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ubon
500+ Views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

작년 2월 전쟁이 터진 이후, 헬싱키-상트페쩨르부르크 간 기차 노선이 결국 끊기면서 러시아와의 교류가 거의 중단됐었는데, 사실 러시아와 상당히 긴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나라로서 핀란드는 러시아를 빼놓고 역사를 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말은 역시 논문이지 시리즈가 나옵니다.

사실 이 논문은 대단히 오래 전에 나왔다. 우연히 중고서적에서 발견하여 신나게 읽었는데, 제목부터 말씀드리자면 “상트와 핀란드: 이주와 영향/S:T Petersburg och Finland: Migration och Influens 1703-1917”이다. 스웨덴어로 쓰여 있으며, 저자는 Max Engman(1945-2020), 핀란드의 역사가였으며, 국가기록보관소 및 핀란드역사학회 저널(참조 1)의 편집장을 오래 지냈다. 이런 논문을 쓸만한 환경에서 일한 것이 매우 부러운데…

이 논문을 소개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밀덕들이나 기억할 소련-핀란드 전쟁들 빼고 여러분들 핀란드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잖아요(??). 그걸 짧게나마 알려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런 잘 쓰인 논문이라는 얘기입죠. 막스 엥만은 실제로 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해 북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그 후로 온갖 수상과 저작물 시리즈를 이어갔었다.

자, 여기서부터입니다. 핀란드는 매우 오랜 기간(대충 6백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그때문에 핀란드인들에게는 (스웨덴의 무관심에 따라) 핀란드어와 문화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딱히 핀란드 민족의식이 발달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게 패배했네? 덕분에 러시아는 19세기 초, 핀란드 지역을 점령하고 자치령을 세우는데, 이때부터 여러 핀란드인들의 러시아, 특히 상트로의 이주가 시작된다. 바로 이 논문의 주된 내용인데, 사실 당시 핀란드인 이주에 대한 기록은 정리된 것이 전혀 없으며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상황인지라, 1980년대 쓰여진 엥만 박사의 이 논문이 거의 최초급의 제정 러시아 당시 핀란드인들에 대한 통계 및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자, 러시아가 자치를 허용했듯, 러시아도 핀란드에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핀란드인은 제정 러시아 국민으로 그냥저냥 살아갔지만 나중의 알렉산드르 3세 차르가 러시아화 정책을 무리하게, 황국식민화 정책(지구 반대쪽 어디엔가가 떠오르신다면 그건 여러분의 착각입니다)을 추진한 덕분에 핀란드만의 민족 정신이 무럭무럭 커집니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시 곧바로 독립을 해버린다는 이야기.

이걸로 초간단 핀란드 역사는 끝인데(?!), 그래서 상트로 간 핀란드 이민은 어땠는가? 많이 갔습니다. 아주 많이요. 한 때는 헬싱키 인구와 비슷한 규모이기도 했고, 19세기 후반까지도 핀란드의 어지간한 도시보다 상트에 사는 핀란드인들의 수가 더 많았었다. 아니 그럼 왜 굳이 상트로 갔는가?

상트가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북유럽 동네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시장과 일자리가 있으니 거기로 가는 것이며, 한때 상트 인구의 2.7%까지도 차지했다고 한다(참조 2). 하필이면 왜 핀란드 사람들이 상트로 가죠? 이게 러시아의 농노제 때문이었다. 그 광대한 러시아 제국 내에서 쉬운 이동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농노제 특유의, “고향에서 살어리랏다” 정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갖 부류의 핀란드 사람들이 상트로 갔기 때문에, 이게 바로 러시아 사람들 유전자 검사할 때 핀란드계가 꽤 나오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참조 3). 자, 그런데 이 핀란드 사람들의 상트/러시아 이주가 19세기 후반부터는 뚝 떨어진다.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알렉산드르 2세가 했던 농노 해방이, 러시아 내의 인구 이동을 매우 많이 일으킨다. 즉, 상트나 모스크바로 러시아 내 다른 러시아인들이 많이 들어갔다.

(2) 핀란드에 관대했던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핀란드 내의 길드도 철폐(1863년)했었다. 거의 금난전권 철폐와 맞먹는 정책인데, 이게 그동안 상트로 향했던 핀란드 제조업자들의 행렬을 핀란드 내 다른 도시(특히 헬싱키)로 돌리는 계기로 작용한다. 자유롭게 일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3) 미국이 이민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미네소타와 미시건 주에 많이들 몰려갔는데, 이건 알렉산드르 3세의 황국신민화 정책(…) 때문이었다. 러시아화를 피하려는 이민자들의 선택은 문을 크게 연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이었다.

결론이 나온다. 러시아를 빼고는 핀란드 역사를 논할 수가 없다(영국<->프랑스, 중국<->한국<->일본도 마찬가지). 그리고 눈에 띄는 차르들이 있다. 알렉산드르 2세 및 3세인데, 이들이야말로 핀란드인들의 핀란드를 부추긴 러시아 황제들이라는 사실이다.

말인즉슨? 남의 나라 정체성 형성을 강력하게 도와주는 어둠의 비-러시아 민족들 구원자가 바로 러시아의 황제들이었다. 그 나라가 생각나신다면 당신 생각이 맞습니다.

----------

참조

1. 저널 명칭은 Historisk Tidskrift för Finland인데 문제는? 1916년부터 시작된 이 오래된 저널이 스웨덴어로만 나옵니다.

2. 19세기 상트 인구가 100만 규모였으니 그 중 2만 7천여명을 추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가 이용한 통계는, 일단 러시아 제국이 행했던 인구조사와, 상트 내 러시아/스웨덴인들용 루터교 교인 명부, 여행권 발급 통계 등을 근거로 했다.

3. 가령 소련 여자(상트 출신은 아니다) DNA 검사 결과를 보면 핀란드 DNA가 제일 많다.

“한국인 맞다” 유튜버 소련여자 크리스, DNA 검사 결과 공개(2021년 4월 18일):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872098

4. 사진은 내가 촬영했으며, 책으로 나온 논문의 표지이다. 1983년에 출간됐으며, 인터넷 정보는 아래에 있다. 집중적으로 본 것은 영문 요약으로서, 이 책의 끝무렵에 나온다. https://www.antikvaari.fi/k/engman-max/st-petersburg-och-finland-migratio/001566c4df7e793858cfde2c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달다구리 한과 모음
유과 (油果) ''한과'' 하면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나는 것 매우 소복소복하고 바삭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조청이 들어가서인지 치아에 굉장히 잘 붙는다 유밀과 (油蜜果) 반죽에 꿀을 섞거나 바른 다음 기름에 튀겨내 만든다 꾸덕진 식감이 일품인 과자인데 투게더 같은 바닐라 아이스크림류에 곁들여 먹으면 이게 정말 끝장난다 강정 (羌飣) 밀가루에 꿀과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썰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 만든다 중국 한나라의 한구(寒具) 라는 과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군대에서도 이게 나온다는데 맛은 분필 내지는 흙 맛이 난다고 한다 필자는 아직 미필이라 아는 사람은 댓글로 알려줘라 다식 (茶食) 계피나 녹차, 콩 등의 재료로 가루를 내고 그 가루에 꿀을 섞어 반죽하여 틀에 찍어내 만든다 이름에 걸맞게 차와 함께 먹는 과자인데 저걸 그냥 먹은 필자의 옛 기억에 따르면 외관은 작아도 ㅈㄴ 달았다 꼭 차와 함께 먹자 숙실과 (熟實果) 과일을 익혀 만든 과자로, 이름에 걸맞게 대추와 밤을 꿀에 졸여서 만든다 통째로 졸이면 초(炒) 다지거나 으깨면 란(卵) 이라 한다고 열매가 많으면서도 실하게 열리는 대추와 밤을 먹으면서 다산을 기원하기도 했다고 정과 (正果) 과일이나 연근, 생강 등의 여러 약초를 설탕이나 꿀에 졸여서 만든 과자 위 사진처럼 오늘날에는 낑깡으로 만든 정과가 가장 보편적인 듯 하다 굉장히 쫠깃거리는 식감이 일품이다 과편 (果片) 과실편 (果實片) 이라고도 하는데 과일 즙에 녹말 가루를 섞거나 꿀을 넣어 굳혀 만든다 쫄깃쫄깃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묵 같은 식감이 난다고 한다 엿 (飴, 糖) 고두밥을 엿기름 물에 삭힌 뒤 자루에 넣어 짜낸 즙을 고아서 굳혀 만든다 바리에이션이 굉장히 많은데 졸이기 전의 즙은 식혜 굳기 전의 상태는 물엿 조금 졸이면 조청 바로 굳히면 갱엿이라 한다 딱딱하지만 고소하고 달달하니 여러분도 맛있는 엿이나 먹는게 어떻겠는가? 당 (糖) 그냥 사탕이랑 똑같다 각설탕, 옥춘사탕 같은걸 생각하면 된다 제사상이나 불교 쪽 관련해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이자성의 난과 청나라 침공
이렇게 보면 오삼계도 나름 청나라에 투항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가 아직까지도 '한족의 배신자'라고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 전체에 이제 청나라 군대를 견제할 세력이 없다보니까 청나라 애들이 아주 구석구석까지 약탈해버리거든요 청나라 침공기는 그야말로 한족 수난기로, 중국 전체에서 약탈, 방화, 강간, 학살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정작 오삼계는 이후 청나라한테 번왕 칭호까지 받고 한족 독립군을 진압하면서 잘먹고 잘삽니다 이러니 다른 한족 애들이 오삼계에게 치를 떨만 하죠 어째서 치밀하던 이자성이 마지막 순간에 군을 조율하지 못했느냐에 대해선 여러 추측들이 있습니다 1. 황제의 비자금을 보상으로 약속했으나, 애초부터 황제가 비자금을 군자금으로 다 써버린 탓에 농민군이 빡쳤다 2. 농민들이 북경의 귀족들에 대한 원한이 특히 깊었기에, 그들을 약탈하는 것을 일종의 보상으로 약속해주었다 3. 이자성도 마지막에 자신이 황제가 된다는 생각에 방심했다 개인적으로 전 1번 추측이 제일 마음에 드네요 사실 원숭환 숙청은 숭정제의 실책이 맞긴 합니다. 숭정제가 쉴드 칠 구석이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이전 황제들, 그니까 아예 나라를 다시 세울 노력도 안한 만력제와 비교해서 그런거고, 숭정제 자체도 '유능하다'고 보기에는 성격에서 조금씩 흠이 보이지요 (출처)
크림 전쟁의 다른 전선
먼저 강인욱 선생님의 엄청난 글(참조 1)을 먼저 보시기 바란다. 여기 중요한 언급이 스치듯 지나갔는데, 사실 이 또한 나의 연중 캠페인 중 하나에 들어갑니다. 제발 국사를 동아시아사로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크림 전쟁(1853-1856)은 말처럼 현재 우크라이나의 크름 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전쟁이다. 하지만 이 전쟁의 전선이 우크라이나에만 있지 않았고, 북태평양의 캄차카 반도에도 있었다. 물론 캄차카 반도만이 아니라 핀란드를 위주로 한 발트해, 그리고 북극 지방의 바렌츠 쪽, 백해(White Seas)에서도 일어났었다. 즉, 유럽과 북아메리카, 인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있었던 7년전쟁(1756-1771) 이후 다시 한 번 전세계적인 전선이 이뤄졌다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상식적으로 “허를 찌르기”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술이다. 실행이 힘들어서 그렇지, 결국은 제해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시라. 가장 와닿는 사례가 아마 인천상륙작전일 것이다. 물론 발트해, 바렌츠해, 캄차카 반도의 전투가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발트해부터 얘기하자면 핀란드 헬싱키에서 1시간 좀 안 되게 배를 타고 가면 수오멘린나(핀란드의 城이라는 의미) 섬이 있고 여기에 대포가 막 설치되어 있고 그렇다. 여기 원래 요새입니다. 그리고 아마 셋 중에서는 발트해 전선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국제법 공부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사례가 바로 올란드 섬 사건이기 때문이다. 올란드(Åland) 섬 사건이 국제연맹에서 영토분쟁을 해결한 사례이기 때문인데, 그 연원이 바로 크림전쟁의 발트해 전선에 있었습니다요.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 요새 역할을 하고 있는 올란드 및 수오멘린나를 맹렬히 포격했었다가 물러났는데, 크림전쟁 이후 파리협약에 따라 섬을 비무장화시켰던 일이 있다. 그에 따라 올란드 출신이 지금도 군복무 면제인 건 자랑. 다만 절대적으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섬이건만 핀란드 영토로 남았다. 바렌츠 해는 영국 함대가 북극해를 통해 러시아를 공격했던 전선이었다. 하지만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그쳤는데, 북극에서 뭘 하겠나. 그나마 러시아 요새를 파괴시켰던 발트해 쪽이 더 과실이 있었을 텐데, 만약에 말입니다. 발트해가 뚫리면 당시 수도인 페쩨르부르크까지 그냥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털 수 있었을 것이다. 캄차카 반도는? 당시 북태평양은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 그리고 캘리포니아 북쪽(참조 2) 모두 러시아 영토였음을 아셔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해권은 영국이, 그리고 거기에 프랑스가 붙었네? 페루에 주둔하고 있던 함선들이 태평양을 건너와 캄차카 반도의 러시아 정착지/기지를 친 것이다. 그런데 이거 19세기 중반 이야기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참조 3)는 20세기나 되어야 풀-개통된다 이거죠. 당시 캄차카 반도의 러시아군은 상당히 영리한 선택을 한다. 철도도 없겠다, 어떤 관점에서 봐도 유럽 부분이 중심인 러시아에서 극동까지 지원을 할 수 없고, 해도 한참 늦게 올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싸워서 영프 함대에 피해를 주고는, 일종의 청야전술(淸野戰術)을 펼친 것. 이건 분명 러시아가 승리한 전투였다. 물론? 전황에 큰 영향을 줄리 만무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철종 시절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만약 이때 영국과 프랑스가 크게 승리해서 아예 캄차카와 오흐츠크해를 차지하여 나눠 관리했다면? 하는 시나리오도 상당히 향후 역사에 재밌을 것 같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이 없었을 테고, 일본은 상당히 진출에 제약을 받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런 기록을 볼 때마다 역시 세계는 생각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이겁니다. 크림전쟁의 여파로 인해 러시아가 당시 자기가 지배하고 있던 핀란드 지역에 특별히 통신망을 확충한 것 또한, 핀란드 입장에서 저 멀리 우크라이나 크름 반도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나라 역사도 저 작은 전투 하나의 결과에 따라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입니다. ---------- 참조 1. 아무르강 하류 영령사 절터, 중·러 “원래 우리 땅”(2023년 3월 23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9702 2. 캘리포니아 북쪽에서 순교한 정교회 성인 피터의 사례를 봅시다. 성인 피터(2022년 3월 5일): https://www.vingle.net/posts/4302326 3. 전혀 다른 주제겠지만, 러일전쟁 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되고 잘 활용됐다면 뭔가 또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Entente cordiale이 Triple-Entente로 더 빨리 바뀌고 영국의 일본국채 투자가 러시아를 향했을지도? 4. 짤방은 여기서 가져왔다. Petropavlovsk: The Crimean War’s Forgotten Battle :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petropavlovsk-the-crimean-wars-forgotten-battle/
무민 초컬릿
사진은 너무 귀여워서 구매한 무민 밀크 초컬릿 세트다. 다만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는 Moomin이 아니라, Muumi이라고 쓰여있다는 점인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무민의 고향 핀란드에서의 무민 이름이 바로 Muumi입니다. 장음 /우/는 이해하실 텐데, 원래 단어 끝에 i가 붙어야 명사의 뉘앙스가 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약간 무민 이야기를 좀 써 보자면(주말 특집?), 무민 캐릭터를 탄생시킨 인물은 토베 얀손(Tove Jansson, 1914-2001)이었는데, 그녀는 현대에 와서는 정말 소수로 줄어들었지만 스웨덴어 모국어를 가진 핀란드인이었다. 이름만 봐도 뭔가 스웨덴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좀 묘한 것이, 스웨덴어 표기인 Mumin이 맞기야 맞다. 그러니까 괜히 핀란드 캐릭터이니 /무우미/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는 건데, 그건 그렇고, 이름을 어째서 무민으로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다. 영어판 위키피디어에 에스토니아 사람의 말을 빌어서 M이 들어가야 좀 부드러워서…라는 해설이 있기는 한데, 다른 출전을 못 찾아서 그걸 택하기는 좀 꺼려진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민이 처음부터(그러니까 1940년대) 히트를 치지는 않았었다. 맨 처음 선보였던 “작은 트롤과 대홍수/Småtrollen och den stora översvämningen(당연하게도 스웨덴어판이 먼저 나왔다. 1945)”는 단 219권만 팔렸다고 하며, 제목도 그녀가 지은 제목이 아니었다. (제목에 무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당시는 말괄량이 삐삐가 대세였지, 무민은 ?? 분위기였다.) 이럴 때 방법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출판사를 바꾸는 것, 그리고 해외 진출이다. 그녀는 출판사를 Söderström & Co에서 경쟁 출판사인 Schildts로 바꿨고, 영어를 매우 잘 했던 막내동생, 라르스 얀손(Lars Jansson, 1926-2000)을 통해 영국에 진출했다. 그런데 이게 통했습니다. Associated Newspapers 연재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토베는 1950년대 말까지만 직접 실무를 뛰었고, 그 후의 작화와 스토리는 모두 라르스가 맡았었다. 그러나 모든 영광은 누님에게…) 그렇다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생각하십시오. 역으로 핀란드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서독, 일본, 스웨덴, 소련(!), 폴란드에서까지 애니메이션 및 연극이 제작됐고, 냉전시기 동서 어린이들이 모두 좋아한 거의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아마도 무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에 무민을 터뜨린 건 역시 아니메의 왕국 일본이었다. 1990-1991년에 나왔던 “楽しいムーミン一家”이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무민 상품화가 시작되는데, 토베 얀손 그 자신이 처음부터 상품화를 강력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체 매출의 1/3 가량이 라이선스에서 나오는 초우량기업이 탄생한다. 현재는 라르스의 따님(Sophia Jansson)이 경영하고 있다. 결론은 핀란드를 상징하는 캐릭터, 귀염둥이의 탄생입니다. 핀란드에서 선물을 사려면 무민만한 것이 많지 않습죠. 심지어 러시아도 무민을 핀란드의 상징으로 (아마도 라이선스 없이) 프로파간다 포스터에 쓰고 있다. 사진은 내가 촬영했다. 부엌의 선반에 올려두고 아까워서 못 먹고 있는 중. ----- 참조 Mumin fyller 75 och är större än någonsin, men första boken sålde dåligt och fick inte ens heta Mumin(2020년 1월 2일): https://svenska.yle.fi/a/7-1434043 Just nu I Ryssland! Pippi och Mumintrollen är Amerikanska Sleeper-Agenter : https://www.reddit.com/r/sweden/comments/vwm6ov/just_nu_i_ryssland_pippi_och_mumintrollen_är/?utm_source=share&utm_medium=web2x&context=3 Muumit ovat erittäin tuottoisa bisnes – Jansson oli alusta asti kiinnostunut kaupallistamisesta(2017년 12월 11일): https://yle.fi/a/3-9971230 Muumeista tuli Sophia Janssonille elämäntyö – hän vahtii, ettei Muumipeikko pelaa tietokonepelejä(2017년 12월 25일): https://yle.fi/a/3-9975280 https://fi.wikipedia.org/wiki/Muumi
기록덕후들의 나라 조선의 기록 디테일 수준.jpg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현릉원에 행차한 8일간의 기록을 다룬 의궤 한권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일간의 주요 행사 모습 각종 물품의 설계도에 이르기까지 행차를 위해 혜경궁의 가마를 새로 제작했는데 가마를 장식한 문양까지 다 기록 총 112장의 그림으로 구성 나머지 7권은 행사의 준비과정, 내용, 사후처리까지 다 기록 심지어 행사에 참여한 기생의 이름도 있고 행사에 입었던 복식이 그대로 기록 (의상, 장신구, 속옷까지) 행사에 사용된 그릇의 종류와 쓰임새도 기록 참석자들의 역할과 직책에 따라 출장비를 받았는데 그 내역까지 다 있음 역시 기록덕들의 나라ㄷㄷㄷㄷㄷ 행사 준비 과정이 날짜별로 기록 참여 부서와 담당자 기록 각종 예산은 물론 물품 제작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 일한 날짜까지 기록 정조가 혜경궁 홍씨를 위해 만든 가마는 내부부터 외향까지 모든게 다 기록되어 있어서 언제든 복원 가능함 실제 그림에 있는 인원의 수ㄷㄷㄷ 혜경궁이 수원으로 가면서 먹었던 음식의 종류, 재료 어디서 먹었는지도 기록 교수님들도 감탄에 감탄 음식 재료의 시세까지 싸그리 기록ㄷㄷㄷㄷㄷ 남은 비용을 어디에 썼는지 사후 기록도 다 있구요 언제 인쇄했는지 기록까지 다 있음 정말 기록의 나라 기록물 다운 클라스ㅋㅋㅋㅋㅋ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가 널리 많이 보라고 목판본으로 만들어서 흑백이지만 보통 다른 의궤들은 궁궐에 보관하면서 보는 것이라 올 컬러에 비단 커버b 참고로 이 다큐는 의궤, 8일간의 축제 3부작임을 알려드립니다
[맥주]: 10년 가까이 유럽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 - Zombination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뭔지 모를 이유로 1주일 가까이 빙글 접속이 안되었다가 인제야 다시 접속하게 되어서 후다닥 카드를 쓰고 있네요 ㅎㅎㅎ (일해라 빙글!!) 오늘은 아주 특별한 맥주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평소처럼 하나의 맥주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시리즈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014년에 출시하여 맥주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맥주이자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럽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벨기에 맥주 Zombination 맥주입니다. Zombination 맥주는 무려 유럽 9개 양조장이 협업하여 만들어진 특별한 맥주인데요. 벨기에 양조장 De Struise Brouwers 중심으로 벨기에- Brouwerij Alvinne, 영국의 Magic Rock, Beavertown, Brodies 양조장, 네덜란드의 Kees Bubberman, De Molen. 노르웨이의 Haandbryggeriet 그리고 스폐인의 Naparbier가 합심해 만든 맥주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맥주를 소개 시켜드렸지만 이렇게 많은 양조장이 협업하여 만든 술 자체를 찾는 것도 참 쉽지 않을 거 같네요. 해당 맥주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스폐인 바틀샵 사장 가브리엘 Gabriel Bocanegra 의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원래 그는 스폐인에서 맥주 글을 쓰는 블로거였지만, 유럽에서 바틀샵을 운영하면서 유럽 전역 맥주 양조사와 넓은 인맥을 쌓았고 그의 바틀샵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벤트 성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양조사들을 초대해서 만든 맥주가 바로 Zombination입니다. 해당 맥주 시리즈는 스트루이스의 Black Damnation 맥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만든 특별한 맥주이기도 합니다. 보통 사용하기 드문 피트 위스키 배럴을 사용하였고 이 외에도 버번 위스키, 와인 배럴을 사용하여 총 6종을 출시합니다. 모든 맥주들은 무려 17도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지만 그 도수와는 별개로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게 다채로우면서도 강렬한 캐릭터도 가지고 있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맥주 애호가로부터 극찬을 받는 맥주 시리즈 입니다. 아래 제가 리뷰한 글도 있는데 조만간 다른 시리즈 리뷰도 올려야 겠네요. ㅎㅎ https://www.vingle.net/posts/4745914?q=zombination https://www.vingle.net/posts/4653635?q=zombination https://www.vingle.net/posts/4706818?q=zombination 모든 술에도 그렇듯이 항상 정상급 자리를 지키는 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긴 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랜드는 매 순간 빠르게 변하하고 새로운 맥주는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한 시간 속에서도 Zombination 맥주는 여전히 정상급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많으로도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운이 좋게도 이 맥주는 여전히 저에게 최고의 임페리얼 스타우트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참 시간이 지나면서 술의 모습도 변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맥주가 저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과 감동은 여전히 변함 없길 바라는 욕심도 생기는 맥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에 더 재밌는 맥주 이야기와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마음 속 1등 술이 있나요?
ICC의 푸틴 소추
강대국들이 가입하지 않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정말 쓸모가 없는(참조 1)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푸틴과 르보바-벨로바(Мария Алексеевна Львова-Белова)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위원(메드베데프 대통령이 2009년 대통령령으로 창설했다)을 기소했다. 푸틴의 얼굴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르보바-벨로바는 드디어 스팟라이트를 받았다(참조 3). 함부로 법정에 못 세우는 것, 사전조사야 가능하겠지만 전심과 1심이 과연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계시다. 다만… 우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어째서 그들을 “unlawful deportation of population”으로 기소했을까? ICC에 대해 어느정도 들어본 분들이라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깔끔하게 침략했으니 그냥 침략 범죄로 기소하면 되는 것 아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안 됩니다. 첫 번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ICC 체약국이 아니라서다. 체약국이 아닌 영역에서 일어난 침략범죄에 대해, ICC는 관할권이 없고, 여기에 대해서는 전쟁 초기에 이미 ICC에서 명확하게 얘기했었다(참조 4).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의 임시관할권 수락이다. (실질적으로는 두 차례에 걸쳐, 참조 5) ICC 관할권을 일방적으로 수락한 우크라이나는 전쟁범죄에 대한 관할을 수락한 것이지 참략범죄에 대한 관할을 수락한 것이 아니었다. 자, 그렇다면 어째서 굳이, “아이들의 불법적 이송”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었을까? 그냥 전쟁 범죄라고 퉁치면 안 될까? 이건 사실 러시아 정부 문서로 증명이 되기 때문에(참조 6), 사실 어떻게 보면 소추관의 입장에서 그나마 기소하기에 명확하고 간단한 논리로 가능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예일대 분쟁연구소에서 정성스럽게 제작한 보고서(참조 3)가 하나 있다. 그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에서 어린이-청소년들을 대량으로 러시아 본토 이주를 시켜왔었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6천 명 이상이 러시아 본토 내 43개 시설로 이송됐고(극동 지방으로도 많이들 갔다), 각 시설에서 정치적 교화???를 하고 있다. 그 다음, 아이들은 러시아 내 각 양부모 가정에게 보내고 그들이 이들을 키운다. 그리고 여기에 러시아 내 모든 관계부처가 관여하고 있고, 그 수장이 바로 짤방에 등장하는 르보바-벨로바 위원이시다. 좀 곁다리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도 여기에 관여하는 것 같다. 르보바-벨로바 위원의 남편도 러시아 정교회 신부(사제 결혼이 가능하다. 단, 승진이 안 됨)이며, 이 일에 대해 각종 기사를 보다 보면 독일이 아주 나쁜 나라였던 시절, 레벤스보른/Lebensborn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 독일군 및 친위대에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아리아틱한” 아이들을 납치해서 키운 시설이기 때문이다. 수단의 알-바시르의 사례처럼, 수단 정권이 바뀌어도 (예우상?) ICC에 인도 안 되는 것을 보면 푸틴이 헤이그에 체포되어 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르보바-벨로바는 일종의 “희생양”이 되어 헤이그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1984년생이며 5명의 친자식과 18명의 양자식들을 거느렸어도 말이다. ---------- 참조 1. 가령 미국은 조약에 서명만 하고 공화당 정권이든 민주당 정권이든 의회 비준을 하지 않았다. 국제연맹 식으로… 아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덕분에 한국 국적 판사들의 일자리가 창출된 면이 있기도 하다. John Bolton threatens ICC with US sanctions(2018년 9월 11일):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45474864 2. Situation in Ukraine: ICC judges issue arrest warrants against Vladimir Vladimirovich Putin and Maria Alekseyevna Lvova-Belova(2023년 3월 17일): https://www.icc-cpi.int/news/situation-ukraine-icc-judges-issue-arrest-warrants-against-vladimir-vladimirovich-putin-and 3. 짤방의 여자이다. 출처는 아래 예일대학교 분쟁연구소의 보고서이며(full report를 클릭하면 PDF로 나온다) 이 보고서가 나온 이래 세계가 그녀를 주목하게 된다. Russia’s Systematic Program for the Re-education and Adoption of Ukraine's Children(2023년 2월 14일): https://hub.conflictobservatory.org/portal/apps/sites/#/home/pages/children-camps-1 4. Statement of ICC Prosecutor, Karim A.A. Khan QC, on the Situation in Ukraine: “I have been closely following recent developments in and around Ukraine with increasing concern.”(2022년 2월 25일): https://www.icc-cpi.int/news/statement-icc-prosecutor-karim-aa-khan-qc-situation-ukraine-i-have-been-closely-following 5. https://www.icc-cpi.int/sites/default/files/iccdocs/other/Ukraine_Art_12-3_declaration_08092015.pdf#search=ukraine 6. Meeting with Commissioner for Children’s Rights Maria Lvova-Belova(2023년 2월 16일): http://en.kremlin.ru/events/president/news/70524 PS. ICC의 기소가 과연 의미가 있느냐, 없지는 않다. 당연히 예상들 하실 수 있을 “정의” 구현에 대한 정신승리(…) 외에도, 기소를 갖고 향후 러시아 정권이 바뀔 경우(?) 유엔안보리에게 카드를 하나 쥐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ICC 협정상 안보리는 기소절차를 “정지”시킬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희망편에 따르는 시나리오라 할 수는 있겠다. 그리고 도대체 왜 아이들만 신경쓰느냐 하실 수도 있을 텐데, 아이들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국내법에 따르는 검사들이 하듯, 기소 항목을 추가하는 것도, ICC 소추관의 권리 중 하나다. 증거가 충분해지면 제노사이드 추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알-바시르의 소추 사건이 바로 그러한 과정(전쟁범죄와 인류에 반한 죄에 제노사이드 추가)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