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전쟁이 터진 이후, 헬싱키-상트페쩨르부르크 간 기차 노선이 결국 끊기면서 러시아와의 교류가 거의 중단됐었는데, 사실 러시아와 상당히 긴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나라로서 핀란드는 러시아를 빼놓고 역사를 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주말은 역시 논문이지 시리즈가 나옵니다.
사실 이 논문은 대단히 오래 전에 나왔다. 우연히 중고서적에서 발견하여 신나게 읽었는데, 제목부터 말씀드리자면 “상트와 핀란드: 이주와 영향/S:T Petersburg och Finland: Migration och Influens 1703-1917”이다. 스웨덴어로 쓰여 있으며, 저자는 Max Engman(1945-2020), 핀란드의 역사가였으며, 국가기록보관소 및 핀란드역사학회 저널(참조 1)의 편집장을 오래 지냈다. 이런 논문을 쓸만한 환경에서 일한 것이 매우 부러운데…
이 논문을 소개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밀덕들이나 기억할 소련-핀란드 전쟁들 빼고 여러분들 핀란드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잖아요(??). 그걸 짧게나마 알려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런 잘 쓰인 논문이라는 얘기입죠. 막스 엥만은 실제로 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해 북유럽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그 후로 온갖 수상과 저작물 시리즈를 이어갔었다.
자, 여기서부터입니다. 핀란드는 매우 오랜 기간(대충 6백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그때문에 핀란드인들에게는 (스웨덴의 무관심에 따라) 핀란드어와 문화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딱히 핀란드 민족의식이 발달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게 패배했네? 덕분에 러시아는 19세기 초, 핀란드 지역을 점령하고 자치령을 세우는데, 이때부터 여러 핀란드인들의 러시아, 특히 상트로의 이주가 시작된다. 바로 이 논문의 주된 내용인데, 사실 당시 핀란드인 이주에 대한 기록은 정리된 것이 전혀 없으며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상황인지라, 1980년대 쓰여진 엥만 박사의 이 논문이 거의 최초급의 제정 러시아 당시 핀란드인들에 대한 통계 및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자, 러시아가 자치를 허용했듯, 러시아도 핀란드에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핀란드인은 제정 러시아 국민으로 그냥저냥 살아갔지만 나중의 알렉산드르 3세 차르가 러시아화 정책을 무리하게, 황국식민화 정책(지구 반대쪽 어디엔가가 떠오르신다면 그건 여러분의 착각입니다)을 추진한 덕분에 핀란드만의 민족 정신이 무럭무럭 커집니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시 곧바로 독립을 해버린다는 이야기.

이걸로 초간단 핀란드 역사는 끝인데(?!), 그래서 상트로 간 핀란드 이민은 어땠는가? 많이 갔습니다. 아주 많이요. 한 때는 헬싱키 인구와 비슷한 규모이기도 했고, 19세기 후반까지도 핀란드의 어지간한 도시보다 상트에 사는 핀란드인들의 수가 더 많았었다. 아니 그럼 왜 굳이 상트로 갔는가?
상트가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북유럽 동네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시장과 일자리가 있으니 거기로 가는 것이며, 한때 상트 인구의 2.7%까지도 차지했다고 한다(참조 2). 하필이면 왜 핀란드 사람들이 상트로 가죠? 이게 러시아의 농노제 때문이었다. 그 광대한 러시아 제국 내에서 쉬운 이동이 힘들기도 하거니와, 농노제 특유의, “고향에서 살어리랏다” 정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갖 부류의 핀란드 사람들이 상트로 갔기 때문에, 이게 바로 러시아 사람들 유전자 검사할 때 핀란드계가 꽤 나오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참조 3). 자, 그런데 이 핀란드 사람들의 상트/러시아 이주가 19세기 후반부터는 뚝 떨어진다.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알렉산드르 2세가 했던 농노 해방이, 러시아 내의 인구 이동을 매우 많이 일으킨다. 즉, 상트나 모스크바로 러시아 내 다른 러시아인들이 많이 들어갔다.
(2) 핀란드에 관대했던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핀란드 내의 길드도 철폐(1863년)했었다. 거의 금난전권 철폐와 맞먹는 정책인데, 이게 그동안 상트로 향했던 핀란드 제조업자들의 행렬을 핀란드 내 다른 도시(특히 헬싱키)로 돌리는 계기로 작용한다. 자유롭게 일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3) 미국이 이민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미네소타와 미시건 주에 많이들 몰려갔는데, 이건 알렉산드르 3세의 황국신민화 정책(…) 때문이었다. 러시아화를 피하려는 이민자들의 선택은 문을 크게 연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이었다.
결론이 나온다. 러시아를 빼고는 핀란드 역사를 논할 수가 없다(영국<->프랑스, 중국<->한국<->일본도 마찬가지). 그리고 눈에 띄는 차르들이 있다. 알렉산드르 2세 및 3세인데, 이들이야말로 핀란드인들의 핀란드를 부추긴 러시아 황제들이라는 사실이다.
말인즉슨? 남의 나라 정체성 형성을 강력하게 도와주는 어둠의 비-러시아 민족들 구원자가 바로 러시아의 황제들이었다. 그 나라가 생각나신다면 당신 생각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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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저널 명칭은 Historisk Tidskrift för Finland인데 문제는? 1916년부터 시작된 이 오래된 저널이 스웨덴어로만 나옵니다.
2. 19세기 상트 인구가 100만 규모였으니 그 중 2만 7천여명을 추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가 이용한 통계는, 일단 러시아 제국이 행했던 인구조사와, 상트 내 러시아/스웨덴인들용 루터교 교인 명부, 여행권 발급 통계 등을 근거로 했다.
3. 가령 소련 여자(상트 출신은 아니다) DNA 검사 결과를 보면 핀란드 DNA가 제일 많다.
“한국인 맞다” 유튜버 소련여자 크리스, DNA 검사 결과 공개(2021년 4월 18일): https://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872098
4. 사진은 내가 촬영했으며, 책으로 나온 논문의 표지이다. 1983년에 출간됐으며, 인터넷 정보는 아래에 있다. 집중적으로 본 것은 영문 요약으로서, 이 책의 끝무렵에 나온다. https://www.antikvaari.fi/k/engman-max/st-petersburg-och-finland-migratio/001566c4df7e793858cfde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