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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자유여행 꿀팁 by tovingo ★

오사카하면 맛집의 향연, 그리고 주유패스로 알뜰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여행지가 떠오르는데요. 도쿄와 또다른 매력이 있는 오사카 ♥ 오사카 자유여행 꿀팁을 공유해드립니다! 국내해외 특가호텔예약 http://tovin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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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저녁 오모테산도에 가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하루종일 내리던 2월의 마지막날 도쿄역에서 조카들 선물도 사고 라멘으로 배를 채운후 숙소로 돌아가기전 오모테산도로 갑니다. 비내리는 2월의 마지막날에 오모테산도라니... 얼핏봐도 비가 제법 오는것 같죠 ㅎ 저희가 비오는날 저녁에 오모테산도에 온 이유는 이 파란병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랍니다 ㅎ. 4년전에 뉴욕에 간적이 있는데 지인이 블루보틀 커피를 꼭 마셔보라고 하더라구요. 마침 숙소 길건너편에 블루보틀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근데 한번도 길건너에 가질 못했습니다. 저희 숙소 1층이 스벅이었거든요 ㅡ..ㅡ 그 블루보틀을 4년이 지난 비내리는 저녁 도쿄 하고도 오모테산도로 찾아가게 될줄은 몰랐네요 ㅋ 저 옷가게 2층이 블루보틀인데 여차하면 지나칠수 있겠더라구요... 특히나 저녁시간엔 말이죠... 자, 이제 블루보틀 커피 아오야마 점 구경해 보시죠... 아들이 앞장섭니다... 비오는날 일본 가게들 앞의 풍경... 실내 디자인이 일본스럽다고 해야 될까요... 느낌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연일까요 이날 저희가 갔던 시각에 여기 계셨던 손님들 대부분이 한국인들 같았어요... 저는 뉴올리언스를 맛보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애플쥬스... 블루보틀과의 첫만남 좋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날이 날인지라 일본신문들 1면에 트럼프랑 김정은이 뙇... 피곤해하는 아들 혼자 숙소에 놔두고 숙소 근처 여기저기 좀 돌아다녔습니다. 마침 비가 잦아들더라구요...
신주쿠 가부키쵸 야키니쿠 돈돈...
https://vin.gl/p/2584178?isrc=copylink 부르라이또 요코하마를 구경하고 다시 신주쿠로 돌아갑니다. 하, 벌써 내일이면 귀국이네요. 오늘이 도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네요.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도쿄에서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저녁식사를 먹으러 가부키쵸로 갑니다. 하,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신주쿠 가부키쵸 1번가... 이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좌측에 오늘의 목적지 야키니쿠 돈돈이 있답니다. 저희가 조금 늦은 시간에 갔는데도 웨이팅이 있더라구요. 그래도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여기도 한국인 손님들이 많더라구요. 창문 바로 앞에 빨간티 입은 남녀 두분 보이시죠. 이분들 저희가 들어가서도 한참동안 식사하시더라구요. 엄청 많이 드신듯^^ 참, 여기 예약을 하면 테이블 자리에 앉을수 있는것 같더라구요. 드디어 입장... 한국어 메뉴판이... 그런데 한국어가 좀 웃기게 번역돼 있더라구요 ㅋ. 해외에서 행차의 고객에게 ㅡ..ㅡ 회계는 테이블에서 ㅡ.,ㅡ 좌석이 2시간 동안 보관된다는건 2시간 동안 식사하고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오늘도 하이볼로 시작... 일단 모듬부터 시작해봅니다. 여기 일단 고기가 맛있더라구요... 우와 이 아이 입에서 육즙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오는게 캬... 아들도 환장하고 먹더라구요 ㅋ 규탄(우설)이 이렇게 맛있는줄 예전에 몰랐지 말입니다 ㅋ 요 네기탄(파우설)은 한쪽 면만 구워서 파가 쏟아지지 않게 반으로 접어서 먹어주면 끝. 맛도 죽여줍니다 ㅎ 오사카에서 처음 맛보고 가지는 확실히 일본어로 나스라고 외워뒀습니다. 근데 나스 달라고하니 못알아 들어셔서 에그플랜트 달라고 ㅋㅋㅋ 나마비루도 마셔주시고... ㅋ 하이볼, 나마비루만 마시다 홉피로 소맥 느낌 한번 내봤습니다^^ 뭔가 느낌이 좀 다른가요 ㅡ..ㅡ 이 아이 뭐처럼 보이시나요? 이름은 냉면인데 비주얼이 좀 이상하죠 ㅋ. 파에 김치에 반숙계란까지... 근데요 이게 맛은 또 괜찮더라구요. 면은 살짝 쫄면 느낌이... 여기 정말 정신없이 돌아가더라구요. 고기가 떨어지기전에 미리 시키지 않으면 기다리는데 지루할 수가 있으니 미리미리 주문해 놓으세요. 그리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직원한테 말할때 시킨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니면 또 시키는줄 알고 중복체크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와, 아들이랑 둘이서 엄청 먹었네요. 야키니쿠 돈돈 대만족하고 돌아갑니다. 생걱날거에요. 와입이랑 딸한테 미안해지네요^^ 역시 신주쿠의 밤은 휘황찬란... 밤늦게 돌아왔더니 숙소가 조용하네요... 마지막밤이라 쉽게 잠이 오질 않네요... 오늘 요코하마 퀸즈스퀘어에서 운동화 하나 득템했습니다 ㅋ 이제 고우투벧 해야겠어요...
어려운 호텔 용어, 이것만은 꼭 알아 두자!
여행 전 꼭 알아 둬야 할 호텔 용어 8가지! 1. 디파짓 (Deposit) 숙소 예약 시, 전체 금액의 10%, 체크인 시 하루치 숙박요금을 기준으로 잡는 일종의 예치금으로, 디파짓은 현금 혹은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 2. 컴플리멘터리 (Complimentary) 호텔 투숙객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는 객실 내 생수, 커피, 차 등을 지칭하는 용어. 보통은 객실 내 무료 생수가 비치되어 있지만, 일부 소규모 호텔의 경우 컴플리멘터리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3. 바우처 (Voucher) 호텔 예약 시, 예약이 완료되면 그를 증명하는, 증명서 혹은 숙소 예약 확인증을 말한다. 대부분 예약 후 이메일을 통해 전자 바우처를 발송하는 경우가 많다. 4. 어매니티 (amenity) 호텔 안에 기본적으로 배치된 생활편의용품을 말한다. 가장 밀접하게 사용하는 용품이다 보니 일부 여행객들은 어매니티의 종류에 따라 호텔을 선택하기도 한다. 5. 턴 다운 서비스 (Turn Down Service) 취침 전 객실을 한 번 더 청소해주는 서비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청결한 시트에서 잠들고 싶다면, 턴 다운 서비스를 요청해 보자. 6. 메이크업 룸 (Make Up Room) 객실을 청소하거나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청소를 원하지 않을 시에는 문고리에 'Do Not Disturb' 고리를 걸어 의사 표시를 하면 된다. 7. 풀 보드 (Full Board) 투숙 기간 내내 조식 - 중식 - 석식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 조식과 석식만 제공하는 것은 '하프 보드'라고 말한다. 일본의 료칸이나 휴양지 리조트의 경우 풀 보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8. 올 인클루시브 (All inclusive) 호텔 내의 식당 및 부대 시설을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로, 고급 휴양 시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출처 : 다양한 여행 정보가 가득한 익스피디아 트래블 블로그
일요일엔 밀라노에 가요 !!!
일요일엔 베트남 커피숖 - 밀라노(Milano) 호치민엔 다양하고 많은 커피숖들이 있습니다. 스타벅스와 같은 고급커피숍에서 부터 길거리에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마시는 커피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중에서 로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밀라노커피를 소개합니다. 이 커피숍은 로컬체인점(?)입니다. 본사로 부터 커피를 제공받아 모든 체인점들으 거의 같은 메뉴와 간판을 사용하는 정도의 좀 느슨한(?) 체인점 형태입니다. 밀라노 커피숖의 좋은 점은 첫째로 저렴한 커피가격(16,000-24,000동) 두째로 빠른 와이파이 사용가능(충전도 가능) 세째로 주변에서 산 음식들(쌀국수. 껌땀 등등)을 편하게 같이 먹을 수 있는 점등을 꼽습니다. 울동네 꼬지앙(Co Giang . Q1)의 밀라노 커피숖은 바로 옆에 오토바이 세차장이 있어 로컬분들에게 인기가 많은 커피숍입니다. 저도 일요일엔 의례히 이곳에 와 오토바이 세차(세차비 2만동-천원)를 맡기고 커피를 마십니다. 오늘은 오토바이 세차장 주인이 내 오토바이의 키로수를 확인하고는 오일도 가는게 좋다고 합니다. (오일교환15만동-약 7.5천원) 사는 동내라 몇번을 오니 커피숍 아주머니도 반갑게 맞아주시고 세차장아저씨는 키로수도 체크해주고 타이어 공기압도 체크해 주시네요 ㅎ (이제는 단골 취급 받는거지요 ㅎㅎㅎ) 밀라노커피숍에서 제가 주로 마시는 커피는 카페 쏘바(3번 커피). 1,2번 커피에 비해 좀더 진한 맛입니다. 근처서 사온 반꿍을 같이 먹습니다. 옆 테이블엔 아이들과 같이 온 젊은 부부가 식사를 합니다. 앞테이블엔 뭔가 심각한 표정들이 일요일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듯 .... 망중한의 모바일 서핑을 즐기는 아자씨.... 나이 지긋 하신 어른은 종이 신문을 보시고요, 일요이 쉬는 날이라 수다가 한창인 어른들..... 오늘도 일요일 맛난 커피와 제 애마를 씻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 울동네 꼬지앙....... 오늘도 즐거은 일요일 되세요 !!!
신주쿠 만조...
아침으로 에비스에서 키무카츠를 늦은 점심으로 도쿄역 라멘 스트리트에서 라멘을 먹었습니다.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아들이 하는말 \아빠, 저녁은 뭐먹어?\ 헐... 아마 집에서 이런 말을 했음 엄마한테 눈물이 쏙빠지게 한소리 들었을겁니다. 하지만 여긴 도쿄. 엄마는 집에... 자, 그래, 우리가 아직 삼시세끼 전이었구나...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멀리 가진 않았습니다. 숙소 바로 옆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지나다닐때마다 가게를 들여다 보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항상 손님이 없는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가게를 꼭 한번 가보고싶더라구요 ㅋ. 드디어 왔네요. 음, 그런데 여직원분 번역기 돌리시더니 주문은 한번 밖에 안된다고... 뭐 시간이 늦기도 했고 한번에 몇가지 주문하면 되니까요 ㅎ. 숙소를 신주쿠역 부근에 잡으셨다면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항상 1층에 손님이 없어서 설마 지하에는 있을려나 했는데 손님이 몇팀 있더라구요. 살짝 오래된 커피숍 느낌이 나더라구요. 기본안주 같은걸 주시던데 한국와서 먹었다는요 ㅋ 역시 음료가 먼저 나오네요. 육즙이 츄르릅... 아래에 깔린건 감자에요... 감튀 넘 부드러웠어요 ㅎ 저 튀긴 마늘과 야채를 얹어 먹는 레어도 굿^^ 맥주랑 좀더 잘 어울릴것 같아서 한잔더... 낼 요코하마 넘어가야 되는데 숙소 들어와서 한잔더 했습니다 ㅎ
서울나들이 ㅡ 경복궁에서
#서울나들이 #경복궁 오랫만의 서울나들이 다녀왔네요. 서울구경차 다녀온건 아니구요, 서울에 업무차 다녀오면서 잠시 짬을 내어 경복궁엘 들렸네요. 보통 사적지들은 월요일엔 휴관하는 곳이 많은데 경복궁은 월요일에도 입장이 가능하더군요. 경복궁에 가보니 의외로 아주많은 외국인들이 한복입고 다니는 모습을 볼수가 있더군요. 아마도 여행사측에서 제공하는 한복입기체험이 아닐까 싶더군요. 우리도 여행사통해서 외국여행가면 해보는것처럼 우리나리여해온 외국관광객들도 마찬가지 일듯하네요. 개설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연원 및 변천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慶會樓)를 다시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蛾眉山)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세종은 이곳에 집현전을 두어 학문하는 신하들을 가까이에 두었으며, 경회루 남쪽에 시각을 알리는 보루각(報漏閣)을 세우고 궁 서북 모퉁이에 천문관측시설인 간의대(簡儀臺)를 마련하였으며, 강녕전 서쪽에는 흠경각(欽敬閣)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玉漏器)를 설치하였다. 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연생전·흠경각·사정전(思政殿)을 복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이때 창덕궁·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하였을 때 정릉동의 구(舊) 월산대군가(月山大君家)를 임시 어소(御所)로 정하였다. 궁의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환도한 뒤 경복궁에 가가(假家)라도 지을 것을 명하였고,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宮闕營建都監)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여기에다 경복궁이 길(吉)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왜란 후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과거 경복궁에서 단종이 쫓겨난 일이 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趙光祖)가 사정전 뜰에서 왕의 친국(親鞫)에 이어 사약을 받은 일 등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광해군도 한때 경복궁성을 수축케 하고 중건의 뜻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궁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중건공사 개시: 1865년, 중건공사 완료: 1867년 말]. 흥선대원군이하응(李昰應)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동행각·서행각·연길당(延吉堂)·경성전·연생전·인지당(麟趾堂)·흠경각·함원전(含元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사정전·수정전(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경회루 등과 근정문·홍례문·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 또한,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이 밖에 자선당 자리에도 석조건물이 들어서고 건청궁(乾淸宮) 자리에는 미술관을 지어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인멸시켰다. 1945년 광복 후 궁은 공원으로 개방되는 한편, 일인(日人)들이 지었던 총독부청사는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다가, 1971년에 궁의 동북 담장 가까이에 지어진 목조기와건물 모양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들어있던 국립박물관이, 1986년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명칭을 고치면서 이 건물로 이건되었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원·낙성되었다. 한편, 일제에 의해 건물이 훼철되는 피해를 입은 경복궁을 복원하는 공사가 1991년부터 침전·동궁·흥례문·태원전·광화문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20년에 걸쳐 5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고종 당시 지어진 건물의 40%가 복원되고,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로조 지어졌던 광화문도 원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내용 경복궁의 주요건물 위치를 보면 궁 앞면에 광화문이 있고 동·서쪽에 건춘(建春)·영추(迎秋)의 두 문이 있으며 북쪽에 신무문이 있다. 궁성 네 귀퉁이에는 각루가 있다. 광화문 안에는 흥례문이 있고 그 안에 개천(開川) 어구(御溝)가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 어구에 돌다리인 금천교(禁川橋), 곧 영제교(永濟橋)가 놓여 있고 다리를 건너면 근정문이 있으며 문을 들어서면 정전인 근정전이 이중으로 높이 쌓은 월대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근정전 뒤의 사정문을 들어서면 왕이 정사를 보는 곳인 사정전이 있고 그 동·서쪽에 만춘전(萬春殿)·천추전이 모두 남향으로 놓여 있다. 사정전 뒤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연침(燕寢)인 강녕전이 있고 그 앞 동서 양쪽에 연생전·경성전이 있다. 강녕전 뒤에는 양의문(兩儀門)이 있고 문 안에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이 있으며 잇대어서 동쪽에 원길헌(元吉軒)·서쪽에 함광각(含光閣)·동북쪽에 건순각(健順閣)이 있다. 그 뒤로는 후원이 전개되어 소나무가 우거지고 연못·정자 등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흥례문으로부터 이곳까지에는 동서로 낭무(廊廡)가 각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이밖에 궁 서쪽에 수정전이 있고 그 위에 경회루가 있는데 수정전은 의정부 청사로 쓰였던 곳이며, 경회루는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잔치를 베풀던 곳이다. 또한 건춘문과 영추문 안에도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현재 궁내에 남아 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함화당·향원정·집옥재·선원전 등이며, 복원된 건물은 강녕전·자선당·태원전·광화문 등이다. 근정전(국보 제223호)은 조선왕조 정궁의 정전답게 중층의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이며 건물의 양식은 조선 말기에 속하여 세부의 장식적 처리가 두드러진다. 근정문(보물 제812호)은 정면 3칸의 중층지붕건물이다. 근정문 좌우로는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 경회루(국보 제224호)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장대한 누각 건물로 하층은 네모진 돌기둥을 세우고 상층에는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나무기둥을 세웠다. 주변에는 네모난 큰 연못을 파고 우측면에 세 개의 돌다리를 놓았다. 누각 건물로는 현재 국내에서 제일 큰 규모에 속한다. 향원정은 육각형 평면을 한 정자로 연못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목조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자경전(보물 제809호)은 침전건물의 하나인데, 이 건물에는 후원의 담장과 굴뚝에 묘사된 십장생(十長生)무늬가 특히 주목된다(경복궁자경전십장생굴뚝, 보물 제810호). 사정전 북쪽에 있는 아미산은 여러 단의 화계(花階)와 그 사이의 나무·괴석 등이 눈길을 끌며 전체적으로 사철의 변화에 따른 조화를 보여 주는 한국식 정원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도 봉황·귀면·당초문 등을 새긴 육각 화문(花文) 장식의 굴뚝(경복궁아미산의굴뚝, 보물 제811호)이 있다. 이밖에 18세기에 만든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하는 기기인 풍기대(風旗臺)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보물 제847호).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을 때는 경천사십층석탑을 비롯한 국보·보물로 지정된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용산에 새로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부분 옮겨져서 현재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등 일부만 남아 있다. 특징 경복궁이 자리 잡은 위치는 도성의 북쪽 북악산 기슭으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주산(主山)의 바로 아래이다. 궁의 전면으로 넓은 시가지가 전개되고 그 앞에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내수(內水)인 청계천과 외수(外水)인 한강이 흐르는 명당(明堂) 터이다. 궁의 왼쪽으로 종묘가 있고 궁의 오른쪽에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인 좌묘우사(左廟右社)를 따른 것이다. 고종 때 중건된 궁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되어 있으며 궁성의 둘레는 1만 여척으로, 시가지를 내려다보듯이 남면(南面)하였고 궁의 주요건물들도 모두 남향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는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에는 정전과 편전들이 놓이고 뒷부분에는 침전과 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른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다른 궁궐들이 정전과 침전을 좌우에 놓거나 배치에 있어 앞뒤의 관계가 불분명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경복궁이 조선조의 정궁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의의와 평가 경복궁은 비록 궁내의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져서 근정전과 경회루를 제외한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었지만, 창건 때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 조선왕조 정궁의 면모를 대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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