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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가 너무 자주 집에와요....

남편이 진짜 괜찮은 사람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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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런데 올라오는 글은 전개가 이게 아닌데...원래 싸우고 막장으로 가야하는거 아님? 그나저나 엄청 멋진 남편이네요 :)
@vtaiji 아침드라마 시나리오가 꿀잼이긴하죠ㅋㅋ
기분좋은글이네요 악행도 전이가 되지만 선행은 더 더 심하게 기분좋게 전이가 되죠^^
너무심하다생각해요 아무리시누이라도냉장고뒤져서가져간다고여?
아니 이런 전개 무엇?!ㅋㅋㅋ
흠...막장드라마로 시작해 로맨스 해피엔딩이네ㅎㅎ
흐~~~~~ 결말이 늠나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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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기괴한 증후근
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 1995년 영국의 외과의사 토드가 처음으로 보고한 증상이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커지고 작아짐에 따라 물체가 크거나 작게 보이는 것 처럼 이 질환에 걸린 환자는 사물을 실제의 모습과 다르게 왜곡된 형태로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빌딩이 엄청 크게 보일수도 있고 지나가는 차는 매우 길거나 작게 보일 수 있게 된다. 극히 드문 희귀병이므로 걸릴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일단 걸리면 나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이 증후군을 앓았을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2. 찰스 보넷 증후군 찰스 보넷 증후군은 1760년 스위스에서 찰스 보넷이 처음 보고 했다. 이 증후군은 실명한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들은 실명했음에도 생생한 시각적 환각을 경험한다. 이 때 보이는 시작적 환각은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꿈에서 보는 것들보다 더 생생하고 선명하다. 찰스 보넷 증후군의 환자들은 주로 검은 형태의 몸집이 작은 사람을 보기도 하고 작은 동물들을 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찰스 보넷 증후군에 걸린 76세의 노인이 작고 동그란 사람의 형상과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보인다고 호소한 사례도 있다. 3. 보안드로피 보안드로피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는 질환이다. 그래서 실제로 소처럼 행동하려고 하며 풀을 뜯어 먹으려고 한다. 이 증상의 원인은 꿈이나 최면, 자기 암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서는 고대 바빌론의 황제,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신의 벌을 받아 짐승처럼 행동하게 되었다고 묘사하는데 보안드로피의 증상과 같이 소처럼 행동하며 풀을 뜯어 먹으려 했다고 다니엘 서에 기록되어 있다. 4. 클뤼버-부쉬 증후군 클뤼버-부시 증후군은 뇌의 편도체 손상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편도에 손상이 생기면 인간의 행동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우선 감정의 변화가 사라진다. 특히 공포심이 사라지는데 이전에는 무서워하던 대상을 봐도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사물의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나무토막처럼 먹을 수 없는 사물을 먹으려 하기도 한다. 이 질환이 무서운 점은 성욕의 과다 증가 때문인데 이성이나 동성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생물을 상대로도 성행동을 하려 한다. 5. 코타르 증후군 세상에 자기 자신을 좀비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코타르 증후군에 걸리면 그렇다. 코타르 증후군은 환자 자신이 죽었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부패 중이거나 혈액 또는 장기를 잃어버렸다고 믿게 된다. 이 증후군을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신경학자 쥘스 코타르의 이름을 땄는데 그는 1880년 자신의 강의에서 마드모아젤X라는 가명의 환자를 설명하였다. 그녀는 자기 신체의 여러 부위의 존재나 식사의 필요성을 부정하였는데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자기 자신이 영원히 저주 받은 몸이라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죽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고 결국 굶어 죽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환자 중 희귀한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불멸의 존재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96년에는 오토바이 사고로 뇌손상을 입게 된 남자가 코타르 증후군에 걸린 사례가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이 패혈증이나 에이즈, 황열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어머니를 따라 남아프리카로 갔는데 그는 자기 자신이 어머니의 영혼을 따라 지옥을 구경하고 있으며 자신의 몸은 스코틀랜드에 잠들어 있다고 믿었다. 6. 카그라스 증후군 카그라스 증후군은 자신의 배우자, 친구, 주변인들이 모두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변장한 다른 사람들이라고 믿는 증상이다.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기억도 모두 왜곡되거나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 되었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카그라스 증후군은 주로 조현병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며 뇌손상이나 치매로 인해 노인들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카그라스 증후군의 원인은 가까운 사람들과 있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뇌손상이나 다른 이유로 분비되지 않으며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익숙함, 아늑함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낯설게 느껴지면서 망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생긴다. 2015년 9월 한국에서는 50대 남성이 76세 어머니를 칼로 찔러서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원인은 그가 앓고 있던 카그라스 증후군 때문인데 그는 자신이 찔러 죽인 것은 어머니의 모습을 한 식인종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낯설게 느껴진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 될 것이다. 7. 프레골리 증후군 이탈리아의 연극 배우 레오폴도 프로골리는 무대 위에서 아주 빠르게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는 걸로 유명했다. 프레골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프레골리 증후군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사실은 한 사람이 변장한 거라고 믿는 망상증이다. 이 증상에 걸린 환자는 기억을 떠올릴 때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봤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전부 비슷하게 보일 뿐 이다. 매우 희귀한 사례이긴 하지만 조현병이 심한 경우 프레골리 증후군과 카그라스 증후군은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8. 외계인 손 증후군 인간의 좌뇌와 우뇌는 기능적 차이가 있어서 뇌의 두 반구는 뇌량이라는 다리를 통해서 서로 정보를 주고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뇌량이 손상되면 두 반구 간의 정보소통이 차단된 분리뇌가 된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바로 이 분리뇌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증상이다. 증상은 한 쪽 팔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데 무서운 건 마치 한 쪽 팔이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물을 마시려고 컵을 들면 외계인 손이 컵을 뺏는 다던가 자신의 얼굴을 때리거나 심지어 목을 조르기도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뇌량의 손상으로 정보 교환이 안 되서 한 쪽 뇌가 하는 일을 다른 쪽 뇌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며 심지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9. 아포템노필리아 (절단 도착증) 수 많은 도착증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절단 도착증이다. 이러한 도착증을 가진 사람들은 멀쩡한 신체의 특정 부위를 자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신체를 훼손하거나 절단 했을 때 구급 조치를 해줄 외과의사를 찾기도 한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도착증 중 하나인 아크로토모필리아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아크로토모필리아는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사람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지만 아포템노필리아는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아크로토모필리아가 새디즘의 극치라면 아포템노필리아는 마조히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오토파지아는 충동 조절 장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증상은 자기 자신의 신체 일부를 먹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며 이를 억제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실제로 욕구에 따라 자신의 신체를 먹고 난 뒤에도 어떤 후회나 죄의식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이나 안도의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사실 인간의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죽은 세포를 먹어치우는 작용이 일어나지만 자신의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을 먹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 형태의 자기 식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아포템노필리아와 마찬가지로 자기 파괴적 행위를 통해서 쾌감을 얻는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곧 지구에 소행성이 들이닥친다는데 오레오는 누가 지킴?.jpg
나사에서 소행성 하나를 발견함 근데 그 소행성 경로가 지구를 향하고 있었음 나사는 "2020년 11월 2일쯤에 지구를 지날건데 충돌 확률은 0.4%정도임" 라고 함 최근 쩌리를 자주 들어왔거나 아니어도 알 여시들은 알거임 11월 2일은 미국 대선 전날이었음 그래서 소행성이 지구쪽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고 함 미국에서 트위터가 빠질 수 없지 어떤 트위터리안이 그래서 소행성이 지구로 곧 들이닥친다는데 누가 오레오를 지켜? 라고 트윗을 했고.... 오레오(홍보마케팅팀)은 이 트위터를 보게 됨 "어...?그러게????" 세계종말이 오면 오레오는 누가 지키지? Ummmmmmm...... 좋은 생각이 난 오레오는 전화를 거는데... ???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스발바르죠? 저는 오레옵니다. 저장고를 지어주세요."(진지) "네??? 여기는 종자를 저장하는 곳인데요....?????" 오레오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금고에다가 저장고를 주문한거임ㅋㅋㅋㅋㅋㅋㅋ 스발바르 국제 종자 금고는 혹여나 있을 세계대재앙 이후에 살아남은 인류를 위해 전세계 식량식물 씨앗들을 종류별로 영구 보관 하는 곳임 오레오는 거기에 오레오를 위한 저장고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거임ㅋㅋㅋㅋ 그것도 "님 한달 뒤에 소행성이 지구에 들이닥칠 위험이 있으니까 한달안에 지어주세요." 라고 요청 "아니 2년이 걸리는 일을 30일 안에 해달라고????" 결국 해보기로 한 스발바르 진지하게 어떻게 지을지 회의도 하고 공사를 착수한 끝에 10월 23일, 공사를 완료 함 오레오 저장고 앞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오레오 제조법과 많은 양의 오레오를 저장고에 비축한 뒤 문을 닫음 오레오는 세계 종말 이후에 살아남는다면 저 좌표로 가라고 함 거기에 오레오가 있을거래 한 트위터로 시작된 오레오 저장고 프로젝트였음 끝 출처 와 진짜 마케팅 천잰갘ㅋㅋㅋㅋㅋ 어떻게 저런생각을 하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번의 제안.jpg
독일의 한 남작가에서 태어난 소년 베르너 폰 브라운 폰 브라운은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작곡가를 꿈꾸는 소년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망원경을 주었고 그 후로 이 소년은 천문학에 빠져들게 되지 소년은 공상 과학 소설들을 읽으면서 우주 탐험에 매료됐어 우주에 완전 매료 된 소년은 여태껏 해오던 음악을 때려 치우고 우주를 개척하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돼ㅋㅋㅋㅋ 그 후로 폰 브라운은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 근데 참 이게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소년의 수학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어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해 수학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라나 뭐라나ㅋㅋㅋㅋㅋㅋㅋ 소년은 학교 공부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잊고 달나라 여행을 꿈꿨어 완전 우주 처돌이가 된 소년 폰 브라운은 급기야 17살에는 “우주여행협회”라는 모임에 가입까지 해가며 우주여행의 꿈을 더더욱 키워나갔지 그렇게 작곡가를 꿈꾸던 음악 소년은 1930년 베를린의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로켓 연구에 모든 열정을 쏟았어 그러던 1932년 어는 날 폰 브라운이 가입한 우주여행협회는 군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액체연료 로켓 발사 실험을 진행했어 우주여행협회&군 간부들 : (기대) 셋 둘 하나 쏘세요!! 실험의 결과는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아주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어 하지만 당시 독일군의 로켓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던 발터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을 매우 눈여겨 봤어 아직은 초보 단계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로켓이 아주 유망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던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 “대학원 과정을 지원 해줄테니 육군에 들어와서 로켓 개발 연구를 계속 해 보는 게 어떻겠나?” 도른베르거 대위의 말은 폰 브라운의 인생은 물론 앞으로의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첫 번째 제안이었어 폰 브라운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지 그렇게 폰 브라운은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로켓 연구에 들어갔어 그 후 같은 해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을 무려 2년 만에 졸업하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에 진학 했어 거기다 물리학을 전공한지 2년만인 1934년에 박사학위를 받음ㅋㅋㅋㅋㅋ 첫 대학에 진학한 후 4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따냄ㄷㄷㄷ 그리고 같은 해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A-2 로켓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 함 당시 브라운의 나이 고작 22세...! 도른베르거 대위의 원픽은 초대박이었음 ㅋㅋㅋㅋㅋㅋ A-2 로켓이 성공하자 독일 정부에서는 로켓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어 독일은 1936~1937년 발트 해안에 있는 페네뮌데에 아예 로켓 연구소를 설립해벌임 그리고 폰 브라운이 연구소 팀장이 되어 로켓 개발을 주도했지 존나 20대에 연구소 팀장이라니;;;; 폰 브라운이 한창 로켓에 미쳐서 일 하던 어느날 폰 브라운에게 두 번째 제안이 들어왔어 아니 그건 사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어 1937년 독일은 폰 브라운에게 나치에 입당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폰 브라운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폰 브라운은 나치당에 가입했어 게다가 나치의 친위대인 SS에도 가입했지 <맨 앞 왼쪽=발터 도른베르거 장군, 빨간 동그라미=베르너 폰 브라운, 1941년 3월, 페네뮌데 연구소> ! 폰 브라운은 나치 당원이 되어서도 로켓 연구를 계속 했어 몇 번의 실패 끝 세계2차대전을 1년 앞 둔 1938년 폰 브라은 A-5 로켓 발사에 성공 했어 그 후 폰 브라운은 A-5 로켓의 결과를 토대로 이 전에 발사에 실패했던 A-4 로켓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지 A-4는 세 번의 실패 후 1942년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 무르익어 감과 동시에 발사에 성공했어 A-4 로켓의 성공은 독일에게 있어서 아주 큰 의미였어 초기 단계였던 로켓 개발 연구가 이젠 만드는 족족 발사에 성공할 정도로 기술력이 향상 된 건 물론이고, 지금까지 개발 된 로켓과 달리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거의 최초의 로켓이었거든 현대 로켓의 시조격인 셈이지 하지만 A-4 로켓이 바로 생산된 건 아니야 독일 군부의 내부 갈등 때문에 A-4 로켓에 대한 상부 보고가 미뤄졌거든 그래서 A-4 로켓 발사가 성공한지 1년이 지난 후에야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은 상부에 A-4 로켓에 대해 보고했어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이 보고 한 사람은 바로 히틀러였어 아까 A-4 로켓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고 했지?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A-4 로켓을 곧장 ‘보복의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A-4 로켓은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들을 무차별 폭격하는데 너무나 안성맞춤인 무기였던거야 독일은 바로 이걸 노리고 로켓 연구를 시작 한 거였어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인 독일은 현재 일본처럼 군사력에 제한을 받고 있었어 독일군의 병력은 물론 비행기, 함정, 대포의 수까지 제한하는 베르사유 조약 체결(1919) 때문이었지 하지만 제한 대상에 "로켓"은 포함되지 않았어 다른 나라들이 독일을 제한 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 낸 거야 독일은 이 맹점을 이용해 1930년부터 로켓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연구를 이끌 사람으로 폰 브라운을 영입한 것,,!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A-4 로켓을 보복의 무기로 쓰겠다는 히틀러의 결정으로 이 때부터 A-4 로켓은 V-2 로켓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로켓의 이름에 들어간 알파벳 A는 독일어 ‘Aggregat(복합기계)’에서 따 온 거고 V는 독일어 ‘Vergeltung(보복)’에서 따 온 거야 성능이 입증되자마자 이름부터 복수로 바꾸다니;; 독일이 처음부터 로켓을 무기로 이용하려고 개발 했다는 걸 아주 잘 알 수 있는 대목임 도칸새끼덜; 보복의 무기로 V-2 로켓이 제일 처음, 그리고 제일 많이 향한 곳은 영국 런던이었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4,320발의 V-2 로켓이 발사됐는데, 특히 런던은 약 1,200발의 폭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대 <V-2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영국 런던 도심의 빌딩> 하지만 여기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V-2 로켓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만큼 V-2 로켓 1대가 생산 되기까지의 과정도 어마어마했다는 점이야 V-2 로켓 한 발 쏘는 데 드는 비용 =전차 수천대 생산비용 V-2 로켓 1개 생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넘사벽>>>>>>>>>>>>>>>>>>>>>>>>>>>>>>미국이 각종 무기를 무한대로 찍어내는데 걸리는 시간 미국ver._쇼_미_더_머니.jpg 단시간에 동일 사양의 무기를 존나 미친 듯이 찍어내던 미국에 비하면 V-2 로켓은 가성비가 매우 안 좋았다고 볼 수 있지 근데 V-2 로켓 생산 비용이 조금만 더 쌌더라면? V-2 로켓이 조금만 더 빨리 완성 됐다면? 히틀러에게 조금만 더 빨리 보고가 됐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V-2 로켓이 더 많은 나라로 발사됐다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V-2 로켓을 두고 이렇게 말했어 만일 V-2가 6개월만 먼저 나왔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이 엄청난 무기를 개발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가성비가 너무 후달렸고, 1945년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승기는 완전 연합군으로 기울었어 독일의 패전을 직감한 폰 브라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 폰 브라운은 1945년 5월 히틀러가 자살한 후 미국에 순순히 항복했어 미국은 폰 브라운을 어떻게 했을까? 항복했어도 나치니까 그 자리에서 죽였을까? 살려서 훗날 전범 재판에 세웠을까? 미국은 폰 브라운을 죽이지도, 전범 재판에 세우지도 않았어 당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때의 전범 기술자을 빼돌려서 자기네 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미국은 독일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일명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1순위가 폰 브라운이었다고 함ㅋㅋㅋㅋ (여기에 731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도 있음ㅡㅡ) 말만 블랙리스트지 실상은 위시리스트 아니냐; 폰 브라운이 왜 1위였는지는 V-2 로켓만 봐도 이미 전쟁 때 그 파괴력이 입증 됐쥬? 그런 위시리스트 넘버원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미국 입장에서는 존나리 땡큐베리머치 아니겠숴? 하지만 폰 브라운은 모다? 나치쟈냐ㅇㅇ 그래서 미국 정부 내에서는 폰 브라운 처분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어 하지만 결국 1945년 6월 미국 국무장관은 폰 브라운과 다른 전문가들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을 승인했어 근데 또 막상 얘를 대놓고 미국으로 데려가자니 나치였던게 넘나 걸리는 거야(염병; 나치랑 찍은 사진도 많아서 나치 아니라고 구라 칠 수도 없었음ㅋㅋㅋㅋ 그래서 폰 브라운은 일명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을 통해 아주 $은.밀.ㅎr.ㄱㅔ-★$ 미국으로 보내졌어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 간 폰 브라운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미군과 함께 일하면서 로켓 개발 연구에 매진 했어 1953년 미국 최초의 대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발한 것도 폰 브라운임 우주 처돌이 폰 브라운은 로켓 개발 외에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선전하는 모델로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했어 수많은 대중 잡지에 우주개발의 미래에 대한 글을 기고했고, 그 중엔 우주정거장에 대한 개념을 제안 한 것도 있었어 게다가 우주여행에 관한 월트 디즈니 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디즈니랜드의 기술자문을 맡기도 했대 <월트 디즈니와 전투기 모형을 들고 있는 폰 브라운, 1954년> 전쟁으로 돈도 두둑히 벌었겠다, 로켓 연구 1인자도 데리고 있겠다 미국의 어깨는 아주 하늘 높이 치솟았어 그러던 어느날 세계를 뒤흔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벌임ㅋㅋㅋㅋ 미국은 이 일로 존나 충격을 받았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우리가 원자폭탄에서는 4년이나 앞섰고, 수소폭탄에서는 2년을 앞섰는데 인공위성에서는 뒤졌다고...? 우리가?ㅋㅋㅋㅋ렬루?ㅋㅋㅋㅋㅋ..ㅋ.ㅋ... 위대한!!!!!!!!!!! 우리 유에쎄이가!!!!!!!!!!!! 고작!!!!! 소련 놈팽이들한테 뒤쳐지다니!!!!!!!!!!!! 세계 최초가 유에쎄이가 아니라니!!!!!!!!!  으으으 분하다!!!! 소련이 무섭게 성장하자 똥줄이 타기 시작한 미국은 각잡고 인공위성 연구를 시작했어  그리고 여기엔 아주 당연하게 폰 브라운이 참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누구보다 우주 로켓 처돌이 +천재였던 폰 브라운은 자신이 개발한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량해 주피터 로켓을 설계했어 그리고 이걸 더 개발해서 주노 1을 완성시켰고, 이듬해인 1958년, 무려 1년만에 주노1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스플로러 1호 발사 모습> <우주에서의 익스플로러 1호> <위성이 궤도에 진입했음을 확인한 윌리엄 헤이워드 피커링, 제임스 밴 앨런, 베르너 폰 브라운이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익스플로러 1호의 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존나 이제 만들기만 하면 다 성공임ㅋㅋㅋㅋ 이 후로 이제 미국은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미국항공우주국, NASA야 NASA 설립 후 폰 브라운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세 번째 제안을 받게 돼 바로 나사에 취직하게 됨ㅋㅋㅋㅋㅋㅋ 1960년 폰 브라운은 NASA의 하부 조직인 마셜 우주비행센터의 소장이 되어 우주비행사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됐어 <마셜 우주 비행 센터에서 촬영한 폰 브라운의 모습, 1964년 5월> 하 지 만 또 다시 미국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함ㅋㅋㅋㅋㅋㅋㅋ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이번엔 인류 최초로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해벌인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무려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음ㅋㅋㅋㅋ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 1호의 모형> 최초 타이틀 뺏긴 미국 : 아 시발 소련이 또...!!!!(딥빡 당장 사람 태워서 우주로 날려버려!!!!!! 미국은 부랴부랴 우주비행사를 로켓에 탑승시켰어 하지만 대기 상층을 15분 동안 비행하는 데 그쳤고 우주 궤도에는 도달하지도 못했음ㅋㅋㅋㅋ 미국은 존나 분해서 참을 수 없었긔ㅋㅋㅋㅋㅋ 으으으 씨발!! 세계 최초, 인류 최초는 전부 우리 유에쎄이가 해야한다고오옭!!!! 소련 새끼들이 감히!!!!!!! 이 일로 미국은 렬루다가 자존심이 존나리 상했던지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나섰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나라가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도록 하는 목표를 완수할 것으로 믿습니다.” NASA 듣고있나? 딱 10년 준다. 잘 하자?ㅋ 대통령까지 저 난린데 어쩌겠어;;; 나사는 대통령의 뜻을 받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폴로 프로젝트 (Apollo Project)” 그리고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연구진, 폰 브라운 폰 브라운 팀은 110m 높이의 대형 로켓 새턴을 개발했어 그리고 대망의 1969년 7월 16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앞에서 로켓 새턴이 발사 됐지 바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를 태우고 말이야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발사 성공 이후 발사 통제 센터실에서 기뻐하는 폰 브라운의 모습>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폰 브라운은 평생 염원하던 우주 탐험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 거야 폰 브라운은 1972년 나사를 은퇴했어 이제 더 이상 미국 정부나 군대와 일 하지 않는 폰 브라운은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이제라도 전범 재판을 받았을까? 아니 폰 브라운은 나치 전범 재판을 받기는 커녕 미국에서 기업가로 일 하다가 1977년 6월 16일 췌장암으로 사망했어 그리고 폰 브라운은 현재까지도 나치 전범이 아닌 로켓의 아버지로 남아있지 <폰 브라운의 공로를 기리는 명패를 공개하는 모습, 1970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인류가 최초로 달에 도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한때 인류를 끔찍하게 학살했던 나치 당원이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 않아?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만약에 독일이 로켓 개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치가 되어 V-2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만약 당신이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다면 폰 브라운을 살리시겠습니까, 죽이시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처럼 자국으로 데려와 자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쓰겠습니까? 문제시 크리스탈
딸배헌터 공격했다가 금융치료 제대로 받는 딸배
번호판을 자물쇠로 가린 오토바이 발견 찍으려는데 해당 오토바이 주인(딸배)이 휴대폰을 뺏으려고 공격 헌터님이 위와 같은 피해를 입고 고소하겠다고 하자 딸배도 나도 고소하겠다고 함 지나가는 행인이 112 신고해주셔서 기다리는중. 이때도 계속 위협을 함 ㅋㅋ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음. 그후 헌터님이 상해진단서와 함께 고소장+고발장 제출 우선 고소장은 위와 같은 혐의로 제출했으며 번호판은 가린건 고발해줬음 번호판 가린 건에 대해서 50만원 맞고 시작 ㅋㅋㅋㅋ 해당 딸배도 상해진단서를 제출해서 헌터님도 조사를 받게됨 여러 알리바이가 있었고 무혐의 받아내는데에 성공 고소한 건은 검찰로 송치됨 벌금 200 + 과태료 50 = 총합 250만원 당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려운건 알지만 자수할 수도 있고 압박감을 주기 위해 무고죄 고소 진행 아쉽게도 여기선 예상대로 무혐의가 나옴. 근데 여기서 끝? 그러면 재미없지 민사소송 드가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처가 아물 때쯤 한번 더 때려주기 위해 반년 뒤 진행 어라? 근데 집에 없네? 이사간건 아님 결국 돈 더 내고 특별송달 진행 그러면 딸배가 집에 있을 때까지 계속 보내줌 ㅋㅋㅋㅋ 여기까지가 현재 상황. 민사소송 결론은 내년쯤은 돼야 나올것 같다고 함 추가로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정댓엔...ㅋㅋㅋㅋㅋㅋ 대단하다 세줄요약 딸배가 번호판가리고 다니다가 헌터에게 들키자 공격 벌금+과태료 250만원에 민사소송까지 돈 시간 모두 뺏김 그냥 인정했으면 50만원으로 끝날일인데 휴대폰 뺏으려고 공격해서 250만원 된게 웃음포인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처 딸배헌터 유튜브
나이 40세 불혹을 넘어 성공을 거둔 사람들
커브스 휘트니스 - 개리 해빈(Gary Heavin)  미국에서 '커브스(Curves)' 휘트니스는 가장 빠르게 성장한 프랜차이즈.  여성들만을 위한 휘트니스 센터로 개리 해빈은 40세에 창업 영화 배우 - 사뮤엘 잭슨(Samuel Jackson)  미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 중 한명. 그는 43세 이전까지는 완전히 무명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에 출연한 1991년 이후 유명 배우로 성장했다.  그 나이가 43세다. 디자이너 - 베라 왕(Vera Wang)  웨딩 드레스로 전세계 유명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디자이너.  그녀는 원래 피겨 스케이트 선수였고, 나중에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디자이너로 전향한 나이가 40세다. 포드 자동차 - 헨리 포드(Henry Ford) 그는 45세의 나이에 혁명적인 자동차 모델인 'T Car'를 출시했다. 마블 코믹스 창업자 - 스탠 리(Stan Lee) 첫번째 만화 '판타스틱 포'를 39살에 처음 그렸다. 그는 몇해 뒤에 마블 코믹스를 창업했고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과 같은 전설적인 캐릭터는 그가 마흔 살이 넘은 뒤에 창조한 것이다. 코미디언 - 로드니 데인저필드 전설적인 코미디언 로드니 데인저필드는 46살이 되기 전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46살 'The Ed Sullivan Show'에 출연한 뒤 재능을 인정받아 스타가 됐다. 락마운트 랜치 웨어 - 잭 와일(Jack Weil)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카우보이 모자 브랜드 락마운트 랜치 웨어의 창업자 잭 와일은  45세의 나이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10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왕성하게 회사를 키웠다. 생물학자 -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찰스 다윈은 동식물 연구가로 평생 활동했다. 그런데 그의 나이 50세에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했다.  그의 저서가 발표된 이후 세계 과학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라면 창시자 - 닛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 라면을 창시한 닛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는 48살이던 1958년 인생을 바꿔놓은 라면을 발명했다.  그는 세계 인스턴트 식품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요리 연구가 -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요리 연구가 줄리아는 첫번째 요리책을 50세에 썼다. 자갓 서베이의 창업자 - 팀&니나 자갓 머슐랭 가이드와 함께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 가이드를 출간하는 자갓 부부는  둘다 51세에 처음 자갓 서베이를 출간했다. 이들은 당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테이저 건 발명가 - 잭 커버(Jack Cover)  나사(NASA)와 아이비엠(IBM)에서 과학자로 일했던 잭 커버는 50세에  테이저 건(Taser Gun)을 개발했다. 테이저건은 근육의 자율적인 통제를  붕괴시키는 전류를 발생시키는 전기충격기. KFC의 창업자 - 커넬 샌더스 커넬 샌더스는 62세의 나이에 KFC를 창업했다. 12년 뒤인 1964년에 이 회사를 2백만달러에 매각했다. 맥도날드의 레이 크록(Ray Kroc) 레이 크록은 52세에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를 인수하기 전까지 밀크 쉐이크 기계를  판매하는 영업 사원이었다. 그가 1954년 맥도날드를 인수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워낸 것은 오십이 넘은 나이다. '다날리 플레이버' 창업자 - 윌리 룸 아이스크림 회사 다날리 플레이버(Denali Flavors)의 창업자 윌리 룸은 1995년 회사를 차렸다.  그의 나이가 57세였다. 그가 만든 회사는 2009년에 8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끄덕.. 그것이 희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