자기들을 봤다가 착각을 하지 결국 생존자 중 하나가 구조대가 곧 올거라며 그동안 모아두었던 식량 대부분을 먹어치웠어 하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어 수색대를 만들어 비행기 잔해로부터 약간의 식량을 찾았지만 그들이 모두 먹기엔 부족했지 그러던 중 탑승객이었던 의사 두 명이 식인을 하자고 주장해 생존을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고 최고의 단백질은 자신들이 매장한 시체로 섭취할 수 있다고 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먹어도 좋다며 설득해 탑승한 럭비팀의 이름이 'Old Christians'이었던 만큼 탑승객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들이었어  이들은 계기판에 몸이 끼어서 고통받으며 죽어가던 조종사가 권총으로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종교적 신념으로 거절했던 아주 독실한 신자들이었던거지 거기다 이들이 꺼내 먹어야 했을 시체들은 다름 아닌 친구, 형제, 부모였다고 해 하지만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들은 결국 시체에 손을 대지 구조대에 대한 희망이 점차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건장한 몇몇 생존자를 뽑아 안데스를 넘어 칠레로 구조 요청을 보내기로 했어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지만 재차 시도하여 결국 칠레 진입에 성공해 그들은 20km나 되는 눈밭을 뚫고 지나간거지 다행히 한 농부를 발견하여 구조 요청을 하고 나머지 생존자들도 결국 구조되는데 성공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6명의 생존자들 1줄 요약 인간은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살기위해서 윤리고 나발이고 사람도 잡아먹음 끝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헤어질 결심] 누가 무엇과 헤어지고 싶었길래
- '미결'을 '결심'한 까닭에 관해 ※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라납니다. :) ------- 시간은 결(決)의 축적이다. 한 사람의 시간 안에는 무수한 분별과 결정, 결단이 차곡차곡 쌓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당장 오늘 끼니도 무엇으로 때울지 정해야 먹을 수 있다. 영화 매체로서의 물리적 시간, 즉 러닝 타임 또한 마찬가지다. 최종 결론 도출에 도움이 될 법한, 선택된 숏들이 상영시간 안에 빼곡히 들어찬다. 이 숏들이 영화라는 유기체 덩어리를 구성하면 영화는 체계 안에서 분류된다. 책꽂이에 꽂히듯 마이 추천 리스트에 정렬. 장르별, 키워드별, 감독별, 배우별 선호도 따위로. 영화 <헤어질 결심>이 분류될 자리는 거의 정해진 듯보였다. 남편이 죽은 여자(서래), 그 여자를 바라보는 형사-남자(해준), 훔쳐보기, 이끌림, 로맨스 또는 느와르의 어딘가겠지. 혹은 둘 다거나. 역시 팜므파탈, 파멸하는 형사, 박찬욱표 대사, 그러다, 어, 어? 마침내, 미결. 분류표를 걷어차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역행. 미결의 주체는 서래다. 그녀는 훔쳐보기의 구도 안에 있고, 사람을 죽이고, 또 사람을 이용하지만 팜므파탈이라는 규격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는 반격의 멘트다. 그러면서 '독한 년'이 아니라 '몸이 꼿꼿한 사람'임을 알아챈 남자를 끌어안기까지 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는 파격적인 고백처럼 들린다. 물론 이미 불쌍한 서래 씨는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생각이 없다. 도피. 어디로? 바닷가로. 바닷가는 영화에서 죽음을 장렬한 낭만으로 박제할 때 곧잘 찾아진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노킹 온 헤븐스 도어>, <타임 투 리브>, 심지어 박찬욱 본인의 <박쥐>까지. 그리고 최종 신(scene)에 이르러 두 번째 미결, 그녀는 바다에 가서는 땅으로 파고든다. 시신을 전시하고 쓸쓸함을 과시하던 관습에 안녕을 고한다. 관객한테나 해준한테나, 위로의 객체가 아니라 수수께끼의 창조자로 남고 싶은 듯하다. 도주의 완성이자 불멸의 사랑의 형태로서, 횡과 종이 뒤엉킨 트릭. 그렇게 서래는 해준에게 좌표를 찍을 수 없는 점이 되고 만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그조차 아닐 수도 있는.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 사랑은 원래 그렇다. 설명 못 할 무언가. 미결사건의 완성. 서래는 이 전무후무한 증발로써 그녀가 감당해야 할 수식어들을 최소한 물리적으로는 따돌렸다. 살인 혐의와 행정상의 생사 증빙은 물론, 남편 잡아먹은 (중국)년 따위의 껍질도 벗어젖혔다. '시신' 딱지조차 달라붙지 않을 거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가장 완벽한 방법. 서래는 오직 해준이 살아있는 동안의 어떤 얼룩으로만 남게 됐다. 로맨틱하지 않은 절통의 로맨스가 이제 막 시작될 참이다. 이건 엄연한 변종이다. <헤어질 결심>은 훔쳐보기라는, 영화의 근원적 본질에 한 발을 담근 채 최첨단 관계 맺기 도구들을 경유, 각종 계보를 잇는 똘똘한 최적자인 척은 다하다가, 어느새 달아나버린다. 러닝 타임이 다됐는데 결론은커녕 말없이 안개만 흩뿌린 꼴. 하나의 유기체로 똘똘 뭉쳐가던 숏들은 뿔뿔이 흩어져 조금 전과는 다른 표정들을 짓고 있다. 자신을 물과 흙에 동시에 가둔 살인자의 사랑&실종극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 이제 이 영화를 꽂아도 좋을 책꽂이나 분류표를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글쎄, 본 적 없는 '걸작' 코너 정도면 괜찮을지도. 그러고 보면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은, 영화를 보고 만드는 기존의 모든 습관과 헤어질 결심을 한, 박찬욱의 결별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결'이라는 '결'심. 마침내, 이질적인 무엇으로의 분화. 마침내.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https://brunch.co.kr/@erazerh/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