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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3

광복절이네요.
대한독립만세!
외치고 시작합니다.

#36
1917년 전기 충전 자동차

#37
히로시마 원폭 진원지에서 1,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망한 3세 소년의 세발자전거, 1945

#38
1968년 경마장에서 영국 여왕과 남편

#39
부모와 함께 있는 2살짜리 엘비스 프레슬리, 1937

#40
1945년 5월 베를린 전투 중 베를린의 폐허를 걷는 여성

#41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사, 1934

#42
탈락된 에펠탑 디자인들

#43
1945년 12월 21일 주인이 죽은 날 조지 S. 패튼 장군의 애완견

#44
1983년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한 남자 메흐메트 아그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45
1910년, 미국에서는 아이를 소포로 부치려는 부모들이 많았다. 1913년에 도입됨
사진은 오하이오의 Jesse와 Mathilda의 8개월 된 아들 James. 제임스는 소포를 통해 할머니에게 보내졌다. 철도 티켓보다 저렴한 15c만 들이면 됐던 것. 보험은 50달러였다. 그리고 1920년부터 우체국은 더이상 어린이를 배달하지 않기로 했다.

#46
1948년 "어린이 4명 팝니다."
1948년 8월 5일 인디애나 주 발파라이소의 The Vidette-Messenger에 실린 사진. 임신한 엄마가 아이들을 팔려고 내놓은 후 부끄러워 사진 작가에게 얼굴을 숨길 때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며 약간 혼란스러워 보인다.

"시카고의 어느 집 마당에 있는 커다란 'For Sale' 표지판은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Ray Chalifoux 부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댈 곳이 없는 무직 석탄 트럭 운전사와 그의 아내는 네 자녀를 팔기로 결정합니다. Lucille Chalifoux 부인은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동안 카메라 위에서 고개를 돌립니다. 맨 위 계단에는 Lana(6세)와 Rae(5세)가 있습니다. 아래에는 Milton(4세)과 Sue Ellen(2세)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돈을 받았다고 비난했으며, 이는 이야기의 일부였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자녀를 파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년 만에 모든 어린이 사진과 당시 그녀가 안고 있던 아기가 다른 집에 팔렸습니다."


#47
Moko 얼굴 문신이 있는 미라 머리(Mokomokai)
미라를 만들기 위해 뇌와 눈을 제거하고 두개골의 모든 구멍을 아마 섬유와 잇몸으로 막았다. 그런 다음 머리를 오븐에서 찐 후 불에 태우고 며칠 동안 햇볕에 둔다. 그 후 머리는 상어 오일로 수분을 공급한다. - 마오리 문화 -


#48
런던의 '노커 업'(1929). 알람 시계가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막대기로 문과 창문을 두드려 클라이언트를 깨움으로써 돈을 벌었다.

#49
1900년대 뉴욕시. (컬러링)

#50
1936년에 만들어진 보조개 만드는 기계


그러니까 이건 광복절 특집 시리즈였습니다.
전쟁 그만.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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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거 볼때마다 다른면에서 놀라는.. 1900년대 초반의 조선과 1900년대 초반 동시대의 서양의 격차가 다른세계라고 할만큼 너무커서 놀랍다..민족성의 차이인가 진짜.. 1934년 저사진 진짜 와..빌딩들이 ㄷㄷ 저 시기의 일본 들어오기 전 조선은 완전 흙밭에 허물어져갈거같은 지푸라기로 만든 군집들이던데..
아이를 팔다니..ㅠ 미라얼굴은 무섭다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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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뭉클해지는 역사의 한 순간들
#1 초상화를 완성하는 동안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빅토리아 시대 부부, 1890년대 #2 베오그라드 근처 최전선까지 자신을 방문하러 온 아버지와 함께 잠든 세르비아 군인, 1914/1915 #3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아침, 동독 국경 수비대가 베를린 장벽 너머로 꽃을 건네고 있다, 1989 #4 도쿄의 국수 배달부, 1935년 #5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와 그녀의 아이, 1900년대 #6 제2차 세계 대전 중 부다페스트. 유대인들은ㄴ 도나우강변으로 끌려가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에 따른 후 총살 당했다. 지금은 60켤레의 철제 신발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강둑을 따라 늘어서 있다. Can Togay와 Gyula Pauer의 '다뉴브 산책로의 신발'. #7 1967년 7월 17일, 실수로 고압선을 만져 4000볼트의 전기에 감전돼 심정지가 온 동료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전기공. 동료의 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Champion은 사고에서 살아남았고 다음 주에도 출근했다고 한다. #8 2차 세계대전 중 부상 당한 개를 태운 동물 구급차 #9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시기, 캘리포니아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 1918년 #10 아버지, 아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뉴기니, 1970 #11 도르레를 이용해 강을 건너 학교에 가는 아이들. 모데나, 이탈리아, 1959년 #12 두 다리가 잘린 장애인 철도 신호수 제임스 와이드(James Wide)가 애완동물이자 조수인 잭 개코원숭이와 함께 일하는 모습, 케이프 타운, 1880년대 James Wide는 1881년에 차크마 개코원숭이를 구입하여 휠체어를 밀고 감독 하에 철도 신호를 작동하도록 훈련했다. 개코원숭이는 하루 20센트, 매주 맥주 반 병을 받았고, 철도 회사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3 노예 남성이 3년간 다리에 착용하고 있던 사슬을 제거하는 영국 선원 이 노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왕립 해군이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만 해안에서 노예 무역 기지를 탈출했다.⁣(1907) #14 1902년 프랑스의 나이프 그라인더, 그들은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 누워서 일했고 온기를 위해 개를 다리에 앉혔다. #15 연구원이 한 번에 최대 8권의 책을 작업/읽을 수 있게 해주는 18세기 장치 #16 9/11 테러, 81층에서 걸어 내려가 1층에 막 도달한 순간 무너져내린 세계무역센터의 먼지 구름을 뒤집어쓴 여인 먼지의 여인 Marcy Borders는 2015년 8월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암이 그 날 흡입한 먼지 때문에 악화되었다고 생각했다. 9/11 피해자 보상 기금과 세계 무역 센터 건강 프로그램은 지난 18년 동안 2,000명 이상이 그날의 사고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17 2001년 9·11테러를 부시 대통령이 처음 알게 된 순간 #18 독일 베를린, 1985-2018 #19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한 10년 후 찍은 필리핀계 미국인 가족 사진, 1912 #20 2800년 된 키스 (출처) 먹먹하기도, 웃음이 지어지기도, 또 괜스레 뭉클해지기도 하는 역사적 순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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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핑크뮬리 #서울핑크뮬리 #올림픽핑크뮬리현재상황 #올림픽공원핑크뮬리위치 #올림픽공원야생화단지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이른 아침 골목을 지나는 청소차가 보입니다. 우리가 편하게 쉬는 시간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네요. 갑자기 귀뚜라미 소리가 잦아들었어요. 왜 일까요? 오늘은 서울 가볼만한곳으로 올림픽공원 들꽃마루 황화코스모스, 장미광장의 늦은 장미에 더불어 10월이 되면 만개해서 핑크빛 몽환의 풍경이 환상적인 올림픽공원 핑크뮬리 현재 상황을 전해드려요. 루마니아 부부 여행객도 만나 사진 찍었어요. 서울 핑크뮬리 명소 서울 데이트코스 1. 올림픽공원 야생화단지-핑크뮬리 위치 2. 올림픽공원 주차장 3. 올림픽공원 핑크뮬리.댑싸리가 있는 야생화단지 가는법 10월 초 중순에 제대로 솜사탕처럼 아련하게 몽글몽글 피우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팍 핑크뮬리 위치는 야생화단지를 검색하면 됩니다. 현재 핑크뮬리, 댑싸리, 국화를 식재했는데요. 댑싸리 단풍과 국화꽃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올림픽공원 주차장 위치와 따릉이, 카카오자전거 등 자전거 대여하면 수월하게 올팍을 누빌 수 있습니다. * 링크를 누르면 서울 올림픽공원 핑크뮬리 상세한 안내를 볼 수 있어요. * * 현재 올림픽공원 핑크뮬리와 지난해 핑크뮬리 영상도 비교해보세요. * 올해 핑크뮬리 영상 지난해 핑크뮬리 영상 #서울핑크뮬리 #서울데이트 #서울데이트코스 #서울데이트코스가볼만한곳 #서울가볼만한곳 #올림픽공원핑크뮬리 #핑크뮬리 #서울여행 #서울주말데이트 #주말에가볼만한곳 #서울9월에가볼만한곳 #서울10월가볼만한곳 #10월가볼만한곳 #서울사진찍기좋은곳 #올림픽공원핑크뮬리위치 #올림픽공원주차장 #올림픽공원가는법 #서울댑싸리 #서울나들이 #가을나들이 #가을여행지 #서울커플여행 #서울꽃구경 #서울자전거여행 #자전거여행 #올림픽공원핑크뮬리개화상황 #올림픽공원따릉이 #올림픽공원카카오자전거
경기도 차크닉 서울근교 피크닉 장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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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동갈비 맛집 원조김미자할머니갈비
#포천맛집 #포천이동갈비 #이동갈비맛집 #원조김미자할머니갈비 #포천가볼만한곳 #포천여행 #식도락 안녕하세요. 호미숙 여행작가입니다. 주말을 맞아 가을 나들이를 다녀오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일전에 다녀온 포천 여행 중에 들렀던 포천 이동갈비 맛집 중에 원조김미자할머니갈비집에 다녀왔어요. 이번에 제대로 포천 이동갈비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주말 여행 즐겁게 다녀오세요. 이동갈비 유래는 처음에는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먼저 먹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동갈비의 맛과 양이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식도락 여행가들이 즐겨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푸짐한 양과 달착지근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양념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한번 고기를 맛보게 되면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을 정도라고 해서 현재의 포천 이동갈비 골목까지 탄생할 정도라고 하죠. 경기도 2박 3일 여행 포천 식도락 여행 첫날 1. 포천 맛집 포천이동갈비- 원조 김미자할머지 갈비집 53년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포천 이동갈비 맛집입니다. 이미 수많은 매스컴에 소개될 정도로 다양한 TV 속 맛집입니다. 포천 이동골목 2번째 집으로 주차공간도 넓게 마련해서 관광버스도 충분히 주차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위치: 경기 포천시 이동면 화동로 2087 전화문의: 0507-1338-2601 영업시간: 10:00 - 21:00 20:00 라스트오더 * 포천 가볼만한곳 포천 맛집 이동갈비 원조김미자할머니갈비 상세소개 * * 포천 이동갈비 맛집 생생 영상 * #포천드라이브 #포천드라이브코스 #식도락 #식도락여행 #포천여행 #포천숙소 #포천관광지 #포천이동갈비 #포천맛집 #이동갈비맛집 #이동갈비유래 #경기도가볼만한곳 #경기도2박3일여행 #국내2박3일여행 #국내여행지추천 #서울근교드라이브 #서울근교드라이브코스 #서울근교맛집 #서울근교드라이브맛집 #서울근교나들이 #우정여행 #경기도갈만한곳 #포천가볼만한곳 #포천1박2일여행 #원조김미자할머니갈비
한반도 황금의 도시 미스테리 고대국가 <조문국>이야기
(예시 사진 관련 없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한반도엔 금의 나라, 조문국이란 고대 국가가 있었음 무려 기원전 7세기 김학여왕이 개국한 모계중심의 국가였음 어찌나 땅의 터를 잘 잡았는지 곡창지대와 금광까지 있어 조문국의 시대가 열리는 건 시간 문제로 보였음ㅇㅇ 그런데 오늘 날 역사서엔 단 한줄의 기록만을 남김 <서기 185년 신라 벌휴왕이 조문국을 정벌했다> -삼국사기- ???????? 대체 무슨일이...??? 때는 조문국이 멸하기(?) 1년 전인 서기 1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감 (? 붙인 반전이 아래 있음) 조문국 아래는 훗날 신라가 되는 사로국이 있었고 나날이 성장 중이었음 *사로국이지만 편의상 앞으로 신라라고 할게 (신라 제 9대 왕) 벌휴 : 야 요즘 윗쪽 동네에 조문국 꽤 잘 나가더라? 구도: 예 뭐 백제랑도 사이 좋아보이고 세력이 커져가는 듯 합니다만,, 벌휴: 안되겠다 더 커지면 곤란하니까 사신 둘 보내서 항복하라 하자 ㅇㅋ? 구도: (??) 예 그러시죠ㅋ ~조문국~ 사신: 어이~ 조문국~ 우리 신라 군사력 rg? 피본 나라가 한둘이 아냐ㅋ 좋은 말로 할때 항복해ㅋ (조문국 마지막 왕) 묘초왕: ㅋ쟤 뭐래니 죽여ㅋ 신라가 조문국을 만만히 본게 이미 조문국은 29명의 군사를 데리고 적라국을 토벌한 이력이 있었기에 군사력에 나름 자신만만했음 벌휴: 뭐라? 감히 사신들을 죽여??? 구도 불러와!!! 구도: 절 부르셨다고요? 벌휴: 야 구수혜랑 같이 가서 조문국 좀 정벌해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쟤네 정신 못차리고 우리 사신 둘 죽였어ㅡㅡ 구도: 아 예... ~전쟁 전날 밤~ 구도: 휴 내일이면 또 전쟁을 하러 가야하는구나 김욱보 (구도 아빠) 욱보: 아들~ 안자고 뭐하니... 구도: 내일 토벌을 하러 가야해서요 산책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욱보: 벌휴의 명이로구나... 욱보: 에휴... 우리가 세력이 컸더라면 벌휴가 아니라 김씨 일가가 왕위에 올랐을 텐데... 그래 어디로 가니...? 구도: 조문국으로 갑니다 욱보: 조문국?! 욱보: 조문국이면 금의 나라 조문국?!!! 그 나라 공주와 네가 혼인을 하면 우리 김씨 일가의 세력이 커질텐데... 욱보: 마침내 우리 김씨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고...!!! ... 욱보: 아이고 아니다... 정벌간다는 너에게 괜한 소리를 했지...? 잘다녀오거라... 구도: 예... ~전쟁중~ 자신만만했던 신라였지만 전쟁은 무려 7일이나 지속되었음 조문국은 궁터 주변으로 석성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신라를 대상으로 나름 선전하고 있었음 그러나 전투 끝에 왕의 목숨이 위태롭게 됨 묘초왕: 가서... 운모를 데려오거라... 시간이 없다... (조문국 마지막 왕녀) 운모: 어머니 저를 부르셨다구요 운모: !!!!! 어머니!!!! 묘초왕: 미안하구나 내 딸... 전쟁이 끝나면 왕위를 물려주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될 것 같구나... 운모: ... 한편 신라쪽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음 식량도 떨어져가고 군사도 막대한 피해를 입음 구수혜: 아씨 생각보다 전쟁이 너무 오래갑니다... 식량도 다 떨어져가는데... 구도: (김씨 왕가, 금의 나라, 공주라...) .......... 구수혜: 제 말 듣고 계신겁니까?? 조문국 완전 얕봤는데 우리 상황이 영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묘책이라도 내야... 구도: 있을 것 같다, 묘책 구도는 몰래 성안으로 잠입에 성공함 그리고 그때 운모와 묘초왕을 만나게 됨 운모: 거기, 넌 누구냐 처음보는데 구도: 난 신라에서 온 구도라 하오 운모: 신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디까지 엿들은 것이냐!! 구도: 진정하시오... 공격할 의도는 없소 운모: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서 적국에 넘어와? 구도: 전쟁을 멈추고 싶소 이 전쟁은 조문국에도 우리 신라에도 큰 타격을 입혔소 운모: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실실 쪼개? 고운 얼굴로 웃는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구도: 미안하오, 공주가 있다 들었는데 이리 미인일 줄은... 묘초왕: ...우리 운모는 일개 공주가 아닌 곧 조문국의 성군이 될 몸이다 구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성군이 되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운모: 이새끼가...!! 묘초왕: 어디 들어나 보자구나 무얼 원하느냐... 구도: 화친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서로의 힘을 합쳐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문국의 명예에 실추가 되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묘초왕: 그것을 어찌 믿느냔 말이다 구도: ...저와 혼인해주세요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신라 김알지의 6대손이자 장차 신라를 김씨왕가로 만들 파진찬 구도 입니다 묘초왕: 사내가 배포가 있다...ㅋ 합격ㅋ . . . 그렇게 운모와 구도는 혼인을 하게 되고 둘은 슬하에 여러 자식들을 두게 되는데 딸인옥모는 벌휴의 아들과 혼인을 해서 신라의 11대왕과 12대왕인 조분왕과 첨해왕을 낳음 뿐만 아니라 옥모의 허락 하에 신라 최초의 김씨 왕 제13대 왕 미추왕이 탄생하는데 조문국 정벌에 앞장섰던 구도가 바로 이 미추왕의 아버지임 뿐만 아니라 미추왕은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 명을 내리는데, 이는 곧 조문국 왕실의 핏줄이 아닌 사람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말과 같았음 비록 운모는 사라진 조문국의 마지막 왕녀였지만 운모의 후손들은 신라를 점령해 갔음 여기까지 읽고 ??:// 픽션 아님??? 내가 알기론~~~ ...예 미천한 제가 틀리고 당신이 옳습니다. 제가 또 실수를, 제가 또 잘못을..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 ㅎ 그저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게되어 벅차오른 역사 덕후가 쓴 글임 ㅎ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워낙 자료가 적어서 여러 기사와 여러 자료를 읽고 그 중 조문국의 왕녀 운모와 신라의 구도가 혼인하고 멸한 과정을 풀어쓰기 쉬운 설을 택했을 뿐  연도로 보면 맞지 않은 부분이 있고, 더 널리 알려진 설이 따로 있긴 함 (구도가 운모와 혼인을 한 후 운모의 나라인 조문국을 쳤다는 이야기...인데 둘의 혼인 연도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장인의 나라를 쳤다는 설이 싫어서 이 설을 택함ㅋ) 묘초왕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름! 내 맘대로 정함! 머어땨용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조문국은 전설속의 고대국가가 아닌  실제 존재하던 고대 부족 국가였고 신라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임이 분명함 여기 나온 소문국이 조문국임 召 이 한자가 소 발음 되지만 조 발음도 됨 또 신라가 황금의 나라라 불린 것에 비해 경주 인근에서는 금광의 흔적이 없어 미스테리였는데 조문국을 알고나면 미스테리는 풀림 당시 조문국의 영향력이 미쳤던 곳들이 최대 금 생산지였기 때문임 신라가 김씨왕조가 된 것, 그 김씨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되준 것이 조문국의 금과 야금술이라해도 과언이 아님 신라는 한 국가를 병합한 뒤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처럼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했는데 조문국의 명칭을 조문군으로 바꾸고 지역의 토착세력을 유지, 간접통치한 것으로 보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조문국이 멸망하고 조문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이를 뒷받침 해줌 실제 출토된 조문국 유물 출토된 유물들에 따르면 조문국은 멸망 당한 것이 아닌 신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사진속 설명아님 예시자료이나 조문국 유적) 조문국 일대에선 370기가 넘는 고분이 발견됐는데 일부 고분의 연도를 측정한 결과 조문국이 멸했다는 시기보다 이후에 만들어진 고분이 존재하기 때문임 고분의 크기 역시 당대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 않다하니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지닌 나라였음이 분명해 미추왕의 명대로 조문국이 신라의 왕비족이 되었다면 이건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높았던 것의 근거가 됨 이외에도 유일하게 고분의 주인으로 알려진 경덕대왕 관련 썰도 있고(신라왕❌) 조선시대에 등장한 조문국 이야기~ 조문국 후손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 조문국이 요충지인 이유... 등등 꽤 많은데 한번 찾아보길... 절대 내가 쓰기 귀찮은 것 임 이미 발견된 것들 보다 밝혀질 것들이 많은 조문국이라 더더 기대가 돼ㅎㅎㅎ 그럼 조문국의 위치는 어디냐!! 오늘날 의성임 의성에서는 잃어버린 왕국 조문국을 기억하고자 의성 조문국박물관도 만듦 시간 나면 가보시길... (난 아직 안가봄...) 출처 뭐야 걍 드라마 한편 뚝딱인데 존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흑화하면 생기는 일: [괴벨스의 삶]
-몸이 약한데다 만곡족(발바닥이 안으로 심하게 굽은)이라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던 소년 괴벨스는 제대로 걷지 못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이 때문에 2층 다락방에 혼자 틀어박혀 울곤 했다.  -수술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평생 보조구를 착용하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부모님도 가슴아파 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장애를 '신의 형벌'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괴벨스의 부모님도 그의 장애를 불의의 사고 탓에 그렇게 되었다며 둘러대고 다녀야 했다. -괴벨스의 같은 반 학생들은 체격이 작고 장애를 가진 소년 괴벨스를 늘 업신여겼고, 괴벨스가 같은 반 여학생에게 쓴 연애편지를 빼앗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절름발이라고 놀려댔다.  -괴벨스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 했고, 자기를 이렇게 만든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조롱당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증오해야 하는가? - 괴벨스의 일기 中 -유일한 재미는 책이었다. 괴벨스는 골방에 틀어박혀 도스토예프스키, 신비주의, 종교적인 러시아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어댔고 이 때문에 몽상가 소년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모든 소설이 타락한 사회를 비난하고, 세상을 구원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는 내용이었다. -신체적인 열등감을 학교 성적으로 커버하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괴벨스의 부모는 빠듯한 살림에도 중고 피아노까지 사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괴벨스를 격려했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신부였다. 괴벨스의 부모님 역시 그가 장애를 딛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아들이 신부가 되는 길을 적극 장려했다. -괴벨스의 집안은 유대인을 싫어하지 않았고, 유대인과의 왕래도 잦았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왜 멸시받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도 유대인이야. 그와 학구적인 토론을 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는 걸 수긍하게 돼. 좋은 사람이지. 정치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잖아?  - 청년시절 괴벨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 中 -괴벨스는 역사수업, 특히 전쟁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알렉산더, 마케도니아 대왕과 같은  '영웅'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조국과 민족, 신앙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16세의 괴벨스는 이 지옥같은 세상을 전쟁이 해결해줄 수 있고, 처자식과 조국을 위헤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다리 장애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나고 조롱당하기만 했다. -청년 괴벨스는 감성이 대단히 예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기분 나쁜 정도의 일이 터져도 괴벨스는 처절하게 절망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옷과 손목시계를 팔아야 했다. 차비가 없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돈의 노예가 되는 상황을 씁쓸하게 생각했다. -언제나 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은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든다.  - 괴벨스의 일기 中 -졸업 이후 뛰어난 논문 실력과 학위로 박사가 되었으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사 이름으로 과외를 하거나 언론사에 가끔 기고나 논문을 올리면서 푼돈을 받는게 전부였다. 몇 푼 받아봤자 당시 독일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받으나마나 였다. 그는 또다시 현실의 무력함을 느꼈다. -이윽고 청년 괴벨스는 오랫동안 교제 중이었던 유대인 여자친구에게 청혼했지만, 그녀는 괴벨스의 장애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괴벨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괴벨스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괴벨스와 헤어지고 '돈 많고 몸이 멀쩡한' 사내와 결혼한다. 이 때문에 괴벨스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방황하던 그는 유대인 은행에 입사하고자 했으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어렵게 들어간 또다른 유대계 은행에는 직원들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투기와 사기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괴벨스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진심으로 따랐던 유대인 여자친구 엘제 얀케가 자신을 버리고 돈많고 사지가 멀쩡한 남성과 결혼한 것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낳는 데 한몫했다.  -완전히 이사를 하고 나서 개를 한 마리 구했는데,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개를 사랑하게 된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괴벨스는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하지만 독일의 제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경제 대공황은 계속 되었으며 모든 국가의 금액을 배상금으로 퉁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결국 실업자들만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아끼던 여동생마저 사고로 죽었으며, 같은 독일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자신을 멸시했으며,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불법 행위로 인해 그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앓았던 우울증은 청년이 되었을때 더더욱 극에 달해버렸고, 하루에도 수십번 씩 자살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에게 늘 '자살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 나는 고독해야 하고 고독할 것이다. 이 비참한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쓰레기들!  - 괴벨스의 일기 中 -스튜어트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읽고 또 다시 유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귀한 독일 인종이 물질주의 때문에 타락했고, 그 원인은 유대인이다. 독일 민족을 유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체임벌린 주장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독일의 가장 큰 적은 증권 자본주의고, 그 증권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유대인'이라고 믿었다. 괴벨스역시 경제 대공황으로 실업자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모두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30대로 접어들면서 고민이 생기면 모조리 민족 문제와 연관 시켰다. 이제 완전히 민족주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독일을 깊이 사랑하고 애국심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나날이 심해졌다. 192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유대인 귀신들이 자신을 뒤쫓아 오는 악몽을 꾸었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독일 민족의 유일한 구원자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히틀러에게 고개 숙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히틀러를 만난 뒤로 반종교주의자로 돌아선다.  -히틀러 덕에 출세하여 장관이 되자, 어릴 적 자신을 '절름발이'라며 무시하던 고향 사람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괴벨스는 그것을 두고 '구역질이 난다'고 표현했다. -이후 그는 대저택, 커다란 배, 고급 승용차를 모조리 사들였고, 여자를 실컷 만나며 청년 시절의 한풀이를 했다.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 치면서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 부논하던 괴벨스에게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였다. -처음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 몰살이 일생의 목표였던 괴벨스는 히틀러를 열심히 졸라댔고, 결국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고 시민권을 상실했다. 나치는 자(제도기)를 사용해 유대인을 감별해냈다. -실제로 학살 집행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대인 대학살 계획에 있어서 괴벨스 장관이 가장 적극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자신이 장애인이라 '낙인찍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유대인 낙인' 찍기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학살하거나 고문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못나고 열등한 모습, 늘 도태되었던 모습, 인정받지 못했던 모습을 저주했으며, 그것을 매우 증오했다.  -1938년 11월 10일.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일당은 '인종 대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돌격대가 침대에서 유대인을 끌어내 죽였고 1939년에는 유대인을 가축 트럭에 실어 수송하기 시작했다. 1941년 베를린에서 3,5000명의 유대인을 색출해 모두 수용소로 보냈다. 노인은 따로 모아서 모두 죽였다. 그 당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자살이었다.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연설을 해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 내 스스로 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 같은 절름발이에게 먼저 떡을 갖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그는 선전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나치 웅변학교를 세워 수천명의 선동가를 양성했고, 여러 종교 단체를 진압했으며, 수도원의 성폭력 동성애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고,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대상을 오로지 한가지로 통일하였다. 바로 유대인 척결.  -현재까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용되고 있는 "뚜... 뚜... 뚜.... 삐이~"소리를 낸 뒤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는 방식은 괴벨스가 사람들을 방송에 집중시키기 위해 최초로 개발한 방식이다.  -그는 tv와 라디오를 정치선전에 활용한 선구자이며 정치쇼의 원조, 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의 선구자이다. 또한 시장같은 장소에서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이다. 괴벨스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전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괴벨스는 히틀러 앞에서 어린애였다. 히틀러는 괴벨스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고 생일 잔치도 베풀어주면서 계산된 총애를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괴벨스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불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만한 사고방식도 겸비하고 있는 인재였다. 괴벨스는 나치 당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뛰어난 인텔리였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아부했다. 히틀러 역시 괴벨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시대의 난관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미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거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숭배했다. -괴벨스는 전쟁이 불리해질 수록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과 싸워야 한다는 망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 학살이 서양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자신과 제국이 위기에 빠져 들수록 히틀러에게 더욱 의존했다. 1945년 나치 제국이 완전히 패망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는 역시 그를 뒤따라가겠다고 하며 처자식과 함께 음독 자살을 했다. -총통이 없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살아남아서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그래, 모두 데리고 가련다. - 1945년 괴벨스의 마지막 일기 中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