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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작가의 대표작 다다익선 근황.jpg

비디오아트를 개척한 파격적인 예술가
고 백남준 선생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와
1988년 10월 3일 개천절을 맞이해
1003대의 CRT를 설치한 비디오 아트 "다다익선"



하지만 브라운관의 내구연한인 8만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
최상단에 위치한 제일 작은 CRT는 계속 꺼지기를 반복했고
사이즈가 큰 아래쪽의 CRT도 종종 꺼져
2018년 2월 전면 가동을 중단한다.


CRT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상태에서 복원을 위해 노력했지만
최상단의 제일 작은 모니터들은 사실상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


더 이상 고인의 의견을 들을 수 없어 복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되는 상태에서
백남준 선생이 생전 "그거 다 망가지면 그 때 좋은 TV 쓰면 되지" 라는 말에 따라
그래도 구할 수 있는 중간크기와 큰 CRT는 전세계를 뒤져 753대를 수리
작은 모니터 268대를 LCD패널로 교체


3개월에 걸친 시범운행 결과
1일 8시간의 가동으로는 아직까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4년만에 대중들에게 다시 공개될 예정
출처ㅣ개드립

+ 관련기사
한편 생전 백남준 선생은 작품에 들어간 제품이 단종될 경우 영상이미지만 온전하게 상영할 수 있다면 신기술을 적용해도 좋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 9월 ‘다다익선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마련해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해당 작품을 보존해왔다.

전체 브라운관 모니터를 정밀진단해 735대는 중고 제품으로 수리 및 교체를 진행했으며, 사용이 어려운 268대는 새로운 평면 LCD를 제작해 교체작업에 나섰다. 이와 함께 향후 사용할 예비용 모니터를 확보하고 작품에 상영된 8개 영상은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디지털 변환·복원 작업을 마쳤다.

현재 <다다익선>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박물관 램프코어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사용빈도에 따른 브라운관 세부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대에만 가동을 실시할 예정이다. 작품 모니터링, 응급처리 등 현장 상황에 따라 가동 시간은 변경될 수 있으며 후속 일정은 추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시험운전을 했었죠 *_*
아마 모니터 교체한 걸 백남준 선생님이 보셨다면
좋아하지 않으셨을까 -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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