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밥솥 안에서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who-invented-the-instant-pot 가벼운(!?) 주말 특집. 혁명은 밥솥 안에서이다. 2017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주방 기기가 하나 있다. 압력솥이다. 평범한 압력솥이 무슨 인기를 끌 수 있으랴 하지만, 이 인스턴트 팟(Instant Pot)은 캐나다 회사 Double Insight가 개발한 스마트 압력솥이다(참조 1). 이 솥이 인기를 끈 이유가 있다. 압력 덕분에 음식을 조리하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시간을 훨씬 짧게 하고, 레서피를 스마트폰의 블루투스를 이용해 전송하는 방식도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인스턴트팟으로는 심지어 팥죽과 식혜도 가능(참조 2). 버튼만 누르면 되니, 오븐을 다룰 줄 안다면 어떤 음식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너무나 널려있는 작은(?) 부문부터 혁신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짜 기술이다. 다만 이 압력솥의 원조가 따로 있다. 17세기 프랑스로 가 보자. 드니 파팡(Denis Papin)은 1647년 블루아(Blois) 근처에서 태어났다. 의대를 들어간 그는 학위를 마친 후(역시 자식을 낳으면 의대를 보내야 합니다), 1670년부터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 참조 3)에서 일하는데... 이 과학 아카데미에서 만난 스승이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n Huygens, 참조 4)와 동년배 친구,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참고 5)이다. 하위헌스의 연구조교(...)로 뽑힌 파팡은 왕복 기관, 그러니까 피스톤 엔진의 기본 원리를 연구했다. 진공 상태에 대한 논문을 제출한 그는 낭트 칙령을 폐지하네 마네 말이 나오던 차에(그는 칼뱅파였다) 하위헌스의 추천서를 받고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로 간다. 여기서 그는 로버트 보일(Robert Boyle)과 함께 일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성과가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런던에서 그는 진공에 대한 연구를 응용하여 최초의 압력솥을 발명했다! 그는 압축된 증기의 힘을 측정하고 이를 동력화하다가 이걸 요리에 쓰면 요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를 부드럽게 만드는 새로운 다이제스터 혹은 엔진(A new Digester or Engine for softening Bones (1681))”이라는 책의 서두에서 그는 요리가 너무나 오래된 기술이라 사용도가 너무 일반적이고 자주 일어나기에, 요리 기술의 개선에 대해서는 진지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실제로 작동하는 모델을 완성한 해가 1679년. 다이제스터라 이름 붙인 이 압력솥은 별도의 아궁이와 함께 실린더들로 이뤄져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학회 만찬 식사 요리를 이 솥으로 만들어서 제공하자 교수들 모두 난리가 났다. 1682년 기록을 보면 압력솥으로 만든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잔소리하는 아내에게 갖다줬더니 평화가 오더라...는 간증이 있다. 당연히 압력솥은 피스톤 엔진의 원리로 연결된다. 그래서 그는 대형 압력 왕복 기기의 개념 설계를 마쳤는데... 마침 라이프니츠의 초청도 있어서 그는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가 된다. 하지만 독일 내 대포 실험 실패로 인해 사상자가 다수 발생, 공적이 되어버린 후, 그는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게 웬 걸, 그의 친구 로버트 보일은 사망했고, 이제 런던왕립학회는 아이작 뉴턴이 독재를 휘두르고 있었다. 뉴턴은 파팡의 기술을 경멸했고 그 대신 토마스 세이버리(Thomas Savery)의 유사 기술(그의 연구에는 피스톤이 없었다)을 더 우대했다. 학회에 파팡의 자리는 없었다. 그는 1713년 쓸쓸히 런던에서 사망했는데, 실제 증기기관을 발명한 토마스 뉴커먼(Thomas Newcomen)은 정작 파팡의 개념 설계를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물론 역사는 거의 언제나 영국인이 이기는 것으로 끝나지. ---------- 참조 1. 웹사이트: https://instantpot.com 2. 인스턴트 팟으로 동지 팥죽과 식혜 만들었어요 - 레시피 추가했어요(2017년 12월 23일): https://www.missycoupons.com/zero/board.php#id=food&no=25405 3. 샤를 5세가 1364년에 설립한 Angers 대학(헨리 8세가 이혼에 대한 법률자문을 구한 곳이 여기였다)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파리 과학아카데미로 올라온 이유 중 여러 설이 있다. 당시가 루이 14세 시절임을 감안하시라. 콜베르 사모님과 동향이라는 것. 역시 지연의 힘이란... 4. 1997년 토성 관측을 위해 NASA에서 발사한 카시니-하위헌스 이름에 있는 바로 그 하위헌스이다. 그는 토성 고리를 연구한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5. 아이작 뉴턴과 (별개이기는 하지만) 함께 미적분을 발견/창시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