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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국 토종야채로 오해하는 야채 8가지.jpg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건너 왔다는걸 잘 아는 야채들 토마토 걍 이름부터가 영어 근데 의외로 한국에 들어온지는 오래됨 토마토의 기원은 무려 5200만 년 전 남미 문명(아즈텍, 잉카 등)에서는 토마토를 굉장히 많이 먹었음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하면서 남미 -> 유럽 -> 중국 -> 한국으로 전파 1614년 문헌에 토마토를 가르키는 '남만시'라는 단어가 있는걸로 보아 그전에 한반도에 상륙했는데 제대로 재배를 시작한지는 꽤나 최근임 양파, 양배추 이름부터 서양을 뜻하는 '양'이 들어가서 당연히 외국에서 온거임 양파의 원산지는 서남아시아와 지중해 지역 유럽 지역에서 1000년 가까이 재배됨 개화기때 우리나라에 전파 양배추는 지중해, 소아시아(터키 부근)가 원산지 고대 이집트때부터 먹어온 야채 우리나라에서는 1880년 정도부터 시범재배되고 있었으나 대중화되지 않았고 6.25전쟁 이후 유엔군 공급용으로 재배가 크게 늘어남 고추 고추가 조선후기에 외국에서 건너왔다는건 방송이나 뉴스로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알고있음 (근데 모르는 사람도 있음) 고추는 적도 부근의 남미(멕시코)가 원산지 임진왜란과 광해군 시기(16세기쯤)를 전후로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됨 고추가 들어오기전에도 당연히 우리나라에 김치는 있었으나 고추가루가 없어서 하얀 모습이었고 대신 얼얼한 매운맛을 내는 ‘천초’와 ‘겨자’를 넣어 백김치와 다르게 매운 음식이었음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 토종 야채인줄 아는 야채들 고구마 중남미가 원산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진출 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가 다시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전파 중국-유구-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래 1763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고구마 종자를 보고 조선에 가져옴 고구마가 가뭄이나 해충의 폐해를 잘 받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서 곡물 농사에 지장을 주지 않으며, 맛이 좋고 수확이 많아서 가져온지 30년만에 구황작물로 자리잡음 감자 원산지인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전파 인도-중국-만주를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 대개 고구마보다 약 60년 정도 전래가 늦음 (약 1820년정도) 감자 역시 번식력이 좋은 데다가 고구마보다 추위나 가뭄, 홍수에 강하였기 때문에 북부와 동부 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서 보급 정도는 고구마를 능가함 호박 호박은 아메리카의 대륙의 원주민들이 약 9,000년 전부터 재배를 한 것으로 추정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 유럽으로 전파 그 뒤 유럽 -> 중국 -> 한국으로 전파 (1600년대 초) 청나라에서 넘어온 박이란 의미로 오랑캐 '胡(호)' 자를 써서 호박이란 이름이 붙음 호박은 중국 만주 지역에서 처음 전래되어 한반도 북부에서부터 남하한 것으로 추정됨 단호박의 경우 일본을 통해 전파 당근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 오늘날 흔히 재배하는 당근과 비슷한 종류는 프랑스에서 개량되어 13세기까지 유럽에 널리 보급됨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6세기 당근에서 '당'자는 엿 당(糖)이 아니라 당나라 당(唐)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서 당(唐) 자가 중국을 가리키는 접두사처럼 쓰였기 때문 따라서 '당근'은 '중국에서 건너온 뿌리채소'라는 뜻  조선 초기에는 없었으나 조선 중~후기에 우리나라에 건너온 야채 중 잘 쓰이는 야채만 추려봤음 (삼국시대때 인도에서 건너온 '오이' 고려시대때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수박' 이런건 제외함) 출처 이름 너무 단순하고 귀엽지 않나요 ㅋㅋㅋㅋ '당'나라에서 온 근 '양'에서온 배추, 파 '호'랑캐의 박
카발란, 대만 위스키라는 첫 발자국
Kavalan Distillery  카발란의 경우 시작은 모기 퇴치제였다. 1959년 Lee Tien-Tsai는 그의 회사인 Chu Chen에서 살충제를 만들어 판매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그렇게 그는 다른 사업을 구상하다가 음료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1979년 루트비어를 판매하는 기업에서 1982년 콧수염 마스코트를 대만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기 있는 캔 커피인 Mr. Brown을 판매하는 King Car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그 이후로 King Car 가룹은 새우와 난초부터 생수와 위스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판매하고, 모든 방면으로 사업을 다각화 하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사업이 흥하자 평소 위스키에 대한 열정이 많았던 Tien-Tsai는 증류소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만 정부가 주류 생산을 독점했던 것이 Tien-Tsai가 위스키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하지만 2002년 대만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주류에 대한 정부의 독점을 포기하는 것과 Tien-Tsai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대만 최초의 위스키를 출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아들과 함께 King Car 그룹을 운영하던 그는 전 세계에서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하기 위해 엔지니어 팀과 식품 기술자들을 한 팀으로 모았다. 카발란의 마스터 블렌더인 이안 창(Ian Chang)에 따르면, 그는 "전통적인 스카치 스타일과 전통적인 생산 방법"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싱글몰트는 카발란에게 피할 수 없는 방향이었다.  그와 그의 팀은 풍부한 물 공급과 위스키 숙성에 이상적인 아열대 기후를 가진 Yilan 지방에 증류소를 건설한 이상적인 부지를 찾았다. 증류소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Kavalan이라고 불리는, Yilan 지역에 한 때 거주했던 원주민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증류소 부지를 건설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이상이었다. 4개의 구리 팟 스틸과 함께 연간 250만 리터의 스피릿을 처리할 수 있는 증류소가 단 9개월만에 완공되었다. 이안 창은 "모든 생산장비의 설치 및 시운전에 단 45일이 걸렸으므로 1년 이내에 가동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2017에 사망한 Swan은 초기 Scotch Whisky Research Institute의 선구자이자 여러 유망한 위스키 제조업체의 고문이었다. Swan을 훌륭한 스승으로 기억하는 이안 창은 "스코틀랜드 스타일로 위스키를 생산하는 방법을 그에게 가르침 받아서 정말로 행운이었다" 라고 말한다.  Swan 박사는 10년 이상 카발란과 함께 일하면서 증류소가 "과일, 기름진, 복합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도록 도와주었다. 이안 창이 말하길 "스완 박사가 카발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곳은 목재에 관한 정책과 위스키의 풍미에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오크통의 종류를 선별하는 작업에 있었다". 라고 말한다. 또한 스완 박사는 이안 창과 카발란 팀에게 유럽산 오크는 대만지역의 기후 영향으로 매우 쓰고 떫은 맛이 올라오기 쉽기 때문에 부가적인 풍미를 더해주는 오크통의 유형(Bourbon, Sherry, Port, Wine etc..)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카발란은 또한 스완 박사가 개발한 STR(Stave/Toast/Rechar) 처리를 사용한 최초의 증류소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2009년과 2013년 사이에 전 세계 위스키 산업에서 리필 캐스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발되었다.  이안 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리필 캐스크는 복잡성에 있어서는 장점이지만, 산화의 측면에서는 단점이 있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따라서 스완 박사는 Ex-와인 캐스크를 구입하여 나무를 깎고(Stave), 굽고(Toast), 다시 태워서(Rechar) 유기산을 제거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Ex-와인 캐스크는 캐스크 내부에 남아있는 산도와 박테리아로 인해 작업하기가 더 복잡해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배럴을 강한 불로 다시 태우고 바삭하게 구워 기분좋은 캐러멜을 전면에 가져오고, 다시 한번 나무에서 와인 풍미를 되살립니다".  숙성에 대한 이러한 능숙한 접근 방식은 카발란의 위스키가 어린 숙성 년수에서도 복잡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카발란의 신제품 개발은 카발란이 원래 건물 부지에 두 번째 증류소를 건설한 2016년의 대규모 확장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새로운 증류소에는 기존 부지에 있던 4개의 스틸과 동일한 스틸을 16개나 배치했다. 이로 인해 카발란은 연간 900만 리터 이상의 스피릿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안 창은 대만 위스키의 성장과 함께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고, 대만 위스키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값 싼 위스키를 벌크로 수입, 블렌딩 및 병입하는 거을 금지하는 법이 없는 일본 위스키의 예를 강조했다. 그는 단지 생산자로서 평판과 위스키의 평판을 보호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브랜드가 12년에서 21년 숙성된 위스키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안 창은 초기 몇 년은 확실히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지 재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최대한 많이 배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생산은 대만에서 이루어지지만 증류기는 스코틀랜드, 팟 스틸은 독일, 배럴은 유럽과 미국에서 가져온다 Anchor Distilling Company가 카발란의 제품들을 수입하기 시작한 2014년에 미국의 위스키 애호가들은 카발란을 처음 맛보았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미 EU 전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었다. 2~3년 안에 미국이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는 Lee는 "미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고 말했다.  2010년 스코틀랜드 리스(Leith)에서 열린 블라인드 위스키 시음회에서 카발란이 일격을 가했다. 시음회가 끝나고 스카치 위스키가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 카발란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 운명적인 Burns Night Supper 이벤트가 끝난 후, 대만의 위스키 제조사들은 차례로 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Whisky Magazine에서 "올해의 새로운 위스키"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카발란의 가장 큰 성과는 탄생 10년 만에 이루어졌다. 2015년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 바리끄가 World Whisys Awards에서 '최고의 싱글몰트' 로 선언되어 전 세계의 경쟁자들을 일거에 물리쳤다. 이중 증류 공정을 이용하여 뽑아낸 스피릿을 5층 숙성 창고에서 다양한 기간에 걸쳐 숙성된다. 따뜻한 아열대 기후는 풍미의 추출 및 숙성 과정에 촉매 역할을 하여 카발란 위스키를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위스키들 보다 더 성숙하게 보이게 해준다. 창고 상층부의 온도는 일상적으로 110도를 웃돌고 있으며, 증류소는 그 온도를 충분히 활용한다.  이 숨막히는 더위는 연 증발량이 12~15%까지 올라가 천사의 몫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위스키는 빨리 숙성될 뿐만 아니라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카발란이 스카치 위스키 생산자들이 하는 만큼 위스키를 숙성시키길 원한다고 해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위스키는 과도하게 숙성되면 배럴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된다. 대만에서 카발란의 출현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스카치 위스키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을 살펴보는 것이다. 스카치 위스키 협회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대만은 2015년에 170만 개 이상의 9리터 케이스를 수입한 스카치의 15번 째로 큰 세계 시장이었다. 인구가 2350만 명으로 세계 53위인 국가로서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또한 대만은 많은 양의 스카치를 수입할 뿐만 아니라 좋은 제품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있다고 사료된다.  예전에는 맥주가 전국 주류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젊은 대만인들도 이제 위스키와 기타 주류를 선택하고, 수제 칵테일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나이가 많은 대만인이 중국 청주와 같은 전통 음료를 마시는 세대에서 식사와 함께 위스키를 더 많이 마시는 젊은 층으로의 전환이 두드러진다고 보여진다.  "대만에서는 독한 술은 없고, 약한 사람만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라며 이안 창이 농담을 한다. "대만 소비자들은 우리의 솔리스트 셰리와 같은 도수가 높은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안 창이 말하기를, 일본인과 같은 아시아의 위스키 애호가들은 말린 과일향과 향신료가 가득한 셰리 숙성 위스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만인들은 마시기 쉽고 신선한 카발란 클래식을 선호 했던 반면, 유럽 시장은 달콤한 노트가 가득한 제품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서 프랑스 시장은 카발란 솔리스트 포트 캐스크를 선호하고, 이탈리아 시장은 카발란 솔리스트 버번 캐스크를 매우 좋아한다. 위스키갤러리 Patrisian님 펌
영국요리는 왜 맛없게 됐을까? 1탄 (feat.고든램지)
우리가 생각하는 영국요리의 이미지 장어젤리 정어리파이 먹보의 민족 한국으로써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비단 우리 뿐만 아니라 영국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 자국민조차 까는 음식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음 1. 채소와 향신료 영국 요리가 탄생하고 성장한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의 서안 해양성 기후 야채와 향신료가 자라기에 호러블한 기후 = 채소요리법 발달 미흡 2. 해산물 영국은 사방이 바다인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요리의 발달이 그다지 되지 않았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경우 온갖것을 온갖 방법으로 해먹는데 우리나라 조상님들의 눈에 비치는 바다 = 념념긋 식량창고 벗, 북유럽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바다 = 개무서움 (누군가는 초장이 없어서 그렇다 카더라) (우리나라에 크라켄이 있었으면 그날은 동네잔치하는 날) 영국이 위치한 북해의 바다는 자연재해가 잦고 거친 바다 따라서 바다=죽음이 펼쳐진 암흑 하지만 항해술로 이름날린 영국이잖아. 항해술이 발달한 다음에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영국의 항해술이 발달하고 난 후 우리나라 사람 눈에 비친 바다 = 여전히 존맛탱 영국인들의 눈에 비친 바다 = 존나 길 배 다니는 길 최소한 생선형상을 한건 먹어도 다른건 안먹음 그래서 다시마 미역 톳 등등으로 해초를 분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기선 아직도 걍 씨위드로 퉁침(바다 마리화나 아님) 2. 종교와 문화 때는 16-17세기 즈음의 영국의 청교도 이미지 = 엄근진, 청빈, 사치하지 않음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 향신료=사치에 대한 추구 청교도들 왈 감자나 삶아먹읍시다!!(진짜로 이렇게 말하진 않음) 그리고 진짜로 감자나 먹는 사람들 요리기술의 발달이 늦어지고 맛있는 요리에 대한 추구를 좋게 보지 않는 문화가 형성됨 3. 산업혁명 다른나라보다 빠른 산업혁명을 맞은 영국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해 감 농촌사회에서 전해내려져오는 전통적 식단은 끊기고 이제 자기 알아서 입에 풀칠해야 하는데 도시의 악덕 업주들은 노동자들을 중세 농노보다도 못하게 부려먹음 그 결과 땀흘린 뒤에 먹는 밥은 맛이 없는법 맛있고 여유로운 식생활과는 이별 -특별편: 영국요리에 대한 변론 채소와 해산물을 빼면 남는건 고기 실제로 영국인들은 쇠고기를 아주 귀하게 여겼고 식문화는 물론 계급문화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함 이건 나중에 따로 글 찔 예정 또한 영국은 베이커리류에서는 이름을 날리는데 이는 영국의 ‘티타임’ 문화와 관련이 있음 영국은 티타임 처돌이 아침에 일어났으니 브렉퍼스트티(breakfast tea)로 하루를 시작 일하다가 마시는 공식적 월루시간 티브레이크(tea break) 점심먹고 저녁먹기 전 출출한 시간엔 애프터눈티(afternoon tea) 저녁식사와 마시는 하이티(high tea) 저녁 먹었으면 애프터디너티(after dinner tea) 트와이스 TT가 왜 유행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하여튼 티에 돌아벌인 민족임 그래서 아직도 저녁식사를 tea라고 하기도 함 영국이나 뉴질랜드에 놀라가서 밥먹을 때가 됐는데 차 마실래? 한다고 밥의 민족 코리안의 피가 분노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이런 티에는 베이커리류를 곁들여 먹곤 했는데 이것이 농업의 산업화로 인해 +농업 생산량 폭증, 과일 품종 개량화 를 만나자 =존맛 베이커리로 탄생 또한 1970년대 슬로우 푸드의 유행 화려하고 무거운 장식의 프랑스 요리도 무겁고 장식이 많은 오뜨퀴진에서 가볍고 담백한 누벨퀴진으로 방향전환 여기서 잠깐! 영국: 저희 요리가 좀 밋밋하고 담백한데요 슬로우푸드: 좋아요 슬로우푸드: 당신을 슬로우푸드의 대가로 임명합니다 영국: ????? 돌고도는 유행으로 본의 아니게 슬로푸드 대가가 되어버린 영국 2000년대에 들어서는 스페인과 함께 분자요리로 선두를 달리기도 함 분자?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든램지나 제이미 올리버도 영국인 셰프임 물론 음식이 맛없어서 그 갈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수도... 영국요리 맛없다는건 이미 전 세계적으로 퍼진 밈이 되었으므로 대영제국 뽕에 취해있는 인종차별주의자 영국인을 만나면 “Your father declared himself trans-asian in front of the table.” 이라는 하이-조크를 날려주자. 참고로 고든램지 양반 한국에 와서 한국음식이 영국음식과 비슷하다는 망발을 했던데 존나 비비지 말길. 유비빔씨 찾아가서 비빔밥 한번 비빔박자로 비벼먹고 오면 그런 소리는 싹 사라질 것 참고로 나는 영국의 영향을 찐하게 받는 뉴질랜드에서 이유나 알고 먹어야 덜 억울할거같아서 찾아봄. 그래서 안 정확할수도 있음. 출처
마트에서 등심 실패하지않고 고르는 방법.jpg
마트에서 고기를 고르신다면  어떤거 먼저 고르시겠습니까 선택하셨다면 정답을 확인해봅시다 제대로 고르셨나요? 혹시 등뼈 번호가 나와 당황하셨나요 이제 천천히 알아봅시다 고기를 집에서 구우면  맛이없는 이유는 고기가 애초에 별로인 부위거나 조리방법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의 전자인경우가 많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드럽고 소에서 나오는양이 적을수록 비싼고기입니다 등심은 목심과 채끝 사이에 있는 부위입니다  고기는 너무 질겨도 별로 너무 물러도 맛이없습니다 식감은 부위에 따라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윗등심부터 천천히 살펴봅시다 윗등심에서 중요한 부위는  살치살입니다  맛있는 부위지만 질긴부분도 너무 많이 포함되어있죠 같은 살치살인데 고기에 빗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살치살의  빗살무늬가 많이 생겼습니다 이 두가지밖에 선택권이 없다면 당연히 살치살의 빗금을 보고  고르시는게 현명합니다  이제 슬슬 살치살도 작아지고 딱봐도 고기 별로인것처럼 보입니다  살치살은 없고 질긴부분들만 남았습니다 이 고기는 어떤 방법으로 조리해도 맛이 없는 부위입니다  이제 부드러운 부분입니다 흔히들 들어보신 꽃등심이죠 새우살이 아주 중요합니다 대부분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있으며 등심덧살이 큰부위는 피하시는게 좋습니다 같은 꽃등심이여도 오른쪽은 새우살이 작고 등심덧살이 많은편입니다 왼쪽을 고르셔야합니다 떡심이 없는 부위 아랫등심입니다  떡심이 없더라도 위에 설명된 새우살이나 살치살을 보고 부위를  판단하셔야 합니다  아랫등심도 마찬가지로 새우살이 큰쪽은 택해야합니다 알등심은 허리로 이어져 채끝이 됩니다 이 두가지만 있다면 당연히 새우살의 크기를 보고 결정하시는게 낫습니다 1번부터 우선순위를 두고 없다면 차선으로 고기를 고르신다면 질긴부위는 피하실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방법으로 미국산을 고르게 된다면 더 저렴하게 좋은 부위를 선택하실수 있습니다 가격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나 척아이롤에서도 피해야하는 부위가있죠 목심에 가까운 부위를 선택하시면 돈과 턱을 모두 잃게됩니다  미국산엔 떡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붙어있는 부위를 보고  판단해야죠 역시 살치살이 빗살무늬를 띄고있습니다 부드럽고 가격도 착하군요 출처 - 유튜브  Zattwo Z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