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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채널e] 역사를 바꾼 한통의 전화 (소름주의)

출처 : ebs 최태성의 개정 고급한국사 69강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복궁에 무단칩입한 일본 자객들...

그리고 일어난 을미사변...

황해남도 은천에 위치한 치하포!!

치하포 나루터는 일본인들이 본래 자기의 행색대로 통행하는 곳이였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조선인으로 위장을 했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던거지
논리정연하게 생각 정리중...

결심완료!!!
들켰나?!
조선인으로 위장한 남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장교 '쓰치다'였던거지!!

인천 감옥에 투옥된 청년
투옥된지 3개월 후(1886.8.26) 사형집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따르르릉
전화를 건 이는 당시 조선의 임금인 '고종'
청년의 소식을 보고받은 고종
당시 개항을 통해 유입된 전화

우리나라 최초의 장거리 전화라고 해!




헉 마지막에서 소름이...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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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실화인가요? EBS에 나왔으니 실화일 것 같지만.. 정말 대박대박이네요~!!
@neobruce 영화 대장 김창수도 시간내서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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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25살때 한혜진한테 쓴 편지.jpg
결혼 직전임 사랑하는 혜진이에게 항상 내 옆에서 큰 힘이 되어주는 자기야 이렇게 글로 자기에게 마음을 전하려고 하니 참 쑥스럽네 내 마음속엔 항상 자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우리가 처음 만남을 시작하면서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이겨내야 했던 자기, 운동선수인 나와 연기자인 자기의 위치, 우리를 둘러싼 여러가지 환경과 조건들 그런 결정이 참 어렵고 두려웠음에도 묵묵히 나를 위로하며 다독여주는 자기의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어요 사실 사람들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는 자기를 보며 내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해 자기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혼자 자책도 많이 했어요 저는 그저 하나씩 하나씩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자기를 사랑하고 또 생각하고 있다는 걸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행동으로 큰 힘이 되어줄게요 불안해하지 말아요 난 항상 옆에서 자기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어떤 순간보다 또 그 어떤 날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또 추억들이 너무나 기대가 돼요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또 두려워도 항상 기도해주며 그리고 격려해주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 그 설렘과 행복함처럼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이겨내요 정말 부족한 저에게 천사같은 당신을허락하신 주님께 너무 감사드리며 묵묵히 등대같은 남편이 될게요 너무 고맙고 사랑하고 모든 미래를 나에게 맡겨주신 당신 그 믿음에 항상 보답하며 살아갈게요 너무너무 사랑해요 하나뿐인 남편이 저렇게 영상편지 끝나고 쩌렁쩌렁하게 한혜진!!! 부르면서 녹화장 나타남ㅋㅋㅋㅋㅋㅋ깜짝방문 목걸이 걸어주면서 한혜진한테 고마워요라고 하고 한혜진은 내가 고맙지 정말 행복해 라고 말하면서 프러포즈 끗~~~~ 근데 이 전에 이미 프러포즈 한번 했었다함 ㅋㅋㅋㅋ 문제시 월드컵 셔터내림 출처 오 사랑꾼이구먼 축구잘해.. 잘생겼어... 사랑꾼 체고
성균관 유생들: 아 우리학교 밥도 노맛인 게 식당 너무 좁아;;; 매점이나 가야겠다.jpg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 오늘은 성균관의 생활을 알아보도록 하자. 1. 입학 다들 잘 알다시피 성균관에 입학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과거 시험이 있음. 쌔가 빠지도록 공부해서 생원, 진사를 달아야만 성균관에 입성할 자격이 주어짐. 하지만 간혹 성균관 입학 정원이 모자라는 경우 추가 입학생을 받기도 함. 흔히 시험 합격자 = 상재생 추가 모집인원 = 하재생이라고 함. 하재생의 경우 보통 세 가지로 분류됨. 하나. 승보 흔히 사학(四學)이라고 불리는 조선시대 교육 기관에서 배우던 아이들이 입학하는 경우를 뜻함. 왜 사학이냐면 서울 중앙,동,서,남쪽에 세워진 중등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임. 현대식으로 말하면 성균관대 병설중,고등학교 정도..?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면 시험을 쳐서 성균관에 조기입학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는 말임. 그러나 과거 시험 합격자들과는 나이 차이가 어마어마 했을테니(과거 합격 평균 연령 30대라고 함) 성균관에 적응하기가 쉬웠을지는 잘 모르겠음. 아저씨 공부 열심히 하지? 둘. 문음 쉽게 말해 걍 음서임. 아빠나 할아버지 잘 둬서 뺑이치며 생원, 진사 안 달아도 입학 쌉가능~ 셋. 사량기재 남들은 공짜로 다니는 성균관을 돈내고 다니는 유생이 있다??? ㅇㅇ 쉽게 말해 기부입학생임. 그렇기 때문에 사량기재생들은 다른 유생들에게 괴롭힘과 차별을 많이 당했다는 말이 전해짐. 다른 학생들은 밥을 학교에서 주는데 얘들은 밥 싸다녀야 함. 그래도 최소한의 정으로 반찬 정도는 학교가 챙겨줬다고 함. 사량기재 입학은 성종 때 사라짐. 2. 생활 환경 2-1. 주거 성균관은 기숙생활이 원칙이었음. 우리집이 성균관 코앞인데 통학 안돼요? 응 안돼~ 단, 반촌 하숙은 오케 그마나 다행인 것은 사량기재생을 제외하면 숙식이 모두 공짜라는 점임. 입학했으면 이제 기숙사배정 받읍시다. 성균관에는 크게 두가지 기숙사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아니, 서재와 동재가 있음. 이렇게 긴 건물 두 채에 유생들이 나뉘어서 들어가게 됨. 서재는 노론 출신 유생들이, 동재는 그 외 쩌리들이 들어감. 같은 방을 누구랑 사용할 것인지는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었다고 함. 보통은 친한 친구나 가족, 친척과 한 방을 썼다고 하는데 가끔은 인간이 아닌 음산한 룸메에 대한 소문이 나기도 했었나 봄. 특히 서재의 4번째 방, 진사간이 유독 심령스팟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만 봐도 진사간에서 출몰하는 귀신은 최소 3명이었던 것 같음. 다음은 어우야담에 실린 진사간 귀신 괴담임. 때는 선조 12년의 어느 비 내리는 음산한 여름 밤. 유생 이철광은 공부에 지친 머리를 베개에 누이고 잠에 빠져 있었음.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서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낯선 유생이 있는 것이 아닌가. ??? : 이보게, 내 말이 들리시는가? 이철광 : ...? ??? : 나는 장원구라고 하는 생원일세. 이철광 : 아.. 예.... 저는 이철광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장원구 : 내일 성균관에서 크게 한 상 차릴 예정이라네. 고기랑 술이랑 잔뜩. 이철광 : 아 진짜요? 처음 듣는데... 그래서요? 장원구 : 나도 먹고 싶은데. 이철광 : ????? 장원구 : 나도 먹고 싶다고... 고기... 술... 이철광은 다시 눈을 벌쩍 떴음. 주변을 둘러보니 장원구는 온데간데 없고 같은 방을 쓰는 선배 유생만 쿨쿨 자고 있었음. 알 수 없는 해괴한 개꿈에 이철광은 저도모르게 잠든 선배를 흔들어 깨웠음. 선배 : 아 뭔데 진짜... 이철광 : 내일 성균관에서 술이랑 고기 준다는 거 진짜입니까? 선배 : 어.. 매년 이맘때쯤. 왜? 이철구 : 그럼 혹시... 장원구라는 유생, 아십니까? 선배 : 아. 그럼 알지... 작년 이맘때인가. 간만에 푸짐하게 먹어서 그런가 걔가 자제를 잘 못하더라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싶더니 그게 잘못돼서 죽어버렸어. 바로 이 방에서. .... 근데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만일 귀신 룸메가 싫다면 반촌에서 하숙하는 선택지도 있었음. 하숙은 일종의 대학로인 반촌에서 할 수 있었음. 하숙집 주인인 반주인들은 얼마간의 돈을 받고 뜨끈한 방과 식사를 제공해주었다고 함. 평소 호기심이 많던 여시라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음. 유생들은 양반, 반주인들은 천민인데 그렇다면 요즘과는 다르게 하숙생 갑이었을까? 놉. 그건 아님. 예나 지금이나 집 주인이 갑임. 실제로 남은 기록들을 보면 인상된 하숙비를 제때제때 내지 못했다고 맛탱이가 간 밥만 받았다는 둥 서러운 자취생활 이야기도 있다고 함. 그렇다면 성균관 밥은 어땠을까? 2-2 식사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성균관은 기본이 숙식 제공이었음. 먹는 일이란 원래 중요한 법이지만, 성균관에선 특히 더 중요했는데 그 이유인 즉, 식사에 참여해야 출석이 인정되기 때문이었음. 이걸 원점이라고 부르는데 아침 저녁 식사에 모두 참석하면 1원점이 생김. 이 원점을 많이 모으면 뭐가 좋으냐? 바로 일정 점수를 따면 과거를 볼 수 있음! 어차피 다들 과거 시험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유생들은 원점에 상당한 신경을 기울였는데 여기에 큰 문제가 하나 있었음. 바로 식당이 모든 인원을 수용하기엔 상당히 좁다는 것.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성균관 정원은 200명 남짓, 식당 수용 인원은 100명 남짓이었음. 학생의 절반이 출석체크를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성균관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유교의 나라에선 해결 방법도 유교식으로 해야지!! 성균관에선 식당 입장을 나이순으로 받았음. 암만 새벽같이 밥 먹으러 나와도 어린 놈이면 어림도 없음. 승보로 들어온 애들은 밥 구경할 생각 접어야 함. 기것 밥 싸온 사량기재생도 나이가 어리면 뭐... 맨밥 맛나게 먹어야지. 출석 시스템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온갖 꼼수가 판을 치기 시작했음. 그 중 하나가 바로 요즘까지 애용되는 고전적 핑계인 '모부님이 아프신데요ㅠㅠ' 밥도 유교순으로 먹이는 유교의 나라 조선은 효를 장려했음. 때문에 유생의 모부가 아프거나 돌아가신 경우, 원점을 채우지 않아도 과거를 볼 수 있도록 허용해줬는데 이 제도가 너무 애용된 탓일까? 결국 선조 대에 이르러 모부님이 아무리 아파도 원점 20점은 채워야 과거를 볼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됨. 하지만 꼼수는 하나뿐만이 아니지. 지금도 있는 그 대리출석,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성균관 출석은 학생회에서 관리했음. 그렇기 때문에 출석부 담당 유생과 짜기만 하면 출석을 늘리는 건 일도 아니었음. 또한 어느 급진과격파들은 대사성(교수님) 방에서 몰래 출석부 훔쳐다가 출결을 주작하다 걸리기도 했다고 함. 예나 지금이나 꼼수 쓰는 인간들이란... 그래서, 이렇게 어렵게 받아본 밥은 맛있었을까? 당시 성균관 유생들의 급식평은 다음과 같았음. "아침에는 나물죽이고 저녁에는 소금밥이다." 성균관에서 진짜 나물에 소금만 준 건 아니고, 저 문구가 관용구였다고 함. 노맛이란 소리임. 내가 참고한 책에 따르면 순조 때인가 학교 밥이 개노맛이라는 이유로 권당(단체로 수업거부)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와있는데 안타깝게도 실제 관련 기록을 찾지는 못했음ㅠㅠㅠㅠㅠ 대신 영조가 '요즘 성균관 애들 출결도 불량하고 게으르다'고 한 번 질책했다가 단체로 권당했다는 기록은 찾음;;;; 아니;;; 조상;;; 지금 뭐하는???? 하여튼 밥이 노맛이라고 대차게 까이긴 했지만 국가에서는 나름 밥을 잘 챙겨주려고 노력했음. 때에 맞춰 별미도 내려주고, 심지어 술도 배급해줬다고 함. 하지만 어쨌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균관 밥이 별 다섯 개를 받는 일은 없었고 유생들이 반촌 매점에서 싸고 맛있는 주전부리를 밥 대신 먹는 일은 흔했을 것임.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진짜... 출처
충격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러시아의 지반 상태
저 출렁거리는 지반의 정체가 흙 바로 밑에서 터져나올 준비하고 있는 메탄가스임 저 출렁거리는 지반의 정체가 흙 바로 밑에서 터져나올 준비하고 있는 메탄가스임 예전에는 그냥 땅 아래 묻혀있었던 메탄가스가 갑자기 이렇게 올라온 이유가 바로 지구온난화 원래 메탄가스는 영구동토층과 함께 얼어있는 상태였는데 그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땅 위로 계속 올라오는거라고함 그 결과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집과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러시아 (특히 툰드라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 주민들 이 밖에 다른 사례들 중에는 이런식으로 지름 30m 깊이 50m가 넘는 초대형 싱크홀이 터져서 숲이나 산맥이 통째로 가라앉는 경우도 발생 중임 러시아 가스, 석유회사들도 난리난게 걔네 시추지역이(가스의 88% 석유의 50%) 대부분이 영구동토 지대인데 땅이 통째로 가라앉거나 영구동토층의 얼음층이 가둬두고 있던 가스가 분출되는 상태가 계속해서 발생해서 가스시추비용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게 됨 이게 유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유가상승은 필연적으로 모든 분야의 물가상승을 불러옴 심지어 영구동토 지층에 갇혀있던 메탄가스 등의 온실가스가 공기중으로 유출되면서 지구온난화와 기후재앙이 더 악화되는 순환이 일어남 지구 온난화의 경고,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툰드라 | SBS 스페셜 저 동토층 속에 같이 얼어있던 바이러스들이 함께 녹으면서 다시 활동상태가 되면 생태계에 치명적이라는 얘기도 있더라 출처 : 펨코 지구온난화 -> 메탄가스 발생 -> 온실효과 심화 -> 지구온난화 심화 -> ... 무한 악순환 아닌가요...
한반도의 조선 호랑이 사냥 기록.jpg
호랑이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해 온 친근한 동물이다. 선사시대부터 오랜 세월 동안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함께 공존해 왔는데 단군신화 속의 사람이 되고 싶었던 호랑이부터 시베리아 등지에 살아남아 있는 백두산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호랑이들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중 일부 위 그림 15번에 함정에 빠진 짐승이 있는데 얼룩 무늬로 보아 대형 고양이과 동물 같다. 또한 19번에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보인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호랑이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사실은 울산 언양의 절벽에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는 당시의 사냥 모습과 200 여점에 달하는 육지와 바다 동물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선사인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함정유적이다. 함정(陷穽) 원시시대와 그뒤 한참까지 짐승 잡는 데 널리 쓰인 방법은 함정을 파는 것이었다. 오른 쪽 사진에서 보다시피 함정의 단면은 V자 혹은 Y자형태다. 또한 왼쪽 구멍 2개는 나무로 만든 창을 박았던 흔적 같다. 산돼지건 호랑이건 빠지는대로 날카로운 창이 아래부터 몸을 꿰뚫고 또 양쪽 벽이 V자 또는 Y자 형태로 꽉 조여 버리니,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슴 등 짐승들이 달아나는데 그림 중앙에는 호랑이같이 생긴 짐승이 쫓긴다. 말탄 무사들은 발에 등자(橙子)를 찼고, 위쪽 무사는 몸을 있는대로 뒤틀어 활로 사슴을 쏘는 멋드러진 배사(背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등자가 없이는 말 위에서 이런 동작을 취할 수가 없다) 보기에는 근사한 장면이나, 이렇게 하려면 몰이꾼이 필수다. 몰이꾼들이 원하는 장소에 짐승을 몰아 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 있는 강무도다. 짐승 몰이를 하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전통적 짐승잡이는 함정을 이용하거나 대규모로 몰이꾼을 동원하여 잡는 것이었다. 호랑이도 그렇게 해서 잡았을 것이다. - 화살 한대에 호랑이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다. 수호지(水滸誌)의 무송은 맨주먹으로 호랑이 골통을 부셔버린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 김동진 교수 조사에 의하면, 조선시대 호랑이 잡은 뒤 포상은 첫번째 화살을 꽂은 사람, 그 두번째 세번 째, 창 제일 먼저 박은 사람, 그 두번째, 세번 째가 각각 달랐다고 한다. 이를 해석하면 저 멀리부터 호랑이를 포위하여 몰아 온 다음 제법 원거리에서 화살을 어지럽게 쏜다. 그래도 호랑이 가죽이 워낙 두꺼워 잘 박히지도 않고, 급소를 맞추기도 어렵고, 꽃쳐도 화살 몇 대에 죽지 않는다. 그렇지만 화살을 여러 대 맞으면 기운은 어지간히 떨어 질 테니, 그때 우 달려들어 창을 차례로 꼽아서 잡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첫화살을 맞춘 사람, 첫창을 꼽은 사람 공이 제일 높았던 것이다. - 조총(鳥銃)과 노도(弩刀) 임진왜란 때 조총이 들어오고 막바로 대량 보급된다. 연속극에는 으레 창을 쥐켜주나, 조선후기 군사들 기본 무장은 조총이었다. 임란(壬亂)에서 실제 전투경험을 가진 조선 포수의 실력은 꽤 소문이 났다. 광해군이 명나라의 종용으로 만주에 1만 군대를 출병시킬 때, 포수들이 주력인 조선군을 명나라 장수들이 탐을 내고 서로 데리고 가려고 다투는 일도 있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 호랑이 사냥에는 조총을 든 포수(砲手)들이 활약한다. 18세기 정시응이란 사람이 노도(弩刀)라는 호랑이 잡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이 노도(弩刀)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해오지 않으나, 노(弩)라는 이름으로 볼 때 반탄력을 이용한 기계장치 같다. 아무튼 호랑이를 아예 토막내 버릴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고 한다. - 호피(虎皮) 조선시대 각 고을은 호랑이 가죽을 나라에 바쳐야만 했다. 호피(虎皮)가 귀해서가 아니었다. 오늘 날 호랑이 가죽하면 대단하게 여기나, 우리 조상들은 별로였다. 호랑이 가죽 용도를 보면, 천한 수군(水軍)들이 노 저을 때 앉는 방석 또는 짐 실은 수레를 덮는 천막 용도 등이었다. 또 호조(戶曹) 창고에는 호랑이 가죽 만장이 넘게 쌓여 썩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왜 호랑이 가죽을 바치라고 했느냐 하면 우리 어릴 때 쥐 잡았다는 증거로 학교에서 쥐꼬리 내던 생각하면 된다. 호랑이를 잡았는지 어쨌는지 증빙을 내라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로 가서 호랑이가 거의 멸종상태에 이르러 웬만한 고을은 가죽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한 번 정한 공물의 세목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에 고을들은 돈을 거둬 북쪽 아직 호랑이가 살아 남은 곳에서 가죽을 살 수 밖에 없었으니, 이 또한 백성들에게 피해주는 일이 되어버렸다. 영조 10년엔 호랑이가 너무 많아 그 해에만 140명이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했으며 영조 27년엔 인왕산 호랑이가 경복궁 경내에 들어와 새끼를 놓아 기른 기록도 있다. 조선의 특수부대 착호군 혹은 착호갑사 착호갑사는 이름에서 보이듯이 착호와 갑사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명사이다. 조선시대에는 갑사라는 군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의흥위 소속으로 5위의 중심 병력을 이루는 정예부대였다. 원래는 한양을 방위하는 기간병이었지만, 이후 평안도와 함경도의 수비를 담당하는 양계갑사와 호랑이를 잡는 착호갑사가 생겨났다. 그럼 이런 부대가 왜 생겼을까? 조선왕조 실록에 따르면 호환에 대한 기록이 700건이 넘고 영조대에는 1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여하튼 시민들뿐만 아니라 궁궐에도 호랑이가 새끼를 치고 다닐정도로 그 정도로 호랑이가 흔해서 그것들을 잡기 위해서 만든 부대가 바로 착호군이라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5가지 조건이 필요했다고 한다. 1.180보에서 1개 이상의 화살 맞추기 2.기사(말타고 활쏘기)는 2번 이상 맞추기 3.기창은 1번이상 4.달리기 5.양손에 30킬로씩 들고 100보이상 걷기등. 일반적으로 힘쎈 장정들을 지방에서 절도사가 선발하였다고 한다. 지원자가 없을때는 힘좋은 장정들을 징집했는데 이때는 이것이 지금의 로또와 같이 부귀영화를 누릴수있는 것이어서 강제 징집에 불만이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특채도 존재하여 호랑이 2마리 이상을 창과 활로 잡은자에 한해서 특채선발했다는데 그렇게 잡은 사람이 있다는것이 더 신기할 정도다. 호랑이를 잡을때 2가지 방법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타위라고 해서 소음공해로 호장이를 잡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함정으로 미끼를 사용해서 개나 동물을 묶은뒤 쇠뇌나 덫을 이용했다고 한다. 호랑이사냥꾼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1745∼1821)의 ‘수렵도(狩獵圖)’. 조선시대 호랑이 잡던 사냥꾼들은 국가위기 땐 최정예 부대원으로 선발되었다. < 조선왕조실록에 서술된 각종 관련 기록들 >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호랑이 관련 기사는 모두 635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사람이나 집짐승이 잡혀 먹힌 내용이다. 그만큼 호랑이의 폐해가 그칠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민간에 호랑이가 먹고 남은 시신을 모아서 장례를 치르는 호식장(虎食葬)이 퍼졌고, 그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피해를 다시 입지 않기 위한 범굿이 생긴 것도 이러한 사정과 연관이 깊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 잡는 임무를 맡은 440명의 정규 군사인 착호갑사(捉虎甲士)를 따로 편성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들의 포상과 승진에 대한 규정도 두었다. 제일 먼저 활을 쏘거나 창으로 찔러서 다섯 마리 이상을 잡으면 두 계급 올려주고, 한 해 열 마리를 더 잡은 고을의 원은 품계를 돋구어준 것이다. 호랑이 사냥에 국가가 나섰던 셈이다. 태종 때는 호랑이가 경복궁 담을 넘어 들어와서 근정전 근처에서 어슬렁거렸고, 경상도에서는 서너 달 사이에 수백 명을 물었다.(조선왕조실록) 승정원에 진지하기를 "지금도 중국에서 기우할때 호랑이 머리를 용이 사는 못에 넣는데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옛 글에도 있으니 담그는 것이 어떠한가?" (세종 13년 5월 16일, 세종 대왕 실록) 세조 때는 궁궐 뒤의 백악산(오늘날의 북악산)에도 나타났다. 중종대에는 임금이 인왕산과 백악산의 호랑이 퇴치를 위해 직접 나서려고 할 정도로 수도의 호랑이 피해가 많았다(28년(1533) 4월). “호랑이 치고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는 없다”는 속담은 이에서 나왔다. 선조는 4년(1571) 8월에 경기도에 호랑이의 피해가 많으므로, 군사를 일으켜서 잡으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때 사졸들이 여염에 들어가서 끼친 민폐가 호랑이 보다 더 심했다고 전한다. 같은 해 10월 27일에도 경기도 고양 일대에 출몰해서 집짐승 4백 마리를 물어 죽였다. 이를 계기로 호랑이 사냥을 크게 벌여서 많이 잡았다. 인조 때는 호랑이떼가 평안북도 의주성에 줄몰하여 사람과 집짐승에게 해를 끼쳤다. 숙종 때도 6,7년 사이에 강원도 주민 3백여 명이 물려죽었으며, 이 때문에 파발(擺撥)이 끊기는 외에 사람의 통행마저 두절되었다. 영조도 12년(1736) 3월에 경기도 일대의 능에 숨어서 해코지를 일삼는 호랑이를 퇴치하라는 영을 내렸다. 호랑이 머리를 통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포획을 위해 갑사를 보냈다. (영조 실록) 정조는 20년(1796) 11월에 군영에서 응봉(鷹峰) 일대에 출몰하는 호랑이를 잡으려 하자 “호랑이는 제 살 곳이 없어 나타나는데다가, 지금은 엄동설한이므로 폐단이 클 것이니 나서지 말라”고 하였다. 헌종 9년(1843) 9월에도 경모궁(景慕宮) 뒤뜰에 호랑이가 들어와서 영문(營門)에 잡으라는 명을 내렸다. 고종 2년(1865) 10월 4일에는 남산에서 호랑이를 잡았으며, 세 해 뒤의 9월 20일에는 북악에서 세 마리와 수마동(水磨洞, 지금의 종로구 세검정)에서 두 마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20년(1883) 1월 2일에 인왕산에서 표범 새끼를 잡았다. 호랑이가 인가 근처에서 산양 따위를 잡으면 먼저 내장을 꺼내 먹은 다음, 다시 먹으려고 덤불 속으로 끌고 가서 숨겨둔다. 그리고 먹이를 지키기 위해 멀리 가지 않는다. 이를 이용해서 사냥꾼은 발자국이나 핏자국을 따라가서 총으로 쏘아 잡았다. 인왕산 호랑이 으르르르, 남산의 꾀꼬리 꾀꼴꾀꼴.” 조선시대 한양 어린이들 사이에서 불리던 민요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역사 속 서울엔 야생동물들이 꽤 많이 살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힘센 동물은 호랑이였다. 먹이사슬 최종 포식자인 호랑이는 서울 곳곳에서 국가 제사에 쓸 가축부터 사람까지 잡아먹었다.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비율이 지금의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높았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중종은 호랑이가 자꾸 서울에 나타나자 지방에서 호랑이 잘 잡기로 유명한 사람을 데려오기도 했다. 한국교원대 김동진(역사교육) 박사는 “조선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으면 당상관 벼슬을 줬던 나라”였다고 말했다. 호랑이를 많이 잡은 수령은 특진시키고 호환이 일어난 고을의 수령은 파직하는 법까지 있었다.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도 있었다.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조선인을 만나면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이야기를 꼭 물었다. 최남선은 조선을 호랑이 이야기가 많은 나라라는 뜻에서 ‘호담국’이라 불렀다. 조선의 속담에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라는 게 있다. 조선에선 힘센 남자를 ‘인왕산 호랑이’라 불렀다. 인왕산 서쪽 자락의 무악재는 호랑이 출몰 명소였다. 행인들은 10명씩 모여 꽹과리를 치며 군사들의 호위 아래 겨우 고개를 넘었다. 서울에서 야생 호랑이가 출몰한 곳은 인왕산 골짜기만은 아니었다. 호랑이는 멀게는 수락산, 가깝게는 4대문 안에서도 어슬렁거렸다. 『조선왕조실록』은 남산·도봉산·수락산·북악산 등 서울을 두른 산부터 4대문 밖 청량리·제기동·아현동, 이화여대 뒷산, 숙명여대 근처 청파동에도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전한다. 서울의 호랑이 출몰 기록은 고려시대에도 있다. 공양왕은 서울로 잠시 수도를 옮겼다가 호랑이 피해가 너무 커 개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엔 호랑이가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내려와 대궐까지 들어왔다. 호랑이가 높은 성벽과 굳센 성문을 어떻게 넘었는지는 당시에도 의문이었다. 호랑이는 대궐을 지키는 병사를 물어가기도 했고 삼청동, 종묘와 사직단, 창덕궁 소나무숲, 경복궁 후원에도 나타났다. 실록에서 호랑이가 처음 서울에 등장한 건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해다. 실록은 “호랑이가 서울에 들어오니 흥국리 사람이 (활로) 쏘아 죽였다”고 쓰고 있다. 태종 때는 호랑이가 밤을 틈타 왕의 집무실인 근정전 뜰까지 들어왔다. 세종은 가뭄이 들면 한강물에 호랑이 머리를 담가 비를 기원했다. 별명이 ‘큰 호랑이’였던 세조는 직접 호랑이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세조 13년. 북악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세조는 군사를 이끌고 직접 북악산에 올랐다. 호랑이는 낭떠러지 골짜기에 숨어 있었다. 세조는 활을 쏴 그 호랑이를 직접 잡았다. 연산군은 대성전에 호랑이를 가둬 놓고는 벽에 뚫은 구멍으로 활을 쏘곤 했다. 중종 땐 성문 근처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해 군사를 풀어 잡고 보니 사향 노루 두 마리였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중종 이후 잠잠하던 호랑이는 임진왜란 후 다시 출몰했다. 선조 때는 호랑이가 창덕궁에서 새끼를 낳았다. 선조는 “창덕궁 안에서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다”라며 군사들이 “부지런히 찾지 않고 말만 꾸며 책임만 모면하려고 한다”며 화를 냈다. 인조 때는 인왕산에서 호랑이가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호랑이가 가장 기승을 부렸던 건 영조 때다. 실록은 영조 28년엔 서울에서 “호랑이가 마구 돌아다녔다”고 썼다. 영조는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신하들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깊은 산골도 아닌 서울에 정말로 호랑이가 살았을까. “인구가 늘고 평지가 개간되면서 깊은 산으로 쫓겨간 것일 뿐 호랑이가 원래 산을 좋아하는 동물은 아닙니다.” 10년 넘게 한국 호랑이를 연구한 서울대 이항(수의학) 교수는 “오히려 펑퍼짐한 산과 넓은 들판, 큰 강이 흐르는 서울은 호랑이가 살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 김동진 박사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한국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는 물이 많은 저습지였다. 서울이 딱 그렇다.” 그는 “저습지가 개간되면서 후기엔 호랑이가 살 곳을 잃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한국 호랑이는 아무르 호랑이로 분류된다. 아무르 호랑이는 일주일에 사슴·멧돼지 같은 큰 짐승 한 마리를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런 호랑이가 서울에 살았다는 건 호랑이의 먹이인 초식동물 역시 서울 근교에 많이 서식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조선 중기까지 4대문 밖은 울창한 숲이었다. 지금의 경북 상주시 인구(10만 명)와 비슷한 작은 도시였다. 울창한 숲과 높지 않은 산, 큰 강은 초식동물들의 안식처였고 표범과 호랑이 같은 포식자들을 불러 모았다. 세종은 겨울이면 군사들의 훈련을 위해 도성 근처 숲에서 노루와 사슴을 사냥하게 했다. 성종은 청계산에서 노루·사슴·멧돼지·토끼 등 25마리를 잡아 종묘에 바쳤다. 지금도 청계산엔 멧돼지와 너구리가 산다. 성종은 지금의 독립문 근처에서 여우 사냥을 구경하기도 했다. 표범은 성벽을 넘어 지금의 안국동까지 내려왔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 숲은 태종이 자주 가던 매 사냥터였다. 태종은 매 사냥으로 잡은 고니를 태조 이성계와 정종에게 선물했다. 세종 역시 서대문 밖에서 자주 매사냥을 구경하곤 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민속연구과장은 “노루·삵·멧돼지 같은 작은 동물은 실록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랑이나 표범은 워낙 큰 동물이고 가끔 사람을 해치다 보니 실록에 기록했지만 작은 동물은 당시엔 너무 흔했다”는 것이다. 정조 이후 서울에서 호랑이가 출몰한 기록은 거의 사라진다. 조선 정부의 꾸준한 호랑이 사냥과 농지 개간으로 먹이가 줄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반이 지나면 호랑이 서식지를 대부분 늑대가 차지한다.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가 줄면서 늑대가 그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실록에선 고종 때인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가 마지막 기록이다. 그러나 호랑이가 서울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연세대를 세운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언더우드는 견문록에서 자신이 조선에 온 1888년 이후에도 서울에서 호랑이를 봤다고 썼다. ↑ 임진왜란때 제일 먼저 조선에 침략한 일본 장수 '가토 가요미사' 가토는 조선에 침략한 왜장들을 시켜서 조선 호랑이를 마구잡이로 포획하였다. 예로부터 조선 호랑이가 귀한 약용으로 쓰여왔음을 익히 간파한 일본 수장 '토요토미'는 조선 호랑이의 가죽, 머리, 뼈와 고기, 간과 담등을 조선으로부터 보급받아 보약으로 먹었다. ↑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침략한 왜장 가토 가요마사와 왜장들이 조선 호랑이를 무차별하게 죽이는 장면을 그린 맹호도이다. 조선 시대의 호랑이 사냥법 김속시(金束時)는 여진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 그의 아비를 따라 왔었는데 무예가 뛰어나고 자뭇 경사(競射)에 밝았다. 집이 경기도 가평(加平) 산골에 있어 날마다 사냥을 일삼았다. 그는 호랑이 잡는 요령을 애기하기를 “평생에 호랑이를 쏜 일은 그 수효를 셀 수 없다. 옛날에 세조께서 온양(溫陽)에 머무르셨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와서 아뢰기를 ‘열여섯 살쯤 된 여자가 어젯밤에 안방에 있다가 마침 창문이 열려서 호랑이가 물어갔사오니 성상께서는 이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어주시옵소서’하여 세조께서 장수들에게 명하시어 잡으라 하셨는데, 역시 나를 따라가게 하셨다. 그 여자의 집에 도착하여 상황을 물어보고 산 중턱에 이르니 붉은 적삼이 반쯤 찢어져서 나무 끝에 걸려있고 또 몇 걸음 가니 시체가 산골짜기 시냇가에 있었는데 반은 이미 먹혀 있었다. 조금 있다가 나무 사이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다보니 호랑이가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분함을 못참아 말을 달려 나아가한 살로 맞힉 물러나다가 말이 소나무 가지에 걸려 쓰러지니 호랑이가 달려들어 내 팔을 끌어당겨 물기에 호랑이와 함께 싸우는데 사냥하는 관리가 와서 쏘아 죽여 마침내 위험을 면하였다. 옷을 벗어보니 팔에 상처난 자리가 있었다” 하였다. 선사시대의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부터 고구려 고분벽화나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까지 여러 유적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엔 호랑이를 소재로 한 민화가 대량 제작됐다. 조선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처음 이름을 알린 이는 문인화가 고운이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고운의 ‘백액대호’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호랑이 그림의 정형을 성립한 이는 단원 김홍도로, 그가 호랑이를 그리고 표암 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와 수월 임희지가 대나무를 친 ‘죽하맹호도’는 후세의 표준이 됐다. 이 관장은 “중국의 호랑이 그림이 형태보다 의미를 중시한 데 비해, 조선 호랑이 그림은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민화도 독특한 전통을 형성했다. 진짜 호랑이 가죽을 펼쳐놓은 듯 그린 호피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선 찾을 수 없다. ↑ 1900년대초 무악재를 넘는 짐꾼들의 모습. 고려시대 한산군(서울)에서는 군수가 호랑이로 인해 3번이나 바뀌고 호랑이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이나,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인 착호갑사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호랑이가 많긴 많았다. 호랑이는 서울에서도 주로 인왕산에 많았다고 한다. 경복궁의 오른쪽에 있는 웅장한 바위산이 발자국을 남기기 싫어하는 호랑이에게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왕산이 풍수 지리적으로 명당(경복궁)의 오른쪽을 감싸고도는 이른바, 우백호자리라는 점이다. 우백호를 뜻하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득시글했다니 신기하다. 당연히 호랑이로 인한 피해도 빈번했다. 그래서 지금은 동심을 자극하는 민담인 <해님달님>도 당시에는 다르게 들릴 수 있었다 호랑이가 장사를 파하고 고갯길을 넘는 어머니를 해친 뒤 피 맛을 잊지 못하고 민가를 습격해 아이들까지 공격했다는 슬픈 시대상을 반영한 스릴러물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1909년 12월 12일자 프랑스 신문 '르 쁘띠 주르날'에 보도된 호환도. 두 마리의 한국 호랑이가 집안에 침입하여 사람을 해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당시 호랑이에 의한 피해도는 현재의 교통사고 발생률보다 높았다. 한반도에 서식했던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 종으로, 덩치가 매우 크고 사나웠다. 예로부터 크코 사나운 맹수를 산의 주인이라 부르며 숭배하던 일본은 조선의 민족 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인 사냥꾼들을 대거 불러들여 호랑이를 사냥했다. 호랑이는 본래 먹이 사슬의 최정점이라 개체수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제 시대에만 800마리의 호랑이가 사냥을 당했고, 한반도의 호랑이는 완전히 멸종했다. 현재 중국쪽에 한반도 호랑이들의 후예들이 있는 것으로 보고 복원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남아의 담력을 보여 주자 루스벨트 그 무엇이랴 호랑이여 오라 호랑이 덤벼라 표범 덤벼라 늑대도 곰도 덤벼라 안 나오면 쏘겠다 오연발로 호랑이여 오라 올해는 조선 호랑이를 모두 사냥하고 내년에는 러시아의 곰을 사냥하세” 한 달 동안 호랑이 사냥을 동행 취재하게 된 기자는 아마도 흥분했던 것 같다. 한 기자가 지은 ‘정호군가’라는 노래는 1917년 11월10일 일본 도쿄역을 출발해 같은 해 12월10일 다시 도쿄역에 도착할 때까지 조선에서 한국 호랑이를 사냥한 원정대의 분위기뿐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그 속내까지도 드러냈다 사냥 행사를 주관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는 탄광회사와 선박회사를 소유한 송창양행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당시 식민지 조선의 자원개발과 해운으로 떼돈을 본 사람이었다. ↑ 경성 남대문역에서 원정대를 취재하러 모인 기자들 사냥대는 24명의 사냥꾼과 약 150명의 몰이꾼으로 구성됐고 매일신보사, 중앙신문, 경성일보, 규슈일보사, 야마토신문 등에서 기자 19명이 동행 취재했다. 사냥꾼은 8개 반으로 나눠 백두산 등 함경남북도와 금강산, 전라남도에 파견한 뒤 사냥물을 한 곳에 모았다. 요즘 많이 하는 팸 투어처럼 언론을 통한 홍보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획이 엿보인다. 눈길을 끄는 건, 3명을 뺀 사냥꾼 모두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 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냥꾼이 모두 동원됐는데, 호랑이 100마리를 쏘아 호랑이 사냥의 일인자로 꼽히던 강용근, 강용근과 함께 조선왕실이 공인한 엽사로 하루에 꿩 106마리를 잡은 기록을 갖는 이윤회 등이 포함됐다. 다른 포수가 화승총을 쓰던 시절이었지만 이 둘은 엽총을 사용했다. 사냥 행사를 주관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는 탄광회사와 선박회사를 소유한 송창양행이라는 회사의 사장으로 당시 식민지 조선의 자원개발과 해운으로 떼돈을 본 사람이었다. 그는 이 행사에 “칠, 팔만 원의 큰돈”을 들였다. 당시 쌀 한 석에 15원 정도였으니 거금이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3억원쯤 된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쌀 수탈로 쌀값이 폭등해 농민과 노동자들이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던 3·1 운동 직전의 피폐한 상황이었다. 야마모토는 이 행사의 취지를 “근래에 점점 퇴패하여 가는 우리 제국 청년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매일신보> 1917년 11월3일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등은 이 책의 해제에서 이렇게 밝혔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해로운 짐승을 퇴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면의 동기는 개인의 소영웅심의 발로, 부의 과시, 일본군의 사기 진작,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확산 등 복합적인 것이었다.” 제국주의 정치가들은 종종 식민지에서 맹수사냥을 벌이곤 했다. 20세기 초부터 조선 땅에도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커밋 루스벨트를 비롯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 등이 호랑이 사냥을 하러 왔다. 이들이 직접 사냥총을 쥐었다면 야마모토는 사냥꾼과 몰이꾼을 고용하고 자신은 지휘만 하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 원산에 집결한 조선인 11명. 두번째열 왼쪽에서 네번째 사람이 조선 호랑이 사냥의 일인자 강용근이다. 또한 그 옆에서 하얀 두건을 두른 이가 백운학이다. 당시 조선의 포수는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사격 실력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구식 단발 엽총으로 호랑이 같은 큰 맹수를 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급소를 단번에 맞춰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면 역습을 받아 목숨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조선시대부터 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군대를 따로 두어 정책적으로 지원한 것도 작용했다. 이들이 정호군의 핵심을 이뤘지만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에 급급했지 일제에 이용당한다는 한 치의 부끄러움이나 멈칫거림도 이 책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 함흥에서의 사냥 원정대 환영식 원정대는 조선총독부의 하세가와 총독을 만나는 등 일제 당국의 비호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지역 행정당국과 유지가 주최한 성대한 환영행사가 벌어졌다 ↑ 북청 성문밖의 환영식 일본인 대부호의 엽기적인 사냥 이벤트는 큰 구경거리여서 조선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해마다 사람 200명 이상, 가축 7000마리 이상이 호랑이 등 맹수의 피해를 입고 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언론의 호의적이 보도가 이어졌다. 사냥꾼들이 호랑이를 잡아 이들의 여망에 부응하려고 경쟁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 사냥터로 떠나는 원정대 ↑ 포수 강용근과 흰옷을 입은 이윤회가 숙소를 방문해 사냥한 산양을 내려놓고 야마모토와 기념촬영을 했다. 포수 백운학은 함경북도 성진에 상륙한 뒤 남운령에서 열흘 만에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하고 다른 세 명의 사냥꾼과 함께 산 정상의 목을 지키자 몰이꾼 10여 명이 산 밑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산허리 숲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뛰어나왔고, 백운학이 40보 거리를 유지하며 세 발을 연달아 쏘아 잡았다. ↑ 호랑이를 잡은 백운학과 그의 반에 속한 포수들. 상으로 받은 술잔을 든 이가 백운학이다. 다른 포수 최순원도 호랑이를 잡았다. 그는 함경남도 죽암동에서 이틀 만에 상수리나무 숲에서 호랑이를 발견하고 멀리서 쏘았으나 총에 맞은 호랑이가 바위굴에 숨어들었다. 그는 돌을 굴려 굴 입구를 막고 석공과 인부를 고용해 굴 옆에 구멍을 뚫은 뒤 사격을 해 호랑이를 죽였다. 총을 맞고 굴에 뛰어든 지 일주일 만에 호랑이가 잡힌 것이다. 야마모토는 최순원의 무용담에 감동해 은잔에 술을 가득 따라 선물로 주었다. ↑ 호랑이를 잡은 최순원(오른쪽)이 야마모토와 기념 촬영을 했다. 함경도 일대에서 잡은 호랑이, 표범, 곰, 노루, 산양 등을 기차에 산더미처럼 쌓은 기차가 12월3일 경성에 도착했다. 신문이 매일처럼 사냥 소식을 보도했기 때문에 이들을 구경하려는 인파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폭죽이 터지고 조선 음악대의 떠들썩한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카이젤 수염을 한 야마모토는 가슴을 펴고 환영 나온 장관들과 사진을 찍었다.” 전라남도 능주 천태산에서는 일본인 포수 곤도가 이틀 만에 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호랑이 굴을 발견했고 이곳에 숨어있던 몸길이 2.85m의 거대한 표범을 쏘았다. ↑ 전남 능주에서 잡은 대형 표범과 사냥꾼들. 붕대를 감은 사람은 포획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다. 12월6일 사냥 원정대는 남대문 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기차 화물칸을 가득 채운 포획물은 호랑이 2마리, 표범 2마리, 반달가슴곰 1마리, 멧돼지 3마리, 산양 5마리, 승냥이 1마리, 노루 9마리, 기러기·청둥오리·꿩 다수였다. ↑ 여관 마당에 포획물을 쌓아 놓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야마모토의 정호군은 사냥감을 그저 가져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2월7일 경성에서는 조선호텔에서 야마가타 정무총감을 주빈으로 경성의 명사 120명을 초대해 호랑이 등 포획물의 시식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호랑이 고기를 채소와 함께 양주를 넣어 익힌 요리 등을 맛나게 먹었다. 이 사냥이 정치적 퍼포먼스임을 보여준 대목이다. 호랑이 시식연 참석자들은 방명록에 서명을 했는데, 이 책에 언론인들의 서명이 실려 있다. 사냥 행사를 취재한 기자들의 서명 가운데 한국 이름이 하나 눈에 띈다. 정호군을 따라다니며 <매일신보>에 그 여정을 상세히 기사로 쓴 심천풍(18980~1946)이 그이다 ↑ 호랑이 고기 시식연의 언론인 방명록. 오른쪽에 한국 이름 심천풍이 보인다. 그의 본명은 심우섭으로 <상록수>를 쓴 작가 심훈의 맏형으로 나중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다. ↑ 일본 도쿄 제국 호텔에서 열린 호랑이 시식회 호랑이 시식회’는 일본에서도 열렸다. 12월20일 도쿄 제국호텔 대연회장에서는 체신 대신, 농상무 대신, 추밀원 고문관, 육군대장 등 정·재계 요인 200여명이 모여 일본에는 없는 이 신기한 고기맛을 보면서 대일본제국의 힘을 만끽했다. 당시 연회의 메뉴판에는 요리 순서를 이렇게 적어 놓았다.  1. 함경남도 호랑이의 차가운 고기(푹 익힘, 토마토케첩으로 마리네 함)  2. 영흥 기러기 수프  3. 부산 도미 양주 찜(국물과 함께)  4. 북청 산양 볶음(야채 곁들임)  5. 고원 멧돼지 구이(크랜베리 소스, 샐러드 곁들임)  6. 아이스크림(작은 과자 곁들임)  7. 과일, 커피 그러나 호랑이 원정대 이야기는 시식회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범보전기금은 한국 호랑이의 실체를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하기 위해 한국 호랑이의 표본을 추적하던 중 야마모토 원정대가 잡아 내용물을 먹은 호랑이의 표본과 조우하게 된다. 야마모토는 호랑이를 비롯한 포획물의 표본을 만들어 자신의 모교인 교토 도시샤 고등학교에 기증했고, 그것들이 지금까지 잘 보관돼 있는 것이다. 표본관을 들른 이항 교수는 ‘조선산’이란 표지가 선명한 호랑이, 표범, 반달가슴곰, 승냥이, 산양, 멧돼지의 표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일본 도시샤 고등학교 표본관의 호랑이. 원장대가 포획한 개체이다. ↑ 일본 도시샤 표본관의 조선 표범 표본 고향에서 이제 맥이 끊긴 호랑이, 표범, 승냥이를 머나먼 땅에서 만난 것은 감상적인 일이었지만, 실질적인 의미도 있다. 이항 교수 등 한국범보전기금 전문가들은 해제에서 이렇게 적었다. 어쨌든 한반도에서 멸절된 동물 중 포획한 사람, 장소와 시기, 과정 등 표본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현재까지 이 도시샤 고등학교의 표본들이 유일하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나마 멸절된 동물에 관한 기록과 표본이 남아 있게 된 것은 정호군 대장 야마모토 다다사부로의 덕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보면 한반도에 와서 호랑이를 사냥해 기록과 표본으로 남겨준 것에 대해 그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를 씁쓸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잡은 호랑이 위에 걸터앉아 기념 사진을 찍은 사냥꾼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호랑이와 일본 경찰 ↑ 1921년 경주에서 잡힌 마지막 호랑이. 동네에서 다 잡아 놓으니까 일본 순사들이 우 몰려가서 사진 찍으며 폼 잡은 것이었다. (1924년 강원도에서 마지막으로 잡았다는 설도 있다.) "조선의 호랑이들은 시베리아의 대호와 크기도 거의 비슷하고 습성도 같다. 그러나 따뜻한 날씨탓인지 털은 더 짧다. 작고 좁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산에도 호랑이가 살고있을 정도로 호랑이가 많다. 그러므로 자연히 호랑이 포수가 많은데, 이 나라의 사냥꾼들은 놀랍게도 관통력과 유효 사정거리가 60야드에 불과하며 당장 박물관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믿어질법한 16세기 구식 화승총으로 호랑이를 사냥한다. 나는 조선의 숙련된 호랑이 포수들이 호랑이가 20야드 가까이 와도 미동도 하지않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자연히 이들의 화승총 숙련도는 내가 아는 유럽의 어느 총기전문가보다도 뛰어난데, 만약 이들에게 최신식 라이플을 쥐어준다면 어느 누구라도 조선의 포수들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러시아의 유명한 사냥꾼「조지 양코프스키」 이 호랑이가 조선 호랑이다.(KBS 자료) 멧돼지를 사냥한 조선 호랑이 아직까지도 태백산에는 조선 호랑이가 기거한 토굴이 남아 있다. 호식총 호랑이 사체를 발견하면 죽은 호랑이를 화장하여 호랑이 뼈를 돌로 쌓아서 묻어준 것이며 지금도 태백산에는 호식총 140여개가 있다. 출처 우리나라에 호랑이 정말 많이 살았었구
이황 : 요즘 학생들은 스승을 봐도 인사조차 안 하고 학교가 무슨 주막인 줄 안다ㅉㅉ
전편 안본 빙글러 보고오는거 추천 vv 1. 성균관의 교수들 조선의 국립대학 성균관의 우두머리는 대사성(정3품)이었음. 조선시대 벼슬 조직도를 보면 대사성보다 품계가 높은 벼슬이 있긴 했지만 모두 겸직이라, 사실상 대사성이 성균관의 총장이라고 봐도 무방했음. 유일한 국립 대학의 유일한 총장직인데다 품계도 높아 많은 선망을 받을 것 같은 직종이지만 사실 대사성은 기피직종에 더 가까웠다고 함. 조선시대엔 대과 1등급 인재는 홍문관, 2등급 인재는 승문원에 가며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성균관으로 간다는 인식이 있었고, 유생들이 사고를 치면 제일 먼저 불려나가 줘터지는 직종이었기 때문임. 실제로 성균관 500년 역사에 대사성은 1,200명 가까이 있었다고 하니 갈아치워지기도 엄청 갈아치워진 모양임. 한 가지 다행인 건 대사성이라는 직종의 현실이 어떻든 사회적 명예는 있었다는 점. 군사부일체를 외치는 유교사회 조선답지 않게도 학생이 선생을 우습게 알고 깝쳤다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기록들이 간간히 보이곤 함. 중종 때 유생들이 스승을 보고도 인사하지 않기에 야단을 쳤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고 투덜거린 시강관의 기록이나 율곡 이이가 저술한 모범학생 지침서에 스승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도망을 가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많은 스승들이 존재 읽씹을 당했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함. 심지어 성균관 대사성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이황은 이런 글까지 남겼음.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마땅히 예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 유생들은 스승을 길 지나는 사람 보듯 하고 학교를 무슨 주막인 줄 안다. 학교에 스승이 들어오면 가르쳐달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벌렁 나자빠져서 꼬라보고 학교에 안 나오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교복이 없어서요ㅋ" 같은 답이나 하고 스승이 이런 나쁜 습관을 바로잡아주려 하면 지 친구들이랑 무리지어 뒷담까다가 학교 자퇴해버리고 스승이 너무 간섭을 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협박질을 한다. 정말로 당대에 이름난 대학자였던 이황이 겪은 일화가 맞는 것일까...? 정말 조선 1티어 교수 이황에게 저렇게 개긴 또라이가 있다고...? 본인이 겪지 않은 일 치고는 꽤나 생생한데... 오.. 에반데... 자기보다 스무 살은 어린 기대승과 학문 배틀을 벌일 때도 공손했고, 정신이 혼미한 아내에게 서윗하게 배를 깎아주던 이황이었지만 교복 없다고 수업 째는 미친새끼까지는 품어줄 수 없었던 모양임. 2. 성균관의 학생들 1. 시험 성균관의 시험 스케줄은 정말 어마무시하게 빡셌음. 성균관에서 치뤄졌던 시험 스케줄을 늘어놓아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음. 하루에 한 번 매일 시험보고 열흘에 한 번 정규 테스트 치고 1개월에 한 번씩 또 시험보고 1년에 두 번 치뤄야 하는 큰 시험 있고 계절마다 보는 시험 있고 미래의 고용주(a.k.a 주상전하)가 깜짝 개최하는 시험도 쳐야 했음 이거 진짜 에반데... 이만하면 진짜 유생이라는 죄로 성균관이라는 교도소에서 명륜당이라는 감옥에 갇혀 청금록이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청금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시험이라는 벌을 받으며 장원급제라는 석방을 기다리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유생들이 대사성 만나면 인사도 안하고 도망갔는지 알겠는데 하여튼 저 많은 시험들 중 몇몇은 연산군때 잠시 성균관이 폐쇄되는 바람에 영영 사라져버리기도 함. 따봉연산아 고마워♡ 그러나 시험이 좀 줄었다고 시험의 부담감도 줄어드는 건 아니기에 유생들의 시험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짐작됨. 시험을 보는데 너무 긴장해서 바지에 작은 것을 G려 버렸다든가 기껏 시험 잘 쳐서 왕 앞에 불려가놓고 머리가 하얘져서 자기가 쓴 답안도 더듬거렸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고 심지어 그 천재인 정약용도 성균관 시험은 턱턱 1등하면서 과거는 번번히 떨어지는 바람에 정조에게 친히 까이고 눈물 깨나 쏟았다고 하니 역시 큰 시험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멘탈 관리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음. 시험이 이렇게 숨통을 옥죄이니 일부 유생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확실한 방법을 선호하기 시작했으니 바로 컨닝이었음ㅇㅇ 몰라 예상 문제집 숨겨 들어가서 오픈북으로 베끼는 건 기본이요 옆사람 답 베끼기 시험관에게 뇌물 주기 등등 방법도 다양했고 심지어 연산군 때 간신으로 유명한 임사홍의 아들이 대리 시험을 쳐서 진사시 장원급제를 했다는데 그 느갈배이자 임사홍의 느개비인 임원준 역시 대리 시험으로 합격한 사실이 들통난 팥심팥난 이력이 있었음 옆 나라 쭝꿔에서도 부채살에 깨알같이 글씨를 적어 가거나 속옷 안에 답안지를 꿰메 가는 둥 창의력 대결이 있었다고 하니 사람 하는 꼴 다 거기서 거기인가 봄. 하지만 그 어떤 커닝 방법도 성종 때 발각된 대나무 파이프 사건을 이길 수 없다고 봄. 시험장 바깥에서 시험장 안까지 대나무 줄기를 연결해서 일종의 컨닝 파이프가 우연히 발굴된 사건인데 발견 당시 이미 꽤 오래된 물건이었던지라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고 함. 범인은 그런 식으로 시험 합격해놓고 영의정까지 갔을까? 2. 학생회 놀랍게도 성균관에도 일종의 학생회가 있었음. 이 학생회를 재회라고 하고, 학생회 임원들을 재임, 학생 회장은 장의라고 불렀는데 장의는 동재에서 한 명 서재에서 한 명 총 두명을 선출했음. 장의가 되면 특권이 꽤나 많았는데 우선 장의들은 각 기숙사에서 유일하게 독방을 쓸 수 있었고(이 방을 장의방이라고 함) 출석보도 관리할 수 있었으며 학생회 일로 사건이 벌어져도 처벌 받지 않을 면책권도 있는 데다 성균관과 반촌 내에서는 물럿거라 소리 들으며 행차도 쌉가능이었음. 인사도 못 받는 대사성보다 대접이 훨씬 좋음. 심지어 장의와 재임들은 다른 유생들을 처벌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맛없는 밥 먹어가며 애지중지 쌓은 출석점수를 10일치, 20일치씩 깎는다든가, 기숙사에서 내치는 일은 기본이요, 능력 없는 교원까지 절차를 밟아 해임시킬 수 있었다고 함. 장의는 투표로 선출되었는데 먼저 재회에서 장의 후보 명단을 작성하면 물러나는 장의가 그 중 적당한 사람을 지명해 자리를 물려줬는데 이때 그냥 마음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전에 장의를 해봤던 사람 세 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가능했다고 함. 일반 유생들도 명단을 보고 마음에 드는 후보의 이름 옆에 점을 찍어 투표할 수도 있었다고 하니 꽤나 선진적인 제도임은 분명했음.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상과 현실이 있는 법... 민주적으로 보이는 이 투표는 사실상 쇼였던 경우가 많았으니 암묵적으로 기호 1번 후보가 차기 장의로 내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음. 여기엔 당연히 현실 정치의 영향이 끼치고 있었고 서재는  어차피 노론들이 많이 가는 곳이니 더 볼 것도 없이 후보 1은 노론 출신, 동재의 후보 1번은 볼 것도 없이 소론 출신들이 많았음. 현실에서 자 해먹는 당파들이 성균관에서도 다 해먹고 다녔던 것임. 하지만 이렇게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장의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아무리 난다긴다 해도 어차피 반촌 안에서나 일찐이지 사회에서는 급제도 못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점. 실제로 명종 시절 민복이라는 장의는 어떤 유생을 유독 싫어해서 지독하게 왕따를 시켰는데 그 유생이 바로 조선 장원급제계의 전설, 남들은 한 번만 해도 대대손손 경사라는 장원급제를 9번이나 달성한 율곡 이이였음. 성균관 안에서야 여포였지만 사회생활을 해보니 이이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학자가 되었고, 민복은 제대로 된 기록 한 줄 없이 그저 이이를 괴롭혔던 성균관 일진으로만 기억될 뿐임. 그러니 우리 모두 좁은 인간관계에서 잘 나간다고 남 괴롭히지 말고 넓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인물이 되도록 합시다.
영국 화가의 눈으로 본 그때 그 조선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이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아래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출처
왕실 : 내 이니셜에도 보석을 박아 넣으면 예쁘겠지?
모노그램을 이용한 쥬얼리들이야💎💎💎 보통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만드는데 아래사진은 스웨덴 왕실 가족들의 모노그램이야 첫째줄 맨 왼쪽부터 칼 구스타프왕-실비이왕비-커플 두번째줄 빅토리아왕세녀-다니엘왕자-커플 세번째줄 에스텔공주-칼필립왕자-마들렌공주 마지막은 릴리안왕자비까지 어떤식으로 만드는지 느낌이 오지? 금,다이아몬드,사파이어로 제작된 이 브로치는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첫번째 아내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소유였음 이것 역시 금,다이아몬드,사파이어로 제작됬고 빌헬름 2세가 팬던트로 사용함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러시아 니콜라이1세의 아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러시아 니콜라이 1세의 다이아몬드,에나멜 팔찌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다이아몬드,에나멜로 만든 옷핀 에드워드 7세의 루비,다이아몬드로 만든 브로치 이건 많이 봤을거 같아 ㅋㅋ 그 유명한 에드워드 8세가 윌리스 심슨부인한테 준 브로치로 W+E를 조합했대 다이아몬드,루비,에메랄드로 제작함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의 금,다이아몬드로 만든 반지 프랑스 나폴레옹의 다이아몬드 반지 여기 쓴 다이아가 총 10캐럿이 넘는대! 이건 나폴레옹이 선물용으로 만든 시계인데 디테일이 장난아냐 진주덕분에 완전 우아해보여 이탈리아의 엘레나왕비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러시아 폴 1세의 아내 마리아 표도로브나의 반지 러시아 니콜라이1세의 아들 콘스탄틴 대공의 코담배갑 이거를 스너프박스라고 하던데 처음에 몰라서 이건 뭔데 이렇게까지 장식했나 싶었음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거 진짜 다이아몬드가 몇캐럿이야 왕관 디테일봐ㅋㅋ 내 기준 코담배갑이 모노그램 쥬얼리중에 제일 화려한거 같음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셉1세 프랑스 나폴레옹1세 아내 유제니 마지막은 상관없지만 개구리로 끄읕 출처 나폴래옹 시계는 갖고싶다는 생각든다 ㅋㅋㅋㅋ
예술가를 매혹시킨 악마의 술 ‘압생트’(absonthe)
스위스에서 유래된 술. 증류한 알코올에 아니스(annis), 회향(fennel), 쓴쑥(wormwood)이라는 세 가지 허브계 약초를 빻아 넣은 후 그 혼합물을 다시 증류, 이 상태에서는 무색투명한 색을 내나 여기에 여러 허브를 넣어 침출시켜 만들어진다. 압생트는 다른 말로 ‘초록요정의 술’이라고 불렸는데 , 초록요정은 압생트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별명도 있다. ‘에메랄드 지옥’ 이것은 압생트에 의지한 많은 예술가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수가 높아 금방 취할수있지만 가격대가 저렴해 19세기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다. 세기 전환기 파리에서 활동하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은 압생트를 마시면서 보헤미안 문화를 공유했는데, 보수적 사회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일종의 제스처이기도 했다. 압생트를 즐겨 마신 예술가들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폴 발레리, 아르튀르 랭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오스카 와일드, 마르셀 프루스트, 에릭 사티, 에드가 앨런 등이 꼽힌다 . 압생트를 즐기던 대표적인 예술가는 고흐였는데 , ‘고흐가 귀를 자르게 만든 술’ 이라고도 유명하다 . 압생트의 환각에 너무 취한 나머지 귀가 여러개로 보였고 귀를 자르게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고흐는 압생트와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고, 얼마 가지 못해 알콜에 중독되게 된것은 사실이지만 귀를 자른 정확한 이유는 고흐만이 알고있을것이다 고흐의 그림에는 유독 노란색이 많이 사용되는데 , 이것 역시 ‘압생트’의 부작용이다 . 고흐 그림의 찬란한 노란색도 압생트에 들어있는 산토닌(santonin)이란 성분이 시신경을 손상시켜 모든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시각장애 , 환시증을 일으켰다한다. ‘토탈 이클립스’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를 해 유명한 서양의 소설가 ‘랭보’는 ‘압생트가 가져다주는 취기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하늘이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알콜중독으로 많은 고생을 했고 랭보의 옆에있는 시인 ‘폴 베를린’은 압생트에 취해 아내의 머리에 불을 붙힌 사건도 있었다.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환각 때문에 삶을 비극적으로 마친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압생트는 많은 사람을 중독의 늪에 빠트렸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에메랄드 지옥’이다. 1905년 스위스의 ‘장 랑프레’라는 노동자가 압생트에 취해 부인과 두 딸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는 술이 깨어난 뒤에 범죄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째서 이런 환각이 일어나느냐 하면 , 압생트의 재료인 ‘쓴숙’에 들어있는 ‘투존’이라는 성분이 환각을 일으킨다고 밝혀졌다. 그래서 한동안 압생트는 판매 금지를 당하다가 현재는 투존 성분을 제외하여 다시 판매중이다. 이렇게 많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았던 압생트는 마시는 방법도 꽤나 특이하다 . 1. 컵 위에 구멍 뚫린 압생트 스푼을 올린다. 2. 스푼 위에 각설탕을 올린다. 3. 각설탕 위로 압생트를 붓는다. 4. 각설탕에 불을 붙여 녹인다. 5. 물을 살짝 탄 후 마신다. 압생트 스푼 역시 다양한 종류가있다 . 이상 19세기 유럽 ,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앗아간 ‘압생트’라는 술이였다 . 출처
후회남 클리셰 그 자체인 조선시대 왕
숙종 숙종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는 희빈장씨나 숙빈최씨에 초점을 두고있기에 의외로 그가 인현왕후에게 어떤식으로 대했는지는 잘 나오지않는다. 그냥 인현왕후를 무시했다, 정도로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인현왕후를 막대했는지 알아보자 우선 인현왕후의 나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그녀가 처음 궁에 들어왔을 때 그녀의 나이는 14살이었다. 숙종은 인현왕후보다 6살 연상으로 21살. 장희빈은 숙종보다 2년 연상으로 23살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21살이라면 23살 존예누나에게 끌릴까, 14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한테 끌릴까? 사실 숙종이 인현왕후보다 희빈에게 더 끌린건 아주 당연한 현상이었다. 문제는 이 상태가 8년동안이나 지속됐다는 것이다. 폐비됐을 당시 인현왕후의 나이는 22살쯤 됐었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위시킬 때 들었던 명분 중 하나는 불임이었는데, 20대 초반 애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얘네 몇번 자지도 않았을 것같음 이유야 어찌됐든 인현왕후는 폐위됐고 희빈이 중전의 자리에 앉게된다 숙종 : 어휴 이제 좀 살겠네 걔랑 혼인하는 날 지진났을 때부터 알아봤어. 얘들아, 걔가 입었던 옷은 다 불태워버려라. 그리고 앞으로 나한테 걔 얘기하면 뒤진다 정말 전 부인에대한 예의라고는 1도없는 숙종되시겠다 우리는 폐비가 된 인현왕후가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이 없다.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은 숙빈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질 뿐, 인현왕후가 어찌 살고있는지는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기의 인현왕후의 삶은 정말 최악이었다고 할수있다. 왜냐하면 숙종이 밥을 안줬기 때문이다 신하들 : 전하, 아무리 폐비됐다고 해도 한 때는 이 나라의 국모였는데 너무 용서가 없으십니다. 쌀까지 끊으시면 뭘 먹고 살라고 그러십니까? 따로 별궁에 거처하게 하시고 밥도 좀 주고 하세요 숙종 : 뭐 자네들이 그렇게 말하니 생각은 해보겠네 신하들 : 아 다행입니다ㅎㅎ 애초에 인현왕후가 뭘 그리 잘못해서 폐서인이 된것도 아니었기에, 남인 서인 할 것없이 인현왕후에 대한 대우는 해주는게 인간된 도리라고 생각했음. 그러나 숙종은 인간이 아니었다 숙종 : 야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걔 폐비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거 하나 못견디냐? 그리고 괜히 은혜 베풀었다가 걔가 이상한 희망 품고 복위 시도라도 하면 니들이 책임질거임??ㅋ 숙종개새끼야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거 가지고 그러는거 아니다...ㅠ 이 부분은 정말 볼 때마다 정털리는 부분임 신하들 : 아니 님들 거의 10년이나 같이 살았잖아요 부부간의 정을 봐서라도 쌀은 줘야죠 숙종 : 아ㅅㅂ 걔가 어떻게 살든 내 알바임? 내 앞에서 걔 얘기 하지마라 개빡치니까; 앞으로 걔 얘기 한번만 더 꺼내면 진짜 뒤진다 숙종 성깔을 보면 무서워서라도 입닥쳤을 것같은데, 인현왕후의 생활이 눈물날 만큼 곤궁했기 때문에 (아빠 사망, 오빠들 백수됨, 집안 노비 몰수, 쌀 지급x) 보다못한 신하들이 몇번씩이나 상소를 올렸다. 물론 숙종은 가볍게 다 씹는다. 몇명은 괜히 상소올렸다가 관직도 삭탈됐다. 그렇게 인현왕후는 힘든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인현왕후가 거처하는 곳에 왠 도둑놈 하나가 든것이다.. 이 도둑놈은 도망할 곳이 없어지자 인현왕후의 집 담벼락을 넘어 몰래 숨은 것이었다. 이게 발각되자 이 새끼는 남의 집 자물쇠를 지 마음대로 쳐부수고 나갔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신하들은 난리가 났다. 일반 백성 집에서도 안일어날 일이 인현왕후의 집에서 일어나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신하들 : 전하.. 이건 좀 아니잖아요ㅡㅡ 숙종 : 그래 그 도둑놈 처형시키면 되는거지?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걔 언급ㄴㄴ 결국 인현왕후의 쌀 지급은 해결되지않은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 이후로 인현왕후는 절에서 지냈던 것 같다. 밥도 얻어먹을 겸 멘탈힐링도 되니 일석이조 그러던 어느날 소론 : 전하!!! 서인 새끼들이 인현왕후 복위 계획하는데여!? 숙종 : 뭐!??? 돌았나 이 십새끼들이? 다 죽여버려!!!! 남인 : 옙 알겠습니다^^7 서인 : 아 좆됐네... 숙종 : 음.. 근데 얘들아...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지... 남인 : 아 더 시킬거 있으세요? 전하가 시키신대로 열심히 주리틀고 있습니다^^ 숙종 : 응 근데 이제 너네가 주리 틀려야 할 것같애^^ 남인 : ????? 서인 : ????? 숙종 : 그리고 인현왕후도 다시 불러들일거야^^ 숙종은 개뜬끔없이 스탠스를 바꾼다 서인을 조지다가 갑자기 남인을 조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이유는 뭘까..? 아무도 모른다.. 이미 숙종의 왕권은 하늘 꼭대기에 있었기에 왕권강화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기다 경종의 미래를 생각하면 인현왕후를 더욱 불러와선 안됐다. 내 궁예지만, 나는 숙빈이 숙종에게 무슨 말을 건냈다고 생각한다 그거 말고는 진짜 이유가 없어.... 아무튼 숙종은 인현왕후에게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편지 내용이 참 가관이다 숙종 : 중전 미안하오 내가 예전에는 간신들한테 속아서 그랬던거요 숙종 : 가끔씩 그대가 내 꿈에 나타났는데 내 옷을 잡고 우는 모습이 참 슬펐소 숙종 : 그대가 나에게 했던 말이 나쁜 뜻에서 했던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했던 말이라는걸 이제서야 깨달았소 숙종 : 그 간신들 내가 얼마전에 다 처리했으니까 우리 다시 합치자... 구남친 냄새 솔솔 풍기는 숙종의 편지에 인현왕후도 답장을 한다 인현왕후 :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살아만 있는 것도 감사할 지경인데 어찌 감히 궁에 갈수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다시 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소리였다. 숙종 : ㅅㅂ...얘들아 그냥 니들이 직접가서 얘 데리고와라 신하들 : 저기... 문을 안열어주던데여... 예전처럼 외간사람이 들어올까봐 겁나서 자물쇠 못풀겠대여..;; 숙종 : 아니 우리가 호위해줄거니까 괜찮다고해;;; 그리고 가는 김에 옷이랑 선물도 다 줘 인현왕후 : 계속 거절하는 것도 좀 아닌것같아 문은 열었지만 옷이랑 선물은 못받겠습니다. 저같은 죄인이 어찌 이런걸 받을 수있겠습니까 제발 도로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숙종 : 아니..그만 좀 튕기고 제발 받아줘 인현왕후 : ㄴㄴ 숙종 : 그만 좀 튕겨!!!! 너 내가 준 옷입고 옥대타고 안오면 상궁들이 대신 죽을거니까 알아서 해 인현왕후 : 어휴... 그렇게 까지 하니 가기는 가겠음 이 이후에도 인현왕후는 뭐만하면 죄인드립을 하며 숙종을 속터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 저러니 빡칠수도 있겠지만 숙종은 솔직히 뺨맞아도 할말없는 수준이라.. 숙종 본인도 그걸 아는지 인현왕후 저러는거 다 받아줌 출처 숙종이 너무했네... 인현왕후가 진짜 보살이었군..
2022 카타르 월드컵 32개국 전체 선수 명단
<A조> - 카타르, 에콰도르, 세네갈, 네덜란드 사드 알 시브 (32, 알 사드) 메샬 바르샴 (24, 알 사드) 유세프 하산 (26, 알가라파) 압델카림 하산 (29, 알 사드) 부알렘 쿠키 (32, 알 사드) 페드루 미구엘 (32, 알 사드) 이스마일 모함메드 (32, 알두하일) 타렉 살만 (24, 알 사드) 바삼 알라위 (24, 알두하일) 무사브 케데르 (29, 알 사드) 호맘 아흐메드 (23, 알 가라파) 자셈 가베르 (20, 알 아라비) 카림 부디아프 (32, 알두하일) 압둘라지즈 하템 (31, 알라이얀) 알리 아사달라 (29, 알 사드) 아심 마디보 (26, 알두하일) 모함메드 와드 (23, 알 사드) 살렘 알 하즈리 (26, 알 사드) 모스타파 타렉 (21, 알 사드) 하산 알 하이도스© (31, 알 사드) 아크람 아피프 (25, 알 사드) 알모에즈 알리 (26, 알두하일) 모함메드 문타리 (28, 알두하일) 아흐메드 알라엘딘 (29, 알가라파) 칼리드 무니르 (23, 알와크라) 나이프 알 하드라미 (21, 알라이얀) 감독 : 펠릭스 산체스 (46, 스페인) 에콰도르 에르난 갈린데스 (35, 아우카스)  펠릭스 토레스 (25, 산토스 라구나)  피에로 인카피에 (20, 레버쿠젠)  로베르트 아르볼레다 (31, 상파울루)  호세 시푸엔테스 (23, LA FC)  윌리암 파초 (21, 앤트워프)  페르비스 에스투피냔 (24,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카를로스 그루에소 (27, 아우크스부르크)  아이르톤 프레시아도 (28, 산토스라구나)  로마리오 이바라 (28, 파추카)  마이클 에스트라다 (26, 크루스 아술)  모이세스 라미레스 (22, 인디펜디엔테 델 바예)  에네르 발렌시아 (33, 페네르바체)  사비에르 아레아가 (28, 시애틀 사운더스)  앙헬 메나 (34, 레온)  예레미 사르미엔토 (20,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앙헬로 프레시아도 (24, 헹크)  디에고 팔라시오스 (23, LA FC)  곤살로 플라타 (22, 레알 바야돌리드)  세바스 멘데스 (25, LA FC)  알란 프랑코 (24, 타예레스)  알렉산데르 도밍게스 (35, 키토)  모이세스 카이세도 (21,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조르카에프 레아스코 (23, 뉴웰스 올드 보이스)  잭슨 포로소 (22, 트루아)  케빈 로드리게스 (22, 임바부라) 감독 : 구스타보 알파로 (60, 아르헨티나) 세네갈 에두아르 멘디 (30, 첼시) 알프레드 고미스 (29, 렌) 세니 디엠 (27, QPR) 칼리두 쿨리발리ⓒ (31, 첼시) 유수프 사발리 (29, 레알 베티스) 압두 디알로 (26, 라이프치히) 포데 발로 - 투레 (25, 밀란) 파페 아부 시세 (27, 올림피아코스) 이스마일 야콥스 (23, 모나코) 포르모스 멘디 (21, 아미앙) 이드리사 게예 (33, 에버튼) 셰이쿠 쿠야테 (32, 노팅엄 포레스트) 크레팽 디아타 (23, 모나코) 남팔리스 멘디 (30, 레스터시티) 파페 게예 (23, 마르세유) 파페 마타르 사르 (20, 토트넘) 무스타파 나메 (27, 파포스) 마마두 룸 (25, 레딩) 파테 시스 (28, 라요바예카노) 사디오 마네 (30, 바이에른뮌헨) -> 부상으로 월드컵 아웃. 무사 은디아예 (20, 안더레흐트) 대체 발탁 이스마일라 사르 (24, 왓포드) 파마라 디에디우 (29, 알라니아스포르) 블라예 디아 (26, 살레르니타나) 밤바 디엠 (22, 마르세유) 일리만 은디아예 (22, 셰필드유나이티드) 니콜라 잭슨 (21, 비야레알) 감독 : 알리우 시세 (46, 세네갈) *관전포인트 : 힘줄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했지만 발탁 된 에이스 마네, 하지만 결국 대표팀 하차 네덜란드 저스틴 베일로 (24, 페예노르트) 렘코 파스베이르 (38, 아약스) 안드리스 노페르트 (28, 헤이렌베인) 데일리 블린트 (32, 아약스) 스테판 더 브레이 (30, 인테르) 버질 반 데이크© (31, 리버풀) 마테이스 더 리흐트 (23, 바이에른뮌헨) 덴절 둠프리스 (26, 인테르) 네이선 아케 (27, 맨체스터시티) 위리엔 팀버르 (21, 아약스) 타이럴 말라시아 (23,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제레미 프림퐁 (21, 레버쿠젠) 프랭키 더 용 (25, 바르셀로나) 스티븐 베르흐하위스 (30, 아약스) 데이비 클라선 (29, 아약스) 마르턴 더 론 (31, 아탈란타) 톤 코프메이너르스 (24, 아탈란타) 케네스 테일러 (20, 아약스) 사비 시몬스 (19, PSV) 멤피스 데파이 (28, 바르셀로나) 루크 더 용 (32, PSV) 스티븐 베르바인 (25, 아약스) 빈센트 얀센 (28, 앤트워프) 바우트 베흐호르스트 (30, 베식타시) 코디 학포 (23, PSV) 노아랑 (23, 클럽 브뤼헤) 감독 : 루이 반할 (71, 네덜란드) *관전포인트 : 더 용 잘생김 <B조> - 잉글랜드, 이란, 미국, 웨일스 잉글랜드 닉 포프 (30,뉴캐슬) 애런 램스데일 (24,아스날) 카일 워커 (32,맨체스터시티) 존 스톤스 (28,맨체스터시티) 해리 매과이어 (29,맨체스터유나이티드) 에릭 다이어 (28,토트넘) 키어런 트리피어 (32,뉴캐슬) 루크 쇼 (27,맨체스터유나이티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24,리버풀) 코너 코디 (29,에버튼) 벤 화이트 (25,아스날) 조던 헨더슨 (32,리버풀) 데클런 라이스 (23,웨스트햄) 메이슨 마운트 (23,첼시) 캘빈 필립스 (26,맨체스터시티) 주드 벨링엄 (19,도르트문트) 코너 갤러거 (22,첼시) 제임스 메디슨 (26,레스터시티) 라힘 스털링 (27,첼시) 해리 케인ⓒ (29,토트넘) 마커스 래시포드 (25,맨체스터유나이티드) 잭 그릴리시 (27,맨체스터시티) 부카요 사카 (21,아스날) 필 포든 (22,맨체스터시티) 칼럼 윌슨 (30,뉴캐슬) 감독 :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52,잉글랜드) *관전포인트 : 축구 종주국! 영건들의 등장! 26명의 루니들의 이번 월드컵 성적은? 이란 알리레자 베이란반드 (30, 페르세폴리스) 아미르 아베드자데 (29, 폰페라디나) 호세인 호세이니 (30, 에스테글랄) 파얌니아즈만드 (27, 세파한) 에산 하즈사피ⓒ (32, AEK 아테네) 모르테자 푸랄리간지 (30, 페르세폴리스) 라민 레자에 이안 (32, 세파한) 밀라드 모함마디 (29, AEK 아테네) 호세인 카나니자데간 (28, 알 아흘리) 쇼자에 칼릴자데 (33, 알 아흘리) 사데그 모하라미 (26, 디나모 자그레브) 루즈베체시미 (29, 에스테글랄) 마지드 호세이니 (26, 카이세리스포르) 아볼파지 잘랄리 (24, 에스테글랄) 바히드 아미리 (34, 페르세폴리스) 알리레자 자한바크시 (29, 페예노르트) 사에이드 에자톨라히 (26, 베일레) 메흐디 토라비 (28, 페르세폴리스) 사만 고도스 (29, 브렌트포드) 알리 골리자데 (26, 샤를루아) 아흐마드 누롤라히 (29, 샤밥 알 아흘리) 알리 카리미 (28, 카이세리스포르) 카림 안사리파르드 (32, 오모니아) 사르다르 아즈문 (27, 레버쿠젠) 메흐디 타레미 (30, 포르투) 감독 : 카를로스 케이로스 (69, 포르투갈) *관전포인트 : 침대축구 종주국 미국 맷터너 (28,아스날) 션 존슨 (33,뉴욕시티) 이선호바스 (27,루턴 타운) 데안드레 예린 (29,인터 마이애미) 팀림 (35,풀럼) 월커 짐머먼 (29,내쉬빌) 애런 롱 (30,뉴욕 레드 불스) 안토니 로빈슨 (25,풀럼) 세르지뇨 데스트 (22,밀란) 샤크 무어 (26,내쉬빌) 캐머런 카터 - 비커스 (24,셀틱) 조 스캘리 (19,묀헨글라트바흐) 켈린 아코스타 (27,LA FC) 웨스턴 맥케니 (24,유벤투스) 테일러 애덤스 (23,리즈유나이티드) 크리스천 롤던 (27,시애틀 사운더스) 브렌던 애런슨 (22,리즈유나이티드) 유누스 무사 (19,발렌시아) 루카 데 라 토레 (24,셀타비고) 크리스천 풀리식© (24,첼시) 조던 모리스 (28,시애틀 사운더스) 티모시 웨아 (22,릴) 조시 사전트 (22,노리치시티) 헤수스 페레이라 (21,FC 댈러스) 지오반니 레이나 (20,도르트문트) 하지 라이트 (24,안탈리아스포르) 감독 : 그렉 버홀트 (49,미국) 웨일스 웨인 헤네시(35, 노팅엄 포레스트) 대니 워드(29, 레스터시티) 애덤 데이비스(30, 셰필드유나이티드) 크리스 건터(33, 윔블던) 벤 데이비스(29, 토트넘) 코너 로버츠(27, 번리) 이선 암파두(22, 스페치아) 크리스 메펌(25, 본머스) 조 로든(25, 렌) 니코 윌리엄스(21, 노팅엄 포레스트) 톰 로키어(27, 루턴 타운) 벤 카방고(22, 스완지시티) 아론 램지(31, 니스) 조 앨런(32, 스완지시티) 해리 윌슨(25, 풀럼) 조니 윌리엄스(29, 스윈든 타운) 조 모렐(25, 포츠머스) 매튜 스미스(22, MK 돈스) 딜런 레빗(22, 던디 유나이티드) 루빈 윌(20, 카디프시티) 소바 토마스(23, 허더스필드 타운) 가레스 베일ⓒ(33, LA FC) 다니엘 제임스(25, 풀럼) 키퍼 무어(30, 본머스) 브레넌 존슨(21, 노팅엄 포레스트) 마크 해리스(23, 카디프시티) 감독 : 롭페이지(48, 웨일스) <C조> -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폴란드 아르헨티나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30, 아스톤빌라) 프랑코 아르마니 (36, 리버 플라테) 헤로니모 룰리 (30, 비야레알) 니콜라스 오타멘디 (34, 벤피카) 마르코스 아쿠냐 (30, 세비야) 니콜라스 탈리아피코 (30, 리옹) 헤르만 페첼라 (31, 레알 베티스) 나우엘 몰리나 (2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곤살로 몬티엘 (25, 세비야) 후안 포이스 (24, 비야레알) 크리스티안 로메로 (24, 토트넘)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24,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레안드로 파레데스 (28, 유벤투스) 로드리고 데 파울 (2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귀도 로드리게스 (28, 레알 베티스) 에세키엘 팔라시오스 (24, 레버쿠젠) 알레한드로 고메스 (34, 세비야) 알렉시스 마크 알리스테르 (23,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엔소 페르난데스 (21, 벤피카) 리오넬 메시ⓒ (35, 파리생제르망) 앙헬 디 마리아 (34, 유벤투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25, 인테르) 파울로 디발라 (28, 로마) 니콜라스 곤살레스 (24, 피오렌티나) -> 부상으로 월드컵 아웃.  티아고 알마다 (21,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 대체 발탁 호아킨 코레아 (28, 인테르) -> 부상으로 월드컵 아웃. 앙헬 코레아 (2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대체 발탁 훌리안 알바레스 (22, 맨체스터시티) 감독 : 리오넬 스칼로니 (44, 아르헨티나) *관전포인트 : 메시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26인의 메동생들. 과연 메시에게 월드컵 우승을 안겨줄 것인가? 메시를 지키는 호위무사들 사우디 아라비아 모함메드 알 오와이스 (31, 알 힐랄) 모함메드 알 루바이에 (25, 알아흘리) 나와프 알 아키디 (22, 알 나스르) 야세르 알 샤흐라니 (30, 알 힐랄) 모함메드 알 브레이크 (30, 알 힐랄) 알리 알 불라이히 (32, 알 힐랄) 술탄 알 가남 (28, 알 나스르) 사우드 압둘하미드 (23, 알 힐랄) 압둘렐라 알 암리 (25, 알 나스르) 하산 탐바크티 (23, 알 샤바브) 압둘라 마두 (29, 알 나스르) 파하드 알 무왈라드 (28, 알샤바브) -> 도핑 징계로 아웃. 나와프 알 아베드 (32, 알 샤밥) 대체 발탁 살만 알 파라즈© (33, 알 힐랄) 살렘 알 다우사리 (31, 알 힐랄) 압둘라 오타이프 (30, 알 힐랄) 하탄 바헤브리 (30, 알샤바브) 모하메드 칸노 (28, 알 힐랄) 압둘렐라 알 말키 (28, 알 힐랄) 사미 알 나제이 (25, 알 나스르) 알리 알 하산 (25, 알 나스르) 나세르 알 다우사리 (23, 알 힐랄) 압둘라흐만 알 아부드 (27, 알 이티하드) 리야드 샤라힐리 (29, 압하) 피라스 알 부라이칸 (22, 알파테) 살레 알 셰흐리 (28, 알 힐랄) 하이탐 아시리 (21, 알아흘리) 감독 : 에르베르나르 (54, 프랑스) 멕시코 알프레도 탈라베라(40, 후아레스) - 월드컵 최고령  네스토르 아라우호(31, 아메리카) 세사르 몬테스(25, 몬테레이) 에드손 알바레스(25, 아약스) 호안 바스케스(24, 크레모네세) 헤라르도 아르테아가(24, 헹크) 루이스 로모(27, 몬테레이) 카를로스 로드리게스(25, 크루스 아술) 라울 히메네스(31, 울버햄튼) 알렉시스 베가(24, 과달라하라) 로헬리오 푸네스 모리(31, 몬테레이) 로돌포 코타(35, 레온) 기예르모 오초아(37, 아메리카) 에릭 구티에레스(27, PSV) 엑토르 모레노(34, 몬테레이) 엑토르 에레라(32, 휴스턴 다이나모) 오르벨린 피네다(26, AEK 아테네) 안드레스 과르다도©(36, 레알 베티스) 호르헤 산체스(24, 아약스) 엔리 마르틴(29, 아메리카) 우리엘 안투나(25, 크루스 아술) 이르빙 로사노(27, 나폴리) 헤수스 가야르도(28, 몬테레이) 루이스 차베스(26, 파추카) 로베르토 알바라도(24, 과달라하라) 케빈 알바레스(23, 파추카) 감독 : 헤라르도 마르티노(59, 아르헨티나) 폴란드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32, 유벤투스) 우카시 스코루프스키 (31, 볼로냐) 바르토미에이 드롱고프스키 (25, 스페치아) -> 부상으로 카밀 그라바라 (GK, 23, 코펜하겐) 대체 발탁 카밀 글리크 (34, 베네벤토) 바르토시 베레신스키 (30, 삼프도리아) 얀 베드나레크 (26, 아스톤빌라) 아르투르 엥제이치크 (34, 레기아 바르샤바) 매티 캐시 (25, 아스톤빌라) 니콜라 잘레프스키 (20, 로마) 로베르트 굼니 (24, 아우크스부르크) 야쿠프 키비오르 (22, 스페치아) 마테우시 비에테스카 (25, 클레몽 푸트)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 (32, 알샤바브) 카밀 그로시츠키 (34, 포곤 슈체친) 피오트르 지엘린스키 (28, 나폴리) 프레미스와프 프란코프스키 (27, 랑스) 세바스티안 시만스키 (23, 페예노르트) 다미안 시만스키 (27, AEK 아테네) 시몬 주르코프스키 (25, 피오렌티나) 크리스티안 비엘리크 (24, 버밍엄시티) 야쿠프 카민스키 (20, 볼프스부르크) 미하우 스쿠라슈 (22, 레흐 포즈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34, 바르셀로나) 아르카디우시 밀리크 (28, 유벤투스) 크시슈토프 피옹테크 (27, 살레르니타나) 카롤 슈비데르스키 (25, 샬럿 FC) 감독 : 체스와프 미흐니에비치 (52, 폴란드) *관전포인트 : 폴석진 (틱톡하는 폴란드의 지석진) <D조> - 프랑스, 호주, 덴마크, 튀니지 프랑스 위고 요리스© (35, 토트넘) 스테브 망당다 (37, 렌) 알퐁스 아레올라 (29, 웨스트햄) 라파엘 바란 (29,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벵자망 파바르 (26, 바이에른뮌헨) 뤼카 에르난데스 (26, 바이에른뮌헨) 프레스넬 킴펨베 (27, 파리생제르망) ->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악셀 디사시 (24, AS 모나코) 대체 발탁 쥘 쿤데 (23, 바르셀로나) 테오 에르난데스 (25, 밀란) 윌리암 살리바 (21, 아스날) 다요 우파메카노 (24, 바이에른뮌헨) 이브라히마 코나테 (23, 리버풀) 아드리앙 라비오 (27, 유벤투스) 오렐리앙 추아메니 (22, 레알마드리드) 마테오 귀엥두지 (23, 마르세유) 조르당 베레투 (29, 마르세유)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20, 레알마드리드) 유수프 포파나 (23, 모나코) 올리비에 지루 (36, 밀란) 앙투안 그리즈만 (3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카림 벤제마 (34, 레알마드리드) -> 훈련 중 허벅지 부상 악화로 3주 아웃. 대체 선수 미정  킬리안 음바페 (23, 파리생제르망) 킹슬리 코망 (26, 바이에른뮌헨) 우스만 뎀벨레 (25, 바르셀로나) 크리스토퍼 은쿤쿠 (24, 라이프치히) -> 훈련 중 무릎 인대 부상으로 아웃. 콜로 무아니 (23, FC 낭트) 대체 발탁 감독 : 디디에 데샹 (54, 프랑스) *관전포인트 : 디펜딩 챔피언은 다음 월드컵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둔다는 징크스를 깰 것인가?  발롱도르 수상자(카림 벤제마)가 월드컵에 불참하는 것은 42년만에 처음 호주 호주 매튜 라이언© (30,  코펜하겐) 대니 부코비치 (37,  센트럴 코스트 마리너스) 앤드류 레드메인 (33,  시드니 FC) 아지즈 베히치 (32,  던디유나이티드) 밀로스 데게넥 (28,  콜럼버스 크류) 베일리 라이트 (30,  선덜랜드) 프란 카라치치 (26,  브레시아) 해리 사우타 (24,  스토크시티) 나다니엘 앳킨슨 (23,  하츠 오브 미들로디언) 조엘 킹 (22,  OB) 키 로울스 (24,  하츠 오브 미들로디언) 토마스 덩 (25,  알비렉스 니가타) 애런 모이 (32,  셀틱) 잭슨 어바인 (29,  장크트 파울리) 아이딘 흐루스티치 (26,  엘라스 베로나) 라일리 맥그리 (24,  미들즈브러) 키누 바커스 (24,  세인트 미렌) 캐머런 데블리 (24,  하츠 오브 미들로디언) 매튜 레키 (31,  멜버른시티) 아워 마빌 (27,  카디스) 제이미 맥클라렌 (29,  멜버른시티) 미첼 듀크 (31,  파지아노 오카야마) 마틴 보일 (29,  하이버니언) 크레이그 굿윈 (30,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제이슨 커밍스 (27,  센트럴 코스트 마리너스) 가랑 쿠올 (18,  센트럴 코스트 마리너스) 감독 : 그레이엄 아놀드 (59,  호주) 덴마크 카스페르 슈마이켈 (36, 니스) 프레데릭 뢰노우 (30, 우니온 베를린) 올리버 크리스텐센 (23, 헤르타베를린) 시몬 키예르© (33, 밀란)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 (26, 바르셀로나) 옌스 스트리거 라르센 (31, 트라브존스포르) 다니엘 바스 (33, 브뢴뷔) 요아킴 멜레 (25, 아탈란타) 요아킴 안데르센 (26, 크리스탈 팰리스) 라스무스 크리스텐센 (25, 리즈유나이티드) 빅토르 넬손 (24, 갈라타사라이) 알렉산데르 바 (24, 벤피카) 크리스티안 에릭센 (30,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토마스 델레이니 (31, 세비야)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27, 토트넘) 마티아스 옌센 (26, 브렌트포드) 크리스티안 뇌르고르 (28, 브렌트포드) 유수프 포울센 (28, 라이프치히) 마르틴 브레이스웨이트 (31, 에스파뇰) 안드레아스 코르넬리우스 (29, 코펜하겐) 캐스퍼 돌베르 (25, 세비야) 안드레아스 스코우 올센 (22, 클뤼프 브뤼허) 미켈담스고르 (22, 브렌트포드) 요나스 빈 (23, 볼프스부르크) 로베르트 스코우 (26, 호펜하임) 예스페르 린스트림 (22, 프랑크푸르트) 감독 : 카스페르 히울만 (50, 덴마크) 튀니지 아이멘 마루티 (38, 에투알 뒤 사엘) 빌렐 이파 (32, 쿠웨이트 SC) 몬타사르 탈비 (24, 로리앙) 야신 메리아 (29, 에스페랑스) 나데르 간드리 (27, 클뤼프 아프리캉) 딜란 브론 (27, 살레르니타나) 유세프 므사크니© (32, 알 아라비) 한니발 메브리 (19, 버밍엄시티) 이삼 제발리 (30, OB) 와흐비 카즈리 (31, 몽펠리에) 타하 야신 케니시 (30, 쿠웨이트 SC) 알리 말룰 (32, 알아흘리) 페르자니 사시 (30, 알두하일) 아이사 라이니 (25, 페렌츠바로시) 모하메드 알리 벤 롱단 (23, 에스페랑스) 아이멘 다흐멘 (25, CS 스파시엠) 엘리에스 스키리 (27, 쾰른) 가일렌 샬랄리 (28, 에스페랑스) 세이페딘 자지리 (29, 자말레크) 모하메드 드라게르 (26, 루체른) 와즈디 케흐리다 (27, 아트로미토스) 베시르 벤 사이드 (27, IUS 모나스티르) 나임 슬리티 (30, 알 이티파크) 알리 압디 (28, 캉) 아니스 벤 슬리만 (21, 브뢴뷔) 무에즈 하센 (27, 클뤼프 아프리캉) 감독 : 잘렐 카드리 (50, 튀니지) <E조> - 스페인, 코스타리카, 독일, 일본 스페인 스페인 우나이 시몬 (25, 빌바오) 로베르트 산체스 (24,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다비드 라야 (27, 브렌트포드) 조르디 알바 (33, 바르셀로나)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 (33, 첼시) 다니 카르바할 (30, 레알마드리드) 파우 토레스 (25, 비야레알) 호세 가야 (27, 발렌시아) -> 부상으로 월드컵 아웃. 알레한드로 발데 (19, 바르셀로나) 대체 발탁 에릭 가르시아 (21, 바르셀로나) 아이메릭 라포르트 (28, 맨체스터시티) 우고 기야몬 (22, 발렌시아) 세르히오 부스케츠© (34, 바르셀로나) 코케 (3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드리 (26, 맨체스터시티) 마르코스 요렌테 (2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페드리 (19, 바르셀로나) 가비 (18, 바르셀로나) 카를로스 솔레르 (25, 파리생제르망) 알바로 모라타 (3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페란 토레스 (22, 바르셀로나) 마르코 아센시오 (26, 레알마드리드) 파블로 사라비아 (30, 파리생제르망) 다니 올모 (24, 라이프치히) 예레미 피노 (20, 비야레알) 안수 파티 (20, 바르셀로나) 니코 윌리암스 (20, 빌바오) 감독 : 루이스 엔리케 (52, 스페인) 스페인의 멋진 청년 마르코스 요렌테 스페인의 멋진 청년 마르코스 요렌테 *관전포인트 : 바르샤 재능 3인방 발탁, 라모스의 월드컵 5회 출전 실패, 비야 이후로 특급 스트라이커의 부재 Vamos España🇪🇦😊 일본을 혼내줘 코스타리카 케일로르 나바스 (35, 파리생제르망) 에스테반 알바라도 (33, 에레디아노) 파트리크 세케이라 (23, 루고) 프란시스코 칼보 (30, 코니아스포르) 브라이언 오비에도 (32, 레알 솔트 레이크) 오스카르 두아르테 (33, 알웨흐다) 켄달 와스톤 (34, 사프리사) 로날드 마타리타 (28, FC 신시네티) 케이세르 풀레르 (28, 에레디아노) 후안 파블로 바르가스 (27, 미요나리오스)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23, 산카를로스) 셀소 보르헤스 (34, 알라후엘렌세) 브라이언 루이스© (37, 알라후엘렌세) 옐친 테헤다 (30, 에레디아노) 헤르손 토레스 (25, 에레디아노) 헤위손 베네테 (18, 선덜랜드) 다니엘 차콘 (21, 콜로라도 래피즈) 유스틴 살라스 (26, 사프리사) 로안 윌손 (20, 그레시아) 브란돈 아길레라 (19, 노팅엄 포레스트) 더글라스 로페스 (24, 에레디아노) 안토니 에르난데스 (21, 푼타레나스) 알바로 사모라 (20, 사프리사) 호엘 캄벨 (30, 레온) 호안 베네가스 (33, 알라후엘렌세) 안토니 콘트레라스 (22, 에레디아노) 감독 : 루이스 페르난도 수아레스 (62, 콜롬비아) *관전포인트 : 일본을 혼내줘222 독일 마누엘 노이어ⓒ (36, 바이에른뮌헨) 마르크 - 안드레 테어 슈테겐 (30, 바르셀로나) 케빈 트라프 (32, 프랑크푸르트) 안토니오 뤼디거 (29, 레알마드리드) 마티아스 긴터 (28, 프라이부르크) 니클라스 쥘레 (27, 도르트문트) 틸로 케러 (26, 웨스트햄) 루카스 클로스터만 (26, 라이프치히) 다비트 라움 (24, 라이프치히) 크리스티안 귄터 (29, 프라이부르크) 니코 슐로터베크 (22, 도르트문트) 아르멜 벨라 - 코차프 (20, 사우스햄튼) 요슈아 키미히 (27, 바이에른뮌헨) 마리오 괴체 (30, 프랑크푸르트) 일카이 귄도안 (31, 맨체스터시티) 레온 고레츠카 (27, 바이에른뮌헨) 율리안 브란트 (26, 도르트문트) 카이 하베르츠 (23, 첼시) 자말 무시알라 (19, 바이에른뮌헨) 요나스 호프만 (30, 묀헨글라트바흐) 토마스 뮐러 (33, 바이에른뮌헨) 르로이 사네 (26, 바이에른뮌헨) 세르주 그나브리 (27, 바이에른뮌헨) 카림 아데예미 (20, 도르트문트) 니클라스 크루크 (29, 베르더 브레멘) 감독 : 유수파 무코코 (17, 도르트문트) - 월드컵 최연소 선수 감독 : 한지 플리크 (57, 독일) *관전포인트 : 전범더비 일본을 혼내줘333 일본 카와시마 에이지 (39, 스트라스부르) 야마네 미키 (28, 가와사키 프론탈레) 타니구치 쇼고 (31, 가와사키 프론탈레) 이타쿠라 코 (25, 묀헨글라트바흐) 나가토모 유토 (36, FC 도쿄) 엔도 와타루 (29, 슈투트가르트) 시바사키 가쿠 (30, 레가네스) 도안 리츠 (24, 프라이부르크) 미토마 카오루 (25,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미나미노 타쿠미 (27, 모나코) 쿠보 타케후사 (21, 레알 소시에다드) 곤다 슈이치 (33, 시미즈 S펄스) 리타 히데마사 (27, 스포르팅 CP) 이토 준야 (29, 랭스) 카마다 다이치 (26, 프랑크푸르트) 토미야스 타케히로 (23, 아스날) 타나카 아오 (24, 뒤셀도르프) 아사노 타쿠마 (27, 보훔) 사카이 히로키 (3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소마 유키 (23, 쇼난 벨마레) 마치노 슈토 (24, 세르클러 브뤼허) 우에다 아야세 (34, 샬케) 요시다마야© (30, 신트트라위던) 슈미트 다니엘 (25, 나고야 그램퍼스) 마에다 다이젠 (25, 셀틱) 이토 히로키 (23, 슈투트가르트) 감독 : 모리야스 하지메 (54, 일본) <F조> - 벨기에, 캐나다, 모로코, 크로아티아 벨기에 티보 쿠르투아 (30, 레알마드리드) 시몬 미뇰레 (34, 클뤼프 브뤼허) 코엔 카스틸스 (30, 볼프스부르크) 얀베르통언 (35, 안데를레흐트) 토비 알더베이럴트 (33, 앤트워프) 토마뫼니에 (31, 도르트문트) 티모시 카스타뉴 (26, 레스터시티) 아르투르 테아테 (22, 렌) 제노 드바스트 (19, 안데를레흐트) 바우트 파스 (24, 레스터시티) 악셀 비첼 (3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케빈 더 브라위너 (31, 맨체스터시티) 야닉 카라스코 (2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리 틸레만스 (25, 레스터시티) 레안더 덴동커 (27, 아스톤빌라) 한스 바나켄 (30, 클럽 브뤼헤) 레안드로 트로사르 (27,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샤를 더 케텔라러 (21, 밀란) 아마두 오나나 (21, 에버튼) 에덴 아자르© (31, 레알마드리드) 드리스 메르턴스 (35, 갈라타사라이) 로멜루 루카쿠 (29, 인테르) 미시 바추아이 (29, 페네르바체) 토르간 아자르 (29, 도르트문트) 제레미 도쿠 (20, 렌) 로이스 오펜다 (22, 랑스) 감독 :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49, 스페인) 캐나다 데인 세인트 클레어 (25,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알리스테어 존스턴 (24, CF 몽레알) 샘 아데커비 (27, 하타이스포르) 카말 밀러 (25, CF 몽레알) 스티븐 비토리아 (35, 차베스) 사무엘 피에트 (28, CF 몽레알) 스테픈 유스타키오 (25, 포르투) 리엄 프레이저 (24, 데인즈) 루카스 카발리니 (29, 벤쿠버 화이트캡스) 주니어 호일렛 (32, 레딩) 타존 뷰캐넌 (23, 클뤼프 브뤼허) 이케우그보 (24, 트루아) 아티바 허친슨ⓒ (39, 베식타스) 마크 - 앤서니 카예 (27, 토론토 FC) 이스마엘 코네 (20, CF 몽레알) 제임스 판테미스 (25, CF 몽레알) 카일 래린 (27, 클럽 브뤼헤) 밀란 보르얀 (35,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알폰소 데이비스 (22, 바이에른뮌헨) 조너선 데이비드 (22, 릴) 조너선 오소리오 (30, 토론토 FC) 리치 라레이아 (27, 토론토 FC) 리엄 밀러 (23, 바젤) 데이비드 워더스푼 (32, 세인트 존스톤) 데렉 코르넬리우스 (24, 파네톨리코스) 조엘 워터먼 (26, CF 몽레알) 감독 : 존 허드먼 (47, 잉글랜드) 모로코 야신 부누 (31, 세비야) 무니르 모하메디 (33, 알웨흐다) 아흐메다 레다 타나우티 (26, 위다드 AC) 로망 사이스ⓒ (32, 베식타시) 아시라프 하키미 (24, 파리생제르망) 나예프 아게르드 (26, 웨스트햄) 누사이르 마즈라위 (25, 바이에른뮌헨) 자와드 엘 야미크 (30, 바야돌리드) 아시라프 다리 (23, 브레스트) 바드르 베눈 (29, 카타르 SC) 야히아 아티야트 알라 (27, 위다드 AC) 소피안 암라바트 (26, 피오렌티나) 셀림 아말라 (26, 스탕다르 리에주) 아민 아리트 (25, 마르세유) ->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월드컵 아웃. 아나스 자루리 (22, 번리) 대체 발탁 일리아스 샤이르 (25, QPR) 아제딘 우나히 (22, 앙제) 야히아 자브란 (31, 위다드 AC) 압델하미드 사비리 (25, 삼프도리아) 빌랄 엘 카누스 (18, 헹크) 유세프 엔 - 네시리 (25, 세비야) 하킴 지예시 (29, 첼시) 소피안부팔 (29, 앙제) 압데라작 함달라 (31, 알 이티하드) 자카리아 아부클랄 (22, 툴루즈) 압데 에잘줄리 (20, 오사수나) 왈리드 세디라 (24, 바리) 감독 : 왈리드 레그라귀 (47, 모로코) 크로아티아 도미닉 리바코비치 (27, 디나모 자그레브) 이비차 이부시치 (27, 오시예크) 이보그르비치 (2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도마고이 비다 (33, AEK 아테네) 데얀 로브렌 (33, 제니트) 보르나 바리시치 (29, 레인저스) 요시프 유라노비치 (27, 셀틱) 요슈코 그바르디올 (20, 라이프치히) 보르나 소사 (24, 슈투트가르트) 요시프 스타니시치 (22, 바이에른뮌헨) 마르틴 에를리치 (24, 사수올로) 요시프 수탈로 (22, 디나모 자그레브) 루카 모드리치 (37, 레알마드리드) 마테오 코바치치 (28, 첼시) 마르셀로 브로조비치 (29, 인테르) 마리오 파샬리치 (27, 아탈란타) 니콜라 블라시치 (25, 토리노) 로브로 마예르 (24, 렌) 크리스티얀 야키치 (25, 프랑크푸르트) 루카 수치치 (20, 잘츠부르크) 이반 페리시치 (33, 토트넘) 안드레이 크라마리치 (31, 호펜하임) 브루노 페트코비치 (28, 디나모 자그레브) 미슬라프 오르시치 (29, 디나모 자그레브) 안테 부디미르 (31, 오사수나) 마르코 리바야 (29, 하이두크 스플리트) 감독 : 즐라트코 달리치 (56, 크로아티아) <G조> - 브라질, 세르비아, 스위스, 카메룬 브라질 브라질 알리송 (30, 리버풀) 다닐루 (31, 유벤투스) 티아구 실바 (38, 첼시) 마르키뉴스 (28, 파리생제르망) 카제미루 (30,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알렉스 산드루 (31, 유벤투스) 루카스 파케타 (25, 웨스트햄) 프레드 (29,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히샬리송 (25, 토트넘) 네이마르 (30, 파리생제르망) 하피냐 (25, 바르셀로나) 웨베르통 (34, 파우메이라스) 다니 알베스 (39, UNAM) 에데르 밀리탕 (24, 레알마드리드) 파비뉴 (29, 리버풀) 알렉스 텔레스 (29, 세비야) 브루누 기마랑이스 (24, 뉴캐슬) 가브리엘 제주스 (25, 아스날) 안토니 (22,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22, 레알마드리드) 호드리구 (21, 레알마드리드) 에베르통 히베이루 (33, 플라멩구) 에데르송 (29, 맨체스터시티) 브레메르 (25, 유벤투스) 페드루 (25, 플라멩구) 가브리엘 마르티넬리 (21, 아스날) 감독 : 치치 (61, 브라질) *관전포인트 : 에버랜드에서 보여준 브라질의 조직적인 플레이 조심 세르비아 프레드라그 라이코비치 (27, 마요르카) 마르코 드미트로비치 (30, 세비야) 바냐 밀린코비치-사비치 (25, 토리노) 니콜라 밀렌코비치 (25, 피오렌티나) 스테판 미트로비치 (32, 헤타페) 스트라히냐 파블로비치 (21, 잘츠부르크) 밀로시 벨리코비치 (27, 베르더 브레멘) 필리프 믈라데노비치 (31, 레기아 바르샤바) 스르잔 바비치 (26, 알메리아) 스트라히냐 에라코비치 (21,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두샨 타디치© (34, 아약스) 필리프 코스티치 (30, 유벤투스) 네마냐 구델 (31, 세비야) 네마냐 막시모비치 (27, 헤타페) 네마냐 라도니치 (26, 토리노) 필리프 주리치치 (30, 삼프도리아)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27, 라치오) 사샤 루키치 (26, 토리노) 안드리야 지브코비치 (26, PAOK) 다르코 라조비치 (32, 엘라스 베로나) 마르코 그루이치 (26, 포르투) 우로시 라치치 (24, 브라가) 이반 일리치 (21, 엘라스 베로나)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28, 풀럼)  루카 요비치 (24, 피오렌티나) 두샨 블라호비치 (22, 유벤투스)  감독 :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57, 세르비아)  스위스 얀 좀머 (33, 묀헨글라트바흐) 요나스 오믈린 (28, 몽펠리에) 그레고르 코벨 (24, 도르트문트) 필리프 켄 (24, 잘츠부르크)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30, 토리노) 파비안 셰어 (30, 뉴캐슬) 마누엘 아칸지 (27, 맨체스터시티) 니코 엘베디 (26, 묀헨글라트바흐) 실반 비드머 (29, 마인츠) 에라이 죄메르트 (24, 발렌시아) 제르단 샤키리 (31, 시카고 파이어) 그라니트 자카© (30, 아스날) 레모 프로일러 (30, 노팅엄 포레스트) 데니스 자카리아 (25, 첼시) 지브릴 소우 (25, 프랑크푸르트) 레나토 슈테판 (31, 루가노) 에디밀손 페르난데스 (26, 마인츠) 파비안 프라이 (33, 바젤) 미셸 애비셔 (25, 볼로냐) 아르돈 야샤리 (20, 루체른) 파비안 리더 (20, 영보이스) 하리스 세페로비치 (30, 갈라타사라이) 브릴엠볼로 (25, 모나코) 루벤 바르가스 (24, 아우크스부르크) 크리스티안 파스나흐트 (28, 영보이스) 노아 오카포르 (22, 잘츠부르크) 감독 : 무라트 야킨 (48, 스위스) 카메룬 앙드레 오나나 (26, 인테르) 데비스 에파시 (29, 압하) 시몽 은가판두에튼부 (19, 마르세유) 니콜라 은쿨루 (32, 아리스) 콜랭 패 (29, 알타이) 누후 톨로 (25, 시애틀 사운더스) 장 - 샤를 카스텔레토 (27, 낭트) 올리비에 음베조 (25, 필라델피아 유니온) 엔조 에보스 (23, 우디네세) 크리스토퍼 우 (21, 렌) 앙드레 - 프랑크 잠보 앙귀사 (26, 나폴리) 피에르 쿤데 (27, 올림피아코스) 사무엘 구에 (24, 메헬렌) 마르탱 옹글라 (24, 엘라스 베로나) 가엘 옹두아 (27, 하노버) 올리비에 은참 (26, 스완지시티) 제롬 은곰 음베켈리 (24, APEJES) 뱅상 아부바카르© (30, 알 나스르) 에릭 막심 추포-모팅 (33, 바이에른뮌헨) 칼 토코 에캄비 (30, 리옹) 크리스티앙 바소고그 (27, 상하이 선화) 무미 은가말뢰 (28, 디나모 모스크바) 장-피에르 은사메 (29, 영보이스) 브라이언 음뵈모 (23, 브렌트포드) 조르주 - 케뱅 은쿠두 (27, 베식타시) 마루 수에부 (21, 코통 스포르) 감독 : 리고베르 송 (46, 카메룬) <H조> - 포르투갈, 가나, 우루과이, 대한민국 포르투갈 후이 파트리시우 (34, 로마) 디오구 코스타 (23, 포르투) 주제 사 (29, 울버햄튼) 페페 (39, 포르투) 다닐루 페헤이라 (31, 파리생제르망) 하파엘 게헤이루 (28, 도르트문트) 후벵 디아스 (25, 맨체스터 시티) 주앙 칸셀루 (28, 맨체스터 시티) 누누 멘데스 (20, 파리생제르망) 디오구 달로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안토니우 실바 (19, 벤피카) 윌리암 카르발류 (30, 레알 베티스) 베르나르두 실바 (28, 맨체스터 시티) 주앙 마리우 (29, 벤피카) 브루노 페르난데스 (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후벵 네베스 (25, 울버햄튼) 주앙 팔리냐 (27, 풀럼) 마테우스 누네스 (24, 울버햄튼) 오타비우 (27, 포르투) 비티냐 (22, 파리생제르망)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안드레 실바 (27, 라이프치히) 주앙 펠릭스 (2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하파엘 레앙 (23, 밀란) 히카르두 오르타 (28, 브라가) 곤살루 라모스 (21, 벤피카) 감독 : 페르난두 산투스 (68, 포르투갈) 가나 압둘 마나프 누루딘 (23, 외펜) 이브라힘 단라드 (19, 아산테 코토코) 로렌스 아티-지기 (25, 장크트갈렌) 데니스 오도이 (34, 클뤼프 브뤼허) 타리크 램프티 (22,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알리두 세이두 (26, 클레몽 푸트) 다니엘 아마티 (27, 레스터시티) 조셉 아이두 (27, 셀타비고) 알렉산더 지쿠 (28, 스트라스부르) 모함메드 살리수 (23, 사우스햄튼) 압둘라만 바바 (28, 레딩) 기드온 멘사 (24, 오셰르) 안드레 아이유© (32, 알 사드) 토마스 파티 (29, 아스날) 엘리샤 오우수 (24, 헨트) 살리스 압둘 사메드 (22, 랑스) 모함메드 쿠두스 (22, 아약스) 다니엘 - 코피 체레 (26, 프라이부르크) 다니엘 아프리이 (21, 하츠 오브 오크) 카말소와 (22, 클뤼프 브뤼허) 압둘 파타우 이사하쿠 (18, 스포르팅 CP) 오스만 부카리 (23,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이냐키 윌리암스 (28, 아틀레틱 빌바오) 앙투안 세메뇨 (22, 브리스톨시티) 조던 아이유 (31, 크리스탈 팰리스) 카말딘 술레마나 (20, 렌) 감독 : 오토 아도 (47, 가나) 우루과이 페르난도 무슬레라 (36, 갈라타사라이) 세르히오 로체트 (29, 나시오날) 세바스티안 소사 (36, 인디펜디엔테) 디에고 고딘ⓒ (36, 벨레스 사르스필드) 마르틴 카세레스 (35, LA 갤럭시) 호세 마리아 히메네스 (2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바스티안 코아테스 (32, 스포르팅 CP) 마티아스 비냐 (25, 로마) 로날드 아라우호 (23, 바르셀로나) 기예르모 바렐라 (29, 플라멩구) 마티아스 올리베라 (25, 나폴리)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25, 나시오날) 마티아스 베시노 (31, 라치오) 로드리고 벤탄쿠르 (25, 토트넘) 페데리코 발베르데 (24, 레알마드리드) 조르잔데 아라스카에타 (28, 플라멩구) 루카스 토레이라 (26, 갈라타사라이) 니콜라스 데 라 크루스 (25, 리버 플라테) 마누엘 우가르테 (21, 스포르팅 CP) 루이스 수아레스 (35, 나시오날) 에딘손 카바니 (35, 발렌시아) 막시 고메스 (26, 트라브존스포르) 다르윈 누녜스 (23, 리버풀) 파쿤도 토레스 (22, 올랜도시티) 파쿤도 펠리스트리 (20,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아구스틴 카노비오 (24, 파라나엔시) 감독 : 디에고 알론소 (47, 우루과이) 🌈💖😊대🥰한❤️‍🔥민❤️‍🩹국🇰🇷💝🌟🌷🌻🌈 1. 김승규 (32, 알 샤바브) 2. 윤종규 (24, FC 서울) 3. 김진수 (30, 전북 현대) 4. 김민재 (25, 나폴리) 5. 정우영 (32, 알 사드) - 큰 우영 6. 황인범 (26, 올림피아코스) 7. 손흥민ⓒ (30, 토트넘) 8. 백승호 (25, 전북 현대) 9. 조규성 (24, 전북 현대) 10. 이재성 (30, 마인츠) 11. 황희찬 (26, 울버햄튼) 12. 송범근 (25, 전북 현대) 13. 손준호 (30, 산둥 타이샨) 14. 홍철 (32, 대구 FC) 15. 김문환 (27, 전북 현대) 16. 황의조 (30, 올림피아코스) 17. 나상호 (26, FC 서울) 18. 이강인 (21, 마요르카) 19. 김영권 (32, 울산 현대) 20. 권경원 (30, 감바 오사카) 21. 조현우 (31, 울산 현대) 22. 권창훈 (28, 김천 상무) 23. 김태환 (33, 울산 현대) 24. 조유민 (25, 대전 하나 시티즌) 25. 정우영 (23, 프라이부르크) - 작은 우영 26. 송민규 (23, 전북 현대) 감독 : 파울루 벤투 (53, 포르투갈) 대한민국 화이팅! 출처 아 진짜 잘됐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흥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