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armoo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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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버린 노동운동의 기준

지금이라고 다를까! 오히려 더욱 분업, 전문화되지 않았을까! 파업, 분쟁..지금은 인권이나 생존이 아닌 개인의 사리사욕추구가 그 목적인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보지 못한 정치가들의 움직임도 사회발전의 장애가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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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평전, 김삼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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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파일럿 출신 미합중국 대통령
허버트 워커 부시??? 댓츠 논노! 그렇지 않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중령시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하면서 필리핀 육군항공대 창설에 관여했었는데, 하는김에 조종사 훈련도 필리핀인 교육생들과 같이 받음. 미 육군 항공대 장교 William L. Lee와 Hugh A. Parker가 필리핀 육항대 비행교관으로 1936년부터 비행생 교육을 했는데, 그 교육생 중에 한명이 아이크였음. 당시 아이젠하워 나이 46세 비행훈련은 Stearman PT-1을 탑승하여 이루어졌는데, 교관들의 당시 대체적인 평은 조종사로는 형편없지만 좋은 학생 아이젠하워 자신도 나는 46세에 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반사 신경이 젊은이들보다는 느렸다라고 일기에 쓰기도 함. William L. Lee는 비행훈련 중에 그를 테스트 하기위해 일부러 잠든척 했다는데, 아이젠하워 왈 - 그때 공황상태가 척추를 타고 오르내리며 무릎을 흔들었고, 혀가 마비됐었다. 1937년 5월 19일 필리핀에서 첫 단독비행에 성공했고, 1939년 미국 개인조종사 라이센스까지 취득해서 미국, 필리핀 조종사 자격증 두가지 모두를 취득하게됨. 1939년 7월 19일 승인된 아이젠하워의 개인 조종사 면허증. 20일 일기장에 그는 "한 가지 야망을 드디어 실현했다."라고 작성했음. 단독비행 성공 이후에는 필리핀과 미국에서 Stinson Reliant를 조종했다는데, 해당 비행기 조종시간 포함하여 1936년 7월 부터 1939년 11월까지 총 350시간의 비행시간을 보유 1945년 필리핀 공군이 아이젠하워 조종사 자격증을 검토하고, 정식 공군 파일럿 자격과 공군배지를 보내주었다고 함.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는 첫 에어포스원이었던 Lockheed Constellation Columbine II와 III을 탑승 하여 장거리 비행을 할때면 지루함을 달래고자 종종 부조종사석에 앉아 조종을 했다는 일화가 있음. 워싱턴 DC에서 펜실.베니아주 케티즈버그 농장으로 U-4B를 탑승해서 비행할 때면 아예 조종사에게 통제권을 받아서 스스로 조종 했었다고 함. 성취는 목적지가 아닌 여정이 될 것입니다. - 아이젠하워 군사갤러리 투하체프님 펌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즉각 중단하고 엄정하고 신속한 법 집행으로 책임자를 강력 처벌하라!
https://youtu.be/rPabVrhqMis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전국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은 211건이다. 이중 기소는 겨우 11건이다. 광주전남지역을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1년동안 40건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해 48명의 노동자 사망했지만 적용된 사건은 7건이다. 그나마도 기소된 건은 단 한 건도 없다. 달라지지 않는 현장 안전, 엄정한 법 집행은커녕 노골적인 무력화 공세에 중대재해는 감소는커녕 증가했고, 노동자 시민의 참혹한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화정동 참사, 여천NCC 참사 현장 유족들 앞에서는 법에 따라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대재해 처벌법 개악, 과로사 조장하는 노동시간 개악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 노골적인 친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처벌보다는 예방이라며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노동자 실질 참여 보장은 없는 실패한 자율안전 정책의 답습’일 뿐 아니라 ‘기업처벌 조항은 축소하고, 노동자 처벌 조항은 확대’로 경영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과 경총 등 재계는 중대재해 예방보다 경영 책임자 처벌을 피하기 위해 유례 없는 건설 현장 셧다운을 하고, 전·현직 노동부 관료, 판검사 등 전관들과 손잡고 대형 로펌 자문과 형식적인 페이퍼 작업에 열을 올렸다. 국회 통과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법의 개악만 요구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 재벌 대기업이 사주로 있는 보수, 경제지 언론들은 사실관계도 왜곡한 해외사례를 운운하는 전문가를 앞세워 경영계의 요구만 끈질기게 보도하여 친기업 여론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통한 예방강화가 현장에 안착되고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던 노동부도 입장을 바꿨다. 11월말에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하더라도 노사추천 전문가로 TF를 구성하겠다고 하더니, 한 달도 안 되어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일방적으로 발족했다. 발족식에서는 ‘제제방식의 변화’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전 개정‘ 등 법의 개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법에 따라 범죄자를 수사, 기소하고 재판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검찰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 시행 1년 동안 노동부가 30건이 넘는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해를 넘기지 않으려 12월 말에 처리한 5건을 포함하여 단 11건을 기소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재벌 대기업은 빠져있고, 법 위반이 명확한 삼표에 대해서도 총수 소환은 10개월이 지나 진행했고, 1년이 지나고 있으나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적 사안은 대규모 검찰력을 투입하여 전광석화로 수사하고, 노동자가 죽어 나간 민생 현안은 장기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추진과 같은 윤석열 정부의 생명안전 정책 후퇴는 10,29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시민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하나부터 열까지 최소한의 상식을 저버리는 만행을 거듭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은 ‘노동자 참여 없는 실패한 자율안전’ ‘말단 관리자 처벌, 솜방망이 처벌’로는 중대재해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중대재해는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에 의한 조직적이고 구조적 범죄임을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확인한 것이다. 법 시행 이후에도 노동자 시민의 75%는 법이 예방에 기여 한다고 생각한다. 중소사업주의 80%는 하청에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찬성한다. 노동자 시민의 60%는 법의 현행 수준을 유지하거나 강화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경영계와 윤석열 정부는 실체 없는 주장의 반복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여론 호도를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중소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세우기 위한 실질적 지원대책을 강화하고, 신속한 법 집행을 통해 경영책임자를 엄정 처벌하여,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실질 효과를 발휘하도록 즉각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광주본부와 노동시민사회는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공세를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분쇄하고 엄정하고 신속한 법 집행으로 중대재해 책임자가 처벌되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나아가 작업중지권과 노동자 참여가 전면보장되는 중대재해 근본대책 수립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적용과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투쟁을 전면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2022년 1월 26일,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기존나쎈 조선 최초의 주미 대사.jpg
때는 1887년.. 5년전에 구식 군인들이 일으켰던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허겁지겁 부르긴 했는데.. 청나라는 군대 진압했으면 좀 꺼지지 조선에 눌러앉아서 온갖 간섭을 하려 했고 일본은 임오군란때 죽은 일본인과 불탄 일본 공사관을 들이밀며 배상 요구를 하려 한것임 심지어 언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지들 군대도 조선에 주둔시키겠다는 말같지않은 요구도 해버림 하지만.. 고종 고종은 쩔수 없었다.. 그 뒤로 조선은 지겹도록 청나라와 일본 간섭에 시달리게 됨 *잠시 당시 관계 설명* 이 당시 청나라는 서양 국가들에게 탈탈탈 털리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선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들 따까리 자리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하지만.. 원래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사대관념에 입각한 조공책봉 관계, 즉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보살펴주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는 그런 관계임. 말그대로 힘에 의한 관계라기 보단 이념에 따른 자발적 관계이고, 당연히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었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청나라가 자꾸 선넘더니 무력을 앞세워 국정에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 이때부터 조선인들도 머야시발;;하면서 청나라와의 전통적 관계를 끊고 동등한(=근대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조공을 철폐하려고 하는 등 한발자국씩 나아가던 시기였음 ~다시 돌아와서~ 조선의 여러 관료들은 청나라를 비롯한 외세의 개입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시점에, 어떻게 하면 조선이 자주독립을 지키며 근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 또 고민했음 그 당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외교> 조선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제질서에 편입하고자 했음 그렇게 해서 청나라에도 조공책봉 사신이 아닌 동등한 주청 상주 외교관을 파견하고, (물론 청나라는 전통 질서에 혼란 생긴다고 싫어했음 ㅎㅎ 우짤) 도쿄에도 주일 외교관을 파견하고자 했었음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바로 조선 최초의 주미 대사 주미특파전권대사 박정양을 파견했다는 것임 고종이 주미 대사를 파견한 것은 미국에 상주 외교관을 파견함으로써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주변국에게 보여주고, 서양의 현재세력 관계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고종의 빅 픽쳐 ㅎㅎ 조선은 당연히 파견하기로 결정한 후에 청나라한테도 알려줬음 : 정양이 일행 미국에 보낼거임 ㅎㅎ 위안스카이(원세개) : 미쳤습니까 휴먼? 갑자기 청나라가 존나게 시비를 거는거임;; 대충 뭐라고 했냐면 조선이랑 미국 사이에는 상민도 없고 무역도 안하는데 전권공사는 왜 보내? 돈도없으면서 외교사절은 무슨 ㅎㅎ 낭비 ㄴㄴ 아니 그리고 니네 왜 우리한테 허락 안받음?? 이거 무효야 무효 응.. 개소리 한거임 당시 조선에 주재하던 미국 공사나 고문관도 청나라가 조선과 미국의 조약을 방해하는건 조약 위반이고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니 냅둬야 한다고 항의했음 이 민폐국 때문에 자꾸 출발이 늦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청나라가 요구하는 영약삼단을 받아들임 고종은 청나라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면서 박정양 일행에게는 “짐의 뜻을 잘 헤아려 처신하라”고 거듭 당부했다고..(대충 영약삼단 지키지 말라는 뜻) 영약삼단이란?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② 대한제국 공사는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공사의 밑에 자리를 잡는다 . ③ 대한제국 공사는 중대사건이 있을 때 반드시 청국공사와 미리 협의한다. =한줄요약: 청나라가 미국에서 조선이 자기네 속국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세가지 약속 지키라고 협박함 조선이 자주독립국인걸 보여주고자 했던게 어지간히 아니꼬웠나 봄 ㅎㅎ 어찌됐건 우여곡절 끝에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양 일행! 청나라와의 약속 중 첫번째인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를 지켜야 할 차례였음 (조까~) 하지만 기존나쎔 박정양은 청나라 공사가 아닌 미국의 국무부 장관를 먼저 만나러 가면서 영약삼단을 무시해버림 당시 일행 조금 화난 위안스카이 : 영약삼단 지키라해;; 거슬린다해;; 박정양은 청나라가 항의하자 “님 ㅠㅠㅠㅠ 쏴리쏴리 ㅠㅠㅠㅠ 뚜이부치 ㅠㅠㅠ 정부가 청국 공사 먼저 만나러 가라고 나한테 말 안해줬음ㅠㅠㅠ 일부로 그런거 아님 ㅠㅠㅠㅠ” 이라고 해명함 청나라는 그냥 흠....하고 넘어가게 됨 하지만 그 뒤로도 박정양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날 때 청의 외교관을 대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에서 공사관의 부임 순서에 따라 방문하는 관례에 따라 28개국 중에 18번째로 청의 공사관을 방문했음 이후에 청국 공사에 방문한 박정양은 더 이상 “몰랐다”고 할 수 없으니 솔직하게 “미국에 도착해서 미국 국무부가 아닌 청 공사를 먼저 방문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이고, 이는 미국이 조선과의 교류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조선과 미국의 국교라는 파견 명분을 해칠 수 있으므로 영약삼단을 지킬 수 없었다.” 고 말했고, 너무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도 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었음. 하지만.. 그 뒤로도 복장같이 사소한 걸로도 다 트집을 잡아서 시비를 걸었음 ㅎㅎ 물론 박정양은 영약삼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나라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이는 엄청난 의의가 있는 행동이었다는 점 왜냐하면 청의 요구를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외교 활동을 했기 때문임 청나라 공사의 요구들을 거절하고 당당하게 단독으로 활동하며 자주적 외교와 독립국의 지위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당시 주미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이상재가 작성한 편지를 보면 "이곳의 인물 풍속 정치 법령은 오로지 우리나라와 일체 상반된다. 날마다 귀와 눈이 처음 듣고 처음 보는 것"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중국공사가 매번 체제사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고집부리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청나라가 가지가지 간섭해댔던 시절에도 우짤? 마인드로 조선의 외교를 위해 힘써줬던 그 옛날 기존나쎔 조선 외교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가져와봄 마무리는 이상재의 편지 중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 개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使命)을 욕보이는 것이다." 문제시 삭제 출처
한국사 레전드 라이벌 견훤vs왕건 이야기.jpg
궁예 뒤통수를 탁! 치고 고려의 왕이 된 왕건!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스스로 왕이 된 견훤! 두 사람의 피튀기는 싸움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음은 견훤과 왕건이 주고받은 실제 편지 내용을 알기쉬운말로 옮긴 내용입니다~ ~견훤의 편지~ 어 왕건아 형이다잉 신라는 망해가고 신라왕도 칵 디져불고 이 말세에 니는 왕이되고싶어서 애를쓰는군아 넌 나한테 못당하니께 지랄일랑 하덜말고..얌전히 살어 ~왕건의 답장~ 내가봐준거야ㅋㅋㅋㅋㅋㅋ 내가 형 봐준거라고ㅋㅋㅋㅋㅋㅋ 그걸모르냐?ㅋㅋㅋ 아니그리고 신라왕이 칵하고 죽어버렸다고? 니가 자살시켰잖아ㅋㅋㅋ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거든? 형 니는 진짜 짐승같은 쓰레기새끼가 맞는것같다. 짧은 편지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둘은 정말 숙명적인 라이벌이었다... 망조 든 신라와 신생국 두개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싸운 두사람! 후백제의 공세에 후달린 왕건이 먼저 숙이고 들어가 화친을 요구한다 "훤이형! 내가 잘못했어. 내 사촌동생을 볼모로 보낼테니 우리 적당히 화해합시다." "알겠다 건아! 그럼 나도 내 조카를 보내마..." 그런데 럴수럴수 이럴수가!!! 고려에 볼모로 간 견훤의 조카 진호가 간지 6개월만에 주거버린것이다;;;; "형..진호가 갑자기 죽었엉..나도 이게 무슨일인지 모르겠네. 아마도 병?인 것 같애." "고려 이 씨불놈들!!! 진호가 몇살이라고 그 젊은애가 병으로 죽어!? 니들이 죽였지!!!" 대노한 견훤은 죽은 진호의 복수를 위해 후백제에 와있던 왕건의 사촌동생 왕신을 주갸버렸다 잠시 훈풍이 도는듯했던 두사람의 사이가 또다시 작살이 나고 질리지도않는 두 나라 간의 공방이 시작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고려는 강해지고 견훤은 자꾸 지고 또 늙어가고... (훤이형과 건이동생은 나이차가 10살 났다) 지친 견훤은 후계자를 지목하기로 한다 견훤: 넷째야! 니가 내 후계자다. 앞으로 열심히 하거라잉 넷째: 네? 정말 후계자 합격인가요? 견훤: 그래! 첫째도 둘째도 시째도 아닌 니가 후계자다! 넷째: 헐 제가 후계자합격하다니..감사합니다 열심히 왕 하겠습니다!!🤩🤩🤩🤩🤩‼️‼️‼️ "......." 첫째 견신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는 상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버지 드디어 미치심? 개어이없네." 개빡친 첫째 신검은 후계자로 지목된 넷째동생을 주갸버리고 즈그 애비 견훤을 김제에 있는 금산사라는 절에 가둬버렸다 "아이고 원통해! 아이고! 내 나라를 아들에게 빼앗기다니! 내가 바닥에서부터 구르고굴러 올라와 해적놈들 소탕하고 나이 26살에 세운 나의 소중한 후백제를 짐승만도못한 아들놈이 홀랑 가져가버리다니!!! 여태껏 키운 아들이 아버지를 저버리다니!!!" 너무너무너무 원통하여 눈물만 흘리던 견훤. 갇힌지 3개월만에 금산사를 탈출하여 어딘가로 떠난다 어디로갔을까? 그 오랜 시간동안 견훤의 곁을 지켰던 한사람.. 많은 적이 죽고 많은 벗이 배신한 세월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던 한사람.. 견훤이 자기 급이라고 인정한 단 한사람.. 바로 왕건이었다 "건아! 내 아들이 나를!! 나를쫓아내고 지가 왕을 한댄다ㅠㅠㅠㅠ이게말이되니? 건아ㅠㅠㅠ나 원통해서 못살겠다!!" "형님, 두팔벌려 환영합니다. 제가 돈도 드리고 집도 드리고 노비도 드릴 테니 고려에 계시고 제가 복수도 해드릴게요." 잊지말자 이새끼들 며칠전까지 서로 죽이지못해 안달이었다;;; "ㅠㅠㅠㅠㅠㅠ그치만ㅠㅠㅠ이지경이 되니 믿을게 건이뿐인걸ㅠㅠㅠㅠ" 두사람은 이제 나란히 손을 잡고 견신검을 족치러 갔다 "내가 바닥에서부터 구르고굴러 올라와 해적놈들 소탕하고 나이 26살에 세운 나의 소중한 후백제를 지금부터 멸망시킨다! 후백제 멸망대작전 시작!!" ~불쌍한 후백제군들~ 야들아 저거 우리 임금님아니냐? (웅성웅성) 그러게 우리 나랏님이네? (웅성웅성) 반년전에 우리 지휘하던 사람이 왜 저기 가있을까..? 병사들이 사기를 잃고 울아빠한테 가서 투항을 하는구나... 이 싸움은 승산이 없다! "아부지. 그리고 건이 삼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신검의 투항으로 고려군이 승리했고 그날을 끝으로 후백제는 완전멸망했다 이리하여 견훤은 지가 세운 나라를 지 손으로 깨부수는 1만년 인류 역사 유일한 초레어 업적을 클리어한 인물이 된 것이다 + 후백제 멸망으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견훤은 죽었다 아들의 충격적인 패륜 그리고 정말정말 사랑했던 내나라 후백제를 친정까지 해가며 내손으로 직접 까부순 충격 탓에 병을 얻고 급사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견훤 나이 70세였으니 이상할것도 없지.. 혹은 견훤을 부담스러워한 왕건이 독살시켰다는 설도 있다 너무 길어져서 자세히 적진 않지만 두가지 설 모두 근거가 충분하니 자기가 믿고싶은대로 믿어도 되겠다 하여튼 견훤은 죽기 전에 후백제의 수도였던 전북 전주를 그리워하여 내가 죽거든 전주가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1월 27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3/01/27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 여부가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마지막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당내에서 “당내 ‘반윤’ 표심이 고스란히 유 전 의원의 몫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부터 윤석열까지 이꼴 저꼴 다 보고 사는 유승민… 쓰담쓰담 해주까? 2. 이재명 대표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검찰은 대장동 사업 진행 상황에 대해 얼마나 알았고 개입했는지 추궁할 예정입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해명할 기회를 버리는 셈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묵비권을 행사 안 하면 유리하게 작용은 하고? 그림 다 그려놓고 왜 그러실까~ 3. 김건희 팬클럽 '건희사랑' 전 회장 강신업 변호사가 “당원과 국민,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겠다"며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강 변호사는 ”국민의힘을 행동하는 정당으로 바꾸겠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는 어떻게 윤심과 건심의 싸움인가요? 그럼, 건심이지~ 4. 대통령실은 최근 ‘난방비 폭탄’과 관련한 불만에 대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겨울철 취약계층의 난방비 지원 확대를 위해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늘리고, 요금 할인 폭을 올린다고 밝혔습니다. 공공기관 실내온도는 17도라며 대통령실, 관저 온도는 몇 도인지 좀 보자~ 5.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난방비 폭탄에도 전 정부 탓만 하는 윤석열 정부가 큰 걱정"이라며 정부의 난방비 대응을 비판한 뒤 경기도 차원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경기도는 200억 원 규모의 예비비와 재해구호기금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래서 투표가 쌀이고 밥이라는 겁니다. 제발 잘 찍고 따신 밥 먹자고요~ 6. 경찰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누리집에 게시한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를 압수수색했습니다.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언론의 보도 활동에 대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탈출구가 고작 이거였어? 단순 무식한 것들~ 7. 법무부가 노동조합 등의 집단행동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담은 ‘5대 핵심 추진 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노동계가 반노조 정책으로 규정하는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노동 개혁’에 법무부가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겁도 없어요” 윤석열이 뱉은 명언. 8. 연세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처조카와 공저 논문을 쓴 외숙모(의대 교수)의 연구부정 의혹을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신 “올바른 연구윤리를 준수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연세대나 국민대나 권력 앞에선 카트라인이 똑같은 하류 대학에 불과하다는 거~ 9. 김건희 씨가 국민의힘 여성 의원들과 오찬을 갖는다는 소식을 전한 보도들이 '엠바고 파기'를 이유로 무더기 삭제됐습니다. 현 대통령실 엠바고 규정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경외 행사에 관한 내용은 모두 엠바고 사안입니다. 외국 순방 성과 공유? “한국에 오시면 연락하세요” 설마 이건 아니지? 10. 올해 2월 퇴직을 앞둔 일부 유초중고 교사·교감·교장은 물론 교육장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주는 훈장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훈장 포기자는 문재인, 박근혜 정부 때도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 더 많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디 걸어 놓기도 민망한 애물단지면 안 받는 게 백번 낫지요… 잘하셨습니다~ 11. 극우 목사인 전광훈 씨가 뉴욕을 비롯한 10개 주에서 미주순회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뉴욕 교계의 관계자는 "사랑 대신 혐오를 조장하고 평화 대신 전쟁을 선동하며 그를 위해 신도들의 성금까지 갈취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새는 바가지 뉴욕에선 안 샐까마는… 국제적으로 참 여러 가지 한다~ 12. 중년에 비만한 사람일수록 노년에 쉽게 체력이 떨어지고 근력이 떨어지는 등 노쇠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급격한 노쇠는 노년기 낙상 사고나 신체장애는 물론,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큰 문제가 됩니다. 중년에 뚱뚱하면 노년에도 뚱뚱하지 않나요? 나도 날씬하고 싶다~ 주호영 “난방비 폭탄? 문 포퓰리즘 대가, 우리가 치러”. 국민의힘, 난방비 폭탄마저 ‘탈원전 때문’이라고 주장. 용혜인 "난방비 폭탄, 가스는 정부가 결정하는 정책 요금". 심상정, 문 겨냥 “빌라 왕, 지난 정부 정책이 만든 괴물”. 이상민 “이재명, 검찰 기소 시 당 대표직서 물러나야”. 류근 시인, ‘나경원 불출마’에 “김건희 박사님한테 찍힌 듯”. 안철수 손 맞잡은 이준석 “정당의 민주적 운영” 강조. 강신업, 당 대표 출마 선언 “광화문에 이승만·박정희 동상". 여가부, '비동의 간음죄' 발표했다 법무부 반대에 없던일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 주저주저하다가는 결국 시기를 놓치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나서지 않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곤 합니다만, 결과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게 결론입니다. 이러한 것을 익히 잘 알면서도 오늘도 주저한다면 우리에겐 항상 오늘과 같은 내일일 것입니다. 혼자라서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한파가 이어지는 주말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류효상 올림.
1월 26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3/01/26 류효상의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해 적극 방어에 나섰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사실관계가 맞는 발언”이라고 말해 대통령실이 “한-이란 관계와 무관하다”며 진화에 나선 것과 결이 다른 발언을 했습니다. 개소리도 대외용이 있고 내수용이 있는 모양입니다. 진짜 겁나 웃기는 짬뽕~ 2. 출마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던 나경원 전 의원이 장고 끝에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불출마를 결정했습니다. '전대 최대 변수'였던 나 전 의원의 불출마에 따라 국민의힘 전당대회 판세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입니다. 나경원 불출마에 500원 걸었는데, 이젠 나경원 남편 대법관에 500원? 3. 윤심이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비결로는 총선 공천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가장 크게 꼽힙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현역 의원 대부분의 인연이 일천한 만큼 내년 총선 공천에서 상당수가 배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남권, 영남 텃밭은 검찰 출신에 서울대 선후배가 장악하지 않을까? 4. 박성중 의원이 MBC가 민주노총 간첩사건을 공안몰이로 방송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MBC ‘뉴스데스크’를 지목해 “간첩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라”고 공개 주문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됩니다. 윤석열은 당무개입, 국민의힘은 언론개입… 개입으로 짖는 소리 멍멍멍~ 5.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결국 제왕적 총재 시대로 돌아갔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차라리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돌아가 당대표를 임명하던지 하면 될 것을 이런 소란만 남겼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포악함과 이명박의 사기, 박근혜의 무지까지… 대단해요~ 6. 행정안전부가 10.29 참사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책임을 회피해온 행안부가 비슷한 재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재난원인조사마저 손 놓으면서 재난안전 총괄 기능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석열 정부의 재난방지대책은 무사고 기원 고사와 부적 아닐까 하는… 7.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발표한 ‘2022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에서 갈등이 늘었다’는 응답은 57.8%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정부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73.1%나 됐습니다. 남 탓하고 갈등을 유발해 정권을 유지하는 ‘구타 유발자들’이 바로 윤석열 정부~ 8. 올 설 명절 최대 화두는 윤석열도 이재명도 아닌 도시가스요금이었습니다. 지난해 대비 도시가스와 열요금이 각각 38.4%, 37.8% 늘었지만, 정부는 가스공사의 적자 해소를 위해 2026년까지 요금을 단계적으로 올릴 방침입니다. 국제가스비가 폭락해 러시아 전쟁 이전의 수준이라던데… 부자 감세 메꾸려고? 9. 일회용 마스크 원료인 폴리프로필렌 성분의 나노플라스틱이 폐 손상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나노플라스틱이 폐 손상이 유발되는 구조를 실험동물과 세포주를 통해 입증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3년을 쓰고 다녔는데… 마스크 벗으라고 슬슬 등 떠미는 건 아닌지… 10. 기상청은 오늘 새벽 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2~7㎝의 눈이 올 것으로 예보했습니다. 기상청은 영하권의 강추위와 많은 눈이 예보된 만큼, 교통과 보행자 안전에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유례없는 강추위도 문재인 정부 탓하며 기상청 압수수색 하지 않을까? 민주당 ‘1000원 당원’ 논란, 비명계 낙선운동 요구까지. 일제히 숨죽인 비윤계, 완성된 '윤석열의 국민의힘'. 박지원, 나경원 불출마 선언 겨냥해 “역시나 거기까지”. 고민정 “유승민·이준석·나경원 잘려 나가는 모습 잔혹”. 나경원 불출마는 친윤에게 자충수?, 안철수는 어부지리?. 김기현 "난방비 폭탄, 윤 정부 잘못이라는 것은 적반하장“. 최순실, 형집행정지 5주 연장 검찰 “척추 수술 재활 필요”. 주저앉은 나경원에 전원책 “가장 큰 패배자는 장제원“. 만일 겨울이라는 계절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믿음과 아름다움의 교훈을 잃게 되겠는가?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 시련 다음에는 극복이라고 단어를 꺼내 듭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패기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제와 같지 않은 매서운 날씨는 아니지만, 출근길 눈이 힘든 하루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바꿔서 오늘 같은 날 조급함보다 오히려 여유를 즐겨보면 어떨까요? 다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류효상 올림.
1970년대 서울의 요새화 계획과 그 흔적들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충격받은 박정희 정부는 ’서울의 요새화 계획‘을 실시하여 서울이 전쟁이나 무장공비에 대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 북악스카이웨이 대외적으로는 관광용 도로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뒤 북악산의 검문을 강화하고 경호에 만전을 기하고자 만든 도로.  또한 의도적으로 도로 인근에 아파트와 주택을 개발시켜 도로를 번화하게 만들어 무장공비를 방어했음.  한남대교 개통 당시 이름은 제3한강교. 강남 개발 촉진하고자 건설된 교량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한강의 제대로 된 교랑이 고작 하나밖에 없어서 많은 서울시민들이 포위되고 말았던 역사를 교훈삼아 서울의 유사시에 시민들과 국군부대가 한강 이남으로 대피할 수 있는 또다른 길목을 만들고자 하는 안보적 목적도 강했음.  남산 1.2호 터널 남산 1호터널은 위에서 언급한 한남대교와 함께 강남과 사대문안의 연결은 물론, 전시에 이 터널을 통해 시민들과 국군이 한강 이남으로 대피할 수 있는 길목 겸 방공호로 개발되었음.  남산 2호터널은 지금도 통행량이 적은 애매한 터널인데, 이는 용산의 미군부대를 염두에 둔 군사적 목적이 매우 강한 터널이기 때문임.  이 두 터널은 남산을 방패삼아 시민들의 방공호로도 쓰이며, 원래 계획상으로는 1.2호터널 교차점에 5000평의 지하광장을 만들어 최대 20만을 수용할 예정이었음.  남산타워 경기북부와 서울에서 선명하게 들리고 볼 수 있던 북한의 방송에 대한 방해전파를 쏘고자 하는 목적이 강했음.  더불어 날 좋을 때 올라가면 개성 송악산까지 보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동태 파악과 요격에도 사용하고자 건설.  유진맨션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이곳의 1층 상가는 두 번째 사진처럼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음.  이 자리는 은평을 통해 사대문안으로 들어오는 서울 방어의 최전선으로,  저 주차장이 전시에는 전차 격납고 역할을 하고, 건물이 적의 포격을 방어하며, 유사시에는 기둥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했음.  이 사실은 해당 시공업체가 1981년 서울시와 행정소송을 벌이며 밝혀짐.  여의도공원 (구 여의도광장) 1997년까지 여의도공원은 원래 콘크리트 여의도광장이었음.  70년대 여의도를 개발할 때 원래는 이곳의 일부를 지금처럼 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박정희가 지도에 직접 거대한 부지를 그려넣고, 이곳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콘크리트만 깔라고 지시를 하면서 광장이 건설됨. 당시는 베트남전에서 고전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시기로, 안보 위기를 느낀 박정희가 유사시 여의도를 공군 비행장으로 쓸 수 있도록 광장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음.  여의도 지하벙커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만들던 도중 발견된 지하벙커.  1970년대 여의도광장에서 행사를 할 때, 대통령을 노리는 공격이 게시될 경우를 대비하여 VIP가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벙커임.  내부에 소파, 샤워실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  비밀리에 만든 공간이었고, 제대로 인수인계가 안 되어 잊혀졌다가 2005년에 발굴되었음 강남 한강변 아파트의 총안구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의 한강변 아파트에는 총을 거치할 수 있는 총안구가 있음.  강북이 인민군에 수복되었을 때, 한남대교를 건너 한강을 넘어오려는 인민군을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 진 총안구임.  광화문 이동형화단 과거부터 세종대로 일대의 화단은 이동이 가능한 형태였는데 이는 인민군이 진입할 시 화단을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음. 현대에도 여전히 광화문의 화단은 이동형이며, 집회시위 관리용으로도 사용됨. 공릉천 대전차방호벽 파주와 고양에서 서울로 쉽게 진입이 가능한 공릉천에 방호벽을 설치하여 적군의 전차 진입을 막고자 하였음. 최근 상당수 해체되었음. 대전차방호벽 파주, 고양, 의정부부터 서울 외곽인 구파발에 이르기까지, 인민군의 서울 진입을 막기 위한 ‘수도권 방호벽’이 정말 많았음. 최근 주민편의와 안전을 위해 고양시를 필두로 상당수가 철거되고 있음. 일산신도시 1994년 국방부장관이 ‘수도권 신도시는 수도 서울의 바리케이트다’라고 밝히며 엄청난 논란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일산신도시가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시가전 특화 도시임이 밝혀졌음.  일산은 의도적으로 남북 도로를 좁게, 동서 도로를 넓게 만들어 동서로 길게 배치된 국군이 좁은 남북 도로를 타고 오는 인민군을 포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아파트를 바리케이트처럼 복잡하게 조성하여 서울의 방어막처럼 만들어 두었음.  즉, 도시 전체가 서울의 방호벽으로 건설되었음. 도시갤러리 오늘의김에빵님 펌
화학전의 아버지이자 인류의 구원자
역사상 최초의 가스 공격은 벨기에의 소도시 이프르 근처에서 이뤄졌다. 1915년 4월 22일 목요일 아침, 잠에서 깬 프랑스 병사들은 거대한 초록빛 구름이 무인지대를 건너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구름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의 나뭇잎은 시들었고, 새는 하늘에서 떨어져 죽었다. 파인애플과 표백제 같은 냄새가 병사들의 목구멍을 채웠을 때 폐에서는 가스가 점액과 반응하여 염산을 발생시켰다. 그날 염소 가스 6000통을 개봉한 독일 병사 중 한 명인 빌리 지베르트는 이렇게 썼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모든 야포, 모든 기관총, 모든 소총이 불을 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가스를 멈출 순 없었다. 바람이 가스를 프랑스 전선 쪽으로 계속 밀어갔다. 그러다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졌다. 얼마 뒤 시야가 걷혔고 우리는 빈 가스통을 지나쳐 걸어갔다. 우리가 본 것은 총체적 죽음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짐승도 굴에서 나와 죽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모든 나라는 가스 공격 금지 조치를 받아들였다. 강제 수용소에서 가스를 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던 히틀러조차 전장에서의 사용은 거부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으로 참호에 배치되어 그 효과와 죽음의 고통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스스로도 약하게나마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프로 공격을 감독한 인물은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그는 이 임무의 성공으로 전쟁부 화학 부서의 책임자로 승진했으며 빌헬름 2세와 만찬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아내의 분노였다. 독일 여성 최초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클라라 이머바르는 실험실에서 가스가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았을 뿐 아니라, 현장 시험 중에 바람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하마터면 남편을 잃을 뻔했다. 하버는 목숨을 건졌지만 학생 하나는 독성 구름을 피하지 못했다. 그 학생이 땅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며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 하버가 이프르 학살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클라라는 하버가 인간을 대규모로 몰살할 수단을 고안하여 과학을 왜곡했다고 비난했다. 하버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이틀간의 휴가 기간에 친구들을 홈 파티에 초대했다. 새벽까지 계속된 파티가 끝나갈 무렵 그녀는 남편에게 지급된 리볼버로 자살했다. 이튿날 프리츠 하버는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채로 동부 전선의 가스 공격을 감독하러 떠나야 했다. 그는 전쟁 기간 내내 아내의 혼령에 시달렸다. “며칠에 한 번은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나가있는 게 도움이 된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이니까. 하지만 기진맥진하여 본부에 돌아와 있을 땐, 명령서와 전보 사이로 그녀의 머리가 나타난다." 1918년 휴전 이후, 연합군은 프리츠 하버를 전쟁 범죄자로 규정했다. 그는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자리잡았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의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1907년, 하버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하버가 실험실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독일의 화학 대기업의 수석 공학자 카를 보슈는 수백톤의 질소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공정으로 발전시켰다. 하버-보슈 공정은 당시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기에서 빵을 끄집어낸",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이다. 하버의 연구가 없었다면 천연 비료에 의존하여 농사짓던 수억 명이  비료 부족 사태에 맞닥뜨려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가용 질소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자, 16억 명이던 전세계 인구는 100년도 되지 않아 70억 명으로 늘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하버가 발명한 질소 비료로 재배된 작물을 먹고 산다. (물론 하버의 원래 목표는 굶주린 대중을 먹이는 것이 아니었다.  1차 대전에서 영국 해군에 의해 칠레산 질산염의 운송이 차단되더라도 폭약을 제조할 수 있도록 원재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에펨코리아 Nalchi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