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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 "아누비스" 이야기.jpg (스압주의)

아쥬 자극적이고.. 아침드라마급 막장으로 흥미로운 이집트 신화
읽어보시죠 !!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

1. 아누비스 머리는 무슨동물인가

처음엔 자칼(왼쪽) 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이집트 늑대(오른쪽) 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리된 상태야

학명은 (Canis anthus lupaster)

2. 아누비스 출생의 비밀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서 4남매가 태어났다
(사실 게브와 누트는 친남매라 아버지 슈가 결혼을 반대해서 도망쳐서 지들끼리 결혼했다)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결혼했고


세트와 네프티스가 결혼하였다



그러나 성격 더러운 세트를 싫어했던 네프티스
(*세트는 신화에서 태풍, 모래바람, 이방인 등 강력함의 상징이다)


자신의 큰오빠 오시리스에게 호감을 품게된다


오시리스를 술취하게 한후 그와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얼마후 오시리스와의 사이에서 아누비스를 낳게 된다

*전승에 따라 세트의 아들이라는 썰도 있다

*오시리스의 아들인데 머리는 세트를 닮은건 묻지 말고 넘어가자

근데 세트도 짚이는건 있는모양



세트 : 내 아이 아닌거 같은데!!!!!


네프티스 : ;;;;


아누비스 : 최근에 한적도 없는데 어떻게 애를 낳냐고!


세트는 폭풍을 일으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네프티스는 갓난아기는 아누비스를 자기 언니 이시스에게 대신 키워달라 부탁한다


아누비스가 자기 남편의 또다른 자식인것도 모르고 이시스는 지극 정성으로 키워준다


3. 아누비스의 행적


아누비스가 성인이 되자
태양신 라 : 아누비스야, 넌 지금부터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거라


아누비스 : 명색이 세트와 네프티스의 아들인데 고작 그런 메신저나 시키는거?


태양신 라 : 청년백수시대인데 일자리 주는걸로도 고맙게 여겨라


지상과 저승을 맘대로 오가는 특성상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썰이 많이 겹치기도 한다

어쨌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아누비스


띵똥~ 다음 망자 들어오세요



이때 세트가 왕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형 오시리스를 가두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트 : 쨔잔~ 형님 이 황금관 어때? 일단 만들었는데 사이즈 맞는 사람이 이집트에 안보이네 형이 한번 누워봐


오시리스 : 엇 사이즈 딱맞네ㅋㅋ 마치 날위해 만든거 같은...


세트 : ㅇㅇ 맞아


세트는 오시리스가 누운 관에 못질을 하여 늪지에 버려버린다


근데 관은 떠내려가 이집트에서 레바논까지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강가의 고목이 가지를 들어올려 관을 꿀꺽 삼켜버린다

마침 레바논에 출장왔다가 이걸 본 아누비스



아누비스 : 와 일이 꼬였네;; 우리 애비지만 좀 심한거 아니냐

빨리 이시스에게 알려야겠다!!
(본인이 나무를 베서 꺼낼 생각은 안함)


아누비스의 말을 들은 이시스도 즉시 레바논으로 달려가 오시리스가 누워있는 관의 회수에 성공했다


관을 열었을때 이미 오시리스는 산소부족으로 죽어있었고...



일단 이집트까지 가져가긴 무리니까 인적없는 늪지에 관을 숨겨뒀다가 다시와서 가져와야겠어

이시스가 돌아간지 얼마후,세트가 레바논까지 사냥을 하러왔다


세트 : 오잉 저게뭐지?!


풀숲에 숨어있는 오시리스의 관


와;; 이게 왜 여기있지 오시리스의 시체를 토막내서 아예 사하라 사막과 중동에 다 뿌려라!!!

세트는 부하를 시켜 사막 곳곳에 오시리스의 시체들을 토막내 유기했다

보다못한 태양신 라


라 : 세트 저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너무 심하네;;;

야! 아누비스 잠깐 와봐!!



아누비스 : ??


라 : 저승으로 인도해야 되는 새끼가 오시리스 몸뚱이는 토막내도 가만히 놔두냐? 직무유기 장난?


아누비스 : 그래도 우리 애비 세트의 일인데 저기까진 관여 안할려구요


라 : ㅉㅉ... 진짜 지 애비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아누비스 : 방금 뭐라 했음?



라 : 난 몰라, 너네 엄마에게 물어봐

당장 아누비스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따진다



아누비스 : 엄마! 태양신이 내 애비가 따로있다는데 이게 뭔소리야?!

결국 네프티스는 진실을 알려준다


ㅇㅇ.. 니 진짜 애비 사실 오시리스....

아누비스가 쇼크먹은건 당연한거고



엄마, 이럴때가 아님, 세트가 오시리스 시체 토막내서 사막에 다 버림;;;


아누비스와 네프티스는 즉시 이시스를 찾아가서 오시리스 건을 말한다


이시스 : 세트 시발놈이 기어코 내 남편을 토막내다니...
근데 너흰 세트의 아들이자 아내이면서 왜 날 이렇게 도와주는거..


네프티스 : 언니.. 사실 아누비스는 오시리스의 아들이야...


??!.... 뭐 지나간 일이니 신경안쓴다 일단 남편부터 찾자


이시스는 사막을 계속 돌아다니며 오시리스 시체토막을 하나하나 찾았고 하나로 맞춰서 발기되게 조정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발기 맞음)



이시스는 매의 모습으로 변해서 발기머신 오시리스와 관계를 통해 정자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몸뚱이를 저승으로 데려왔고



아누비스가 오시리스의 영혼을 육체 밖으로 꺼낸다


그렇게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다시 만나게 되고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 된다

물론 아누비스는 여전히 따까리~


얼마후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를 낳는데 호루스는 힘을 길러 세트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호루스 : 삼촌새끼 오리시스의 원수 갚으러 왔다!


호루스와 세트가 전쟁을 벌일때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모자도 호루스의 편에 들어 세트와 싸운다


세트는 결국 잡혔지만 눈물의 사과문을 써서 이시스가 맘이 흔들려 결국 풀어줘버리고



아누비스와 호루스는 이걸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이후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서 오시리스를 이은 다음 왕은 당연히 자신이라며 어필했고


세트 : 어이 태양신, 내가 맨날 님 괴롭히는 괴물들 잡아주는거 잊지 않으셨죠?
다른신들도 깝치면 다 몽둥이로 팰거임


라 : ....


회의에서 오로지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만이 호루스가 다음 왕이라면서 끝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후로도 아누비스는 호루스, 오시리스의 좋은 조력자로써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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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번의 제안.jpg
독일의 한 남작가에서 태어난 소년 베르너 폰 브라운 폰 브라운은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작곡가를 꿈꾸는 소년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망원경을 주었고 그 후로 이 소년은 천문학에 빠져들게 되지 소년은 공상 과학 소설들을 읽으면서 우주 탐험에 매료됐어 우주에 완전 매료 된 소년은 여태껏 해오던 음악을 때려 치우고 우주를 개척하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돼ㅋㅋㅋㅋ 그 후로 폰 브라운은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 근데 참 이게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소년의 수학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어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해 수학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라나 뭐라나ㅋㅋㅋㅋㅋㅋㅋ 소년은 학교 공부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잊고 달나라 여행을 꿈꿨어 완전 우주 처돌이가 된 소년 폰 브라운은 급기야 17살에는 “우주여행협회”라는 모임에 가입까지 해가며 우주여행의 꿈을 더더욱 키워나갔지 그렇게 작곡가를 꿈꾸던 음악 소년은 1930년 베를린의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로켓 연구에 모든 열정을 쏟았어 그러던 1932년 어는 날 폰 브라운이 가입한 우주여행협회는 군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액체연료 로켓 발사 실험을 진행했어 우주여행협회&군 간부들 : (기대) 셋 둘 하나 쏘세요!! 실험의 결과는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아주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어 하지만 당시 독일군의 로켓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던 발터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을 매우 눈여겨 봤어 아직은 초보 단계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로켓이 아주 유망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던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 “대학원 과정을 지원 해줄테니 육군에 들어와서 로켓 개발 연구를 계속 해 보는 게 어떻겠나?” 도른베르거 대위의 말은 폰 브라운의 인생은 물론 앞으로의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첫 번째 제안이었어 폰 브라운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지 그렇게 폰 브라운은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로켓 연구에 들어갔어 그 후 같은 해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을 무려 2년 만에 졸업하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에 진학 했어 거기다 물리학을 전공한지 2년만인 1934년에 박사학위를 받음ㅋㅋㅋㅋㅋ 첫 대학에 진학한 후 4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따냄ㄷㄷㄷ 그리고 같은 해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A-2 로켓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 함 당시 브라운의 나이 고작 22세...! 도른베르거 대위의 원픽은 초대박이었음 ㅋㅋㅋㅋㅋㅋ A-2 로켓이 성공하자 독일 정부에서는 로켓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어 독일은 1936~1937년 발트 해안에 있는 페네뮌데에 아예 로켓 연구소를 설립해벌임 그리고 폰 브라운이 연구소 팀장이 되어 로켓 개발을 주도했지 존나 20대에 연구소 팀장이라니;;;; 폰 브라운이 한창 로켓에 미쳐서 일 하던 어느날 폰 브라운에게 두 번째 제안이 들어왔어 아니 그건 사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어 1937년 독일은 폰 브라운에게 나치에 입당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폰 브라운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폰 브라운은 나치당에 가입했어 게다가 나치의 친위대인 SS에도 가입했지 <맨 앞 왼쪽=발터 도른베르거 장군, 빨간 동그라미=베르너 폰 브라운, 1941년 3월, 페네뮌데 연구소> ! 폰 브라운은 나치 당원이 되어서도 로켓 연구를 계속 했어 몇 번의 실패 끝 세계2차대전을 1년 앞 둔 1938년 폰 브라은 A-5 로켓 발사에 성공 했어 그 후 폰 브라운은 A-5 로켓의 결과를 토대로 이 전에 발사에 실패했던 A-4 로켓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지 A-4는 세 번의 실패 후 1942년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 무르익어 감과 동시에 발사에 성공했어 A-4 로켓의 성공은 독일에게 있어서 아주 큰 의미였어 초기 단계였던 로켓 개발 연구가 이젠 만드는 족족 발사에 성공할 정도로 기술력이 향상 된 건 물론이고, 지금까지 개발 된 로켓과 달리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거의 최초의 로켓이었거든 현대 로켓의 시조격인 셈이지 하지만 A-4 로켓이 바로 생산된 건 아니야 독일 군부의 내부 갈등 때문에 A-4 로켓에 대한 상부 보고가 미뤄졌거든 그래서 A-4 로켓 발사가 성공한지 1년이 지난 후에야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은 상부에 A-4 로켓에 대해 보고했어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이 보고 한 사람은 바로 히틀러였어 아까 A-4 로켓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고 했지?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A-4 로켓을 곧장 ‘보복의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A-4 로켓은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들을 무차별 폭격하는데 너무나 안성맞춤인 무기였던거야 독일은 바로 이걸 노리고 로켓 연구를 시작 한 거였어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인 독일은 현재 일본처럼 군사력에 제한을 받고 있었어 독일군의 병력은 물론 비행기, 함정, 대포의 수까지 제한하는 베르사유 조약 체결(1919) 때문이었지 하지만 제한 대상에 "로켓"은 포함되지 않았어 다른 나라들이 독일을 제한 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 낸 거야 독일은 이 맹점을 이용해 1930년부터 로켓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연구를 이끌 사람으로 폰 브라운을 영입한 것,,!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A-4 로켓을 보복의 무기로 쓰겠다는 히틀러의 결정으로 이 때부터 A-4 로켓은 V-2 로켓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로켓의 이름에 들어간 알파벳 A는 독일어 ‘Aggregat(복합기계)’에서 따 온 거고 V는 독일어 ‘Vergeltung(보복)’에서 따 온 거야 성능이 입증되자마자 이름부터 복수로 바꾸다니;; 독일이 처음부터 로켓을 무기로 이용하려고 개발 했다는 걸 아주 잘 알 수 있는 대목임 도칸새끼덜; 보복의 무기로 V-2 로켓이 제일 처음, 그리고 제일 많이 향한 곳은 영국 런던이었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4,320발의 V-2 로켓이 발사됐는데, 특히 런던은 약 1,200발의 폭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대 <V-2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영국 런던 도심의 빌딩> 하지만 여기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V-2 로켓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만큼 V-2 로켓 1대가 생산 되기까지의 과정도 어마어마했다는 점이야 V-2 로켓 한 발 쏘는 데 드는 비용 =전차 수천대 생산비용 V-2 로켓 1개 생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넘사벽>>>>>>>>>>>>>>>>>>>>>>>>>>>>>>미국이 각종 무기를 무한대로 찍어내는데 걸리는 시간 미국ver._쇼_미_더_머니.jpg 단시간에 동일 사양의 무기를 존나 미친 듯이 찍어내던 미국에 비하면 V-2 로켓은 가성비가 매우 안 좋았다고 볼 수 있지 근데 V-2 로켓 생산 비용이 조금만 더 쌌더라면? V-2 로켓이 조금만 더 빨리 완성 됐다면? 히틀러에게 조금만 더 빨리 보고가 됐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V-2 로켓이 더 많은 나라로 발사됐다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V-2 로켓을 두고 이렇게 말했어 만일 V-2가 6개월만 먼저 나왔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이 엄청난 무기를 개발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가성비가 너무 후달렸고, 1945년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승기는 완전 연합군으로 기울었어 독일의 패전을 직감한 폰 브라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 폰 브라운은 1945년 5월 히틀러가 자살한 후 미국에 순순히 항복했어 미국은 폰 브라운을 어떻게 했을까? 항복했어도 나치니까 그 자리에서 죽였을까? 살려서 훗날 전범 재판에 세웠을까? 미국은 폰 브라운을 죽이지도, 전범 재판에 세우지도 않았어 당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때의 전범 기술자을 빼돌려서 자기네 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미국은 독일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일명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1순위가 폰 브라운이었다고 함ㅋㅋㅋㅋ (여기에 731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도 있음ㅡㅡ) 말만 블랙리스트지 실상은 위시리스트 아니냐; 폰 브라운이 왜 1위였는지는 V-2 로켓만 봐도 이미 전쟁 때 그 파괴력이 입증 됐쥬? 그런 위시리스트 넘버원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미국 입장에서는 존나리 땡큐베리머치 아니겠숴? 하지만 폰 브라운은 모다? 나치쟈냐ㅇㅇ 그래서 미국 정부 내에서는 폰 브라운 처분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어 하지만 결국 1945년 6월 미국 국무장관은 폰 브라운과 다른 전문가들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을 승인했어 근데 또 막상 얘를 대놓고 미국으로 데려가자니 나치였던게 넘나 걸리는 거야(염병; 나치랑 찍은 사진도 많아서 나치 아니라고 구라 칠 수도 없었음ㅋㅋㅋㅋ 그래서 폰 브라운은 일명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을 통해 아주 $은.밀.ㅎr.ㄱㅔ-★$ 미국으로 보내졌어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 간 폰 브라운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미군과 함께 일하면서 로켓 개발 연구에 매진 했어 1953년 미국 최초의 대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발한 것도 폰 브라운임 우주 처돌이 폰 브라운은 로켓 개발 외에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선전하는 모델로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했어 수많은 대중 잡지에 우주개발의 미래에 대한 글을 기고했고, 그 중엔 우주정거장에 대한 개념을 제안 한 것도 있었어 게다가 우주여행에 관한 월트 디즈니 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디즈니랜드의 기술자문을 맡기도 했대 <월트 디즈니와 전투기 모형을 들고 있는 폰 브라운, 1954년> 전쟁으로 돈도 두둑히 벌었겠다, 로켓 연구 1인자도 데리고 있겠다 미국의 어깨는 아주 하늘 높이 치솟았어 그러던 어느날 세계를 뒤흔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벌임ㅋㅋㅋㅋ 미국은 이 일로 존나 충격을 받았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우리가 원자폭탄에서는 4년이나 앞섰고, 수소폭탄에서는 2년을 앞섰는데 인공위성에서는 뒤졌다고...? 우리가?ㅋㅋㅋㅋ렬루?ㅋㅋㅋㅋㅋ..ㅋ.ㅋ... 위대한!!!!!!!!!!! 우리 유에쎄이가!!!!!!!!!!!! 고작!!!!! 소련 놈팽이들한테 뒤쳐지다니!!!!!!!!!!!! 세계 최초가 유에쎄이가 아니라니!!!!!!!!!  으으으 분하다!!!! 소련이 무섭게 성장하자 똥줄이 타기 시작한 미국은 각잡고 인공위성 연구를 시작했어  그리고 여기엔 아주 당연하게 폰 브라운이 참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누구보다 우주 로켓 처돌이 +천재였던 폰 브라운은 자신이 개발한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량해 주피터 로켓을 설계했어 그리고 이걸 더 개발해서 주노 1을 완성시켰고, 이듬해인 1958년, 무려 1년만에 주노1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스플로러 1호 발사 모습> <우주에서의 익스플로러 1호> <위성이 궤도에 진입했음을 확인한 윌리엄 헤이워드 피커링, 제임스 밴 앨런, 베르너 폰 브라운이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익스플로러 1호의 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존나 이제 만들기만 하면 다 성공임ㅋㅋㅋㅋ 이 후로 이제 미국은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미국항공우주국, NASA야 NASA 설립 후 폰 브라운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세 번째 제안을 받게 돼 바로 나사에 취직하게 됨ㅋㅋㅋㅋㅋㅋ 1960년 폰 브라운은 NASA의 하부 조직인 마셜 우주비행센터의 소장이 되어 우주비행사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됐어 <마셜 우주 비행 센터에서 촬영한 폰 브라운의 모습, 1964년 5월> 하 지 만 또 다시 미국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함ㅋㅋㅋㅋㅋㅋㅋ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이번엔 인류 최초로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해벌인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무려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음ㅋㅋㅋㅋ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 1호의 모형> 최초 타이틀 뺏긴 미국 : 아 시발 소련이 또...!!!!(딥빡 당장 사람 태워서 우주로 날려버려!!!!!! 미국은 부랴부랴 우주비행사를 로켓에 탑승시켰어 하지만 대기 상층을 15분 동안 비행하는 데 그쳤고 우주 궤도에는 도달하지도 못했음ㅋㅋㅋㅋ 미국은 존나 분해서 참을 수 없었긔ㅋㅋㅋㅋㅋ 으으으 씨발!! 세계 최초, 인류 최초는 전부 우리 유에쎄이가 해야한다고오옭!!!! 소련 새끼들이 감히!!!!!!! 이 일로 미국은 렬루다가 자존심이 존나리 상했던지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나섰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나라가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도록 하는 목표를 완수할 것으로 믿습니다.” NASA 듣고있나? 딱 10년 준다. 잘 하자?ㅋ 대통령까지 저 난린데 어쩌겠어;;; 나사는 대통령의 뜻을 받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폴로 프로젝트 (Apollo Project)” 그리고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연구진, 폰 브라운 폰 브라운 팀은 110m 높이의 대형 로켓 새턴을 개발했어 그리고 대망의 1969년 7월 16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앞에서 로켓 새턴이 발사 됐지 바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를 태우고 말이야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발사 성공 이후 발사 통제 센터실에서 기뻐하는 폰 브라운의 모습>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폰 브라운은 평생 염원하던 우주 탐험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 거야 폰 브라운은 1972년 나사를 은퇴했어 이제 더 이상 미국 정부나 군대와 일 하지 않는 폰 브라운은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이제라도 전범 재판을 받았을까? 아니 폰 브라운은 나치 전범 재판을 받기는 커녕 미국에서 기업가로 일 하다가 1977년 6월 16일 췌장암으로 사망했어 그리고 폰 브라운은 현재까지도 나치 전범이 아닌 로켓의 아버지로 남아있지 <폰 브라운의 공로를 기리는 명패를 공개하는 모습, 1970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인류가 최초로 달에 도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한때 인류를 끔찍하게 학살했던 나치 당원이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 않아?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만약에 독일이 로켓 개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치가 되어 V-2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만약 당신이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다면 폰 브라운을 살리시겠습니까, 죽이시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처럼 자국으로 데려와 자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쓰겠습니까? 문제시 크리스탈
일본이 꿈꾸면 한국이 이룬다! 🇰🇷 2021 ver
스토리 있는 천재에 돌아버린 일본 특히 예술, 스포츠계 천재를 엄청나게 좋아함 그래서 일본이 꿈꾸는 걸 한국이 이뤄주는 중ㅋ 피겨 선수 김연아 피겨 볼모지 한국에서 독보적으로 성장하며 세계신기록을 11회 갈아치운 선수. 온갖 역경이 있었지만 압도적인 실력과 멘탈로 피겨계의 황제가 됨. 당시 일본에서 엄청 밀어주던 마오와 비교되며 더 열등감 폭발 피아니스트 조성진 만화 <피아노의 숲>은 일본의 천재 피아니스트가 세계 최고 피아노 콩쿠르에 수상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내용의 만화. 2015년 최연소로 조성진이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ㅋㅋ 가난했던 환경과 쇼팽 콩쿠르에서 누군가 고의적으로 1점이라는굉장히 낮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까지 많은 과정이 유사함 게다가 피아노의 숲 악역은 한국인들이었음ㅋㅋ 실제 공동 3위를 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모티브. 만화에서는 6위도 못하는 쩌리들로 그려지는데, 당시 4위가 일본인 피아니스트여서 더 배 아팠던듯ㅎ 발레리나 박세은 만화 <스바루>의 주인공은 불우한 환경들을 모두 이겨내고 국제 발레 콩쿠르 상을 모두 휩쓸어 버림. 하지만 실제 로잔느 국제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사람은 당시 18세 박세은. 4대 발레 콩쿠르 중 3개의 대회를 모두 섭렵. 별명은 발레계의 김연아. 이번에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 됨. 발레단 352년의 역사 중 무려무려 동양인 최초 !!! 축구선수 손흥민 현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 아시아인 프리미어 리그 최다 이 달의 선수, 통산 득점, 단일 시즌 득점 기록 보유자 컬링 선수단 팀 킴 내용 위 트위터 참고 배구선구 김연경 일본의 국기 취급받는 여자배구지만 정작 아시아에서 월드클래스 초대형 공격수는 김연경이 처음ㅋㅋ 190이 넘는 장신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도 170이 안될정도로 키가 작아 리베로와 세터 역할이었음. 이후 몇년사이에 키가 폭발적으로 자라면서 수비와 공격 모두 가능해진 사기캐. 일본이 동메달 딴 런던 올림픽에서 김연경은 MVP ㅋ 바둑기사 이세돌 그나마 현실 반영한 <고스트 바둑왕> 일본 만화 중 드물게 한국인이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캐릭터로 등장함. 모델은 고영하와 이세돌이라고... 그렇지만 만화에 나오는 일본인 캐릭터들의 묘사 자체가 주무대인 일본을 엄청 버프해 준 것에 가까움. 이세돌은 12세의 나이로 최연소 바둑기사 입단, 세계 3위의 연승기록을 가지고 있고 인공지능을 상대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인물 봉준호 감독 영화 예술의 탄생지인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를 산업으로 이끈 할리우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석권 +2021 배우 윤여정 영화 미나리로 한국 최초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아시아 여성 배우로는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로, 윤여정이 64년 만 가수 방탄소년단 내용은 다들 알테니 생략 유도선수 안창림 재일교포 3세로 도전 끝에 동메달...! 이거 만화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양궁 선수 안산 장민희 강채영 한국 여자 양궁 9연패의 신화를 거머쥔 선수들 특히 맨 왼쪽의 안산 선수는 01년생 어린 나이임에도 오직 실력으로 국대 선발됨ㅋㅋ 딱 일본 만화에 꼭 등장하는 어리지만 차분하고 이성적인 캐릭터 ㅋㅋㅋ 양궁 선수 김제덕 김우진 오진혁 여기서 맨 왼쪽 김제덕 선수 04년생 고딩이지만 재능충 노력충 알고보니 소년가장 일본인들이 만화에서 환장하는 나루토 록리st 캐릭터... 그리고 오진혁 선수 끝. 이하생략 일본 스포츠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천에서 용난 천재적 캐릭터 다수 보유한 대한민국...🇰🇷 출처 펄럭~!
한국인은 이해하기 힘든 인도와 영국의 관계.jpg
인도 캘커타에 있는 빅토리아 박물관 여기서 빅토리아란 이름은  '대영제국에 해질 날은 없다'  '패배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없다. 영국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한 홍차 좋아하는 혐성국의 그 여왕을 뜻함 인도제국 시절에 이 건물이 건립될 땐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빅토리아 기념관으로 지어졌지만 인도가 독립한 이후에는  공화정인 인도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이제 자기들 여왕이 아니므로  빅토리아란 이름은 유지시키되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영국령 인도제국을 기념하는 빅토리아 박물관으로 용도가 살짝 변함  (그게 그거인거 같긴한데) 참고로 인도 정부가 운영중임 이걸 단순히 한일 관계에 대입하면 한국 정부가 인천? 대구? 급 대도시에  일제를 기념하는 히로히토 박물관을 운영하는 총꽁깽 상황이됨 여기서 인도와 영국의 관계를 단순히 한일관계에 매칭시키면 안된다는 걸 알 수 있음  쟤네들 둘은 그냥 존나 복잡한 애증의 관계라.. 한국사람들은 인도를 보통 한국 , 프랑스 , 이집트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니까  영국과 인도 관계를 보고 머리가 띵해지는 데 인도는 한국 , 프랑스 , 이집트 같은 개념으로보면 안됨 인도를 동아시아 , 서유럽 , 중동 이런 개념봐야함 이렇게 보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도과 영국 관계의 특수성이 어느정도 이해될거임 참고로 인도에서는 식민지 시기인 영국령 인도제국시기를 British Raj 라고 부름  직역하면 영국인 왕조 일제강점기(일본에 강제로 점령당한 시기)랑 뉘앙스부터가 확 다른 것도 인도영국 관계의 특수성을 어느정도 보여줌 사실 British Raj란 말도 무굴제국을 보면 딱히 틀린 표현이 아닌 것이 무굴제국이나 인도제국이나 외부에서온 이민족 이교도 왕조인건 같음 차이점은 무굴은 인도아대륙 통일 근처까지 갔지만  이슬람 강요로 통일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유지에도 실패 이교도 학살이라는 무굴의 미친 짓으로 인해  저항세력(대표적으로 마라타국)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대응하면서 인도아대륙은 그 이후 종교로 인해 배틀로얄처럼 되버림 반면에 영국은 인도아대륙을 최초로 통일하고 유지함 영국이 인도를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로  보통 당시 영국이 존나 쌨던 것을 떠올리는 데 이것도 맞지만 인도아대륙 통일과 유지는 단순히 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님  인도 아대륙이 워낙 넓고 또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인도 통일을 하더라도 이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코르테스처럼 현지 지지세력이 필요함 현지 지지세력이 없다면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음 무굴제국이 종교 학살을 시작하고 이에 저항세력들이 각지에서 일어나 무굴은 전성기 몇십년도 유지못하고 이름만 남은 빈깡통이 됨 이렇게 무굴제국이 힘이 꺾인 이후  인도 아대륙은 종교 배틀로얄 상황이 수백년간 지속된 난세였고  이 난세에 영국이 개입하면서 내세운 양 날개가 있는 데 왼쪽 날개는 종교의 자유 보장이였음 그리고 그 종교의 자유 보장은 수백년의 배틀로얄로 인해 당시 인도 아대륙 세계에선 실현불가능한 꿈이 였고 이 꿈을 가능하게 하는 영국의 군사력이 오른쪽 날개였음 종교의 자유 보장과 군사력이라는 양 날개 덕분에 엄청난 현지 토작세력들이 영국 아래에 모이게 되고 이들의 지원이 있어서 영국은 인도아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음 (인도아대륙이 워낙 넓다보니 메이저인 이슬람 힌두교 모두 지역별로 세력이 따로 노는 ㄹㅇ난세) 전투민족인 인도 아대륙의 시크교도들은 영국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며 항복을 요구했을 때 종교의 자유 보장(?)은 말도안되는 소리고 당연히 이슬람이나 힌두교애들처럼 이교도인 영국이 자기들을 학살할꺼라 생각해서 3차에 걸쳐서 필사적인 전쟁을 벌였는 데 결국 패배하고 절망에 빠짐 근데 시크교도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개고생한  영국이 오히려 얘네들 건드리면 안되겠다하면서 (영국이 시크전쟁때 동원한 영국군이 무려 8만명임 참고로 아편전쟁때 동원한 영국군은 1만 조금 넘음) 얘네들한테 자치권도 주고 영국 여왕에게 충성만하면 종교 자유보장 시크교 믿어도 되고 자기들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그 강력한 영국군이 여왕에게 충성을 바치면 시크교를 보호해주니 시크교도들은 바로 엄청난 친영파가 되버림 캐나다의 국방장관 '사잔'  시크교도이다 영국군에 복무중인 시크교도들 영국 런던 경시청 소속 시크교도 수백년동안 시크교도란 이유 하나만으로 이슬람과 힌두교에게 학살만 당해왔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영국바라기가 된 게 이상하진않음 지금도 시크교도들은 영연방 곳곳에서 군경으로 복무하고 있음 세포이 항쟁도 원래 세포이 반란이라고 불렀다가 이러면 독립군도 반란? 이냐 해서 항쟁으로 명칭을 바꾼건데 이것도 좀 애매함 아니 이건 독립군에 대한 모욕임 당시 인도아대륙은 지역에 따라 힌두교 이슬람도 어떤동네에선 시크교도와 다를게 없을 정도인 배틀로얄 상태였고 이런 배틀로얄 상태를 영국이 그 아래에 모인 현지 세력들의 도움을 받아서 종교는 자유고 종교가지고 죽이고 학살하는 걸 힘으로 억지로 못하게 막아왔는 데 억지로 못하게 막아오다가 결국 터진게 세포이 항쟁이거든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것도  영국군이 아니라 사실상 현지 친영 세포이임 얘네들한테는 저게 좋은게 아니였으니까 세포이들은 영국에 고용된(정확히는 동인도회사) 용병들을 말하는 데 그 중 벵골 세포이들이 들고 일어난 게 바로 세포이 반란 혹은 세포이 폭동임 한국에서는 이걸 단지 영국에 저항해서 들고 일어났다는 이유로 반란이나 폭동이 아닌 항쟁으로 표현하면서 저 세포이 반란을 독립운동으로 치켜세움 근데 영국이 인도를 점령할 때 동원한 병력은 대부분 세포이들임 (3차 시크 전쟁말고는 영국은 인도에 대규모 '영국'병력을 투입한 적이 없음) 그런만큼 세포이들도 엄청 다양함 크게 벵골 세포이 , 콜카타 세포이 , 뭄바이 세포이 , 첸나이 세포이가 있고 이 중 벵골 세포이가 들고 일어난 게 세포이 반란임 그리고 이 세포이 반란은 영국이 아닌 콜카타 세포이를 중심으로 뭄바이 세포이 첸나이 세포이가 모두 개입해서 제압함 왜 콜카타 세포이랑 뭄바이 세포 그리고 첸나이 세포이가 세포이 반란을 진압했을 까? 이유는 간단함 벵골 세포이 중 이슬람 교도들(대략 8할)은 자신들을 고용한 동인도회사가 하찮은 힌두교도들이랑 동일한 월급 동일한 대우를 한다고 빡쳐서 들고 일어남 벵골 세포이 중 힌두교도들도 비슷함 벵골 세포이 중 힌두교도들은 대부분 상위 카스트였는 데 이 들 역시 동인도회사가 자신들을 하찮은 하위 카스트들이랑 동일한 월급 동일한 대우를 한다고 들고 일어남 근데 주력 4대 세포이중 나머지 3개 세포이 콜카타 세포이 , 뭄바이 세포이 , 첸나이 세포이는 대부분 하위 카스트인 힌두교도들이였으니........ 당연히 나머지 3개 세포이들은 벵골 세포이랑 싸우게 되고  압도적인 숫자 차이에 벵골 세포이의 반란은 영국군이 투입되기도 전에 그냥 세포이선에서 진압되어버림 거기다 벵골 세포이의 대부분은 이슬람이고 이슬람 세포이는 대부분 돈 때문에 세포이가 된 반면에 힌두교 세포이 , 특히 하위 카스트 세포이들에게 영국은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속된 가즈니 왕조, 델리술탄 왕조 그리고 무굴왕조에서 정점을 찍었던 이슬람의 힌두교인 학살을 더 이상 못하게 막아준 존재였거든 얘네들은 단순 돈 벌려고 세포이가 된 게 아님 시크교도 다음으로 영국에 진심으로 충성했던 애들임 단순 돈 벌려고 세포이가 된 소수의 벵골 세포이  vs 충성심으로 세포이가 된 다수의 나머지 3대 세포이 둘의 싸움은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일 수 밖에 없었지 세포이 반란을 무슨 독립군의 독립운동 취급하는 건 진짜 독립군과 독립운동에 대한 모독임 (벵골 세포이가 명분을 위해 독립을 내세운 건 맞지만 않이 힌두교애들한테 저 독립 명분이 통하겠냐고 수백년 동안 이슬람이랑 배틀로얄을 경험한 애들한테... 또 영국이 카스트를 강화했다 뭐 이런 소리가 요즘 돌아다니던데 그건 그냥 헛소리임 카스트는 원래부터 그모양 그꼴이였음 인도아대륙에 유입되는 새로운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카스트가 없다' 라는 걸 내세운 게 괜히 그런게 아님 불교 이슬람교 시크교 전부 인도아대륙에 선교할 때 카스트가 없다는 점을 내세움) 물론  영국이 종교로 막 학살하는 걸 막은 이유가 착해서는 아님 영국의 이익을 위해서 영국은 종교로 인한 학살을 힘과 위압으로 막음 영국은 해군은 최강이고 돈은 많아서 육군 역시 매우 정예였음 (화약을 인공으로 만들기 전 까지 화약은 매우 비싸서  18~19세기 초까지만해도 총기 + 총알 300발 세트의 값이 현재로 치면 6 ~ 15억원일정도로 비쌌고 특히 총알이 비싸기 때문에 실탄 훈련은 돈이 많아야 할 수 있었음 영국 육군 '레드코드' 가 존나 쌨던 이유는 그냥 영국이 돈이 많아서 가장 많은 실탄 훈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 영국 해군이 존나 쌨던 이유도 마찬가지로 영국이 돈이 많아서 훈련 때 실제로 포를 많이 쏠 수 있어서임 문젠 영국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거임 당장 나폴레옹 때 까지만해도 영국의 인구는 '숙적' 프랑스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였음 (대신 정부 재정은 영국이 프랑스의 3~5배 , 나폴레옹 전쟁땐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영국 정부의 재정 규모가 프랑스 정부의 재정의 7배까지 오름) 병력의 정예화로 전투는 영국이 쉽게 이길 수 있지만 인력빨인 '유지'는 인구가 적은 영국에게 큰 부담이였음 그래서 항상 영국은 현지 세력의 도움을 받아야했음 이야기가 좀 샛는 데 영국은 인도아대륙에서 종교의 자유 보장이라는 선전으로  인도 현지세력을 모았고 이 현지세력을 동원해서 인도아대륙을 통일함 영국이 필사적으로 종교의 무력충돌을 막은 이유눈 영국은 종교의 자유란 선전으로 인도아대륙을 통일한 만큼 만약 종교끼리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무조건 개입해야하는 입장이였음 문젠 개입하면 돈이 존나 들어간다는 거 그래서 영국이 선택한 건 겁박임 강력한 영국군의 위력을 인도아대륙의 번왕국들에게 보여주고 종교로 인한 학살을 한다면 영국군이 출동해서 가해자를 응징하겠다는 경고를 존나 하는 거지 그리고 실제로 이 경고를 무시하고 이교도를 죽인 번국 본보기로 공격해서 박살내니 본보기들이 영국군에 박살난 이후로는 종교 학살이 많이 줄어들게 됨 신인도통치법 이후 신인도제국(1934~1947) 신인도통치법으로 형성된 신인도제국으로 인도제국은 사실상 자치령이 됨 근데 여기서 신인도통치법은 인도 독립 대신 나온 거임 1차대전때 영국은 인도제국의 협력을 받고 그 대가로 인도의 독립을 약속했음 그리고 인도제국의 협력은 (당연히) 1머전 영국에 큰 도움이 됨 어느정도로 도움이 됐냐면 프랑스 군사박물관 자료를 보면 1머전 영국군 병력이 890만으로 나옴 하지만 영국 자료를 보면 1머전 영국군 병력이 380~460만명으로 프랑스 자료와 많은 차이가 나는 데 이건 기준이 달라서 그럼 프랑스 자료의 영국군 수는 대영제국 기준이고 영국 자료의 영국군 수는 그레이트브리튼 기준 이 차이임 대영제국군은 자치령과 식민지군을 포함하니까 ㅇㅇ 1머전에 참전한 인도제국군은 대략 250만일정도로  영국에게 큰 도움이 됨 (인도제국의 인구가 많아서 인도군을 포함한 인도인 인력을 600만 가까이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동원 비율조차도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들에 비하면 많이 높았음 2.3%를 동원했으니 그냥 중앙집권이 약한 국가정도의 인력 동원율을 보여줌 저 2.3%도 친영 번국이 주로 제공한 인력이니 실제 동원율은 더 높다는 거 참고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0.2% 만 동원할 수 있었음 인도-영국보다 베트남-프랑스의 문화적 차이가 더 심했긴 했지만  그래도 12배 가까운 인력 동원율 차이는 그만큼 식민지 정책에서 영국이 머리를 잘썼고 프랑스는 머리를 못썻다라는 걸 증명) 아무튼 전쟁은 끝났고  영국은 승전했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피로스의 승리가 되버리지 이제 약속대로 인도를 독립 시켜야되는 데 처칠의 유명한 말 있자너ㅋㅋ '인도없는 영국은 대영제국이 아니다!' 당연히 독립시키기 싫지 그래서 절충해서 한 게 사실상의 자치령화인 신인도통치법임 이 법안에 따른 신인도제국은 자치권을 가진 약 500개가 넘는 번국들이 연합한 제국이였음 500개의 최상위 번국 아래에 또 자치 번국이 여러개 있어서  실제로는 자치권을 지닌 수천개 번국의 연합  당시 인도제국 인구가 약 4억 이였는 데 신인도제국으로 싹 자치화되서 영국인 행정인력이 900명 이하로 줄어듬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투입한 행정인력이 7000명 약간 안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인구는 약 2000만) 근데 여기서 또 한가지 알아야할게 있음 1머전으로 영국은 엄청난 국력을 소비했고 또 대공황이 오면서 경제와 군대가 박살남 (2머전때 체코 팔아먹은것도 박살난 군대 재건할 시간 벌 용도 였음  예상보다 번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지) 근데 영국은 인도의 독립 약속을 어겼고 이럼  당연히 인도 현지의 엄청난 반발이 있겠지? 근데 경제랑 군대가 ㅂㅅ된 영국이 어떻게 이렇게 스무스하게  신인도통치법이란 자치령화로 때울 수 있었을 까? 왜냐면 독립 반대 지지가 더 컸거든 당장 인도아대륙이 배틀로얄 상태에서 벗어난지 1세기도 안지난 시점이여서 영국이 인도에서 손을 떼면 예전처럼 주위에 있는 거대 힌두교 . 이슬람 세력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학살당할거라고 생각한 많은 번국들이 인도제국의 독립을 절대반대하고 이런 독립 반대 번국들의 세력이 독립파 번국들의 수와 세력을 크게 앞서니 영국은 이들의 지지 덕택에  독립 대신에 신인도통치법으로 퉁치고 대영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음 물론 이것도 시간벌기에 불과 1머전으로 영국이 잃은 국력이 너무커서  대영제국 해체는 필연이였음 이미 1920년대 후반쯤에 영국내에서 대영제국 유지는 불가능하니 이제 제국 해체를 준비해야한다는 소리가 나왔고  그래서 만들어진게 '영연방' 임 2머전 직후에는 그 시간 벌기도 더이상 불가능해서 그 고집쟁이 처칠조차 제국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됨 특히 2머전도 영국은 인도제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 (2머전 때 외상으로 인도제국한테 구입한 거 대금을 2000년대 와서야 다 갚음) 첨엔 간디 네루와 협의해서  인도제국을 통채로 독립시킬려했는데 인도제국을 독립시킨다는 거 자체가 대영제국이 늙었다는 사실의 방증이였고 이는 영국이 그동안 '대영제국'이라는 힘과 그 이름에서 오는 위압으로 눌러온 인도아대륙의 종교 분쟁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됐단걸 의미해서  다시 유혈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결국 영국은 파키스탄을 인도와 따로 독립시키고 인도 파키 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됨 영국이 혐성부려서 파키스탄과 인도를 분단시킨게 아님 영국은 원래 인도제국 통째로 독립시키는 걸 원했음 근데 그러다 하이데라바드 전쟁을 보고 분리안시키면  또 하이데라바드 전쟁 꼴 날테니까 분리 시킨 거 애초에 인도와 파키스탄한테 분단되었다는 표현이 맞는지 부터가 개인적으로 의문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된 상태라면 문화적 , 역사적 동질성/의식을 따졌을 때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분단된 상태고  잉글랜드와 프랑스도 분단된 상태고 유럽은 나라가 수십개로 분단된 상태라고 말해야 맞게됨 (실제로 인도아대륙내 민족간 문화적 거리는 유럽연합 각 국보다도 더 멈) 앞서 말했듯이 인도를 한국과 같은 개념으로 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임 인도는 유럽과 같은 지역 개념으로 봐야됨 영국의 죄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분단시킨게 아니라 서로 각자 다 다른 수십개의 나라를 인도라는 연방 형태로 통일 시켜버렸다는 거임 (보통 민주주의는 1인당 경제력이 어느정도 뒷받침 되어야 유지가 되는 데 인도는 특이하게 1인당 경제력이 매우 낮은 걸 감안하면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정말 잘 발달된 곳임 그 이유는 수십개 나라가 현재는 지방정부란 이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권한이 클수가 없음 다른 의견들을 어느정도는 들어줘야 중앙정부가 유지됨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다 찍어누를려고한다면 원래 서로 싸우는 지방정부들이 위아더월드! 를 외치고 단합해서 중앙정부에 대항하기 때문에 최악의 악수가 되버림 사실상 현재 인도는 단일 국가보단 EU에 가까운 형태임 (인도 중앙정부가 EU고 인도 지방정부가 EU 회원국) 아무튼 뭐 결과적으로 프랑스를 보면 알겠지만  영국 입장에선 대영제국에서 영연방으로  익절 기가 막히게 함 지금도 인도에는 친영파와 반영파가 있는 데 힌두교도들이 주로 친영 일부 반영이고 이슬람교도들이 주로 반영 일부 친영이라 전반적으론 친영적인 국가임 (일반적으로 힌두교도들은 오히려 인도제국을 긍정하고 무굴제국을 존나 싫어하고 이슬람교도들은 당연히 무굴제국을 존나 좋아하고 힌두교를 못죽이게 막은 인도제국을 싫어함) 그 예전에 덩케르크 개봉당시  인도인이 '덩케르크에 왜 인도군은 안나와?'  라고 묻는 기사가 있었는 데 이런 인도인들이 보통 친영임 이들은 인도제국을 식민지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영국과 물적 동군연합인 이민족 왕조로 보거든 반대로 인도 이슬람 교도들은 주로 반영인게 영국이 되도 않는 민주주의(?)를 억지로 주입시키면서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슬람을 못살게 굴었다라고 봄  인도 인구가 14억이나 되다보니 그 상대적으로 소수인 반영이 절대적인 수로는 꽤 많음 일단 소수인 이슬람만 인도에서 2억이 넘음  인도는 세계에서 이슬람 교도가 2번째로 많은 국가임 인도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이자 국부들인 간디는 영국을 좋은 친구라 했고 인도 초대 수상 네루는 자신을 인도를 통치하는 마지막 대영제국인이라 칭했는 데 이는 '인도' 라는 정체성이 '인도제국' 시절에 만들어져서 어쩔 수 가 없는 면이 있음 인도제국전까지 지금의 인도라는 개념은 없었고 영국이 만든 인도제국으로부터 지금의 인도라는 하나의 개념이 된 거니까 한국 역사가 진짜 매우 특이함 한국처럼 민족의식이 일찍 형성된 게 세계적으로 매우 드뭄 심지어 한국은 언어적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운 친척민족도 없는 상태다보니 한국사람들이 세계사를 이해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듬 더군다나 인도아대륙 역사나 루스 역사는 한국에서도 매우 비주류라서  한국 사람들한텐 제일 이해하기 힘든 세계사인 거 같음 아무튼 영국은 개새끼 맞ㅇㄷㅁ 다시 말하지만 영국은 개새끼 맞습니다 근데 영국 인도 관계를 단순히 우리들의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안된다는 글을 쓰고 싶었음 출처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
일명 Schande von Gijon '히혼의 수치' Nichtangriffspakt von Gijon '히혼의 불가침 조약'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담합해 알제리를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였다. 시기 1982년 6월 월드컵의 개최지는 스페인이였다. 당시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그룹2에 속해 있었으며 같은 그룹에 속한 다른 2개의 팀은 알제리와 칠레였다. 당시 서독은 우승후보로 무난히 조별예선을 통과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조별예선 서독의 조예선 첫 상대는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아프리카의 알제리였다. 승부예측에서 당연하게도 모두가 서독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경기는 놀랍게도 알제리의 라바 마제르와 라크다루 벨루미의 2골로 알제리가 2-1로 서독을 잡아내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이후 그룹2조의 경기는 칠레 0 vs 1 오스트리아 서독 4 vs 1 칠레 알제리 0 vs 2 오스트리아 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각각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둔 상태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동시에 치루지 않았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는 1일 간격을 두고 치루게 됐고, 조별예선 마지막 첫경기이던 알제리 vs 칠레의 경기는 알제리가 3-2로 승리하며 칠레를 잡아냈다. (알제리와 칠레의 경기가 끝난 후 상황) 당시 알제리는 칠레를 잡아내며 조 2위에 올랐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 할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경우의 수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같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가지 뿐이였다. 조건 1. 서독이 오스트리아와 함께 진출하기 위해서는 1골 혹은 2골만 필요하다. 2. 서독이 3골차 이상으로 이기게 되면, 골득실로 순위를 가리기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아닌 알제리가 2위로 진출하게 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같이 진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골은 1골 혹은 2골이였다. 히혼의 수치 하루 뒤인 1982년 6월 25일 오후 5시 그룹 2조의 마지막 경기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경기는 스페인의 히혼에서 열리게 됐다. 당시 사람들은 '설마 이 둘이 담합할까'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기는 정말로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 10분 서독의 공격수이던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골을 넣으며 서독이 리드를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1-0으로 리드를 잡은 서독과 1점 혹은 2점으로 패하면 올라가는 오스트리아가 서로 볼만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기는 전반 남은 시간들과 후반 45분 내내 공만 돌렸다. 중간중간 슈팅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들의 경기에서는 골을 넣고 싶은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80분 내내 공만 돌리다가 서독이 오스트리아에게 1-0으로 승리했고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알제리를 따돌리고 조 1,2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사람들의 반응 이 경기 당시 히혼에 있던 알제리인들은 서로를 매수했다며 욕을 했고, 이 경기를 보러 간 스페인인들은 서독과 오스트리아를 경멸하며 욕했다. 또한 서독의 슈타네크라는 방송국 해설가는 해설을 하기를 거부했으며, 경기 중 슬퍼하며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너무 수치스럽고 축구를 더럽히는 일이다' 라는 말을 했다. 또한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오스트리아의 해설자들 모두 경기를 중계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30분 이상 침묵했다. 또한 당시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올해의 노벨평화상은 저들에게 주어야 한다"라며 비판했으며, 1966년 서독 대표팀으로 월드컵 준우승까지 일궈낸 빌리 슐츠는 독일 선수들에게 '갱스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경기가 끝난 후 독일인들은 독일팀 숙소 앞에 모여 그들의 발코니에 물폭탄과 토마토 등을 던지며 욕을 했고, 경기 다음 날 스페인 신문들은 'El Anschluss'(합병)이라며 그들을 비판했다. (1938년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가 합병된 사건을 말함) 이후 이후 FIFA에서는 모든 대회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에 치루도록 하게끔 규정을 바꾸었다. 알제리를 비겁하게 잡아내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서독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 의해 탈락했으며, 서독은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이탈리아에게 1-3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선수단 "우리의 경기로 인해 FIFA는 변화했다. 그 것은 승리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비록 알제리 축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생겼지만" - 라크다르 벨루미 (1982년 알제리 대표팀 멤버) 도탁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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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정석 조정석은 기타를 전공하고싶어 3수를 했으나, 4수땐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바꿔 처음 연기에 입문한다. 가난한 집안형편, 23살에 들어간 연극영화과, 크지않은 키. 하지만 조정석은 10년뒤 33살이 되었을 무렵, 건축학개론으로 이름을 알렸다. 2.류준열 류준열은 재수하던도중 서서 잠드는 자신을 보고, '나는 공부랑 안맞는가보다'며 진로를 바꿔 20살때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몇년동안 피자배달,돌잔치사회,서빙,편의점,방과후학교교사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던 그는 30살에 인생을 바꾼 작품 <응답하라1988>을 만난다. 3.김태리 디자이너가 되고싶었던 김태리는 실업계 디자인과에 진학하지만, 이내 아나운서로 진로를 바꿔 대학에 갔다. 그저 재밌는 대학생활을 하고 싶어서 들어간 연극부. 이곳에서 연극의 매력에 빠진 김태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연극단 막내로 들어간다. 그렇게 취업보다 연극을 택한 김태리는 몇년후,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아가씨>로 성공적 데뷔를 마친다. 4.유재석 오늘날 유느님으로 불리는 그는, 20살의 나이로 대학개그제에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건 10년여년의 무명생활. 다 포기하고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었던 유재석은 다시 일어서 30살즈음에 차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내 유재석은 15회 대상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연예인이 되었다. 5.변요한 변요한은 중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5살에 처음 연기에 입문한다. 26살에 한예종에 입학한 그는 빨리 연기를 하고싶다는 생각에 수백개의 오디션을 봤고, 30여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그렇게 독립영화계에서 유명해질때즈음인 31살, <미생>을 만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6.박성웅 건국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한 박성웅은 법조인을 권유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24살에 한국외대 법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액션배우가 되고싶었던 그는 부모님께 비밀로 한채 액션스쿨에 들어갔고, 10여년의 무명생활을 거쳐 2007년 <태왕사신기>의 작은 조연을 맡아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1살이 되었을때, 박성웅은 영화 <신세계>로 배우의 입지를 굳혔다. 7.수현 앵커를 꿈꾸던 수현은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이화여대 국제학부에 입학했다. 아리랑TV의 인턴기자를 하기도 했던 그는 다양한 진로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2005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나가게 된다. 이곳에서 수상하며 2006년도에 배우에 길로 들어선 수현은 뜻하지않게 공백기를 가졌고, 이 공백기동안 NGO단체에서 일하며 스위스에 머물기도 했다. 스위스에 머물면서도 여전히 배우를 꿈꿨던 수현은 영화 <분노의질주>오디션을 보았고, 오디션엔 떨어졌지만 이를 계기로 2014년 <어벤져스>의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이내 수현은 이퀄스,마르코폴로,신비한동물시리즈와 같은 헐리웃유명작에 출연하며 승승장구중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