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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뉴스] 남성 31세, 여성 32세…마침내 들려오는 '이 소리'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인식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아직 부모님들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입니다.

기획 : 박희원 기자 / 그래픽 : 홍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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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몽타주에 담긴 이야기
영국의 한 경찰서에서 형사의 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사람의 머리스타일은 어떻게 생겼나요?' '정돈이 안된 더벅머리 였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그의 손은 천천히 범인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복장은요?' '짧은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럼 종합해 보면... 이렇게 생겼겠군요.' 그렇게 범인을 묘사한 몽타주는 완성되었고 이것은 결국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몽타주가 작성되고 난 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이 이야기는 25년간 영국의 한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한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다. 리틀 헤이븐은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하는 영국 펨브룩셔에 위치한 손꼽히는 명소이다. 해안가의 절경으로 인해 휴일을 맞이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리틀 헤이븐은 영국에서 제일 낮은 범죄율을 가진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89년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 아름다운 해변 마을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리틀 헤이븐으로 여행을 간 저의 부모님의 행방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리틀 헤이븐 경찰서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 자신을 토마스 딕슨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부모를 찾았고  그 즉시 경찰은 해안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색이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2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두 사람은 휴일을 맞이하여 옥스포드에서 리틀 헤이븐으로 여행을 온 피터와 그웬다 딕슨 부부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누구나 그들과 친구가 되고싶을 정도로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딕슨 부부는 휴일을 맞아 리틀 헤이븐의 해안가를 따라 캠핑을 하며 주변의 절경을 탐사하는 것을 즐겼지만 휴일의 마지막 날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발견 당시 부부의 시신은 양손이 묶인채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피터는 마치 '처형' 당하듯 묶인 채 뒤통수에 3발의 엽총으로 인한 총상을 입었고, 그의 지갑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부인인 그웬다는 하의가 사라진 채로 강간 당한 흔적과 범인에게 저항을 하다 입은 것으로 보이는 후두부의 치명적인 총상이 있었다. 이후 경찰의 감식 결과 범인은 피터를 먼저 살해한 뒤 그웬다를 살해하기전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졌다. 단순 강도의 의한 살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경찰들은 치를 떨수 밖에 없었다. 평화롭던 작은 해변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금새 마을 전체로 퍼졌고 마을 사람들은 4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그 일'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햇다. 4년전인 1985년 한창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던 12월 23일 새벽 리틀 헤이븐 한 근교의 농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연기를 본 주민들이 급히 신고를 했고 이 후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 인해 불은 크게 번지지 않고 빠르게 진화되었다. 소방대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욱한 연기사이로 집주인였던 헬렌과 리처드 토머스 부부는 시신으로 발견 되었고  화재를 진압한 뒤 발견한 부부의 상태는 일반적인 화재 사고의 시신과는 매우 달랐다. 헬렌의 시신은 2층의 자신에 방에서 두손이 묶인 채 꿇어앉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리처드의 시신은 카페트에 말린 채로 발견 되었기때문이다. 이것이 사고가 아닌 범죄현장임을 느낀 대원들의 신고로 그 즉시 경찰들이 출동했다. 경찰들의 조사 결과 두 부부의 사인은 화재로 인한 질식이 아닌 근거리에서 맞은 총탄이였다. 두 부부의 사인과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집에 혼자 있던 헬렌을 범인이 제압한뒤 결박했고 그 후 그녀의 뒷머리에 엽총을 발사하여 살해한 뒤  뒤늦게 돌아온 리처드를 집 밖 마당에서 엽총으로 살해하고 리처드의 시신을 집안으로 끌고 와 카페트 로 감싸고 그 위에 불을 지른것' 경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결국 범인을 찾을 수 없게 됬고 이는 그동안 평화롭던 작은 마을 리틀 헤이븐의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그 후 토마스부부의 끔찍한 사건이 잊혀질 무렵 발생한 딕슨 부부의 사건은 토마스 부부의 사건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범죄가 일어난 시각은 두 사건 모두 새벽이였으며, 두명의 남녀가 살해당했고 그들을 살해한 무기는 '엽총'이였기 때문이었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는 곧 주민들에게 퍼져 주민들은 '엽총 살인마:Shotgun Killer'가 나타났다며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더벅머리에 정돈이 안된 수염을 가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남성. 목격 당시 자전거를 탄 상태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었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격자의 기억력에 의지하는 한장의 몽타주만으로는 범인을 찾기란 무리였다. 1989년 당시에는 체계적인 과학수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는 점점 어려움을 겪게되었고 총 6000여명의 용의자를 조사했지만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진 못한채 수사는 미궁으로 빠지게 되었다.  결국 영국경찰은 팸브룩셔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엽총 살인마'는 끝내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시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엽총 살인마에 대한 기억을 점점 지워나갔고  결국 리틀 헤이븐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끔찍한 범죄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아마도 범인은 자신의 완전범죄가 영원히 세상밖으로 밝혀지지 않기를 바랬을것이다. 하지만 범인의 희망과 달리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딕슨부부가 살해된 지 17년이 지난 2006년 미제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담반의 팀장 '스티브 윌킨스'는 자신의 전담반을 이끌고 이 작은 소도시 리틀 헤이븐에서 일어난 2건의 미제사건인 '엽총 살인마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두 사건에 사용된 범행도구인 '엽총'이었다. 윌킨스의 팀은 지난 20년간 팸브룩셔 일대에서 엽총을 사용한 살인사건 용의자들을 토대로 조사했지만 엽총살인마에 대한 수사는 몇달이 지나간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채 난황을 겪게 되었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계속되던 어느날 윌킨스의 눈에 한 용의자가 포착되었다. 용의자의 이름은 '존 윌리엄 쿠퍼' 그는 팸브룩셔 일대에서 30여건의 강도 및 강간 혐의로 1998년에 16년형을 받은 범죄자였고 범행도구는 '엽총'이었다.  윌킨스는 이 점을 주목했고 그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역시 쿠퍼가 미제사건의 용의자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윌킨스는 한가지 기묘한 사실을 알게됬다. 바로 쿠퍼가 오래 전 한 유명한 TV쇼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 방송국 ITV의 협조를 통해 경찰서 내부의 자료실에서 오래된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불스아이' 다트를 던져 경품을 받는 TV쇼 불스아이는 25년 간 영국에서 인기를 끌던 장수 TV쇼였으며  평균 시청자 수 17만명의 인기 프로그램이였다. 1989년도 영상속의 사회자는 호기롭게 TV쇼의 이름인 불스아이를 외치며 등장했고, 곧 이어 출연자들에 대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바라보던 윌킨스의 눈에 젊은 시절의 쿠퍼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윌킨스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윌킨스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영상 속 쿠퍼가 등을 돌리는 화면이 나오자 윌킨스는 영상을 멈추었고  자료실을 뒤엎으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찾아낸것은 바로 한장의 몽타주였다.  17년전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담았던 몽타주를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TV화면속의 쿠퍼와 자신에 손에 들린 몽타주를 비교하던 윌킨스의 입에서 외마디의 말이 튀어나왔다. '놈이다.' 16년전의 몽타주가 오랜 세월을 지나 끔찍한 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였다. TV화면속의 쿠퍼는 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회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회자 : 혹시 하고 계시는 취미가 있나요? 쿠퍼 : 스쿠버 다이빙을 즐깁니다. 특히 리틀 헤이븐의 해안가에서 즐기는걸 좋아합니다. 쿠퍼가 말하던 곳은 바로 딕슨부부가 살해당한 그 해안가였다. 만약 진짜 쿠퍼가 범인이라면 쿠퍼는 이 방송에 나온 뒤 1달 뒤에 딕슨부부를 살해한 것이었다. 윌킨스는 쿠퍼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특이한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쿠퍼가 강도죄로 검거 될 당시의 경찰서 내의 조사실의 영상이였다. '어째서 범행을 저질렀나.' 담당형사의 말에도 수갑을 찬 쿠퍼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형사의 계속되는 취조에도 입을 다물고 오히려 벽을 등진 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형사의 취조를 계속 듣고있던 쿠퍼는 영상이 끝날 무렵 단 한마디의 말만 꺼냈다. 형사 : 혐의를 인정하나? 쿠퍼 : 네 장시간에 걸친 취조끝에도 입을 열지 않던 쿠퍼가 형사의 마지막 말에는 멀쩡히 답변을 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자라면 보통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는것이 일반적인 예지만 쿠퍼의 상황은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인 것이다.  마치 한시라도 바삐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것처럼  윌킨스는 이것이 단지 강도 혐의만을 받고자 하려는 쿠퍼의 속셈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감옥에 간다면 사람들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리틀 헤이븐의 살인사건들은 잊혀질거라는 속셈 하지만 쿠퍼가 간과한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바로 과학수사의 발전이였다.  1985년과 1989년에는 과학수사의 개념조차도 없었기때문에 범죄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쓸만한 증거를 찾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였지만  2006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윌킨스는 쿠퍼의 자료와 증거물들을 모아 유전자 검사를 요청했지만 증거물들의 기간이 너무나도 오래됬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시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성공유무 자체 또한 매우 희박했다.  하지만 2년뒤 2008년 윌킨스가 그토록 기대하던 유전자 검사가 결과가 나왔고 증거품들에 묻어있던 DNA들은 쿠퍼가 범인임을 알리고 있었다. 바로 쿠퍼가 강도 혐의로 압수당한 물품에서 지난 두 건의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DNA가 나온것이었다. 쿠퍼가 사용한 엽총의 총구부분과 쿠퍼의 집에서 압수한 바지에서 피터 딕슨의 DNA가 나왔고 그가 범행 당시 사용 착용했던 장갑에서 리처드 토마스의 DNA가 나왔다. 2010년 윌킨스는 조사실에서 쿠퍼에게 명백한 살인의 증거물들을 보이며 그를 추궁했고 쿠퍼는 1999년의 조사실에서와는 달리 신경질적이며 화난 목소리로 자신은 결백하다며 소리쳤다. 결국 2011년 쿠퍼는 2건의 살인사건과 5건의 강도질 그리고 2건의 강간사건의 용의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완벽 범죄를 꿈꾼 범인은 단 한장의 몽타주로 인해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주말 하루
토요일 아침 일어났지만 다시 누워버린 금동이 옆에서 같이 드러누운 왜용이 😻 금동이네 어린이집 같은반 친구들이 장염이 걸린 친구들이 있다더니 살짝 옮았나봅니다 어제 밤 열이 나고 화장실 들락거렸어요;; 심한 편은 아니라 병원가지 않고 음식 조절하기로 다른 친구들도 심한 장염은 아니었고 병원갔더니 지사제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고 해요 금동이 순두부 먹이고 엄마는 막창이랑 야채곱창 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이 오랫만에 친구모임에 나가고 혼자 있을때 먹는데 정말 맛있네요 (남편은 돼지 곱창 냄새를 시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하이볼 한잔 말았습니다 듀어스 화이트라벨입니다 나름 가성비가 좋습니다 제임스보다 훨~~~ 괜찮아요 2차로 피데기 버터구이 막창 소금구이 먹구 야채곱창 뒤적거리고 있는데 금동이가 냄새난다며 아주 질색을 하네요;;; 😭 아빠 닮았나봐여 민감쟁이 애가 하도 시러해서 곱창은 못먹구 피데기 ㅋ 피데기 굽고있으니까 금동이가 이상한 냄새가 없어지고 이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네~ 🤣🤣 아들아 정말 아빠없을때만 겨우 먹는데 너까지 ㅋㅋㅋㅋㅋ 한참 금동이랑 동요부르고 노는데 안아달라고 앵기는 애가 몸이 뜨끈뜨끈 38.9도네요 하이볼 두잔으로 오늘 알콜타임은 끝났습니다 어제도 밤에만 열이 나더니 오늘 또 ;;; 금동이 상태는 괜찮아요 약도 잘먹고 ㅎ 밤에 좀 지켜봐야겠지만;; 애휴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세상을 등지는 투자자들…사회 문제인가? 개인의 귀책인가? [스토리뉴스 #더]
지난달 '제주 한 달 살기'를 하겠다며 교외 체험학습을 떠난 뒤 한 달 넘게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조유나 양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을 발견한 곳은 지난달 29일 전남 완도 해상에서 인양한 일가족의 아우디 차량 안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유나 양의 부모는 실종 직전까지 '가상자산(루나코인)', '수면제' 등의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버지 조 씨의 검색 내역에는 '완도 방파제 수심', '물때표', '익사 고통' 등의 단어도 등장했다. 부부가 검색한 루나코인은 지난달 일주일 사이 97%가 폭락하며 상장 폐지됐다. 정황상 투자로 많은 돈을 잃은 부부가 철저한 계획을 통해 자식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 2019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의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에만 국민 1만 3,195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인구 10만 명당 25.7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건데, 극단적 선택을 한 동기로는 '경제생활 문제(25.4%)'가 두 번째로 많았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례는 더 이상 생소한 뉴스가 아니다. 투자한 주식·코인이 떨어지면 우스갯소리도 '한강에 가야 한다'는 말도 흔히 하는데, 최근 경기 침체로 주식·부동산·코인 시장이 폭락하면서 실제로 많은 투자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목숨을 내던진다. 물론 투자도, 그로 인한 선택도 모두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택이 퍼져나가는 건 개인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때 언론은 주식·부동산·코인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의 기사를 경쟁하듯 다루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지인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투자하지 않은 이들을 '벼락 거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취업·일 모두 쉽지 않은 2030세대가 빚을 내서라도 투자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회적인 제도가 존재한다. 주식·코인 등 투자로 손실을 본 경우, 개인회생 제도 등으로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완도 일가족도 파산 신고를 하고 제도를 활용했다면 국가 지원을 받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완도 일가족이 만약 이 제도를 몰랐을 경우, 알고 나서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가들은 실패한 투자자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더 적극적으로 홍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를 향한 여론은 싸늘하다. 아직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부부의 비속살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찰은 부부가 사업 실패로 인해 수억 원대 채무 등으로 생활고를 겪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 또한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 자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의 빌미로 삼을 수는 없다. 2년 전 초저금리를 활용한 '영끌족(대출을 영혼까지 끓어 모은 사람들)', '빚투족(빚내서 투자한 사람들)'이 등장한 이후 최근까지도 많은 2030세대가 돈을 빌려 투자를 이어왔다. 그런데 요즘은 대출이자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여기에 투자시장 상황도 고려하면, 완도 부부와 비슷한 경제적 위기를 맞은 이들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주로 대출을 받아 투자를 감행한 2030세대는 실패에 따른 충격도 더 크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여론은 투자시장 가열을 부추긴 투기꾼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줄어드는 재산과 늘어나는 이자에 앞길이 막막한 이들. 사회가 만든 피해자일까? 일확천금을 노린 개인의 귀책일까? 글·구성 : 박희원 기자 parkheewonpark@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세시대의 아기들은 넘나 불편했을 것 같긔....jpg
안냐세여? 그림 구경을 하다 호기심이 생겨서 글을 쓰게 됐어여 제가 보던 그림은 이건데여 네덜란드의 화가 브뢰겔의 Massacre of the Innocents라는 그림입니당. 우리나라에선 영아학살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지여 영아학살..? 제목 한번 어마무지하긔 줜내 살벌 근데 자세히 살펴보시면 그림 속에 영아라고 할법한 애긔들은 없긔 농민들의 식량 꾸러미를 수탈해가는, 커다란 개를 끌고가는, 거위의 목덜미를 쥐고 자르려는 기사들만이 존재해여 사람들은 두손을 붙잡고 애원하거나 가져가지 말라고 말리거나.. 혹은 하늘을 보고 울부짖고 있습니당. 학살이라기보단.. 걍 농민들 삥뜯어가는 느낌..? 게다가 학살이라 하면 되게 피범벅..우울하고,,어둡고,.그럴거 같은데 핏자국도 하나 없냄.. 하늘은 또 엄청 샛파랗네..이상타 그림 지적 전에 영아학살이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겠읍니다! 부처님급 초이스는 아니지만 매해 12월마다 우리에게 즐거운 휴일을 선사해주시는 예수님은 국적이 이스라엘이에여 겨우 2018년전 탄생했으니 그때 이스라엘은 이미 왕국도 있고 노예도 있고 상인도 있고 그랬겠져? 사람들 사이에 계급이 생긴건 청동기 시절 때부터쟈나~ 예수가 태어났을 적엔 이미 한 나라가 존재했을 때쟈나~ 예수 탄생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왕입니당. 이 사람이 영아학살을 주도했지여. 글차나욥 내가 이 나라 정통왕인데 신의 자손이라는 애가 태어날거래..뭔데 시벌..반란인가..아님 사이비..? 나라도 혼란해질 거구 자기 권력에 위협을 느낀 헤롯왕은 화가 났어욥 그래서 2살 이전의 애기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에 이릅니다. 근데 정작 예수는 이집트로 도망가서 살아남음..ㅎ 가장 왼쪽에 아기들을 죽이라 명령하는 헤롯왕이, 가운데엔 죽어가는 아이들의 시체가, 오른쪽엔 절규하는 부모들을 확인할 수 있읍니당 헤롯왕의 영아학살. 이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었기에 후에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겼어여 양인애들 그림이 글쳐 뭐 그리스로마신화 아님 성경말곤 그릴것도 없음 아마도 가장 유명할 루벤스의 그림 당시의 처절함과 슬픔, 고통과 잔인함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있지요 헤롯왕과 날뛰는 기사들, 아이를 감싸는 부모들 헤롯왕 바로 밑, 중간에 노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칼을 들고 내리치려는 장면이 보이실거긔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애원하고 있고요 이렇게 상황과 구도, 그림체, 화가만 다를뿐 영아학살은 굉장히 많이 그려진 종교화 중 하나인데여 실제로 헤롯왕이 죽였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당 의견이 분분해여 모든 위인들의 탄생설화가 그렇듯 헤롯왕의 영아학살도 예수의 탄생을 강조하려는 거짓말일수도 있져 세상은 태평성대하였ㄷr 그래서 예수가 필요없었ㄷr..보다는 아이들을 무참하게 죽일 정도로 엄청난 폭군이 나라를 다스렸ㄷr 예수만이 구세주였ㄷr..이런쪽이 좀더 설득력있자나욤. 하여튼 저는 탈덕한 구개신교신자라 종교화도 잼나게 보는데 이 그림은 참 이상한거긔 바로 위에 올린 세 영아학살과는 많이 다르져? 학살보다는 수탈에 가깝게 묘사됐긔 피도 울부짖는 부모들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가 없긔! 이유는 바로 이 사람, 신성 로마 황제 루돌프 2세 때문인데욤 평소 정치보다 예술과 과학에 몰두했던 루돌프 2세는 그림을 보고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긔뚤 그래서 어두운 하늘을 밝게, 죽어가는 아이들을 닭이나 개 등으로 바꿔 그리게 한 거긔 그림은 캔버스 위에 유채물감으로 그려졌으니 얼마든지 위에 덧칠할 수 있었겠져? 수정되지 않은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당 같은 그림, 구도, 사람들인데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이 그림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소장되어있어여 아들이 아빠 작품을 따라 그린 모조작이져. 원본은 맨 위처럼 하늘색 하늘로 덧칠이 되어서 찾아볼 수 없긔뚤 분위기말고 뭐가 달라진거냐? 비교를 해보자면 수정버전에선 거위나 꾸러미였던게 모두 아이의 시체라는게 보이실 거긔 끌려가던 개는 사실 어린아이였고.... 조그만 크기인데도 엄마를 바라보며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가 느껴지시죠 이외에도 죽은 아이, 끌려가는 아이를 찾아볼 수 있읍니당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의 중심. 기사들에게 단체로 죽임당하던 닭과 거위들이 바로 어린아이들이었는데요 좀 더 크게 보시면 이런 장면임을 확인하실 수 있긔 제가 의문스러웠던게 바로 저거긔.  으아니 애긔들이 너무 딴딴히 묶여있는거아니냐. 아니..글차나욥..넘나 피라미드 속 파라오처럼 보따리처럼만 그려놓은것.. 진짜 뜬금없는 포인트에서 호기심이 생겼긔뚤 특히 중세시대는 어린아이에 대해 굉장히 무지했을 시기쟈나요  아이는 그저 '조그만 어른'으로만 취급했을 때쟈나  그래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갈 유아도 코르셋을 착용했고요? 그러니 영아라고 뭐가 달랐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읍니당 복지가 몬데..했던 시절의 아기들이라.. 조아 찾아보자 클릭클릭 검색검색 영어는 못하지만 단어는 알긔 구글로 검색하면 구글이 너 혹시 이거 찾는거 아니니?? 하고 자동교정도 해주고요? 올ㅋ 뭐가 막 나온다 나와 첫번째 페이지 Surviving Infancy in the Middle Ages는 "중세시대에 살아남는 아기들"로 해석할 수 있겠긔 live도 아니고 survive..으아니..무시무시한 단어선택이다 클릭 올ㅋ 클릭하자마자 처음 본 그림이쟈나!!!!! 엄마 옆에 누워있는 아기 보이시냐긔!!! 여기서도 팔다리를 꽁꽁 싸매고 있내..! 유레카!!!!!!!!!!!! 영알못이지만 번역기를 돌려가며 기사를 읽어봅니당 Life for the Infant Folklore has it that the medieval child spent his first year or so wrapped in swaddling, stuck in a cradle, and virtually ignored.  민속학에 따르면 중세시대의 아이는 태어난 후 1년 동안 감싸여있고(wrapped) 요람에 갇히고(stuck in a cradle) 사실상 무시당했다(and virtually ignored.) 오호........!!!!!! 애긔는 체온조절을 못하니까 보자기에 감싸져야 하는건 당연한 일이져 근데 궁금한점: 중세시대 때도 지금 애긔들에게 쓰는 부드러운 순면이 있었을까? 지금이야 이렇게 포근폭신한 천으로 감싸놓지만 과연 중세시대 유럽은 어땠을까염.... 비단은 귀족들에게도 비싼 원단이었을거고 순면은 있을리가 없고.. 과연 평민들이 저런 부드러운 천을 쓸 수 있었을까..? 스와들링(강보) 다크에이지로 검색ㄱㄱ 뙇. 그렇읍니당. 중세시대 때 아기들은 감싸여있었다기보다 거의 묶여있었어여. 팔다리를 곧게 펼쳐놓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긴 천으로 꽝꽝 짬매는거긔(??) 물롱 애기옷이나 기저귀 없이 천으로요.. 저 천 안에서 온갖 일..해결하고..네..위생 바이 21세기의 눈으로 보면 모냐 시벌..? 하고 뜨악할만한 일이 또 농민계층의 어머니라면 농사일, 집안일에 전념하느라 아이를 볼 시간이 없었을거긔 애가 뒤집거나 기어다니다가 요람에서 떨어지면 큰일나내.. 차라리 꽉 짬매두고 요람에 눕혀두면 전래 편하내.. 위 그림처럼 운반;하기도 쉽고요 밭매러가거나 일하러갈때는 나무에 기대세울수도 있고요. 약간 요느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귀족들은 어땠을깡..? 글쎄염..귀족 아기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었을거긔 육아라는 개념자체가 없던 시대..! 애긔는 유모가 돌보던 시대! 놀아주는 하인과 유모로 보아 귀족집 아이들인걸 알 수 있는데도 꽉꽉 묶여있져 여기서도 장식만 화려할뿐 단단한 스와들링은 달라지지않았긔 그리고 중세시대는 '어린아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긔 서양의 소파 방정환, 루소가 등장할때까지 어린애는 그냥 '덜 자란 어른'이었긔뚤 아이들을 위한 바느질, 자수, 이런게 존재할리 없고요? 그러니 어린애의 활동성을 중시한 옷, 편안한 옷 그런거 없이 어른옷의 치수만 줄인 코르셋을 입혔던거겠죠 애기옷이란게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애기를 벗겨둘 수는 없어..추워.. 그래서 스와들링, 강보가 발달하게 되었읍니당  심지어 아기 예수를 묘사한 그림에서도 스와들링이 나타나지여. 엄마 마리아와 아기예수긔 요기서도 요기서도 보이는 단단한 스와들링. 화가도 그림체도 모두 다르지만 머리에 쓴 천으로 성모마리아라는걸 알수있긔뚤 성모 마리아랑 아기예수 그림 다른버전 이렇게 보니 애기를 완조니 미라처럼 묶어뒀다는게 확 와닿으시져? 영유아 사망률이 하늘을 찌를만도 한것.. 한창 커야할 시기에 저랬으니 얼마나 괴로웠겠긔뚤 물롱 중세시대라고 해서 애긔들을 전부 묶어둔건 아니고요. 자유롭게 활개치는 애기들도 있었을 거예여 그러므로 이 그림에서의 아기들도 2살 이하가 맞으며 당시의 풍습대로 단단히 스와들링되어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당 위키백과 영어에 따르면 서양에선 스와들링 문화가 사라졌지만 몇몇 동양국가에선 여전히 애용 중이라고 하네욤. 근데 그게 중세시대처럼 무식하게 짬매는게 아니고.. 속싸개라고 부르더라구여 (아니 근데 여기 사진속 인물들은 죄다 서양인인데 서양에서 스와들링 문화가 사라졌다는건 대체..?) 12개월 미만 애긔들은 자다가 자기 손짓에 놀라서 깰때가 있으니 움직이지 못하게 감싸야한다네요 이게 바로 21세기의 스와들링!!! 속싸개!!!!!!!! 크흡 자기 손에 놀라는 애기라니 넘나 귀엽긔 ㅠㅠㅠ 오잉또잉 나한테도 팔이? 다리가? 이러는 거잖아욥 ㅠㅠㅠ 전래 겹냉..  하여튼 속싸개는 사실 되게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근데 옛날에는 지금처럼 애기를 돌본다는 개념이 없어서 걍 꽉꽉 묶어뒀고 당연히 천을 갈아준다거나 그런건없었고.. 지금처럼 애기들이 불편해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거 없었고.. 이게 영아 사망률에도 한몫했을거고.. 머 그렇다는 글이었긔.. 음 약간 밑도끝도없는 결론.. 출처 오잇..? 정말 그런건가!!!! ㄷㄷㄷㄷ 첨 알게된 사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멸망을 막을 유일한 방법
코로나 19와 여러 기후협약으로 온실가스 감축에는 성공했으나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 고대 땅속에 얼려있던 온실가스까지 나오면서 온실감축만으로는 더이상 온난화(이상기후) 사태를 막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자연이 못해결하면 인류가 직접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게 어떨까?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직접적인 해결책인 지구공학(Geo Engineering)이란 새로운 첨단 과학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1 성층권서 에어로졸 뿌려 태양 빛 반사 1991년에 일어난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대폭발 당시, 태양열 반사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내려간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화산 폭발에 의해 연기 속에 포함된 이산화황이 성층권에 살포되자, 이산화황은 성층권에서 황산 에어로졸로 변해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 일부를 반사했기 때문이다. 이 화산 폭발에 의한 냉각 효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기술이 바로 SAI다. 태양열 반사 화학 물질을 인위적으로 성층권에서 분사해 지구온난화 영향을 막겠다는 의도다. 2 탄소를 포집하는 인공나무 지난 2012년 5월 26일, 영국 기계공학 연구소(IMechE)는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술을 상용화시킬 수 있는 인공나무 개발 기술 시연회를 했다. 그 당시에 이 인공나무는 일반 나무보다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이 수천 배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 결정에 텅스텐을 입히고 나뭇가지 형태로 은을 코팅한 나노 촉매는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화합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진이 인공 광합성 기술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고부가가치 화합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장치는 이산화탄소 전환 시스템을 상용 실리콘 태양전지와 결합해 실제 태양광에서 구동 가능한 대규모 인공 광합성 시스템으로 알려졌다. 3 태양빛을 반사하는 거울위성 연구에 따르면 햇빛 1%만 반사해도 산업 혁명 이후 배출된 온실 가스에 의해 유발된 온난화를 상쇄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미 NASA는 우주에 태양을 반사하는 거울을 만들어 쏘아올리는 기술은 갖춘상태고 의외로 비용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쓰이는 1년 예산의 50%도 안된다고 한다. 결론 이미 애너지 절약,탄소배출 감소 따위로 막기에는 골든타임이 지나버렸다. 지금이라도 인류의 멸망을 막고싶으면 우주에 거울 띄우고 에어로졸 뿌려야한다. 반대로 이 3가지 방법마저 안되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류멸망은 운석충돌이나 화산처럼 천재지변으로  조용히 받아들이는 선택지밖에 없다. 지구촌갤러리 사이언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