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ubon
500+ Views

해부 극장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22학번, 이들은 생각했다. 마침 대학을 창설하고 의대를 활성화시키려면 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실습이 많이 필요하다. 즉, 해부를 할 특별한 교실이 필요하다는 결론. 이때가 1222년이며, 파도바 대학은 (최초는 아니지만) 정말 초창기 세워진 대학다운 대학이었다.

그래서 사진과 같은 일종의 “극장”이 생겨난다. 지금도 수술실을 operating theater라 부를 때가 있는데(물론 operating room이 더 일반적일 것이다), 극장이라는 명사가 붙는 까닭이 있다. 다만 “교실”이 이런 극장화된 것은 300여년이 지난 후인 1593년부터이다. 어째서 300년씩이나? 기록에 따르면 전설의 22학번들도 분명 해부를 실습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해부용 시체를 구하기가 녹록지 않았고, (불법까진 아니었지만) 시각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해부 극장(!)은 임시 구조물일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이게 흥행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입장료 수입도 있을 테고, 일단 대중이 이런 쇼를 좋아했다. 천주교 입장에서도 하느님의 신비를 직접 보여주기에 해부학 쇼만큼 좋은 것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교육적인 목적이 강화됐기 때문에 해부 실습은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파도바 대학교의 해부실(Teatro Anatomico, 참조 2)이 그 시작입니다. 사진은 7월 말 베네치아의 프라다 재단에서 촬영한 것으로서, 프라다 재단의 전시회 이름 자체가 HUMAN BRAINS(참조 1)이다. 이 전시회가 일반적인 미술관의 일반적인 전시회가 아님부터 알려야겠는데, 인간의 두뇌 및 정신과 관련된 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관련된 영상을 상영하는 형식이다. 미술관이 통상적인 개념의 미술만을 전시할 이유가 없다는 고민이 담겨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두 사진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사진은 200여명이 관람 가능한 6층짜리 파도바 대학교 의대의 원형 해부 극장 모형이다. 둘로 갈라진 객석을 합치면 완성되는 형태인데, 1층에는 학장과 시 고위관계자들(한 번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도 직접 구경했다고 한다, 참조 3), 귀족들이 착석 가능했고, 학생들은 2층부터 앉을 수 있었다. 아마 고학번부터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두세 층이면 관계자 모두가 앉을 수 있잖았을까? 나머지는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경쟁이 낳은 또 다른 해부실이랄 수 있을 텐데, 파도바 대학이 만들었으니, 파도바 대학을 배출한 볼로냐 대학이 빠질 수 없다 이겁니다. 이 사각형의 해부실이 바로 볼로냐 대학의 해부실이었다. 1637년에 세워졌으며, 차별화를 위해 파도바 대학교와는 달리 사각형으로 지어졌고, 여러 유명인사들(갈레아누스, 히포크라테스 등등)의 흉상과 함께 그유명한 Memento Mori라는 글귀가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해부 극장 시설이 이탈리아에만 그치지 않았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방식 쇼로 둔갑한 곳은 아무래도 네덜란드일 테고(참조 4), 네덜란드에서는 흥을 돋구기 위해 해부 실습을 할 때, 라이브 콘서트도 개최됐다(참조 3). 파리와 런던, 웁살라, 마드리드, 베를린은 당연하거니와 미국에도 퍼졌다(참조 5).
이런 식으로 "수술 극장"이 있었다는 사실. 출처는 참조 7번 기사.
위에서 언급했지만 당연하게도 이 해부 극장은 수술 극장으로도 이어졌는데, 해부에서 수술로의 전환은 해부 극장 자체의 쇠퇴로도 이어진다. 이제 대중용 극장이 아닌, 실무 외과의사의 프리젠테이션(참조 6) 및 교육의 의미만 남는 것이다. 19세기 들어가면 해부 말고도 많은 볼거리는 물론 미디어가 출연한다. 대중이 굳이 시체만 보러갈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이름, ‘극장’만은 수술실 명칭에 남았다. 20세기 초까지는 그런 극장으로서의 의미가 있었으나 점차로 수술 장면은 그냥 사진과 영상 기록만 남기고, 위생상 이유와 함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교육과 해부학 실습은 별도의 방에서 이뤄지는 시대가 됐다(참조 7). 한국의 경우는? 예전 사진들을 보면 수술 극장이었던 형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연세대 의학박물관(동은의학박물관)에는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 주말 특집이었습니다.

----------

참조



3. 1968년 미국 국립 의학도서관의 논문을 보시라. Old anatomical theatres and what took place therein. :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033863/

4. 해부학의 라이벌, 빌도와 라위스(2019년 8월 25일): https://www.vingle.net/posts/2661779

5. 토마스 제퍼슨이 버지니아 대학교 설립 계획을 세울 때, 해부 실습 극장 도안도 그렸었다. Drawing 4를 보시라.

Thomas Jefferson's Plan for the University of Virginia: Lessons from the Lawn (Teaching with Historic Places) Drawing of the University of Virginia with several buildings facing open square. https://www.nps.gov/articles/thomas-jefferson-s-plan-for-the-university-of-virginia-lessons-from-the-lawn-teaching-with-historic-places.htm

6. 몇 번 언급한바 있는 드라마, The Knick의 의사들이 수술하기에 앞서, 수술극장에서 장황하게, 수술을 어떻게 하겠노라 강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The Knick (2014) 시즌 1(2014년 10월 20일): https://link.medium.com/O7ybA0Rx24


7. Inside the Operating Theater: Early Surgery as Spectacle(2015년 12월 9일): https://daily.jstor.org/inside-the-operating-theater-surgery-as-spectacle/
casaubon
3 Likes
2 Shares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180도 회전하는 핵탑재 전투위성
1983년, 레이건은 전략방위구상(SDI) 계획을 발표한다. 전략방위구상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다시 부활시키는 계획으로,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과 우주공간에서 미사일을 격추하는 위성을 개발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추가로 에드워드 텔러(10기가톤급 핵무기 제안자) 는 여전히 폭탄마적 기질을 보였는데, "핵 펌프 X선 레이저 위성"을 개발하여 소련의 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터트리자는 아이디어를 직접 레이건에게 제시한다. 이 "핵 펌프 X선 레이저"는 핵폭탄을 통해 강력한 X선 레이저를 발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전략방위구상 계획이 전해지자,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결과물중 하나가 바로 (로켓 옆에 매달린 커다란 검은색 물체) «폴리우스»다. Skif-DM, 혹은 GRAU 코드로는 17F19DM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녀석은 핵무기와 1메가와트급 레이저를 장착해 미국의 SDI 위성들을 박살내고 미국에 핵공격을 가해 핵전생시 소련과 미국의 상호 확증파괴를 보장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이녀석은 좀 특이했는데, "상식적"으로 폴리우스 위성의 아랫부분에 로켓엔진이 달려있을 것 같지만, 위성의 상단부에 추진기가 달려있는 녀석이다. 우주에 도착하면 저 뾰족한 뚜껑을 분리하고 180도 회전하게 된다. 이후 추진기를 점화, 가속해 최종적으로 위성 궤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요구사항이 있었길래 저래 특이한 방법을 썼는지 의문이다.) 1987년 5월 11일, 폴리우스의 시제품이 개발부터 제작까지 1년만에 완성되어 발사 준비 절차를 한창 거치고 있을 무렵, 고르바초프가 발사 현장에 도착한다. (폴리우스의 시제품은 레이저를 발진시키기 위해 사용한 CO2가스를 우주로 방출할때 우주선의 궤도가 바뀌거나, 회전하는걸 막는 장치를 테스트하기 위해 크립톤+크세논 가스를 충전했고, 레이져나 핵무기는 탑재하지 않았다.) (고르비 Rest In Peace..) 사실 고르바초프는 이 폴리우스 위성의 발사를 허가하지 않으려 했다. 마침 미국과 무기 감축에 대해 논의할 시즌이어서 만약 전투용 우주위성을 발사했다는 사실이 미국에게 알려지면 협상이고 뭐고 파탄날게 뻔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발사를 허가하지 않으려던 것은 진심이었던 거 같은데, 현장에 도착한 고르바초프는 에네르기아 로켓 수석 개발자에게 "정치국은 이 로켓의 발사를 허가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발사준비절차가 진행된 상태였으므로, 며칠 내로 발사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되돌리기 늦었으며, 폴리우스를 궤도에 올리는 에네르기아 로켓 수석개발자의 "로켓에 대한 열정적인 설명"을 듣고는 마음이 변했는지 발사를 허가한다. 1987년 5월 15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폴리우스는 발사되었다. 그러나 180도만 회전해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추진기를 점화하고, 궤도에 진입했어야 하는 폴리우스는 웬일인지 360도 회전해 엔진이 점화되었다. 엔진이 로켓의 진행방향대로 달려있으니, 역추진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역추진으로 속도가 느려진 폴리우스는 남태평양에 떨어져 불타버렸다. 실패 원인은 개발부터 제작까지 1년이라는 아주 촉박한 시간으로 위성을 개발했었고 이 때문에 테스트에서 발견되지 않은 오작동이 발생해 360도 회전이라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었다. 폴리우스가 실패하자, 고르바초프의 군축으로 인해 이 야심넘치는 전투용 위성 프로젝트는 공중분해되었다. 군사갤러리 Anthrax836님 펌
코로나19, 이겨냅시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콧물과 가래가 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은 콧물이 없는 마른 기침이므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이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식별 방법이다. 이런 의료 지식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 우한 바이러스는 내열성이 아니며 26-27 도의 온도에서 죽습니다. 따라서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신다. 친척들에게 더운 물을 마시도록 하면 예방할 수 있다. 햇빛 아래로 가세요. 찬물 특히 얼음물을 마시지 마세요.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은 모든 바이러스에 효과적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의사의 조언 : 1. 크기가 매우 크며 (셀의 직경은 약 400-500nm), 모든 일반 마스크 (N95 기능뿐만 아니라)도 이를 필터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염된 사람이 당신 앞에서 재채기를하면 3미터 멀리 떨어지니 조심하세요. 2. 바이러스가 금속 표면에 떨어지면 12 시간 이상 생존합니다. 금속에 닿은 경우 비누로 손을 씻으십시오. 3. 바이러스는 옷에서 6-12 시간 동안 활성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탁 세제는 바이러스를 죽입니다. 매일 씻을 필요가없는 겨울 옷의 경우, 태양 아래서 두어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 증상 : 1. 목구멍을 먼저 감염시켜 목구멍이 3 ~ 4 일 동안 지속되는 건조한 인후통 느낌을 갖게됩니다. 2. 그러면 바이러스가 코액에 혼합되어 기관으로 흘러 들어가 폐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은 5-6 일이 소요됩니다. 3. 폐렴으로 고열과 호흡 곤란이 발생합니다. 비강 혼잡은 정상적인 종류와 다릅니다. 물에 빠진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느낌이 든다면 즉시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합니다. 예방에 관하여 : 1. 감염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공개적으로 물건을 만지는 것이므로 손을 자주 씻어야합니다. 바이러스는 5-10 분 동안 만 손에 살 수 있지만, 5-10 분 동안 많은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눈을 비비거나 의도하지 않게 코를 만질 수 있음). 2. 손을 자주 씻는 것 외에도 Betadine Sore Throat Gargle로 가글 양치질을하여 목구멍에 있는 동안 세균을 제거하거나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폐로 떨어지기 전). 따뜻한물 마시기 전달합니다 *우한폐렴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지인이 호흡기 의사라 한참을 물어봤습니다. 가끔 우한폐렴을 독감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독감과는 차원이 다르답니다. 독감은 그냥 상기도감염이고... 즉 폐까지 안내려가고 목부위의 감염... 즉 목구멍쪽 감염이고..   독감은 백신이 있고.. 깔끔하게 완치가 가능하며 후유증이 거의 없답니다.   우한폐렴은 폐렴이랍니다. 폐까지 깊숙히 감염이 퍼지는거.. 그리고..  바이러스 폐렴은.. 후유증으로 폐의 섬유화를 반드시 만든답니다. 섬유화는 폐를 딱딱하게 만든다는거죠. 부들부들한 폐가 딱딱해지고..  폐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고 하려면 폐가 부드럽게 움직여야 하는데.. 폐가 딱딱해지니 숨쉬기가 힘들어진답니다. 그리고.. 폐가 섬유화되면 산소공급이 떨어진답니다. 그래서 항상 산소가 부족한 상태가 된답니다. 정상인 사람의 몸속 산소농도가 99%인데..  폐가 섬유화된 사람들은 70%~80%대로 낮은 농도가 유지된답니다. 그래서 항상 숨이차고, 딱딱한 폐를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니 항상 피곤하고... 수명도 짧아진답니다. 근데 가장큰 문제는... 이게 평생 후유증으로 남고.. 치료방법이 없다는겁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답니다 완치방법은 폐를 다른사람 폐로 이식하는 방법밖에 없답니다. 근데.. 심장이식 간이식과 다르게... 폐이식은 어마어마하게 큰수술이랍니다. 결국 한번 걸리면.. 평생 고통스러운 폐질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걸리면 독감걸렸다 셈치고 좀 쉬고말지..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겁니다. 절대로 절대로 걸려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시니어과학기술인 활동을 함께 하는 S대 K 명예교수께서 보내주신 자료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합니다. ㅡ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의 길    “우환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퇴치에 힘을 모아야합니다.   박테리아 침투로 발병한 병은 항생제로 다 죽여 치료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 침투로 발병한 병은 약이 없어서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면역력을 높여서 몸 스스로가 치료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생존력 차이 크기에 있어서 박테리아는 보통 마이크로미터(㎛, 1000 분의 1mm)의 크기로 몸속에 침투할수 있으나 세포속으로는 침투할수 없는데 비해 바이러스는 이보다 훨씬 작은 나노미터(㎚, 100만 분의 1mm) 크기로 세포의 핵속의 유전자 속에까지 침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박테리아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단세포 생물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양분을 먹고 스스로 유기물을 만들어 살아가면서 번식할 수 있지요. 모든 생물들처럼 스스로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리보솜과 같은 기관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나 유기물을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스스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온전히 생물의 범주에 속하지 못합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숙주가 되는 생물에 붙어 기생하여 그 생물의 힘을 빌어서만 생존하고 증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생물체가 아닌 ‘입자’와 같은 존재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바이러스는 깨끗하고 건조한 공기 중에서는 생존하지 못합니다. 피부에 붙으면 5분 정도, 티슈 종이에서는 15분 정도, 구멍이 없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표면에서는 하루나 이틀 정도, 점액 안에서는 좀 더 오래 살수 있고, 영하의 날씨에서는 장기간 생존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는 늦봄이나 여름이 되면 생존할 수 없어서 각종 바이러스 침투로 생기는 질병이 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침투하여 발병한 바이러스의 일종입니다. 사스 (SARS), 메르스 (MERS)도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며 계속 새로운 종류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변형됩니다. 현재까지 인간에게 발병을 일으킨 코로나 바이러스가 6가지였는데, ‘우환 폐렴’을 일으킨 코로나 바이러스가 7번째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로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명명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예방 및 치료에 중요한 것들 바이러스 침투로 발병한 모든 병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최상화 시켜 우리 몸속의 유전자 자체가 바이러스를 격퇴시키게 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고 치료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ㅡ우선 밤 10시전에 취침하여 7~8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ㅡ음식물로는 비타민 A가 많은 녹황색 채소와 고구마를 많이 먹고,  ㅡ비타민 C가 많은 귤 사과 대추 딸기 레몬 오렌지 등 신 과일을 매일 섭취하고,  ㅡ비타민 E가 많은 견과류 (넛들) 콩나물 녹두나물 시금치 양배추 등을 충분히 섭취하고 요리시 기름은 카놀라 기름이나 콩기름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ㅡ하루에 8컵 이상의 물을 마시면 바이러스를 격퇴시키는 백혈구의 활동이 최상이 됩니다.  ㅡ백혈구의 활동을 무력하게 하는 술 담배 커피 마약류는 단호히 끊으시기 바랍니다.  ㅡ열대지방에서는 우기에, 온대지방에서는 겨울철에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이 되는 이유가 비타민 D의 결핍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햇빛 가운데 운동하거나 겨울철에는 햇빛 드는 창가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고 말린 채소 (시래기, 무우말랭이)와 말린 과일들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ㅡ세제를 통해 손을 씻을 경우; 비누 거품을 내어 곧바로 씻으면 바이러스가 죽지 않습니다. 손에 거품을 내고 최소한 20초 이상 있다가 물로 씻어내야 바이러스가 죽습니다. 20초는 “생일 축하 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전부 부르기를 두번 하는 동안 걸리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겁내지 마십시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리 쎄다 해도 소금물 한테는 하찮은 바이러스에 불과 합니다, 지구상에 모든 바이러스는 0.9%의 소금물 속에서는 존재할수 없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닿는 순간 터저 죽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몸에 염도를 0.9% 이상만 유지 시켜 주면 이보다 더한 바이러스라 해도 내몸에 들어올수가 없습니다, 모든 바이러스가 침투할수 있는 곳은 ️눈. 코. 입.️ 뿐입니다, 그래서 ️눈물이나 ️침이나 ️코점막을 소금물로 배치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 90%가 0.8% 미만이라고 하니 이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체내 염도 0.9% 뿐 입니다, ♦️ 저염식은 재앙입니다, ‍♀️ 소금은 85가지의 미네랄이 살아있는 천일염을 드셔야합니다, 천일염은 바다와 태양이 주신 ️불노수️ 입니다, 바다는 수십억년을 더럽혀도 바이러스 한점없이 청정을 유지할수 있는것은 ️ 3%의 소금 ️ 때문입니다, ‍♂️. 염분 부족은 만병에 근원입니다,
의사들도 인정한 12가지 민간요법
1. 코가 막혔을 때 바람 들지 않고 맵지 않은 싱싱한 무를 조금만 갈아 베보자기로 즙을 짠다. 탈지면에 그 즙을 묻혀서 막힌 콧속에 가볍게 넣어주면 한번에 쉽게 뚫린다. 자극요법의 일종이다. 2. 불면증에는 뜨거운 목욕이 좋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하면 숙면을 취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3. 구역질이 날 때에는 생강이 좋다. 입덧에 시달리는 임산부나 배멀미 차멀미 예방에도 좋다. 여행 떠나기 30분 전에 생강차 한 컵을 마시면 멀미를 예방할 수 있다. 4. 피부 가려움 증에는 오트밀이나 베이킹 소다가 좋다. 오트밀을 푼 목욕물에 몸을 푹 담그면 여러 가지 피부염증을 가라앉힐 수 있다. 벌레에 물리거나 햇볕에 타서 가려운 것도 포함. (미지근한 물을 욕조에 채우고 오트밀 한두 컵을 탄다) 베이킹 소다도 벌에 쏘이거나 발진으로 인한 피부통증을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다. 벌에 쏘인 곳을 진정시키려면 베이킹 소다에 물을 넣어 반죽한 다음 피부에 붙이면 된다. 5. 과식에는 파인애플이 좋다. 파인애플에는 단백질 소화를 돕는 효소가 있다. 6. 과음했을 때는 오이 즙을 마신다. 오이에는 무기 염료질이 있어 알코올을 중화하고 소화기에 들어가서 완화 작용을하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오이 한개 반을 강판에 갈아서 즙을 내어 음주 후에 마시면 된다. 7. 재채기, 코감기 무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생리적으로 중요한 작용을 하는 효소가 많아 노화방지, 미용,소화, 기침 감기에 좋다. 중간 크기의 무 반개를 잘라 강판 에 갈아 약한 불에 5분간 서서히 달인다. 여기에 마늘 반 술 가량을 넣고 잘 저어 하루에 세 번 가량 먹는다. 8. 불면증 파뿌리와 대추를 달여 먹는다. 파뿌리는 발한 작용을 해서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대파의 뿌리 부분만 5개, 대추 10개에 물 세 사발을 부어 그 물이 삼분의 일 정도까지 줄도록 달여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 신다. 10일 정도 시도하면 효과가 나타난다. 9. 헛배 부르고 가스가 찰 때 파를 깨끗이 씻어서 10뿌리만 잘라 넣고 물 두 대접을 붓는다. 물을 팔팔 끓여서 한번 끓으면 은근한 불로 조절해서 물이 반으로 줄때까지 달인다. 맛이 좋지 않지만 아침 저녁으로 3일 정도 복용한다. 파뿌리는 능금산, 당 인산, 휘발성 정유를 함유하고 있어서 소화에 도움을 주고 위를 편안하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10. 피로,권태감 마늘 세쪽과 생강 세쪽을 강판에 갈아 컵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서 차 마시듯 먹는다. 마늘과 생강은 피로회복과 근육회복에 효과적이다. 11. 습관성 변비 통증이 없는 습관성 변비는 무청과 고구마를 이용한다.무청 세포기와 고구마 한 개를 적당히 잘라 믹서기에 간다. 이것은 먹기 직전에 갈아서 신 선한 상태로 먹어야 효과가 있다. 아이들은 반 컵, 어른은 한 컵을 마신다. 심한 경우에는 하루 한 컵씩 한달간 복용한다. 무청과 생 고구마 즙은 점액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소화나 변비에 도움을 준다. ★ 도움 되는 글 모음★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병, CRPS (약스압)<신동욱이 걸린병>.jpg
우리나라 환자수는 5000명~ 20000명 정도 추산 다친곳도 없고 특별히 외상을 입은곳도 보이지않는데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어린애처럼 울부짖는 한 여성. 응급실로 실려가서 말기암 환자들에게나 쓰는 진통제를 대량 투여받고 잠잠해짐. 말그대로 그냥 통증이 일반인 상상이상의 고통이기때문에 일반 진통제로 절대 컨트롤이 불가능함. 모르핀 수준의 마약성 진통제정도로도 컨트롤하기 힘든 정도의 고통. CRPS를 앓는분이 표현하는 평소에 계속 달고사는 고통의 수준. 극심한 고통주기가 찾아올땐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확실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신경계가 이상이 와서 그냥 모든 자극을 최극한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뇌로 보내는 증상으로 추정하고 있을뿐임. 말그대로 특정부위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모든 감각을 고통으로 받아들임.  발병원인은 랜덤임. 그냥 단순히 바늘로 찔렸는데 어느순간 CRPS가 찾아오는 환자도 있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CRPS가 찾아오는 환자도 있고, 심지어 경우는 드물지만 다치지도 않았는데 이 병을 앓는 사람도 있다. 의사가 말하길, 지금 이순간 나도 걸릴수도 있고 여러분도 걸릴수있다고 했다. 이 병이 신기한게 잘라도 해결이 안된다고 함. 잘라도 다른 부위에서 이 증상이 생긴다거나 계속 자른 부위가 있는거마냥 고통을 느낀다고 함. 그래서 확실한 발병원인 유추가 불가능한 수준. 이 병을 앓게되면 계속 24시간 고통이 있는데 특정주기마다 진짜 고통수치가 극한까지 올라가게 됨. 너무 아파서 순간적 충동으로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짤에선 안나오지만 이분은 고통이 찾아오는 다리 한쪽이 아예 썩어있음. 단순히 뇌에서 받아들이는 고통때문에 외상을 입은것도 아닌데 다리한쪽을 못쓰게 되고 썩게됨.... 의사가 절단권유를 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 자동차가 발등을 밟고 지나간 사고를 겪은 후 통증이 점점 심해지더니 CRPS가 됐다고 한다. 병을 앓기전까진 앞날 창창한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CRPS는 순식간에 이분을 하루 24시간을 너무 아파서 집안에 누워있게만 만들고 고통때문에 화장실 가는거조차 포기하게 만들어 기저귀를 차고 똥오줌을 해결하는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림. 군대에서 CRPS를 얻어 나온 아들을 둔 부모는 병을 저주라고까지 표현함. 착하던 아들은 고통으로 성격이 괴팍하고 딴사람 수준으로 바뀌어버렸고 병원에 보내면 자살할꺼라고 난리치고 수차례 자살시도까지 함. 가슴이 찢어지는 부모님. 마지막엔 그냥 의사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않고 꾸준히 버티자는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실제로 이 병 앓으면서 주저앉지않고 너무 아플땐 그거보다 더 아프게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직장생활까지 하는 CRPS 환자까지 있음. 출처 진짜 보는사람이 더 고통스럽네 ㅜㅜㅜㅜㅜ 어째 저런 병이 ㅜㅜ 얼른 치료법이 나왔으면 좋겠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흑화하면 생기는 일: [괴벨스의 삶]
-몸이 약한데다 만곡족(발바닥이 안으로 심하게 굽은)이라는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던 소년 괴벨스는 제대로 걷지 못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이 때문에 2층 다락방에 혼자 틀어박혀 울곤 했다.  -수술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평생 보조구를 착용하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부모님도 가슴아파 했다. 당시 독일 사회는 장애를 '신의 형벌'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괴벨스의 부모님도 그의 장애를 불의의 사고 탓에 그렇게 되었다며 둘러대고 다녀야 했다. -괴벨스의 같은 반 학생들은 체격이 작고 장애를 가진 소년 괴벨스를 늘 업신여겼고, 괴벨스가 같은 반 여학생에게 쓴 연애편지를 빼앗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절름발이라고 놀려댔다.  -괴벨스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 했고, 자기를 이렇게 만든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조롱당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증오해야 하는가? - 괴벨스의 일기 中 -유일한 재미는 책이었다. 괴벨스는 골방에 틀어박혀 도스토예프스키, 신비주의, 종교적인 러시아 사회주의 성향의 책을 읽어댔고 이 때문에 몽상가 소년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모든 소설이 타락한 사회를 비난하고, 세상을 구원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열망하는 내용이었다. -신체적인 열등감을 학교 성적으로 커버하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괴벨스의 부모는 빠듯한 살림에도 중고 피아노까지 사주면서 열심히 공부하는 괴벨스를 격려했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신부였다. 괴벨스의 부모님 역시 그가 장애를 딛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아들이 신부가 되는 길을 적극 장려했다. -괴벨스의 집안은 유대인을 싫어하지 않았고, 유대인과의 왕래도 잦았다. -유대인을 싫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아.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왜 멸시받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도 유대인이야. 그와 학구적인 토론을 할 때마다, 유대인들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는 걸 수긍하게 돼. 좋은 사람이지. 정치에 관심있는 주변 사람들은 유대인을 독일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잖아?  - 청년시절 괴벨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 中 -괴벨스는 역사수업, 특히 전쟁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알렉산더, 마케도니아 대왕과 같은  '영웅'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조국과 민족, 신앙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16세의 괴벨스는 이 지옥같은 세상을 전쟁이 해결해줄 수 있고, 처자식과 조국을 위헤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다리 장애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나고 조롱당하기만 했다. -청년 괴벨스는 감성이 대단히 예민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냥 기분 나쁜 정도의 일이 터져도 괴벨스는 처절하게 절망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옷과 손목시계를 팔아야 했다. 차비가 없어 집에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돈의 노예가 되는 상황을 씁쓸하게 생각했다. -언제나 돈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은 나를 매우 괴롭게 만든다.  - 괴벨스의 일기 中 -졸업 이후 뛰어난 논문 실력과 학위로 박사가 되었으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박사 이름으로 과외를 하거나 언론사에 가끔 기고나 논문을 올리면서 푼돈을 받는게 전부였다. 몇 푼 받아봤자 당시 독일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선 받으나마나 였다. 그는 또다시 현실의 무력함을 느꼈다. -이윽고 청년 괴벨스는 오랫동안 교제 중이었던 유대인 여자친구에게 청혼했지만, 그녀는 괴벨스의 장애 때문에 장애아가 태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괴벨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괴벨스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괴벨스와 헤어지고 '돈 많고 몸이 멀쩡한' 사내와 결혼한다. 이 때문에 괴벨스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방황하던 그는 유대인 은행에 입사하고자 했으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어렵게 들어간 또다른 유대계 은행에는 직원들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투기와 사기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괴벨스가 결혼까지 생각하고 진심으로 따랐던 유대인 여자친구 엘제 얀케가 자신을 버리고 돈많고 사지가 멀쩡한 남성과 결혼한 것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낳는 데 한몫했다.  -완전히 이사를 하고 나서 개를 한 마리 구했는데,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개를 사랑하게 된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괴벨스는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하지만 독일의 제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경제 대공황은 계속 되었으며 모든 국가의 금액을 배상금으로 퉁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결국 실업자들만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아끼던 여동생마저 사고로 죽었으며, 같은 독일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자신을 멸시했으며,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불법 행위로 인해 그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앓았던 우울증은 청년이 되었을때 더더욱 극에 달해버렸고, 하루에도 수십번 씩 자살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에게 늘 '자살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 나는 고독해야 하고 고독할 것이다. 이 비참한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라고 하는 쓰레기들!  - 괴벨스의 일기 中 -스튜어트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읽고 또 다시 유대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귀한 독일 인종이 물질주의 때문에 타락했고, 그 원인은 유대인이다. 독일 민족을 유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체임벌린 주장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독일의 가장 큰 적은 증권 자본주의고, 그 증권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유대인'이라고 믿었다. 괴벨스역시 경제 대공황으로 실업자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모두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30대로 접어들면서 고민이 생기면 모조리 민족 문제와 연관 시켰다. 이제 완전히 민족주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독일을 깊이 사랑하고 애국심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결국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나날이 심해졌다. 1929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유대인 귀신들이 자신을 뒤쫓아 오는 악몽을 꾸었다. -괴벨스가 보기에 사기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독일 민족의 유일한 구원자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히틀러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히틀러에게 고개 숙일 자세가 되어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히틀러를 만난 뒤로 반종교주의자로 돌아선다.  -히틀러 덕에 출세하여 장관이 되자, 어릴 적 자신을 '절름발이'라며 무시하던 고향 사람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심해졌다. 괴벨스는 그것을 두고 '구역질이 난다'고 표현했다. -이후 그는 대저택, 커다란 배, 고급 승용차를 모조리 사들였고, 여자를 실컷 만나며 청년 시절의 한풀이를 했다. 절망과 고독에 몸부림 치면서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 부논하던 괴벨스에게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세주였다. -처음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 몰살이 일생의 목표였던 괴벨스는 히틀러를 열심히 졸라댔고, 결국 1935년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었다. 유대인의 재산은 모두 압류되었고 시민권을 상실했다. 나치는 자(제도기)를 사용해 유대인을 감별해냈다. -실제로 학살 집행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대인 대학살 계획에 있어서 괴벨스 장관이 가장 적극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괴벨스는 자신이 장애인이라 '낙인찍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유대인 낙인' 찍기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한 그는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학살하거나 고문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자신의 못나고 열등한 모습, 늘 도태되었던 모습, 인정받지 못했던 모습을 저주했으며, 그것을 매우 증오했다.  -1938년 11월 10일. 히틀러와 괴벨스 등 나치 일당은 '인종 대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돌격대가 침대에서 유대인을 끌어내 죽였고 1939년에는 유대인을 가축 트럭에 실어 수송하기 시작했다. 1941년 베를린에서 3,5000명의 유대인을 색출해 모두 수용소로 보냈다. 노인은 따로 모아서 모두 죽였다. 그 당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자살이었다. -자신의 장애를 잘 알고 있었던 괴벨스는 연설을 해나가면서 다음과 같은 각오를 다졌다. - 내 스스로 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 같은 절름발이에게 먼저 떡을 갖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다. -  괴벨스의 일기 中 -그는 선전 장관으로 활약하면서 나치 웅변학교를 세워 수천명의 선동가를 양성했고, 여러 종교 단체를 진압했으며, 수도원의 성폭력 동성애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고,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대상을 오로지 한가지로 통일하였다. 바로 유대인 척결.  -현재까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용되고 있는 "뚜... 뚜... 뚜.... 삐이~"소리를 낸 뒤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가는 방식은 괴벨스가 사람들을 방송에 집중시키기 위해 최초로 개발한 방식이다.  -그는 tv와 라디오를 정치선전에 활용한 선구자이며 정치쇼의 원조, 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의 선구자이다. 또한 시장같은 장소에서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이다. 괴벨스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전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괴벨스는 히틀러 앞에서 어린애였다. 히틀러는 괴벨스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보내고 생일 잔치도 베풀어주면서 계산된 총애를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괴벨스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불같은 열정을 갖고 있으며, 당시 강력했던 사회주의 세력을 포섭할 만한 사고방식도 겸비하고 있는 인재였다. 괴벨스는 나치 당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뛰어난 인텔리였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아부했다. 히틀러 역시 괴벨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시대의 난관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끊임없이 미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거의 '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숭배했다. -괴벨스는 전쟁이 불리해질 수록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과 싸워야 한다는 망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 학살이 서양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괴벨스는 자신과 제국이 위기에 빠져 들수록 히틀러에게 더욱 의존했다. 1945년 나치 제국이 완전히 패망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는 역시 그를 뒤따라가겠다고 하며 처자식과 함께 음독 자살을 했다. -총통이 없으면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살아남아서 어떤 대접을 받겠는가? 그래, 모두 데리고 가련다. - 1945년 괴벨스의 마지막 일기 中 출처
옛 초상화로 질병을 들여다보다.jpg
1. <천연두> 마마라 불릴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천연두. 영국의 과학자이자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인류를 위협했던 가장 위험한 질병 중 하나였다. 병이 낫는다고 해도 몸에 자리잡은 수포가 터진 흉터를 남기게 된다. 조선시대 초상화를 살펴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질병의 형태로 마치 점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때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이겨낸 용감한 훈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서매수 초상 순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김상옥 초상 동준시무과도상첩에 실려있는 초상화로 무관직을 지냈던 분으로 보인다. 김육 초상 효종 때의 명재상. 이봉상 초상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다. 오명항 초상 영조 때 우의정을 지냈다. 천연두의 흉터가 매우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2. <백반증> 백반증은 후천적으로 흰색의 반점이 생기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질병이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도 백반증의 치료와 예후는 예측하기 어렵다. 송창명 초상 참고로 송창명의 초상화는 백반증이 담긴 가장 오래된 초상화라고 한다. 3. <딸기코> 많은 사람들이 딸기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엄연히 피부질환의 일종이다. 만성 충혈성 질환의 하나이다. 홍진 초상 선조 때의 문신이다. 홍진은 이 딸기코의 염증으로 인해 제대로 된 벼슬 생활도 못하고 일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이 초상화를 주관했던 이항복은 붉은색 물감이 모자라자 홍진의 코는 대체 무슨 색으로 칠할 것인가?라고 화공에게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홍진을 놀린 이항복 초상 딸기코는 아니지만 이 사람도 코는 만만찮다. 4. <다모증> 다모증은 연한 솜털이 굵은 털로 변하는 질병을 가리킨다. 유복명 초상 영조 때의 문신으로 얼굴에 가는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5. <흑달> 흑달이란 황달 증세가 심해져서 생긴 것으로 얼굴에 흑빛이 도는 것을 말한다. 오명항 초상 위의 오명항과 동일 인물로 흑달 증상이 매우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오명항은 안타깝게도 이 초상화가 그려진 해에 영면한다. 6. <사시> 사시란 사물을 볼 때 두 눈이 정렬되지 않는 질환이다. 채제공 초상 정조 때의 문신이다. 7. <탈모> 윤증 초상 뒷머리만 모아서 상투를 틀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선, 일본, 중국 3국에서 천연두가 유행했는데도 조선의 초상화에서만 천연두 자국이 발견된다. 간경변을 앓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초상화는 얼굴이 희게 그려졌고 명나라 주원장도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얽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공식 초상화에는 천연두 자국이 그려져 있지 않다. 초상화를 그리는 원칙이 달랐다는 얘기다. 한국의 초상화는 한 가닥의 털,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달리 그리면 안 된다는 초상화론이 반영되어있다. 출처
다이아수저 집에 처음 들어가 본 흙수저 표정 (feat.러시아혁명)
은 러시아 혁명 당시에 황궁에 들어가서 얼빠진 붉은 군대의 모습임... 이 때 황실과 귀족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주얼리 한번 볼래? ㄹㅇ 눈돌아감 이건 혁명 당시 압수한 실제 사진 까악까악 놀랍지? 이걸 어떻게 착용 했냐면 이렇게 주렁주렁 달았다고 함 혁명군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던 영국도 러시아 황실, 귀족가의 보석을 보고놀랐다는데 그만큼 집안도 으리으리하게 꾸며 놓고 살았다고 한다 함 보쉴? 서재, 응접실, 도서관, 드레스룸, 침실, 다이닝룸 등등 여러 용도의 방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살롱 문화를 책임지던 무도회장을 정 말 정 말 공들여서 꾸몄다고 함 살롱 문화는 황족과 귀족들이 문화 예술을 즐기면서 사교 활동도 하고 비즈니스도 하고 결혼 상대를 고르기도 하는 고오급 그사세 동호회 같은 거였음 근데 19세기 중반부터 표토르 대제가 홍차국에 본격적으로 유럽의 문화를 들여 오면서 이제 살롱에서 프랑스어만 쓰고 유럽풍의 옷을 입고 유럽 춤을 추는 등 요상한 유행이 시작됐지 살롱과 무도회 문화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흥함 심지어는 1년에 무도회가 1000번 이상 열렸는데 초대를 받으면 중병이거나 상중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가야 했다함 ;; 춤추다가 중병 걸릴듯 이 무도회가 참 오묘한게 미혼 남녀가 공식적으로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은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공표할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이기도 했음 예를 들어서 그 당시 러시아의 무도회 플리는 집주인 내외가 주도하는 웅장한 폴로네즈로 시작해서 왈츠, 헝가리 댄스, 크라카뱌크(폴란드 춤), 파데카트르, 카드리유 그 후가 사람들이 가장 기다리는 마주르카, 코틸리온, 러시아춤이었는데 사랑하는 사이는 반드시 마주르카를 같이 췄음 그래서 안나 카레리나에서 키티가 "그녀는 심장이 멈춰버릴 듯한 느낌으로 마주르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마주르카를 출 동안 모든 것이 결정날 거라 여겼던 것이다… 그녀는 이전 무도회들에서처럼 그와 마주르카를 출 사람은 자신이라 굳게 믿었기에, 다섯 명의 마주르카 신청자를 춤출 사람이 있다면서 모두 거절했다." 라고 브론스키에게 실망한 이유도 이것 때문임 한 사람이랑 두 번 세 번 춤추는 것도 대단히 실례일 뿐더러 손목에 순서표 같은걸 걸어 놔서 남자가 미리 춤신청을 한 후에 거기 이름을 적어놔야 하는게 매너라서 키티는 마냥 기다렸다고 한다.. 또륵 여담이지만 무도회장의 특징은 바닥이 매끈매끈해서 신발이 슬슬 미끄러져야 한다는 건데 그래야 춤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음 바닥이 제대로 안 미끄러우면 집주인이 욕을 많이 ;; 먹었다 함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소설 같은데 보면 신흥 귀족이 된 사람을 괴롭힌답시고 무도회장 바닥 손질법을 안 가르쳐 주기도 함 하루종일 엎드려서 기름칠을 해야 하나? 싶지만 놉! 하인들에게 거친 솔이 달린 신발을 신기고 며칠동안 계속 춤을 추게 하면 바닥이 번쩍번쩍 매끈해진다는거!! 우왕 ㅋㅋㅋ 잘 기억해놨다가 회귀했을 때 유용하게 쓰길 바라 ㅋㅋㅋ 그리고 또 하나! 무도회때 옷차림도 아주 중요하겠지? 기혼 여성은 위에 있는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가도 되지만 미혼 여성은 파스텔톤이나 흰색의 심플한 드레스, 간단한 장식만 하는게 규칙이었대 무식한 영애라고 무시 당하지 않게 기억해두렴 그 당시 프랑스어 유행 때문에 전쟁과 평화 원작 소설도 상당 부분이 불어로 적혀 있대 신기방기 출처
2차대전 초기 독일의 광기와 히틀러의 인기
"이것은 평화가 아니다. 20년짜리 휴전협정이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 당시 포슈 원수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독일에게 자비를 배풀어 한 편으로 끌어들이던가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 철저하게 짓밟던가. 그러나 그들은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독일의 힘을 찢어놓치도 못한 채 과도한 채무와 굴욕만을 요구하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다. 1차대전 이후, 베르샤유 조약은 독일을 짓누르고 있었으며, 독일인들은 절망에 허덕였다. 독일 국민들의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영국은 뒤늦게 프랑스가 강력히 주장했던 '독일에게 굴욕을 줄 정도로 가혹한 채무'에 반대했다. 그러나 1차대전 당시 본토가 짓밟힌 프랑스와 벨기에는 여전히 증오심에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채무 불이행을 근거로 군대를 동원하여 독일 서부 최대 공업지역 루르 지역을 침공하여 강제점령했다. 이것이 바로 '루르 점령'(Ruhrbesetzung) 사건이다. 1923년 3월 독일 루르, 프랑스 군의 행렬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지 않는 독일인들이 프랑스 장교로부터 폭행당하고 있다. 2년에 걸친 강제점령 기간 동안 프랑스군은 130여 명의 독일인을 총살했다. 군대를 제한당한 독일은 변변찮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또 공업지대를 빼앗긴 독일은 초인플레이션이란 경제적 재앙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황까지 세계를 덮쳤다. 2년 후 점령기간 동안 9억 달러의 차익을 남긴 프랑스 군은 철수했지만 이를 계기로 독일 민중의 베르사유 조약과 승전국에 대한 적개심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 때, 히틀러와 나치가 등장했다. 나치 독일, 베르사유 조약의 무효를 선언. '라인란트 재무장' 선포. 재무장과 동시에 각종 대규모 공공사업 추진으로 실업률 급감. 나치독일, 대독일의 통일을 외치며 오스트리아 합병 (안슐루스) 체코 주데텐란트 지역 강제합병 (뮌헨 조약) 사상자 4천만명을 낸 1차대전의 악몽에 시달리던 영국과 프랑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를 방관. 버려진 이들은 영국와 프랑스를 이렇게 불렀다. '서방의 배신자들'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 소련과 불가침조약 체결 후 폴란드 침공.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영국-프랑스-벨기에 3국, 연합군 결성. 대 독일 선전포고. 1차대전 종전 20년 만에 2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이 영국-프랑스 동맹과 정면으로 싸워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 아무리 독일이 발빠른 경제성장을 일궈내 막강한 공업능력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들, 상대는 로마 제국 이후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인류 역사상 최강국인 대영제국과, 그 대영제국을 상대로 수백년을 나란히 경쟁한 프랑스 식민제국이었다. (중략) ...' 연합군의 선전포고. 역으로 연합군 본토로 치고 들어가는 독일군 141개 사단의 진격. 독일 15기갑군단 제7기갑사단 에르빈 롬멜 소장, 프랑스 최정예 제1기갑사단, 제4기갑사단 격파. 마스강 도하 연합군의 대 독일 방어선, 3일 만에 붕괴 나치독일이 연합군에게 살포한 전단. "우리가 이긴다. 우리가 최강이니까." 독일군, 프랑스 전역 석권.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 대서양과 맞닿은 프랑스의 서쪽 끝, 브르타뉴를 점령한 독일군 '독일의 형제들이여! 우리가 마침내 해냈다!' - 나치 독일 기관지 '검은 방패'의 당시 1면 헤드라인 - 프랑스 수도, 파리의 개선문을 통과하는 독일군 에펠탑에 휘날리는 히켄크로이츠 파리에 입성한 선봉부대의 사열을 받으며 항복 서명장에 도착한 히틀러. 항복서명은 1차대전 당시 독일이 항복한 기차 칸을 그대로 가져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독일 장병들이 탑승한 열차가 역을 지나갈 때, 모든 일반 열차는 운행을 멈추었다. 귀국하는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독일인들. 1940년 독일 베를린, 라디오에서 격앙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장병들이 도착했다는 긴급 보도를 송출했다. 개선한 장병들을 보기 위해 생업을 멈추고 몰려드는 시민들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귀국한 히틀러의 시가행진 인산인해를 이룬 베를린, 지크 하일! (승리, 만세!)을 외치는 독일인들 (출처)
한반도 황금의 도시 미스테리 고대국가 <조문국>이야기
(예시 사진 관련 없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한반도엔 금의 나라, 조문국이란 고대 국가가 있었음 무려 기원전 7세기 김학여왕이 개국한 모계중심의 국가였음 어찌나 땅의 터를 잘 잡았는지 곡창지대와 금광까지 있어 조문국의 시대가 열리는 건 시간 문제로 보였음ㅇㅇ 그런데 오늘 날 역사서엔 단 한줄의 기록만을 남김 <서기 185년 신라 벌휴왕이 조문국을 정벌했다> -삼국사기- ???????? 대체 무슨일이...??? 때는 조문국이 멸하기(?) 1년 전인 서기 1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감 (? 붙인 반전이 아래 있음) 조문국 아래는 훗날 신라가 되는 사로국이 있었고 나날이 성장 중이었음 *사로국이지만 편의상 앞으로 신라라고 할게 (신라 제 9대 왕) 벌휴 : 야 요즘 윗쪽 동네에 조문국 꽤 잘 나가더라? 구도: 예 뭐 백제랑도 사이 좋아보이고 세력이 커져가는 듯 합니다만,, 벌휴: 안되겠다 더 커지면 곤란하니까 사신 둘 보내서 항복하라 하자 ㅇㅋ? 구도: (??) 예 그러시죠ㅋ ~조문국~ 사신: 어이~ 조문국~ 우리 신라 군사력 rg? 피본 나라가 한둘이 아냐ㅋ 좋은 말로 할때 항복해ㅋ (조문국 마지막 왕) 묘초왕: ㅋ쟤 뭐래니 죽여ㅋ 신라가 조문국을 만만히 본게 이미 조문국은 29명의 군사를 데리고 적라국을 토벌한 이력이 있었기에 군사력에 나름 자신만만했음 벌휴: 뭐라? 감히 사신들을 죽여??? 구도 불러와!!! 구도: 절 부르셨다고요? 벌휴: 야 구수혜랑 같이 가서 조문국 좀 정벌해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쟤네 정신 못차리고 우리 사신 둘 죽였어ㅡㅡ 구도: 아 예... ~전쟁 전날 밤~ 구도: 휴 내일이면 또 전쟁을 하러 가야하는구나 김욱보 (구도 아빠) 욱보: 아들~ 안자고 뭐하니... 구도: 내일 토벌을 하러 가야해서요 산책중이었습니다 아버지 욱보: 벌휴의 명이로구나... 욱보: 에휴... 우리가 세력이 컸더라면 벌휴가 아니라 김씨 일가가 왕위에 올랐을 텐데... 그래 어디로 가니...? 구도: 조문국으로 갑니다 욱보: 조문국?! 욱보: 조문국이면 금의 나라 조문국?!!! 그 나라 공주와 네가 혼인을 하면 우리 김씨 일가의 세력이 커질텐데... 욱보: 마침내 우리 김씨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고...!!! ... 욱보: 아이고 아니다... 정벌간다는 너에게 괜한 소리를 했지...? 잘다녀오거라... 구도: 예... ~전쟁중~ 자신만만했던 신라였지만 전쟁은 무려 7일이나 지속되었음 조문국은 궁터 주변으로 석성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신라를 대상으로 나름 선전하고 있었음 그러나 전투 끝에 왕의 목숨이 위태롭게 됨 묘초왕: 가서... 운모를 데려오거라... 시간이 없다... (조문국 마지막 왕녀) 운모: 어머니 저를 부르셨다구요 운모: !!!!! 어머니!!!! 묘초왕: 미안하구나 내 딸... 전쟁이 끝나면 왕위를 물려주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될 것 같구나... 운모: ... 한편 신라쪽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음 식량도 떨어져가고 군사도 막대한 피해를 입음 구수혜: 아씨 생각보다 전쟁이 너무 오래갑니다... 식량도 다 떨어져가는데... 구도: (김씨 왕가, 금의 나라, 공주라...) .......... 구수혜: 제 말 듣고 계신겁니까?? 조문국 완전 얕봤는데 우리 상황이 영 좋지 않습니다 무슨 묘책이라도 내야... 구도: 있을 것 같다, 묘책 구도는 몰래 성안으로 잠입에 성공함 그리고 그때 운모와 묘초왕을 만나게 됨 운모: 거기, 넌 누구냐 처음보는데 구도: 난 신라에서 온 구도라 하오 운모: 신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디까지 엿들은 것이냐!! 구도: 진정하시오... 공격할 의도는 없소 운모: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서 적국에 넘어와? 구도: 전쟁을 멈추고 싶소 이 전쟁은 조문국에도 우리 신라에도 큰 타격을 입혔소 운모: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실실 쪼개? 고운 얼굴로 웃는다고 내가 믿을 것 같아? 구도: 미안하오, 공주가 있다 들었는데 이리 미인일 줄은... 묘초왕: ...우리 운모는 일개 공주가 아닌 곧 조문국의 성군이 될 몸이다 구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성군이 되려면 나라가 있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운모: 이새끼가...!! 묘초왕: 어디 들어나 보자구나 무얼 원하느냐... 구도: 화친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서로의 힘을 합쳐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문국의 명예에 실추가 되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묘초왕: 그것을 어찌 믿느냔 말이다 구도: ...저와 혼인해주세요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신라 김알지의 6대손이자 장차 신라를 김씨왕가로 만들 파진찬 구도 입니다 묘초왕: 사내가 배포가 있다...ㅋ 합격ㅋ . . . 그렇게 운모와 구도는 혼인을 하게 되고 둘은 슬하에 여러 자식들을 두게 되는데 딸인옥모는 벌휴의 아들과 혼인을 해서 신라의 11대왕과 12대왕인 조분왕과 첨해왕을 낳음 뿐만 아니라 옥모의 허락 하에 신라 최초의 김씨 왕 제13대 왕 미추왕이 탄생하는데 조문국 정벌에 앞장섰던 구도가 바로 이 미추왕의 아버지임 뿐만 아니라 미추왕은 "옥모의 인통이 아니면 황후로 삼지 말라" 명을 내리는데, 이는 곧 조문국 왕실의 핏줄이 아닌 사람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말과 같았음 비록 운모는 사라진 조문국의 마지막 왕녀였지만 운모의 후손들은 신라를 점령해 갔음 여기까지 읽고 ??:// 픽션 아님??? 내가 알기론~~~ ...예 미천한 제가 틀리고 당신이 옳습니다. 제가 또 실수를, 제가 또 잘못을..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 ㅎ 그저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알게되어 벅차오른 역사 덕후가 쓴 글임 ㅎ 조문국이란 나라에 대해 워낙 자료가 적어서 여러 기사와 여러 자료를 읽고 그 중 조문국의 왕녀 운모와 신라의 구도가 혼인하고 멸한 과정을 풀어쓰기 쉬운 설을 택했을 뿐  연도로 보면 맞지 않은 부분이 있고, 더 널리 알려진 설이 따로 있긴 함 (구도가 운모와 혼인을 한 후 운모의 나라인 조문국을 쳤다는 이야기...인데 둘의 혼인 연도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장인의 나라를 쳤다는 설이 싫어서 이 설을 택함ㅋ) 묘초왕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름! 내 맘대로 정함! 머어땨용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조문국은 전설속의 고대국가가 아닌  실제 존재하던 고대 부족 국가였고 신라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임이 분명함 여기 나온 소문국이 조문국임 召 이 한자가 소 발음 되지만 조 발음도 됨 또 신라가 황금의 나라라 불린 것에 비해 경주 인근에서는 금광의 흔적이 없어 미스테리였는데 조문국을 알고나면 미스테리는 풀림 당시 조문국의 영향력이 미쳤던 곳들이 최대 금 생산지였기 때문임 신라가 김씨왕조가 된 것, 그 김씨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되준 것이 조문국의 금과 야금술이라해도 과언이 아님 신라는 한 국가를 병합한 뒤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처럼  그 국명을 지방 행정명으로 주로 사용했는데 조문국의 명칭을 조문군으로 바꾸고 지역의 토착세력을 유지, 간접통치한 것으로 보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조문국이 멸망하고 조문군이 되었다”는 대목이 이를 뒷받침 해줌 실제 출토된 조문국 유물 출토된 유물들에 따르면 조문국은 멸망 당한 것이 아닌 신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사진속 설명아님 예시자료이나 조문국 유적) 조문국 일대에선 370기가 넘는 고분이 발견됐는데 일부 고분의 연도를 측정한 결과 조문국이 멸했다는 시기보다 이후에 만들어진 고분이 존재하기 때문임 고분의 크기 역시 당대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결코 작거나 초라하지 않다하니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지닌 나라였음이 분명해 미추왕의 명대로 조문국이 신라의 왕비족이 되었다면 이건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높았던 것의 근거가 됨 이외에도 유일하게 고분의 주인으로 알려진 경덕대왕 관련 썰도 있고(신라왕❌) 조선시대에 등장한 조문국 이야기~ 조문국 후손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 조문국이 요충지인 이유... 등등 꽤 많은데 한번 찾아보길... 절대 내가 쓰기 귀찮은 것 임 이미 발견된 것들 보다 밝혀질 것들이 많은 조문국이라 더더 기대가 돼ㅎㅎㅎ 그럼 조문국의 위치는 어디냐!! 오늘날 의성임 의성에서는 잃어버린 왕국 조문국을 기억하고자 의성 조문국박물관도 만듦 시간 나면 가보시길... (난 아직 안가봄...) 출처 뭐야 걍 드라마 한편 뚝딱인데 존잼
'펑펑 울었다' 우한 영사에 전화한 文 "우리 모두 감동"
문 대통령 우한 총영사관에 직접 전화 "깊이 감사..감동하고 있다" "한인회에도 각별한 감사의 인사 전해주길" 부총영사, 영사 "상황 종료까지 최선 다하겠다" 정다운 영사 지난 1일 전세기 이륙 후 SNS에 소회 밝혀 화제 "333명 무사 탑승 후 이륙 전문 보내고 차에서 펑펑 울었다" 총영사, 실무자, 한인회, 중국 현지 행정 직원에게까지 감사의 인사 통화하는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봉쇄된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 지역 현지 교민 701명을 철수시킨 총영사관 직원들에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우한 총영사관 이광호 부총영사, 정다운 영사와 20여분 통화하고 "총영사관 직원 모두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며 대통령인 나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모두 감동하고 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정 영사는 우한 교민들을 무사히 전세기에 태운 뒤 SNS에 '마지막 전세기에 333명이 무사 탑승 후 이륙 전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는 소회를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인회에도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며 "화물기 운항 시에 현지에서 필요한 물품들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 부총영사와 정 영사는 "상황 종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다 고 답했다고 한다. 정 영사는 "오는 3월 임기 만료 예정이나 연장근무를 요청해둔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중국 현지에서 귀국지원을 맡은 정 영사는 지난 1일 자신의 SNS에 "마지막 전세기 333명 무사 탑승 후 이륙 전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며 "이제 저는 여기 남은 교민들을 다시 챙겨드려야 한다"고 소감을 전해 감동을 줬다. 정 영사는 이 부총영사에게 "수많은 언론 전화로부터 저와 직원들을 지켜주시고, 본부에 쓴소리를 마구 해댈때에도 제 편이 되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또 같이 일한 영사들에게도 "제 마음대로 부탁드려도 다 해주시고 힘들 때 위로해주시고, 제가 쓰러지지 않고 버틴 건 두분 영사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 영사는 실무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평생 갚아도 모자랄 짐을 지워드렸다"면서 "말도 안되는 요구와 지시에도 묵묵히 따라주시면서 밤잠 못 자고 홈페이지 공지 올리고, 탑승자 명단 취합하고 정리하고 배치하고, 빗발치는 전화를 받아 안내해주고 통역해주셨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우한서 교민 철수 전세기 실무 담당한 정다운 영사(사진=연합뉴스) 그는 글에서 최덕기 후베이성 한인회장, 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중국 행정직원들, 셔틀버스 봉사자 등을 직접 거론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정 영사는 특히 최 한인회장과 정 사무국장에게 "이번 사태 해결에 일등 공신"이라며 "위챗 단체방을 만들어 여기 있는 분들을 다 모아주시고 방을 나눠 공지해주시고 부탁도 다 들어주셨다"고 했다. 그는 중국인 행정직원들 역시 "바이러스로 너무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공항에 나와 교민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주고 물을 나눠주셨다"며 "중국인 행정직원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정 영사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9살 7살 천둥벌거숭이 둘 데리고 혼자 비행기 타는데 잘 가라는 배웅인사도 못하고, 비행기에서는 편한 자리는커녕 애들과 같이 앉지도 못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2인1실 좁은 격리실에 아이 둘과 함께 힘들어하고 있을 아내 생각이 나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썼다. 이어 그는 "3년 우한 생활 내내 하고 싶은 것 제대로 응원해주지 못하고 우한 떠나는 날까지 남편 잘못 만나 고생만 시키다 보내는 것 같아 계속 울컥울컥 눈물이 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