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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화에서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jpg

죽음의 신 아누비스에 대한 모든 것



1. 아누비스 머리는 무슨동물인가

처음엔 자칼(왼쪽) 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이집트 늑대(오른쪽) 라는 별도의 종으로 분리된 상태야

학명은 (Canis anthus lupaster)

2. 아누비스 출생의 비밀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서 4남매가 태어났다
(사실 게브와 누트는 친남매라 아버지 슈가 결혼을 반대해서 도망쳐서 지들끼리 결혼했다)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
오시리스와 이시스가 결혼했고
세트와 네프티스가 결혼하였다
그러나 성격 더러운 세트를 싫어했던 네프티스
(*세트는 신화에서 태풍, 모래바람, 이방인 등 강력함의 상징이다)
자신의 큰오빠 오시리스에게 호감을 품게된다
오시리스를 술취하게 한후 그와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얼마후 오시리스와의 사이에서 아누비스를 낳게 된다

*전승에 따라 세트의 아들이라는 썰도 있다

*오시리스의 아들인데 머리는 세트를 닮은건 묻지 말고 넘어가자

근데 세트도 짚이는건 있는모양
세트 : 내 아이 아닌거 같은데!!!!!

네프티스 : ;;;;

아누비스 : 최근에 한적도 없는데 어떻게 애를 낳냐고!
세트는 폭풍을 일으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네프티스는 갓난아기는 아누비스를 자기 언니 이시스에게 대신 키워달라 부탁한다
아누비스가 자기 남편의 또다른 자식인것도 모르고 이시스는 지극 정성으로 키워준다

3. 아누비스의 행적

아누비스가 성인이 되자

태양신 라 : 아누비스야, 넌 지금부터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거라
아누비스 : 명색이 세트와 네프티스의 아들인데 고작 그런 메신저나 시키는거?
태양신 라 : 청년백수시대인데 일자리 주는걸로도 고맙게 여겨라
지상과 저승을 맘대로 오가는 특성상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썰이 많이 겹치기도 한다

어쨌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아누비스

띵똥~ 다음 망자 들어오세요

이때 세트가 왕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형 오시리스를 가두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트 : 쨔잔~ 형님 이 황금관 어때? 일단 만들었는데 사이즈 맞는 사람이 이집트에 안보이네 형이 한번 누워봐
오시리스 : 엇 사이즈 딱맞네ㅋㅋ 마치 날위해 만든거 같은...
세트 : ㅇㅇ 맞아

세트는 오시리스가 누운 관에 못질을 하여 늪지에 버려버린다
근데 관은 떠내려가 이집트에서 레바논까지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강가의 고목이 가지를 들어올려 관을 꿀꺽 삼켜버린다

마침 레바논에 출장왔다가 이걸 본 아누비스
아누비스 : 와 일이 꼬였네;; 우리 애비지만 좀 심한거 아니냐

빨리 이시스에게 알려야겠다!!
(본인이 나무를 베서 꺼낼 생각은 안함)

아누비스의 말을 들은 이시스도 즉시 레바논으로 달려가 오시리스가 누워있는 관의 회수에 성공했

관을 열었을때 이미 오시리스는 산소부족으로 죽어있었고...

관을 열었을때 이미 오시리스는 산소부족으로 죽어있었고...

세트 : 오잉 저게뭐지?!
풀숲에 숨어있는 오시리스의 관

와;; 이게 왜 여기있지 오시리스의 시체를 토막내서 아예 사하라 사막과 중동에 다 뿌려라!!!

세트는 부하를 시켜 사막 곳곳에 오시리스의 시체들을 토막내 유기했다

보다못한 태양신 라

라 : 세트 저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너무 심하네;;;

야! 아누비스 잠깐 와봐!!
아누비스 : ??

라 : 저승으로 인도해야 되는 새끼가 오시리스 몸뚱이는 토막내도 가만히 놔두냐? 직무유기 장난?

아누비스 : 그래도 우리 애비 세트의 일인데 저기까진 관여 안할려구요

라 : ㅉㅉ... 진짜 지 애비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아누비스 : 방금 뭐라 했음?

라 : 난 몰라, 너네 엄마에게 물어봐

당장 아누비스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따진다
아누비스 : 엄마! 태양신이 내 애비가 따로있다는데 이게 뭔소리야?!

결국 네프티스는 진실을 알려준다
ㅇㅇ.. 니 진짜 애비 사실 오시리스....

아누비스가 쇼크먹은건 당연한거고
엄마, 이럴때가 아님, 세트가 오시리스 시체 토막내서 사막에 다 버림;;;
아누비스와 네프티스는 즉시 이시스를 찾아가서 오시리스 건을 말한다

이시스 : 세트 시발놈이 기어코 내 남편을 토막내다니...
근데 너흰 세트의 아들이자 아내이면서 왜 날 이렇게 도와주는거..

네프티스 : 언니.. 사실 아누비스는 오시리스의 아들이야...

??!.... 뭐 지나간 일이니 신경안쓴다 일단 남편부터 찾자

이시스는 사막을 계속 돌아다니며 오시리스 시체토막을 하나하나 찾았고 하나로 맞춰서 발기되게 조정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발기 맞음)

이시스는 매의 모습으로 변해서 발기머신 오시리스와 관계를 통해 정자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몸뚱이를 저승으로 데려왔고

아누비스가 오시리스의 영혼을 육체 밖으로 꺼낸다
그렇게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다시 만나게 되고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 된다

물론 아누비스는 여전히 따까리~
얼마후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를 낳는데 호루스는 힘을 길러 세트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호루스 : 삼촌새끼 오리시스의 원수 갚으러 왔다!

호루스와 세트가 전쟁을 벌일때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모자도 호루스의 편에 들어 세트와 싸운다

세트는 결국 잡혔지만 눈물의 사과문을 써서 이시스가 맘이 흔들려 결국 풀어줘버리고

아누비스와 호루스는 이걸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이후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서 오시리스를 이은 다음 왕은 당연히 자신이라며 어필했고
세트 : 어이 태양신, 내가 맨날 님 괴롭히는 괴물들 잡아주는거 잊지 않으셨죠?
다른신들도 깝치면 다 몽둥이로 팰거임

라 : ....

회의에서 오로지 아누비스와 네프티스 만이 호루스가 다음 왕이라면서 끝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후로도 아누비스는 호루스, 오시리스의 좋은 조력자로써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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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에 퍼졌던 청의 문화들.jpg
시누아즈리 (Chinoiserie) 17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동양풍 문화 Chinoiserie라는 단어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 동양풍이라고 해도 철저히 중국 위주 당시 중국땅엔 청나라가 있었고, 청과 유럽의 무역 거래는 실크로드가 개발됨에 따라 더욱 활발해졌는데여 덕분에 당시 화가들이 남긴 그림에도 유럽에 퍼진 중국 문화를 발견할 수 있지여 그럼 청의 문화는 유럽에 어떤 형태로 녹아들었는지 같이 구경하실게여 프랑수아 부셰, The Chinese Garden (1742년) 이렇게 친절하게 제목에다 차이나를 넣어주면 찾기 쉬울텐데 시누아즈리는 오래전 유행이 지나간데다 귀족들만 점유한 문화거든여 자포니즘과 달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그림으로도 많이 남지 않았어욤 제임스 티소, young ladies looking at japanese objects 자포니즘은 청이 영국과의 전쟁으로 고생할 동안 쪽바리들이 잽싸게 지네 나라 문화를 퍼트려서 생겨난 유행입니당 현재 서양권이 동양=일본으로 여기고 일본문화를 신비로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포니즘 때문이지욤 자포니즘을 다룬 그림은 진짜 쓸어넘치게 많고..또 양웹들이 동양스럽다 하면 #시누아즈리 #자포니즘 이렇게 태그를 막 걸더라구여 둘은 다른건데 말이긔 무식한 홍놈들 ㅡㅡ 하여튼 그래서 밑 그림들은 제 추측으로 찾고 쓰는거니까 이건 중국이 아니라 일본거다! 하시는거 있음 지적 부탁드려여.. 그외에도 틀린거 지적환영..조금만 환영..무지렁이입니다..ㅠ 1. 가구 독일 화가 conrad kiesel 작. The Most Beautiful 우리가 주목할건 왼쪽 테이블 위의 서랍장입니당 동그라미 모양의 손잡이, 곡선으로 새겨진 꽃무늬 등이 서양 특유의 고딕스러운ㅋㅋ 느낌이랑은 좀 다르져? 화가가 저건 동양풍 가구다! 라고 말해주진 않았지만 저는 보면서 자개장이나 경대를 떠올렸어여 약간 요느낌.jpg ㅎㅎㅋㅋ 프랑수아 부셰, The Toilette 화장하는 여인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네욤 그리고 뒤에 보이는 칸막이? 병풍에는 우아한 곡선으로 꽃가지와 새들이 그려져있져 누가봐도 중국발 수출품이냄 독일 화가 알버트 폰 켈러 작, 쇼팽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피아노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져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피아노 연주와 감상을 주제로 삼은 작품입니다 구로나 우리가 주목할 건 뒤쪽의 병풍!!!! 덩굴풀 무늬의 병풍이 아주 자연스레 세워져있져 이처럼 시누아즈리 문화는 그림의 주제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스며들었긔뚤 아돌포 벨림보 작. 여기선 책을 읽다 잠든 여인 뒤의 빨간 테이블, 호리호리한 화병으로 확인할 수 있고영 an afternoon idyll (오후의 한가함) 사진처럼 정밀하고 화려한 로코코풍 드레스와 동양적인 병풍이 묘하게 어울리져 특히 병풍 오른쪽에 어두운 녹색 산맥이 딱 우리가 알고있는 산수화 느낌 여기서는 병풍이 아닌 오른쪽 하단의 작은 탁자를 봐주쎄용 네모네모한 그리고 구불구불한 적갈색 무늬가 익숙하죠 약간 요느낌.ㅋㅋㅋ 영국의 건축가 존 내쉬 작, 브라이튼의 로열 파빌리온(궁전)에 위치한 Chinese Gallery입니당 요즘은 이런 모습인듯. 왼쪽 하단의 치파오st 의상을 입고 있는 작은 조각상이 보이실거 조각상이 들고있는 부채엔 한자가 새겨져 있지욤 독일 포츠담의 Chinese House 1700년대에 지어졌고용 궁처럼 왕족이 지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장식적인 용도였다고 하네영 아파트 단지 안에 보시면 정자 같은거 한두개쯤 있자나여 놀이터 옆에 ㅋㅋㅋ 그런거요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읍니당 독일엔 같은 시기 같은 도시 몇년 뒤에 다시 시누아즈리 풍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또 있어여 청나라의 탑을 흉내내어 만든 드래곤 하우스입니당 안에 주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거주용으로 지어진 곳이에욤 지붕 모서리마다 날개를 펼친 용이 보이실 거 2. 도자기 윌렘 칼프, Still Life with a Chinese Porcelain Jar (네덜란드) 당시 암스테르담 무역센터에서 유통되었던 외국의 호화스러운 사치품들을 묘사한 그림 명나라 도자기, 섬세한 베니스풍의 글라스 등등 이번엔 프랑스 화가가 그린 정물화 포도와 무화과 뒤로 중국식 청자가 그림의 중심이 되고 있죠? 청자 속 인물은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중국인 같은데 십자가를 든 손이 재밌음 포교 중인 걸까여 네덜란드 화가 Lucie van Dam van Isselt의 그림. 접시에 새겨진 두 여인. 제가 애매하다고 했던게 이거 ㅋㅋㅋ 어떤데선 차이나 어떤데선 재팬으로 적어놨더라고욤 저는 의상이 기모노보다 치파오에 가깝다고 봤어서 저장했음 하여튼 중국의 청자는 당시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고, 우아한 곡선과 무늬에 사로잡힌 홍인들은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들을 모조리 사들였지여 유럽의 도자기 장인들은 청자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토질과 방법이 달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고요 노력 끝에 청자 기술을 복제하는데에 성공했냐..이건 아니그영 우리가 많이 먹는 짜장면은 사실 중국요리가 아니라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발전된 음식이라고 하잖아열 그것처럼 유럽 사람들도 유행이 바뀌기 전까지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만든 청자 비스끄무리한 도자기들을 장식품으로 사용했음 그럼 중국을 따라한 짝퉁이냐..라기보단 전 현지화된 청자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여 ㄲㄲ 청자는 중국에서 건너온 문화 중 가장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그림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여기서도 그렇져 이슬람풍 물병, 중국풍 과일접시 등등 딴소리지만 과일접시 밑에 깔린 벨벳은 그림인데도 넘나 벨벳이라는게 티가 나지 않나여? 베이지색 술이 달린 올리브색 두터운 벨벳이요. 화가들은 대단 오른쪽 악보만큼이나 섬세하게 새겨진 한자 이걸 그렸을 화가에게 한자는 문자가 아니라 그림이었겠져 한획씩 쓰는게 아니라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면 재밌음ㅋㅋㅋ 석류알보다 더 그리기 힘들다고 혼자 투덜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져 ㅋㅋ 물롱 저한테도 한자는 그리는 것입니ㄷㅏ..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의 스틸컷마냥 리얼리티가 넘치는 그림이져 우리가 주목할것은 오른쪽 위의 화병입니당 실크로드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 당나라의 사람들을 그려넣은 그림같 그중 제가 재밌다고 생각한 그림.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Feast of the Gods(신들의 만찬)입니당 그리스로마신화를 다룬 그림에서 중국식 청자가 등장하다니 독특하져? 1500년대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중국-유럽간 실크로드가 기원전 100년쯤부터 시작된걸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군..싶 실제로 중국식 자기가 등장한 최초의 그림이라는 이야기도 있음 . 중국이 이슬람 술탄에게 건네준 선물이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넘어간거지여 3. 장식품 프랑스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인형을 가지고 노는 소녀 의상이나 가슴에 새겨진 동그란 무늬만 봐도 서양식과는 많이 다르죠 리처드 E 밀러, Chinese Statuette(중국 장식품) 중국풍인지 일본풍인지 애매했던 그림. 특히 저 화가가 기모노를 입은 여인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거든여 근데 양웹에선 시누아즈리라 분류했고 또 저도 헤어랑 옷이 기모노는 아닌 것 같아서 넣었음 장식품을 자세히 보시면 가슴이 조금 파여있죠 또 부채도 들고 있그영. 상하의 색깔도 다르고.. 그래서 저는 장식품의 옷이요 느낌이라 생각했읍니다. (당나라 전통의상) Chinese Statuette(중국 장식품) 22 정확히 어떤 인물을 흉내낸 장식품인진 제가 중국인이 아니라서 몰겠그여 두 다리를 넓게 벌렸고 풍채 좋은 모습으로 봐선 무슨 신같은게 아닐까 ㅋㅋㅋ 오잉또잉 평범한 티타임인데 어디서 중국풍을 느낄 수 있져 그림을 좀 더 크게 보실게여 오홍홍 은주전자 밑에 부처상이 놓여있네여 (해석) 우리들은 종종 로코코 시대의 그림 속에서 시누아즈리의 미묘한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저 시대에 불교가 퍼졌을린 없고, 양인들은 오 뭔진 모르겠지만 동양틱해..이국적이야..! 이그조틱!!!!!!하고 진열해놓은 거겠죵 중국에서는 신앙의 대상이었을 부처상이 유럽에서는 장식품에 불과하단 사실이 흥미롭 반대로 예수상이나 종교화가 중국에 건너갔다면 중국인들은 무슨 판타지소설(=성경)삽화를 이렇게 거창하게 그렸담ㄲㄲ하고 웃었겠져? 4. 의상 의상으로 넘어오면 더더욱 시누아즈리와 자포니즘의 구분이 힘들어지는데여 양인들은 중국의 비단을 사치품으로 여기고 옷을 만들어입었지만 중국의 복식을 그대로 따라하진 않았긔때문 대신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로브 등으로 변형시켰져 이 그림도 차이니즈 로브라고 등록되어있길래 가져왔지만 자포니즘의 예시라고 했어도 ㅇㅇ글쿤 하고 납득했을거같져? 그치만 붉은 색깔이나 무늬가 중국같으니까......ㅎ 시누아즈리라 생각 ㅋㅋㅋ 반면 조낸 고마운 그림..누가 봐도 치파오네 생각할 수 있는 로브네염 껄껄 후궁견환전같은 중드 많이 보신 분들은 팔뚝과 옷깃의 줄무늬가 익숙하실 거예욤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새 목걸이 상의는 치파오, 하의는 드레스인 퓨전의상이네여. 같은 핑크색인데 위는 꽃분홍 아래는 인디핑크에 가까워서 재밌져 또 여인이 손을 대고 있는 호화로운 서랍장과 그 위의 장식품, 그리고 병풍으로 서양에 번진 동양문화를 찾아볼 수 있으ㅁ 같은 화가, 다른 그림. 위에서 입은 치파오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르죠? 전체적으로 색감이 참 우아해여 특히 서있는 여성이 걸친 상의는 챠르륵챠르륵 가볍고 반짝거릴거같아여 Agnes Goodsir의 그림. 딱 시누아즈리라고 표기하진 않았지만 저는 치마 무늬가 치파오스럽다고 생각해서 가져왔음 서양 드레스에서 저런 가로세로 줄무늬는 찾기 어려운것같아서용 뭔가 다른 명칭이 있다면 지적 부탁 거울과 깃털부채, 진주목걸이를 쥔 여인 그리고 노란색 치파오 청나라에선 노란색이 황제의 색이라 황제황후만 입을 수 있었다 하더라고여 정작 중국갔으면 못입었을 색이네여.. 마지막은 치파오를 변형시킨 의상인줄 알고 저장했던 ㅋㅋㅋ그러나 별 설명이 없어 걍 올리는ㅠㅠ Conrad Kiesel의 The Playfull Kitten이라는 그림입니당 드레스의 엠보싱같은 질감이 손에 만져질 것처럼 리얼하져?ㄲㄲ 끗ㅋ 출처
고양이과 동물들을 알아보자.jpg
모든 종이 육식동물이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육식과 사냥에 특화된 초육식동물임 눈이 크고 정면을 향해 있어서 대개 시력이 좋은 편이고 개과와 달리 앞발 사용이 능숙하고 순발력과 점프력이 뛰어나 공격이나 나무(포함 구조물이나 높은 곳)타기 존잘이라고 함 그럼 고양이과 동물에 누가 있는지 Araboza.jpg (약간 알쓸신잡 느낌으로다가) 호랑이  고양이과 표범아과 표범속 아종 - 벵골호랑이, 세베리아호랑이, 말레이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수마트라호랑이, 남중국호랑이 발리호랑이(멸종), 자와호랑이(멸종), 카스피호랑이(멸종-시베리아호랑이와 같은 아종) 고양이과 동물중 거의 유일하게 물을 꺼리지 않는다. 사자  고양이과 표범아과 표범속 아종 중에 '바바리사자' 몸길이 2.7~3.3m 몸무게 220~270kg과 '케이프사자'몸길이 2.4m 두종은 야생에서 완전히 멸종되었다. 수컷은 몸길이 2.6~3.3m,  몸무게 160~250kg 대부분의 경우 무리지어 생활하며 갈기는 숫컷에만 존재 재규어(Jaguar) 고양이과 표범아과 표범속 표범속의 네 '큰 고양이' 중 하나이다. (사자, 호랑이, 재규어, 표범) 일반적으로 호랑이와 사자에 이어 세번째로 큰 고양이과 동물이다. 몸길이 2.1~2.5m,  몸무게 80~150kg 표범과 비슷한 검은 무늬가 있으나 무늬가 크고 가운데에 작고 검은 점이 있다. 서식지는 미국남서부와 멕시코, 남아메리카이다. 표범  고양이과 표범아과 표범속 9아종이 있으며 흑표범은 표범의 변종이다. 몸길이 1.7~2m,  몸무게 50~80kg 담황색에 검은 반점이 있으며 등은 검은색 매화모양의 무늬가 있다. 호랑이, 사자 재규어 다음으로 크다. 나무를 잘 타며, 일반적으로 사람은 잘 공격하지 않으나 사람이 공격하기 쉬운대상임을 알면 호랑이만큼 무서운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얘기하는 '범'이나 '호환' 등은 호랑이와 표범을 두루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퓨마(Puma) 고양이과 퓨마속 6개의 아종이 있다. 몸길이 1.1~2m,  몸무게 30~103kg 몸의 빛깔은 지리적 변이가 많으며, 반점이 없다. 몸이 가늘고 귀가 작고 둥글다. 치타(Cheetah) 고양이과 치타속 몸길이 1.2~1.5m,  몸무게 20~45kg 최고 시속은 113km/h로 가장 빠른 동물이다.  그러나 이 속도를 200~300m까지만 유지 할 수 있다. 사자는 물론 표범이나 하이에나등이 습격하면 먹던 먹이를 빼앗긴다..... (악어와 함께 대표적인 아프리카 호구형....) 표범과 비슷한 검은 반점이 있다. (표범은 속이 빈 반점이다) 눈 부터 입까지 검은 줄무늬가 있다.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는 달리 발톰을 완전히 숨길수 없다. 구름표범(Clouded leopard) 고양이과 표범아과 구름표범속 몸길이 0.55~1.1m,  몸무게 15~23kg 중간크기의 고양이과 동물이다. 구름'표범'이라고 불리우지만 사자, 표범, 재규어 등이 속하는 표범속과는 별도의 종. 현재의 고양이나 삵과 근연종이다. 카라칼(Caracal) 고양이과 고양이아과 카라칼속 신장 1m 정도의 중형 야생고양이류 몸무게 최대 18kg 소형고양이류 중에서는 가장크다. 사막스라소니라 불리우기도 하지만 스라소니와는 검은 귀털외에 공통점이 없다. 귀끝에 나 있는 길쭉한 검은 털이 특징적이다. 다른 고양이과 동물과는 달리 홍채가 찢어진 모양이 아닌 사람처럼 동그랗다. 서벌(Serval) 고양이과 고양이아과 서벌속 신장 0.59~0.92m 정도의 중형 야생고양이류 몸무게 수컷이 9~18kg 몸매가 호리호리한 편이고 특징적으로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 몸에 비해 매우 작은 머리를 가지며 귀는 타원형으로 크다. 아프리카 사하라이남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위에 서술한 카라칼과 근연관계에 있다. 재규어런디(Jaguarundi) 고양이과 퓨마속 몸길이 0.65m, 몸무게 6kg 정도 남아메리카에 주로 서식하며 재규어와 비슷하나 퓨마에 가까운 종이다. 오셀롯(Ocelot) 고양이과 호랑고양이속 몸길이 0.7~0.95m, 몸무게 11.5~16kg 정도로  들고양이속에서 가장 크다. 북아메리카 남부와 남아메리카에 분포한다. 스라소니 고양이과 고양이아과 스라소니속 몸길이 0.85~0.1.1m 한국에서는 태백산맥에 소수가 서식한다고 하나 확인된 것이 없다. 북한에서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분포. 살쾡이(삵) 고양이과 고양이아과 살쾡이속 '삵'이 표준어로 '살쾡이'를 사투리로 인정한다. 크기는 작으나 매우 사납우며, 고양이와 교배가 가능하나 현행 고양이의 원종은 아니다. 출처 얘네도 다 박스 좋아하나 궁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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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알쓸신잡 이글 보면 어디 가서 지식 자랑 가능함 ㅇㅇ ㄱㄱ 1.통조림 따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일 때 프랑스군은 밀봉한 유리병에 음식을 담아 저장하는 병조림을 발명했으나 쉽게 깨지는 단점이 있어 야전 보급에 쓰기에는 많이 불편하였다. 당시 적국 영국의 피터 듀런드(Peter Durand)가 1810년 양철로 만든 석관 제조법을 개발했고 이후 초창기 통조림의 불량을 완전히 해결한 1819년 제대로 된 통조림이 출시되었다. 초창기 캔은 식량 그 자체보다 더 무거울 정도로  현재보다도 묵직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따개는 존재하지도 않아서 통조림 제조사에서는 제품 겉포장지에다가  "끌과 망치로 모서리를 열심히 까서 열어 드세요" 라고 적어서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칼로 쑤시거나 망치와 못으로 통조림 뚜껑을 쳐서 먹었어야 했고,  주요 소비자인 군인들은 주로 전선 등에서 총검으로 따서 먹었었다. 제대로 된 통조림 따개는  약 50년 뒤인 1858년 남북전쟁 직전의 미국에서  장기전을 대비해 들어서야 만들어지게 된다 2.등자 말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인 등자는 말에 오르거나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매우 유용한 발명품이다. 말은 기원전 4500년 무렵 길들여졌고 안장은 기원전 800년쯤 등장했다. 등자는 기원전 4세기 정도에 유목민족들이 개발하였다고 전해지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후 2~3세기가 되어서야 쓰이기 시작하고  기사들의 나라 서유럽은 무려 기원후 9세기가 되어서야 쓰인 물건이다. 등자없이 말을 타면 굉장히 균형 잡기 힘들고 위험하다. 실사 영상물에서 고증을 지킨답시고 등자 없이 말을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서 고증은 무시한다. 일례로, 글래디에이터의 DVD에 수록된 감독 코멘터리에서  등자 없이 촬영하려 했지만 배우들도 아닌 스턴트맨들이 안전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언급한다. 3.자전거 사실 몇천년 전부터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1800년대나 돼서야 나온 발명품이다. 고대에도 마차 엄청 굴렸듯이 바퀴, 안장, 나무프레임, 체인 다 있었지만 아무도 이 구조를 떠올리지 못해서 1800년대나 돼서야 나온 게 신기 1790년경에 프랑스에서 콩트 메데 드 시브락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원시적인 자전거 형태가 나왔다고 하나 실증이 되지않고 이설이 분분하여 확인할 수 없다. 1818년 독일의 카를 폰 드라이스(Karl de Drais, 1785~1851)가  핸들이 달린 목마 이륜차인 드라이지네(Draisienne)를 발명했는데,  이는 실증되는 자전거의 원조로 꼽힌다. 4.성냥 의외로 성냥은 라이타보다 늦게 발명되었다. 최초의 라이터는 위험물질인 황산을 이용한 것으로,  요한 볼프강 되베라이너(Johann Wolfgang Döbereiner)에 의해 1823년에 독일에서 발명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부싯돌보다 훨씬 불편했고,  두 손으로 켜야 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 데다,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 탓에 대중화되지 못했다. 마찰을 통해 스스로 불을 일으키는 최초의 현대식 성냥은  1826년 영국의 화학자이자 약사였던 존 워커(John Walker)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가 발명한 최초의 마찰성냥은, 여러 발명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개선되고,  보다 안전해지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즉, 먼저 발명된 것은 라이터 였으나 대중화에 실패하여 성냥이 먼저 대중화에 성공하였다. 5.구부러지는 빨대 우리가 ‘빨대’라고 부를만한 도구는 약 7,000년 전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초의 문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수메르 문명의 무덤 벽화에는  속이 빈 기다란 관으로 술을 마시는 사회 상류층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빨대의 진보는 1937년에 이루어졌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주둥이 부분이 꺾이는 주름빨대가 바로 그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조셉 프리드먼이라는 사람이  빨대 사용이 서툴러 자꾸 바닥에 음료수를 쏟던 딸을 위해 발명해낸 것이 바로 이 주름빨대이다.  기존의 종이 빨대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추가하여,  빨대가 꺾이지 않으면서 아코디언처럼 부드럽게 구부러지게 디자인을 설계했다.  이 빨대는 어린 딸을 위해 탄생했지만,  병원에서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의 음료섭취를 하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다. 6.새총 투석구에 비하면 재료를 만드는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서  최초 발명은 슬링보다 수십 세기나 늦은 19세기에 이루어졌다.  심지어 총보다도 늦다. 화승총은 이미 16세기면 각국에서 써먹는 중이었다 최초 새총 발명 시기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무줄로 쏘는 새총 구조상  제대로 된 고무(가황고무) 발명 이전에는 사실상 나올 수 없는 물건이고 가황고무 발명이 1839년임을 감안하면 새총 발명은 최소 1839년 이후로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7. 자동차 안전벨트 자동차의 시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스케치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769년 프랑스의 공병장교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군용 목적(포차 견인용)으로 발명한  증기 자동차를 자동차의 시초로 꼽는다. 자동차에 안전벨트가 최초로 도입된건 1936년 스웨덴의 볼보 직원이 아우토반을 달릴 때 안전을 위해 장착한  2점식 안전벨트가 최초의 자동차 안전벨트이다. 2점식 안전벨트는 자체에 안전벨트의 두 끝을 붙여 허리를 조여 매는 방식인데 이후 1959년 볼보의 엔지니어 닐스 보린이 현재와 유사한 3점식 안전벨트를 발명했고,  볼보 1959년형 122 차량에 적용했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에어백은 메르세데스-벤츠가 개발했다.  벤츠는 1967년부터 에어백 개발에 착수해 1971년 관련 특허를 취득하고  80년대 말 자사의 플래그십 세단 S클래스에 처음 장착했다. 8. 가방 바퀴 인류 역사에서 바퀴(wheels)는 B.C. 35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 등장했다.  1972년까지 가방에 바퀴를 달고 끌고다닐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바퀴를 지금처럼 여행용 가방에 처음 ‘공식적’으로 붙인 것은  1972년 미국의 발명가 버너드 새도우(Sadow)였다.  이전까지는 우리가 흔히 ‘롤링 백(rolling bag)’이라고 부르는 것은 없었고,  기껏해야 가방을 얹어서 이동할 수 있는 별도의 바퀴 달린 접이식 카트나  휴대용 포터(portable porter)라는 게 존재했다. 바퀴가 가방에 붙기까지 5,000년이나 걸린 것이다. 9.과일 요거트 기원전 10,000년 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우연히 우유를 두었다가 자연발효 과정을 거쳐 바뀐 요거트가 된 것이 요거트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1933년 프라하의 한 회사에서 최초로 과일을 첨가한 요거트로 특허를 획득했다. 10.한글 띄어쓰기 한글은 그레고리력 1444년 1월 중순~2월 중순(세종 25년 12월)에 창제되었다. 한글에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외국인이다.  한글에 띄어쓰기가 최초로 쓰인 것은  1877년 영국 목사 존 로스(John Ross)가 펴낸 '조선어 첫걸음' 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 이후 1896년 서재필,주시경,미국인 선교사 허버트 등이 만든 '독립신문'이 간행물로서는 최초의 한글을 띄어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글 띄어쓰기는 1933년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나오며 보편화 되었다. 출처
일본이 백제 계승했다는 썰.jpg
정확히는 지들도 모르게 계승한.. 아니 아예 뿌리를 뒀다는 가설 선요약) 1. 삼국 시대 당시 열도는 지금처럼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소국이었음. 2. 소국 중 대장은 왜(와)였고 소국 중엔 일본이라는 곳도 있었는데 일본이라는 말은 백제의 별칭이었으며 열도에 있던 일본도 백제에 기원을 둔 곳으로 추정, 아예 같은 나라였을 수도 있고 (본점 백제인 프렌차이즈 느낌,,) 3. 백제 멸망 후 백제인들이 열도의 소국 중 신하?혹은 분점이던 일본으로 건너가서 나라 기틀을 다짐 4. 그 무렵 왜도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꿨는데 이건 뭔 소리냐 소국 중 하나던 일본, 즉 백제가 왜를 합병한듯. 이후로 점잠 세력이 카져서 지금의 열도 통일한 일본이라는 국가가 됐을거라는 것 - 의자왕을 당나라에 팔아넘긴 예식진 예식진의 형 예군의 묘 에는 이런 묘비 명이있다. 이에 대해 나라현대학의 도노 하루유키(東野治之) 교수는 첫째, '부상'은 '일본'을 가리키는 명칭이고 둘째, 다른 나라는 다 빗대어 말하는데 일본만 국명을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일본이라는 단어'는 '백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즉, 문구 내용 중 백제는 일본으로, 일본은 부상으로 표기했다는 것. #. 또한 왜국이 부상으로 표현된 것과는 달리 '일본이라는 단어'는 '해좌(海左)', '영동(瀛東)' 등의 단어를 통해 별도로 나타냈다고 주장하였다. 도노 교수는 풍곡을 고구려, 반도를 신라로 비정하면서, 묘지명에 기록된 당시 백제, 고구려, 신라 등 중국의 주변 나라는 국호를 쓰지 않고 '부상·풍곡·반도' 등 자연환경적 특징에 근거한 은유적 명칭을 썼는데, 유독 일본만 공식 국호를 썼을리 없다는 논지다. 묘지명의 ‘일본’은 중국에서 볼 때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으로 곧 백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군의 묘지에는 동방을 지칭하는 많은 용어와 함께 ‘일본’이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동 시기에 사용되던 국호는 하나도 기록돼 있지 않다 의자왕이 항복한건 660 년이지만. 부여풍이 이어받아 3년동안 계속 저항 운동을 하였고 백제가 완전 멸망한거 663년 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국은 왜국의 별종이다. 혹은 일본은 옛날에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 땅을 합병하였다고 말한다. -구당서 동이열전 중국 기록을 보면 일본과 왜국은 연속성은 있지만 엄연히 별개의 존재로 지칭한다. 그리고 백제가 멸망후 몇년후 왜국 국호를 갑작스레 일본으로 바꾼다. 그리고 재밌는건 백제가 멸망하고 무려 20만명 이상이나 일본으로 이주한다. 당시 인구로 20만명이면 거이 인구의 1/10 가까이 되는 어마한 인구고 즉 이토록 일본으로 이주한건 같은 영토 비슷한 소속감과 그곳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더욱이 그 이민자들은 받아주는 일본도 자신들과 같은 소속감 뭔가가 있으니 받아주는게 말이된다. 과연 이게 다 우연의 일치인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