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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비행기처럼 살포시 내릴곳은 · 저자(시인) :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아름다움에게 꽃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다시 이룩하고자 고개를 끄덕이고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벌들처럼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제도기를 몇 명이든 다시 불러내어 새로운 꽃들의 도시의 선과 계획을 다시 설립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아름다움의 기억 속에서 다시 무엇을 꺼낼 수 있나요 진정성 아무리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변하고 있어도 무관하게도 때로는 무심하게도 그렇게 혼자만 고고하고 성결한 것도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아름다움이 비행기처럼 다시 이륙하여 두 개의 심장으로 엔진을 달고 꽃의 중심으로 날아갈 수 있는 날에 그렇게 설계도면으로 그려진 바로 당신의 마음일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면 사랑하는 당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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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 여행편 prologue.
“두 번 생각,해~” 난 블랙핑크가 아니기에 하고 생각했다. 유독 인간을 못견뎌 하는 내게 이번만큼은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싶어 부푼 꿈을 갖고 입사했던 IT기술 전문 스타트업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졸업하기도 전에 흔쾌히 취업의 기회를 마련해 준 고마운 회사. ‘그래도 참아봐야 하지 않겠나 요즘 같은 취업난에...또 비전도 분명 있을거야...’ 라는 생각이 나를 비웃듯 트러블이 생긴지 약 한 달 정도 만에 ‘내주변은 다 적군 뿐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려 유독 인간을 못견뎌 하는 나는 퇴사를 외쳤다. “OZ씨 없이 사실 우리 회사 돌아가는 거 지장 없어요. 그러니 오늘 당장 나가도 문제는 없습니다. 인수인계만 제대로 하세요.” 갑작스레 퇴사를 고하는 내가 일말의 성의라도 보이기 위해 사람이 구해질때까지는 책임지고 근무하겠단 말에 대표라는 사람이 콧방귀를 뀌며 뱉은 말. 당시 마케팅 사원으로 들어가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 등등 모든 업무를 (대기업에 6년간 있었다는 대표 피셜 아주 엘리트라고 하는 사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담당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참 한심한 소리가 아닐 수 없구나 했지만 뭐, 이렇게 쿨하게 보내주신다면야.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까지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인 그 지옥 소굴에서 박쥐같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피나 쪽쪽 빨리고 있었겠지... 😵 모순적이게도 막상 나가는 날 되니 내 앞에서 우리 회사가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지 아느냐, 이사람 저사람 불러가며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프로세스가 얼마라고 했었죠?”, “OZ씨 내가 기획 자리에 앉혀주려 했는데 정말 퇴사가 맞는 선택이겠어요?” 구구절절 침을 튀겨가며 불안증세를 내보이신 대표님의 딱함 지수는 굳이 내 입으로 말을 안해도 될 터. 퇴사 후에는 얼마나 더 바닥을 보여 주시던지... (굳이 비교하자면 헤어진 전남친이 여태 내가 사준거 다 내놓으라는 급?) 여튼 매번 생각이 많아서 보이지않는 손에게 결박당한 나에게 이번 여행은 뭐든 일단 하고 생각하는 실행력(사실 그중엔 먹고 눕고 자고가 제일 큼ㅋ)을 배워온 아주 값진 기간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디어가 주력상품인 나에게 ‘행동이 0이면 결과도 0이다’라는 뼈저린 교훈을 알려준 멘토링 기간이었달까. 3.26~5.31 약 두달간의 쫴릿한 유랑 “프랑스-체코-오스트리아-니스-칸-바르셀로나” 까지 왜 독일은 안갔어? 스위스가 그렇게 좋다던데 거길 빼놓고 오다니.. 등등 많은 야유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겠으나 내 모토는 “일단 하고 싶은 것만 할거야. 두달간은.” 이었으니까. 왜, 인풋 대비 아웃풋에서 최고 효율을 내고싶어 하는 나같은 인간 유형들은 사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내가 이돈 내고 여기 왔는데 뽑아낼 만큼 뽑아 내야지!’라는 생각에 노는게 노는 것이 아닌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도 100% 그런사람에서 벗어났다고는 저어어올때 말할 수 없다. 난 약간 유전자에 가성비 유전자가 있나봐. 하지만 그렇게 27년을 살아온 내가 ‘아, 항상 가성비를, 효율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하는 깊은 깨우침을 얻은 그런 기간. 27년간의 생각을 뒤바꾼 두달이라는 그런 기간. 그래서 앞으로 몇 십 년간의 삶을 뒤바꿀 그런 기간. 그런 기간이 이번 여행이었다고 아주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고인물인 것을 티내는 중)말할 수 있다. 외려 사람은 효율을 안 따지고 살 때 더 행복한 것 같다. 효과 만큼은 기가맥히게 뽑아낼 수 있으니까. 남자친구와 함께 한 여행, 5박 6일의 체코여행기간 동안 싸울 게 있으면 싸웠다. 당일치기 오스트리아 여행이지만 다리가 아프면 그냥 앉아서 쉬었다. 몽생미셸은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 이지만 가는게 귀찮아서 안갔다. 그냥 오늘을, 내 기분을 살고 싶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할 때, 그 장관을 보고 느낀 아름다움도 물론 크게 남겠지만, 그 장관을 못봤어도 당장 내가 쉬고 싶어서 쉬었을 때의 행복감이 나로써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더 크게 자리하지 않을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밥상을 뒤엎을 사람 무울론 있겠지만 할튼 그런 여행이었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란 말을 하고 싶었다. 여행이 끝난지 이주가 된 이 시점에, ‘들어가면 한달은 쉬면서 펑펑 놀아야지~’ 했던 내가 취준에 시달리며 (이래서 인간은 환경이 중요해~) 동네방네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어서 두달 전 내 마음가짐을 되새기고자, 솔직한 나를 마주하고자, 나와 더 소통하고자 비교적 오프라인으로 아는 상대가 훠어어어어어어얼씬X200없을 빙글에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도대체가, 이번이 인생 2회차 인가? 어떻게 다 겪어보지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지도 않고 “나는 00기업에 00직무에 지원해서 합격한뒤 연봉 몇천을 받으며 배우자와 자식 둘 낳고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거야”가 다 짜여져 있는거지? 나 빼고 분명히 다들 개인 컨설턴트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요즘 아주 집중적으로 취준 활동을 하면서 술에 취해 버스 바닥에 대짜로 뻗어 잔 이후로 내가 인생을 참 한심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이리도 강하게 든 적이 없었다. (그 사이사이 근접하게는 들었을 수 있음) 나도 교환학생부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 인생에 크나큰 시련에 무너지지 않고 딛고 일어섰으며, 대외 활동과 사회 생활, 자격증 획득 등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단 말야?? 내가 지원한 직무와 관련되어서 살지 않은 기록들은 다 무용지물이란 말야???? 도대체가 왜!? 60을 바라보는 우리 아버지도 아직 본인에 대해 100%, 아니 100%가 뭐야. 60%정도 아실까 말까? 근데 꼴랑 27살 먹은 내가 도대체 무슨 일에 소명의식이 있는지, 내가 기깔나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은 뭔지, 어떤 작살나는 기업의 사원증을 목에 매고싶은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나는 그냥 하고 싶은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런생각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책임감도 없고 안일한 한심한사람 취급을 받는 것인지!!! 나는 마케팅을 배우고, 하고 싶었는데 내가 왜 27살이 되어서도 소금물 농도를 구해야 하냐 이말입니다. (솔직히 빙글도 취준하다 알게됨🤫)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나는 이렇게 색깔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점점, 이제는 쳐다도 보기 싫은 그 클리셰, 현실과 타협해야지, 언제까지 이상만 좇을래 가 내 머릿속을 맴돌게 될 줄이야...... “하고 싶은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려면, 일단 하기 싫은거 불행하게 30년은 해야지 그럴 수 있는거야~”가 거의 뭐 학계의 정설이 된 이 시대에 나 세젤또 oz오스본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여행을 회상하며 또다른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무튼 갑자기 중간에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온 고난과 고통때문에 길을 잃을 뻔 했지만 두달간의 대장정(?)을 정리해 보고자 시작을 거창하게 알린 글 정도로 봐주면 메흨씨 하게씁니다! 언제 1편을 들고 올진 모르겠지만 뭐 일단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껄껄껄 곧 다시 만나요 à bien·tôt✨🤗🤗🤗
하고싶은건 하고 살자 - 여행편 1. 샤르드골(CDG) 공항으로 출발!
‘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 ‘프랑스 생활’ ‘프랑스 소매치기’ 표를 예매해 두고 약 25일간 검색창을 채운 키워드 들이다. 본래 한가지 행동을 하기 전에 1562837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 나로써 ‘일단 표부터 예매하고 생각하자’는 일은 사실 극히 드문 일이다. 남들 다가는데 나만 못가는 일본도, 11월에 가면 그렇게 좋다는 대만도, 셋이 떠나는 우정여행으로 여기 만한 곳이 없다는 코타키나발루도... ‘표값이 왜이렇게 비싸!? 여기 원래 5만원이면 가잖아! (그런데 없음)’, ‘아니 근데 누구는 오사카가 좋다고, 누군 후쿠오카래고.. 방사능은 괜찮은거야?’, ‘11월에 가도 덥다고~ 스치기만 해도 살인충동 200퍼래~’ 해가며 아가리 트래블링만 해온지 어언 5년... 지겹다. 사실 나도 지겹다. 그냥 표 예매해서 가서 맛있는거 먹고 시시콜콜한 얘기 해가며 사진 몇장 남겨오면 끝인것을... 무슨 연관성인진 모르겠지만 저런 시덥잖은 핑계를 대가며 뚝배기 박살날만한 굿딜이 있지 않은 이상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는 밀림의 왕 사자자리 oz는 이럴 때마다 부자이길 바랐다. 내 내공도, 지갑도, 사람도...그냥 여행 한번 가는 일인데 뭐 그렇게 재고 따질게 많은지. 설명하기 조금 복잡한데, 난 사실 설레는 일이 생기면 그 일이 실제 일어나기 전까지 기대하는 시간을 아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병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있다. 참을성이 없는건가? 아냐 그거랑은 조금 달라.. 일단 예매를 하고 나서 일정을 짜는 일까지 산넘어 산인데, 일정 짤때가 제일 신나고 설렌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기이이이히이이겁을 했다고 하면 어느정도 감이 오려나? 근데, 그냥 갔다. 아무 생각 없이 두 달을. 프랑스 여행 결심의 발단은 교환학생을 가는 남자친구였고, 비행기표 예매의 계기는 사무실에 멍청하게 앉아 썼던 멍청한 컨텐츠들이었고, 두 달을 있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언제 또 그렇게 가보겠냐는 아빠의 말씀이었다. 그랬다. 내 인생에 큰 획을 긋게 될지 모를, 아니 긋고 있는 일생일대의 여행을 결정하는 데에 ‘나’의 ‘생각’은 딱히 담겨있지 않았다. 굳이 있다면 그냥 ‘저분들은 왜저럴까...일하기 뭐같다...’의 감정 정도....? 사실 출국날 일주일 전까지 주변에 여행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 없이 오오오래 여행을 떠나는 나를 보며 “철든”사람들이 하는 철없는 소리를 내가 못견뎌 할 것 같아서. (귀가 극세사인 제가 죄인입니다..😭) 왜? 확실하게 결혼할지도 말지도 모르는 남자친구만 바라보고 멀쩡한 직장을 팽겨치고 (그렇게 비춰질 수 있으니) 두 달 간 그곳에 가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타부시 되는 행동일테니까. 스아실, 양심에 손을 얹어 보자면 나도 15% 정도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가성비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충격적인건, 내가 그들에게 여행 사실을 밝혔을 때다.. “야, 너 이시기에 남자친구 때문에 거기에 두 달을 있겠다는게 말이 돼? 돈은? 시간은? 넘쳐나?” 정말 단 한명도 이런 반응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어느 누구도.... 오로지 나였다!! 최악인 사람은!!!😱😱😱 뭐 하나 하려고 하면 하여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면서 김칫국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뱉기까지 난리 테크노를 추다가 제 풀에 꺾이는 한심충은 바로 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ㄸr흐흑.. 다들 정말 나보다 더 기뻐해주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축하해주며, 사랑 때문에 가는 것은 시덥잖고 한심한 일이 아니라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멋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일러줬다. 이 말을 계기로 다시 한번 느꼈다.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돈도, 일도, 경력도 아닌 여유와 리프레시와 사랑이라는 것을! (큰 깨달음을 준 땡땡씨께 거창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그냥 갔다. 아무 생각 없이 두달을. 3월 막주 출국이었고 첫주 퇴사였기에 일주일은 원기 회복 하는 데에, 일주일은 짐싸기+프랑스란 나라의 뒷조사 하는 데에, 마지막 일주일은 내가 너무 섣불렀나 불행회로 돌리며 사서 걱정 하는 데에 쓰며 전날 밤을 꼴딱 새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냥 한번 찍어보고 싶어 찍은 혹시 모를 현금 헤헤,, 미리 준비해간 현금이 톡톡한 효자 노릇을 했다. 나중에는 환율이 갑자기 쑤욱 올라서 조마조마해가며 카드를 썼기 때문. +현금으로 쓰고 거슬러받는 동전으로 세탁을 하고, 주전부리를 사는 재미도 갱댱히 쏠쏠했다! 사실 이 재미가 제일 컸다. 10유로짜리 박박 긁어서 맥주 한캔 사먹었을 때의 그 쫴륏함이란,,! 이른아침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는 딸랑구를 위해 에스코트 자처해주신 나만의 해바라기 (쌍방임. 아니 사실 내가 더 바라봄) 아빠와 모오닝 드라이브 하며 유우우명하다는 동상 보기,, (사실 난 모름. 내가 모르면 유명한거 아니야앗~!) 대한항공 공동운항 에어프랑스 항공기를 타고 갔는데, 대한항공 줄에 서있다가, 반대편이라는 말에 대한항공 직원가족들만 사용하는 줄에 서있다가, 에어프랑스 창구로 가셔야 한다는 말에 우왕좌왕..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헤매지만 않았어도 1등으로 짐부치고 아빠와 여유롭게 식사 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댕청댕청 하는 바람에 커피 엣 웍스에서 커피 한잔으로 최후의 만찬을 떼워야 했다😢 불효자는 웁니다... (하지만 가배 맛 만큼은 스고이 했음) “나 없이 심심해서 어떡해?” 진담반 농담반 던진 말. 내가 신경쓸까 괜히 더 일찍 가보겠다는 아빠 말씀에 만감 교차하며 시원섭섭한.. 사실은 조금은 죄스러운 인사를 나눈 후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리는 중. 사실 교환학생이며 유학이며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공항이지만, ‘나름 성인’이 되어서 ‘여행, 휴식’을 목적으로 ‘두 달’간 ‘홀로’ 떠난다는 것은 나로써도 처음이기에 이상했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상했다는 느낌이 딱이다. 그렇게 낄끼빠빠에 실패한 이상한 감정을 껴안고 탑승했다. 이상하리만치 꼭 비행기 타기 전날엔 사고 뉴스가 눈에 잘띄는 무논리 법칙에 따라서 무사착륙 염원하는 기도 한번 찐하게 올려준 뒤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식을 서비스 받았다. (사실 저는 관심사에 술이 꼭 들어가야 하는 술쟁이입니다. 후의 게시물들을 보면 알콜 중독이 아닌가 의심을 할 수도 있음🥂최얼스-🌟) 빈속에 받아마신 샤도네로 이미 알딸딸해진 일방통행 알콜바라기 O알콜쓰레기Z는 아예 홀라당 취해서 잠이나 자자 하는 심보로, 에흐프항스의 시그니처와 같은 레드와인 한잔..한병? 한..잔만 더마시면 취할 것 같은 양의 병을 받아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서빙되기 전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책자를 받아 고르면 되는데 메인 메뉴는 먹을만 했고 디저트로 나온 까망베르 치즈와 초코무스? 같은 것이 홴쇙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물론 개취입니다) 그렇게 자다 깨다 이리 저리 모가지로 추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다 보니 11시간의 비행시간중 심리적으론 8할을 차지한다는 마의 구간에 도달해 있었다. 헐른 내려주세효 기장님 현기증 납니더.. (영화, 음악, 티비 시리즈는 비교적 선택권이 많았지만 더빙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들이면 자막이 없어서 불편하실듯 합니다) 그렇게 도착했다. 샤르드골에. 짐을 찾는 것부터 출구를 찾는 것까지, 쉽지 않았고, 영어만 할 줄 알았지 다른 것엔 젬병인 나를 옥죄여 오는 심리적 중압감은 이미 디멘터가 되어 3대까지 영혼을 쭉쭉 빨아먹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진짜 사람이 생존본능이 있는 것인지, 마치 죽기전 기지 같은 것이 발휘 되어서 ‘내가 이런걸 한다고?’싶은 행동들-예를 들면 즈으응말 처음보는 사람들한테 가서 손짓 발짓 해가며 터미널 위치를 물어본다던지, 영어가 가능한 직원을 만나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며 나좀 도와달라! 사딸라! 한다던지-을 해가며 나의 살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길이 뛰고 다니던 와중 운명처럼 남자친구를 만났다. 마중나온 남자친구를. 내 먼 길 여행의 목적! 나의 사랑!을 유리벽 하나 두고 만나질 못해서 오첨지가 되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향수냄새 대신 호르몬 냄새로 재회하게 될까 조마조마. 짐은 또 왜이렇게 안나오는지. 좌충우돌, 우여곡절, 하여간 정신없고 딱한 뜻을 갖고 있는 사자성어의 예시로 나를 보여주면 어디든 200% 들어맞을 것 같았지만, 난 어쨌든 영화 한편 찍으며 그렇게 도착했다. 그리고 만난 나의 남자친구와 재잘재잘 한시도 말을 쉬지 않는 우리는 1분간 껴안고만 있었다. 에흐에(RER)를 타고 남자친구의 집까지 가야 했기에 제일 먼저 나비고(Navigo)를 만들었다.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그와 나의 곽한구와 보름달 같은 증명사진이 떡하니 붙어있는 사진을 차마 첨부할 수 없어(눈갱 지양) 손을 쓴 뒤 다음 게시물에 소개하도록 해야겠다. 어휴 아직까지 샤드골 공항 온 것밖에 못썼다니, 난 항상 주절주절 사족이 많은게 문제다😭😭😭 다음 게시물 부터는 시속 60Km 정도는 기대해 보며.. 또 만나용! A bient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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