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회의 전통
영국에서는 의회가 개원할 때, 여왕이 직접 개원 연설을 하는 전통(Queen's Speech) 이 존재한다. 오늘은 영국 여왕의 개원 연설에 따른 유서깊은 전통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연설에 앞서, 여왕의 근위병들이 의회를 샅샅이 수색한다. 유서깊은 왕실 치곤 수상할 정도로 왕 모가지가 많이 떨어지는 영국다운 전통인데, 1605년 가톨릭교도들이 제임스 1세 모가지를 따기 위해 의회 지하실에 화약을 잔뜩 공구리 쳤다가 미수에 그친 '화약 음모 사건' 이후, 국왕이 의회에서 연설할 때는 근위병들이 폭탄 따위가 없는 지 수색한다. 물론 요즘에야 폭탄이 나오는 일은 없지만,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저 '화약 음모 사건'을 주도했다가 처형당한 인물이 바로 아나키즘의 상징으로 유명한 가이 포크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여왕이 버킹엄 궁을 떠나 의회에서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의회에서는 반드시 한 명의 하원 의원을 버킹엄 궁에 인질(MP Hostage)로 보내야 하는데, 이 또한 혹시 모를 의회의 공격에 대비한 전통이다. 과거 의원 인질은 버킹엄 궁 지하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삼엄한 감시를 받다 풀려나는 매우 살벌한 자리였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버킹엄 궁 응접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연설을 시청하는 형식적인 인질에 불과하다. 물론 여왕과 맞바꾸는 자리인 만큼 인질 역할을 맡는 의원 개인에게는 매우 영광스러운 임무로 여겨진다. 의원 인질은 버킹엄 궁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인질 역할을 맡았던 의원 인터뷰에 따르면 음료수나 홀짝이며 연설을 시청했다고 한다. 수색이 끝나고 인질까지 확보해서 의회가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드디어 여왕은 의회로 출발한다. 기마병들이 앞장서고, 여섯 마리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에 탄 여왕이 그 뒤를 따른다. 참고로 여왕의 황금마차는 뉴턴의 사과나무의 일부, 수상 관저의 나무문 일부, 런던탑의 일부, 넬슨제독이 탔던 배의 나무조각 등이 활용되어 만들어졌으며, 자동창문과 에어컨, 유압식 서스펜션 등 현대적인 기술도 접목되었다고 한다. 영국에 국빈으로 방문하면 여왕과 함께 탑승해볼 수 있다니 황금마차를 타보고 싶으면 국빈으로 초청받아보자. 여왕이 연설이 이루어지는 상원(귀족원)에 도착하면, 이제 하원(평민원) 의원들을 불러모을 차례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전통이자 여왕의 전령, '블랙로드(Black Rod)'가 등장한다. 굳이 블랙로드라는 전령이 있는 이유 또한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1649년 찰스 1세가 하원 회의장에 쳐들어가 반대파를 체포한 이후, 의회의 강력한 항의로 인해 "국왕은 하원에 직접 들어갈 수 없다"라는 전통이 생겼다. 때문에 블랙로드는 여왕을 대신하여 하원 의원들을 상원 회의실로 소집하는 임무를 맡고 하원으로 향한다. 블랙로드가 하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하원 의원들은 블랙로드 앞에서 문을 꽝 닫으며 말그대로 문전박대한다. "아니, 여왕의 대리인한테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하원의 권리와 왕실로부터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전통적 퍼포먼스다. 문전박대 당한 블랙로드는 자신의 지팡이로 문을 세 번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 간청하고, 문이 열리면 비로소 블랙로드는 여왕의 소집령을 전달한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소집에 응하지만, 몇몇 의원들은 빈정거리며 거부의사를 밝힌다. "아니, 나는 안 가겠소!" 여왕이 오라는데 대놓고 싫다는 패기가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지만, 이 또한 의회의 '불경스러운 반항'으로, 몇몇 의원들은 여왕의 소집을 거부하며 하원에 남는 전통이다. 결국 끝까지 소집을 거부하는 의원들은 하원에 남아 태블릿pc로 연설을 시청한다. 그렇게 하원 의원들까지 모두 상원에 모이면, "나의 상원과 하원 의원들에게(My Lords and Members of the House of Commons)" 라는 여왕의 말을 필두로 개원 연설이 시작된다. 여왕의 연설은 10분 내외로 진행되는데, 그 내용은 여당을 비롯한 총리내각이 작성한다. 사실상 여왕의 연설이라기보단 여왕의 입을 빌린 여당의 국정계획 발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연설 말미에는 의회의 논의를 존중하는 의미로 "다른 수단도 의원들 앞에 놓일 것"이라는 말이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전능하신 신의 가호가 의원들과 함께 하시길"리하는 말과 함께 여왕의 연설이 끝난다. 연설을 마친 여왕은 다시 버킹엄 궁으로 돌아가고, 의원 인질도 풀려나 의회로 돌아온다.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