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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후궁 vs 서양의 정부

가끔 서양풍 로판 소설에 보면 동양의 후궁 제도가 등장하기도 한다. but.. 서양은 일부일처제로서 후궁은 존재하지않았다. 그렇다면 서양의 왕들은 정말 왕비만을 사랑했을까? 정답은 NO다. 서양왕들도 여자 여럿 만나고 다녔다.
대표적인 예로 퐁파두르 부인과 뒤바리 부인이 있다. 이들은 왕의 공식정부(Mistress)로서 후궁이라기보다는 내연녀 느낌이었다. 잉? 그게 그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엄청 다르다. 후궁은 왕실의 일원으로서 대접받았지만 정부는 왕실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의 자식 역시 취급이 달랐는데,
후궁의 자식들은 왕의 서자이긴 했어도 왕위계승권도 있었고(물론 남자일 경우에만), 왕족으로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대표적인 조선의 서자는 영조로 그녀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는 천민이었다.
반면 정부의 자식들은 왕족이 아닌 사생아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왕위계승권은 꿈도 못꿨다. 위의 그림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인데, 윌리엄 4세의 자식들이 전부 사생아였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윌리엄 4세의 동생 에드워드 왕자의 적녀였던 그녀가 왕이 된 것이었다. 즉 서양에서는 적남>>적녀>>>>>(넘사벽)>>>서자,서녀 였다고 할 수있다. 심지어 "걔는 내 애 아님"이라며 아예 정부의 자식을 부정하는 왕들도 많았다. 뭐 왕이 직접 "얘는 내 아이 맞다"라고 인정은 해준다 쳐도 사생아인건 똑같았지만 말이다. 오직 왕비에게서 태어난 자식만이 왕족 취급 받을 수 있었다. 뭐 근데 말이 사생아지 사실은 다 왕의 자식들인건 뻔했으므로, 왕도 불편해지고 왕비도 불편해지고 정부도 불편해지는 모두가 찝찝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많은 정부들은 유부녀였는데, 이들이 아이를 낳아도 왕의 자식이 아니라고 둘러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유전자 검사가 있다지만 이 당시에는 그런것도 없으니 걍 내 아들 아니라면 우기면 됐었다. 그럼 정부의 남편들은 자기 부인을 뺏긴건데 괜찮나?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왕은 부인을 뺏어가는 것의 대가로 남편에게 막대한 재산과 지위를 줬었기 때문에 남편들은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곤 했다. (아니면 원래 미혼이었던 정부에게 왕이 직접 남편을 골라주는 경우도 있었다)
동양의 후궁들은 왕의 총애를 입으면 황귀비, ㅇ귀비, ㅇ비, ㅇ빈 등의 작호를 받았는데, (ex.양귀비, 희빈, 숙빈 등) 서양에서는 이들 남편에게 공작, 백작 등의 작호를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정부도 공작부인, 백작부인 등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뒤바리 부인이 뒤바리 부인인 것도 뒤바리 "백작부인"이여서 그렇다.
한편 모든 남편이 다 세속에 찌든건 아니었는데 마담 퐁파두르의 남편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서 자신의 부인을 왕에게 뺏긴 것에 매우 슬퍼했었다. 만약 퐁파두르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갔었다면 저 남편은 다시 받아주었을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퐁파두르가 그러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다.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왕위계승권은 오직 왕비의 자식만이 가질 수있었는데, 왕비가 아이를 못낳는 몸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동양이라면 후궁을 들였겠지만 서양은 얄짤 없었다. 무슨 경우에서든 정부의 자식은 사생아 취급이었다.
이게 맘에 안들었던 왕이 있었으니 바로 잉글랜드의 헨리 8세였다. 그는 왕비가 낳은 딸 하나가 있었으나,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어했다. 근데 왕비는 더이상 애도 못낳는 몸이 되버렸고... 그래서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시도하지만 교황은 카톨릭의 나라인 캐서린의 친정 스페인 왕가의 편을 들며 이혼을 반대함 이에 대해 헨리 8세는 종교 개혁을 강행하고 그렇게 헨리는 종교까지 갈아치우면서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했고
'앤 불린'이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놀라운건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도 헨리의 정부였다는거다... 메리 불린 왕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자식을 두 명이나 낳기도 했다. 이 두놈이 진짜 헨리의 자식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앤 불린은 자신의 언니가 왕의 총애를 잃어가는 과정을 이미 봤었기에, 왕의 정부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왕비가 되기 전까지는 헨리와의 잠자리를 거절했다.
원하는걸 다 가질 수있었던 헨리에게 앤 볼린같은 여자는 처음이었을 거다. 그래서 종교개혁까지 하면서 그녀를 왕비로 만들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앤 볼린 역시 아들을 낳지못했고 점차 둘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헨리는 온갖 이유를 갖다대면서 그녀를 사형시켰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종종 장희빈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후에도 헨리는 부인을 계속해서 바꿔대서 총6명의 왕비를 뒀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왕비"가 6명인거고, 정부는 또 따로 있었다ㅎㅎ... 이처럼 동양의 후궁과 서양의 정부는 겉으로는 비슷해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출처 더쿠 오 신기해 ㅋㅋ 동양 서양 이렇게까지 다르구나 ㅋㅋㅋ 속깊은 이야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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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재미있게 읽었어요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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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이름이 남아있는 조선시대 중전과 후궁들.jpg
여시들도 알다시피 조선시대 여자들의 이름은 잘 남아있지 않음 당시 사회 계급상 최고위층이었을 왕실의 여자들도 마찬가지.. 그래도 간혹 기록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으니 함 봅시당 태종 이방원의 후궁 신순궁주 이정민 이방원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일 때 후궁이 되었는데 이 때 과부였다고 함 조선 극초기에는 과부가 후궁이 된 경우가 종종 있었음 태종과 원경왕후가 죽은 후 명복을 빌기 위해 절에 시주를 하고 기록을 남겼는데 여기에 자기 이름이 남음 세조(수양대군)의 후궁 소용 박덕중 여긴 죄를 지어서 이름이 기록에 남은 케이스 세조가 수양대군이던 시절에 들인 첩인데 세조가 왕이 되며 후궁이 됨 왕자도 낳았으나 4살 무렵 죽었고 이후 세조의 총애가 끊어짐 이로인해 외롭던 상태에서 덕중은 환관과 바람이 나게 되고...이것 때문에 후궁에서 일반 궁녀로 강등 당함 그리고 궁녀 일을 하며 다시 세조의 조카에게 반해서 러브레터를 보냈다가 들킴 이후 사형당함...ㅠ 성종의 후비 정현왕후 윤창년.... 진짜임 실록에 나옴 아버지 윤호가 신창이라는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태어나서 신'창'에서 태어나 창년이라고 지었다고함.... 연산군 후궁 숙의 이정이 연산군에게 꽤 총애를 받은 후궁 중 한 명인데 중종반정 이후 궁 밖에서 조용히 살다 죽음 중종 즉위 후 처분 논의할 때 이름이 거론됨 연산군 후궁 숙용 장녹수 장녹수는 워낙 유명하니까 일단 패스 연산군 후궁 숙용 전비 전비도 연산군의 총애를 엄청 받았고 장녹수와 함께 부와 권세를 누리던 후궁이었는데 지명도가 약함...장녹수와 함께 죽었음 광해군 후궁 귀인 윤영신 상당한 명문가 출신 후궁으로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딸도 하나 있었음 인조반정 후 광해군 시대 간신 중 하나랑 불륜을 저질렀다는 명목으로 사형 당하는데 과연 진실일지... 광해군의 후궁 소용 임애영 여기도 역적죄인이 되어 이름이 남음 미색이 뛰어나고 똑똑해서 광해군이 마지막까지 총애한 후궁이었음 광해군이 폐위 당한 후 원래라면 사형 당했어야 하지만 인조 반정을 일으킨 신하들과 연줄이 있어서 살아남아 유배지의 광해군과 함께 지냄 나중에 조정 신하들과 내통해서 종친을 왕위로 추대하려는 반란을 도모한게 발각되어서 사형 당함 숙종 후궁 희빈 장옥정 여기도 너무나 유명하니까 패스 정조 후궁 의빈 성덕임 여기도 유명해서 패스 고종 왕비 명성황후 민아영 보통 민자영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자영은 소설 운현궁의 봄에 처음 등장한 이름이고 이후 발견된 사료 열성왕후세보에는 아영이라고 기록되어있음 고종 후궁 순헌황귀비 엄선영 이 이름은 좀 특이한게 고종이 내려준 이름으로 알려져 있음 진짜 이름은 기록에 남아있지 않는데 아마 시대상과 출신을 고려했을 때(한미한 가문 출신 궁녀) 성의 있는 이름이 아니라 다시 지어주지 않았을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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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 당하는 와중에도 드립을 참지 못했던 조상님 모음집 1. 이누쿠소 구라에(犬糞倉衛, 견분창위): 개똥이나 처먹어라 라는 뜻 -> 퇴짜 맞음 2. 이누코 구마소(犬子熊孫, 견자웅손): 단군의 자손이 개자식이 되었다는 뜻 -> 퇴짜 맞음 3. '전병하(田炳夏)'라는 이름을 가진 한 농부는 자신의 이름에 농(農)을 붙여 '전농병하(田農炳夏)'라고 신고했다. 이를 일본어로 읽으면 '덴노 헤이카'.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천황'과 같다. -> 끌려가서 심문 받음 4. 미치노미야 히로히토(迪宮裕仁): 발음이 '미친놈이야 히로히토(천황 이름)' + 쇼와 덴노의 황태자 책봉 이전 칭호와 이름을 합친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천황을 조롱하는 의미까지 담음. -> 고딩이었다고 전해짐. 5. 미나미 다로(南太郞→미나미 가의 큰 아들라는 뜻): 당시의 조선 총독의 이름이 미나미 지로("미나미 가의 둘째 아들"라는 뜻)인 것에 착안. 내가 총독의 형이다 라는 뜻. 6. 덴노조쿠 미나고로시로(天皇族 皆殺郞, 천황족개살랑): 천황 집안 다 죽인다는 뜻에 일본식 이름에 흔히 붙이는 '로'만 붙임. 이렇게 해도 되냐고 총독부에 직접 엽서를 보냄. 7. 쇼와 보타로(昭和 亡太郞, 소화망태랑):  쇼와 망해라는 뜻에 일본식 맏이의 이름에 흔히 붙이는 '타로'만 붙임. 이렇게 해도 되냐고 총독부에 직접 엽서를 보냄. 8. (세로 드립) 구로다 규이치(玄田牛一): 이는 畜生을 파자한 것으로 세로로 써서 읽으면 딱 축생이다. 한자로 번역하면 그냥 짐승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어로 발음하면 "칙쇼우.." 번역하면 "씨발, 좆같다"같은 욕으로 사용. ->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인 신불출의 실화 9. 에하라 노하라(江原野原): 추임새인 '에헤라 노아라'와 발음이 비슷 -> 이것도 신불출의 실화 (그 외) 닉넴 걍 막 짓는 타입의 유저들 청산백수(靑山白水), 산천초목(山川草木) 엄이섭야(嚴珥燮也) --> 그냥 자기 이름에 '야'만 붙임 ㅋㅋ (경상남도 양산군 금융조합 직원 엄이섭(嚴珥燮)) (출처) 1. 창씨개명거부운동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한눈에 보는 교과서 한국사 만화 근현대사 상》143쪽 출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총독부에 직접 엽서까지 보내시다니 ㅋㅋㅋㅋㅋ 아니 목숨까지 걸고 드립을 치시냐구요 ㅋㅋㅋㅋㅋ
러시아 솅겐 비자 문제
기사(참조 1)에 따르면 러시아 인들에 대한 관광비자 제한/불가 정책을 곧 정할 것 같기는 한데, 핀란드의 경우, 자신의 정치적 위기 타개에 더 가까운 에스토니아의 완전한 비자 불가 정책과는 좀 거리를 두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또한 여러가지 예외 지침을 둬서 정말로 불가인지 좀 불확실스럽지만 말이다. 에스토니아가 불과 한 달 전 연정이 무너졌었고, 지금 연정으로는 내년 봄 총선에 어떨지 알 수 없는데 그게 여기서 주제는 아니니 생략한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국적을 이유로 한 완전한 비자 거부가 EU 내에서 합법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참조 2). 간단히 말해서, 현재의 EU 법체제 하에서 국적을 이유로 하는 완전한 금지는 불법이다. 한국 국적자들이 자유롭게 (영국/아일랜드를 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을 불편 없이 다니게 해주는 솅겐(Schengen) 비자 체제의 구조 때문이다. (솅겐 비자의 가장 큰 수혜국은 러시아라고 한다. 2021년 54만명에게 부여됐는데, 그 다음 수혜국은 2만 7천 명의 중국이다. 참조 3) 솅겐 체제 구조가 어째서? 러시아와 관련된 솅겐 체제는 크게 (1) EU/러시아 시민 간 비자 원활화 협정(2007, 참조 4 (1)), (2) EC(집행위)의 비자 코드(참조 4 (2)), (3) 솅겐 협정 실행을 위한 EU법(참조 4 (3), acquis는 참조 5), 이 세 가지이다. 그 밖에도 인권에 대한 EU 헌장(CFR, 어떤 논리일지 익히 짐작가실 것이다)이나 비자처리 지침(handbook), CJEU 판결/결정문 등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정확히 뭐가 위반일까? (1)은 완전한 금지가 아닌 제한만 내릴 수 있다. (2)와 (3)은 비자 심사를 “개인별”로 하게 되어있지, “국적별”로 하지 않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그간 CJEU의 판례/결정 또한 “개인별” 심사를 염두에 두거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CFR이 국적/인종에 따른 차별을 명시적으로 못 하게 되어 있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비자 정책이 “외교 정책”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행정 절차”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EU의 제재 또한 법인이나 자연인을 향해 있지, 국가별/인종별로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비자 발급 거부에 대해 EU는 꽤 분명하게 반론권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떠오른다. 이 말이 무슨 의미냐? 침략국에 대한 외교 정책이라 주장되는 비자 거절이 CJEU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참조 2의 링크처럼 불법적이라고 확언하기 힘들 수도 있다. 가령 조건을 달아서 회원국이 러시아인에게 비자 발급을 거절하는 경우, “제한”이라 해석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변은? 모르겠다, 입니다. 실망하셨다고요? 세상에 그게 딱 나뉘는 질문이 많으면 좋겠지만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이 경우, 일단 발급 금지를 때려놓고서 반론권을 처리하는(즉, 소가 제기되는) 기간동안만이라도 효과를 본다면 정책을 발효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담이지만, 푸틴 체제에 반대하여 망명 신청을 하려는 러시아인에게 오지 말라 금지를 때려넣으면… 이건 좀 복잡한 일이긴 하다. 금지를 선포한 에스토니아도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찾지 못 했으며, 마침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2020년(전쟁 전이다) 망명 신청을 한 제일 많은 국적자가 러시아이다(참조 6).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 참조 1. Marin venäläisten turisti­viisumeista: ”Ei ole tehokas keino, että yksittäiset maat tekevät yksittäisiä ratkaisuja”(2022년 8월 15일): https://www.hs.fi/politiikka/art-2000009004501.html 2. Why Banning Russians from Schengen Is Unlawful(2022년 8월 12일): https://verfassungsblog.de/banning-russians/ 3. https://home-affairs.ec.europa.eu/news/visa-statistics-schengen-states-issue-24-million-visas-short-stays-2021-2022-06-03_en 4. (1) Agreement between the European Community and the Russian Federation on the facilitation of the issuance of visas to the citizens of the European Union and the Russian Federation :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ALL/?uri=CELEX%3A22007A0517%2801%29 (2) Regulation (EC) No 810/2009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13 July 2009 establishing a Community Code on Visas (Visa Code) : https://eur-lex.europa.eu/eli/reg/2009/810/oj (3) The Schengen acquis - Convention implementing the Schengen Agreement of 14 June 1985 between the Governments of the States of the Benelux Economic Union,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and the French Republic on the gradual abolition of checks at their common borders :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elex%3A42000A0922%2802%29 5. 정확히는 Acquis communautaire라고 하여 1993년 이래 EU를 구성하는 그간의 조약과 유럽의회의 입법, CJEU의 판결문과 결정문 등 회원국에게 구속력을 갖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그냥 EU 법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국내법 개념과의 혼선을 막기 위해 프랑스어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acquis는 고정 개념이 아니다. 복잡하다면 이렇게 이해하자. EU 회원국이 되려면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경제) 외에 법치(acquis)를 준수해야 한다. 이른바 코펜하겐 기준/Critères de Copenhague이라 부른다. 6. 2020년 우리나라에 망명신청을 한 국적 제1위(2019년부터 2년 연속 1위!)가 러시아였다(1,064명). 2위는 이집트(718명), 3위는 카자흐스탄(603명) 순서다. 물론 이 통계는 신청자이지, 받아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출처 : https://www.oecd-ilibrary.org/sites/29f23e9d-en/1/4/1/index.html?itemId=/content/publication/29f23e9d-en&_csp_=a9da7d4f182770aaa63ad86232529333&itemIGO=oecd&itemContentType=book 7. 짤방 출처는 원저자의 트위터, https://mobile.twitter.com/SarahGanty/status/1558042680839622657
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1 초상화를 완성하는 동안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빅토리아 시대 부부, 1890년대 #2 베오그라드 근처 최전선까지 자신을 방문하러 온 아버지와 함께 잠든 세르비아 군인, 1914/1915 #3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아침, 동독 국경 수비대가 베를린 장벽 너머로 꽃을 건네고 있다, 1989 #4 도쿄의 국수 배달부, 1935년 #5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와 그녀의 아이, 1900년대 #6 제2차 세계 대전 중 부다페스트. 유대인들은ㄴ 도나우강변으로 끌려가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에 따른 후 총살 당했다. 지금은 60켤레의 철제 신발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강둑을 따라 늘어서 있다. Can Togay와 Gyula Pauer의 '다뉴브 산책로의 신발'. #7 1967년 7월 17일, 실수로 고압선을 만져 4000볼트의 전기에 감전돼 심정지가 온 동료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전기공. 동료의 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Champion은 사고에서 살아남았고 다음 주에도 출근했다고 한다. #8 2차 세계대전 중 부상 당한 개를 태운 동물 구급차 #9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시기, 캘리포니아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 1918년 #10 아버지, 아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뉴기니, 1970 #11 도르레를 이용해 강을 건너 학교에 가는 아이들. 모데나, 이탈리아, 1959년 #12 두 다리가 잘린 장애인 철도 신호수 제임스 와이드(James Wide)가 애완동물이자 조수인 잭 개코원숭이와 함께 일하는 모습, 케이프 타운, 1880년대 James Wide는 1881년에 차크마 개코원숭이를 구입하여 휠체어를 밀고 감독 하에 철도 신호를 작동하도록 훈련했다. 개코원숭이는 하루 20센트, 매주 맥주 반 병을 받았고, 철도 회사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3 노예 남성이 3년간 다리에 착용하고 있던 사슬을 제거하는 영국 선원 이 노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왕립 해군이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만 해안에서 노예 무역 기지를 탈출했다.⁣(1907) #14 1902년 프랑스의 나이프 그라인더, 그들은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 누워서 일했고 온기를 위해 개를 다리에 앉혔다. #15 연구원이 한 번에 최대 8권의 책을 작업/읽을 수 있게 해주는 18세기 장치 #16 9/11 테러, 81층에서 걸어 내려가 1층에 막 도달한 순간 무너져내린 세계무역센터의 먼지 구름을 뒤집어쓴 여인 먼지의 여인 Marcy Borders는 2015년 8월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암이 그 날 흡입한 먼지 때문에 악화되었다고 생각했다. 9/11 피해자 보상 기금과 세계 무역 센터 건강 프로그램은 지난 18년 동안 2,000명 이상이 그날의 사고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17 2001년 9·11테러를 부시 대통령이 처음 알게 된 순간 #18 독일 베를린, 1985-2018 #19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한 10년 후 찍은 필리핀계 미국인 가족 사진, 1912 #20 2800년 된 키스 (출처) 먹먹하기도, 웃음이 지어지기도, 또 괜스레 뭉클해지기도 하는 역사적 순간들 :)
아이슬란드로 이사 가서 찍은 사진들.jpg
제가 찍은건 아니구여 ㅋㅋㅋㅋㅋ 스위스에 살던 Lesley Brügger씨와 Vėjūnė Rimašiūtė씨 커플은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딱히 아름다움을 실감하지 못했다고 하시는데여 ㅋㅋ 그래서 딱히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대여. 근데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갔다가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려서 그만 ㅋㅋㅋ 스위스 집을 팔고 짐을 싸들고 아이슬란드로 이사를 왔다구 해여. 그리고 이렇게 사진들을 찍기 시ㅋ작ㅋ 정신 차려 보니 시간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자연 경관을 찍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_+ 뭐 아이슬란드니까여! 인정ㅋ 스위스도 정말 아름다운 건 틀림없지만 아이슬란드와는 다른 아름다움이져 둘 다 자연경관이 아주 죽여주지만 각자의 매력이 너무 달라서 이 커플을 저도 이해할 수 있을 듯 ㅋ 저도 스위스가 너무 예쁜 건 알겠는데 아이슬란드가 훨씬 좋거든여 +_+ 특히 이런 풍경 너무 비현실적... 퍼핀 코앞에서 보는게 소원이구여 +_+ 똑같이 눈산인데 왜때문에 이르케 다른 느낌인지 ㅋ 검은모래해변은 진짜 아이슬란드 느낌이 확 나져 별거 아닌데 이게 다 아이슬란드 분위기 캬 오지구여 지리구여 찢었다 진짜 물결 담은 흑사장 카메라를 안 들이댈 수가 없겠는데여 ㅋ 꿈인지 생신지 저두 살고싶네여 아이슬란드 ㅠㅠ 더 많은 사진들은 Lesley Brügger씨의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구여! 오늘도 사요의 눈호강 타임 모두 즐거우셨나여? 남은 연휴 더 즐기시길 +_+
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2
#21 1915년 1차 세계 대전 중 구조견에게서 붕대를 꺼내는 영국 군인 #22 동베를린에 사는 조부모에게 아이들을 보여주는 서베를린 주민들, 1961년 #23 휴대용 레모네이드 디스펜서를 사용하여 레모네이드를 파는 베를린 소년, 1931. #24 바게트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들, 프랑스 1950 #25 전투의 충격으로 울고 있는 독일군의 16세 대공군인 Hans-Georg Henke. 그는 1945년 독일 헤센에서 미 9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26 1917년 11월 2차 파스첸달 전투에서 담배를 피우는 캐나다와 독일 군인 #27 베트남전의 군인 헬멧에 쓰여진 낙서, 1967- "전쟁은 좋은 사업입니다. 당신의 아들을 투자하십시오" #28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29 담배 피는 수녀들, 영국, 1960년대 #30 Rysstad 마을, 노르웨이, 1888 - 2013 #31 자유의 여신상 - 프랑스 파리 - 1886(미국으로 운송되기 전) #32 남북 전쟁 중 게티스버그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왼쪽: 앨런 핑커튼, 오른쪽: 존 매클레넌드 장군. 1863. (채색) #33 전쟁으로 폐허가 된 쾰른에 전재산을 짊어진 채 홀로 앉은 독일 여성, 1945년 #34 투탕카멘 왕의 3,300년 된 샌들 #35 나키모프 해군 학교에서 4명의 생도에게 경례를 받고 있는 소련 참전용사 아나톨리 골롬비예프스키(2차 세계 대전 중 노보로시스크 전투에서 두 다리를 잃음) (출처) 전쟁이 남긴 상흔이란. 이게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너무 무섭습니다.
고려 현종의 '출생의 비밀'
최근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이어, '고려 현종'을 다룬 대하드라마의 제작이 결정되어 많은 화제가 되었다.  고려 현종은 한국사 유일의 '사생아왕'으로 유명한데, 이 글에서 그의 출생의 비밀을 파헤쳐 보려 한다. ○ 혈통  '사생아왕'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졌지만, 사실 혈통으로만 따지면 현종의 정통성은 엄청났다.  - 부계(父系)   · 조부: 태조 왕건  · 조모: 신성왕태후 김씨(태조의 5비, 경주 김씨)   ↓   · 부: 안종 왕욱(추존)  - 모계(母系)   · 외조부: 대종 왕욱(추존)  · 외조모: 선의왕후(추존)   ↓   · 모: 헌정왕후 황보씨 즉, 고려 태조 왕건의 손자이자 외증손자이고(대종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 구 신라 왕실의 외손자이며(신성왕태후는 신라의 마지막 군주 경순왕과 사촌 관계), 황주 호족의 아들이다(헌정왕후 황보씨는 황주 호족 출신).  하지만 이 모든 혈통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그가 '안종 왕욱'과 '헌정왕후 황보씨'의 사통으로 태어난 사생아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선왕 경종의 왕후이자 현 국왕 성종의 누나인 지체 높은 왕실 여인이 공식적인 혼인 없이, 자신의 삼촌과, 근친상간을 하여 아기를 낳은 희대의 막장 상황이었다...  이러한 막장 드라마의 현실화로 인하여 현종의 가계도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데,  현종의 아버지 안종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고, 어머니 헌정왕후 황보씨는 태조 왕건의 손녀다.  헌정왕후 황보씨는 목종의 어머니 헌애왕후(천추태후)의 친언니이기에 모계로 따지면 현종은 목종의 이종사촌 동생이다.  하지만 부계로 따지면 현종의 어머니 헌정왕후 황보씨는 현종과 항렬이 같은 사촌 누나가 되고, 현종은 목종의 당숙이 된다... 하핫.. 개판이네... ○ 비극의 시작  헌정왕후 황보씨는 남편 경종이 죽자 왕륜사(王輪寺) 남쪽에 있는 사가로 나가서 살았는데, 한 번은 곡령에 올라 소변을 누었더니 온 나라에 흘러넘쳐 모조리 은빛 바다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해몽해 보았더니 아들을 낳으면 왕이 되어 한 나라를 가질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고...  헌정왕후는 “내가 지금 과부로 있는 터에 어찌 아들을 낳으리오?”라고 의아해하였다(...). 마침 안종 왕욱의 집이 헌정왕후의 집 근처에 있어 서로 왕래하던 중 정을 통해 임신까지 했는데,만 10개월이 되도록 사람들이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성종 11년(992) 7월, 헌정왕후가 안종의 집에서 자고 있는 사이 그 집안 사람들이 장작을 뜰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맹렬히 솟아오르자 백관들이 불을 끄러 달려오고 성종도 급히 와 안부를 물으니, 집안 사람들이 마침내 왕욱이 윤리를 어지럽히는 죄를 지었다고 고했으며 이에 빡친 성종은 왕욱을 멀리 사수현(현 경남 사천)으로 유배보냈다.  헌정왕후는 부끄럽고 한스러운 나머지 목을 놓아 울부짖다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대문에 막 닿자마자 산기가 있어 대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해산하던 중에 죽었다.  성종이 유모를 택해서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를 기르게 하니, 그가 바로 '현종(顯宗)'이다. 아기 현종의 보모는 그에게 종종 '아빠'라는 단어를 가르쳤는데, 이 때문인지 성종이 아기를 불렀을 때 성종을 보더니 "아빠"라고 불렀고, 성종의 무릎 위로 올라와 옷을 붙잡고 한 번 더 "아빠"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에 고려 성종은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의 처지가 너무 가엾어서 눈물을 흘렸고, 곧 아이를'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책봉하여 귀양지에 있던 왕욱과 함께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량원군이 5살이 되던 해에 왕욱이 병사하고, 자신을 보살펴주던 성종까지 붕어하여 경종과 천추태후의 아들인 개령군이 목종(穆宗)으로 즉위하자, 대량원군은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맞이한다. ○ 생존을 위한 사투  대량원군이 12살이 되던 해에, 성년이 된 목종을 억누르며 나라의 실세로 군림하고,김치양과 간통하며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후사를 잇게 하려던천추태후는 대량원군을 꺼려한 나머지 강제로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게 했다. ㅠㅠ  처음 숭교사(崇敎寺)에 있을 때, 어떤 승려가 큰 별이 사원의 뜰에 떨어지더니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변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 사람이 곧 왕이었다. 이 일 때문에 여러 사람이 대량원군을 특출하게 여기게 되었다.  목종 9년(1006), 대량원군이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로 옮겨 살게 되자 천추태후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그를 해치려고 했다. 마침 사원에 있던 늙은 승려가 방 밑에 구멍을 파서 숨기고 그 위에 침상을 놓아두어 그를 지켜 주었다.  천추태후의 암살 시도에 시달리던 시기, 목종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채홍순에게 보낸 편지가 전한다. “간악한 무리들이 사람을 보내어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술과 음식을 보냈는데 신은 독약을 넣은 것으로 의심하여 먹지 않고 까마귀와 참새에게 주니 까마귀와 참새가 죽어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절박하니, 바라옵건대 성상(목종)께서 불쌍히 여겨 구원하여 주소서.” 이에 채홍순이 목종에게 "형세가 급박하니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라고 아뢰자, 목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병이 점점 위독하여 곧 세상을 뜰 것 같은데, 태조의 후손으로는 대량원군만 남아 있소. 경과 최항은 평소 충의를 지닌 신하이니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바로잡고 구원하여 사직을 다른 성(姓)에게 주지 않도록 하시오.”  실제로 목종은 번번이 천추태후의 암살 시도를 눈치채고 훼방을 놓는 등 갖은 수를 동원해 대량원군을 지키려 했다.  이 시기 대량원군이 지은 시 두 편이 전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시냇물을 보고 지은 시> 한 가닥 물줄기가 백운봉(白雲峰)서 솟아나와 머나먼 큰 바다로 거침없이 흘러가네. 바위 아래 샘물이라 업신여기지 말게나 머잖아 용궁까지 도달할 물이어니. <작은 뱀을 보고 지은 시> 뜰 난간에 또아리 튼 작은 뱀 한 마리 붉은 비단같은 무늬 온 몸에 아롱지네. 꽃덤불 아래서만 노닌다고 말 말게나 하루 아침에 용 되기 어렵지 않을 걸세. ○ 즉위  마침내 1009년 '강조의 정변'이 터지면서, 목종은 '양국공'으로 강등되어 폐위되고 대량원군이 강조의 추대를 받아 고려국왕으로 즉위하니, 그가 곧 현종(顯宗)이다.  즉위한 직후 내린 교서에서 그의 통치관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짐이 외람되게 왕업을 이어받아 삼가 큰 사업을 계승하면서, 현도(玄菟)의 봉토를 통치하고 하늘이 돌보아 내린 명령을 받들게 되었다. 그동안 백성들을 자애롭게 기르느라 쉴 틈이 없으면서도 하나의 덕(德)이라도 미덥지 못할까, 혹은 올바른 윤리가 무너질까 늘 염려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여론을 듣고 단안을 내렸으니 이는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얼마 전 가을철이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안개가 걷히지 않았으며 음양(陰陽)이 뒤죽박죽되어 기후가 불순했다. 이에 더욱 성의껏 정무를 돌보면서 스스로를 통절히 자책하느라, 정전(正殿)에 들지 않고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며 부지런히 일하면서 마음과 입으로 빌었더니, 과연 하늘의 감응을 받아 날씨가 맑고 화창해졌다. 이로 보건대 성심을 다하기만 하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으며 재난을 복으로 바꿀 수 있음을 알겠다. 이제부터 가일층 성심을 다하고 두려워함으로써 위로 하늘의 뜻에 부응할 것이며, 더욱 나라를 열심히 돌보고 정사에 정력을 다 바칠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온갖 일들을 혼자서 처리하기는 어려운 법이니 마땅히 신하의 도움을 받아 함께 성현께서 제시하신 도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제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깊이 아로새겨야 할 바를 몇 가지 제시하노라.  재상의 직위는 실로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이니 정치에 있어 임금이 빠뜨리는 것을 보완[彌綸]하고 적절한 정책[謨明]을 건의할 것이며 치국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를 헤아려 왕업을 도우라. 인재를 가려내고 관리를 선발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은 초야에 묻힌 현인을 잘 찾아내어 그가 버림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인사에 공정을 기함으로써 아부하는 무리들의 말을 배격하라.  법령과 규율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죄상을 심리하고 판결을 내림에 있어 죄인을 불쌍히 생각해 가혹한 행위나 형벌을 내리지 말 것이며, 정상을 잘 참작함으로써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 국가 행정의 각 분야를 맡은 사람들은 각별히 서로 협조해 직무를 집행[官聯]하도록 할 것이며 자신이 맡은 업무에 성실히 임하라. 또한 청렴을 장려하고 혼탁한 행동을 방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이며, 멸사봉공의 자세에 어긋나지나 않는지 늘 반성하라.  지방의 목민관들은 각자 애민 정신을 간직하고 만물을 아끼는 마음을 잊지 말라. 변방을 지키는 지휘관들은 부대를 잘 조련하여 용맹한 군사를 길러냄으로써 불의의 사태에 힘써 대비하고 군율의 해이를 경계하라. 아아, 너희들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은 밤낮으로 게으르지 말고 시종일관 충성을 변치 말지어다. 아아! 하늘이 가까이 감시하면서 이미 훈계를 내리셨으니 내 마음이 게으르지 않아 이미 하늘에 감응한 바 있도다. 이제 더욱 정성스럽게 나의 행동을 반성함으로써 나날이 새롭게 경사를 더해가기를 기대하노니 그대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려 미래를 보장받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그는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이 된다. 출처 어릴때 시험보기전에 달달 외우면서 공부했던 거 기억나네.. 업적이 어마어마한데 저평가 된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