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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

부족한 수면을 보충해주면 우울증 위험이 49% 감소한다고 합니다. 평소 수면이 부족하다면 쉬는 날에라도 충분히 주무세요.

기획 : 이석희 기자 / 그래픽 : 홍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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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유행어를 시킨 '전설의 이등병'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당직자, 국방위원들과 추석을 맞아 9월 6일 경기도 파주의 육군 포병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취침하고 야간 근무까지 체험한다고 합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새누리당 대변인은 “명절에도 고향에 못 가는 전방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하려는 자리인 만큼 잠시 잠깐 방문해 기념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방식의 형식적인 행사는 지양하려는 것”이라며 “집권여당으로서 겉치레가 아닌 ‘현장 중심’의 민생 행보를 보이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일행의 군부대 방문은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오면 장병들이 고생하는데 굳이 가느냐’는 주장부터 ‘노무현, 문재인은 되고, 이정현은 안된다는 이유가 뭐냐’는 반박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군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군부대 방문 비화를 통해 정치인들의 군대 방문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현역미필 많아 난감했던 ‘TV내무반 신고합니다’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군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TV내무반 신고합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TV내무반 신고합니다’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출신 부대를 방문해 현역 장병과 만나 군 시절을 회상하며 옛 전우를 만나는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제작진들은 모두 병장 출신으로 구성됐는데, 불과 10회 만에 출연진 섭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을 섭외하려고 전화를 해보면 상당수가 미필자거나 방위병 출신이라 출연할만한 정치인들이 극히 한정됐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의원은 1968년 전방 을지부대에 복무하다 1971년 상병 만기 제대를 해 출연이 가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병 만기 제대를 한 이유는 당시에 존재했던 계급별 정원 때문) 1999년 3월 방송된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을지부대 편에는 노무현 의원과 함께 갔던 예비역 아버지가 철책에 근무하는 아들을 만나는 장면이 방송됐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아버지들이 이 장면을 보고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등병의 패기에도 웃으며 선뜻 응했던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의 군부대 방문 모습 중 아직도 화제가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군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등병이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유행어를 해달라는 장면입니다. 노 대통령은 ‘근데 요새 이병도 용감하네요’라며 ‘괜찮습니다. 괜찮고요’라는 말로 받아 주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 뒤에 있는 부대장은 웃고 있었지만, 내무반 선임들은 뜨끔했을 것입니다. 군 계급에서 가장 낮은 이등병이 군 통수권자에게 감히 유행어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무현 정권에는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유행어를 가지고 정치 풍자를 했던 시절이었고, 누구나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말해도 잡혀갈 염려도, 고소, 고발 당한 일도 없었습니다. ‘경호원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장병의 갑작스러운 포옹’ 2004년 12월 프랑스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은 비밀리에 이라크에 있는 자이툰 사단을 방문합니다. 장병들을 만나 이동하던 중 갑자기 한 병사가 뛰어나와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라며 노 대통령을 안고 한 바퀴 돌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경호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리 자국의 군인이지만 갑자기 대통령에게 돌진했기 때문입니다. 제대 후 김준석 상병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안기 위해 뛰어나갔을 때) 그 순간 검은 복장의 경호 요원들이 나를 제지했고, 이어 ‘큰일났다. 이거 내가 잘못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지휘관들로부터 “대통령님이 다치면 어떻게 할 뻔 했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뒤탈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자이툰 병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린 노무현’ 갑작스러운 병사의 포옹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다칠라’고 하면서도 활짝 웃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 병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료지원단인 ‘제마부대’와 건설지원단인 ‘서희부대’를 파병했지만, 미국은 더 많은 전력의 파병을 요구했습니다. 북핵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던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8천 명 규모의 사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합니다. 당시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사단의 파병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국민의 지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약소국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의 요청에 자국 병사를 파병시켰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고 그로부터 1년 뒤,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 장병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인정받지 못한 파병으로 마음 상했던 장병들은 자신들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낸 노무현 대통령의 배려가 신기하면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군대에 오면 장병들은 힘듭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 군대 생활할 때는 높은 사람 오면 힘들었는데’라며 그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어도 ‘그래도 제대하고 싶나?’라고 묻는 대통령과 ‘네’라고 대답하는 군인들, 노 대통령은 군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치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군대를 방문하는 행사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문이 진정으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틀에 박힌 격려보다 아들을 면회하고 오는 길에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오랜만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군대 면회 후 어머니 몰래 건빵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며 ‘PX가서 고참 몰래 맛있는 거 사 먹어라’는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종이 가방
미국에 ‘찰스 스틸웰’이라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스틸웰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매일 여러 개의 가방에 물건을 가득 담아 상점에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스틸웰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어머니가 힘겹게 물건을 들고 가는 모습을 봤는데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배달할 물건보다 그것을 담은 가죽 가방들이 더 무거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스틸웰은 이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가방을 가볍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스틸웰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질긴 종이로 가방을 접었는데 뜻밖에도 밑바닥이 네모난 ‘종이 가방’이 만들어졌습니다. 종이 가방에 손잡이까지 달자 가죽으로 만든 가방보다 훨씬 가벼울 뿐만 아니라 편리하기까지 했습니다. 스틸웰은 자기가 만든 종이 가방을 들고 어머니한테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 이제 이 종이 가방에 물건을 담아 배달해 보세요.” 아들이 내미는 신기한 종이 가방을 보고, 어머니는 활짝 웃다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어머니는 종이 가방을 생각해 낸 아들의 아이디어보다 자기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는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종이 쇼핑백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효심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라는 말처럼 어머니를 돕겠다는 효심으로 만든 것이 스틸웰의 가정에 풍요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없어도 반드시 누군가의 자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최선의 효를 다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자기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효#부모님#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추석은 언제부터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되었나?
예전부터 ‘설’과 ‘추석’ 중 어느 명절이 더 민족 최대의 명절인지 궁금했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았나요?  추석이 이렇게 큰 명절이 된 건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도 관청에선 휴일 규정이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의 관료들은 음력 1, 8, 15, 23일이 쉬는 날로 정해져 있었다죠.  당시 동양엔 요일 개념이 없었는데도 7일 간격으로 놀았습니다. 하늘에서 붙박이로 있는 별(항성)을 제외하고 태양 - 달, 5개 행성(화성 - 수성 - 목성 - 금성 - 토성) 등 7개 천체만 움직이기 때문에 7을 신성시 여겨 날짜 간격 단위를 7로 했기에 서양과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던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 서양식 요일 개념이 적용되면서 기독교 세계처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게 되었지요. 당시 조선이 일본을 통해 서구식 요일 제도를 받아들임에 따라 일본이 번역한 대로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순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이름으로 요일명을 정했는데요.  중국은 이와 달리 평일 5일을 1 - 2 - 3 - 4 - 5 요일로 달리 명명해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조선시대 휴일이 현재보다 적어 보이지만, 항상 예외가 있는 법.  춘분, 동지 등 24절기에 해당 하는 날도 놀았습니다.  (한 달에 두 번) 그 외에도 임금님 생일, 선대왕 기일 등 별도의 임시공휴일도 있었기에 한 달에 최소 6~7일 이상 휴일이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연간 100일 정도 휴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 5일제 시행 전 대한민국 직장인보다 더 많이 쉬셨습니다. 대신 노는 날과 절기일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는 거였지요.  대체휴일 제도가 생기기 전엔 일요일과 명절이 겹치면 그냥 하루 손해 보던 것과 동일하지요. 특히 세종 당시엔 당직 개념이 있어서 궁인들이 휴일에 근무하면 평일 대체 휴무가 가능했고, 아이 출산 시 관노이더라도 출산 여성에겐 90일, 남편도 15일 의무 휴일을 주었다는 겁니다. 다만, 당시 조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은 매달 8, 23일 이틀만 휴일이었다네요.(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고생이네요. ) 그 외에 조선시대 당시 휴일로 지정된 명절은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설(1월 1일), 정월대보름(1월 15일), 단오(5월 5일), 추석(8월 15일).  흔히 정월대보름 대신 한식이라고 알지만, 그래서 그런지 요새 5대 명절 운운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나마도 고려시대 9대 명절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것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들 명절마다 쉬는 기간이 달랐으니, 설날은 7일 연휴(오~. 스케일 크신 조상님들. ), 정월대보름과 단오는 각 3일간 쉬었지만, 추석은 딱 하루만 쉬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 > 정월대보름 = 단오 > 추석 순으로 그 비중이 달랐던 겁니다. 이는 당시 상황상 설, 정월대보름, 단오 등의 시기는 겨울이거나 여름이어서 날도 궂으니 집에서 쉬라는 따뜻한 배려인 반면(특히 1월의 경우엔 거의 절반 가까이 휴일이었어요.) 한창 수확을 하는 가을철인 추석은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리 했을 겁니다.  실제로 일부 영남지역에선 음력 8월 15일엔 아직 벼가 여물지 않아 음력 9월 9일인 중구에 차례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등 타 명절은 그냥 넘어가는데 왜 추석은 갑자기 설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2 TOP’으로 격상되었을까요? 이는 구한말 서양 문명과의 만남이 원인이었습니다. 미국 선교사 : “우리 미국엔 조상과 신에게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이있다. 조선에도 이 같은 명절이 있는가?” 우리 조상님 : “이 넘들이……. 우릴 뭘로 보고~. 너넨 겨우 1620년부터 그거 했냐? 우리는 1800년 전 신라 유리왕 때부터 한가위란 추수 명절이 있는 뼈대 있는 나라이니라!” 이러면서 추석 자랑을 한 거죠.  이처럼 서구 문명과 접한 동양 3국 모두 미국 추수감사절처럼 중국 중추절(仲秋節), 일본 오봉(お盆) 등 자기네 가을 명절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께 감사를 표시하는 민족의 대표 명절로 격상시킨 겁니다. (가끔 추석을 중추절이라 부르시는데, 그건 중국 명절 이름이에요.  중국인들은 음력 설날은 춘절(春節), 음력 8월 보름을 중추철이라고 해 두 명절 이름을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유이하게 설날과 추석이 민족 고유의 명절로서 3일 휴일로 지정된 겁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도 글로벌 경쟁에 따라 그 위상이 바뀌었다는 거, 재밌는 현상이죠?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과학 경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