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gu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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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혐)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참사

때는 1982년, 인기 TV 시리즈 환상특급의

극장판을 촬영하던 도중 발생한 사건임
당시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던 장면을

촬영하며 등장인물들을 구조하는 장면에서

제작자들은 특수 헬기가 아닌 실제 헬기를

동원했고 감독은 이렇다할 안전장치 없이

그대로 촬영을 강행한다




그러나...

당시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던 헬기가 3명의 배우들에게 그대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게된것
돌아가던 프로펠러에 두 배우의 목이 잘려나가고

다른 하나는 헬기에 깔려 사망하고만다 ㄷㄷㄷㄷㄷ

엄청난 대참사였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존 랜디스와

제작자였던 스티븐 스필버그,그리고

다른 제작자들 중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고 유가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데만 10년이 넘게 걸리기도 하는등

뒷처리마저도 미숙했던 사건으로 기억되고있다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shingu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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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ㅓ거 목잘리는거? ㅜ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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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천민계급
여타 다른 고.중세 국가들처럼 일본은 과거 신분에 따라 직업이 달랐음  특히 죽음과 관련되거나 보편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됐던 직업 식육,피륙,쓰레기처리,매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전부 천민계급이었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부라쿠(부락),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부라쿠민이라 불렀음 문제는 현재까지도 이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고 있음 한국의 지역 차별 같은 것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심각한 차별임 몇가지 유명한 예시를 들어보면 1. 1975년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 이 부라쿠민에 대한 신상정보를 모은 블랙리스트가 거래되다 적발됨 (이런 부라쿠민 블랙리스트 관행은 현재까지도 암암리에 흔히 이뤄지고 있음) 2. 2009년 구글어스에서 옛 일본 지도와 현재 지도를 겹쳐보는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라쿠 지역이 특정돼 넷상에서 '더러운 동네' 라는 이름으로 해당 지역 정보가 퍼짐 3. 일본 정치인 아소 다로가 부라쿠민 출신 정치인에게 "부라쿠민 따위는 일본 총리가 될 수 없다" 고 폭언함 4. 1963년 사이타마현에서 여고생 납치 피살 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을 잡지 못하자 경찰이 근처 부라쿠 지역에서 이시카와 카즈오라는 사람을 체포해 고문을 통해 무고 자백을 받아냄 이시카와 카즈오는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1997년 가석방됨 뉴스로 나올만큼 큼지막한 사건만 몇개 정리했을때 이 정도고 사실상 현재까지도 신분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지만 일본인에게 외국인이 이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적 이야기를 꺼내는 거냐며 굉장한 모욕으로 여김 기본적으로 일본 사회내에선 금기어나 마찬가지이고 '부락'이란 단어는 일본내 미디어에선 사실상 검열 대상임 아래는 일본 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라쿠민 차별 사진들 차별 금지 정책은 보통 '동화'라는 단어를 많이 씀 실제로 일본에선 초등학생때 부터 '동화교육'이란 이름으로 차별 반대 교육을 받는다고 함 이 외에도 부라쿠민 뿐만 아니라 아이누족, 류큐인 같은 소수민족이나 재일 조선,한국인들도 만만찮은 차별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음 도탁스 펌
기괴한 장례문화
사티는 남편이 죽어서 시체를 화장 할 때 아내가 불 속에 뛰어 들어 남편의 시체와 함께 불타는 풍습임. 1829년 동인도 회사의 총독 벤틱 경이 금지했지만 1843년 마하라자만 싱 왕의 장례식때 그의 15명 아내들이 사티로 죽기 전 손바닥 도장 흔적이 있을 정도로 사티는 계속 되었음. 1987년 9월 라자스탄 주의 데오랄라 마을에서 18세 과부가 사티로 죽었는데 애초에 라자스탄 주정부는 사티를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강행 되었다고 함. 남편의 가족들이 과부를 마취 시키고 장작더미에 밀어 넣었다고. 그리고 지키고 있으면서 불구덩이 속에서 빠져 나오려는 과부를 몇 번이고 다시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고 함. 경찰은 그 가족들을 구속했으나 별 문제 없이 석방 되었다고 함. 에휴. 2006년 8월 22일에 있었던 사티에서는 과부가 불에 탄 후 남은 재를 만져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관광특수까지 누렸다고 함. 남편이 죽으면 과부는 친척들로부터 가문의 남성들 중 한 명과 동침할 것을 강요 당했다고 함. 그리고 남편을 잡아 먹었다는 낙인으로 평생 집안에서만 살아야 했는데 힌두교 관습에 따라 과부들은 재혼을 해서도 안되고 다른 남성을 유혹해도 안되었다고 함. 머리카락을 전부 밀고 대머리인 채로 살면서 장신구를 걸치거나 색깔 있는 옷을 입는 것도 금지였다고 함. 이렇게 감금과 멸시를 당하는 삶이었지만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랬다고 산 채로 불 타 버리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임. 살아 있는데 불 속에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반항을 덜 하게 하기 위해 환각제를 먹이고 기둥에 묶어 두는데 화장을 야외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시신이 불타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려 길면 10시간이 넘도록 과부는 불태워지게 됨. 처음에는 불타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지만 전신이 3도 화상으로 뒤덮이면서 신경이 죽을 때 쯤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스스로 자신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며 생을 마감한다고 함. 사티를 강요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옛날 열녀문이 있었던 것처럼 사티를 행하면 여신으로 승격 되어 사원이 지어지고 친척들은 막대한 기부금을 받게 된다고 함. 그렇다보니 친정이고 시댁이고 할 거 없이 합심해서 산채로 태워 버리는 사티를 종용하는 것. 아까도 말했지만 감금과 멸시를 당해도 강제로 산 채로 불타 죽는 것 보다는 나을 테고 법적으로 금지가 되어 있음에도 강제적으로 끌어내 살해하는 경우도 생겨남. 1802년 한 해 동안 인도의 캘커타 지방 주위 50km 반경안으로 438명의 과부가 사티 풍습으로 죽었다고 함. 현재는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골에서는 사티 풍습으로 죄 없는 과부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 지고 있다고 함. 공포갤러리 히죽님 펌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
카메론은 자신의 세 딸에게 폭행을 행사하였고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딸을 집에 가둔채로 방화를 저질러 살해한 죄로 사형판결. 2004년 집행. 2010년 재심 결과, 무죄 판결. 더 뉴욕커 잡지가 조사한 리포트에서 카메론에 대한 증거가 매우 부족하다는 내용을 보도. 결국 텍사스주 과학조사위원회는 과학적인 조사가 매우 불충분했다는 점을 인정. 사과함. 공사중인 주택에 침입. 잠자고 있던 작업원 두 사람에게 수차례에 걸쳐 총을 쏘았고, 작업원 중 한 사람이 사망, 다른 한명은 도망. 생존 피해자의 증언에 따라 17세의 어린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질이 나빠 유죄 및 사형선고. 1993년 사형 집행. 2010년 무죄판결 켄투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으나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커진 언론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2년 뒤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는 두 사람의 목격자가 등장. 텍사스주의 신문사 휴스톤크로니클의 취재 결과 무죄임이 발견됨. 셀즈 주점에 침입 후 종업원에게 총을 쏴서 살해함. 술과 현금 14,000 달러를 강탈 후 라스베가스에서 유흥비로 탕진한 뒤 체포됨. 2000년 사형 집행. 2010년 무죄 판결. 그는 마지막까지 무죄를 주장하였으며, 사형집행 직전에 피해자 가족에게 “나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나 내가 사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유족들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김. 10년 뒤 DNA 감정 결과, 존즈가 무죄였다는 사실이 확인됨. 경찰관 토머스 자프란스키를 살해한 죄로 1998년 사형 집행. 1998년 (사형 직후) 무죄 판결. 증언을 검찰에서 거부하였고,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음. 결국 경찰이 존즈를 폭행하여 허위자백을 시킨게 밝혀짐. 세 사람을 고문한 뒤 살해. 연쇄살인혐의로 체포된 후 1997년 사형 집행. 2000년 무죄 판결. 검찰의 고문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한 증거들이 발견됨.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 이종격투기카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