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0she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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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가 일본의 전통?

애초에 이해가 안되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일본과 한국이 근대 이전 전쟁을 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쟁 = 국력 꼴아박는 총력전, 지면 나라 멸망하고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감
일본의 전쟁 = 대부분 내전, 무사 계급끼리 힘겨루기, 그냥 정치질 연장선

전쟁에 지면 바로 멸망위기에 몰리는 한국 특성상, 청야전술이나 의병을 이용한 지연전 등
당하는 입장에서 "전쟁 조까치 하네"가 튀어나오는 전술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나노리 같은 의례가 함께 발달했으며
심지어 임진왜란 중에서도 가문 사이에 정치질이 오고가는 등
한국과 차이를 보이는 전쟁 문화가 보이죠
반도와 섬이라는 지형 차이 때문에 이런 양상이 있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의례 중시하는 새끼들이 진주만은 왜?



그러니까 진주만은 그래놓고 이번에는 응?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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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내 말이 명예를 존나 따지는 원숭이들이 선전포고도 안하고 덤비냐고 얍쌉하게~~~
ㅋㅋ 진주만 뿐인가요.. 러일전쟁, 청일전쟁 근대 그 어느 전쟁에서도 섬숭이들은 선전포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근데 자기소개는 유럽도 했어요.경례?이 글자가 맞나?암튼 군대서 하는 그거 경례가 따져올라가면 기사도가 만연하던 중세에 기사들이 나와서 상대 기사랑 싸울때 바이져 열고 얼굴 보여주고 나 어디 누구다 하고 상대방꺼 듣고 나와 급이 맞으니 싸우자 한걸로 알거든요? 물론 일본처럼 상대치부를 까거나 암살 할때까지 그러지는 않은걸로 알지만...유렵은 그놈의 기사도 때문에 기사끼리의 대결에 아주 명예를 붙여서 급 안되면 안싸우고 그런게 좀 있어서...
음.. 싸우기전 소개는 삼국지등에서도 많이 나오긴 하는것 같기는 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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