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gu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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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탄압의 역사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shingu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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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간곳이 독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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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에서 시작 된 번영.jpg
아름다운 섬, 하와이 지금의 하와이는 미국의 50번 째이자 마지막 주이지만 하와이가 처음부터 미국땅이었던 건 아니야 때는 1810년 여러 부족 국가가 존재하던 하와이 제도를 카메하메하 1세가 통일하면서 하와이 왕국이 시작됐어 카메하메하 1세 하와이는 비옥한 토양 덕에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지 특히 사탕수수 농장이 성행했음 그런데 농업에 있어 또 중요한 게 뭘까? 맞아 인력이야 맨 파워 빼앰ㅁㅁㅁㅁ 이 거대하고, 손 많이 가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작물을 재배하기에는 하와이 원주민만으로 부족했음 그래서 농장주들은 다른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왔어 중국인, 폴리네시아인, 일본인, 포르투갈인, 필리핀인, 푸에르토르코인 그리고 한국인까지..!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 음~ 백인 빼고 다 모인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인가~ 좃가튼걸~ 하와이로 이주 한 인종 중에 백인도 있긴 했어 다만 노동자가 아니었을 뿐..ㅋ 하와이에 정착한 백인들은 농장주, 지주, 정치인, 법률가 등 하와이 지배층이었음 백인 놈들은 하와이에서 재배 한 작물을 열심히 열심히 미국으로 실어날랐즤 암튼 이렇게 해서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하와이는 원주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게 됐음 19세기 후반이 되자 사탕수수 재배는 더욱 더 성행했어 여기에 더불어 파인애플 산업도 시작됐음 그런데 1887년 당시 국왕이었던 칼라카우아가 미국으로부터 대외 무역 특권을 보장받는 대신 진주만 독점 권리를 미국에 줘버리는 일이 발생 함;;;;; 활발한 농업으로 하와이 국가 전체 수익은 올라갔지만 농장 근로자들, 그러니까 일반 주민들의 소득은 그닥 크지 않았음 코쟁이 새끼들(특히 미국인) 배만 불려준 꼴인데 심지어 땅까지 줘버렸다?????????? 근데 미국이 진주만에 뭐 했게요?????? 미 해군 기지 건설 했거든요 십빨!!!!!! 미칑거아님니까?!!?!?!? 국왕이랑 미국 너네 당장 나와 카누에 타 봐 이자식드라 암튼 이렇게 미국은 스물스물 하와이 왕국을 잡아먹어가고 있었음 그러던 1891년 국왕 칼라카우아가 사망하고 여동생인 릴리우오칼라니가 새 국왕이 됐어 릴리우오칼라니는 일찍이 신문물을 배운 덕에 하와이어와 영어 모두 능통했고, 작곡도 할 줄 알았던 영민한 사람이었대 역시,,, 난세에 영웅이 나는 건 만국공통인 것인가,,!!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 내 미국인들을 그대로 뒀다간 나라가 멸망할 거라 생각했음 완죤 즤니어스 국왕 전하 혜안 오져따리 그래서 헌법개정을 통해 이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일반 시민들의 투표권은 회복시키려고 했음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하와이 내 정치권에는 백인들이 상당 수 포진해있었고,,, 결국 각료회의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헌법개정 계획이 엎어졌음ㅠ 그러나 릴리우오칼라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긔 릴리우오칼라니는 미국인이 소유한 농장을 국유화 하는 것으로 맞대응 함ㅋㅋㅋㅋㅋㅋㅋㅋ 외세에 맞서기 위해 여러모로 왕권 강화에 부던히 노력한 왕임 그러나 헌법 개정을 시도한 일로 하와이 내 백인놈들이 크게 위기감을 느꼈는지, 미국인+영국인+독일인 13명으로 이루어진 혁명세력이 미 해병대를 동원해 릴리우오칼라니를 폐위함; 이 개샹놈새키들이ㅅㅂㅅㅂㅅㅂㅅㅂ 그렇게 릴리우오칼라니를 끝으로 하와이 군주정이 폐지됐어 1893년 릴리우오칼라니가 왕위에 오른지 고작 2년만의 일이었음..🥲 왕정을 전복시킨 코쟁이들은 미국에 하와이 합병을 요구했어 남의 나라 가지고 존나 가지가지...ㅋ 당시 미대통령이었던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릴리우오칼라니 폐위로 인해 대다수의 하와이인들의 여론이 좋지 않은 걸 알고, 릴리우오칼라니를 다시 왕으로 복권 시키라고 했음 미국 제 22번 째, 24번 째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 근데 얘네가 대통령 말 쌩까고 지들끼리 걍 하와이 '공화국'을 선포해벌인 것이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와이 공화국의 설립자들 와중에 전부 남자새끼들만 있는 거 존나 짜증나고요ㅋㅋㅋㅋㅋㅋㅋ 하와이 공화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대통령에는 샌포드 돌이 선출됐어 (마지막인 이유는 하와이가 얼마 안 가서 미국 주로 편입 됨) 샌포드 돌 샌포드 돌은 하와이로 이주한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하와이에서 법률가와 정치가로 활동했고, 하와이 최고재판소 준판사까지 역임함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주도한 사람이기도 하지 롸ㅏㅏㅏㅏㅏㅏ 한마디로 원래도 하와이에서 존나 잘 먹고 잘 살던 놈이었단 말임 근데 이게 아주 욕심만 많아서는ㅡㅡ 아니 근데 얘네가 하와이 왕국 끝장낸 걸 혁명이라고 하던데 도대체 왜 혁명이라고 하는지 모를... 이정도면 걍 쿠데타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놓고 지들은 공화정이랍시고 의회에서 대통령 선출한 거 제법 욱겨ㅋ 암튼,,샌포드 돌은 원주민들이 소유한 토지를 백인에게 줜나 뿌렸음 개쉽색히 그 수혜자에는 샌포드 돌의 사촌 제임스 돌도 있었음; 지들끼리 다 해먹네 아주 샌포드 돌의 사촌 제임스 돌 제임스는 거대한 파인애플 농장을 받았는데, 농장은 기대 이상으로 매우 번창했어 덕분에 하와이 곳곳에 통조림 공장과 포장 공장을 짓고, 미국에서 전국적인 광고 캠페인도 하고, 첨단 기계를 도입하는 등 계속해서 상승세였음 당시 파인애플 생산량의 75%가 제임스네 농장에서 나왔다니 말 다 했지 뭐 걍 시장독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와 맞물리면서 파인애플 수요가 감소하는 등 실적 부진으로 제임스는 경영진에서 물러났음 그 후 이러케 저러케 운영 되던 제임스의 파인애플 회사는 1960년대에 캐슬&쿡이 전부 인수함 이들은 1991년에 회사 이름을 바꿨는데 그 회사 이름이 바로 "Dole Food Company, Inc" 돌 푸드임(따란 하와이 오아후 섬의 돌 농장 그러나 돌 푸드는 2000년대에 들어서 계속되는 실적 부진으로 인해 지난 2012년 과일 통조림/음료 사업과 아시아 청과물 생산/판매 사업 2개 부문을 일본 이토추 상사에 매각했음 이후 돌 푸드 본사는 미국 등 다른 지역의 청과 사업만 담당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청과 사업은 전부 일본이 전담한다고 해 한마디로 이사님들이 한국에서 본 돌사 제품은 일본 자본으로 들여오는 거임 (농장은 해외에 있지만) 시작과 끝이 정말 비호감인..읍읍 (여담) 1993년 미국 의회는 하와이 왕국 전복에 대한 사과 결의안을 발표함 비록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긴 한데 이것 조차 안 하는 새끼들도 있으니 문제ㅋ 예를 들면 좆본이라든가,,좆본이라든가,, 하와이 왕국 전복 사과 결의안에 서명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출처
입헌군주국에서 여성이 차기 후계자인 나라들.jpg
참고로 연령대를 고려해서 즉위가 가까운 순서대로 정리해봤음. < 왕세녀 기준 > 1.(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 나이 : 1977년 7월 14일생 (46세)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의 장녀로 그녀가 유넌기 시절에는 왕실이 남성왕족의 왕위만 인정해서 여왕이 될수 없었으나 법이 개정되면서 성별 차별없이 장자 우선순위가 됨 그래서 왕세녀가 되었음. 한때 부모의 아들편애로 인해 거식증도 앓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데 결혼 후 극복하고 남편과 함께 국민들로부터 큰 호감도를 누리며 왕세녀로 생활 중 부왕 칼 구스타프 16세가 77세 고령이지만 스웨덴 왕실이 장수집안인터라 즉위까지 15~20년정도 남은것으로 추정됨. 빅토리아 공주의 증조부는 92세, 고조부는 93세까지 산터라 아마 공주 역시 왕위에 오른 시기에는 나이가 환갑 남짓해야 즉위할듯 빅토리아 왕세녀는 슬하에 1남 1녀 자녀들이 있는데 큰 자녀가 공주이기에 왕세손(녀) 즉 차차기 국왕도 스웨덴은 여왕 즉위가 확정이나 다름없음. 2.(네덜란드) 카타리나 아말리아 왕세녀 나이 : 2003년 12월 7일생 (20세) 네덜란드 국왕 빌럼 알렉산더의 장녀로 네덜란드의 차기 국왕이 사실상 확정이며 생전 양위받는 네덜란드 왕실의 전통으로 인해 명단 속 왕위계승자들중 가장 먼저 즉위할수도 있음. 네덜란드는 여왕의 나라로도 유명한데 카타리나의 외할머니 베아트릭스, 외외증조할머니 율리아나, 외외외고조할머니 빌헬미나까지 여왕이 재임한 기간이 100년이 넘었다고 함. 참고로 빌럼 알렉산더 국왕은 슬하에 딸만 3명인터라 공주들이 차기 왕위계승서열 1~3위를 차지하고 있음 3.(벨기에) 엘리자베트 왕세녀 나이 : 2001년 10월 25일생 (22세) 벨기에 국왕 필리프의 장녀로 즉위 시 벨기에 최초의 여왕이 되는 인물, 벨기에도 과거에는 아들만이 왕위에 오를수 있었는데 법이 개정되서 공주도 즉위가 가능해짐 벨기에도 네덜란드처럼 선왕(왕세녀의 조부)이 생전에 양위한터라 공주도 어쩌면 20~25년뒤 비교적 이르게 왕좌에 오를 가능성이 있음. 4.(스페인) 레오노르 왕세녀 나이 : 2005년 10월 31일생 (18세) 스페인 국왕 펠리페의 장녀로 스페인 왕위계승서열 1위 왕세녀로 알려짐. 스페인도 선왕인 왕세녀의 조부가 생전에 아들에게 양위함 이처럼 왕세녀의 아버지 펠리페가 생전에 레오노르 왕세녀에게 양위할 가능성이 꽤 있음.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왕위에 오를수도 있음. < 왕세손녀 기준 > 1.(스웨덴) 에스텔 왕세손녀 나이 : 2012년 2월 23일생 (11세) 스웨덴 왕세녀 빅토리아의 딸로 칼 구스타프 16세의 장손녀이자 왕세손녀 즉 왕위계승서열 2위로 차차기 국왕이 유력함 그런데 왕실이 워낙 장수집안인지라 어쩌면 에스텔도 환갑이 넘어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음. 2.(노르웨이) 잉그리드 왕세손녀 나이 : 2004년 1월 21일생 (19세) 노르웨이 호콘 왕세자의 장녀로 현 왕세손녀이자 계승서열 2위, 할아버지 하랄 5세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왕위를 지키고 있음. 노르웨이도 생전 양위사례가 거의 없어서 즉위하려면 25~30년 이후에야 가능할듯함. 즉위 시 노르웨이 두번째 여성군주가 됨. 오 새삼 군주제가 이렇게 많이 남았다는게 신기하네 ㄷㄷ
사라진 1900여벌의 드레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jpg
2016년 어느 평화로운 오후 인터넷에 한 커다란 천의 사진이 올라왔슴둥 사진은 이 천을 설명하기를, 영국 한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제단 천으로 쓰이다가 1909년부터는 교회 북쪽 벽에 전시되어 무려 106년 동안이나 걸려있다는 천이었음 그리고 이 천의 사진을 점심 먹다 우연히 보게 된 엘레리 린(Eleri Lynn) 엘레리는 영국 복식사를 연구하던 왕실 예술품 박물관 큐레이터임ㅋㅋㅋㅋㅋㅋㅋ 사진을 본 엘레리는 심장이 반응했음 저겨저겨 그 천 제가 직접 가서 볼 수 있을까여? 보게 해주세여ㅠㅠㅠ 제발여ㅠㅠㅠ 그렇게 엘레리가 도착한 곳은 영국 잉글랜드 노폭에 위치한 작은 마을 백턴(Bacton) 엘레리는 곧장 천을 소장하고 있다는 교회로 향했음 천은 정말로 액자에 보관 된 채로 교회 벽에 걸려있었음 웅-장 WOW!!!!!헠헠 가까이 가서 봐도 대나여? 제발여ㅠㅠㅠㅠㅠ 엘레리는 가까이 다가가 천을 자세히 보자마자 이 천은 베리 베리 스페샬한 물건이 틀림었다고 생각했음 왜냐면 천의 소재가 무려 실크와 은으로 짜여있었걸랑 영국에서는 오직 왕족과 가장 높은 수준의 귀족만이 옷감에 금과 은을 넣을 수 있었다고 함 무슨 웅앵웅 법이 있었댜;; 그렇다면 역대 영국 역사에 존재했던 수많은 왕족들과 고위 귀족들 중 누가 이 천의 주인이었을까? 실마리는 생각보다 쉽게 풀렸음 놀랍게도 천이 걸려있던 교회가 블랑쉬 패리의 기념비가 있던 곳이었던 것! (사진상의 왼쪽 여자 조각이 블랑쉬 패리) 블랑쉬 패리는 25~26세 무렵 자신의 이모를 따라 영국 왕실에 들어와 평생을 영국 왕실과 자신의 군주에게 헌신했던 왕 전속 하인이었삼 (평민X, 왕 전담 하인은 귀족 신분이어야 가능) 블랑쉬 패리가 자신이 섬기게 될 주인과 처음 만난 건 주인이 아직 핵꼬맹쓰일 때 였음 그래서 블랑쉬 패리는 쥔님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능ㅋㅋㅋ 하지만 주인에게는 왕위 계승권이 없었어 그럼에도 블랑쉬 패리는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음 심지어 자신의 주인이 억울하게 런던 탑에 수감되어 있을 때 조차도 말이지 시간이 흘러 현 국왕이 사망하고 다음 왕위를 누가 이을 것인가가 문제가 됨 그리고 이 때 블랑쉬 패리의 주인은 극적으로 왕위 계승권을 얻게 됨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때 가졌던 왕위 계승권을 강제로 박탈당했다가 이제야 되찾은 것 그렇게 1558년 블랑쉬 패리의 주인이 즉위했음 영국의 영원한 영광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블랑쉬 패리는 왕실 하인의 최고 명예라 할 수 있는 왕의 개인실(또는 침실)을 담당하는 시녀장이 됨 그 말은 즉 블랑쉬 패리는 엘리자베스 1세가 매우 아끼던 하인이었음 엘리자베스 1세의 가장 충실한 하인이었던 블랑쉬 패리가 죽자 엘리자베스 1세는 블랑쉬 패리에게 남작 부인이라는 작위를 내리고 모든 장례비를 지불했다고 해 ~다시 돌아와서!~ 천을 자세히 살펴 보던 엘레리는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을 발견함 이 천에는 바로바로 패턴 커팅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그 말은 즉 이 천이 원래는 ‘드레스’였다는 말씀!! 하지만 블랑쉬 패리는 귀족 가문의 친척집 태생이긴 하나 그다지 고위 귀족 가문은 아니었음 그렇다면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들에게만 허용 된다던 은이 들어간 옷감으로 만들어진 드레스를 하급 귀족이었던 블랑쉬 패리가 도대체 어떻게 갖고 있는 걸까? 혹시 이 천의 원래 주인은 엘리자베스 1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영국 복식사를 연구하던 엘레리는 마침 또 하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필 이 때!!! 튜더 시대 복식사를 연구하던 중이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천이 자기 좀 조사 해 달라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수준) 한창 튜더 시대 복식에 열정을 불사지르던 엘레리는  천에 은이 사용 되었다는 점과 천에 수놓아진 화려하고 정교한 자수들을 보고 이 천이 엘리자베스 1세의 드레스였을 거라고 확신했음 잠시만 근데 내가 이거를 어디서 봤더라.....? 분명 본 것 같은데....? 아!!!!!!! 그 초상화!!!!!!!! 엘레리는 수많은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중 어떤 한 작품을 떠올림 그 작품은 바로 영국 솔즈베리 후작의 컬렉션 중 하나인 'The Rainbow Portrait' 어때 다덜 찾았슈? 초상화 속 엘리자베스 1세는 백턴 교회에서 발견 된 천과 매우 유사한 가운을 입고 있다는 거슬,,!! 초상화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고, 왕실 예술품을 다루는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이 천이 엘리자베스 1세가 소유했었다는 1900여벌의 드레스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있는(발견 된) 드레스 조각이라고 결론지었음 엘리자베스 1세의 드레스 일부가 어떻게 하인이었던 블랑쉬 패리의 무덤이 있는 곳에  있던 거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1. 왕이 종종 자신이 총애하는 하인에게 갖가지 좋은 선물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그 선물들 중에 이 드레스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 2. 자신의 평생을 제게 바친 시녀장을 기리기 위해 엘리자베스 1세가 블랑쉬 패리가 묻힌 교회로 드레스를 보냈다는 의견이 있음 암턴 어쨌든 아주 중요한 물건이 발견되었으니 좀 더 세밀한 작업에 들어가보실까유? 보존팀은 아주 조심조심 천의 묵은 때를 벗겨냄 천 상할까봐 아주 부드러운 메컵용 스펀지로 벗겨냈다고 함ㅋㅋㅋㅋ 묵은 때가 벗겨지자 드러난 것은 저세상 정교함을 보여주는 화려한 자수들이었음 함 보실까여? 자수 퀄 도라방스 보존상태 와우내 이거시 여왕 드레스의 위엄인 거신가! 하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구ㅋ 보존팀은 자수가 놓아진 천 뒷부분에 이렇게 또 다른 천이 덧대어져 있는 걸 발견했음 이들은 뒤의 천을 뜯어내는데.....!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뒤에 붙어있던 천을 걷어내자 서서히 보이는 속살 놀랍게도 안 쪽엔 앞면과 같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한 자수가 놓아져있었음 마침내 자수가 완전히 드러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넘나 놀라벌임 눈에 보이는 건 경이로움 그 자체였음 자수가 정교하고 화려한 건 둘째 치고, 안 쪽 자수에 쓰인 색들이 원색, 형광색, 인디고, 붉은 색 등 아주 매니 컬러풀했는데 이 모든 색상들이 아주 펄풱하게 보존되어있었다는 사실!!! 언빌리버블~!~!~!!! 이 쯤에서 다시 보는 앞 쪽 자수.JPEG 비교하니까 느낌 확 오쥬 조명 차이가 절대 아니아니아니 아니라능 어떻게 이렇게 보존이 잘 될 수 있었냑오? 이 천이 1909년 교회 벽에 걸리기 전 까지 무려 400년 동안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결과였음 (벽에 걸린 후에도 교회 자체가 어두웠던 탓도 있음)  엘리자베스 1세가 소유했다는 1900 여벌의 드레스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있는 드레스 조각으로 평가 받는 이 엄청난 천의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9.10.12.-2020.02.23. 동안 영국 햄튼 코트 궁에서 <The Lost Dress of Elizabeth I>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기도 했답니당 유일하다니까 괜히 실물 보고 싶기도 하구 그릏냄 언젠가 실물을 볼 수 있을 날을 기대하며 이만 빠이룽~!~! 출처 보존상태 와우..! 이정도면 진짜 자기 발견해달라고 드레스가 적임자를 부른 수준 아닐까요? ㅋㅋㅋㅋ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다이아몬드.jpg
16세기초 무굴제국을 건국한 "바부르"는 187캐럿의 거대한 다이아몬드에 대한 기록을 남김. 그의 기록에 따르면 이 거대 다이아몬드는 14세기초 어떤 왕이 한 인도 남부의 왕국을 침략했을때 얻은 것이라고. 이 다이아몬드는 여러 왕국을 거쳐 바부르가 전리품으로 들고왔음. 참고로 바부르는 왕위에 오른지 4년만에 사망함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1739년, 페르시아 황제 나디르가 침략했고 다이아몬드는 그때 약탈되었음. 나디르는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를 보고는 감탄하여 "코이누르" 즉 페르시아ㅡ힌디어로 "빛의 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줌(이후 나디르는 부하에게 살해당함) 이후에도 거대하고 유명한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는 몇백년간 여러 왕조에 옮겨다녔음. 페르시아 다음엔 아프가니스탄 두라니 왕국으로 그다음엔 시크 왕국으로.... 그리고 시크왕국의 펀자브 지방이 영국령으로 편입되던 1849년. 「The gem called the Koh-i-Noor, which was taken from Shah Sooja-ool-moolk by Maharajah Ranjeet Singh, shall be surrendered by the Maharajah of Lahore to the Queen of England 」조약 中 다이아몬드는 빅토리아 영국왕 손에 떨어졌음 (영국에 넘어가기 전 마지막 모습을 그린 것) 그리고 이 돌의 못생긴 모양(영국사람들이 보고 실망했다고)은 1852년 다듬어졌는데 이때 코이누르를 굉장히 깍아내서 100캐럿 정도가 되었다고 함 (이후 빅토리아 왕이 브로치로 착용한 모습) 이 코이누르는 브로치로 사용되다가 1901년에 왕관에 올려졌고(사진은 에드워드 7세의 왕비. 1902) 1937년 영국왕 왕관에 올려졌음. 당연히 이 다이아몬드는 소유권 문제에 시달리고있는데,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영국) 2010년 인도 방문 중이던 영국 총리가 ""전례가 되면 대영박물관은 순식간에 텅 빌 것"" 이라고 머리 텅빈 소리 한것도 바로 이 다이아몬드 소유권 논쟁 때 나온 말임(떼잉....제국주의 놈들) 참고로 코이누르는 이제까지 "남자들"의 손에서 다사다난했기에 영국 왕조에서는 "남자들"이 착용하면 불운을 가져온다!! 하는 소문이 돌았고 따라서 지금까지 영국 왕조 여자들만 착용하고있다고함 출처 영국.. 대애단하군요 ㅎ..
이순신 장군님의 먹방
한산도 대첩을 다룬 영화 한산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장면이 촬영되었는데 상영버전에서는 편집됐지만 제작사 측에서 추후 유튜브에 공개해 화제가 되었다 촬영된 장면은 밥상을 대충 차린 것이 아니라 예전에 이순신 장군 밥상을 복원한 자료에서 참고해와서 이순신 장군이 실제 즐기시던 음식을 고증한 것이 특징이다 간소한 식탁이지만 번호순으로 음식을 설명해본다 1. 장국밥 한국인이 즐겨먹는 국밥의 조선시대 버전 소고기를 맑게 끓인 육수에 간장으로 간을 해서 만든 장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 음식으로 고명으로는 육수를 낸 고기와 무가 기본이고 더 푸짐하게는 각종 나물무침, 산적 등을 올리기도 했다 짤에서는 간소한 시래기국 정도로 표현되었다 2. 설하멱, 설하멱적 소고기 등심을 불에 굽다가 얼음물이나 눈에 식혔다가 다시 굽기를 세번 반복해서 만드는 산적 요리 참기름과 간장 등으로 갖은 양념을 해서 고기를 연하고 맛이 풍부하게 만들어 조리한다 3. 과동침채 겨울을 나는(과동) 김치(침채) 즉 동치미를 말한다 4. 어육각색간랍 생선살과 조개나 굴 등의 어패류, 소의 각종 내장을 얇게 저며 계란물을 입혀 구워낸 모듬전 요리 육지와 바다의 만남 5. 고사리나물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종격투기카페 펌
조선시대 산후우울증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비
1473년, 성종 재위기 당시 중전 한씨는 조선 최대 권세를 누리던 한명회의 딸이었음 왕위 계승 1순위가 아니었음에도 남편 성종이 왕이 된 까닭이 한명회의 사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 될 만큼.. 하지만 혼인 4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고 이에 후궁을 들이게 됨 후궁으로 간택된 것은 윤씨 규수인데, 보통 왕비가 자식이 없어 후사를 보기 위해 들이는 후궁의 경우 명문가에서 뽑는 경우가 많음에도 한미한 가문의 딸이었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려운 집안 형편에 직접 베를 짜 어머니를 봉양하던 효성 깊기로 유명한 규수 ㅇㅇ.. 아마 아들을 낳더라도 중전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게 하려 한 게 아닌가 추측.. 다행히 숙의 윤씨는 금방 성종의 첫아이를 회임함 그런데 회임 중에 중전 한씨가 병에 걸려 죽고 윤씨는 곧 첫아들을 낳음 하지만 이 아이는 채 반년이 되지 않아 죽고 말았음 중전의 국상 중이고 당시 영아가 죽는 것은 흔한 일에 장례도 잘 치르지 않았으므로 이 왕자의 죽음도 비슷하게 치러졌음 윤씨는 첫 아이가 죽고 그 다음해에 두번째 임신을 함 그리고 임신 중에 중전으로 책봉됨(아마 앞서 아들을 낳았으므로 또 아들을 낳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듯) 당시 기록을 보면 윤씨는 너무나도 모범적인 중전감이었음 사치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남편의 사랑도 받고... 권문세가 출신에(무려 명나라 황실과 사돈간) 세조한테 '폭빈'이라고 까지 불리던 시어머니 인수대비가 아낄 정도였음 중전이 된 윤씨는 아들을 낳게 되고, 그게 바로 훗날의 연산군임 적자로 태어난 윤씨의 아들은 바로 원자에 봉해짐 그런데 원자가 태어난 지 4개월 이후부터 이전과 다른 기록들이 보이기 시작함 후궁들을 지나치게 투기하기 시작해서 저주를 거는 방법의 책을 읽고 비상(독약)을 몰래 중궁전에 숨겨둠 이건 진짜 큰일이었기에(여차하면 왕이 암살 당할 수도 있으니까..) 조정에 논의가 되었고, 원자를 낳은지 6개월도 안되었던 상황에 윤씨는 1차로 중전 자리에서 쫓겨남 후궁인 빈의 첩지를 받고 별궁으로 보내짐 다행히 그 다음 해에 성종과 윤씨의 사이는 회복되어 윤씨는 자연스럽게 중전 자리에 복귀함 그리고 그 해 말 윤씨는 세번째 출산을 함(이 아이 또한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함) 이 이후 갑자기 다시 윤씨는 문제가 되는 행동들을 시작함 후궁과 침수 중인 왕의 방에 불쑥 쳐들어가거나, 늦잠을 자거나(왕과 함께 침수든 후에는 꼭 왕보다 먼저 일어나야 했는데 이걸 못했다고함 ㅋㅎ....) 왕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거나..(용렬한 무리라고 했다는데 실록은 원래 점잖게 돌려 쓰기도 하니 걍찌질이새끼이정도 했다고 생각하면 될 듯) 대비가 혼내면 째려보거나.. 참고로 보통 임금 얼굴에 손톱 자국을 낸 게 라스트팡처럼 사극에 자주 나오는데 이건 실록에 나오는 기록은 아님 결국 윤씨는 폐위되고, 우리가 아는대로 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왕이 되어서 어머니의 한을 풀겠다며 미친 짓을 하게 됨.. 성종 조차도 실록에서 중전이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라고 할 만큼 윤씨는 중전이 된 이후 갑작스레 이상한 행동을 보임 무기력하거나, 기분 조절을 못하거나(위에는 분노를 표출한 것만 적었는데 갑자 기 기분이 막 좋거나 했던 기록도 있음) 하는 등의 행동들.. 그런데 이건 중전이 된 이후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은 뒤기도 함 <폐비 윤씨와 양극성 장애>라는 논문을 보면 윤씨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양극성 장애와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게 윤씨의 기질일 수도 있지만 산후에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후우울증(산후 기분장애)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음 참고로 연산군도 양극성 장애로 보이는 징후들이 실록에 많이 나타난다고 함...이 경우 윤씨의 양극성 장애는 가족력일 수도 있음 그럼 20000 출처 해석이 흥미롭군요 !!
러시아 황제의 덕질+댕청함이 만나 독일 역사의 흐름이 바뀐 이야기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에겐 후계자가 없었음. 그녀는 지금으로 따지면 독일의 어떤 나라로 시집 간 언니의 외아들인 카를을 후계자로 삼았음. 그리고 14세에 카를은 러시아로 건너 와 정식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는데 그때 부터 러시아 이름인 표트르로 불리기 시작함ㅇㅇ 그리고 얼마 뒤 똑같이 독일의 작은 공국 출신인 조피 프리데리케와 결혼 함. 표트르는 독일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러시아 황실의 후계자였지만 독일을 더 좋아했음. 특히 프로이센의 덕후였다고 전해짐. 그냥 평범한 독일 덕후였으면 노상관인데 표트르는 독일을 악개 수준으로 좋아했음 어떤 기록에 따르면 독일 악개짓이 너무 지나치다 못해 장차 다스려야 할 나라인 러시아를 경멸했다고까지 전해짐. 러시아의 황제가 되어야 하는 몸인데 러시아어 배우기도 게을리하고 러시아 국교인 러시아 정교도 안 믿었다고 함. 오히려 일가 친척중에서도 러시아인은 찾아 볼 수 없던 아내 조피가 이름을 예카테리나로 개명하고 러시아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러시아인이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 사실 이 외에도 표트르에 대한 기록중엔 좋은 기록이라곤 하나도 없음. 1911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기록을 보면 - 생긴것도 몰품없고 존못 - 천박한 행동으로 남에게 불쾌감을 줌 - 황태자라고 존나 나댐 - 남자다운 취미랍시고 하는게 쓰잘데기 없는 군대문화 덕질임ㅋㅋ - 러시아를 개싫어함. 이라고 적혀있음. 내가 표트르였으면 사실 여부를 떠나서 브리태니커 고소함. 하여튼 절대 왕이 될 사람이 갖추어선 안 되는 요소만 잔뜩 가지고 태어난 것 같은 표트르가 드디어 즉위를 하게 됐음. 이제 이름도 표트르 3세가 됨. 그리고 즉위하자마자 죽은 엘리자베타 여제가 무덤에서 뛰쳐 나올 짓을 저지르는데 표트르 3세가 벌인 병크를 설명하기 위한 작업을 하겠음. 표트르 3세가 황제가 되기 전, 그룹 히스토리의 유닛 유럽사에는 표트르의 최애 프로이센이라는 멤버가 있었음. 원래 프로이센은 유닛인 유럽사에서도 쩌리 멤버에 속하고 있었는데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하면서 슬슬 영향력이 커지더니 센터를 넘볼만한 멤버가 되었음. 그 때 사건이 일어나는데 유럽사에서 센터급의 위치를 자랑하던 오스트리아에 드물게도 여성 멤버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즉위함. 당시 유닛인 유럽사, 아니 아예 히스토리 자체가 남성 멤버 위주였음ㅇㅇ 여성 멤버는 거의 없었달지. 결국 주변 다른 멤버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마리아 테레지아를 멤버로 들일 수 없다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음. 이거 새타 아니야 -- 우리 테레지아 언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ㅋ 혹시 쉴드 치려면 딴데 가서 쳐--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를 멤버로 들일 수 없다는 세력들과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남. 이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임. 이때 예능같은거보면 분위기 쎄했잖아 기억나는 여시들 있을거야. 마리아 테레지아 언니 왕따설도 돌고... 마덕들은 그때만 생각하면 밤에도 잠을 설칠듯. 하여튼 표트르의 최애 프로이센도 이때 참전해서 슐레지엔 지역을 한 몫 챙겨갔음. 이때 프로이센맘들 쉴드 낭낭했는데ㅋ 마리아 언니가 처신 잘 했으면 슐레지엔 뺏겼겠냐고ㅋ 그래서 우리 마리아 언니는 다시 슐레지엔을 되찾아 오려고 센터 오브 센터 프랑스 및 다른 나라들과 손을 잡고 프로이센을 공격함 이게 우리 마리아 언니라능ㅋㅋ 꿀리지 않아 하지만 상대는 한창 센터 멤버까지 넘보는 프로이센. 프로이센은 다른 센터 멤버인 영국과 손을 잡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맹과 싸웠음. 그리고 전투 초반엔 프로이센이 승승장구했음. 하지만 뒤에가서는 차츰 수세에 몰리고 극히 불리해짐ㅇㅇ 이 정도만 알면 됨. 전쟁이 너무 복잡하게 흘러가서 사실 나도 제대로 이해 못 함. 표트르가 즉위하기 전인 엘리자베타 여제때 러시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맹이었음. 같은 여성 멤버끼리 잘 통하는게 있었나봄.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즉위한 표트르는 유명한 프로이센 악개... 군복까지 프로이센을 따라 할 정도의 악개였음. 벌써 분위기 심상치 않지?? 내가 이때만 생각하면 갑자기 화가 남 하여튼 악개 표트르는 갑자기 7년전쟁에서 빠져버림. 참나 진짜 어이없지 않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웨덴 이렇게 넷이서 편먹고 프로이센 줘패고 있었는데 갑자기 러시아가 빠지면 뭐가 돼? 3스 1러라고 부르면서 꽁냥꽁냥거릴땐 언제고ㅋ 프로이센 진짜 몇대만 더 줘패면 끝나는 거였는데ㅎ 프리드리히 2세는 여차하면 자살하려고 독약까지 들고 다녔다더라 이거 가지고 프로이센맘들은 사람이 죽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이거 가지고 깐다고 영고프 영고프 이러던데 프로이센이 먼저 우리 언니 여자라고 선빵친거 기억 안 나나봐? 피코 오진다 진짜 그리고 독약 이거 새타 아니야-- 프로이센맘들이 먼저 떠들고 다닌거임. 표트르는 악개답게 전쟁을 끝내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음. 전쟁 배상금이나 영토도 요구하지 않았음. 프리드리히 2세는 좋다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종결시킴ㅋ 러시아가 빠진 탓인지 스웨덴도 곧 빠졌다더라 스웨덴=배신자ㅇㅇ 결국 우리 마리아 언니 슐레지엔 못 돌려받음ㅋ 그리고 프로이센은 이 전쟁으로 인해 센터에 한발짝 걸쳤음. 그리고 100여 년이 흐른 뒤 분열되어있던 독일을 통일하고 예명도 독일 제국으로 바꿨더라? 근데 그거 얼마 못 가고 1차대전 패배 잼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독일, 프로이센맘들도 쉴드 못 쳐주는 희대의 막장멤버 나치가 나옴ㅇㅇ 이게 다 표트르 탓입니다 이제 프로이센 악개였던 표트르가 어떻게 됐는지 찌고 마치겠음. 러시아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 악개질만 반복하며 러시아 전통 세력에 적만 만들던 표트르 3세는 결국 즉위한지 반년도 안 돼서 러시아 전통 귀족들과 친하던 아내 예카테리나에게 밀림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렇게 밀려난지 얼마 안 돼서 급사함. 아마 암살당한거겠지. 그렇게 즉위한 예카테리나는 유닛인 유럽사를 넘어 그룹 히스토리 자체에서도 엄청 유명한 예카테리나 2세가 됨. 출처 이래서 왕이 중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