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버번 위스키 중 가장 강세를 보이는 스타일은
희석을 하지 않는 배럴 프루프(캐스크 스트랭스)이다.
많은 증류소들은 희석하지 않은 채로 맛있는 원액 그대로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최대한 고도수의 위스키를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60% 대를 넘어서 70%를 넘는 초고도수의 위스키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고도수 바람은 어디서부터 흘러온걸까?

프리미엄 버번 위스키 중에서 한국에서 은근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려 부커스는 평가 절하를 받고 있긴 하지만, 버번 위스키 역사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짐 빔의 마스터 디스틸러인 부커 노(Booker Noe)의 손에서 만들어진 부커스는 보드카와 데킬라같은 스피릿에 의해서 망해가던 시대(Glut Era)를 버티게 한 버팀목 중 하나다.
스몰 배치 배럴 프루프 버번을 지향했던 그의 의지는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는데,
양질의 60~65% 대의 버번 위스키가 1992년부터 꾸준히 시장에 풀리면서
대중의 입맛을 고도수로 적응시키기 시작한다.
이 당시 40% 대의 위스키가 주류였고 보틀 인 본드(Bottled-in-Bomd) 법에 맞춘
50%도 높다고 생각하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진정한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첫 배럴 프루프 버번은 아니지만 꾸준히 상용화된
배럴 프루프 버번은 부커스가 거의 유일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버번 붐이 일어나고 이에 발 맞춰 버팔로 트레이스는
조지 티 스택과 윌리엄 라루 웰러를 배럴 프루프 버번으로 만들었고,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자 2010년대에는 프리미엄 버번의 하위 격에서도
배럴 프루프 버번들이 성행하기 시작한다.
스태그 주니어, 일라이자 크레이그, 잭 다니엘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배럴 프루프 버번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2016년, 헤븐 힐의 일라이자 크레이그 배럴 프루프(ECBP)의
여섯 번째 배치가 70.2%라는 초고도수의 버번으로 출시되자 소비자의 큰 관심을 받는다.
이 당시에는 배치 넘버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이 배치를 ‘Hazmat Batch’라는 별명을 붙인다.
Hazmat Whiskey는 미연방항공국(FAA)에서 위험 물질로 지정해
비행기에 반입이 불가능한 70% 이상의 위스키를 말한다.
이때부터 Hazmat 버번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제 배럴 프루프 위스키가 흔해 지면서 점차 안정화된 고도수 부흥기에
다시 불을 지핀 브랜드가 등장했는데, 바로 잭 다니엘이다.
매년 스페셜 릴리즈로 특별하고 재미있는 시리즈를 하나씩 출시했었는데,
2021년 스페셜 릴리즈는 70%가 넘는 코이 힐(Coy Hill) 싱글 배럴이었다.
잭 다니엘의 강렬한 캐릭터를 Hazmat 위스키에선 더욱 강렬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에 부합하면서 엄청난 인기와 하입을 만들어 낸다.
대기업에서 이러한 초고도수의 버번 위스키를 한동안 낸 적이 드물어서 더욱 하입되었고,
이후 잭 다니엘은 흥행에 힘입어 매년 출시하면서 동시에
증류소 방문자 한정 제품으로 스몰 배치도 출시한다.

사실 이런 고도수 부흥기는 버번 위스키에만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다.
위스키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류에서 고도수가 주는
풍부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추구하는 추세가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
맥주 또한 쿼드루펠(Quadrupel)이나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트리플 IPA 등 10%가 가뿐히 넘은 맥주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점차 매니아 층이 늘어나면서 고인물들의 입맛을 잡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도수 주류를 출시하는 것이 양조장이나 증류소의 시장성에 좋다.

물론 고도수만 추구하는 신앙이 고인물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올드 포레스터의 전 마스터 디스틸러 Jackie Zykan은 ‘위스키가 잔에 따라지면
다양한 화합물이 공기 중으로 떠다니게 되고 이를 맡게 되는데
고도수일수록 화합물이 더 응축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향미를 즐기는데 배럴 프루프가 더 용이하며,
이는 초심자도 쉽게 향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결국 고인물들은 강한 캐릭터를 추구하기 위해,
입문자는 쉽게 캐릭터를 잡기 위해서 고도수의 위스키를 추구하게 된다.

높은 숫자가 주는 위압감(Aura)도 무시 못한다.
높은 도수의 위스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좋고,
이는 증류소의 이미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맛이 좋아야 겠지만 말이다…
고숙성 또한 같은 아우라를 지니는데, 최근 등장한 증류소들에게는
숙성할 시간이 부족하기에 고도수를 통해 아우라를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를 많은 증류소들이 성공을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배럴 프루프나 Hazmat 버번은 꾸준히 출시될 것이다.
고로 고도수 신앙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위스키갤러리 블랑톤님 펌