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흙수저의 기준
꼭 이런거 쓰면 그게 무슨 흙수저니 뭐니 말 많던데
3n년 살며 친구부터 일로 만난 모든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정도면 흙수저 맞다 반박 안 받는다
- 결혼할 때 부모님 지원 X
- 부모님 노후준비 X (매달 몇 십만원 씩 평생 용돈 드려야 함)
- 집 X
- 차는 있으나 일 때문에 있어야 하고 풀할부
- 모아놓은 돈 X
- 학자금대출 O
이 상태에서 결혼했음
모아놓은 돈이 0인 이유는 직장생활 4년 하면서 모아놓은 돈을 부모님 일 커버치느라 싹 털렸고
현타와서 30.9살에 직장 그만두고 그간 짬내서 취미처럼 해오던 일을 프리로 전환했는데 적응기간 동안은 돈 못 벌어서 못 모았다
모으기 시작할 때부터 결혼 준비 시작해서 모으는 족족 결혼 준비 자금으로 들어가서 결국 0인 상태로 결혼한거임
프리하고 개같이 열심히 했지만 6개월간 반 백수로 지내다가 다행히 여기저기 돌렸던 포트폴리오 중 하나가 터져서
업계에서 인정 받고 안정적으로 돈 벌기 시작했고 그 돈으로 겨우겨우 결혼했다
지금은 중견 기업 직장생활때보다 3배 이상 벌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다 잘된거긴 하지만
아직도 빚은 산더미임 ㅇㅇ
어쨌든 자타공인 흙수저 개붕이의 현실 결혼 후기 들려준다
1. 결혼 준비에 들어가는 자금
얼마 전에도 개드립에 결혼관련 글 본 거 같은데, 거기서 결혼 준비하는데만 5000만원이 든다고 하더라;
댓글들도 이러니 결혼을 어떻게 하냐는 말들이 많던데
본인 기준
서울권 단독홀 예식장 + 플래너 끼고 청담권 스드메 + 제주도 신혼여행(코로나 시즌이라 동남아 이상으로 듦)
이었는데도 2500이 채 안들었다
솔직히 결혼 준비에만 5천이 든다느니 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임
상위 1% 이거나 결혼 해보지도 않은 커뮤식 망상 물타기;
가까운 지인이 쌉 상위 1%라 드레스 대여만 천만원에 호텔에서 식 진행하고 신행 유럽으로 갔는데 5천 언저리도 안듦
제발 해보지도 않고 출처없는 정보글에 좌절부터 하지 말길 바란다..
스드메라는 거 자체가 생각보다 비싸지가 않고
식장은 120% 축의금으로 대관료에 식대 보증인원까지 떡을 치고도 남으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심지어 나는 모아놓은 돈이 0이었다니까?
결혼 준비 기간을 1년 잡고 준비하면 백~몇백의 목돈이 나가는 건 3개월에 한번쯤?
그냥 일해서 번돈 고정지출 빼고 싹다 모아놓고 모일때마다 대금 지불하면서 준비했어
돈이 많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스튜디오, 식장 등 예약금이나 대금 나가는 돈들이 백만 단위로 때마다 숭덩숭덩 나가기 때문에 미리 목돈 준비 안해놓으면 좀 아프긴 함.
준비할 때 도움되는 팁을 주자면
1) 식장 보러 다닐 때 처음 가는 식장에서 처음 제시하는 금액은 무조건 그 식장의 최대 금액이니까 절대 첫 방문에 계약하지 마라
첫 방문에 계약하면 이것저것 혜택 준다고 하는데 뒤도 돌아보지 말고 옆에 또 보기로 한데 있다고 하면서 나와라
그러면 일주일 뒤에 계약 하셨냐면서 반값부터 흥정 시작한다
2) 흔히 여자들의 로망이라고 하는 스튜디오 촬영에 힘 준거 ㅅㅂ 아직도 개 후회하고 또 후회함 앨범 어디 있는지도 모름
와이프도 나도 아직까지 후회하는 게 스튜디오에 절대 돈 많이 쓴 것
(특히 사진 셀렉할 때 엘범 크기나 두께 얘기하면서 사진 추가하라는 식으로 유도하는데, 사진 10장 추가했는데 60만원 냈다.. ㅅㅂ)
3) 스튜디오 아낀 돈으로 본식 스냅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해주시는 분을 한 분 더부르는게 너 개붕 인생 최대 업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 집은 어떻게 했냐
뭐 우리는 시작을 투룸 오피스텔 월세로 시작했다
나는 태생부터 흙수저긴 했고 와이프는 부모님 노후준비는 되어있으긴 했지만 결혼 때 뭔가 지원을 해줄 정도의 여력은 없으셨다
게다가 와이프는 직장인이 아니고 아직 박사과정 중인 척척석사님이라 벌이도 없었다
결혼 준비시점 기준으로 반백수인 나와 학생인 와이프 사이에 대출이 나올리도 없었고
남들 뭐 청약이니 전세대출이니 갭투자니 뭐니 말 많을 때 우리는 아닥하고 바로 와이프 모은 돈 보증금으로 해서 여기 들어왔다
오피스텔이긴 하지만 신축이기도 하고 투룸에 거실 주방 다 있어서 신혼생활 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이런 우리의 상황을 약간 무시하는 시선이 없진 않았는데
둘다 이런거에 좌절하고 부끄러워 하는 스타일 아니라서 결혼하고 집들이만 10번 넘게 함ㅋㅋㅋㅋㅋㅋ꿀잼
사실 작년 초만해도 전세대출 이자가 막 2~3%대라 월세 내는 게 아깝기도 했지만
아까워도 뭐 안되는 데 뭐 어쩌겠어ㅋㅋㅋㅋㅋㅋ
근데 지금 대출이자 천정부지로 치솓는 거 보면서 타이밍이 참 괜찮았다 싶음
물론 풀옵인데로 들어오느라 월세가 좀 높긴 하지만 뭐 우리는 선택사항이 없었다
그러니까 집 없다고 결혼 못한다?
하고자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둘이 벌면 아파트로 들어가도 월세 충분하다고 생각함
어차피 대출 이자나 월세나 또이또이인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집이 있냐 없냐보다 중요한건
배우자가 될 사람이 이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한가, 그리고 함께 웃으며 지낼 수 있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함
솔직히 친구들 결혼하는 거 보면서 집이 없는건 둘째치고 월세 보증금마저 와이프 모은 돈으로 하는 내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때도 있었는데
와이프가 그런거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응원해주고 기살려줘서 결혼할 수 있었던 거 같다
3. 기타 사항
- 혼수: 오피스텔이 냉장고, 세탁기, 시스템에어컨까지 싹다 빌트인 풀옵이라 가전 따로 안샀고 침대 및 없는 것들만 삼 (올해 이사가는데 다 사긴 해야됨)
- 예물예단: 양가 다 여유 없어서 당연히 안하기로 합의봄
- 상견례: 나름 괜찮은데서 했는데 80만원인가 안넘음
- 신행후선물: 명품 이런건 처음부터 생각 못했고 그래도 제주도에서 알아주는 갈치랑 레드향 이런거 보내드림
- 청첩장인사: 그냥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는 거 몰아서 한다고 생각하고 딱히 아끼지 않옴. 돈 많이 쓰긴했는데 그만큼 식때 많이 옴
결국 모아놓은 돈도, 집도 절도 없었으나 어찌저찌 결혼 잘 했음
글로보면 되게 안좋게 했나 싶을수도 있지만 우리 결혼을 지켜본 지인들은 1도 못느꼈을 거임
우리가 평소에 지인들 결혼식 다니면서 보는 평범한 결혼식 어쩌면 그 이상이었고
어차피 돈없으면 전세든 매매든 대출해서 살아야 하는 집 이자 월세로 낸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아쉬운 거 별로 없다
4. 결혼 후엔 어떠냐
커뮤에 보면 남자들은 결혼하면 항상 후회하고 결혼을 말라는 밈 투성이라 나도 솔직히 겁좀 먹었었는데
딱 잘라 말한다
결혼 진짜 꼭해라 개강추고 마음 맞는 사람 만나면 매일 매일이 꿀잼이다
내 결혼생활이 즐거운 이유의 90% 이상은 와이프를 잘 만나서이지만..
뭐 너네도 잘 찾아보며 잘 만날 수 있을거야
안되면 뭐.. 어쩌라고;
나는 결혼 결심한 게 와이프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솔직히 중견기업 다니던 시절에는 현재 장모님이 언제 결혼하냐고 매번 물어보실 정도로 적극적이셨는데
내가 직장 그만두고 프리생활 시작한 이후로는 오히려 나를 못 만나게 하실 정도였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일은 안되고 돈도 없고 그지 깽깽이처럼 지내는 내모습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
당시 여자친구였던 와이프에게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까지 얘기했다
그런데 와이프가 들은 척도 안하고 무시하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하길래
우리가 애도 아닌데 미래도 없는 나를 왜 계속 만나려고 하냐고 물으니까
"오빠 곧 성공할껀데 내가 왜 다음 여자 좋을 짓을해ㅋㅋㅋㅋ"라고
장난 반 진담 반 섞인 저 말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
오히려 심각하게 걱정하고 뜬그룸 잡는 위로가 아니라 가볍게 툭 쳐주는 저 배려가 나한테는 확신이었고
그때부터 진짜 미친듯이 일했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말하면 외벌이로 지내는데 와이프는 학생이라 나보다 더 바빠서
집안일도 내가 더 많이 할때면 억울할 때도 있고
오래 만나다보니 치고박고 싸우기도 하는데
그래도 내가 그지 깽깽이로 깡통차도 옆에서 같이 차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
와이프 처제랑 강원도 여행가서
집에 없어서
너무 신이나서 그만
막줄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