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루셔니스트>. 80분의 세상 속, 무한한 시간을 품고있는 이야기.
영화는 환상의 예술이다. 실제로 볼 수 없는 이미지와 들을 수 없는 사운드, 그리고 겪을 수도 없는 이야기들을 엮어 세상에 던져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상상과 환상을 기반으로 한 영화 예술은 그런 점에서 가히 혁신이었다. 최초의 영화라고 알려진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은 당시 사람들에게 크나큰 공포이자 충격이었다. 평면에 아로새겨진 이미지가 움직일 뿐더러 그것이 가진 입체성은 오로지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의 특성을 가장 많이 반영할 수 있는 장르는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책으로만 혹은 모형으로만 보았던 2차원의 인물에 숨을 불어넣은 애니메이션은, 그 이야기에 한계도 없을뿐더러 의도에 따라 삽화나 그래픽으로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장르다. 그런 점에서 본 글에서 제시할 실뱅 쇼메의 <일루셔니스트>는 눈으로, 귀로 그리고 머리로도 많은 상상과 생각을 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리우는 코미디 배우 자크 타티가 그의 딸에게 보냈던 편지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또한 주인공 역시 자크 타티를 모델로 한 것이고, 영화 내에서 자크 타티가 출연하였던 영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자랑이자 훌륭한 배우, 그리고 감독이었던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일루셔니스트, 즉 마술사다. 그는 마술 도구들을 실은 카트를 끌고다니며 마술 장기로 밥벌이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너무도 똑똑해졌다. 눈앞에 일어나는 마술이 정말 '마법'이나 '요술'이 아니라 단순한 '손장난'인 것을 관객들은 이미 알고있다.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기도 전에 이미 토끼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알고있으며 왼손에 쥐고있던 반지가 어떻게 오른손에서 나타나는지에 대한 원리도 이미 알고있다. 사람들은 알고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모르고있는, 혹은 그 정도의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의 보다 자극적인 무대를 보고싶어할 뿐이다.
흥미로운 눈으로 그의 손을 따라가고 그의 손장난에 환호성을 내지를 관객은 이제 없다. 이것이 바로 일루셔니스트, 그의 현실이었다. 그의 현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지내는 곳은 변변치 못 하여 본업인 일루셔니스트를 두고 또다른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심지어 그 본업에서도 그저 사람들의 지루한 하품과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 얼굴만 볼 뿐, 그의 손짓 하나 하나에 설레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떠돌이 광대와 같은 현실에서도 그리고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루셔니스트로서의 비현실에서도 도무지 행복한 것 같지가 않다. 러닝타임 내내 그는 이렇다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이따금 앨리스로 인해 미소를 짓거나 무대 위에서 억지 웃음을 짓긴 하지만, 대부분의 장면에서 아무런 감정 없이 멍하니 있거나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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