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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파괴한 이유
아르테미스 신전 고대 소아시아의 에페소스(현재 터키 서부 셀추크)에 있었던 거대한 사원이며,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기록에 의하면 첫 번째 건축은 청동기 시대 때 이루어졌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아마존들이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기원전 7세기에 큰 홍수로 인해 폐허가 되고 만다. 이후 기원전 550년에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에 의해 신전은 두 번째로 건설되었다. 이 시기 건설된 신전은 매우 화려했다고 하며, 높이 30m에 너비도 대략 50m×110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현재의 축구장과 비슷한 규모이다.  건물의 크기도 크기지만, 지대가 상당히 높은 곳에 건설되어서 에게 해 10km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 거대한 신전은 당연하게도 에페소스 사람들의 자랑이 되었다. 그러나 200년 후인 기원전 356년 7월 21일,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인물이 신전에 불을 지른다. 불이 어찌나 크게 붙었는지 그 거대한 신전은 이 때 홀라당 파괴되고 만다. 헤로스트라토스는 죄를 숨기거나 뉘우치기는 커녕 동네방네 자신이 방화범이라며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법정에 서게 된 그가 밝힌 방화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에페소스 시민들은 당연히 격노했고, 그를 사형에 처함과 동시에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엄하게 처벌했다. 그러나 당초의 목적대로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테오폼푸스라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가 자신의 저서에 이 사건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헤로스트라토스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을 딴 단어까지 생겨나게 했다. 독일어로 'Herostrat'은 '유명세를 얻기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범죄자'를 의미하며,  영어 단어 'Herostratic Fame'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고자 하는 명성'을 의미한다. ㅊㅊ펨코 모야 고대관종 스케일ㅎㄷㄷ;;;;; 관심종자 정신병의 이름으로 사용되며 수천년간 박제된 건데 만족하나ㄷㄷㄷㄷㄷ
수상할 정도로 빠른 대한민국 국방력 증가.jpg
한국 : 전교 6등인데 반에선 꼴등이야... 더.. 더 많은 화력이 필요해.... 미국 : 흠... 요즘 중국이랑 러시아 군사력 증강이 마음에 걸려.. 슬슬 한국 녀석들 좀 풀어줘도 될 것 같아 한국 : 드디어 베이징과 도쿄를 사거리 안에 넣었다!! ㅠㅠ 드디어 반 꼴등에서 탈출할 구멍이 보여! 미국 : 짜식들 좋아하긴... 근데 이제 해제했는데 무기 개발할 시간이나 있나? 한국 : 짜잔! 요즘 5.56mm 소총탄 위력이 별로라길래 신형 소총 개발했습니다! 미국 : 세계 2번째? 하여간 한국놈들 급한건 알아줘야 된다니까 한국 : 짜잔! 기존 7.62mm 기관총 성능이 별로라길래 새로 만들어 봤어요! 미국 : 그래 뭐 보병화기 만드는 건 그렇게 오래 안 걸리겠지 한국 : 짜잔! 이번엔 장애물을 치우는 신형 전차예요! 미국 : 어... 그래 원래 있던 거 개조한 거지? 한국 : 내친김에 화속성 무기 +12강 성공!! 한국 : 덤으로 신형 잠수함도 만들어 봤어요! 잘했죠?? 미국 : 어... 그... 그래 이번엔 해군도 만드는구나?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아 한국 : 짜잔! 이번엔 전투기도 만들었어요! 이름은 보라매! 미국 : 우리 전투기 사라니깐 지네가 만드네?? 그래 뭐 중국, 북한만 잘 견제하면 된 거야.. 한국 : 짜잔! SLBM 발사 세계 8번째로 성공!! 한 달 만에 만들었어요!! 미국 : 한 달 만에 만든것 맞... 지...? 한국 : 항공모함! 스텔스 무인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암튼 한달만에 만든거 맞음ㅇㅇ 출처 : 더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대한 오해
1950년 10월 말. 한국전쟁에 중공군들이 개입했습니다. 한국전쟁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중공군 하면 연상되는것이 바로 '인해전술'. 실은 중공군이 처음 개입할당시와 이 초반 공세때문에 UN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당시 중공군의 병력 숫자는 UN군 보다 많지 않았다는게 사실입니다. 나중엔 중공군 병력도 상당히 증강되긴 하지만 그땐 UN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때가 아니다. 개떼처럼 돌격하는것 같긴 하다. 중공군 부사령관 홍학지가 쓴 책 '중국이 본 한국전쟁'을 보면 당시 투입된 중공군은 20여만명. 보병은 박격포 몇문정도 보유한게 고작이고, 구경이 큰 야포는 노새가 끌고다니는 어처구니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몰골의 중공군을 본 북한군과 소련측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저꼴로 전차, 야포, 공군으로 중무장한 미군과 UN군을 상대한다는거야?" ◆ 징과 나발을 불며 돌격하는 중공군 당시 한국군 + UN군 병력은 40만이 넘었고, 처음 개입한 중공군은 겨우 20여만명에 장비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군과 UN군은 속수무책 후퇴를 했을까? 이건 중공군입장에선 신화에 가까운 전공이지만, 미군 즉 미군 수뇌부에서 헛발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는 1950년 10월 24일 모든 군단과 사단에게 총진격하여 중국과의 국경선까지 진격하란 속도전 명령을 내리는데 이것이 부대간 경쟁이 되어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싶은 심리와 맞물려서 부대간 간격 유지가 엉망이 되든 말든, 서로 먼저 국경지대에 도달하기 위해 마구 마구 부대간 간격이 벌어진 전선이 되어버리고, 부대와 부대 사이 엄청나게 큰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이건 되려 중공군에게 아주 좋은 상황이 되었다. 결국 부대와 부대 간격이 크게 벌어져서 그 사이로 중공군이 돌파해버렸는데도 UN군은 모르는 지경이었습니다. ◆ 중공군이 수류탄을 던져대자 기겁하며 달아나는 UN군들 사실 '인해전술'이란 말도 이때 없었습니다. 그럼 이말이 어떻게 생겨난걸까? 당시 한국군 정보장교 김재영 중위(한국전시 육군본부 정보참모무 근무)가 중공군 개입초기에 중공군의 대령급인 소(邵)라는 자를 신문했는데 이때 소(邵)는 중공군의 전술은 월(越)국의 명장 범여를 손자가 격파한 '휴이대첩전(携李大捷戰)의 전술'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듣고 있던 미군신문관이 김중위에게 현대 군사용어로 이 전술을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묻기에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고 답한 것이 오늘날의 관용어가 된 것이다. 중공군의 전술은 무대포 인해전술이 아니라, 사실은 손자병법이었던 것이다. 밤에는 징과,피리로 시끄럽게 떠들며 진격하고, 낮에는 되도록 많은 깃발을 흔들며 진격하라 이것도 손자병법에 나오는 병법중 하나입니다. 중공군은 맥아더의 잘못된 전술로 부대간의 간격이 넓게 퍼져있는 그 공간으로 들어와서 UN군의 후방에 위치하거나, 혹은 미군과 전투지경선을 이루는 한국군쪽을 맹렬히 공격하여 한국군을 돌파, 미군의 후방으로 가기도 했다. "약한 곳부터 집중 공격하라" 이것 역시 전술의 상식입니다. 중공군의 지휘관들은 한국군 사단장들이 겨우 20대 30대 신출내기 일본군 장교출신이란것도 알았고, 미군보다 훈련이나 장비가 떨어지는것도 알았다 중공군은 되도록이면 미군과의 교전을 회피하고 미군과 떨어져있는 한국군쪽을 집중 공격하여 돌파해버립니다. 이에 전선의 한축이 돌파당하면 후방 포위를 우려한 다른 부대들도 덩달아 후퇴할 수 밖에 없는것이고 , 이것이 결국 1.4후퇴라는 서울을 다시 뺏기게 될만큼 초반에 정신 없이 밀린 이유지, 그냥 아무 전술도 없이 중공군이 머리숫자로만 밀어부친게 아니라는 것이다. ◆ 한국전 당시 중공군의 보병전술 4선12파 전법 이것은 전선의 약한곳이나, 혹은 부대와 부대사이 전투지경선에 병력을 집중하여 일렬로 차륜식 돌격, 돌파하는 전술로 일단 돌파하면 후방포위를 염려한 상대방 부대들은 후퇴할수밖에 없다. 한국전 당시 중공군의 보병전술 '4선 12파 전술'이란? 통상 증강된 1개 보병연대에 돌파정면은 100~200m 부여한다. 1개 연대는 4개 대대(주 : 중공군은 삼각편제이나 주공연대에는 통상 1개 대대를 추가로 배속)를전후 4개 조로 분류하고 대대는 다시 3개 보병중대를 전후로 3개의 공격제대로 구분하며 소위 4선 12파의 공격대형을 취한다. 공격시기는 야음과 악천후를 이용하며 각 제대간의 시간차는 10~20분 간격으로 계속적인 공격을 실시한다. 공격시 지원화력으로는 박격포를 돌파정면에 집중, 짧은 시간에 집중사격을 하며 공격부대는 주공과 조공으로 구분, 상황에 따라 양공(陽攻)을 실시하여 적을 기만시키고 공격전에 심리전과 위계전술(僞計戰術)을 사용하여 적을 정신적으로 위축시킨다. 그런데 중공군의 이런 전술도 알고보면 충분히 막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 한가지 예가 바로 한국군6사단의 용문산 전투입니다. 용문산전투를 이야기 하자면 여러가지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요약하자면, 중공군이 '약하게'보고 집중 공략한곳(6사단 2연대3대대)이 예상외로 안뚫리자, 제풀에 지쳐서 퇴각하고 그 퇴각하는 중공군을 UN군과 6사단이 쫓아가서 괴멸시킨 전투이다. 정리하자면 인해전술이란 말은 사실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단어이고, 중공군의 총병력이 한국군, UN군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서도 아니며, (초반엔 오히려 중공군 총병력이 적었다.) 중공군의 전술(손자병법도 응용한)그 전술이 약한곳에 몇배에 해당하는 병력을 집중하여 돌파하는 전술을 쓴것이며 약한곳에 배치된 부대 입장에서는 자기들보다 몇배에 해당하는 중공군이 차륜전으로 돌격해오자 쪽수로 밀어부친다는 인식이 생겨난것이다. 손자병법 제7군쟁편 : 중공군이 징, 꽹가리, 북, 깃발, 피리 등을 사용하는 이유 軍政(군정)에 曰 言不相聞故(왈 언불상문고)로 爲之金鼓(위지금고)하고 視不相見故(시불상견고)로 爲之旌旗(위지정기)니라 : 군정(兵書 이름)에서 말하기를, 말소리가 서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징과 북을 사용하고, 신호가 서로 보이지 않으므로 깃발을 사용한다고 한다. 夫 金鼓旌旗者(부 금고정기자)는 所以一人之耳目也(소이일인지이목야)라 人旣專一(인기전일)이면 則勇者 不得獨進(즉용자 부득독진)하고 怯者 不得獨退(겁자 부득독퇴)하나니 此(차)는 用衆之法也(용중지법야)라 : 대체로 징, 북, 깃발 등은 사람들의 이목을 하나로 모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지면 용감한 자도 혼자만 나아갈 수는 없고, 비겁한 자도 혼자 물러설 수는 없으니, 이것이 병력 운용법이다. 故(고)로 夜戰(야전)에 多火鼓(다화고)하고 晝戰(주전)에 多旌旗(다정기)는 所以變人之耳目也(소이변인지이목야)라 : 그러나 야간전투에 불과 북소리를 많이 쓰고 주간전투에 깃발을 많이 쓰는 것은 적군의 귀와 눈을 현혹시키기 위함이다. 故(고)로 三軍(삼군)을 可奪氣(가탈기)며 將軍(장군)을 可奪心(가탈심)이니 : 그리고 적 부대는 가히 사기(기세)를 빼앗아야 하며, 적 장수는 가히 마음(자신감, 불안감)을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군지휘관이 죄다 일본군출신 이쯤하면 일부러 밀린게 아닐까싶네요 ㄷ ㄷ ㄷ 도탁스 펌
조선시대 군의 검, 환도
환도는 조선시대의 군의 칼이다. 환도에 대한 기록은 1277년 고려에 몽골사신이 와서 이장무와 함께 환도를 만들기 시작한것이 최초이며 고려후기에 들어온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세종실록 - 우리나라 말로 환도라 한다. 검은 칠을 하고, 장식은 황동을 사용하고, 술은 홍도수아로써 드리우고, 띠는 가죽을 사용한다.> *환도와 일본도의 구분법 일본도 환도 구분법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젤 쉬운게 그냥 장식을 보면된다 (칼날단면. 즉, 육각도,배형도,편삼각도 등으로 구분하는건 복잡 함) 환도는 칼 양끝에 '금속장식'과 '칼집에 띠돈'이 달려있고, '자루에 술'이 달려있다. 띠돈에 군복용 허리띠를 걸어 패용(착용)하는 방식이다. 일부 환도 칼집에는 칼을 뽑을수 없게 락킹 버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환도 패용법 환도는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했다 그 이유는 1. 말 탔을 때 걸리적 거리지 않음 2. 활 쏠 때도 걸리적 거리지 않음 때문이였다 넷플릭스 킹덤을 보면 칼자루가 앞으로 오도록 패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지만 활을 쏠때 줄을 당기는데, 이때 칼자루에 걸려서 매우 매우 불편 하게 된다 그래서 활과 같이 무장 할때는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 하는게 정석이다 근데 이렇게 칼자루가 뒤로가면 칼은 어떻게 뽑음? 하겠지만... 아주 쉽고 편하게 잘 뽑 힌다 *환도의 특징 조선 초기의 환도는 길이가 짧아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았고 이는 단점이였다. 물론 초기 환도에도 장점은 있다 좌우로 스텝을 밟으면서 후려치거나, 빠르게 이동해서 베는 식으로 기동력을 살리는 전법에 편리했다. 방패를 들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상대를 찌르는 검술에도 유리했지만, 기록을 보면 조선초기의 환도는 일본도의 위력을 이길 수 없었다고 나온다 초기 환도는 질량에 비해서 구조적인 안정성은 높지만, 한손으로 휘두르는 속력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살상력이 부족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격만으로도 충분히 살상력이 나오는 일본도에게 버티지 못 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검을 들고 크게 도약하며 창까지 상대 했었다고 한다) 결국 임진왜란을 겪으며 일본도를 상대 하기 위해 환도의 길이가 길어지게되고 임진왜란 이후엔, 몸을 위아래로 크게 회전하면서 체중을 실어 베는 일본의 검술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질량이나 내구도 같은 검의 스펙 같은게 중요한게 아니라, 검을 다루고 가르치는 검술 체계가 있느냐가 제일 중요했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근일에 약간 전습하니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별도로 한 장수를 뽑고 아이들 약간 명을 선택하여 한 대열을 만들어서 왜인의 검술을 익히되 주야로 권장하여 그 묘법을 완전히 터득한다면,  이는 적국의 기예가 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훈련 도감에 이르라."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왜의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중략)신의 아랫사람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환도는 원래 보조무기 국궁, 승자총통, 천자총통 같은 무기와 집단 전술을 애용했던 조선에서 짧은 환도는 보조무기였다. 애당초 조선의 주력은 갑사 부대 즉, 기마궁술이였다. (여진족,왜구 잘 조지던 정예병력이였는데, 신립이 탄금대에서 다 날려먹음) 때문에 조선에서 검을 이용한 전술은 빠르게 쇠퇴했고, 검을 제작하는 기술은 휴대하기에 편한 칼을 만드는데 집중되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환도는 일본도랑 크기가 비슷하더라도 약간 더 가벼웠다. 질량을 낮추었으므로 타격력이 조금 약해졌지만, 다양한 무기들을 함께 패용하거나, 기동성이 높은 전술을 쓰기에도 유리했다. 활을 주무기로 한 우리나라의 병법에 맞춰 변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근접전도 활로 할 정도였고, 임란 당시에도 궁술의 달인들이 많았었다. *임진왜란 이전 무과 시험에 검술과목 자체가 없었다. 다만, 군영에서 검술을 딱히 중요하게 안가르쳐서 공식적인 검술이 없던것이지 기록을 보면 소수의 민간에서 전승되어 몇몇 선비나 장군들이 칼로 전공 세우거나 검술 익혔단 기록들이 있긴있다 전쟁 터져서 수도까지 털리고 하니 당시 정보력 수준으로는 검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애들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근데 이건 세조가 조선군의 인사 고과를 철저히 궁사 위주로 재편시켜 창,검술의 전승이 거의 끊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임란때 고생한게 아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조선의 검술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 발발 200년 이후 1790년(정조 14년)에 편찬된 조선 시대 군용 무술 교본이다. 여기에 5개의 검술이 실려있는데 임란 이후 일본의 검술과 중국 남부의 검술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무기,편제,상황에 맞게 상당부분 재구성 및 재편된 것들이다. 참고로 동시대 기준 수준이 매우 높은 검술 체계들로, 숙련된 검사들이 육성되기 시작했다 (김체건,김광택,백동수 등) 간혹 일본거랑 중국거 수입해와서 한국거 아니다라고 박박거리는 무식한 인간들이 있는데,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만의 오리지널리티 있는것들이 포함되어있고, 어차피 무술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은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일본의 가라데는 중국 남파 권법에서 유래해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본토에 전해졌다. 즉, 자기들만의 무술로 승화시킨것이다. 현재 가라데를 중국무술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드라마의 폐해 한국 사극에서는 100편 중 90편 이상이 카타나(일본도)를 써서 논란이 많았다. 이후 추노,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킹덤 등등.. 무기 고증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쓴 작품이 나오며 고증된 형태의 환도를 볼 수 있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현대에 남아 있는 환도 칼 양끝의 '금속장식'과 '칼집의 띠돈'이 환도임을 나타내고 있다 (독일박물관 소장 녹칠어피 운검) 조선은 군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칼들을 환도라고 불렀는데. 환도 종류로는 대표적으로 일반군용, 운검, 별운검, 어도 등이 있고 환도 외에는 사인검, 칠성검, 예검 등이 있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고려대박물관 소장) 운검 조선의 대표적인 환도 양식으로 후기까지 많이 유지했다. 운검은 왕의 호위무사들을 칭하고 이들이 패용하는 환도 명칭도 운검이라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별운검 나라의 큰 행사 때 왕의 양옆에서 별운검을 들고 호위하는 임시관직이다. 종2품(중장급) 이상 믿을만한 사람 2명을 선발한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어도(임금의 환도) 대모갑, 옥, 금, 은을 사용해 제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네덜란드 소장 운검) (독일 라이프치히 소장 환도) 칼집에 십장생문을 새겨 넣었고 칼날에는 광사두우 光射斗牛 '칼의 빛이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쏘아 우주의 이치에 맞닿는다'가 새겨져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환도) (러시아 박물관 소장 환도) 코끼리 상아로 칼집을 만들고 조각을 넣음 금, 은 등을 사용해 제작 임진왜란 이후 일본도식 손잡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려대 박물관 소장) 칼집에 옻칠을 하고 위에 금분을 뿌려 마무리하는 일본 전통공예 양식(마키에 양식)을 사용 전어도 태조 이성계의 칼 전어도는 경복궁의 고궁박물관에 소장중인 칼로 임금의 어도라고 전해지는 검이다. 야사로는 이성계의 칼로 전해지는데 고궁박물관엔 같은 칼이 1점이 더 있다. p.s 독일에 환도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고종이 선물로 준것들도 많고, 수집가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종격투기카페 펌
전열보병시대 사격방법을 알아보자
전열보병시대 사격방법을 알아보자 1. 일제사격(volley fire) 가장 기본적인 사격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밀집대형으로 한꺼번에 쏘는 방법이다 이 대형의 장점은 정확성에 대한 걱정이 적다는 거다 단체로 한꺼번에 쏨으로 인해서 확률적으로 몇발 빗나가는건 신경을 안써도 되기 때문이다 전열은 최대한 빽빽하게 형성해야 했는데 위 사진처럼 한쪽은 빽빽하게 한쪽은 느슨하게 대형이 되어있다는 가정을 해보자 저렇게 2배정도 빽빽하다면 동일한 면적에 날라오는 총알의 갯수는 2배일 것이고 그에 따라 적이 총알에 맞을 확률도 그만큼 높을 것이다 그렇게 피해를 누적시키면 시킬수록 란체스터법칙에 의해 피해차이는 가속화되고 너는 승리할수 있을것이다 이론적으론 말이다 화력량을 최대로 증폭시키기 위해서 후열까지 동시 사격시키는 경우도 많았는데 첫번째 방법은 위 짤과 같이 2열로 사격하는 방법이다 보통 앞열이 무릎 꿇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럴필요는 없고 그게 큰 장점이다 3열 사격은 맨 앞열의 사람이 무릎을 꿇고 후열이 사격하는 방식인데 이러면 확실히 화력 밀도가 2열 사격보다 증가하지만 앞의 사람이 무릎을 꿇어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격 속도가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더 극단적으로 4열 사격이 있지만 독일쪽에서 실험했을뿐 절대 주류메타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일제사격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순간적인 화력과 충격효과에 있다 만약 네가 병사라 해보자 전진하다가 갑자기 적진에서 일제히 굉음과 함께 화약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네 주변 전우의 절반이 죽었다 이러면 아무리 훈련된 병사라고 해도 멘탈이 나갈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일제사격도 단점이 있다 우선 머스켓의 장전시간이 30초 정도 되는 만큼 단체로 일제사를 하면 그 공백기 동안 적 기병과 보병에 무력해질수 밖에 없다 2번째 단점은 의외로 훈련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니가 이 대열의 맨끝에 병사이고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발사 명령을 내린다고 보자 과연 잘 들릴까? 잘 생각해봐야한다. 대포소리가 가득한 전장이다 덤으로 누군가 트롤해서 실수로 사격했을때 병사들이 명령이 있는줄 알고 사격할수도 있다 과연 한명도 트롤이 없다 장담할수 있는가? 이런 이유 때문에 일제사는 간단해보이면서도 병사들 훈련 수준이 높아야하는 사격 방식이다 전체적으로 고점이 높고 저점이 낮은 전술이라 볼수 있다 2. 소대별 사격(fire by platoon) 소대별 사격이라 적었지만 나누는 부대 단위에 따라 달리 불릴수 있다 중대별 사격이 될수도 대대별 사격이 될수도 있는거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 소대가 사격을 한다 그 다음 소대가 사격 이런식으로 중대에 4개 소대가 있다 치면 마지막 4번째 소대까지 쐈을 경우 이미 처음 발사한 소대가 장전을 완료해서 대기중인 상태일것이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것이 다음 소대가 사격하는 기준은 이전 소대가 사격을 했냐가 아니라 이미 장전을 완료한 다음 소대가 존재할때 사격을 하는 것이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격을 하지 않고 조준만 한다) 이 장전을 한 예비소대는 만약에 위기 상황이 발생할시에 발사할수 있는 역할을 한다 소대별 사격의 장점은 연속성과 대응력, 그리고 명령의 용이함 있다 대응력은 위에서 언급했고 이게 소대별 사격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화력을 투사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비록 총 화력 자체는 일제사에 비해 떨어지더라도 연속 화력과 대응력에서 나오는 안정성은 소대별 사격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 왜 소대별 사격이 일제사격보다 화력면에서는 떨어지는가 하니 일단 다른 소대가 장전이 되거나 거의 완료된걸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장전시간에 + 장전 완료까지 확인하는 시간이 추가되기 때문 그리고 전체 큰 부대가 아니라 작은 개별부대의 부사관이 알아서 타이밍 잡아서 명령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휘관에 병사간 거리가 가까워서 일제사격과 달리 소리가 잘 안들리는 일도 적을 것이다 3. 순차사격(fire by rank)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겠다 그런거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있긴 했는데 주류메타에 전혀 도달하지 못했다 일단 순차사격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보자 간단하다 맨 앞의 1열이 사격한다 그다음 2열이 사격한다 3열이 사격하고 그 다음 1열이 장전이 완료되고 사격한다 흔히 전열보병묘사하는 영화에 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사격법이다 문제가 뭘까? 내가 여기서 하나 질문을 하겠다 그래서 소대별 사격에 비해 장점이 뭔가? 우선 일제사격의 강력한 순간화력과 충격력은 없다 하지만 각 열의 긴 길이 때문에 일제사격에서 지휘관의 명령이 안들리는 문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각 열마다 명령이 따로따로 주어져야하기 때문에 더 복잡해졌다(명령은 최대한 단순해야 시행될수 있다) 그리고 뒤에 있는 놈이 니 머리 바로 위로 쏘는데 불안해보이지 않나? 물론 19세기 중후반의 후장식 소총이라면 이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전장식 머스킷이면 장전중에 이렇게 손을 들텐데 뒤에 놈이 실수로 내 팔을 날리지는 않을까? 물론 이렇게 반론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래서 쏘고 난뒤 무릎 꿇고 앉는거 아니냐?" 하지만 앉는 동작이 추가됨으로서 장전은 더 느려지고 내가 실수로 장전하다 손 들었다가 그때 사격해서 내손이 날라간다는 생각은 계속 든다 그럼 또 이런 반론이 있을것이다 "조심하면 되지" 하지만 소대별 사격은 이런 걱정자체가 필요없다 오히려 명령의 용이성이라는 순차사격이 없는 장점도 있다 그럼 소대별 사격 대신 순차사격 쓸 이유가? 다만 대기병 전략으로는 좀 쓰였던거 같다 방법은 다만 위에서 언급했던것과는 다른데 1열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사격하고 2열은 대기 2열은 사격을 대기하면서 1열이 장전 완료 될때까지 기다림 그리고 1열은 무릎 꿇은 상태에서 장전 1열이 장전과 조준이 완료되면 2열 발사 1열은 2열이 장전하는 동안 무릎 꿇은 상태로 조준하며 대기 이런 식으로 대기병 사격 전술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차 사격도 예를 들면 프랑스 군 같은 경우 1776년 교리에서 금지 되었다가 1788년 부활하는등 부침을 많이 격었고 이것만 보더라도 보병간에 주된 사격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4. 시가지 사격(street firing) 시가지나 좁은 골목에서 쓰이던 사격방법이다 시가지는 좁은 지라 야전처럼 넓게 전열을 피는게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쓰인 사격법인데 우선 맨앞의 병사가 사격을 하면 바로 장전을 하는 대신 왼쪽으로 돌건 오른쪽으로 돌건 위 사진처럼 반으로 나누던 사격직후 맨 뒤로 돌아간다 이 방식의 장점은 좁은 종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좋고(여차하면 사격하면서 한발짝식 빼는 후진 사격이 가능하다) 2번째로 연속적으로 쉴세없이 사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언급한 모든 사격 방식중에 가장 간단하다는 것이다 네가 장교라면 통제해야할 인원이 맨앞에 3,4명 정도이기 때문에 통제가가 쉽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전열보병 시대 사격 방식이기보단 1세기전에 테르시오들이 쓰던 사격 방식이다 그럼 왜 이때는 야전에서 안쓰였는고 하니 그냥 화력 자체가 근본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계속 연속사가 가능해도 실제로 많은 인원이 장전한체로 후방대기 상태이기 때문에 화력이 제한되는 것이다 (전에 마우리츠의 선형진과 테르시오의 머스킷 화력을 계산한걸 본적 있는데 테르시오가 선형진에 비해 화력이 60% 밖에 안나왔다고) 이것이 단적으로 잘 들어난게 미국 독립전쟁의 서막을 알린 콩코드 전투이다 비록 미 독립군은 민병대에 병력 400 영국군은 정규군에 병력 700이여서 상대도 안되는 전투였지만 문제는 경험없던 영국군 장교가 다리=좁은 길목=시가지 사격 이라는 교과서적인 생각으로 시가지 사격을 했지만 문제는 강의 폭이 건너편에서 강 넘어를 쏠 수 있는 거리였고 민병대들은 전열을 펴서 사격한 결과 영국군은 더 뛰어난 사격실력과 인원에도 불구 화력에서  밀리면서 참패해버렸다 (사실 미국이 독립할수 있던 원인중 하나가 이런 초기 영국 장교들의 무능이였고 이들이 유능했어도 독립전쟁의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거란 이야기도 있을 정도) 5. 전진사격&후진사격(firing & advancing/retiring) 전진하거나 후진하면서 사격하는 방법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맨앞의 1열이 사격한다 그뒤 뒤에 있던 후열들이 단체로 전진해서(우측으로 움직이는게 규정) 앞으로 가고 무한 반복한다 후진사격은 반대로 맨앞 1열이 사격한뒤 맨 뒤로 가고 무한 반복한다 이 방식은 대열이 이동하면서 사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몇개 있는데 이동이라는 동작이 추가되어 사격속도가 떨어지고 이동을 위해 대형을 느슨하게 짜야하기 때문에 화력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https://youtu.be/EURWwDbKvWY 군사갤러리 액션코믹스님 펌
우울증 있는 사람들이 배워보면 좋은 것
제과제빵 제과제빵을 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가 나서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는다. 또 제과제빵은 정해진 레시피를 정확히 지켜야한다. 시간과 규칙을 지키는 훈련도 될 뿐더러 노력한 만큼의 성과물이 곧장 나온다. 생활의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요리 우울증 환자들 중 대다수는 밥을 잘 챙겨먹지 않거나, 배달음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수업에서 배운 메뉴들을 집에서 해먹으면 스스로에게 대접해주는 느낌, 스스로를 아끼는 느낌이 들 것이다. 건강한 음식에서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 도예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우리 인간과 가장 친숙한 흙을 재료로 하는 도예기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동심을 되찾게 해준다. 어릴 적 흙장난 하며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작품 만들기를 통해, 정신적 건강함을 되찾는다. 또한, 자신의 상상대로 찰흙이 손끝에 닿는 느낌으로 집중력과 더불어 창의력을 키운다. 목공 목공은 손과 뇌를 자극하는 활동으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목공교육이 타인과의 감정교류 능력을 습득할 수 있고 자신감 배양, 사회성인지기술 및 대처능력의 향상, 문제해결 능력 등에 효과가 있다. 또 목공 특유의 몰입과 집중으로 충동성 행동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은 디아블로 우드워커스(Diablo Woodworkers) 커뮤니티에서 전쟁에서 외상성 뇌손상을 입은 제대군인들을 대상으로 목공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약물남용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공 프로그램을 실시해 개선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나무가 품은 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작업을 통해 탄생한 결과물은 새로 일어설 용기를 준다. 자기 손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집중력을 기를 수 있다. 미술 세상은 작은 기쁨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술은 그것들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 이백- 미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악기 하모니카, 우쿨렐레, 피아노 등을 직접 연주하면 근육이 탄탄해지고 손을 잘 사용하게 되며 몸의 움직임도 좋아진다. 악기를 연주하면 불안과 우울이 줄어들고 전반적으로 건강이 좋아진다. 머리도 좋아진다. 기억상실증이나 치매에 걸린 환자도 자신이 과거 다루었던 악기를 가져다주면 연주할 줄 안다. 악기와 음악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악기는 나이나 늙음의 영향을 가장 나중에 받는, 영원한 반려자와 같은 존재다. 운동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학 연구팀은 운동을 많이 할수록 체력이 강해지는데, 운동하면 뇌에 흘러 들어가는 혈류가 증가해 정신건강이 향상되는 것과 관련있다고 설명했다. 운동이 가벼운 우울증 환자에게 약물이나 상담치료와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다만, 우울증이 진행되어 무기력증이 심한 사람은 운동을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때는 무리해서 운동을 하기보다 병원 진료를 먼저 받아볼 것을 권장한다. 무엇보다 규칙적으로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배우는 생활은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 모두 우울증 이겨내길 출처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위에 말한것들 하나씩 해보면 좋을 듯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