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wg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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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 영혼은'.
어디서 많이 본 남자 배우라고 느꼈는데 찾아보니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였어요.
원작이 미국 작가인 켄트 하루프가 2014년 70의 나이에 쓴 유작 소설이랍니다.
제인 폰다가 연기한 애디가 용감하네요.
제안에 응한 루이스가 젊은 날 바람피운 일이 온 동네에 쫙 퍼져, 며느리가 집을 나가 잠시 손자를 돌보는데 남사친이 된 루이스를 아들이 싫어하는데도 여행가서 호텔에서 젊은 연인들처럼 하룻밤을 보내고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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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뒷산 #청와대가볼만한곳 #서울등산코스 #서울산행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일요일 아침, 어느 곳에서 하루를 시작하시나요? * 댓글 상세한 내용은 링크를 클릭하세요. *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5월은 정말 바쁘게 여행을 다니고 있네요. 엊그제 영월 당일치기 일정이 정말 빠듯하게 다녀왔는데요. 첫차를 타고 제천으로 가서 원주에서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일정으로 요즘 최고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일요일 아침 일찍 서울근교 가까운 남이섬으로 향합니다. 마침 남이섬에 크루즈여행도 있어 더불어 남이섬을 여행하고 옵니다. 강동구 이웃들과 함께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국내 여행지는 최근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청와대를 중심으로 청와대 뒷산도 산행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데요. 청와대뒷산 등산 코스와 연계한 한양도성길 백악구산을 소개합니다. 1, 청와대 뒷산 탐방로 서울 등산 코스 청와대 뒷산은 예약 신청 없이 다녀올 수 있어요. 청와대-북악산 탐방로 개방시간 ✔여름(5~8월) 07:00-19:00 ✔봄/가을(3~4월/9~10월) 07:00-18:00 ✔겨울(11~2월) 09:00-17:00 ✔입산 마감시간은 개방시간 종료 2시간 전 여름철 여름(5~8월) 07:00-19:00 시에 칠궁 또는 금융연수원 앞 춘추관 옆으로 시작해서 둘러본 다음에 시간에 맞춰 청와대 관람까지 하신다면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있습니다. 2. 서울 한양 도성길 1코스(북악산)-서울 등산 코스 백악구간 창의문 ~ 혜화문 거리 : 4.7km 소요시간 : 3시간 난이도: 상 #청와대 #청와대뒷산 #서울등산코스 #서울등산 #한양도성길 #한양도성순성길 #백악구간 #산행코스 #등산코스 #서울산 #청와대관람 #서울등산초보 #서울등산추천 #청와대칠궁 #창의문 #숙정문 #말바위안내소 #와룡공원 #한국금융연수원 #청와대춘추관
[혼슈 북쪽 끝 아오모리현 9] 구루링 시모키타호(ぐるりんしもきた号) 버스투어 : 지옥과 극락이 공존하는 일본 3대 영지(霊場) 오소레잔(恐山)
(오소레잔에서 지옥 순례하는 사람들 恐山で地獄めぐり) 투어 버스(구루링 시모키타호 ぐるりんしもきた号)가 오소레잔(恐山)에 도착했습니다. 오소레잔(恐山)은 고야산(高野山), 히에이잔(比叡山)과 함께 일본 3대 영장(日本三大霊場)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 '영장(霊場)'이란 신도와 불교의 영험이 강한 곳을 뜻하며,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영산(霊山), 영지(霊地)라고도 합니다. (오소레잔 보다이지 정문 恐山菩提寺 総門) (오소레잔 보다이지 산문 恐山菩提寺 山門) (본당 本堂) (오소레잔 온천. 좌: 후루타키노유 古滝の湯, 우: 히에누키노유 冷抜の湯) (본존 안치 지장전 地蔵殿) '오소레잔(恐山)'의 한자를 풀이하면 '무서운 산'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방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오소레잔으로 간다'는 믿음이 천 년 이상 내려오고 있습니다. (납골탑 納骨塔) 온통 회색빛 돌과 바위 투성이며,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유황 냄새가 나는 것이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합니다. 사람들은 지옥 순례를 하면서 기도를 하기도 하고 돌을 쌓고 바람개비를 돌리기도 합니다. (영혼석 みたま石) (자각대사당 慈覚大師堂) 오소레잔은 1200년전에 자각대사 엔닌(慈覚大師円仁 794~864)에 의해 조성된 영장(霊場)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수행하던 젊은 시절에 꿈에서 본 계시를 따라 일본의 각 소국으로 설법을 다닌끝에 시모키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풍경에 감동한 엔닌이 지장보살을 조각하여 본존으로 모시면서 오소레잔의 영장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소레잔에는 지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소리코(宇曽利湖) 호수와 호숫가 백사장은 극락을 연상케 합니다. 잔잔한 호수와 흰모래의 백사장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극락 해변(極楽浜)이라 불리는 모래사장을 걸어보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소레잔에는 지옥과 극락이 다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이곳에 올 수밖에 없겠습니다. ( 동일본대지진 재해위령탑 東日本大震災慰霊塔) (극락 해변 極楽浜) 극락 해변에서 점차 멀어지니 극락과 지옥의 경계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지옥 순례가 이어집니다. 극락은 단순한데, 지옥은 정말 종류도 많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지옥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간지옥(無間地獄)인데, 고통이 쉴 틈도 없이 이어진다고 해서 무간(無間)이라고 한다는군요. (무간지옥 無間地獄) (중죄지옥 重罪地獄) (도야지옥 どうや地獄) (수라왕지옥 修羅王地獄) (육대지장 六大地蔵) 죽은자의 영혼이 모인다는 오소레잔에는 일년에 두번 (7월과 10월) 큰 제사(大祭)가 열려 전국에서 온 많은 참배자들로 북적인다고 합니다. 이때 이타코(イタコ)라는 무녀(巫女)가 죽은자의 영혼을 부르고 빙의(憑依)해서 죽은자와 산자가 대화하는 신기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イタコの口寄せ) 오소레잔은 죽음(死)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사람이 겸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오소레잔 대제 때 이타코를 통해 이승에서 헤어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오소레잔 공식 홈페이지 사진) (오소레잔 공식 홈페이지 사진) (오소레잔 공식 홈페이지 사진) (오소레잔 공식 홈페이지 사진)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있는 삼도천과 다리 三途の川と太鼓橋. 오소레잔 공식 홈페이지 사진) (계속) (여행일 2019.09.14) [오늘 이용한 교통편] 08:10 무쓰 카사마이관(むつ来さまい館) - 09:20 오오마곶(大間崎) (구루링 시모키타호 ぐるりんしもきた号) 09:50 오오마곶 - 10:20 쓰가루해협 문화관 알자스(津軽海峡文化館アルサス) (구루링 시모키타호) 10:40 쓰가루해협 문화관 알자스 - 11:10 호토케가우라(仏ヶ浦) (유람선) 11:40 호토케가우라 - 12:10 쓰가루해협 문화관 알자스 (유람선) 12:30 쓰가루해협 문화관 알자스 - 14:15 오소레잔(恐山) (구루링 시모키타호) 15:15 오소레잔 - 16:30 시리야곶(尻屋崎) (구루링 시모키타호) 16:50 시리야곶 - 18:10 오미나토역(大湊駅) (구루링 시모키타호) 18:13 오미나토역 - 19:14 노헤지역(野辺地駅) (쾌속시모키타 키하100계) 19:24 노헤지역 - 20:11 아오모리역(青森駅) (아오이모리철도 701계)
폴 토마스 앤더슨의 연출 방식 분석해봄.txt
국내에서는 이동진 평론가 영향인지 예술영화 찍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감독임 대표작으로는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등 있음 난해한 내용 때문인지 호불호도 많이 갈리고 그래서 오늘은 이 감독 영화가 왜 좋은지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찍는 감독인지 에 대해서 써보려고함 당연히 스포 있음 시나리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시나리오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함 언제 타란티노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음 "데어 윌 비 블러드 굉장하던데? 대사도 좋았어. 폴 토마스 앤더슨도 나 못지 않게 시나리오를 잘 쓰는 거 같아." 이 감독의 영화를 보면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두고, 방황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다룬다는 특징을 갖고 있음 근데 이 특정한 시대에 대한 통찰이나 묘사가 매우 정확함 이 정확함은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음 구상하는 방식 아래는 인터뷰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밝힌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임 데어 윌 비 블러드- 오일이라는 소설 읽다가 석유 산업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었음 마스터 - 세계 2차대전 종전 뒤 신흥 종교가 유행했다는 얘기를 듣고 찍음 부기 나이트 - 어렸을 적부터 보던 70년대 포르노에 관심을 갖게 되어 찍음 등등 전개하는 방식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이 특이함 먼저 두 명의 등장인물이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임 이 두 명의 인물이 얘기하는 것을 자기가 본능적으로 쓰다보면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인지 알게 된다는 거임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철저한 조사를 함 부기 나이트를 찍기 위해 몇백몇천편의 포르노를 섭렵한 것은 유명한 일화 그러니까 위의 방법론을 정리해서 말하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특정한 견해나 감정을 뼈대로 두고 여기에 디테일을 덧붙여가면서 이야기를 확장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감정선과 견해가 일관되게 느껴지고 더욱이 이를 설명해주는 직업군과 풍경을 매우 디테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설득력이 느껴짐 반복되는 묘사 이 감독의 또 다른 특징은 영화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나온다는 거임 영화 초반부에서 주인공이 겪은 사건이 후반부에 반복되는데 이 때 주인공의 반응이 다름 이를테면 위 사진과 같이 마스터의 오프닝과 엔딩 부기나이트의 딸치는 것을 보여주고 10달러를 받는 것 등등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주인공의 반응이 달라지고 이를 통해서 주인공의 성격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함 집단 이 감독 영화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음 주인공을 보면 개인 -> 집단 -> 개인 으로 위치가 자꾸 변화하는 것도 특징 이는 여러가지 효과를 주는데 1. 개인의 감정보다는 집단의 감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크게 다가옴 2. 집단으로 견해를 주장하기 때문에 견해가 더욱 설득력이 있음 3. 주인공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집단과 비교하여 대비시킴 4. 집단 속 인물들의 성격이 정형화 되어 있지 않고, 서로 달라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어줌 등등 유머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가 시종 진지한 건 아님 유머가 많은데, 이 유머가 마냥 웃기는 유머가 아닐 뿐 이를 테면 위 사진처럼 마스터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바이크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여자의 집을 찾지 못해 아파트를 뛰댕기는 주인공 부기나이트에서 주인공에게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등등 유머가 많음 주인공은 웃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진지한데 상황이 웃기기 때문에 마냥 웃지 못하고 오히려 감정이 복합적으론 느껴지는 거임 주인공에게 연민이 생기거나 이런식으로 연출 정성일 평론가가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고 폴 토마스 앤더슨의 연출력은 현역 감독 중에서 스콜세지말고는 비견할 자가 없다고 한 적도 있을정도로 연출도 잘하는 감독임 촬영 폴 토마스 앤더슨은  상황이 주는 감정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촬영함 로버트 엘스윗이라는 촬영감독이랑 일했었는데 팬텀 스레드부터는 자기가 직접 촬영까지 하고 있음 롱테이크랑 줌인을 많이 사용하는 식으로 테크닉이 좋음 부기나이트나 매그놀리아 롱테이크는 워낙 유명하고 나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특히 빈공간이랑 초점을 잘사용한다고 생각함 요런식으로 빈공간을 크게보여줘서 외로운 주인공의 심리를 극대화한다거나 이 장면은 이렇게 초점이 전체적으로 또렷한데 그 바로 다음 장면은 초점을 주인공한테만 맞춰서 주인공이 한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외롭다는 것을 잘표현함 색 펀치드렁크러브에서 파랑과 빨강으로 이성과 열정을 상징으로 보여주거나 피의 색감을 진하게 해 석유의 색과 비슷하게 연출해서 자본주의와 죽음을 연관짓는 연출 등 색을 창의적으로 사용함 이외에도 배경과 인물을 분리시키는 조명 후반부로 갈수록 빨라지는 편집 등등 이야기하고 싶은게 많은데 글이 길어지니 여기까지함 Pta가 거장이긴하지만 단점도 있음 시나리오의 구조를 따르지 않고 상업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그런거 하지만 나는 구조에 못따라 가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구조를 장악해서 가지고 노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음 출처ㅣ에펨코리아
한국 시티팝에 대해 아는 거 말해준다.
이름이 일본에서 쓰이던 시티팝이란 용어를 붙여서 일본에서 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이 그 원조다. 서양(특히 미국)에서 7~80년대 당시 유행하던 다양한 장르 혹은 경향의 곡들(특히 aor)을 일본이 빌려가 자신들의 전성기 시절 화려한 도시 감수성을 섞어 만든 게 일본 시티팝이다.  일본에서도 시티팝은 장르보단 하나의 경향에 더 가깝다고 설명된다. 여러 장르의 곡들 중에서도 그 당시 기준으로 도시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자국의 곡들을 일본에서는 시티팝이란 타이틀을 붙여 소비했다. 이것은 일본의 화려했던 버블경제 시기와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버블경제가 붕괴되던 즈음에 일본 시티팝도 함께 하락세를 겪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0년대 서양 힙스터들 사이에서 과거의 일본 시티팝 곡들이 재조명을 받는다. 이로 인해 생긴 시티팝 매니아들이 유튜브에 일본 시티팝 노래들을 업로드하면서 여러 나라에 일본 시티팝이 알려진다. 그 중엔 한국도 있었는데, 한국에선 자국 노래 중에서 당시 일본 시티팝과 분위기가 비슷하거나 장르가 겹치는 곡들을 시티팝이란 타이틀로 뭉뚱그려 하나로 묶는 경향이 생겨난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시티팝이라 불리는 과거 한국 노래들(김현철, 빛과 소금 등등)은 일본 시티팝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고 독자적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한 것이다. 그 노래들은 일본 시티팝보단 오히려 서양의 훵크, 디스코, 퓨전 재즈 등등에 영향을 받아 나온 것들이다. 8~90년대 한국인들은 역사 문제로 감정이 좋지 않은 일본보단 미국, 영국 등 서양 음악에 더 호감을 많이 보였고, 그래서 서양 음악에서 더 영감을 많이 얻었다. 그 탓에 당시엔 일본의 시티팝이란 게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7~80년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일본 시티팝과 분위기와 사운드가 비슷한 곡들이 많이 나왔지만, 오히려 원조는 그쪽이고 일본 시티팝이 그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 중 하나인데,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시티팝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티팝이란 용어는 그 당시엔 거의 일본에서만 사용했지 서양에서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래 두 곡은 분위기와 사운드가 시티팝과 비슷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선 시티팝이라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그 과거의 한국 노래들을 포함해 2010년대 들어 한국 시티팝 타이틀을 걸고 나온 신곡들 모두 시티팝이라 불리고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한국 시티팝 또한 장르보단 분위기로 설명되는 경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다만 2010년대 한국 시티팝은 뉴디스코, 드림팝 등 일본 시티팝에선 잘 보이지 않던 장르들까지 섞어서 만든 또 다른 흐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시 감성이 녹아있으면서도 복고 느낌이 나는 하나의 경향이고, 이는 일본 시티팝과는 차이점이 있다. 어쨌든 김현철을 한국 시티팝의 원조라 부르는 건 좀 논란이 있을 듯 옛날 곡들을 굳이 시티팝이라 불러야 하나에 대해선 파가 갈리기 때문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김현철이 한창 활동할 당시엔 많은 한국인들은 시티팝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음 김현철은 시티팝을 의식하고 만든 게 아니고 서양 음악에서 받은 영향으로 곡을 만든 건데 후대 사람들이 시티팝이라 뭉뚱그린 거 어느 인터뷰에서도 김현철은 2010년대 들어서 사람들이 자기 보고 시티팝 대표주자라 부른다는 걸 전해듣고 시티팝에 대해 처음 알았다고 함 출처 + 같이 보시면 좋을 거 같아서 추가하는 글 *_* 일본이 1980년대 우리가요를 시티팝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모공에 종종 시티팝 추천곡들이 올라옵니다.  시티팝이란 1980~90년 대 흥했던 영미권의 신스팝(Synthpop), 소울, 디스코 등을 일본어로 부른 Jpop 의 총칭일 뿐 장르로써 인정되지 않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1980~90년대는 영미권의 신스팝(Synthpop), 소울, 디스코가 95%일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대중음악은 영미권의 그늘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문제는 일본이 음악적 장르로 볼 수 없는, 지극히 자국에서만 쓰일만한 용어인 시티팝의 범주에 한국의 1980~90년 가요를 포함 시키는 것을 보고, 황당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시면 1980~90년대 우리가요를 마치 일본의 시티팝 하위 장르로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국 시티팝의 계보를 짚는 이들도 생겼다. 윤수일의 ‘아름다워’(1984년)가 그중 하나다. 정작 당시에 윤수일은 시티팝을 몰랐겠지만 그 곡이 사실 시티팝이었다는 것. 시티팝은 음악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 몽환적이면서도 현대적 느낌을 준다. 하세가와 요헤이는 “일본 시티팝 컬렉터들 사이에 김현철, ‘빛과 소금’의 음반은 유명한 수집 타깃”이라고 했다. 김현철은 “1, 2집 제작 당시 스무드 재즈를 좋아했지만 시티팝이란 장르는 몰랐다”고 말했다.' ------------------------------------------------------------- 내용을 보시면 윤수일, 김현철은 시티팝이라는 장르를 몰랐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시티팝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1980~90년 대 흥했던 영미권의 신스팝(Synthpop), 소울, 디스코를 일본어로 부른 Jpop 의 총칭일 뿐 장르로써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근거로 해외 유명 음악 DB 사이트에서 (국내에서) 시티팝으로 유명한 일본 뮤지션의 정보를 캡쳐하여 위에 올려 보았습니다.  보시면 뮤지션 정보, 앨범 정보, 장르나 스타일에서 '시티팝'이란 용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1980년대 신스팝은 조용필을 필두로 하여 동시대와 유행을 나란히한,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 우리만의 유산입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시티팝'이란 용어를 만들어 우리가요를 종속시킨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제가 지적한 것은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김치가 기무치가되어 해외에서 알려지는 것처럼 우리가요가 시티팝으로 둔갑되어 해외에 알려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저는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