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충격받은 박정희 정부는 ’서울의 요새화 계획‘을 실시하여
서울이 전쟁이나 무장공비에 대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

북악스카이웨이
대외적으로는 관광용 도로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뒤 북악산의 검문을 강화하고 경호에 만전을 기하고자 만든 도로.
또한 의도적으로 도로 인근에 아파트와 주택을 개발시켜
도로를 번화하게 만들어 무장공비를 방어했음.

한남대교
개통 당시 이름은 제3한강교.
강남 개발 촉진하고자 건설된 교량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한강의 제대로 된 교랑이 고작 하나밖에 없어서
많은 서울시민들이 포위되고 말았던 역사를 교훈삼아
서울의 유사시에 시민들과 국군부대가 한강 이남으로 대피할 수 있는
또다른 길목을 만들고자 하는 안보적 목적도 강했음.

남산 1.2호 터널
남산 1호터널은 위에서 언급한 한남대교와 함께 강남과 사대문안의 연결은 물론,
전시에 이 터널을 통해 시민들과 국군이
한강 이남으로 대피할 수 있는 길목 겸 방공호로 개발되었음.
남산 2호터널은 지금도 통행량이 적은 애매한 터널인데,
이는 용산의 미군부대를 염두에 둔 군사적 목적이 매우 강한 터널이기 때문임.
이 두 터널은 남산을 방패삼아 시민들의 방공호로도 쓰이며,
원래 계획상으로는 1.2호터널 교차점에 5000평의 지하광장을 만들어
최대 20만을 수용할 예정이었음.

남산타워
경기북부와 서울에서 선명하게 들리고 볼 수 있던
북한의 방송에 대한 방해전파를 쏘고자 하는 목적이 강했음.
더불어 날 좋을 때 올라가면 개성 송악산까지 보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동태 파악과 요격에도 사용하고자 건설.




유진맨션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이곳의 1층 상가는 두 번째 사진처럼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음.
이 자리는 은평을 통해 사대문안으로 들어오는 서울 방어의 최전선으로,
저 주차장이 전시에는 전차 격납고 역할을 하고, 건물이 적의 포격을 방어하며,
유사시에는 기둥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했음.
이 사실은 해당 시공업체가 1981년 서울시와 행정소송을 벌이며 밝혀짐.


여의도공원 (구 여의도광장)
1997년까지 여의도공원은 원래 콘크리트 여의도광장이었음.
70년대 여의도를 개발할 때 원래는 이곳의 일부를 지금처럼 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었지만,
박정희가 지도에 직접 거대한 부지를 그려넣고,
이곳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콘크리트만 깔라고 지시를 하면서 광장이 건설됨.
당시는 베트남전에서 고전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시기로,
안보 위기를 느낀 박정희가 유사시 여의도를 공군 비행장으로 쓸 수 있도록
광장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음.


여의도 지하벙커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만들던 도중 발견된 지하벙커.
1970년대 여의도광장에서 행사를 할 때,
대통령을 노리는 공격이 게시될 경우를 대비하여 VIP가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벙커임.
내부에 소파, 샤워실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
비밀리에 만든 공간이었고, 제대로 인수인계가 안 되어 잊혀졌다가 2005년에 발굴되었음


강남 한강변 아파트의 총안구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의 한강변 아파트에는 총을 거치할 수 있는 총안구가 있음.
강북이 인민군에 수복되었을 때,
한남대교를 건너 한강을 넘어오려는 인민군을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 진 총안구임.

광화문 이동형화단
과거부터 세종대로 일대의 화단은 이동이 가능한 형태였는데
이는 인민군이 진입할 시 화단을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음.
현대에도 여전히 광화문의 화단은 이동형이며, 집회시위 관리용으로도 사용됨.

공릉천 대전차방호벽
파주와 고양에서 서울로 쉽게 진입이 가능한 공릉천에
방호벽을 설치하여 적군의 전차 진입을 막고자 하였음.
최근 상당수 해체되었음.


대전차방호벽
파주, 고양, 의정부부터 서울 외곽인 구파발에 이르기까지,
인민군의 서울 진입을 막기 위한 ‘수도권 방호벽’이 정말 많았음.
최근 주민편의와 안전을 위해 고양시를 필두로 상당수가 철거되고 있음.

일산신도시
1994년 국방부장관이 ‘수도권 신도시는 수도 서울의 바리케이트다’라고 밝히며
엄청난 논란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일산신도시가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시가전 특화 도시임이 밝혀졌음.
일산은 의도적으로 남북 도로를 좁게, 동서 도로를 넓게 만들어
동서로 길게 배치된 국군이 좁은 남북 도로를 타고 오는
인민군을 포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아파트를 바리케이트처럼 복잡하게 조성하여 서울의 방어막처럼 만들어 두었음.
즉, 도시 전체가 서울의 방호벽으로 건설되었음.
도시갤러리 오늘의김에빵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