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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분노사회> - 왜 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할 때마다 빡치는가?

4대강 사업 때도 그랬고,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고, 이번 담뱃값 인상도 그렇고, 범죄자들이 솜방망이 처벌받는 걸 볼 때도 그렇고,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도 그렇고, 가부장적 가치관도 그렇고, 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할 때마다 분노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 사회를 생각할 때마다 빡친다. 대체 왜 그럴까? <분노사회>의 이론대로라면 내가 '자아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자신이 믿는 어떤 도리를 사회가 어겼을 때, 자아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분노한다. 자아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란,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외에도 여러가지 답이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대기업에 못 가도, 좋은 대학 못 나와도, 돈 많이 못 벌어도,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며 행복하게 산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옳다고 믿는 사회와 실제 사회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고유한 나'로 살게 하지 못하는 잘못된 사회를 어서 고쳐서 올바로 만들어야하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한다고 한다. 이 때의 분노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데 자신이 믿는 사회와 실제 사회가 달라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자아 정체성이 약한 이들이다. '고유한 나'라는 자아 정체성이 약한 이들은, 삶의 의미를 '집단'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가정ㆍ학교ㆍ직장ㆍ국가ㆍ종교ㆍ사상ㆍ정당 등) 이들은 맹목적으로 집단의 가치를 따르며, 집단 밖에 있는 존재들을 증오한다. 증오란 "지속되는 격노의 감정이며, 그 감정이 개인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증오의 대상을 관찰하고 괴롭히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 자아 정체성이 강한 사람, 다시 말해 '집단에 매몰되지 않은 고유한 나'로 사는 사람은 자긍심과 자존감이 강하다. ​하지만 '고유한 나'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우월감과 비참함을 느끼며 산다. 그들은 정체성을 '집단'에서 찾으며, 맹목적이고 공격적으로 다른 집단과 타인을 증오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분노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 이와 같은 '증오로의 진화'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분노보다, 집단의 가치관에 의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의 증오가 한국 사회에 더 많이 퍼져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분노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변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거다. 분노가 증오로 진화하는 것. 저자에 의하면, 한국에 자아 정체성이 약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교육 때문이다. 교육은 획일화된 라이프 스타일을 학생들에게 심어놓는다. 좋은 대학ㆍ좋은 직장ㆍ보통의 삶 같은 것들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우월감이나 비참함을 느끼며, 집단에 매몰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는 괴물이 많은 것 같다. 오로지 성공만을 외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일본인과 개인적으로 만나면 친근하게 굴면서도, 한국인이라는 틀 안에서 '타도 일본'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한국인'이라는 집단 정체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멀다. 교육도 그렇고, 획일화된 사회 풍토도 그렇고, 국민들의 자아 정체성이 강해지기 힘든 환경이다. 하지만 아주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부조리한 사회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고유한 나'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 선수가 쇼트트랙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환호했다. 그는 '안현수'라는 한국인이었지만, 빙상협회의 횡포에 결국 러시아로 귀화했다. 예전의 한국 같으면 그가 금메달을 땄을 때, '매국노'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텐데, 저번 올림픽에서 그에게 환호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는 '한국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고유한 나'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고유한 나'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내뿜는 분노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밑줄긋기 ㆍ현대의 사회에서 각 개인들은 자기만의 사랑, 꿈, 행복 등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만약 사회가 구성원 대부분의 불행을 조장하고 삶다운 삶의 가능성을 빼앗는다면, 그 사회는 이미 존재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봐야할 것이다. - p.115 ㆍ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하루하루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 중심을 잃을 때, 내 삶을 나만의 이야기로 써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때 삶은 분노가 된다. - p.30 ㆍ자아 정체성은 현대인의 '고유한 나'라는 특별한 관념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자아 정체성을 잘 형성하고 길러낸 사람은 '자긍심'에 도달할 수도 있다. 자긍심은 내가 나이기 때문에 긍지를 느끼는 감정이다. 이는 타인과 비교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비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준을 요구하는데, 이 때 기준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이 아니라 사회에서 정해놓은 기준이다. 그런 점에서, 비교를 통한 우월감은 내가 여전히 '타인들의 기준'에 휘둘리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자긍심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복종함으로써 얻어지는 고유한 자기 내부의 감정이다. 자기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 형성에 실패한 이들은 정체성을 찾는 유령이 되어 배회한다. 자기 기준을 바탕으로 한 자아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 p. 40 ​ ㆍ자세히보기 http://blog.naver.com/sniperhu/220130947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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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ho0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ㅎㅎㅎ 여러모로 흥미롭더군요.
재밌네요 하여튼 분노합시다 여러분
서점에서 읽다가 소재가 너무 흥미롭고 와닿아서 바로구입해서 읽고있습니다 ! 여러모로 좋은책이라고느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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