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gun85
1,000+ Views

우크라이나 참전한 한국 용병

한국 의용군이 아니라 '용병' Wardog 입니다.
돈을 받고 그 나라를 위해 싸우고 죽이는 사람이며,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이고 이라크, 시리아에서 전투를 했다 합니다.

아래부터 펌
프로스트펑크중인 팀원.
원래는 작전 맵핑용 PC이지만 작전 없으면 영화 감상 및 게임용.
사람 죽이는 일 하면서 쉰다고 잘 논다 싶겠지만 우린 이게 천직입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게 상황이지만 지금까진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은 이번 전쟁 참전 초기 작전 복귀해서 총 닦고 쉬고 있는데
같이 작전하고 돌아온 장교가 이번에 잘했다며 준 우크라이나 SOF 기념 메달입니다.
저 SOF는 같은 국방부 소속이긴 한데 사실 제가 속한 곳과는 완전히 다른 조직입니다.

현재 우리 팀 외국인 들은 저 포함 모두 자기네 나라 군 전역 후 이라크, 시리아에서
의용병으로 시작한 친구들입니다. 의용병이라고 SNS랑 유투브로 돈 빠는 놈은 없습니다.
전부 진짜들이죠. 물론 우린 여기서 계약자들이지 의용병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남부군 사령관이 서명을 했고 둘 다 제 성이 Kang(KAHГ)이 적혀 있습니다.
격려장에는 기밀사항은 없기에 이름만 지우고 공개했고
군적 서류는 어차피 제가 우크라이나 군 소속이라는 것 외엔 다른 내용도 없지만
생년월일 등등은 가리고 성과 정보부, 정찰대 내용만 남겼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시리아 내전 참전해서 여권 회수당했다고 언론에 떳던 게 바로 접니다.

작년에 다시 여권 받았죠. 언론에 이라크 관련된 건 안 뜨더군요.
오래 있긴 거기서 더 오래 있었는데. 언어도 모르고 그 나라 실정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생활을 해왔는지는 개인사라 그 내용은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

일단 난 병으로 만기전역을 하고 부사관으로 재입대했다. 병 때 부대는 수방사 예하 부대였고 내가 2006년 군번인데 우리 부대는 세탁기가 하나라서 상병까진 속옷도 손빨래, 일병까진 전투복도 손으로 빨았었다. 간부들 꼬장? 2년간 좆나 받아봤다. 그럼에도 전역하고 재입대를 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통해 전쟁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전투 참가하여 싸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왔다. 물론 고민 많이 했다 당시 나도 내가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삶이 진짜 있을까 싶었으니까. 안되는 영어로 번역기 써가며 정보를 찾아보니 당시 이라크, 아프간전으로 PMC라는 것도 많이 생기고 전쟁 용병과 정부, 기업, 부호들의 계약자라는 것들도 실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자료 찾아보면서 마음을 정하고 부사관 재입대를 했다 그때는 그런데 가려면 무조건 직업군인으로 복무해야 되는 줄 알았다. PMC들이 '~ 년 이상 복무했었을 것'이라는 사항을 모집 요강에 넣었던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인데 아니더라. 일부러 군도 해병대를 골라서 갔던 것인데 이유는 그쪽 세계에 미 해병대 출신들이  많이들 간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원래 육군이었어서 해병대만 가면 좋은 훈련 시켜주고 나중에 그쪽 세계에 들어갈 때 쉽게 들어가고 대우받을 줄 알았다. 근데 이것도 아니었다. 하여튼 당시에 내가 얻은 정보와 지식이 그 정도였고 4년 복무 마치고 전역해서 이라크와 시리아 여기저기에 연락을 넣었다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한 캐나다군 출신이 날 이라크의 어떤 유닛에 꽃아 주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해당 국가의 상황이니 정치적인 관계니 뭐니 난 그딴 거 관심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구와 어떤 작전을 누구의 밑에서 하냐는 것이다. 사회생활 해 본 사람은 이게 얼마나 절대적인 요소인지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멋모르는 자들이 정의니 명분이니 떠드는데 내가 처음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을 때 나는 내가 정의의 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의란 어디까지나 일의 결과이다.

-----------------------------------------------------------------------------------

그래서 나는 좋은 전투가 있으면 어디든 가는 편을 택했다. 친구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을 시작하려하는데 얘기 들어보니 재밌겠네? 그래서 왔다. 이게 끝이다. 사전 지식? 언어? 내가 영어 잘하고 현지 상황 잘 알면 그게 날 SAS나 델타로 만들어주냐? 절대. 한국인이 영어를 암만 잘하고 출신 부대가 좋아도 미국, 영국, 호주 등등에서 훨씬 경력 좋은 인원들이 매년 전역해서 쏟아져 나온다. 내가 미국, 영국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그들이 날 찾아주는 이유는 내가 전투에서 그들에게 인정받아서인 것이지 영어나 중동에 대해 잘 알아서 가 아니다 애초에 우린 서로에게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죽음이 일상인 곳이 바로 전쟁터이다

-----------------------------------------------------------------------------------

총동원령? 실질적으로 그런 건 없습니다. 후방 도시 민간인들은 원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동원령은 정치적으로 상징성만 부여하고 유사시를 대비하는 수준이죠 실제론 자원 생산의 최대 효율을 내도록 작동되는 중입니다. 진짜 총동원이 되어버리면 나라가 경재가 박살이 날 테니까요. 당연히 전선에선 전투가 치열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전선이 열세인 건 열세인 것이고 전투지역이 아닌 곳 사람들은 가능한 좋은 삶을 살아야 정부는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자원을 만들어내고 그걸 가지고 군을 지원하는 것이지요. 자원생산, 관리, 사용을 효율적이게 할 줄을 모르면 러시아 꼴 나는 겁니다. 뭐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고 그냥 되겠지하고 때려 박았는데 결과는? 물자와 인간만 있는 데로 갈리고 있습니다. 전쟁 초기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후방 나이트클럽, 호텔에선 계속 파티가 열리고 있음에도 말이죠.

누가 저한테 너 자신도 전방에서 내장탕 만드는 기계로 굴려지는데 후방에선 다들 놀고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화나지 않냐?라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이 나라가 전선에 필요한 자원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

1. 러시아군 보급이 나쁜가?

전혀, 개인화기부터 장비 및 물자보급 상태가 우리보다 우수. 헐벗고 굶는 러시아군은 본 적 없다.

2. 왜 러시아군은 지지부진한가?

그 놈들은 숫자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능한 지휘관.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병사들.
멍청한 군 시스템.

3. 그럼 우크라이나는 왜 빨리 러시아를 몰아내지 못 하나?

숫자 계산을 잘못한 러시아이지만 그럼에도 러시아군이 절대적으로 수적 우위에 있다.
방어하기 불리한 우크라이나의 지형적 특성.

4. 우크라이나 정보력은 러시아보다 우위인가?

내가 보통의 우크라이나군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 정보가 좋은 것과 야전에서 그 정보가 제대로 활용되는것은 다른 문제이다.

5. 그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둘 다 무능한가?

우크라이나는 부대에 따라 유능한 지휘관이 있는 경우 나이, 계급, 근무연수 따윈 무시한 체 파격적으로 밀어주고 있으며 우리 팀만 해도 서방식 훈련과 사고를 가진 유능한 지휘관들이 지휘하고 있다 그런 부대들은 지금껏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반대로 러시아는 그런 게 없다. 러시아의 군 시스템의 모순은 확실하다. 징집병들은 죽이기 쉽다. 러시아군의 분대부터 사단까지 무능한 지휘관들로 가득하다.(뉴스나 유투부에 그걸 비웃는 사람들 많던데 한국이 그걸 마냥 비웃을 건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도 징집제에 말도 안 되는 장교, 하사관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니...)

저는 아니지만 여기엔 진지하게 전쟁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기에 한줌 남겨보았습니다.

※ 저는 국제군단인가 의용 뭐시낑이? 하고는 전혀 다른 유닛 소속입니다. 저는 애초에 기존 경력을 바탕으로 권유를 받아 왔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전투를 치르는 외국인들이란 우크라이나 근처 국가 출신들로 이루어진 부대들 혹은 저와 같은 부류들뿐입니다. 저는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삼국에서 수많은 의용병들을 보았지만 99% 가 허접한 어중이떠중이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종격투키카페 이종디자이너님 펌
3 Comments
Suggested
Recent
해왔던 게임을 실전으로 해보고싶었던걸까?
Content was hidden due to reports.
노이해...;;;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일본 고위 관료가 친아들을 살해한 사건.jpg
2019년 6월 2일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도쿄 대학교 법학부 졸업의 농림수산성(구 농림성) 경제국장, 사무차관, 체코 대사까지 지낸 고위 관료가 자신의 아들을 식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뒤 자수 피의자 熊澤英昭(쿠마자와 히데아키) 1943년 기후현 출생으로 범행 당시 76세 은퇴 후에 퇴직금으로 도쿄에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을 구입해서 아내와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다 주위 평판도 좋았던 부부 살인 피해자 친아들 熊澤英一郞(쿠마자와 에이이치로) 1975년 3월 20일 출생 향년 44세 아들 에이이치로는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에서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엘리트 교육을 받아옴 우수한 성적으로 도쿄의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교우관계에 서툴러 이지메를 당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며 중학생 때부터 삐뚤어지기 시작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사립대에서 건축학 학사를 취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늘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이어감 다니던 병원에서 해고당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에이이치로는 식칼을 꺼내서 부엌에 두고 상사를 찔러 죽이겠다고 해 겨우겨우 진정시켰다고 한다 에이이치로는 매달 거액의 용돈 40만 엔을 받았는데 이렇게 돈을 주지 않으면 미쳐날뛰며 협박해서 혹여나 타인에게 범죄를 저지를까 봐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져 다른 아파트에 혼자 살던 에이이치로의 생활은 항상 게임이 중심이었고 2019년 5월부터 다시 본가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같이 산지 2일째에 문제가 터지게 됨 쿠마자와 히데아키 : "에이이치로에게 쓰레기 좀 내다 버리라고 했다가 습격당했습니다 머리카락을 잡혀 식탁까지 끌려갔고, 저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현관까지 쫓겨 문과 콘크리트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계속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이 히데아키의 몸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멍 자국이 여러 개 발견됨 아들에게 중학생이던 때부터 40대가 된 때까지 줄곧 폭력을 당해왔는데 이런 사실을 체면 때문인지 에이이치로를 위해서인지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히데아키 내외 살인사건 발생 그로부터 6일 후 에이이치로는 집 근처에 있는 소학교에서 운동회 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학생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하며 적대감을 표출 그리고 불과 며칠 전인 5월 28일에 도쿄 인근 가와사키 시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던 50대 남성이 양손에 흉기를 들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어린 학생들과 사람들을 공격해 11살 여자아이와 30대 남성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치는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시작된 폭력,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 소학교 학생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말 등을 겪은 아버지 히데아키는 아들이 진짜로 범죄를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결국 새벽 3시 20분 칼로 에이이치로의 복부, 옆구리, 견갑골 아래 등 30여 곳을 찔러 살해함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 용의자 岩崎隆一(이와사키 류이치)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으로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으며 에이이치로처럼 오랜 기간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었음 양손에 쥔 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장갑까지 끼고 사람들에게 휘둘러 상해를 가한 후에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사건 현장 / 흉기 난동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 小山智史(오야마 사토시, 일본 외무성 미얀마어 통역 담당관) 부부에겐 아들 에이이치로 말고 딸도 한 명 있었는데, 에이이치로가 중증 히키코모리이자 만화 오타쿠로 이미지가 나빠 집안에 대한 말이 안 좋게 번져 혼담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고 파혼 때문에 상심한 딸은 자살했다고 한다 이 또한 히데아키의 아들 살해 동기 중 하나로 지목된다 2월 16일 도쿄 지방 재판소에서 열린 1심 결과 아들이 심각한 패륜아였고 단순히 히키코모리로 사는 것을 넘어 부모를 학대하고 노후자금을 가로채기까지 하는 등 악질이었던 점을 감안해 쿠마자와 히데아키에게 존속살인 형량으로는 예외적인 6년형이 선고됨 판결에 항의하여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전쟁 드라마와 영화의 연합군 항공기들이 항상 하고 있는 도장
이 기체들의 공통점은 바로 흰색과 검정색이 혼합된 특별한 위장도색을 칠했다는 점으로, 도색은 속칭 '침공 도색(Invasion Stripes)'로 불리는 초기형 IFF로 쓰였음, 1944년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만약 수천기의 항공기들이 한꺼번에 작전을 한다면 아군오사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걸 알았음, 침공 도색은 5월 14일 영국 공군참모총장이던 트라포드 레이-말로이가 허가하였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전투기들한테는 6월 3일, 폭격기들한테는 6월 4일날에서야 도색이 허가 되었음, 폭격기중에서도 랭카스터나 B-17 같은 4발 중폭격기들은 예외였는데 당시 독일군은 이들과 같은 중폭격기가 거의 없었기에 아군오사의 위험이 매우 적었음, 이 도색은 전투용 항공기뿐만 아니라 정찰기와 구조기, 글라이더에도 적용되었음, 노르망디 상륙 1달 후에는 위장을 위해 동체 상부에서만 도색이 제거되었고 1945년쯤 되자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연합군은 이 도색을 폐지하였음, 2차대전 이후에도 이 도색은 한국전쟁 당시 호주와 영국 해군항공대 항공기들에게 적용되었고 일부 F-86 전투기에도 적용되었음, 마지막으로 쓰인건 1956년 수에즈 사태 당시 영불 연합군의 공군이 흰색을 노랑색으로 바꾼 도장을 사용한것으로, 이는 영국산 전투기가 이집트군에서 사용되었기에 사용한 도색이였음, 군사갤러리 ravdozka님 펌
우러전쟁 최신 근황 (구식 무기 예토전생)
구식전차 T-55가 전쟁에 투입되었다는 소식에 오늘은 구식 무기 예토전생으로 글을 쓰려고 함. T-55 투입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그냥 흥미롭고 놀라움. ㅋㅋ 러시아군은 우러전쟁 1년 동안 너무 많은 기갑을 잃은 나머지, 치장 물자를 많이 꺼내다 쓰고 있음. 2차 세계대전 때 썼을 법한 개썩은 군용 트럭을 전선에 투입하지 않나 러시아군 상태가 굉장히 안 좋은 편임. 러시아군 상태가 이렇게 안 좋아지다 보니 군용트럭에 57mm 기관포를 올린 건트럭 수백 대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고 100mm 대전차포를 슬금슬금 전장에 배치하고 있음. '대전차포? 엥 그거 2차 세계대전 무기 아니냐?' 싶은데 2023년에도 쓰는 중임. ㄷㄷ 더 골 때리는 것은 이 대전차포를 후방 2선급 부대에서 쓰는 게 아니라 최전선 부대에서 쓰고 있음. 러시아군 선전 영상에 당당하게 등장함. 그래서 브레들리 장갑차 vs 100mm 대전차포 결투 같은 게 등장할지 모르게 되었음. 지속 사격, 방어 측면에선 또 괜찮은 대전차 무기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음. 뭐 어쨌든 러시아군은 구식 무기를 이렇게나 많이 쓰고 있음. 무기 나이만 보면 110살, 90살, 80살 뭐 이럼. ㄷㄷ 러시아군이 쓰고 있는 수많은 구식 무기를 생각해보면 T-55 투입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음. T-62가 작년 여름에 투입되었으니 오히려 늦게 투입되었다고 볼 수 있음. 그리고 T-55만 투입된 게 아니라 T-54도 투입되었다고 함. 1951년도 산, 한정판 유물의 등판이라 군붕이 입장에선 군침이 싹 돔. ㅋㅋ T-55가 도태된 구닥다리 무기지만 쓸 곳을 찾으면 의외로 많은 편임. 유사 포병 용도로 써도 되고, 참호에 박아 방어용으로 써도 되고, 후방 부대 전력 보강용으로 써도 되고 뭐 그럼. 전차 무덤에 있는 수많은 T-55를 꾸역꾸역 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껄끄러워질 수 있다고 생각함. (70년 묵은 전차를 탈 전차병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그리고 기갑 차량 1대 없이 알보병으로 움직이는 러시아 동원병 부대가 많은데 그런 부대에 뿌려주면 감지덕지하게 쓸 것 같음. 마지막으로 장난감으로 보던 T-55 전차가 우러전쟁에 등판했다는 점이 놀랍고 신기했으며 노후 전차를 폐기하지 않고 만약을 대비해 존버했던 벨기에 아저씨가 지혜로운 현자였고 T-55 등판으로 레오파르트1이 활약할 토대가 만들어진 것 같음. 레오파르트 1 불안하다고 생각했었는데 T-55면 널널한 매치업임. ㅋㅋ 전쟁 장기화로 70년 묵은 T-55가 등판하는 것을 보면 도태 무기를 함부로 폐기하지 않고 만약을 대비해 잘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함. 구식 무기도 엄연히 무기이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 예토전생해서 쓸 수 있음. T-55가 현역이니 M48 패튼도 충분히 현역임. (음?!) 3줄 요약 1. 전쟁은 인력과 자원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블랙홀임. 2. 세계 2위 군사대국 러시아도 우러전쟁 1년 만에 망가짐. 3. 전차 무덤에서 T-54, T-55를 꺼내 쓸 지경에 이르렀음.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
일본 성이 사실상 벙커인 이유
먼저 조선의 성벽을 보면 여기까지가 수원화성과 조선 정부의 공식 기록화인 동래부충절도에 나오는 조선 동래성 성벽임. 저런데서 대충 이렇게 싸웠겠지 이제 일본의 성벽을 보면 딱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엄청 차이나는 게 병사 방호임. 한국 성벽은 총안 놔두고 멍청하게 올라가서 쏘는 거 무시해도 애초에 엄폐가 제대로 안되는 것과 달리 일본 성벽은 그냥 벙커 그 자체임. 총안 빼고 싹다 벽으로 막은데다가 활 곡사 방어용 지붕까지 씌워놨지, 완전히 밀폐는 아니라 수류탄에 당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럼. 이건 사실 일본 성은 성벽이 없고 벙커 그 자체라 그럼. 뭔 개소리냐고? 이건 확실히 다른 나라의 성벽에 가까운 구조와 기능이지, 근데 혹시 일본 성벽은 왜 다른 나라의 전형적인 성들처림 수직벽을 안 쌓고 미묘하게 기울어진 벽을 세우는지 궁금했던 적 있음? 보다 초기의 일본 성채 구조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임. 시부시성임. 위의 1600년대 성과 달리 1336년 이전에 건설된 초기의 성인데, 보다시피 성벽이라 할만한 구조물이 따로 없고 능선을 따라서 여러채의 시설들이 늘어서 있음, 기본적으로 일본의 수많은 산지와 험준한 능선을 이용해서 건설되었지만 저런 기괴한 형상이 자연적으로 생기는 건 아니고, 산 능선을 깎아내서 만든거지. 즉 일본의 성벽은 산 그 자체임. 그리고 산성 건축가들이 평지에 성을 지으면서 기존 노하우를 그대로 응용하기 위해 쌓아올린 인공 산. 그게 일본 요새의 높고 경사진 석벽이고 굳이 석축이라는 용어로 방어용 수직벽인 성벽과 따로 부르는 이유임. 이런 난해한 구조가 발생한 이유로 일단 고립되어서 선진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거나 한 건 아니고 중국 기술 배워와서 지은 판축식 토성인 이토성도 있고 이토성은 지금은 폐허고 짤은 중국식 토성인 가욕관임. 백제 출신 망명 건축가가 지은 오오노 성도 있는데 여기는 능선 꼭대기에 수직벽을 한겹 쌓아 올린 전형적인 한국식 산성임. 이런 것들은 그냥 사장된거고 일본식의 복잡기괴한 성채설계가 발달한 이유로 1. 수는 적지만 개인 숙련도가 높고 현장에 익숙한 사무라이들이 최대한의 방어력을 뽑아낼 수 있는 구조라거나 2. 유교 군주국처럼 대량의 인력을 동원할 수 없을 때 소수의 숙련된 기술자가 건설할 수 있는 구조라거나 등등의 설명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일본 특유의 경사진 벽인 토루나 석축은 수직벽보다 건설이 쉬운 대신 한겹 한겹의 방어력은 좀 애매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복잡기괴한 구조로 겹겹이 구축하고 마찬가지로 기괴한 각종 해자로 보강해놨기 때문에, 적 공세를 종심깊게 받아내다가 공세적 방어로 함락된 보루를 재탈환할 수 있는 소수정예 주둔군에게 유리했음. 만약 조선군이라면 일단 외벽 한겹 뚫린 시점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니 외벽 한겹을 최대한 높은 절대방어선으로 만들고 쓰레기라도 위 에서 돌 던지면 사람 죽일 수 있게 하는 편이 나았지, 일본은 그런 인력이 풍부한 사회였고, 고급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산을 깎아낸 자연 능선이든, 아니면 대 다이묘들이 쌓아올린 바위 인공산이든 그 능선의 핵심부에 건축된 방어건물들이 중요했지, 거기서 그대로 이어진 구조물들이 일본 성 특유의 꼼꼼하고 거의 완전 밀폐된 엄폐벽과 보루임. 이 설계덕분에 요새는 창,칼,활,총으로 돌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얻어걸린 거지만 대포로도 성벽 무너뜨리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성문 뒤에 미로 따라 성문이 몇겹으로 있어서 대포로 문 뚫기도 어렵고, 유럽 보방식 성채랑 비교해봐도 주둔군 엄폐 정도로는 월등히 앞섬, 근데 이 설계를 왜 일본에서만 했을까? 여기서 일본 성채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데 바로 저런 정교한 요새화 구조물들도 대포맞으면 다 뚫린다는 거임. 그냥 건성 부실공사하던 조선은 둘째치고, 서로 대포랑 로켓 쏴재끼던 중국,인도,유럽 입장에서는 어차피 대포맞고 터질 구조물들에 저렇게 정성들일 동기가 없었던지, 하부구조가 워낙에 두툼하고 대포 막기 유리한 방향으로 어쩌다 진화한 바람에, 전근대 동북아에서 이것들을 제압할 만큼의 대포를 동원한 적은 거의 없었고 19세기에 암스트롱포로 구마모토성 조질 때도 상부구조물 외에는 흠집도 안 나긴 했지만, 그 말은 즉 상부구조물은 다 타버렸단 거고, 울산성 전투 때도 총통과 홍이포를 잔뜩 들고 와서 조져대니깐 상부구조물이 무력호되면서 돌파되기도 했음.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이 대포나 투석기의 경험 없이 처음부터 총에서 화약무기 운용을 시작해서 기형적으로 총칼창활 전투에 요새를 최적화한거고, 점차 대포에 가까운 대조총이 나오고 대포 수입이나 노획도 간간히 했기 때문에 에도막부에 의한 긴 평화가 없었다면 저런 구조물들은 아마 점점 간소화되었을 거임. 그리고 이 영향은 수세기 후에도 이어지는데 노르망디 독일 해안포랑 이오지마 수리바치 해안포를 비교해보면 보다시피 독일 해안포는 인공 구조물을 자연 지형 위에 높이 세워놓은데 반해 이오지마 해안포는 산의 천연지형을 깎아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집어 넣은 형상임 여기까지 말한 건 다 예외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경향성이 그렇다는 거임. 장문이니깐 5줄 요약 일본 성은 거의 모든 냉병기, 총기 등에 대해 극도로 방어력이 높다. 다른 나라가 신경 덜 쓴 상부구조물에 극도로 신경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포 상대로는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설계한 원인은 자연지형 자체를 방어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특유의 설계사상 때문인데 20세기 요새 설계할 때에도 이런 사상이 적용되었다. 토탈워갤러리 ㅇㅇ님 펌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진 대처 체계가 잡힌 나라
놀랍게도 대지진이랑은 별 상관 없어보이는 포르투갈임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맞물리는 곳이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임 각설하고 1755년 11월 1일 9시 40분경 포르투갈의 수도였던 리스본에 세계 역사를 뒤바꾼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1755 리스본 대지진 지진의 진도만 8.5~9 정도로 추측되며  포르투갈은 물론 인접한 에스파냐, 지중해 건너 모로코까지 엄청난 피해를 줬고 멀리는 러시아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까지도 지진이 감지되고 해일이 일었다고 함 지진이 발생한 11월 1일은 만성절로 모든 성인의 대축날이었기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성당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지진이 발생하면서 성당 건물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사람이 매몰되었고, 매몰된 상태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곧 성당 내부를 밝힐때 쓰던 촛불로 인한 화재로 사망했음.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붕괴와 화재로부터 안전해보이는 탁 트인 해안가로 도망쳤지만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바다로 쓸려가며 최소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의 인구가 이 지진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함 당시 리스본의 인구가 20만명이었던걸 감안하면 못해도 4분의 1, 많게는 절반의 인구가 하루아침에 사망하게 되버린 것 때문에 목조 건물이 많았던 리스본은 그대로 불타고 쓸려나가서 도시의 85%가 완전히 없어져버렸고  석조건물의 일부만이 남았는데 사진의 카르모 수도원이 그 예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없어지고 가장 튼튼한 뼈대 일부만 남아 지진의 참혹함을 알려주고 있음 하지만 거대한 본진이 발생한 이후에도 거대한 여진이 몇번이고 쓰나미를 이끌고 들이닥쳤고 5일 밤낮으로 화재가 발생해  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리스본은 폐허도 아닌 잿가루만 남은 잿더미가 되버림 근데 이 지진이 왜 포르투갈 뿐만 아닌 세계의 역사를 바꿨냐 말했듯이 만성절에 발생한 사고기 때문... 저땐 아직 기독교적 사상이 유럽 전체에 널리 퍼져있어서 하느님께서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을 굽어살핀다... 신앙심이 깊을 수록 행복한 삶을 산다가 가톨릭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는데 유럽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다고 알려진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은 도시인 리스본에서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미사를 드리러 온 가톨릭 교도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 때문에 가톨릭 국가 뿐만 아니라 전 기독교 국가가 크게 충격을 받고 염세주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됨 재밌게도 언덕에 위치한 알파마 지구는 피해가 적었는데, 바위 언덕 위에 위치해있어 지진으로부터 안전했고 고지대였기 때문에 쓰나미로도 안전했을뿐더러 당시 알파마 지구는 집창촌과 빈민가였기에 높은 건물이 없어 매몰과 화재로부터도 안전했기 때문. 근데 역설적으로 가장 타락했다고 여겨지는 매춘부와 잡배들의 피해가 가장 적었기 때문에 교황도 이 사건에 대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고, 리스본 대지진은 계몽주의가 폭발적으로 퍼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됨 어쨌거나 재해는 발생헀고 이제 그 뒷수습을 해야하는데  다행히 왕이었던 주제 1세와 왕가, 귀족들은 공주 한명의 부탁으로 해돋이를 보러 리스본을 떠나있어 안전했는데, 지진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주제 1세의 앞에 펼쳐진건 불타는 잿더미가 된 리스본과 각종 범죄가 판치는 생지옥 그 자체였음 이 상황에서 주제 1세는 신의 한 수를 두었는데 가장 신뢰하는 신하이자 수상이었던 폼발 후작에게 리스본 사태에 대한 모든 전권을 넘긴 것 폼발 후작은 전권을 이양받음과 동시에 범죄를 즉결 처분하고 지방의 군인들을 불러들여 치안을 유지시켰고 대주교의 허가를 받아내 시신들을 수습하고 리스본 바깥으로 처리해 전염병의 창궐을 막아냄 그리고 이 상황에서 귀족들은 리스본의 시민들에게 식사와 깨끗한 물, 잠자리를 제공해주어 동요를 진정시키고 살아남은 시민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리스본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왔음 그리고 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났을때 왕가는 리스본을 재건할때 여러가지 방안 중 도시의 폐허를 싹 치우고 완전히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이것도 신의 한 수로 새로 짓는 리스본은 도로를 넓게 깔아서 화재가 크게 번지는 것을 막았고  4층 이상 건물 짓는것을 금지함과 동시에 가이올라라는 지진에 안전한 새로운 공법을 도입해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는것을 지연시켜 시민들이 빨리 대피할 수 있게끔 했음. 그리고 다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지진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는데 이게 지진에 대한 세계 최초의 객관적 설문 조사였다고함 1700년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굉장히 현대적으로 대책을 세워서 일을 처리했던 것 근데 안타까운건 당시 국왕이었던 주제 1세는 이 지진에 대한 공포심과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폐쇄공포증에 걸려 아주다 언덕에 천막과 정자를 세우고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고함 지금 리스본에 있는 궁전이 재건된건 주제 1세의 딸이자 다음 국왕이었던 마리아 1세때의 일 주제 1세가 평생을 지냈던 천막이 있던 자리 위에 궁궐을 지어서 이름도 아주다 궁전임
우러전쟁 최신 근황 (불레다르 전투의 교훈)
3개월째 이어진 불레다르 전투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같아서  오늘은 불레다르 전투의 교훈으로 글을 쓰려고 함.  아직 소규모 교전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뭐 이 정도 결과면 결말이 나왔다고 봄. 불레다르 전선은 바흐무트, 아브디브카 다음으로 러시아군이 공을 들인 전선임.  러시아 해군 보병대가 이 전선을 담당했으며 대규모 기갑부대로 불레다르를 공격함.  러시아 점령지와 매우 가까운 거리. 지형 장애물이 없는 완벽한 개활지.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불레다르 크기. 압도적으로 많은 러시아군 부대 수.  러시아군이 쉽게 이겼어야 맞는 전투였음.  정상적인 전투였다면 대승, 압승을 거둬야 마땅했음. 그런데 불레다르 전투의 결과는  '우크라이나군의 우주 방어를 도저히 뚫을 수 없다...' 로 진행되는 중임. 러시아군은 3개월째 소규모 정착지를  못 뚫고 고전하고 있음.  어째서 불레다르를 못 뚫었는가? 불레다르는 진짜 작은 동네임.  여긴 너무 작아서 시가전을 오래 할 수 있는 동네가 아님. 불레다르로 가는 길이 먼가? 러시아 점령지와 불레다르 뒷동네 사이의 거리가 3.8km임. 그렇다면 불레다르와 러시아 점령지는 2km, 3km 이 소리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그게 불레다르 전선의 길이임. 불레다르 전투의 기괴한 비밀은  터무니없는 물량의 대전차 지뢰에 있음. 우크라이나군이 불레다르 전선을  무시무시한 지뢰 지대로 만들어 놓은 것. '지뢰밭 그까짓 꺼 공병 부대로 개척해서 통과하면 되지 않냐?' 싶지만 희한하게도 러시아군은 그러지 못했음. 기갑 부대를 지뢰밭에 꼴박해서 터져나가기 일쑤였음. 처음에 꼬라박아 31대의 기갑을 날려 먹고 그다음에 또 꼬라박아 71대 손실을 달성하더니 또 또 또 꼬라박아 총 137대의 기갑을 날려 먹고  그제서야 기갑 꼬라박기의 광기를 멈췄음.  기갑 137대 손실이라는 추태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러시아 오신트들 마저 러시아 국방부를 비판했을 정도임. 지뢰밭 돌격이라는 무모한 작전에 동원된  러시아 병사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였음.  3월 16일 영국 국방부의 불레다르 전투 평가. 1. 러시아 국방부는 전공 욕심에 조급하게 공격했다. 2. 우크라이나 포병의 지뢰살포탄에 러시아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로 생각됨. 우크라이나 포병이 발사하는 서방제 대전차지뢰 살포탄은  예상치 못한 위치, 이미 개척했던 도로 등에 지뢰를 깔아버려 공병 부대가 부실한 러시아군을 농락했음.  공병 부대가 부족했던 러시아군은  고작 3km의 지뢰밭을 못 뚫고 돈좌되었던 것임.  이게 불레다르 전투의 전말이라고 생각함. 러시아군은 보기 좋고 멋있는 전투 부대는 잘 꾸몄으나, 지원 부대를 등한시해서 군대 밸런스를 망쳤음.   보급, 통신, 의료, 공병 이런 부대도  부실해선 절대 안 될 중요한 부대임. 러시아군은 무모한 기갑 꼴박은 멈췄으나  여전히 산발적인 공세를 하고는 있음.  대전차지뢰에 면역인 이족 보행 병기 인간과  포병을 통한 전통적인 시가전에 들어갔다고 봄.  다만 불레다르 전투의 포격은 그렇게 많지 않음. 무슨 이유인지 포격이 미비함.  불레다르의 협소한 크기를 고려하면 각 잡고 포격하면 3일이면 초토화 가능한데 러시아군은 그러질 못하고 있음. 귀하디 귀한 공격헬기를 불레다르 전선에 투입했다가 쥐포로 만드는 등 추태를 반복하고 있음.  '우크라이나군의 우주 방어를 러시아군이 뚫지 못한다.' 이게 우러전이 끝없는 교착상태로 진행되는 이유라고 생각함. 불레다르 전투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보다 '3km 거리? 그까짓 꺼 전차로 밀어버려.'라는  사령부의 책상머리 작전으로 생각되며  (개인적 추측. 지도만 보면 그게 또 맞음.) 공병부대 부족, 포병 부족으로  작은 소도시를 3개월째 밀지 못했다는 게  흥미롭고 신기한 교훈이라고 생각됨.  3줄 요약 1. 러시아군은 고작 3km의 지뢰밭을 뚫지 못해 불레다르 점령에 실패함. 2. 기갑 부대의 지뢰밭 돌격은 기갑 137대 손실이라는 대참사로 끝남.  3. '지원 부대가 부실하면 전투 부대가 힘을 못 쓴다.'가 이 전투의 교훈이라 생각됨.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
북한군 화생방방호 간단정리
- 들어가는 말 북한괴뢰독재호전광새끼들 역시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1인 1방독면이 지급되고 있다. 방독면은 GP-5 혹은 이걸 자체개량한 물건과 최근에는 대부분 러시아제 PMK-2를 그대로 복제하여 약간의 형상차이만 있는 신형방독면을 사용중이다. 한국군의 경우 CBRN(핵 및 화학 생물학 방사능) 개념을 운용중이라 핵무기와 방사능무기(더티밤 등 핵폭발이 아닌 방사능물질을 이용한 테러/오염목적의 무기)를 구분해놨으나 북괴 새끼들은 어케 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본문에서는 "화생방"이라는 명칭으로만 통일한다. 이번 시간에는 북괴의 야전 개인화생방방호 및 부대단위 화생방방호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겠다. - 개인 화생방방호 북한의 경우 대부대(사단급 이상) 전술/기동훈련에서 보병들이 MOPP와 유사한 상황 하에 작전을 하는 영상이 많이 공개되었었고, 최근에는 펜데믹 상황과 북중국경 폐쇄등을 고려하여 국경지대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채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이 많이 공개되어있다. 둘 다 공통적인 모습은 "화학대가 아닌 야전부대원들은 방독면 외 화학방호장비가 없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교보재가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예 화학병을 제외한 야전부대원들은 방독면 외 개인보호대책 자체를 수립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봤을때는 교보재가 없는거는 말이 안 되는게, 매년 성능시효만료로 교보재전환하는 보급품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군대가 운영되었다면 분명히 훈련용 교보재는 따로 빼놔야 맞지만 북괴는 항상 훈련이나 공개된 사진/영상들에서 화학병 외 야전부대원이 방독면말고 다른 보호의나 보호장갑, 덧신 등을 착용한 전례가 안 보이니 후자가 맞을 수도 있겠다. 북한군의 경우 위장비옷(공병우의)이 개인군장품목이기 때문에 이걸 보호의 대용으로 활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방독면 제품군은 들어가는 말에서 잠깐 언급한 것 처럼, 구 소련제 GP-5가 메인인데, 정화통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위와 같이 주름관형으로 된 것을 착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GP-5의 경우 정화통에 석면이 함유되어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별도의 개선없이 원제품과 그대로 생산보급 했다면 위험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신형의 경우 PMK-2 원본 또는 이 방독면을 복제한 것을 사용하는데, 북한군 버전의 경우 원본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이 있다면 우선 방독면가방이 별도의 방수재질이 아니라 단순 천재질 그대로 사용하는 점과 정화통의 경우 원본은 녹색이나 북한군 것은 흑색이고, 안면부의 음성진동배기판 부분 역시 원본은 철재질이나 북한군 것은 플라스틱으로 재질이 바뀐 것인지 흑색에 반들반들한 질감이다. 방독면은 공식적으로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옆으로 메어를 하고다니는데, 북한군은 허리벨트가 탄띠를 겸용하므로 방독면가방의 고리에 벨트를 통과시키고 크로스백 형태로 메고다니게 된다. 방독면 착용의 경우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가스" 라는 구령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영화 대덕산에 이렇게 나온다) 다만, 한국군과 마찬가지로 MOPP-3 또는 알파(A)단계 발령 시 방독면을 검사단계까지 9초이내 착용하는 그런 메뉴얼이 정해져있는지 아니면 그런거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한국군과 달리 보호두건을 운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호의를 입는 화학병들의 경우, 미군 보호의와 동일하게 보호의 자체에 붙어있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고무줄을 쪼아서 보호두건의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특수전부대(경보병, 저격병, 육전병, 정찰병)는 일반적으로 작전 시 방독면을 휴대하지 않거나 가방에 넣고다닌다. 개중 일부는 처음부터 지급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이 부대들은 애초에 포지션이 애매한 경보병을 제외하면 모두 상시 적지종심부대로 운용되므로 임무특성상 적지종심상에서의 화학공격 가능성이 낮아 방독면을 휴대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점 때문이다. 항공육전병(공수부대)의 경우 한국군 후방 도심지역 등에 대규모강하하여 제2 전선을 형성하거나 특전사처럼 소규모침투하여 게릴라를 펼치는 놈들인데, 얘들의 경우 기본 군장품목에 방독면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위에 언급한대로 방독면을 지급받긴 받는다. 한국군이 신경작용제에 대한 신경해독제로 KMARK-1을 운용하는 것처럼 북괴도 동일한지는 의문이지만, 북괴군 자체가 소련시스템에 김돼지식 축지법교리를 섞은 군대이기 때문에 아마 소련군 교리를 그대로 쓴다면 Aptechka CBRN Kit과 유사한 키트를 운용하리라 보여진다. 이 키트에는 요오드칼륨(방사능대비), 항구토제(구토작용제 대비), 신경해독제가 알약형태 또는 주사제 형태로 들어있어서 경구투약하는 방식이다. 물론 위 내용은 북괴가 저렇게 하고있다가 아니라 정보가 없으니 소련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따른다면 저걸 운용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 화학병의 화생방방호 위 사진은 과거 북한군 화학병들의 모습이다. 화학병들의 경우 녹색계열의 보호의세트를 입고 하드케이스 형태의 방독면가방을 들고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보호의의 경우 질감이 전투복재질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비닐같은 재질임을 볼 때, 한국군이 야전용으로 보급하는 침투성보호의(옷 자체에 활성탄가루 등을 발라놔 작용제를 흡착하는 방식으로 1번 쓰면 무조건 폐기하는 일회용이다)가 아니라 비침투성보호의(쉽게 말해서 비닐옷) 방식으로 보여진다. 2010년대 북한군 군단급 훈련 영상내의 화학전을 가장한 전술훈련 장면인데, 이때도 역시나 방독면만 PMK-2로 바뀌고 동일한 복제이다. 이 인원의 경우 한쪽 팔에 검열관 완장이 있는걸 보면 상급부대(사단이나 군단급 화학부대)에서 파견나온 화학병으로 보이며, 수기를 이용해 화학전을 통제하는 것이 아군과 유사하다. 화생방정찰의 경우 화생방정찰차량을 이용하는데, 대부분 BTR-40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에 동그라미 부분에 오염지대 표시용 깃발이 놓여져있는데, 색깔구분없이 전부 노란색인걸보면 북괴군의 경우 화학/생물학/방사능 구분하지 않고 그냥 오염됐다치면 깃발을 때려박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차량에 탑승한 인원들 모두 보호의를 입고있는 것을 볼때, 마찬가지로 일반부대가 아닌 화학병과 인원들이 맞는 것 같다. 다만, 차량이 BTR-40인데 차량 자체의 노후화 문제뿐만 아니라 차량 상부에 덮개가 없어서 그대로 노출되는 점은 화생방정찰간 생존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위 차량외에 UAZ-469(갱생-85)지프와 장갑차버전의 화생방정찰차도 존재하나 모두 큰 차이 없다. 화학작용제 지역제독의 경우 한국군은 화학제독차량이 존재하나, 북한은 확인이 불가하다. 그러나 화염방사기가 화학부대에 편제되어 있는걸로 알려진걸 보면 소련/러시아처럼 화염방사기를 활용한 제독방식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경우 아예 TOS-1 부라티노 열압력탄 로켓발사기가 포병이 아니라 화생방병과로 들어간다. 즉 열압력탄을 활용한 지역제독이 명목상 본업이고, 마을이나 장애물 녹여버리는건 부업인 개념이다. 언급하면 위험한 서해 모 실종사건때 북괴군 화학병이 방독면과 보호의를 차려입고 와서 시신을 불태웠다는 기사가 나왔었고 현 펜데믹시국에 북중국경 비법월경자(탈북자) 사살 후 불태웠다는 증언이 여럿 있는데, 이 역시 증거인멸이나 그런 목적이 아니라 애초에 북한 교리상 통상적인 오염(화학, 생물학, 방사능) 제독방식이 불태우는거라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가능하다. - 북한의 화생방전 담당기관 북한군에서 화생방전을 통제하는 기관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핵화학방위국이 있다. 위장명칭은 제550부대이다. 이 기관은 총참모부(한국으로 치면 합참) 직속 기관으로써 우리의 국군 화생방방호사령부와 동일한 포지션이며, 예하에 8개 이상의 핵화학대대가 존재하고 연대급 화학소대까지 직접 통제한다. 위 부대는 2023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5돐 기념열병식에 나온 화학병과 열병부대로써 대표부대는 제22핵화학방위대대 단대호가 확인된다. 물론 한국군 화생방방호사령부처럼 순수 방호목적의 사령부는 아니고 북괴답게 화생방무기연구소와 각종 생산시설을 산하기관으로 가지고있다. 요약 1. 북한군 야전부대원은 화학병을 제외하곤 보호의, 보호장갑, 덧신 등을 받지않는다. 2. 북한군은 방독면 보호두건을 운영하지 않는다. 3. 특수전부대의 경우 일반적으로 적지종심작전 시 방독면을 휴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4. 개인해독제는 보급여부가 알려진게 없으나, 있다면 소련때 쓰던 Aptechka 비스무리한걸 쓸 확률이 높다. 5. 화학병의 경우 보호의, 보호장갑, 덧신을 지급받으며 한국군과 동일하게 화생방 제독 및 정찰조를 운용한다. 6. 화생방정찰차는 주로 BTR-40을 쓰는데 지붕이 없는 개방형이라 생존성이 의심된다. 7. 화생방제독은 주로 화염방사기를 이용한 제독방식이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8. 북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핵화학방위국이라는 화생방전 통제사령부가 존재하며 예하에 직할 화학대대가 연대급 화학소대까지 작전을 통제한다. 9. 핵화학방위국은 순수 화생방전 방호부대는 당연히 아니고 북괴답게 화생방무기연구소와 생산시설도 통제한다.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
50억 유혹을 뿌리치고 독일 수도원이 한국으로 반환한 화첩
겸재 정선 화첩 - 금강내산전도 한국 문화를 좋아했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1925년 한국에서 겸재 정선 화첩을 수집해 독일로 가져갔음 이후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었음 근데 이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은 우리나라의 성 베니딕도회 왜관 수도원과 형제 같은 우호 관계였는데.. 선지훈 신부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화첩이 발견된 후, 성 베니딕도회 왜관 소속의 선지훈 신부가 이 화첩을 한국으로 찾아오겠다고 마음 먹음 그리고 이 선지훈 신부에겐 절친한 친구인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가 있었는데.. 왼쪽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 예레미아스 슈뢰더 신부가 오틸리엔 수도원의 원장이 됨! 선지훈 신부는 때가 왔다 싶어서 원장을 설득하고 반환을 요청했음! 뉴욕 크리스티 경매회사 근데 이 타이밍에 화첩을 극찬하는 논문이 미국에서 발표되면서 화첩이 국제적으로 유명해짐..... 크리스티 경매회사는 50억원대는 나올 거 같으니 경매에 붙여보라고 몇 번이나 권유함 오틸리엔 수도원 하지만 수도원 장로회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화유산을 돈으로 거래할 수 없다' 라고 경매를 거부하고 만장일치로 한국 반환을 결정함! 겸재 정선 화첩 - 고산방학도 우리 꺼니까 당연히 돌려줘야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님 약탈 문화재는 당연히 돌려줘야하지만, 이 화첩은 베버 신부가 합법적으로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수도원은 화첩을 돌려줘야할 의무가 없음 화첩을 돌려준 건 오틸리엔 수도원의 큰 결단임 선지훈 신부 선지훈 신부는 문화재 환수의 공을 인정 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음 이 일은 바람직한 문화재 환수 사례로 손꼽힘 오틸리엔 수도원은 이후에도 100년 전 한국에서 채집한 희귀한 식물 표본, 양봉요지, 면피갑 등 한국 문화재를 꾸준히 한국으로 반환하고 있음 끝
우러전쟁 최신 근황 (드론의 놀라운 발전)
새롭고 놀라운 드론 동영상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음.  그래서 우러전쟁 드론의 발전으로 글을 쓰려고 함.  우러 양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필사적으로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드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적을 더 쉽고 빠르게  제거할 수 있을까 연구 중임.  박격드론의 대기갑 공격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RPG 로켓 탄두 폭탄을 만들기도 했으며 '드론의 지속 교전력을 어떻게 하면 더 높일 수 있을까?' 싶어 드론을 공헬 비스무리하게 만들기도 했음.  또 '어떻게 하면 싼값에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을까?'  연구를 거듭해서 RPG 로켓 탄두 자폭 드론을 만들었음.   RPG-7 로켓 탄두 + FPV 레이싱 드론의 결합품이라고 함.  이 RPG 자폭 드론의 가격은 약 65만 원으로  대전차 무기치곤 터무니 없이 쌈. 재블린 1개 = RPG 자폭 드론 153.8대로  무지막지한 가성비를 보임.  공격력이 높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전차의 엔진룸만 노려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봄.   RPG 자폭 드론의 가능성이 입증되자   이번엔 RPG 글라이더 드론도 만들었음.   '이게 날아?' 싶었는데 잘 날고 자폭 공격도 함. ㅋㅋ 인간의 창의력엔 끝이 없는 듯.  그리고 RC카를 개조해서 만든 랜드 드론도 있음.  하늘에서만 드론이 있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도 드론이 있게 되었음.  이 랜드 드론은 적 참호 공격에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함.  무사히 참호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면  꽤나 위협적일 것 같음.  이 랜드 드론이 꽤 유용했는지 더 발전된 양산품(?)도 등장했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생긴 게 전문가가 각 잡고 만든 것 같음. 그 외에 우크라이나의 수상 자폭 드론이  더 작고 스마트하게 개량되었다고 함.  이 새로운 수상 드론은  최근 크림 반도 세바스토폴 공격에 사용됨.  새로운 수상 드론의 위엄. 물결만 보이고 기체는 거의 안 보임.  이런 게 떼거리로 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싶음. ㄷㄷ 마지막으로 장거리 자폭 드론 이야기를 하려고 함. 우크라이나는 이란 드론을 성공적으로 복제했으며 자체적인 장거리 드론도 운용 중임.  이 장거리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 본토 투압세에 위치한  석유 저장고를 성공적으로 타격했음.  아마 2월 28일 공격은 실패했고 3월에 가한 공격은 성공한 것 같음.  호르륵 불타버린 투압세 석유저장고 모습이 장거리 드론 폭격의 성공을 입증함.    드론 공격을 러시아군이 쉽게 막지 못하자 우크라이나군은 장거리 자폭 드론 공격에 재미 붙였음. 장거리 자폭 드론으로 크림 반도를 수시로 타격했다고 함. 우크라이나 장거리 자폭 드론 공격을 당한  크림 반도 세바스토폴 항구 모습.  드론은 싸구려여도  안에 탑재된 폭탄은 무게만큼 위협적임. 장거리 자폭 드론은 초저가 순항미사일 역할을 하며 우크라이나군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음.   샤헤드 드론 공격으로 재미 본 러시아가  이번에 역으로 당하고 있음.  우러전쟁에서 드론은 굉장히 많이,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음. 드론은 싸고 간단하며 양산도 쉽고 복제도 쉬워 많이 사용될 수밖에 없는 그런 특징이 있음.  그래서 우러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드론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음.  3줄 요약  1. 우러전쟁에서 드론이 많이 사용되다 보니 드론 연구도 활발함.     2. RPG 자폭 드론, 랜드 드론 같은 게 등장했으며 신형 드론도 속속 만들어짐. 3. 승리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이 드론 발전을 이끌고 있음.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던 한국인들의 현실
2월 14일 기사. 울산의 한 이삿짐센터 직원이 짐을 옮기다가  싱크대 밑에서 현금 뭉치를 발견했다. 짐을 정리하던 이삿짐센터 직원은  싱크대 서랍장 밑에서 현금을 발견하고 세입자에게 "싱크대 서랍장에 현금이 많은데 왜 안 챙기셨어요. 돈이 꽤 많아 보입니다" 며 돈뭉치를 건넸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렇게 큰 돈은 내 돈이 아닙니다 "라며 "우연히도 세입자 연락처도 가지고 있는 게 없다"고 당황하며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했던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 집을 중개한 공인중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그동안 거주했던 세입자들의 연락처를 물었다. 확인결과 10년간 4가구가 거처 간 것으로 파악하고 모든 세입자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두 번째 세입자였던 60대 여성은 "일의 특성상 현금으로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며 "은행 갈 시간이 없어서 5만원권 100장씩을 금액이 적힌 은행 띠지로 묶어서 싱크대 밑이나 장롱 안에 보관해 뒀다"고 설명했고, 세 번째 세입자였던 50대 남성은 "그 집에 아버지가 살았다. 아버지에게 현금 250만원을 생활비로 드렸는데, 아버지께서 현금만 따로 모아두셨던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경찰이 "두 번째 세입자분은 현금이 보관된 상태와 위치, 금액의 수준을 비슷하게 말했다"고 밝히자.   세 번째 세입자는 "그렇다면 저희 아버지께서 모아둔 돈이 아닌것 같다" 라고 '이의 없음' 의사를 밝혔다. 이에 경찰은 60대 여성이 이 돈뭉치의 주인이라고 확신했다. 여성의 주장처럼 현금은 5만원권 100장씩 두 묶음과 90장 한 묶음이 은행 띠지로 묶여 다발로 보관돼 있었고 위치 또한 정확하여 주인에게 현금 2400만원을 10년만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후 이 현금의 주인은 유실물법에 따라  습득자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5~20%를 보상금으로 지급했고  일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경찰에게 전달했다. 이에 울산 경찰은 "양심에 따라 신고해주신 모든 시민분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실화라니 ㄷㄷㄷ 아직 세상은 살 만한가 봅니다 이종격투기카페 펌
무시할수 없는 캐나다의 국방력
캐나다는 지리적으로 북미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전쟁과는 동떨어져 보이나 실제로는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영국이 참전한 수많은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했음 미영전쟁을 시작으로 보어전쟁, 제1, 2차 세계대전, 6·25전쟁, 아프간전 등 다양한 국제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았음 특히 미영전쟁 당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를 점령해 백악관을 불태운것도 식민지 캐나다군의 활약 캐나다는 2차세계대전 전후로 캐나다의 경제,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산업화되기 전까지 냉혹하기 짝이 없는 혹한의 캐나다 대자연과 싸우며 먹고 살아온 농부, 수렵꾼, 벌목꾼 같은 강인하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1차산업 종사자가 많았기 때문에 병사들의 기량이 다른 나라 군대보다 높았음 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해 독일군한테 악명이 높았고 전쟁 당시 적을 가장 많이 사살한 저격수도 캐나다군이 배출함 (378명 사살한 원주민계 캐나다군 프랜시스 페가마가보) 역시 2차세계 대전에서도 활약했는데 캐나다군은 110만명이 참전하였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캐나다군은 상륙 15분만에 독일군 진지를 돌파해 주노 해변을 점령하고 영국군이 고전하고 있던 골드 해변의 후방을 차단해 독일군들을 포위섬멸해서 1시간 먼저 상륙한 미군보다 더 빨리 해변을 장악함 캐나다군이 상륙한 주노 해변은 미군이 상륙한 오하마 해변 다음으로 사망자 수가 나온 곳으로 캐나다군의 15분의 기적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캐나다군의 피지컬로 해냈다는것. 대전 기간에 윈스턴 처칠은 "나에게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 주어졌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만큼 캐나다 병사들의 전투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6.25전쟁에서도 캐나다군은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인들을 파병했는데 당시 캐나다군의 절반을 한국으로 보냈다. 6.25전쟁때 캐나다군이 가장 활약한 가평 전투는 캐나다군 보다 13배나 많은 중공군 6000명을 뉴질랜드군 포병대대의 지원 하나로 버틴 전투로 자신들의 참호에 포격요청을 했을정도로 긴박했는데 결국 캐나다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이때 캐나다군은 1개 대대 수준인 450명으로 6000명이 넘는 중공군을 상대로 47명의 사망자와 99명의 부상자를 내고 중공군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4000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평 전투로 인해 중공군은 이후 더 이상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지 못 하고 38선까지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어 한국전쟁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는 병사들의 기량만 높은게 아니라 방위산업도 상당이 높은편에 속한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가 생산한 군수품들은 소총 170만정 80만대의 군사차량 5만 대의 탱크 4만 대의 대공포 16000대의 군용기 1만톤급 선박 348대를 생산해서 연합국들한테 공급했다 이렇게 캐나다는 전쟁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이루며 경제를 크게 키울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캐나다는 세계 3위의 교역국이 되어 있었다. 또한 세계 4위 규모의 공군력을 갖게 됐고, 전쟁전 불과 수 척의 군함밖에 없었던 해군은 400대 이상의 군함을 보유한 해군으로 성장해 있었다. 뿐만아니라 6·25전쟁 중 한반도 상공을 수호하던 항공기 중 상당수가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캐나다의 방위산업은 2차대전 중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육·해·공 전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과 전문기술인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