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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관련된 tmi

낙타는 성질이 매우 더러워서 가축화하기까지 정말 긴 세월이 걸렸고
현대에도 목축하기 까다로운 동물이다
성경의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은 사실 없다.

아람어 원전 성경에서 나오는 밧줄(gamta)을 낙타(gamla)로 오역한 것이다.

즉 원문은 '굵은 밧줄이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뜻이다.
낙타는 더울 때 위장을 꺼내서 열을 식힌다
혀가 아니고 위장이다. 혀는 따로 있다.
위도 사실 여러 개인데 식도와 연결된 첫 번째 위를 꺼내어 열을 식힌다.
그림 속의 4번이다.
낙타는 10분 동안 100리터의 물을 마실 수 있다.
낙타의 혹은 순수 지방질이며 의외로 누린내는 없다고 한다.
모로코 같은 중동 지방에서는 낙타혹에 곡식을 넣고 볶아서 영양밥으로 해먹는다고 한다.

사진은 낙타혹 쿠스쿠스고 사실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고 우리네 보양식 정도의 지위라고 한다.
낙타는 자기 새끼가 죽은 곳을 기억하고 찾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칭기즈칸이 죽어서 매장하고 현장에서 낙타새끼를 죽여서
제관들이 후에 어미낙타가 가는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능을 찾았다고.
낙타의 조상은 약 3천만년 전 북미에서 왔다.

파라카멜루스로, 건조하고 추운 툰드라 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여 있고 물탱크 역할로 혹이 발달했다고 한다

낙타의 성기는 매우 작은데 몽골 설화에 따르면
부처가 낙타에게 크고 거대한 혹을 두 개나 붙여준 대신에 작은 불알을 준 거라고 설명한다.


지구촌갤러리 반듀링론님 펌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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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가는 오토바이 발로 차는거 보면 인성 개빻았네
그럼 그렇지 낙타랑 바늘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새끼도 새끼잃는 어미도 불쌍하다 ㅠㅠ 그시대는 지피에스 잇는것도 아니고 찾을수가 없었겠지만 이런거 보면 정말 마음이 안좋네
얼룩말도 한성질해서 길들이기 힘들다던데 낙타는 그냥 애가 못된네 ㅡㅡ
오역이라기 보단 그 바늘구멍이 그 구멍이 아닙니다. 밤에 성문이 닫히면 사람만 겨우 드나드는 비상용 작은 문이 윗쪽 장식이 뾰족해서 바늘뀌처럼 보이는 문이라 그래요. 낙타능 무릎을 꿇어도 통과를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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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테 클라르스펠드
좌석 뒤로 좀 가도 될까요? 거긴 통로가 아닙니다, 부인. 좀… 친구를 찾아야 해요. 바깥에서 찾으시죠, 이쪽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그래요, 들어가요. 빨리 찾아요. 1968년 11월 7일, 베를린의 독일 기민당 전당대회, 베아테 클라르스펠드(Beate Klarsfeld, 1939-)가 쿠르트 키징어 총리 뒤로 다가선 다음, 총리의 뺨을 때렸다. “나치! 나치! 나치!”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붙잡힌 후 키징어는 질문 하나만 말했다. “그 클라르스펠트였나? / War das die Klarsfeld?" 베아테가 키징어 총리 얼굴을 가격하는 장면의 만화이다. 사실 때리는 순간이 촬영되지는 않았으며, 뺨과 눈 부위를 얻어맞은 키징어는 그 다음부터 한동안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됐었다. 사실 베아테는 1968년 내내 키징어의 전력을 폭로하면서 그가 사임해야 한다 주장해왔기 때문에 키징어도 그녀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맞은 다음에, 그거 혹시 클라르스펠트였냐 물었던 것. 클라르스펠드는 틈날 때마다, 재판정에서도 때리기가 폭력행사가 아니라 “상징적인 행위(Symbolische Aktion)”라 변호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그녀의 변호사였던 호어스타 말러(Horst Mahler)는 극좌파 테러리스트로 변모했다가 후에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서 극우파로 변신하는 인물이 됐다. 출처 : https://www.spiegel.de/geschichte/graphic-novel-beate-klarsfeld-ueber-die-kiesinger-ohrfeige-und-ihre-jagd-auf-nazis-a-f94d2243-c733-4f46-a4b9-40240ced319b#fotostrecke-17a705ab-53b5-4eb7-8f5a-6cb4f1619ee7 여자가 총리를 때렸다! 경찰에게 바로 잡힌 그녀는 이어진 재판에서 1년형을 받았으나 실제로 형이 집행되지는 않았었다. 그녀가 프랑스-독일 이중국적자임이 밝혀졌고, 당시 베를린은 세계대전 연합국 관할(4대국협정/Viermächte-Status이라 부른다)이었기 때문에 국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사실 1년형을 받았다는 것도 큰 반발이 있었으며(바야흐로 1968년이다), 판사 집에 돌이 날라오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후에 4개월로 감형되기는 했지만 역시 집행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 부부에 대한 그래픽노블이 작년 독일에서 출간됐다(참조 1). 주말 특집, 베아테 클라르스펠드입니다. 일단 키징어 총리부터 봅시다. 1966년 선거 결과에 따라 대연정(Große Koalition)을 실시하여 총리에 올랐던 키징어는 1933년 나치당에 가입했으며(참조 2), 독일제국 외교부의 방송선전실에서 근무했다. 이른바 “최종 해결책”에 대해 그도 모르는바 아니었을 일이 분명했기 때문에 키징어 총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이 (비단 68년의 바덴마인호프만이 아니라) 많았었다. 아마 키징어 정부가 단명(1969년에 브란트 정부로 바뀐다)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베아테는 누구인가? 평범한 독일인으로 태어났다가, 파리에 입주가사보조인(…그냥 내가 임의로 해석했다. 실제로는 그냥 au pair로 불림)으로 갔다가 프랑스 남자를 사귀어서 모든 것을 알아버린 인물이 바로 그녀이다. 남자가 누구길래? 변호사인 세르주 클라르스펠드, 루마니아계 유대인 가족 아들이었고,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서 사망했으며 세르주 자신은 니스에서 독일군으로부터 탈출했었다. 그래서 독일을 둘러봤더니 나치에서 한 몫 했던 인물이 여기저기 잘살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서독의 교육과정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사실 대부분 유럽 국가 교과서에도 그 언급은 당시 없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쿠르트 리슈카(Kurt Lischka, 1909-1989), 나치 시절 파리의 게슈타포 책임자였고(즉, 유다인 7만 6천명의 아우슈비츠행을 결정했다) SS였지만 당시 쾰른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심지어 자기 이름으로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종전 후 프랑스 정부는 리슈카에게 궐석재판으로 유죄를 선고했었으나, 당시 앞서 언급한 4대국 협정 때문에 일사부재리로 인하여 그가 오히려 서독에서는 재판을 받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이미 판결을 받았으니 서독 정부는 그를 체포할 수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에 가지만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있던 것이다. 클라르스펠드 부부는 결심했다. 납치하자. 처음에는 리슈카를 잡아들이기 위한 시위와 데모를 조직했었다. 만화는 그당시를 묘사하고 있는데, 팻말에는 왼쪽부터 살인자 리슈카, 사형집행수 리슈카, 히틀러똘마니 리슈카라 적혀 있다. 하지만 시위는 소용이 없었고, 납치를 해보려 하지만 2m 장신의 리슈카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출처 : https://www.spiegel.de/geschichte/graphic-novel-beate-klarsfeld-ueber-die-kiesinger-ohrfeige-und-ihre-jagd-auf-nazis-a-f94d2243-c733-4f46-a4b9-40240ced319b#fotostrecke-17a705ab-53b5-4eb7-8f5a-6cb4f1619ee 하지만 원래 평범한 인물들이었는지라 납치는 성공 못 했고, 납치 미수로 인해 오히려 클라르스펠드가 잡혀들어간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구류에 항의했고 역시나 이번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데, 그나마 클라르스펠드가 여기저기 알린 덕분에 리슈카도 이제 떳떳하게 살 수만은 없게 됐다. 1979년 리슈카 재판 당시 기자 간담회를 열어 발언하고 있는 클라르스펠드 부부 모습, 재판 당시 세르주 클라르스펠드는 리슈카에 대한 유력한 증거 및 증인들까지 쾰른으로 데려갔었다. 출처 : https://www.spiegel.de/geschichte/beate-klarsfeld-die-frau-die-bundeskanzler-kiesinger-ohrfeigte-a-1065646.html#fotostrecke-d084fee1-0001-0002-0000-000000132467 이게 4대국협정의 수정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클라르스펠트 법/Lex Klarsfeld”이라는 별명으로 1975년 수정 조약이 체결된다. 궐석재판으로 유죄가 내려진 경우 전범을 서독 관할권에서도 체포/구형이 가능할 수 있도록 수정된 것이다(참조 3). 다만 내용 하나 고치는데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요? 에른스트 아셴바흐(Ernst Achenbach 1909-1991) FDP 부총재 때문이었다. 분데스탁 외교위원회의 FDP Berichterstatter(직역하면 보고관이지만 국회 상임위 내에서의 당대표를 의미한다)가 번번이 조약 체결을 막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본인이 나치 범죄와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4). 하지만 그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가 바로 SDP-FDP 연정을 유지하는 핵심 연결고리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고, 키징어 정권은 물론 브란트 정권에서도 그는 독일연방정부 공로훈장(1968년 1급 연방공로십자장/Bundesverdienstkreuzes 1. Klasse 및 1971년 대연방공로십자장/Großen Bundesverdienstkreuzes)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리슈카는 1980년 10년형을 받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Klaus Barbie, 1913-1991)를 잡기 위해 그가 은신해 있는 남미 볼리비아까지 쫓아가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납치를 기도하지만 그녀는 실패한다. 바르비는 결국 볼리비아 정권 교체 이후에서야 프랑스로 인도됐고, 1987년 프랑스에서 재판(결과는 종신형)을 받았다.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볼리비아 정권교체가 핵심이기는 했다고 인정한다(참조 5). 그 외에도 많은데 여기까지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살해 위협도 많이 받았고 소포 폭탄에 자동차 폭탄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많았으며, 미테랑 대통령은 물론 시라크, 사르코지 대통령 모두가 그녀 부부에게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여했었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내무부장관이 직접 그들 부부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수여했고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까지 했다. 그런데 정작 독일은? 계속 서훈을 거부했습니다. 왜냐, 그녀가 동독 정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데, 서독 내 친나치 인사 잡기를 동독은 측면지원했었고, 동베를린의 문서를 뒤질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른바 “원고료” 명목으로 그녀에게 자금도 제공했었다(참조 2). 동독 건국기념일 파티에도 초대됐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동독의 통제에 대해서는 당연히 부인했다. 그래서 2012년 독일연방 대통령 후보로도 추대가 됐지만(다름 아닌 좌파당이 추진했다) 그게 문제가 됐는지 당선에서는 실패, 대신 가우크(Joachim Wilhelm Gauck, 1940-)가 당선됐으며, 가우크 대통령은 그제서야 너무 지체됐던 서훈을 추진한다(참조 7). 결국 클라르스펠드 부부는 2015년 1급 연방공로십자장 (Bundesverdienstkreuzes 1. Klasse)을 받았다. 아셴바흐와 비교하지는 말자. 2015년 훈장 서훈 당시 클라르스펠드 부부. 출처 : https://www.spiegel.de/geschichte/beate-klarsfeld-die-frau-die-bundeskanzler-kiesinger-ohrfeigte-a-1065646.html#fotostrecke-d084fee1-0001-0002-0000-000000132467 슈피겔은 그래픽노블에서는 실제와 달리 코가 날카롭다고 지적한다(참조 5). 독일이 왜그리 늦게 훈장을 줬는지 알만하다. ---------- 참조 1. 독일어판 제목은 베아테와 세르쥬 클라르스펠드, 나치-헌터(Die Nazijäger). 원본인 프랑스어판 제목은 Béate et Serge Klarsfeld, un combat contre l'oubli(2020) 그러니까 나치-헌터가 아닌, “망각과의 싸움”이다. 나는 불어판 제목이 좀 더 마음에 든다. 참고로 영어판 제목은 FOR JUSTICE, The Serge & Beate Klarsfeld Story(2021)이고, 첫 번째 짤방 출처는 여기, Beate und Serge Klarsfeld: Die Nazijäger : https://www.carlsen.de/hardcover/beate-und-serge-klarsfeld-die-nazijager/978-3-551-79347-8 2. "War das die Klarsfeld?”(2015년 3월 12일): https://www.spiegel.de/geschichte/beate-klarsfeld-die-frau-die-bundeskanzler-kiesinger-ohrfeigte-a-1065646.html 3. Beate Klarsfeld jagte SS-Mann in Köln(2006년 3월 22일): https://www1.wdr.de/archiv/lischka100.html 4. 1 April 1971 - Beate Klarsfeld zeigt sich selbst an(2011년 4월 1일): https://www1.wdr.de/stichtag/stichtag5248.html 5. Bang Boom Nazi(2021년 11월 7일): https://www.spiegel.de/geschichte/graphic-novel-beate-klarsfeld-ueber-die-kiesinger-ohrfeige-und-ihre-jagd-auf-nazis-a-f94d2243-c733-4f46-a4b9-40240ced319b 6. Gauck zeichnet Beate und Serge Klarsfeld aus(2015년 5월 13일): https://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ns-aufarbeitung-gauck-zeichnet-ehepaar-klarsfeld-aus-a-1033660.html 7. 가우크 대통령 당선인은 당시 도대체 클라르스펠드에게 그동안 왜 훈장을 안 줬는지 조사부터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서훈을 안 할 수 없겠다. Plädoyer für mehr Phantasie(2012년 3월 18일): https://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erstes-interviews-von-joachim-gauck-als-bundespraesident-a-822081.html 8. 불어판 표지 및 키징어 총리를 때리러 가는 장면, 본문 첫 번째 단락은 아래 장면을 인용했다. 그 외 만화 장면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보시라. https://www.la-boite-a-bulles.com/book/556 장면 출처 : https://www.rtbf.be/article/comics-street-beate-et-serge-klarsfeld-un-combat-contre-l-oubli-10564244
중국에 원나라 사극이 없는 이유
원나라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들려면 원나라를 건국한 쿠빌라이의 건국스토리 쿠빌라이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원나라의 황위계승싸움  명나라 vs 원나라 정도임  이중 현재 중국에서 만들만한건 원나라 황위계승싸움인데..  우선 우리가 알고있는 계급지도 쿠빌라이가 대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반기를 들었는데  어디까지나 쿠빌라이는 명분없는 반란자 입장이였음 그런데 당시 고려세자가 대칸에게 항복하기위해 대륙에 도착했을때 기존의 대칸이 죽고 내전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쿠빌라이에게 항복문서를 전함  쿠빌라이는 즉시  "대칸에게 항복하기로 한 고려가 나한테 항복했으니  내가 진정한 대칸이다" 라는 구실을 만들어버림 얼마후 쿠빌라이가 내전에서 승리해 대칸에 자리에 오르고 원나라를 건국함  그리고 고려왕실에 대한 보답으로  무신정권에 " 고려왕실은 우리 일가 이니 건들면 원나라 황실 건드는걸로 알고 가만 안 둠" 이라고 메세지보냄 그리고 고려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음  대충봐도 서열 존나 높음 충렬왕은 결혼으로 서열7위로 수직상승했는데 이후 서열4위까지 올라가버림  이후에는 몽골부족들 견제좀 하라면서 고려땅보다  심양왕이라는 작위도 받아버리고 중간중간 황위계승에 공신이되는등 여러가지 사건이 존재함  결과적으로 한족의 고위지배층이 X같이 기어다니고있을때  본인들보다 미개하다고 생각한 고려왕실이 감히 쳐다볼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감  이건 왕실이고 국민들은 ? 이라고 할수있음 물론 고려도 원나라 제후국으로 조공보내고 군사동원하고 여러가지 뜯기긴했으나 결정적 차이가 존재하니 원나라의 항복조건에 협상을 잘해서 자국문화를 지켜냄 즉 중국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주변국들은 열등하고 한족은 위대하다' 라는 개념의 사극을 만들어야하는데  시대상 그대로만들면 고려왕실>고려인> 한족귀족>한족 이라는 공산당입장에서 납득할수 없는 작품이 나와버림 ㄷㄷㄷ 이종격투기카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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