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gu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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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남한 패전시 미군의 계획

태평양 섬에서 태어나고 자랄뻔 ㄷㄷㄷ
이종격투기카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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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짱꼴라 좋다고 조선족이 우리 동포라고 디립다 수입시키기 때문에 냄비민족이 되는거임 ᆢ 70년전 남한 죽이려고 북한 도와주던 버러지들때문에 서사모아로 쫓겨날 뻔했는데도 다 잊고 대국이 된 짱꼴라 섬겨야 한다는 신 사대주의자들 ᆢ 우리나라에 차이나타운이 왜 이리 많니 에휴
전사사망자가 17만인데… 남편잃은분들이 30만???
군인만 집계했는데요 일반사망자도 있겠죠
넴ㅎㅎ 군인만 집계
@tnduqakak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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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문화재!! 너는 대한민국의 <<<국보 및 보물>>>에서 탈락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화재가 일종의 스포츠라면 최상위 리그는 국보임. 문화재는 무수하게 많지만 당연 모두가 국보가 될 수는 없는 것이고, 문화재중에서도 특별한 소수만이 깐깐한 심사를 거친 후에야 국보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종의 이유로 인해 국보에서 탈퇴 당하는 문화재들이 있음. 오늘은 그런 비운의 문화재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함. 1. 주작 때는 1992년 여름. 한산도 앞바다에서 건져진 별황자 총통 하나에 온 대한민국이 들썩거림. 이 별황자총통을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총통의 몸통에 적힌 글자였는데,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음. 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 귀함(거북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 한산도....? 거북선....? 눈 감고 봐도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 그것도 거북선의 뮤울;;;;; 기록으로만 전할 뿐 파편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거북선과 연관된 유일한 유물이었기에 학계 및 온 대한민국이 난리가 남. 별황자총통은 문화재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고, 이런 인기에 힘입어 발굴된지 불과 17일의 최단기간에, 무려 만장일치로 국보 274호에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어 냄. 이게 얼마나 빠른 결정이었냐면 누가 봐도 국보 문화재인 무령왕릉 유물들도 국보가 되기까지 3년이나 걸렸고, 천마총 금관도 5년 연습생 생활 끝에 국보로 데뷔함. 별황자총통이 얼마나 특별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임. 그러나 4년이 지난 1996년, 뜻밖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폭로가 터짐. 광주지검은 당시 문화재 보호 지역에서 피조개를 재취하기 위해 뇌물을 뿌리다 걸린 수산업자 홍모씨를 조사하는 중이었음. 그런데 이 홍모씨가, "황동환 대령(별황자총통 발굴 책임자)에게도 뇌물을 줬는데, 국보 별황자총통은 가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는 말을 한 것임. 이에 검찰은 은밀하게 황 대령을 불러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 냄져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었음. 황동환 대령 : 아ㅋㅋㅋㅋㅋ 그 소문ㅋㅋㅋ 나도 그런 소문 듣긴 했는데, 우리 해군 이미지도 있고 하니까 그냥 좀 덮읍시다. (별황자총통은 해군 주도로 발굴됨.) 국보가 뭔 이불도 아닌데 덮긴 뭘 덮자는 말임?? 이 미심쩍은 태도는 검찰의 수사 욕구를 더욱 자극할 뿐, 아무런 해명이 되지 못했고 결국 두 달이 지난 후 대령은 모든 사실을 실토했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황자총통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가짜였음. 애초에 총통 본체부터 조선시대 물건이 아니라 현대에 만든 가짜 총통에 인공적으로 약품을 부어 부식시킨 물건이었으니 말 다 한 셈임. 심지어 별황자총통의 미심쩍은 점은 이것만이 아니었음. 일단 별황자총통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인 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 이 문구부터 존나 수상쩍었음. 화포의 문구에선 거북선을 배 함자를 써서 '귀함'이라고 칭했는데, 군사용 배에 함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근래의 어투라고 함. 조선 시대에는 군사용 배, 민간 배 할 것 없이 모두 배 '선' 자를 사용했고, 실제로 실록 등의 기록을 봐도 모두 '龜船' 이라는 단어를 쓰지 '龜艦'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별황자총통 뿐이었음...ㅋ 뿐만 아니라 과학 조사 결과, 별황자총통에는 아연 성분이 8%나 검출되었는데 아연은 불에 매우 약한 금속임. 불에 약한 아연을 8%나 화포에 처넣는다고...? 적군에게 보내는 트로이의 목마가 아닌 이상 이딴 식으로 무기를 제작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단 말임? 심지어 문화재청은 이와 같은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쇠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 만인에게 빡침을 안김. 화포 무기에 아연을 섞는 멍청한 조상은 없지만 뻔하게 수상한 물건을 만장일치로 국보 시켜주는 멍청한 후손은 있었다는 것이 블랙코미디.... 결국 문화재 위원회는 4년만에 별황자총통의 국보 지정을 철회하고 국보 274호는 영구결번으로 남게 됨. 마지막으로 다시 빡치는 tmi 하나. 이 물건을 국보로 지정할 때 심의 과정에 참여한 문화재 위원회 중 군사유물 전문가는 1명도 없었다는 것.... 존나 뭘 믿고 국보 지정한 거임? 2.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국보 제 278호 이형 원종공신녹권부함임. 대체 저게 뭔 소린가 하면 쉽게 말해서 공신 임명장이라는 소리임. 조선 초기 태종 시절, 이형이라는 사람에게 태종이 내린 공신 임명장&보관함이 나란히 국보가 되었다는 말임. 조선 전기 공신에 대한 대우와 공신록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 당당하게 국보로 선발됨. 그런데 이게 왜 국보에서 쫓겨났느냐.... 여기에는 무척이나 슬픈 사연이 있음... 우리가 잘 아는 올록볼록한 인성의 철퇴같은 이방원에겐 모두 두 종류의 공신이 있었음. 하나는 좌명공신이요, 다른 하나는 원종공신임.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냐면 좌명공신은 정공신, 즉 찐공신들이 받은 공신직임. 방원이의 철퇴메이트 하면 딱 떠오르는 하륜, 이숙번, 이지란 등이 바로 이 좌명 공신을 받음. 누가 봐도 아, 저 사람은 이방원을 위해 철퇴의 짜릿한 손맛 좀 많이 봤구나! 심은 사람들 47명이 좌명공신에 임명 됨. 그럼 원종공신은 무엇이냐? 쉽게 말해 명예 공신직, 짭공신이라고 생각하면 됨. 좌명공신 시켜주기엔 급이 딸리는데, 그렇다고 공신 안 시켜주면 삐질 것 같은 애매한 애들... 그런 애들이 원종 공신이 됨. 이제 좀 감이 오지....?ㅎㅎㅎㅎㅎ 2006년에 찐공신증인 ‘마천목 좌명공신녹권’이 보물 1469호로 새롭게 지정된 것임. 심지어 태종이 발급한 47개의 찐공신증 중에서도 유일하게 남은 물건... 근데 이렇게 하고 보니 행태가 뭔가 미묘했던 거임. 찐공신증이 보물인데 짭공신증이 국보라니 에어팟을 두고 차이팟을 국보 시키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지난 2010년, 문화재 위원회는 고심 끝에 이형의 짭공신증을 국보에서 보물로 강등시킴. 그딴 식으로 굴지 마라 인간들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3. 짭인 듯 짭은 아니지만 결국은 짭인 너 이번엔 국보가 아니라 보물 이야기임. 보물 제1173호였던 남은유서분재기가 그 주인공임. 사실 보물 1173호는 남은유서와 남재왕지라는 임명서가 한 쌍이지만 귀찮으니 남은유서만 말함. 어차피 탈락된 이유는 같거든 일단 남은유서분재기가 뭔지 먼저 설명하겠음. 조선 초기 남은이라는 사람이 남긴 유서라고 보면 됨. 참고로 남은 죽인 사람 저기 위에 방원이ㅎ 뭐 내용은 딱 유서 내용임. 자식들아 나 죽는다... 제사 꼬박꼬박 지내주렴... 전답은 누가 가지고 노비는 누가 가지고 금 허리띠 은병은 대대손손 물려줘라... 이런 내용이 전부임. 그래도 조선 초기의 유산 상속 방식을 알 수 있는 귀한 물건인 것은 맞아서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전부터 꾸준히 원본이 아니라는 논란에 시달려왔음.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수서(手書)라는 단어였는데, 손으 쓴 글, 즉 손수 적었다는 뜻임. 근데 이 수서라는 단어는 중종 이후에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고, 남은이 살던 조선 전기에는 자필(自筆) 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이 문제였음. 학자들은 별황자총통처럼 악의적 주작은 아니고, 남은의 후손들이 원본을 필사한 물건으로 추측하고 있음. 원본을 필사하는 도중에 몇 글자 오타를 냈다고 보는 것임. 그래서 전체적인 골자는 원본이 맞긴 한데 어쨌건 원본이 아니기는 아닌... 그런 애매한 물건이 되어 벌임... 그래서 남은유서분재기는 2010년 보물에서 강퇴당하고 일개 골동품 1로 돌아감. 학술적 가치가 풍부한 건 맞아서 좀 안타까운 경우라고 함. 4.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여기에는 한때 보물 5호였던 중초사지 삼층석탑이 속함. 삼층석탑은 1935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됨. 그러던 1997년 문화재관리국은 일제가 지정한 국문화재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중초사지 삼층석탑은 연대가 고려 중기 것으로, 다른 석탑들에 비해 최신 물건인데다 조형미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물 자격을 박탈당함. 지금은 그냥 경기도 문화재로 사는 중. 5. 문화재가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가슴 아픈 사연의 문화재들이 해당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바로 화재 등으로 소실된 문화재들이 여기 속하기 때문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낙산사 동종임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종이 아버지 세조의 극락왕생을 위해 만들었다는 낙산사 동종은 보존 상태도 훌륭하고 조형도 좋아 보물로 지정되었음. 보존 상태가 얼마나 좋았는지 소실되기 직전까지도 실제 타종에 이용되엇다고 함. 그러나 2005년 4월4일 강원도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낙산사로 번졌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종각의 재질이 목재템이라 더 크게 탔다고 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낙산사 동종은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는 새로 만든 종이 자리에 세워져 있지만 복원품은 보물이 될 수 없다는 문화재청의 규정에 따라 보물 479호는 영구 결번으로 남음...ㅠㅠ 여기서 예리한 사람들은 떠올린 문화재가 하나 있을거야. 그렇다면 숭례문은...? 불에 타서 복원한 것도 같은데 숭례문은 국보의 자격이 있나? 이에 관해서 문화재청은 1층 누각은 전소가 아니라 10%의 손실만 입었을 뿐이기에 자격을 박탈할 이유는 없다고 본 것 같음.(낙산사 동종은 진짜 심각하게 훼손되었음.) 글쎄 논란이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국보 1호가 결번이면 너무 슬플것 같음..... 6. 일 똑바로 안 하지 보물 제341호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은 대한민국 보물들 중에 가장 짧은 이력을 가지고 있음. 1963년 1월21일 보물로 지정된 이후, 단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1963년 1월21일 보물에서 해제 되었기 때문임. 어째서? 짭이어서? 놉. 진품임. 이유는 존나 황당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국보 제116호랑 중복 지정이어어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개합니다!! 국보 제116호인 청자 상감 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입니다! 보물 제341호 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과는 동일 문화재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국보가 된 날짜는 1962년 12월 20일로 보물로 지정된 1963년 1월21일과 한 달 차이밖에 안 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화재청놈들이 이미 한 달 전에 국보로 뽑아놓고는 또 보물로 지정했다가 급히 정신차리고 취소했다는 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음. 아마 쉬쉬하고 묻어버렸겠지...ㅋ 아무래도 이 청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두 번 지정하고 싶었나 봄. 완전 대한민국 국보 면접 프리패스상 아님? 보물로도 뽑히고 국보로도 뽑혔으니 사실상 대한민국의 1등 문화재가 아닐까... 출처 오매.. 신선하네.... 재밌다 ㅋㅋ 이런일이..!
고대 그리스의 상남자
레오니다스 1세 (Leonidas I) 기원 전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17대 왕 그와 동시에 스파르타라는 그리스의 일개 도시 국가를 용맹함의 상징으로 역사에 새겨넣은 위대한 영웅 오늘은 고대 그리스의 상남자 레오니다스 1세에 대해 알아보자 영웅의 탄생 레오니다스는 아낙산드리다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가 워낙 많아서 평생 왕 한번 못해볼 상이었음 그 때문인지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높은 두각을 나타냈다거나 하는 기록은 일절 없어서 어린 시절은 역사서에 매우 짧게 기록되어 있음 아고게(Άγωγή)를 버텨낸 왕자 허나 스파르타의 왕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앞날이 마냥 밝은 건 아니었는데 바로 스파르타의 남자들은 왕세자 같은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예외 없이 아고게를 거쳐야 했기 때문 아고게란 '스파르타식 교육' 그 자체로 "이게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드는 훈련들을 7살의 어린나이부터 20살이 되어 통과의례를 거치는 날까지 하는 스파르타의 교육 제도 그 자체를 의미함 이 아고게가 얼마나 혹독하고 힘든 훈련이었냐면 이 짤에 나온 훈련들을 7살 때부터 그대로 따라 한다고 생각하면 됨 과장 하나 없이 스파르타 남자들은 이러한 가혹한 훈련들을 누구나 강제로 거쳐야만 했음 아래는 '실제'로 기록된 아고게에 대한 극히 일부 이야기 스파르타인들은 맞으면 맞을수록 피부가 단단해진다고 생각했다. 15세 이전에 일 년에 한 번씩 훈련생들을 나무 형틀에 묶어놓고 회초리나 몽둥이로 온몸을 피멍이 들어 터질 정도로 때렸다. 그 다음, 뜨거운 물을 수차례 몸에 끼얹어 피부를 연하게 한 다음 자갈밭에 굴렀다. 그렇게 하면 피멍이 든 곳이 약해져 터지는데, 그때 차가운 강물에 재빨리 몸을 담가 식혔다. 왕세자를 제외한 국가 남성 전원에게 저런 훈련을 7살부터 시켰는데 어떻게 국가가 굴러갔는지는 지금도 학계의 미스테리로 남아있음 문제는 그 유명한 플라톤도 스파르타식 교육이 현명한 인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여러모로 고대의 사고 방식이 어땠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사례인듯 뜻밖의 기회, 왕위에 앉게 된 왕자 평생 왕 자리와는 연이 없을 것 같던 레오니다스에게도 어느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형이었던 클레오메네스 1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둘째 형이 객사하자 왕위에 앉을 기회를 얻은 것 그렇게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17대 왕으로 즉위하며 운세는 순탄한 여정을 기약하는듯 했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그리스 침공 즉위 10년을 채우기도 전에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해버림 당시 그리스 북방의 맹주였던 테베가 페르시아에게 붙는 등 그리스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됨 거기다 당시 그리스는 하나의 규합된 국가가 아니라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여러 도시 국가들이 이끄는 연합에 가까운 형태였기 때문에 페르시아 제국에게 각개격파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당장 합심해서 페르시아군을 막아도 모자랄 판에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과연 맞서 싸우는게 옳은가 하고 이익을 저울질 하고 있는 상황 더구나 스파르타 같은 경우 피지배층인 노비들의 반란을 우려해 레오니다스의 대규모 출정 허락도 쉽사리 안해주던 상황이었음 결국 이러한 악재 속에서 레오니다스는 그리스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조국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맹주 자리를 잃지 않게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천혜의 요중치인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출정함 이곳에서 적군을 막는다! 우린 이곳에서 싸운다! 저들은 이곳에서 죽는다! -영화 300 테르모필레 협곡은 좁은 길목을 바탕으로 한 천혜의 요충지로 숫적 열세가 엄청난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의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선이었음 실제 영화에 나온 수준으로 골목길까진 아니었지만 그 엄청난 페르시아 대군을 잠시나마 저지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던 장소 하지만 영화 300에서도 나오듯 내통자가 테르모필레 협곡의 샛길을 페르시아에 뿌려버렸고 그리스 연합군은 양쪽에서 적군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퇴군을 주장하는 그리스 폴리스들 하지만 레오니다스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첫 전투에서 자신들 스파르타가 모범을 보이기로 결정하는데 그래서 나온 판단이란게 대를 이을 자손이 있는 30~50대의 고위 병사들 300명만 남겨서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미친 전략을 선택함 현실로 치면 대통령이 몰려오는 적군들 막겠답시고 장성들 300명과 함께 요충지 지키다가 궤멸당하겠다는 수준의 개소리에 불과했지만 이런 레오니다스의 선택은 그리스를 지키는 신의 한수로 작용함 뭔 개소리냐면 '어느 누구라도 후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협곡에서 왕과 최고의 병사들이 궤멸했다는 소식'이 그리스에 울려퍼지자 그리스인들은 이들의 감동적인 희생에 크게 분노하며 "스파르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우리들이 죽더라도 그리스를 페르시아에게서 지켜내리라" 라는 마음으로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한마음으로 통합된 거였음 천혜의 요충지도 격파하고 이제 그리스를 집어삼킬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이렇게 합심한 그리스 폴리스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년 뒤에 일어난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해군이 궤멸당하며 결국 그리스 침공의 꿈을 접기에 이름 그리고 이 때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그 유명한 크세르크세스 1세는 말년에 쿠데타로 암살 당해서 역사의 뒷길로 사라짐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수많은 그리스 영웅 설화의 바탕으로 숨 쉬고 있는 레오니다스 1세와 비록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말년에 암살당하는 비운의 말로를 보내고 현재는 암군으로서 평가받고 있는 크세르크세스 1세 이 두 왕의 엇갈린 운명은 초한지의 유방-항우, 삼국지의 조조-유비 만큼이나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함 만약 레오니다스 왕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노력했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페르시아에 맞서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는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선택을 통해 그리스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그와 300 병사의 희생을 통해 그리스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도저히 뭉쳐지지 않을 것 같던 그리스 연합군은 거짓말처럼 합심했으며, 결국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약하다.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리더는 조직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과 존경심을 심어주고자 한다면,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는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필요하다. -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지구촌갤러리 카이도님 펌
초고대문명 아틀란티스의 유력한 후보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처음 언급한 아틀란티스. 물론 당대에도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말이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허무맹랑하다'고 비판했고 플루타크 영웅전을 쓴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도 신뢰성에 의문을 표함 심지어 기원전 3세기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소실되기 이전)에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놓고  아틀란티스가 실존했는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고대의 문서들이 소실되기 이전 시대 학자들조차도 아틀란티스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던 것 하지만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너무나 구체적인 묘사에다가 자기 가문 출신 어른인 솔론이 이집트에서 들은 것이라며 조상의 이름을 내걸고 사실이라 주장했다는 점,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을 정도로 평소에도 허구를 창작하는 걸 싫어했다는 점 때문에 그저 만들어진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또 찜찜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플라톤의 묘사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가운데에 있는 중앙섬을 중심으로 고리 모양의 운하 3개가 둘러진 동심원 형태의 구조를 취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위 짤과 같은 상상도가 많이 그려졌다. 아틀란티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존에 추정됐던 장소로는 에게해 산토리니섬, 북해 도거랜드, 모로코 수스마사 등이 있었는데 2018년에 들어와서 새롭고 강력한 후보지가 등장한다.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 국가 모리타니에 있는 '사하라의 눈' (또는 리차트 구조라고 불림) 이 바로 그것이다. 직경이 약 50km에 달하는 거대한 동심원 모양의 지형이지만 너무 크다보니 평지에서는 흔하디 흔한 모래사막의 언덕으로만 보여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고해상도 인공위성 사진을 얻게 되면서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왔던 그 이상적인 지형과 유사한 곳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모래언덕으로만 보인다 이곳은 현재 분쟁지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고 고고학자고 출입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종합하면 중앙섬을 중심으로한 동심원 구조의 지형 크기와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평야가 있다는 묘사가 일치한다는 것 (리차트 중심부 크기가 약 24km 인데 플라톤이 기록한 아틀란티스 크기는 23.495km) 사하라 사막이 자전축의 변화로 사막화가 진행된 시점이 약 5천 년 전이므로 아틀란티스가 멸망했다는 9천 년 전에는 (현재 우리 시점을 기준으로는 1만 1천 년 전) 사하라의 눈이 사막이 아니라 녹지대였다는 것, 모리타니 사막에서 고래 화석이 발견되어 이곳이 한때는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적이 있었다는 것 등등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사하라의 눈을 아틀란티스로 가정한 상상도 도탁스 펌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에 대한 모든 것
오늘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에 대해서 알아보겠슴댱!!!!! 다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때 중국에서 진시황 본인이 최초 황제라고 칭했던 시대가 바로!!! B.C 247년 ~ B.C 210년이었다는 사실!!!! 실제 역사기록에 보면은 진시황은 매우 엄격했으며 폭군이였다고 전해집니다!!! 중국 대륙을 통일했던 왜 그가 폭군이였을까요?!?! 실제로 그는 포악했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사실!!! 그 이유는!!!!!!!! 진시황은 조조,백기 다음에 버금가는 대량 학살자 칭호를 딴 황제입니다!!! 이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지었을 때 많은 사람을 생매장 시켰던 인물입니다!!! 만리장성을 시행했던 기술자 그리고 감독자 노동자들을 모두 생매장 시켰답니다!! 그리고 유생들과 그의 기록물들도 모두!!! 불태우고 했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알아볼건데요!!!! 이 분서갱유라는 것은 유생들이 자신만의 그릇된 사상을 퍼트렸고 진시황에게 "이 뜻은 안맞다 저 뜻은 안맞다" 라는 상소문을 자주 올렸다고 합니다 이에 극대노한 진시황은 그 유생들이 적었던 기록물을 모두 불태웠고 상소문을 올린 유생들을 모두 생매장 시켰답니다!!! 그 이후로 진시황은 암살에 매우 시달렸고 합니다!! 하물며 그를 죽이려고 하는 나라가 엄청나게 많았고 자객도 많았고 첩자도 많았다는 것이죠!!!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도 많았고 이를 각색해서 영화도 나왔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영웅이죠!!!!!! 여러분들이 모르는 사실!!!! 진시황은 황제이기도 했지만 무술 유단자였다는 것....! 천하의 진나라 장군들도 진시황에게 졌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그만큼 무예에 뛰어난 인물입니다!! 무술 유단자에 소드 마스터 타이틀까지 있었던 황제입니다!! 암살에 시달리고 나서 배운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진시황은 황제가 되기 이전에 엄청난 무예의 달인이라는 칭호가 뒤따라 다녔던 인물이라는 사실!!! 진시황의 모든 초상화를 보면 항상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무예에 뛰어났고 검술에도 뛰어났다는 걸 볼 수 있죠 왜 그동안 자객들이 진시황을 못 죽였는지 왜 항상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답니다!!! 다른 황제들은 검은 그냥 장식물이고 상징이였지만 진시황은 그 반대였다는 사실....!! 당시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묘사입니다!!! 단이라는 사람이 진시황에게 항복 의사를 밝히고 항복의 의미에서 본인 나라의 지도를 갖다 바치는 의식 도중에 커다란 칼을 뽑아 들었지만 옷자락만 자르며 실패하게 되고 진시황은 재빠르게 칼을 뽑아 들며 그에게 맞섭니다 역부족이었던 단은 최후의 수단으로 비수를 날리게 되지만 비수 마저 피하게 됩니다 이를 본 단은 재빠르게 도망을 갔답니다!! 그의 적수가 안됐다는 것이었죠!!! 이쯤에서 되면 단이라는 사람이 개ㅈ밥인거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단이라는 사람도 어린 시절부터 검을 갖고 놀았던 사람입니다.... 그만큼 그도 검술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진시황에게 적수가 못 되었죠 이에 극대노한 진시황은 연나라를 패망시키게 되었고 그 나라를 멸망 시켰답니다!!!! 그가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웠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ㅎㄷㄷ;; 한마디로 자객 조차 그의 적수가 못됩니다 그런 그에게도!!! 한가지 약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죽기를 싫었다는 사실!!!!!! 그가 오래 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수은 때문인데요!!! 이 수은이 그를 재빠르게 저 세상으로 보냈답니다!! 진시황은 죽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며 신하들에게 불로초라는 불로불사 약초를 캐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는 "불로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말라" 라는 명령을 내렸는데요!! 이 뜻은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오면 죽이겠다는 뜻이죠!! 준나게 강한 황제에 대들기에는 너무나도 겁에 질렸고 반드시 이를 찾아야만 했답니다!! 그래서 불로초를 찾는 임무를 맡은 한 신하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불로초를 캐기에는 불가능했고 죽기 싫어했던 그는 기상한 기발로 황제를 속이게 됩니다!!! 바로!!! 수은인데요!!!! 그 시대에 수은을 생각해보면 신비로운 존재였답니다!!! 불로초를 찾는 임무를 맡은 신하는 죽기 싫어서 수은이라는 것을 떠올려 황제에게 바쳤는데 진시황은 이것을 보고 이게 자신을 영원히 살게 해줄 것이라 굳게 믿었답니다!!! 즉 신하는 "불로초 약초즙을 짜서 만들어 내었사옵이다" 라고 거짓말을 고한 것이죠!!! 그때는 수은이 몸에 해로운 것인지도 몰랐으니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진시황은 조금씩 조금씩 수은 중독에 시달려 몸이 쇠퇴해져 갔죠!!! 자신이 수은 중독에 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도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쇠약해져 가면서 죽음을 인지했는데 이때 그는 신하들에게 자신의 병사들을 똑같이 만들고 거대한 무덤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시황릉이였답니다!!!! 병사 하나 하나 다른 모습으로 빚었으며 색도 입혔다고 합니다!!!! 결국 진시황은 수은 중독에 시달리다가 B.C 210년에 사망하게 됩니다!!! 위 사진이 바로 진시황이 묻혀져 있는 무덤인데요!!! 얼마나 큰지 실감이 될겁니다!! 그리고 지금 발굴된 진시황릉은 코딱지 부분만큼 발굴이 안되었다는 사실!!!!!! 한마디로 진짜 진시황이 있는 곳은 발굴을 못하고 있죠!!! 왜 지금까지 진시황릉을 발굴하지 못하느냐??? 첫 번째 이유는 진시황릉이 묻혔던 무덤에는 엄청난 양의 수은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지하에) 한마디로 그의 무덤엔 수은으로 가득하다는 것이죠!!! 사마천 사기에 등장하는 진시황릉 지하궁전 모습을 본따 만든것인데요!!! 실제로 진시황이 묻혀있던 지하궁전은 자신이 살았던 궁전처럼 지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함정들과 강은 수은으로 되어있으며 수시로 수은이 흘러내린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한마디로 지하궁전 자체가 수은때문에 수시로 반짝반짝 빛난다는 거에용!!! 그래서 지금 진시황릉을 발굴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첫째로 기술이고 수은을 막아줄 방호복의 문제입니다!!! 자칫 잘못 발굴했다간 그 지역이 수은으로 범벅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B.C 시대에 이런걸 만들었다는 자체가 하이테크입니다... 지금까지도 발굴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여기서!!!! 무덤 설계자와 무덤 감독자 무덤 건설자들도 마찬가지로 진시황과 함께 생매장을 당했다는 것...!!! 즉 진시황은 죽기 전에 "내가 죽으면 내 밑의 신하들과 군사들을 함께 묻혀라"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시황을 묻혀주러 갔던 사람들과 그 무덤 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다 그 안에 갇혀 수은 중독으로 같이 사망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무덤을 만들었던 사람이 자신의 무덤에 갇혀 죽은 꼴이죠.... 자!!! 이렇게 보면 엄청난 폭군인걸 이제 아시겠죠?! 진시황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았으니 이제 전 20000~~~~~~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