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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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그 사내는 좌석에 앉지 않았다. 알고 한 것인지 모르고 한 것인지 결국 사내가 탄 뒤 꽤 뒤에 탄 50대 중후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사내의 표정은 여전히 좌석에 신경쓰고 있지 않은 듯 했고, 그저 무심하게 창 밖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사내가 내 시선을 의식한듯 시선을 천천히 내 쪽으로 옮기기에 나는 황급히, ㅡ그리고 사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도 볼 겸ㅡ고개를 돌려 시선을 창 밖으로 옮겼다. 창 밖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출근길 풍경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이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차 속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밝은게 있다면 교복을 입고 친구와 함께 등교길에 오르는 학생들 정도일까. 나나 바깥 사람들이나 그리 밝은 표정으로 출근길에 오르진 않았다. 그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사내 생각이 나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버스 정면의 시계를 보는척 그 사내의 표정을 보려 시선을 옮겼다. 다행히 사내는 다시금 창 밖을 보고 있어서 내가 눈치 볼 필요은 없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는 벌써 정거장을 몇번이나 건너 또 다른 정거장에 정차하는 중이었다. 버스의 속도가 어느정도 줄고 정거장에 가까워 왔을 때 내 옆의 아저씨가 몸을 움직였고 아까 그 사내도 몸을 뒤척였다. 나는 이번 정거장에서 이 두 사람이 내리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아저씨만 자리에서 일어나 내렸고 그 사내는 내 옆에 와서 앉는 것이었다. 나는 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까는 자리가 있어도 다른 사람이 앉을 때 까지도 앉지 않더니 이제 와서 왜 앉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2인석은 혼자 앉을 땐 편하지만 지금같이 둘이 앉으면 1인석 보다 불편하지 않은가? 좀 전에 사내가 앉지 않았던 자리는 1인석 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아깐 멀쩡했디만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앉는다기엔 사내는 상당히 젊어보였고 사내가 탄 정거장에서 불과 몇 정거장 지나지도 않았다. 혹여라도 내가 곧 내릴까봐 앉은거라면 그건 큰 오산이다. 나는 종착역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마지막 의심이 가장 유력항 이유일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사내는 아까까지만 해도 별로 밝지 못한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꽤나 밝아 보인다. 나는 혹시 이 사내가 나를 짝사랑하는 동성애자는 아닐까 하는 둥 별에 별 생각까지 다 해 보았으나 역시 내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무료한 출근길에 이렇게 까지 무언가 궁금해진적은 처음일뿐더러 궁금한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나는 민망함을 무릎쓰고 사내에게 이유를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저기, 실례지만 잠깐만요." "네?" 사내가 답을 하는 순간 사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내의 목소리는 높은 톤이었다. 어쩌면 내 목소리가 엄청난 저음이라 놀란 탓에 평소보다 더 높은 목소리가 나왔을 수 도 있지만 사내와 말을 이어가면서 사내의 목소리가 원래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따로 성별을 물어보지는 않아서 끝까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런걸 물어보는건 무척이나 실례가 될 것 같단 생각에,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저 혹시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사내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말 헷갈렸다. "볼려고 본 건 아닌데, 아까 서 있을 때 앞에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도 앉지 않았잖아요. 근데 이 자리는 뭐 때문에 자리가 나자마자 앉으신 건가요?" 최대한 정중하고 또 알아듣게끔 설명했는데 말을 끝내고 나니 왠지 사내다 알아들었는지 확신할 수 가 없었다. "아...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에요?" 다행히 사내가 알아들은 듯 했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서 심히 당황스러웠다. "아뇨, 중요하다기 보단 그냥 궁금해서...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요." 당황할때마다 습관적으로 말을 빠르게 하고 더듬는 버릇이 있는데, 그래도 다행히 말을 더듬진 않았다. 사내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크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그냥 이 자리가 좋아서요, 그냥 좋아서 앉는거에요. 고등학교때 여자친구와 이어지게 된 자리이기도 하고요. 더 어릴 땐 엄마랑 같이 81번 버스를 타면 항상 이 자리에 앉았었어요. 물론 그 땐 이 자리가 2인용 좌석이 아니었지만... 어쨌든요." "아" 그냥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그렇다고 그 한마디라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뱉은 한마디. 정말 생각치도 못한 이유였다. 사내의 말을 듣고 나서 그 말을 계속 생각하던 나는 불현듯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당신께선 생전에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이 힘들 때 땅을 팔아 사업자금을 마련 하시면서 회사를 연명해 나가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신의 고옥과 그 일대는 사업이 망하는 순간에도, 생을 마감하시는 순간까지도 팔지 않으셨었다. 어릴적 명절때 할아버지 댁에 가 사촌들과 그 고옥의 마당에서 뛰어 놀 때면, 할아버지께선 우리를 보고 있자면 당신께서 어릴적 형제들과 마당에서 놀던 것이 생각난다며 그 시절 얘기를 해주셨다. 그덕에 큰할아버지와 작은할나버지의 얘기, 증조할머니, 증조 할아버지의 얘기, 그리고 가끔은 고조할머니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는 깊게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고 그냥 옛날 이야기로만 여기고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할아버지께서 고옥을 팔지 않으신 것도 이 사내와 같은 이유에서였겠지. - 고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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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서....아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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